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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기도(본질, 묵상, 관상, 방언, 치유)

수도관상피정 바클레이............... 조회 수 3730 추천 수 0 2009.04.03 07:3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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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기도(본질, 묵상, 관상, 방언, 치유)

J. A. Bakke, Holy Invitations,
최승기 역, ?거룩한 초대? (서울: 은성, 2007), pp. 349-393.

기도의 본질

기도는 태도이면서 동시에 행동이다.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향해 우리 자신을 개방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경청하고, 하나님께 응답하며, 하나님에 의해 변화되는 하나님의 동반자가 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나님께 직접적으로 우리의 마음을 표현한다. 또한 종종 주의 기도나 타인의 기도문을 사용하여 기도한다. 때때로 우리의 말은 줄어들고 사라지는 대신, 주의를 기울여 하나님의 음성을 경청하는 기도를 드린다. 우리로 하여금 솔직하게 말하고 하나님의 영을 경청하도록 만들어주는 것은 무엇이든 우리의 기도를 촉진시킨다.

기도를 통해 자신을 드러내고, 우리의 삶을 성찰하며, 하나님의 임재와 인도를 인식함으로써 하나님의 사랑에 응답한다. 우리가 더욱 온전히 깨어서 하나님께 감사하며 우리의 삯을 하나님께 개방함에 따라, 우리와 하나님의 사랑의 관계는 발전한다. 기도는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에 의존한다. 성령이 우기로 하여금 하나님의 임재를 인지할 수 있도록 하지 않는 한, 우리가 교제(communion)나 기도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느낌을 갖지 못한다. 그러면 기도는 아마도 공허하고 어리석은 행위처럼 여겨지게 될 것이다. 우리는 자신을 하나님께 개방하려고 노력한 채 기다린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과 깊이 연결되었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기도로 초대하신다.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께서 우리와 의사소통을 하길 원하신다고 가정하는 것은 타당하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언제, 어떻게, 무엇을 우리에게 말씀하실 것인가는 우리의 통제를 벗어난다. 우리가 하나님 과 의사소통을 하고 있다는 느낌을 가질 때, 우리는 기도가 선물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게 된다.

어떻게 기도할 것인가

우리는 아마도 교회에서 제시한 방식에 따라 기도하기 시작할 것이다. 혹은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의 특징에 적합한 것으로 여겨지는 방식에 따라 기도를 시작할 것이다. 아니면 기도하는 법에 대해 생각하지 않은 채 그냥 시작할 수도 있다. 어떤 사람들은 기도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 성경을 공부한다. 그들은 예수님의 기도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며, 예수님의 기도 방식에 영향을 받고자 한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쳤던 주의 기도와  성경에 기록된 다른 기도들을 사용하여 정규적으로 기도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과 타인의 경험으로부터, 교회의 가르침과 기록된 자료들로부터 기도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는다. 우리의 기도는 기도란 무엇인가에 대한 우리의 견해와 기도의 적절한 주제와 방식들이 무엇인가에 대한 우리의 믿음에 의해서도 영향을 받는다.

기도가 자연스럽게 흘러나을 때, 우리는 기도가 힘이 들지 않기 때문에 기도에 대해 별로 생각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열린 마음으로 하나님을 향해 맞추어져 있는 상태로 의사소통을 하고 있다는 느낌을 갖는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들이 곤경에 처해 있거나 혹은 기쁨에 겨워 있을 때, 가장 진실한 기도를 드린다고 느낀다. 이러한 순간들에 처해 있을 때, 우리는 스스로 기도하는 자신을 발견하고 놀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우리는 기도를 시작해야겠다는 분명한 의도를 언제 갖게 되었는지를 기억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 순간의 사건들, 어떤 광경, 혹은 어떤 느낌이 우리를 기도로 인도했다. 마치 우리의 참자아가 그냥 소리 높여 말하는 것처럼 여겨진다. 어떤 것이 우리의 일상적 존재 방식을 뚫고 들어왔다 우리는 안도감과 해방감을 느낀다. 참으로 관심을 갖는 것과 연결되었다는 느낌을 주는 경험을 하게 되기 전까지, 우리는 아마도 하나님, 타인들, 그리고 우리 자신과 유지해왔던 관계를 인지하지 못할 수도 있다.

삶에 대한 우리의 기대들이 채워지지 않고 있다는 것을 인지할 때,  많은 기도들이 발생한다. 우리가 하나님과 기도를 포기하기 않는 한, 우리가 육체적으로나 정서적으로 고통 가운데 있을 때 기도를 하기위해 많은 격려를 필요로 하지는 않는다.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멀어지면 우리는 덜 기도하게 되고, 인간관계의 도움과 이성의 작용을 통해서 혹은 도괴하거나 자신의 힘으로 삶의 도전들을 처리하려는 경향을 띠게 된다. 그러나 위기에 처하지 않았더라면 전혀 기도하지 않았을 사람들이 위기에 처해 기도하게 된 경우가 많다.

계속된 간정의 소용돌이가 끝나갈 무렵 기도에 사로잡히게 되면, 우리의 기도는 직접적이며, 참되며, 효과적인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우리가 고통이나 기쁨의 장소에 머물러 있든지 아니면 보다 안전한 중간지대로 나아가든지, 우리가 더욱 기도의 깊이로 나아가고자  소망하는지의 여부에 잔해 많은 것을 배리야만 한다.

의도와 훈련은 기도생활에 필수적이다. 기도생활이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일상생활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일상생활은 어떤 형태를 반복하여 그것을 구조화하는 것을 필요로 한다. 도한 정체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다양성과 개입들을 필요로 한다. 우리가 기도의 구조를 형성하였을 때, 우리는 기도의 방법에 관한 결정보다는 기도 그 자체에 에너지를 집중할 수 있게 된다.

기도의 전환

잠시 몇 분간의 시간을 내어 생각나는 기도의 종류들을 기록해 보라. 수많은 종류의 기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1)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각각 서로 다른 때에 서로 다른 기도에로 초대하신다는 것은 분명하다. 기도에 관해 생각하는 한 가지 방식은 기도 그 자체를 살펴보는 것이다. 우리는 어떻게 기도하는가? 우리의 기도에 관해 좋게 여겨지는 것과 좋지 않게 여겨지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가 기도에 관해 씨름하는 한 가지 이유는 기도가 변화한다는 사실 때문이다. 우리가 기도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기도를 양육하지 않으면, 기도는 약화되고 심지어 사라지게 된다. 우리가 주의를 기울이면, 우리 자신과 우리의 기도는 흥미롭게도 성장하게 된다.

묵상기도(Meditative Prayer)

음성기도가 덜 만족스러운 사람들은 묵상에 이끌림을 받는다. 묵상이란 말을 적게 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자세를 갖도록 격려하는 기도의 방식이다.

성령께서 우리를 이런 형태의 기도로 이끄신다는 느낌을 갖는다면, 우리는 그 기도를 시도해 볼 수 있다. 우리는 그 피지도자에게 제시된 성경 본문을 이러한 방식, 즉 천천히 침묵의 시간을 가지면서 읽을 수 있다.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성령의 음성을 경첨하기 위하여, 그리고 우리의 일상적 흥미로부터 주의를 되찾아오기 위하여 성경의 말씀과 함께 머무를 수 있다. 우리는 그 성경 구절을 통해서 떠오르는 것에 대해 기도함으로써 반응할 수 있다. 또한 성령께서 우리 안에 감동을 주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주목하면서, 성경을 읽고 조용히 기다리고 기도를 드리는 행위를 반복할 수도 있다.

성경과 함께 기도하는 한 가지 방법은 (1) 기도하는 마음으로 본문을 선정한다. (2) 방해받지 않을 곳에 편안하게 자리를 잡는다 (3) 하나님의 임재에 감사드리며 성령께 시간과 당신 자신을 드린다. (4) 성경 구절을 읽기 시작하면서, 성경을 읽는 것이 자신에게 어떻게 느껴지는지를 하나님께 아룀으로써 자신의 삶의 언어와 접촉한다(기대감이 있는가? 따분한가? 피곤한가? 행복한가?); (5) 성경 구절을 천천히 읽는다. 단어나 구절을 반복해서 읽을 수도 있다. 생각이나 감정을 자극하는 곳이 어디인지를 주목하라. 하나님께 그것이 무엇에 관한 것인지를 질문하라. 성경 본문을 다시 읽으라. 적절하다고 생각되는 방식대로 기도하라. 더  이상 어떤 것도 자극하는 것이 없을 떼까지, 읽고 경청하는 것을 반복하면서 성경본문에 머무르라. 그리고 하나님께 감사를 드려라. 다음성경 본분으로 이동하거나 끝내도 된다. 당신은 아마도 영성일지를 기록하고 싶을 것이다.

성경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교훈과, 말씀, 그리고 이적들에 관해 묵상하도록 우리를 격 려한다.

하나님이여 우리가 주의 전 가운데서,
주의 인자하심을 생각[묵상]하였나이다. (시 48:9)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시 1:1~2)

곧 여호와의 옛적 기사를 기억하여
그 행하신 일을 진술하리이다
또 주의 모든 일을 묵상하며
주의 행사를 깊이 생각하리이다. (시 77:11~12)

나로 주의 법도의 길을 깨닫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주의 기사를 묵상하리이다. (시 119:27)

주의 말씀을 묵상하려고
내 눈이 야경이 깊기 전에 깨었나이다. (시 119:148)

묵상할 때 우리는 그 어떤 것 위에 거한다. 우리는 성경 본문과 함께 머무르거나, 하나님에 대한 아이디어와 함께 머무르거나, 창조 세계 안에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역사에 주의를 기울인다. 기도에서 경청하는 것을 배우는 것은 말하는 것을 배우는 것보다 더 어렵다. 성경을 읽고, 탐구하고, 경청하는 기도를 실험해보라.

렉시오 디비나, 거룩한 독서는 오랜 기독교 역사를 지닌 묵상의 한 형태이다. 하나님의 음성을 경청하는 방법으로서 성경을 사용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하나의 틀을 제공한다. 렉시오 디비나는 네 부분으로 이루어진다. 렉치오(Lectio), 독서 ; 메디타치오(Meditation), 묵상 ; 오라치오(Oratio), 기도 ; 컨템플라치오(Contemplatio), 관상.

렉치오(독서)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소망하면서 성경을 읽는 것이다. 이 단계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영께서 우리가 보아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을 보여주시기를 요청한다.

메디타치오(묵상)의 단계에서 우리는 더 깊이 들어간다. 성경의 본문을 시각적으로 그려보거나, 혹은 단어나 구절을 탐구할 수도 있다. 이 단계는 지적인 질문, 숙고, 혹은 연구를 포함할 수 있는 통합(integration)을 위한 시간이다.

오라치오(기도) 단계에서, 우리는 읽은 것과 성찰한 것에 응답하면서 기도한다. 기도는 짧을 수도 있으며, 하나님과 주고받는 대화일 수도 있다. 기도가 우리에게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공하면, 우리는 다시 읽거나 더 깊이 묵상하기를 원할 수도 있다.

컨템플라치오(관상)는 하나님과 사랑의 침묵 안에서 쉼을 갖는 것이다. 참된 관상(관조)은 선물이다. 그것은 우리가 스스로 획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다만 그 선물을 받을 준비를 할 수 있을 뿐이다. 성경을 읽고 성경과 함께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의 음성에 대한 민감성을 개방시켜 준다.

12세기 카쑤시안 수도자는 렉치오 디비나를 이렇게 묘사했다.

독서는 복 받은 인생의 달콤함을 추구한다.
묵상은 그것을 감지하며,
기도는 그것을 요청하고,
관상은 그것을 맛본다.

독서는 말하자면 음식 전체를 입에 집어넣는 것이다.
묵상은 그것을 씹어서 잘게 부수며,
기도는 그것의 맛을 추출하고,
관상은 기쁨과 새 힘을 주는 달콤함 그 자체이다.2)

우리가 묵상으로 연결되는 음성기도나 독서를 할 때, 우리의 내면은 천천히 속력을 늦추어 우리로 하여금 사물을 다른 관점에서 볼 수 있게 해준다. 속력을 늦추는 행위는 우리의 기도뿐 아니라 일상생활에도 영향을 미친다.

묵상은 멀리서나 빠른 속도로 진행하면서는 알아차릴 수 없는 우리 내면과 외부의 세부적인 것들을 잠시 멈추어 서서 자세히 살펴보도록 우리를 초대하는 것이다. 묵상은 성령의  임재에 대한 우리의 감지를 증대시키며, 감사와 예배를 고취시킨다. 속릭을 늦추는 행위는  하나님과 우리 자신에 대한 견해를 변화시킨다. 우리가 종종 침잠하려고 노력할 때 수많은 생각들이 우리 안에서 아우성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게 된다. 그리고 과연 우리의 마음이  평화롭게 될 수 있을까 의문이 들기도 한다. 때때로 이 내적 소용돌이는 우리가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로 가져가야할 것이다. 아니면, 그것은 성령에서 우리로 하여금 단순히 무시하기를 원하시는 소음이다. 성령께서는 우리가 소음을 무시하고 마음을 성경이나 자연을 통해 하나님께로 향하기를, 기도에 집중하기를 원하신다. 묵상기도는 그 효과가 내면으로부터 외부로 서서히 드러나는 치유의 능력도 지니고 있다. 신뢰가 깊어짐에 따라 우리는 조금씩 더 자유로운 상태에서 우리자신을 하나님께 개방하며, 보다 온전히 성령께 협력하게 된다. 이것은 마치 하나님과 만족스런 교제를 즐기는 곳, 즉 우리의 참된 본향(heme)을 발견하는 것과 같다.

낭비하는 시간처럼 보였던 기도의 시간을 통해 맺어진 열매를 경험할 때, 우리는 하나님을 만나기 위한 시간과 공간을 최우선으로 확보하고자한다. 우리는 하나님과의 우정을 즐기길 원하며, 신뢰도 자라간다. 그러면 기도는 정해진 시간을 넘어 일상의 삶까지 흘러넘쳐 온다. 비록 기도를 위한 특정한 시간을 마련하는 것이 여전히 중요하지만, 우리는 일상생활의 의든 순간들 또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할 수 있는 때라는 것을 깨닫는다. 우리는 삶의 한복판에서 경청하고 기도하는 법을 배운다.

그러나 어느 순간에 이르면, 묵상기도 또한 생동감을 잃은 것처럼 느껴진다. 성경이나 경건서적을 읽음으로서, 혹은 다른 수단들을 사용해서 하나님의 음성을 경청할 수 있도록 우리 자신을 준비시킬 때 그것들이 하나님과의 사랑의 나눔을 도와주기보다는 오히려 방해하고 있다고 느낀다. 마치 성경이 방해가 되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이것은 우리가 성경을 더 이상 읽거나 묵상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으며, 오히려 우리의 기도가 변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새로운 것 혹은 익숙하지 않는 것으로 부르고 계신다는 것을 감지한다면, 우리는 아마도 그것에 저항할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우리는 상처받기 쉬운 상태가 되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디로 인도하시는지에 대해 궁금해 할 수도 있다. 또 다른 경우에는, 기도의 변화가 오랜 시간에 걸쳐 진행되기도 한다. 이러한 진행이 아주 천천히 전개되어서 우리가 그것을 인지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우리가 다른 방식으로 기도하고 있다는 것을 깨eke기도 한다.

관상(관조)기도

묵상기도가 사라질 때, 성령께서는 우리를 관상기도로 이끄신다. 관상기도는 하나님을 사랑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 하나님의 사랑 안에 쉼을 갖는 것, 혹은 마음의 기도로 묘사된다. 이러한 형태의 기도는 종종 말을 전혀 사용하지 않거나 단지 조금만 사용할 뿐이다. 관상기도의 경험은 온화한 상호적 사랑과 같다. 이 기도는 우리의 행위에 관한 것이라기보다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 그리고 우리의 여러 관계들을 음미하는 것에 관한 것이다. 그러나 행위가 중요하지 않게 퇸다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갈망이 커지면 커질수록,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행하고자 하는 갈망과 의지 또한 커지기 때문이다. 행위의 토대는 사랑이다.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사랑과 세계를 위한 하나님의 사랑이 그 행위의 기반이다. 우리 안에 거하는 하나님의 사랑에 의해 촉발되어, 많은 사람들이 이전에는 선택하리라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던 일들에 참여하게 된다. 그러나 그들은 또한 관계 그 자체가  자신들에게 생명을 주는 것이며, 가정처럼 느끼게 하는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된다.

최근까지도 개신교인들 안에서는 관상에 대한 가르침이나 논의가 많지 않았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관상으로 초대하고 계시다고 느낀다면, 우리가 읽고 숙고할 수 있는 좋은 자료들이 많이 있다. 다음의 인용은 관상에 대해 말하고 있다.

마치 예술가가 자신의 명작을 감상하는 것같이, 자신이 연구했던 것의 세부적인 부분과 요소요소들을 감상하는 것같이, 우리의 영혼이 단순한 믿음의 눈으로 일정 시간동안 하나님  그분 자신을 바라보며 사랑하는 데 익숙해지는 것은 단지 조금씩 이루어진다. 참으로 여기에서는 하나님의 특별한 개입이 아니라, 살아있는 믿음과 성령의 감추어진 활동을 전제로 하는 일상적인 심리적 과정이 발생하는 것 같다.3)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영혼에 이루 말할 수 없는 사랑을 부어주신다. 이 사랑이 있기에 우리는 직관을 사용해서 이해할 수 있다. 누군가가 우리의 응시를 하나님께 고정하게 한다.4)

관상의 신비는(그것은 하나의 신비이다)부활한 그리스도와 그분의 행동이 우리의 영혼 안과 위에 임재하신 것이다.5)

관상은 사랑이신 하나님의 영에 의해 우리의 마음이 어루만져지는 경험이다. 관상은 우리의 영혼이 사랑이신 하나님께 사로잡혀서, 사랑에 겨워 사랑이신 그분께 주의를 집중하며 침묵 가운데 기다리라는 것이다. 우리가 이 변화시키는 사랑에 의해 치유되고 회복됨에 따라서, 우리의 모든 기교와 방법들은 망각된다. 관상가들은 이러한 중심적 경험을 토대로 이웃을 사랑하고 섬긴다.6)

우리는 모든 것 가운데서 하나님과 함께 있기 위해 우리 자신을 더욱 내풀 수 있는 방법을 배움으로써, 조금씩 관상기도에 마음이 내키게 된다. 그러나 우리의 힘과 노력으로 관상기도에 들어갈 수는 없다. 참된 관상은 선물이다. 다행히,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들에게 관상의 즐거움을 일견(glimps)하게끔 하시는 것 같다.

관상의 방식에 따라 타인을 위해 기도한다는 것은 의도적으로 우리자신을 타인을 위해 하나님께 드리는 것으로 묘사된다. 그러나 관상기도에서 우리는 하나님께 어떤 것을 구하는 대신에,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해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개방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마음을 이런 방식에 따라 하나님께 개방해 나가면, 우리는 삶을 구성하는 모든 사람들과 환경을 지니고 우리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하나님께 나아간다. 관상의 기도자들은 자신의 관심과 자기 자신을 사랑의 정황 속에서 하나님께 드린다. 그들의 기도는 간구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을 위한 하나님의 사랑의 통로가 되고자 자원하는 것이 된다. 그러나 그들 또한 특별한 자신들의 의도, 바람, 혹은 필요를 위해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며, 그것들을 위해 간구하기도 한다.

우리가 지속적으로 기도하면, 음성기도, 묵상기도, 관상기도에 대해 더 많이 배우게 될 것이다. 그러나 기도는 엄격하게 일직선의 형태로 발전하지 않는다. 우리는 한 형태의 기도에 편안함을 느낄 뿐 아니라 다른 기도 방식을 탐구하기도 한다. 우리는 성령의 인도하심과 우리의 바람과 필요의 영향에 따라 앞뒤로 이동할 수 있다.

방언기도

방언기도가 기도의 발전 단계에 적합한 것인지에 대해 의문을 품는 사람들이 있다. 방언기도는 음성기도 묵상기도 혹은 관상기도 모두 안에 존재할 수도 있다. 나는 처음에 여러 가지 방언으로 기도했던 사람들, 방언을 묵상의 방식으로 사용했던 사람들, 방언찬양의 기도를 하면서 점차 관상으로 인도된 사람들을 알고 있다. 나는 잘모르지만, 사람들이 방언의 은사를 받았을 때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가르쳐 주시는 기도가 무엇이든지 간에, 그것은 그들의 방언기도에서나, 자국어를 사용한 기도에서 분명하게 드러날 것이라고 생각해 본다.      성령의 은사를 두려워할 때도 있고, 반대로 환영할 때도 있다. 우리의 배경이 우리의 반응에 큰 영향을 미친다. 성령의 은사들과 방언기도에 대해 더 많이 배우기를 원한다면, 이 문제들에 관한 성경 구절들을 읽고 우리에게 적합한 것이 무엇인지를 하나님께 묻는 것으로 출발하는 것이 좋다. 성령의 은사를 사용하는 현대 크리스천들에 관한 글들을 읽는것도 도움이 될 수 있다. 때때로 직접 그런 사람들을 만나 질문을 하면서 대화하는 것이 가장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방언기도에 관해 이야기해 줄 적합한 사람을 찾는 것 그자체가 기도의 제목이 되기도 한다. 간혹 성령께서 피지도자로 하여금 방언기도를 탐추 하도록 초대하신다.

치유기도

일반적으로 영성지도는 하나의 치유 관계로 간주될 수도 있다. 왜냐하면 영성지도를 통해 은혜에 대한 장애물들과 저항들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치유를 위한 구체적인 기도들 또한 영성지도의 일부가 될 수 있다. 치유를 위한 기도는 특별한 은사를 받은 사람들이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영성지도자들도 있다. 그러나 또 다른 영성지도자들은 그리스도와 성령의 치유적 임재에 대해 언급한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언제 치유기도를 하도록 그들에게 요청하씨는가를 알고자 한다. 또 어떤 영성지도자들은 자신들이 치유기도를 위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고 생각하여, 다른 영성지도자에게 피지도자를 위탁하기도 한다.

이 문제에 관해 우리가 어떤 생각을 하든, 때때로 성령께서 치유에 초점을 맞추시기도 한다. 이럴 경우, 치유를 위한 특별한기도가 영성지도에서 필요하게 된다. 피지도자가 치유기도에 관해 언급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거나, 어떻게 기도해야하는지를 모를 수도 있다. 영성지도자가 하나님과 피지도자에게 경청할 때, 성령께서 기도할 필요가 있는 내용이 무엇인지를 드러내실 것이다. 영성지도자들이 기도할 때, 그들은 아마도 그 기도의 중요성을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영성지도자는 적절하다고 생각하는 방식에 따라 단순하게 소리를 내어 기도할 것이다. 그 기도를 들을 때, 피지도자들은 성령의 치유의 손길을 경험할 수 있다. 피지도자들은 아마도 내적인 안도감, 결심, 상한 감정의 치유, 혹은 신체적 변화까지 경험할 것이다. 그들은 이것들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다는 것을 안다.

지도자들은 기도를 통해서 피지도자를 조종하려는 어떠한 경향성도 생겨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지도자들은 성령의 초대에 응답하려는 개방적이고 자원하는 마음을 구해야 한다. 기도가 끝났을 때, 그들 중 한 사람이나 양자 모두는 이러한 형태의 치유기도가 현재의 상황에서 피지도자에게 가장 적합한 것이라는 사실을 인식할 것이다.

성경의 초대에 응하면서 지도자가 이러한 기도를 했을 때, 기도는 그 자체의 생명을 지니고 있다. 아마도 지도자와 피지도자 모두 기도의 내용과 이어 발생한 치유에 깜짝 놀라게 될 것이다.

또 어떤 경우에는, 적절한 치유기도의 형태가 영성지도의 대화를 통해 분명해지기도 한다. 그러면 지도자와 피지도자는 함에 기도할 것인지를 의논하곤 성령의 인도하심을 같이 분별한다. 때때로 감정의 치유, 육체의 치유, 영적 치유, 혹은 관계의 치유를 위한 기도들이  요구될 것이다. 이러한 기도들은 보통 하나님께서 영성지도의 대화를 통해서 어떤 문제들을 표면으로 떠오르게 하셨다는 인식을 반영한다. 또한 피지도자가 그리스도의 치유의 손길을 갈구하고 있다는 인식을 반영한다. 피지도자들은 종종 하나님과 타인에 대한 자신들의 민감성을 방해할 수 있는 옛 상처들을 언급한다.

 치유기도의 필요가 제기될 때, 지도자들은 성경의 인도하심을 구하지 않은 채 자동적으로 치유기도의 실행을 결정하지는 말아야 한다. 지도자들은 치유기도를 위한 하나님의 초대를 받았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았을 수도 있다. 이것은 피지도자와 하나님이 함께 시간을 내어 분명하게 판단할 문제이다. 아마도 치유를 위한 피지도자의 기도가 가장 중요할 것이나. 그러나 그룹이나 교회에서 치유를 위한 기도를 할 수도 있다.

영성지도자들은 어떤 것들을 교정해야만 한다는 충동을 극복하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피를 경청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의 특정한 문제들이 하나님에 의해 아름답게 사용되는 경우도 상당히 있다. 지도자들은 종종 곧바로 치유기도를 하지 않도록 요구된다. 그 대신 피지도자와 동행하면서 명백하게 드러나는 것에 대해 피지도자와 함께 기도하며, 그 과정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해야 한다.

물론 둘 중 한사람이나 혹은 두 사람 모두 치유를 위한 기도를 할 수 있다. 때때로 피지도자는 영성지도 회기 중에 치유를 위한 소망을 아뢰는 기도를 소리 내어 할 필요가 있다. 아니면 그들은 영성지도시간 외에 홀로 혹은 타인들과 함께 기도하는 것을 선택할지도 모른다. 치유를 위한 기도가 필요하다고 여겨질 때 조차도 어떤 종류의 치유기도를 해야 하는지 정확히 알 수 없을 수도 있다. 우리는 단지 보다 깊은 온전함을 위한 주님의 바람만을 느낄 뿐인지 모른다. 영성지도자는 성령과 피지도자에게 주의 깊은 경청을 해야 하며, 명료한 의사소통을 하고, 피지도자에게 적절한 기도의 방식을 선택할 자유를 주어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피지도자는 지도자가 강요하고 있다고 느낄 수 있다. 지도자들은 반드시 그들의 기도를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도록 간구해야 한다. 그래서 그들의 기도가 피지도자를 조종하거나, 피지도자에게 영향을 미치거나, 지도자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는 도구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치유기도 시 신체적 부분의 사용에 관한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중요하다. 때때로 이마에 기름을 바르거나 손을 머리나 어깨에 올려놓은 채 기도하는 것이 적절할 때가 있다. 우리는 앉거나 서거나 무릎 꿇을 수도 있다. 그리스도의 삶, 죽음, 부활을 통해 표현된 하나님의 사랑을 인지하는 방식으로서, 그리고 인간의 치유를 위한 원천으로서 성찬을 함께 나누는 영성지도자와 피지도자들이 더러 있다.

영성지도자들은 사용될 기도의 방식들에 관해 기도해야 한다. 성령의 인도하심은 무엇인가?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과 협력하도록 요청 받았는가? 우리 자신의 생각은 무엇인가? 상황과 사람을 교정하려는 유혹은 정기적으로 찾아온다. 우리는 그 유혹을 하나님께 올려 드릴 필요가 있다. 우리는 자신이나 타인을 교정하도록 부르심을 받지 않았다. 다만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깊이 연결되도록 부르심을 받았다. 그리스도는 우리를 온전하도록 초대하신다.

지도자와 피지도자 모두 가능한 기도의 방식들을 탐구할 때 특정한 기독교 전통과 그들 자신의 기도의 역사, 희망들, 기대들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성령께서 인도하는 대로 기도하고자 하는 우리의 열린 마음은 우리를 새로운 영역으로 이끌어 간다. 치유기도의 결과들은 종종 우리의 기대와 다르지만, 그것들은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임재, 돌봄, 창조사역의 분명한 증거가 된다.

비록 치유기도 시에 불편한 순간들이 있을 수 있지만, 기도를 끝마치는 순간에 우리는 종종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를 기도했다는 인식이 동반하는 성취감을 경험한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셨다는 느낌을 가질 수도 있다. 그 느낌은 우리가 하나님의 의도를 표현했는지의 여부, 하나님의 의도를 잘 이해했는지의 여부, 혹은 바른 방식에 따라 기도했는지의 여부와 상관이 없다. 기도는 하나님께서 치유의 손길로 우리의 삶을 만져 주시길 바라는 갈망을 표현한다. 그러면 우리는 성령이 주시는 충만한 평안과 우리의 맡은 바를 완수했다는 성취감을 경험한다.

치유기도 후에, 우리는 단시간 내에 변화의 증거를 발견할지도 모른다. 혹은 다음날이나 다음 주에 천천히 점진적으로 그 증거들이 나타날 수도 있다. 변화의 발생 유무와 상관없이 우리는 계속해서 대화하고, 기도하고, 주님의 인도하심을 요청할 필요가 있다. 그러는 동안 내내 우리는 우리의 일차적 의도가 하나님의 것이 되는 것이며, 하나님을 사랑하고, 따르고, 섬기는 것임을 기억할 수 있기를 원한다. 기도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사랑을 더욱 온전히 깨닫도록 해 주었을 때, 우리가 기도했던 특정한 치유를 받았는지의 여부와 상관없이 우리는 은혜를 경험한다.

영성지도의 대화 중에, 지도자들과 피지도자들은 기도와 그 기도가 인도하는 곳에 깊은 주의를 기울인다. 많은 것들이 내외적으로 기도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이러한 것들 중에 우리 자신이나 우리의 기도를 바라보도록 이끄는 것들이 있다. 또 다른 것들은 우리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도록 우리를 이끈다. 때때로 우리는 성령의 음성을 경청하여 응답하고자 하는 깊은 열망을 지니고 있을 때조차도 기도의 여정에서 빗나갈  때가 있다. 어떤 때에는 지나치게 내적으로 협소화하여 우리 자신만을 바라봄으로써,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하나님의 뜻을 바라보지 못하게 되기도 한다. 또 다른 때에는, 우리의 기도가 지나치게 외적인 것에 초점을 맞추게 되어 하나님의 빛과 생명 앞에 개방되어질 필요가 있는 우리 마음의 어떤 것들을 보지 못할 수도 있다. 이럴 경우 영성지도는 우리로 하여금 건강한 거리 둠을 유지한 채 우리의 기도를 바라보도록 도와줄 수 있다.



1) 예배기도(하나님께 찬양하기), 자연스런 기도(상황에서 놋아나오는), 고백기도, 성경읽기에 대한 응답으로서의 기도, 신심어린 글스기로서의 기도, 왜라고 묻는 기도, 불만을 고하는 기도, 과거에 유효했던 기도들을 반복하는 기도,  방언기도, 끈질긴 기도, 치유기도, 어떤 사람은 집단으로 기도하는 것을 불편해 하는 자신의 성향을 설명하면서 관조적(contemplative) 기도라고 목록에 기록했다. 리처드 포스터의 기도에 관한 탁월한 책, Prayer, Finding the Heart's Ture Home (San Francisco; HarperSanFrancisco, 1992)은21가시 서로 다른 기도들을 설명하고 있나.

2) Guigo II. Vest, Gathered in the word로부터 재인용(저자가)
3) Adolph Tanquerey, The Spiritual Life, trans. Herman Branderis ed.(Westminster. Md.: Newman Press, 1930), 646.
4) Guigo ll. Vest, Gred in the word. 33로부터 재인용함(저자).
5) ibid., p. 35.
6) Joann Nesser, "Love," L명드 Gloriae (Winter 1998): 1.


댓글 '1'

오승리

2009.08.09 11:06:00

끈질긴 기도의 사람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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