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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아침 차 한잔 마시면서 전해드리는 햇볕같은 이야기
그 018번째 쪽지!
□ 몸불편한 老母안고 피서온 家長의 효성
모처럼 종친회 친목회에서 부부동반으로 제주도 여행을 하던중 일정에 따라 하루를 함덕 해수욕장에서 보내게 되었다. 회원들은 대개 40,50대의 부부들이어서 부인들은 반바지에 티셔츠를 입고 물가에 앉았고 남편들은 물속에 들어가 어린아이들모양 물장난을 하며 즐기고 있었다.
그런데 우리 옆에 봉고차가 한대 들어왔다.잠시후 50대의 남자가 한 여인을 안고 차에서 내리는 것이 아닌가. 뒤따라 그가족들도 내려왔다. 남자의 팔에 안긴 여자는 80세 이상은 됐음직한 할머니였는데 안동포적삼을 곱게 입고 있었다. 아마도 거동이 불편한 노모를 모시고 식구들이 피서를 온 모양이었다. 50대 아들은 어머니를 안은채 물가로 가더니 물속 바위에 걸터 앉았다. 그러더니 "어머니 시원하시죠"하며 어머니의 어깨에 물을 뿌려 드리고 있었다.
미소를 짓고 앉아 있는 모자간의 모습은 한폭의 그림이었다. 너무도 아름답고 참다운 효자상을 보는 것같아 우리는 넋을 잃고 바라보고 있었다.
그 주위에는 며느리와 손자들이 왔다갔다 하며 수박을 갖다 입에 넣어 드리고 있었다.제주도의 경치가 아무리 아름답다고 해도 이렇게 좋은 풍경은 없을 것이다. 문득 나도 아들을 데리고 와서 그 모습을 보여주었더라면 하는 생각을 했으나 순간 가슴이 찡하는 부끄러운 감정을 억제할 수 없었다.
이 더위에 집에만 계실 아버님과 어머님 생각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 세상 어느 자식이 저러한 효성을 보일수가 있을까. 어느누가 몸이 불편한 노모를 모시고 피서를 가려고 할 것인가.
유행과 젊음이 넘치는 해수욕장에서도 진한 효성심을 느낄 수 있었던 올여름여행은 나에게 더없는 감동을 안겨주었다.
-동아일보 1994,8.18 (목)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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