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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하나님 체험 -바크

수도관상피정 바크............... 조회 수 2647 추천 수 0 2009.04.03 22: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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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하나님 체험

  J. A. Bakke, Holy Invitations,
최승기 역, ?거룩한 초대? (서울: 은성, 2007), pp. 277-322.

예전에도 이미 이것을 언급했고, 앞으로도 수없이 이야기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두려움은, 믿음으로는 알고 있지만 개인적 경험을 통해서는 하나님의 좋으심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을 심각하게 속박하기 때문입니다. 경험을 통해서 주께서 영적 여정을 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보여주신 우정과 상냥함을 아는 것, 그리고 주께서 어떻게 그 여정의 전 비용을 감당하시는지를 보는 것은 참으로 즐거운 일입니다‥‥이 여정에서 놀랄 만한 일은 우리가 구하거나 소망했던 것보다 더 많이 받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틀림이 없습니다. 나는 이것이 참되다는 것을 압니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내가 당신께 말한 그 모든 것을 믿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  아빌라의 테레사(Teresa of Avila)
1)

사람이 그 친구와 이야기함같이 여호와께서는 모세와 대면하여 말씀하시며.(출 33:11)

영성지도자와 피지도자는 각자의 하나님 체험에 대해 기도하며, 그것을 이해하고자 노력한다. 하나님 체험의 이해가 가능한 것인지 우리는 의문을 품을 수 있다 성경을 해석하는 것이 경험을 해석하는 것보다 훨씬 더 안전하게 느껴질 수 있다. 사람들은 말한다. "나는 하나님을 체험하기로 되어 있습니까? 즉 하나님과의 직접적 만남이 이루어지도록 되어 있습니까? 하나님 체험은 내가 자발적으로 탐구해야 하는 것입니까? 나는 하나님을 어떤 분처럼 여기고 있습니까? 어린 시절에 지녔던 하나님에 대한 이미지와 현재 지니고 있는 이미지는 무엇입니까? 나의 삶의 배경에 비추어 볼 때, 하나님의 여러 이름 중 어떤 것이 친숙하게 느껴집니까?

가족관계 등 중요한 인간관계는 다른 관계, 타인, 우리 자신에 대한생각에 영향을 미친다. 관계나 타인과의 경험에 대한 우리 각자의 생각이 동일하지는 않나. 이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하나님에 대해 생각할 수 있고, 세상 안에서 하나님의 현존을 발견할 수 있으며, 타인들의 신앙의 삶을 관찰할 수 있고, 의도적으로 하나님과 의사소통이나 상호작용하는 것을 선택할 수 있다.

우리는 마음(mind)으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해석한다. 우리의 생각은 마음을 하나님께로 되돌리는 회심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회심은 하나님의 용서와 새롭게 하심을 구하는 것이다. 하나님께 굴복함으로써 새롭게 된 결과로 우리에게 주어진 것 중 하나는 보다 더 그리스도처럼 생각할 수 있는 자유이다. 물론 우리는 여전히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고, 이해와 해석에 오류를 범할 수 있다. 그러나 예수와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바람을 인지하고 그것에 협력할 수 있는 새로운 능력을 지닌다. 우리는 갑자기 혹은 점진적으로 많은 영역에서 새로운 흥미와 개념과 견해를 갖게 되는 것을 보게 된다. 우리의 마음은 은혜로 말미암아 새롭게 된 것들을 체험한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에 대한 그들의 생각과 타인의 신앙생활에서 그들이 관찰한 것에는 관심을 기울인다. 그러나 정작 하나님을 직접적으로 경험한 그들의 체험에는 관심을 거의 기울이지 않는다. 이러한 사람들이 하나님과 맺고 있는 관계는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만나는 관계라기보다는 편지를 주고받는 관계에 가깝다. 피지도자들은 독서한 것이나 타인으로부터 들은 것에 관심을 기울이기보다 자신의 하나님 체험에 주의를 기울이도록 도전을 받는다.

지적 분석은 중요하다. 그러나 다른 측면들 또한 중요하다. 우리는 모든 정신 기능들을 포함한 전인(全人)으로 하나님을 경험하고 하나님과 관계를 맺는다. 즉 지성, 의지, 상상력, 감정, 기억, 그리고 몸의 반응들을 포함한다. 

우리의 하나님 해석

우리는 기억들, 아이디어들, 그리고 경험들이 다채롭게 아우러진 결집체를 지닌 존재이다. 지성을 사용해 그려본 하나님 이미지, 우리의 하나님 이미지에 대한 해석, 그리고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느낌에 대한 해석을 가지고 있다. 앤 울라노프(Ann Ulanov)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하나님을 그려보는 것이 하나님에 대해 말하는 것보다 선행한다. 왜냐하면 우리의 그림이 우리의 모든 말들을 동반하며, 그 그림은 하나님 앞에 엎드려 침묵한 이후에도 계속해서 우리에게 남아있기 때문이다. 이미지들은-심리의 언어(the languageof the psyche)-삶의 토대이다. 이미지들은 우기의 생각들뿐 아니라 감정과도 접촉된다. 이미지들은 우리들의 아이디어들뿐 아니라 우리의 몸에까지도 도달된다. 수많은 세월 동안 이미지들을 정교하게 다듬는 우리의 노력이 있은 연후에야 그것들은 자유롭게 되며, 놀랄 만한 것이 된다.

우리는 우리의 하나님 이미지를 타인에게 알리지 않는다. 심지어 우리 자신에게도 비밀로 하기도 한다. 우리가 하나님을 먹이감과 같은 우리를 냄새 맡으면서 계속해서 쫓아오는 동물이나, 숨결을 우리의 얼굴에 뿜어대거나 발을 우리의 목에 올려놓는 이방인으로 묘사한다면,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너무 근접해 있어서 오직 추상적인 상징으로만 표현할 수 있는 하나님으로 묘사한다면?‥‥시편 기자가 말한 것처럼, 커다란 날개 아래로 우리를 숨기시는 하나님으로 표현한다면? 혹은 우리가 기어오를 수 있는 커다란 무릎, 우리가 젖을 빨 수 있는 가슴으로 하나님의 은총을 묘사한다면? 혹은 우리를 전장으로 부르는 전사로서 하나님을 표현한다면? 혹은 당신 교회의 뒷자리에 앉아 있는 예수로서 하나님을 묘사한다면?
2)

데이빗 씨맨즈(David Seamands) 박사는 사람들이 어린 시절에 지녔던 하나님에 대한 개념이 하나님을 향한 그들의 현재적 응답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관해 광범위한 저술을 했다. 어린 시절에 지녔던 개념이 즐겁게 수용할 수 있는 것인지 아니면 위협적인 것인지의  여부는 성인이 되어서도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하나님에 대한 의심, 관념, 감추어 둔 느낌들을 드러내어 이야기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은 불가능한 것들을 요구하는 견습경찰이나 분노에 찬 법관으로 이해된다. 또 다른 사람들은 "나"에게 강조점을 두어,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이해한다. 즉 내가 이해하는 하나님, 나의 성공의 하나님, 나의 안위의 하나님, 내 국가의 하나님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우리는 일련의 왜곡된 이미지에 따라 하나님을 재구성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 점은 성육신이 그토록 중요한 이유들 중 하나에 해당한다. 오직 말씀이 육신이 되었을 때에만, 우리들은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요 1:14) 하나님을 분명하게 볼 수 있다. 씨맨즈는 기술하기를, 하나님에 대한 잘못된 개념 / 감정은 수많은 영적 문제들을 야기한다. 그 중에서 가장 흔한 것들은 용서받았다는 감점을 느낄 수 없음, 하나님을 신뢰할 수 없음, 하나님께 굴복할 수 없음, 만성적 의심과 신경과민적 완벽주의의 문제들이다."3) 하나님에 대한 복된 소식은 우리의 건강하지 못한 대인관계로 인해 왜곡된다. 특별히 발달이 이루어지는 시기인, 아동기와 청소년기에 발생한 건강하지 못한 대인관계에 의해 왜곡된다.

칼(Carl)의 성장기에, 그의 가족은 교회나 기독교와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가족들 가운데 하나님에 대해 이야기한 사람이 없었다. 칼은 무언가 비밀이 감추어져 있다고 느꼈으나, 그에 관해 질문하지 말아야한다는 것 또한 알고 있었다. 그는 학교에서 다른 아이들이 하나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다. 왜 그들은 하나님이 마치 자신들의 친구인 양 이야기하는지, 그리고 왜 맹세할 때 하나님이란 용어를 사용하는지 그는 궁금했다.

지금은 성인이 된 폴리(Folly)는 11세 때 총 7권의 『나니아 연대기』 (The Chronicles of Namia)를 모두 읽고, 그 이야기에 매료되었다. 그때 누군가가 그녀에게 그 책의 집필 목적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를 물었다. 그녀는 대답했다. "아마도 사람들에게 하나님에 대해  가르치려고요. 그러나 그것이 목적이 아니길 바랍니다. 왜냐하면 내 가족은 하나님을 믿지 않거든요." 올해 그녀는 8세 된 그녀의 아이에게 그 책을 읽어 주었다. 그러자 어렸을 때처럼, 많은 질문들이 그녀 안에서 다시 솟아나기 시작했다.

토니(Tony)는 지금 30대이다. 어렸을 때, 어머니는 항상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하나님이 너를 지켜보고 있단다. 나는 너를 볼 수 없을지라도, 하나님은 너를 볼 수 있단다. 그러니 바르게 행동하는 것이 좋을 게다." 어머니의 이 말을 생각하면서, 토니는 이제 미소 짓습니다. 왜냐하면 어머니가 자신을 통제하려고 했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의문이 듭니다. "하나님이 존재하시는가? 하나님은 나를 쳐다보고 계시는가? 그렇다면,  하나님은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실까? 하나님은 나를 좋아하시는가?" 토니는 자기 자신이 대단히 마음에 들지 않을 때도 있지만, 대체적으로 괜찮은 남자라고 생각한다.

다른 한편, 어린 시절에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했던 기억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그들은 하나님에 대해서 배우고, 하나님이 그들을 사랑하며 일생동안 그들과 동행하실 것을 알았다.

카렌(Karen)은 어린 시절의 신앙 경험을 감사와 기쁜 마음으로 회상한다. 그녀의 가족에겐 별도의 재원(financial resources)이 한번도 없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녀는 "하나님께서 공급해 주실 것이다"라고 수없이 말씀하셨던 아버지의 말씀을 기억한다. 하나님께서는 실제로 그렇게 하셨다. 오늘날까지 그녀는 공급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관대한 사랑에 대한 자신의 경험담을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한다.

랄프(Ralph)는 가족에 대해서, 그리고 그들이 얼마나 즐거운 교회생활을 하였는가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가족이 출석한 교회는 모든 이웃 사람들을 환영했으며, 교회에 출석하지 않거나 다른 교회에 출석하는 사람들까지 참여할 수 있는 멋진 일들을 계획했다. 그는 이런  말을 들었던 것을 기억한다. "하나님은 바로 이런 분이야. 모든 사람을 초대하교 환영하시는  분 말이야. 예수님이 바로 이런 분이야. 우리를 초대해서 자신을 알려주시는 분 말이야. 그러니 우리는 두려워할 필요가 없단다" 랄프가 10대가 되었을 때, 질문 때문에 하나님께로부터 멀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질문을 가지고 하나님께로 달려가는 것이 그에게는 보다더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다. 왜냐하면 그는 하나님께서 그를 만나기를 기뻐하신다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바바라(Barbare)는 여름밤에 엄마, 아빠와 함께 해변에 누워 별들을 보면서, 별들과 하늘과 하나님에 관해 대화를 나누곤 했다. 그녀의 어머니는 "하나님께서 만드신 모든 것을 바라보렴 죽어서 하나님과 함께 있게 되는 것이 어떤 것일까를 상상해 보지 않을 수 없구나. 내 생각엔, 우리는 지금 볼 수 없는 은하계를 여행하게 볼 것 같구나. 성경이 말씀하지 않았니.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는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고전 2:9)라고 죽음 후에 하나님과 함께 있는 것이 어떤 것과 같을지 무척 궁금하구나." 이러한 대화가 자신의 태도와 기대들을 형성 했다고 바바라는 말한다.

존(John)은 이렇게 말한다. "어릴 적에, 나는 하나님이 아주 가까이 계시다고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분이 하나님이라는 확신을 어떻게 하게 되었는지는 회상할 수 없지만, 하나님과 나는 오랜 시간 대화를 나누곤 했습니다. 나는 하나님이 나의 가장 친한 친구인 양 행동했습니다. 그 때의 나의 행동이 어떤 뉘앙스를 띠었는지 지금 기억하기는 힘들지만, 가장 친한 친구가 늘 나와 함께 있는 것처럼 느껴졌던 것은 사실입니다."

우리들 대부분이 어린 시절에 경험했던 하나님에 대한 기억에는 좋은 것도 있고, 혼란스러운 것도 있곤 부정적인 것도 있다. 오늘날 어린 시절에 들었던 것을 보다 면밀하게 관찰하곤 청년기와 성년기에 도달해서 지녔던 자신들의 믿음을 탐구하기 시작한 사람들이 많이 있다. 더 이상 단순한 설명으로는 만족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인생에 있어 우리가 선택하지 않은 많은 요소들, 즉 성격의 여러 측면이나 어린 시절과 같은 요소들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에 관한 특정한 사고들에 경도되는 경향을 갖게 한다. 물론 우리가 지닌 하나님에 대한 왜곡된 견해는 스스로가 선택한 것들에 의해서도 형성된다. 우리는 때때로 하나님과 이웃에게 우리 스스로의 이익을 위한 반응을 보인다. 우리는 괴로움과 용서하지 않는 마음을 꽉 붙잡고 있기도 한다. 또는 우리가 믿는바,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의도적으로 무시하거나 그것에 반하여 행동하기도 한다. 삶의 상황들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하나님이 어떻게 인간의 삶에 개입하시는지에 관해 계속해서 다시 생각하도록 요구한다. 특별히 악이 선보다 강한 것처럼 보일 때는 더욱 그러하다.     론다(Rhonda)의 말이다. "어떻게 당신은 내가 하나님이 좋은 분이라고 생각하기를 기대하십니까? 우리 가족은 항상 교회에 갑니다. 그런데 지금 저의 18세 된 딸은 실종되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이런 일이 일어나게끔 허락하셨을까요? 하나님이 그렇게 하신 것입니까?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내가 아는 것은, 이 일에 대해 내가 하나님을 용서할 수 있을지 확신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불신에 차서 스티븐(Steven)은 머리를 흔든다. "작년 어느 날 직장에서 일하고 있는데 상사가 찾아와서 말했습니다. '미안합니다. 당신의 일자리는 내년 예산에 반영되어 있지 않습니다.' 나는 그들을 위해 20년간 일했습니다. 나는 가족과 같이 그들의 영원한 일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말했습니다. '한 주 후에 그만둬 주십시오.' 나는 길거리로 내쫓기고 말았습니다. 어떻게 그들이 그럴 수가 있습니까? 일 년이 지난 지금에도 정신이 멍할 뿐입니다. 무엇을 해야 하나 생각하면, 화가 나고 괴롭습니다. 같은 방법으로 그들에게 복수하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나는 스스로 크리스천이라고 생각해 왔는데, 내가 정말로 크리스천인지 이제는 잘 모르겠습니다."

빌(Bill)은 말한다. "오랜 세월 동안, 하나님께서는 내가 다른 직업을 찾아보기를 원하신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나는 가지노에서 일합니다. 보수는 좋습니다. 가족을 돌보아야할 책임이 제게 있습니다. 한가지 괴로운 일은 날마다 자신의  재물을 낭비해 버리는 사람들을 지켜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는 그들의 선택에 대해 필이 생각해 보도록 그들에게 영향을 줄 만한 그 어떤 일도 행하지 않고 있습니다. 아마도 하나님께서는 다른 방식을 고려하시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은 제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않으시는 분입니다."

우리의 하나님 이해들은 삶의 경험과 환경에 의해 도전을 받는다. 그러나 우리가 영성지도를 받고자한다면, 우리가 생각하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하나님은 참으로 선하시며 은혜가 무궁하신 분이며, 우리와 관계를 갖기 원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깨달은 이후에야, 비로소 우리는 영원한 영적 순례를 경험할 수 있다. 어거스틴(Augustine)은 하나님께 나아가는 데 있어 어찌할 바 모르는 곤경에 빠졌다. 그는 ?고백록? (The Confession)에서 이렇게 진술한다.

당신께 도움을 요청해야 합니까? 아니면 당신을 찬양해야 합니까? 내가 당신을 찾기 이전에 당신께서 먼저 나를 찾으셨다는 것을 아는 것은 중요한 일입니까? 당신이 누구인지를 알지 못한다면, 내가 어떻게 당신을 찾을 수 있겠습니까? 무지 가운데서, 당신이 아닌 다른 예배 대상을 찾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당신을 알기 위해서 당신을 찾는 것입니까?‥‥ 아, 이제 알겠습니다. 주님, 나의 삶에서 당신의 도움을 요청함으로써 당신을 찾게 하옵소서.4)

성경에 묘사된 하나님 체험

성경은 인간의 경험과 하나님 체험에 대해 무어라고 말하고 있는가? 하나님은 아담과 이브를 창조하셨고, 에덴동산에서 그들과 함께 계셨다(창 3:8).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셔서 동반자가 되게 하셨다. 즉 자유로운 상태에서 창조주에게 순종할 것인가, 그리고 창조주와  함께 협력할 것인가를 선택할 수 있는 창조주의 아들, 딸, 친구들이 되게 하셨다. 인간과 관계를 갖고 싶어 하시는 하나님의 바람은 인간이 선악과를 따 떡은 후에도 변하지 않았다. 하나님은 계속해서 인간들과 대화를 나누셨다.

하나님은 나사렛의 예수라는 인간으로 탄생하심으로써, 보다 온전히 인간과 동일시되기를 선택하셨다. 우기가 온전히 하나님과 결합될  수 있는 가능성은 예수 그리스도와 관계를 가짐으로써 발생하게 된다. 우리와 관계 맺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바람을 인지할 수 있는 우리의 능력과 하나님께 응답하는 것을 가능하게 해 주근 은혜의 선물은 성령께로부터 나온 것이다. 예수님은 자신이 아버지께로 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씀하셨다. 그래야 아버지께서  성령을 보내셔서 우리와 늘 함께 계시도록 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신자들은 성령께서 거하시는 성령의 전이다(고전 6: 19).

많은 성경 구절들은 하나님께서 인간들과 관계를 맺기를 원하시고 기뻐하신다는 사실을 증언한다. 스바냐 3: 17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풀 전능자시라.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고 말씀한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가 하나님을 바란다면, 도중 어디에선가 하나님과 우리는 서로 만나게 될 것이다.

예수님께서 지상에 계시는 동안 예수님을 만났던 사람들의 경험을 성찰해 보면, 인격적으로 하나님을 체험하는 것이 무엇과 같은 것인지를 생각해보는 데 도움을 얻을 수 있다.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여러  방식으로 경험했다. 선생님으로, 지도자로, 이야기꾼으로, 친구로, 대결자로, 통찰력 있는 질문자로, 기존종교 제도를 변혁하는 자로, 긍휼의 경청자로, 돕는 이로, 제공자로, 치유자로, 새로운 개념과 삶의 가능성을 열어주는 자로, 신비로, 메시아와 구원자로 경험했다.

사람들이 예수님과 상호작용을 가졌을 때, 그들 안에 야기된 생각, 감정, 행동들은 너무도 다양했다. 예수님과의 만남은 그들에게 하나님과의 관계를 위해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알게 해 주었고, 새로운 기회도 열어주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따르도록 사람들을 초대하셨다. 그 초대에 응한 사람들도 있었고, 거부한 사람들도 있었다. 예수님과의 만남을 통해 삶이 변화된 체험을 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비록 하나님께서 관여하셨지만 그 변화는 두 사람 사이에서 발생한 것으로 간주하였다. 우리는 나 자신과 예수님 사이의 상호작용이 성경에 등장한 인물들의 상호작용과 어떤 유사점과 차이점이 있는지를 살펴볼 수 있다. 성경은 베드로와 예수님 사이에 있었던 수많은 만남들, 마치 그들의 관계를 스냅 사진으로 찍어 놓은 것 같은 장면들을 다루고 있다. 예수께서 베드로를 처음 만나셨을 때 베드로에게 엄청난 양의 물고기를 잡는 경험을 제공하신다. 그리고 자신을 따를 것을, 그리고 "사람 낚는 어뿌"가 될 것을 베드로에게 요청하신다(눅 5:1-11).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깊은 데로가 그물을 던지라고 말씀하셨다. 이 성경 구절을 읽는 사람들은 성령께서 그들 또한 깊은 데로 나아가기를, 익숙해진 방식을 떠나기를, 그리고 예수님을 따라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기를 초대하고 계시다는 것을 감지 할 수도 있다.

성경을 읽을 때, 우리는 성경에 묘사된 것과 유사한 방식들로 우리 역시 예수님과 상호작용을 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게 된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숙고하며 기도하게 된다. 우리는 자신이 지닌 질문과 삶의 정황으로 인해 고유한 방식으로 성경 본문과 우리를 일치시킬 수도 있다. 우리 자신이 하나님을 찾는 사람과 하나님께로부터 멀어지는 사람 중에서 누구와 더욱 유사한지를 알게 된다. 성경에서 관찰한 것을 비판하는 대신 그것을 가지고 기도하면 우리에겐 보다 깊은 이해의 가능성이 열리게 된다.

이와 같은 예수님과의 직접적 만남이 하나님의 사랑과 접촉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말하면 사람들은 덜 혼란스러울 것이다. 그러나 성경에 기술된 하나님 체험들 중 더러는 이와 같은 예수님과의 인격 대 인격으로서의 만남과는 상당히 다르다. 하나님은 예수님의 성육신 이전, 예수님의 지상 생활동안, 그리고 예수님의 승천 이후에도 인간들과 상호작용을 하셨다. 아브라함, 모세,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하나님의 영적 임재의 방문, 즉 몸, 인간적인 것 혹은 천사와 같은 그 어떤 것도 포함하고 있지 않는 하나님의 영의 방문을 받았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말씀하셨다(창 12:1-4, 13:14-17, 출6:1-8). 하나님은  때때로 떨기나무 불꽃, 이스라엘 백성을 광야에서 인도했던 밤의 불기둥과 낮의 구름기둥, 성전에 가득한 하나님의 영광, 세례식에서 비둘기 같은 모양으로 예수님 위에 임하신 성령과 같이 눈으로 볼 수 있는 물질적 현상을 통해 하나님의 임재를 알 수 있게 해 주셨다(출 3:2-4; 13:21 ; 40:34-35; 대하7 1-2; 요 1 :32-34).

이러한 상황에서 하나님의 방문을 받은 사람들은  그 누구도 의심을 품지 않았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고자 하는 바를 해석하는 데 전혀 어려움을 느끼지 못했다. 비록 그들이 이러한 하나님 체험에 곧바로 혹은 장기간에 걸쳐 나양한 방식으로 응답했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의도를 이해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음성을 경청하길 원하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메시지를 인지하여 응답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쉽게 의사소통을 하신다는 것을 성경은 보여준다. 그러나 그럼에도 여전히 많은 신비들이 존재한다.

예수님의 하나님 아버지 경험은 직접 적인 신적 개입과는 약간 다른 예이나. 엄밀하게 말하면, 예수님의 그러한 경험은 하나님이 하나님을 만나는 경험과 하나님이 인간을 만나는 경험이 동시에 일어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하나님의 임재는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실 때, 변화산에서  예수님이 변화하셨을 때, 사람들을 영적으로 또한 육체적으로 치유하신 예수님의 사역을 통해, 그리고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 영적으로 그리고 실질적으로 드러났다(마 17:1-5; 요 1:32).

그러나 부활을 통해서 신성이 온전히 드러난 이후에 일어난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은 또 나른 형태의 하나님 만남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적어도 세 차례 이상 나타나셨다. 그는 그들과 대화를 나누셨고, 그가 죽은 후에 부활했다는 것을 그들에게 보여주셨다 (막 16: 12; 눅 24:36-39 ; 요 20:21). 그리스도의 승천 후, 제자들과 그리스도의 또 다른 추종자들과 그리스도를 따르지 않았던 사람들에게 성령은 출현하였다. 그들은 성령의 출현을 하나님의 출현으로 인식하였다(출 9:3-6),

지금까지 언급한 예들은 하나님을 직접적으로 경험한 것이거나 하나님과 함께한 경험, 즉 하나님을 영(Spirit)이나 음성으로 경험한 경우나 하나님을 눈에 보이는 현상으로 경험한 경우로 설명된 것들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때때로 인간이나 천사를 메신저로 사용하여 파송하신다. 성경은 하나님의 메신저들의 방문을 받은 예들을 포함하고 있다. 아브라함, 롯, 마리아, 사가랴,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바로 메신저의 방문을 밭은 사람들이다(창 18:1-5; 19:1 ; 눅 1:11-13, 26-28).

이러한 만남들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우리에게 불안과 격려를 동시에 가져다준다. 왜냐하면 그러한 만남의 발생이 우리의 이성적 이해와 반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들은 동시에 우리가 소망하는 것이 참되다는 것을 확언해 준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은 인간을 사랑하시고, 우리와 관계를 갖기를 바라시며, 우리와 의사소통을 하기 위해 그리고 우리와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하신다는 사실을 확언해 준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인격적이신 성령님으로 늘 우리와 함께 계셔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인도하실 것이라고 약속하셨다.(요 14:25-26).

하나님의 임재

 영성지도는 우리를 하나님과의 교제로 초대하시는 성령의 계속적인 임재가 있기에 가능하다. 성영은 하나님을 묵상하는 것만이 아니라 하나님을 체험하도록 우리를 인도하신다. 성령은 다른 사람들과 세상 안에 거하시는 하나님을 감지할 수 있도록 우리의 영적 눈을 열

어 주신다.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심화시키기 위해선 성령의 음성을 다른 음성들과 구별해 내는 법을 배워야 한다. 성령의 사역에 관한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성령께 주의를 집중하는 법을 탐구하고자 할 것이다. 우리 안에 거하시는 하나님, 우리와 함께 하시는 성령을 어떻게 감지할 수 있는가? 하나님께 주의를 기울이기 위해서는 어떻게 성령과 상호작용을 해야 하는가?

어떤 면에서 우리의 사고나 말이 행동과 일치하지 않는지를 탐구하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예를 들어보자. 우리 중에는 하나님의 임재를 요청하는 사람들이 있다. 초대 교인들도 종종 "주 예수님, 오시옵소서!"라고 기도했다. 그러나 성경의 가르침이나 우리의 믿음의 고백은, 하나님께서는 늘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것이다. 영성피도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를 납득시키거나 조작하지 않는다. 다만 하나님께서 결코 우리를 떠나지 않으신다는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성령의 임재를 인정하는 것이다. 종종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를 감지할 수 있도록 기도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느낌의 여부와 관계없이 하나님이 임재하고 계심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 영성지도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와 인도에 대한 우리의 ale음을 확인하고, 경축하며, 그 믿음에 따라 행동한다(마 28:19-20 ; 요 14:15-16).

 하나님의 위격과 본성에 대한 우리의 인식과 해석은 영성지도의 핵심적인 요소이다. 우리는 예수님, 성경, 성령의 계속적 임재를 통한 하나님의 자기 계시에 의존한다. 우리의 하나님이 내 안에 거하시면서 또 그 안에 제한되지 않으시는 하나님께 민감하기를 우리는 원한다. 우리는 하나님을 찾는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찾으시지 않는 한, 우리의 추구가 결코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하지는 못하다. 인간들은 하나님을 조종할 수 없다. 우리의 통제 안에 놓이는 영적 존재나 힘은 결코 하나님일 수 없다. 성경은 끈기 있게 기도할 것을 명한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며, 우리의 기도에 의해 영향을 받으신다(눅 11:5-13).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응답의 방식을 규정하지는 못한다.

신앙생활

모든 사람의 하나님 체험은 고유하다. 신앙생활의 이야기는 수많은 변수에 의해 다양한  방식으로 전개된다. 신앙의 여정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에 관계없이, 크리스천들은 여정의 어느 지점에서 한분이신 삼위일체 하나님(성부 하나님, 성자 예수 그리스도, 성령)과의 교제로 초대되며,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온전한 이해와 감사의 마음을 지니도록 요청된다.

예수님과 함께 시작하기

회개와 예수 그리스도를 구원자로 고백하는 것을 통해서, 자기중심의 생활에서 하나님 중심의 삶으로 전환한 사람들이 있다. 그후 그들은 기도와 성경공부와 예수님과의 교제에 합당한 삶을 선택함으로써 성부 하나님과 성령 하나님께도 더 많은 주의를 기울이게 된다. 그들의 하나님과의 의도적 관계는 예수 안에서 성육신하신 하나님, 인간의 유익을 위해 인간의 삶을 자원하여 선택하신 하나님을 인식함으로 시작한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의 성육신을 인간의 죄악에 대한 심관으로 간주하려는 반면에, 그것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성에 대한 긍정으로 간주하려는 사람들도 있다. 이러한 이해는 우리의 은사들을 인정하고, 그것들의 잠재성이 온전히 발현되는 생활을 하도록 격려해준다.

이러한 예수님과의 관계는 다양한 삶의 여정의 단계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시작될 수 있다. 8세 된 수(Sue)는 예수님을 따르는 삶을 선택하는 것에 관한 주일학교 선생님의 언급을 들은 후에, 그녀와 하나님이 서로 친구인지의 여부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나. 교회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수는 이 문제에 관해 부모님과 대화를 나누었다. 그리고 예수님께 자신의 친구와 구원자가 되어달라고 요청하기로 결심했다. 점심식사 때, 부모님은 수에게 자신의 결심을 하나님께 아뢰기 원하는지를 물어보았다. 그래서 수와부모님은 함께 기도했다.      탐(Tom)은 고등학교 2학년에서 3학년으로 올라가기 전 여름방학에 있었던 캠프에 참석하여 그리스도께 헌신하기로 결심했다. 그는 성경을 읽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껏 한 번도 그리스도께 헌신하기로 결심했던 기억이 없기 때문에, 자신이 참된 크리스천인지의 여부에 관해서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실외에서 시간을 보내면서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았을 때, 그는 하나님을 향한 자신의 사랑과 감사의 마음을 하나님께서 알아주셨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자신에게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또한 자신이 얼마나 하나님을 필요로 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는지도 아셨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지니고 있었다. 캠프가 진행되던 어느 날 오후 산책을 하면서, 탐은 그리스도께 자신의 삶의 주인이 되어 날라고 요청했다. 그리고 그날 저녁 캠프의 참석자들이 호숫가에 모여 앉아 있을 때, 인도자는 각자의 삶을 온전히 하나님의 돌보심 안에 내맡기는 문제에 관해 이야기한 후 참석자들에게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 보기를 요청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자신을 이러한 헌신으로 부르고 계시다고 느끼는 사람들은 자신을 상징하는 돌을 하나씩 선택하도록 요청했다. 그리고 저녁 모임이 끝나갈 무렵, 원하는 사람들은 자신을 하나님께 내맡긴다는 표시로 온 힘을 다해 그돌을 호수 안으로 던져 넣도록 요청받았다. 탐과 많은 참석자들은 별빛 아래 호숫가에 서서 자신의 돌을 호수 안으로 던져 넣었다. 탐은 자신을 하나님께 드릴 때, 주님을 향한 자신의 사랑과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강력하게 느꼈다고 고백했다.

44세인 로저(Roger)는 자신이 거듭나게 된 것을 감사하게 생각한다. 사실 그는 그 전환점을 명확하게 기억한다. 개인적인 큰 고통 가운데 빠져 있을 때, 그에게 전환의 기회는 그 어떠한 곳으로부터도 주어지지 않을 것처럼 여겨졌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고통의 삶, 즉 그의 행동으로부터 파생된 수많은 파괴적인 결과들을 끌어안고 사는 삶이 그가 원하는 삶인지를 로저에게 물으셨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기꺼이 용서해 주실 뿐 아니라 자신의 새로운 출발을 도와주실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을 그는 깨달았다. 로저는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한다. 예수님은 결코 그를 떠나거나 버리지 아니하시며, 이전과는 다른 삶 그리고 보다 나은 선택들이 가능하도록 만들어 주겠다고 말씀하셨다. 로저는 예수님께서 그와 함께 계셔서 자신에게 결여된 성품들을 보완하도록 도우실 것이라는 사실을 믿었다.

80데 초반인 메이(May)는 마더 테레사에 관한 텔레비전 방영을 시청한 후, 자신의 인생을 어떻게 보냈는지에 대해 성찰하기 시작했다. 자신이 했던 생각들과 행동들을 자세히 살펴본 연후에 그녀는 우울해졌다. 그리스도께 굴복하는 것이 이전과는 다른 삶을 만들어 낼 것이라는 희망도 들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는 하나님의 용서와 도우심이 없이는 낭비적인 삶의 형태를 선택했던 그녀 자신을 결코 용서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오랫동안 행해온 자기중심적인 태도로부터 벗어날 수도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그녀는 하나님께 한 번의 기회를 드리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용기를 내어 하나님께 "이 늙은이를 좀 변화시켜주세요"라고 간청했다. 그녀의 변화는 즉각적으로 이루어지지는 않았으나 그녀가 새로운 삶의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것은 곧 분명해졌다. 그녀는 홀로 혹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기도하면서 새롭게 되고자하는 자신의 소망을 아뢰었다. 그녀는 성경에 흥미를 느끼게 되었고, 이전에는 전혀 흥미를 끌지 못했던 영적인 것들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녀의 수많은 노인병들  조차도 영향을 받는 것 같았다. 그녀는 몇몇 영역에서 육체적인 개선도 경험했다. 그녀 자신, 하나님, 그리고 타인에 대한 그녀의 변화된 태도는 그녀를 둘러싼 주변의 환경에 영향을 미쳤다. 사람들은 진심으로 그녀와 함께 있는 것을 기뻐했다. 예전에는 어림도 없던 일이었다. 메이의 가족들은 잘못된 행위를 했던 그녀를 용서해야 하는 중대한 도전에 직면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 가족들 내부에서도 변화는 이미 발생하기 시작했다.

조디(Jodi)는 신약성경을 처음으로 읽었을 때, 기독교에 매혹되었다. 그녀는 예수가 누구이며, 어떤 분인가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예수님과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 그분의 가르침과 가치관은 그녀 주변의 것들과 너무도 달랐다. 예수님은 자신의 삶의 토대를 하나님께 두셨다. 그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모습의 인물이 기꺼이 되고자 했으며, 하나님께서 요청하시는 일을 기꺼이 행하고자 하였다. 조디는 그녀 자신의 삶이 희망적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녀는 예수님께 자신의 구원자와 삶의 동반자가 되어 주시기를 요청했다.

자신의 신앙 여정이 예수님과 함께 시작되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예수님과의 관계는 인간의 이해를 초월하시는, 무로부터 창조하시는, 그리고 성령을 통하여 오늘날에도 각 사람에게 고유한 방식으로 임재하시는 하나님을 인정하게 하는 지름길이 된다.

창조주 하나님과 함께 시작하기

신앙인들 가운데는 창조주 하나님과 함께 신앙의 여정을 시작한 이들이 있다. 그들은 자연 세계를 즐긴다. 나무와 호수들, 산들과 피조물들, 하늘과 변하는 날씨를 바라보는 것을 즐거워한다. 세상의 아름다움, 변화, 생명은 그들에게 경외감을 안겨준다. 공공연히 자연에 대해 감사를 표함으로써, 그러한 질서와 아름다움의 기원에 관해 질문을 하기 시작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진화에 관해 배웠던 것들이 자신들이 직접 세상에서 보는 것들과 조응(調應)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또한 진화론이 자신들에게 만족할 만한 설명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자연이 단순히 우연의 결과라기에는 너무도 아름답다. 심지어 극도로 미세한 세계조차도 너무도 멋지다는 것이다(시 19:1-4; 행 17:24-28; 롬 1:20).

그들은 창조의 기원이 되는 창조주의 마음과 정신에게로 이끌린다. 하나님의 이러한 선물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은 그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한다. 그들은 하나님을 탐구하기 시작한다. 종교적 전통이나 구조에 속해 있느냐의 유무에 관계없이 하나님께로 발걸음을 내딛는다.

기독교 영성 안에 존재하는 역사적 긴장들

신앙과 하나님 경험에 대한 우리의 관점들 또한 역사의 한 부분인 특정한 전통들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아래 제시된 목록을 읽음으로써, 당신의 신앙전통에서 강보되어 온 것들이 무엇인지를 확인할 수 있으며, 우리의 대답들은 우리의 하나님 인식과 가치관에 영향을 미친다.

자아를 부정하는 것과 삶의 모든 것을 하나님의 선물로 간주하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중요한가?

지적인 이해와 하나님과의 경험적 관계 중, 어느 것이 더 중요한가? 하나님의 일과 인간의 일 사이의 관계는 무엇인가? 하나님의 주도성, 하나님께 대한 인간의 응답, 그리고 악은 인간의 하나님과의 관계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가?

다른 신앙 전통들은 각각 기독교 영성의 다른 측면들을 더욱 소중하게 생각하여 자신의 전통 안에 통합해낸다. 다음 중 어떤 것이 가장 중요한가?

관조적(contemplative)-하나님과의 직접적인 사랑의 대면을 강조함
거룩(holiness)-개인의 정결(puri쇼)과 구별(separation)을 강조함
은사적(charismatic)-성령을 강조함.
사회참여(social action)-소외된 사랑들을 돌보는 것을 강조함.
복음적(evangelical)-성경과 설교를 강조함.
성육신적(Incarnational)-성례로서의 삶과 일상생활 가운데서 하나님을 발견하기를 강조함
5)
우리는 모두 동일한 수준에 있는 그리스도의 제자들인가?, 아니면 어떤 사람들은 더 진보되고 거룩하고 특권이 주어진 제자들인가?
설교 세례, 그리고 성찬의 역할은 무엇이며, 어느 정도의 중요성을 지키는가?
성경의 위치는 무엇이며, 적절한 성경해석은 무엇인가?
내적 생활과 외적 생활에 각각 어느 정도의 강조점이 주어져야 하는가?
신자 개인의 삶과 신앙공동체의 삶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가? 어느 하나가 다른 것보다 더 강조되어야만 하는가?

 크리스천이 된다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대단히 많은 요인들에 의해 형성된다. 다른 크리스천들이 생각하는 바를 배우는 것은 은총의 다양성과 풍부함을   더욱 감사할 수 있게 해준다. 그것은 또한 우리의 자발성을 일깨워, 새로운 방식으로 다가오는 하나님의 초대들을 열린 마음으로 탐구할 수 있도록 해준다.

하나님 체험을 추구하기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의 임재를 체험하고자 간절히 원하며 하나님을찾 고 있다고 믿을  때, 참으로 하나님을 찾고 있는지 아니면 영적 경험을 추구하고 있는지를 자문해 보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우리는 외로움과 분리됨과 혼란스러움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때때로 우리의 추구는 하나님을 향한 것이라기보다는 지루함을 달래기 위한 영적인 모험일 수 있다. 우리는 자신을 영적으로 중요한 인물로 간주하기를 원하며, 특정한 종류의 영적 체험을 타인이 우리를 중요한 인물로 간주하는 데 필요한 하나의 기준으로 생각한다. 아마도 우리의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서 누군가를 치유하시길, 혹은 즉각적으로 우리 삶에 중요한 변화를 발생시키시길, 혹은 하나님의 긍휼이 드러나는 것보다는 우리의 영적 탁원함을 입증해 주는 증거로서 우리가 기도해 주는 사람의 삶에 중요한 변화를 즉각적으로 이룩하시길 원하고 있을지 모른다.

우리가 기도하지 않은 채 이러한 생각들과 감정들을 비판하거나 제거하려고   노력한다면, 그것들은 결코 해결되지 않은 채 우리 내면의 깊은 곳에 감추어진 상태로 남아있게 된다. 그것들을 기도 가운데 아뢰며 하나님의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그것들로부터 자유롭게 되는 길이다. 왜냐하면 우리의 끊임없는 자기중심적인 본성 때문에, 우리는 너무도 많은 것들을 즐기려는 유혹에 빠지게 되기 때문이다.

이분이 하나님이신가?

하나님 체험은 지적 분석을 통해 온전히 설명될 수 없으며, 우리의 통제 아래 있지도 않다는 것을 이미 언급했다. 그러나 설명할 수 없는 모든 영적 경험들이 하나님 체험이라고 주정하는 것은 현명하지 못하다. 영적 세계는 보다 열등한 수많은 존재들을 포함한다. 하나님의 분부를 행하는 존재들도 있으며, 그 정반대의 것을 행하는 존재들도 있다. 영적 경험 그자체가 경험의 진정성과 거룩성을 보장해 주는 충분한 증거가 되지는 못한다. 참된 하나님 경험은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의 본성과 조화를 이룬다. 영적 체험 그 자체는 사랑과 평안을 느끼게 한다할지라도, 발생한 것이 성경과 양립할 수 없는 것이라면 우리는 그 경험의 기원과 목적을 기도하는 가운데 주의 깊게 살펴보아야만 한다. 크리스천들은 분별을 할 필요가 있으며, 단지 자신의 감정과 견해에만 의존해서는 안 된다. 공동의 분별은 영성지도의 대화를 통해 수행할 핵심적 과제들 중 하나이다. 

많은 사람들이 지속적인(ongoing) 하나님과의 만남을 인식하고 있지만 하나님 체험을 한 번이라도 인식했는지에 대해 확신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비록 드물기는 하지만 하나님의 참된 임재를 인식했던 중요한 순간들 혹은 일정한 기간들을 명시하는 사람들이 있다. 즉 삶의 방향을 바꾸었던 회심의 순간들, 위기의 순간들, 탄생과 죽음, 새로운 길의 시작, 원시적이면서 장엄한 자연이나 혹은 정반대고 황폐화된 자연과의 만남들, 고독이나 질병의 기간들이 바로 그러한 것이다.

 우리의 하나님 체험은 그 어느 것이든 성령의 주도와 돌봄에 의해 이루어진다. 하나님 체험을 우리가 발생시킬 수 없다는 점에서, 그것들은 우리의 통제아래 있지 않다. 그러나 우리는 성령의 불을 소멸시킬 수 있으며, 하나님 체험이 우리에게 찾아 올 때 그로부터 도망칠 수 있고, 성령께 마음을 열고 싶어 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나님 체험의 방식을 오직 하나님만이 결정하신다는 사실에 대해 우리는 안도감과 긴장감을 모두 느끼게 된다. 어떤 종류의 체험이 자기 과장의 행위가 아니라 보다 그리스도처럼 되는 방향으로 우리를 인도할 것인지를 정확히 판단할 수 없다는 점에서 안도감을 느낀다. 반면에 하나님과 일대일의 만남은 우리의 연약성을 인식한다는 점에서 긴장감을 느끼게 한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정신 능력이 감당할 수 있는 정도를 넘어서는 강도로 우리에게 임재하심으로 우리를 파괴시키실 수도 있음을 우리는 안다. 우리는 또한 우리의 하나님 인식들이 우리의 인간성에 의해 영향을 받으며, 하나님이 아닌 다른 영적 존재들에 의해 도전받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안다. 하나님을 추구할 때, 우리는 보다 정확히 우리의 유한성과 연약성을 인식하게 된다.

우리 삶의 대부분은 하나님으로부터 도망친 상태와 하나님의 뜻과 온전히 일치한 상태 사이에서, 그리고 하나님을 예민하게 인식하는 상태와 하나님이 안중에도 없는 상태 사이에서 이루어진다. 하나님의 음성을 경청하도록 요청하는 초대는 순간순간 우리에게 주어진다. 성령의 인도하심에 대한 우리의 응답을 보면, 전혀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의 응답이라고 볼 수 없는 경우가 있다. 우리는 도망가고, 숨고, 후퇴하며, 논쟁하고, 협상하며, 혹은 다른 길을 추구한다. 특정한 방식으로 행동하도록 요청되어질 때, 우리는 속는 것 같은 느낌을 갖게 된다. 따라서 우리의 반응은 자기중심적이 된다. 즉 우리는 자신을 즐겁게 해 주는 것을 행하는 데 더 흥미를 보인다. 그러나 또 다른 때에 우리는 하나님을 향해 열려있고, 하나님을 갈망하며, 하나님을 즐거워한다. 그리고 하나님께 기쁨으로 응답한다.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거하셔서 우리를 통해 사시도록 자원하여 하나님께 드리게 됨에 따라, 우리는 날마다 도전들에 직면하게 된다 하나님과의 사랑의 관계를 발전시키는 데 있어 우리의 연약성과 비지속성을 발견할 때, 불편함을 느낀다. 그러나 성령께서는 하나님의 사랑과 우리의 사랑 안에서 역사하셔서 우리를 변화시키신다.

우리는 어떤 종류의 하나님 체험을 기대하는가? 하나님 체험의 많은 예들을 서술했으나 그것들은 단지 대표적인 것일 뿐이지 모든 것을 포괄하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끊임없이 성경,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자연과 삶, 때때로 직접적인 하나님 체험을 통해서 우리를 놀라게 하시며, 가르치시고, 초대하신다는 것을 깨닫는다. 우리의 하나님 체험을 고찰할 때, 우리는 스스로를 과장하게 만드는 체험들은 인지하여 거부하고 그리스도와 같은 태도와 행동을 고무시키는 체험들은 인지하여 받아들임으로 그것과 협력할 수 있기를 원한다.

성찰을 위만 질문

1. 현재 당신의 삶에서 작동하고 있는 하나님의 모습은 어떤 모습입니까? 어떤 하나님의 모     습과 하나님에 대한 생각이 당신의 행동, 감정, 선택들에 실제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습 니까?

2. 하나님은 멀리 계십니까, 아니면 가까이 계십니까? 하나님은 어떤 분과 같은지에 대한      당신의 생각들은 당신의 영적 성장과 성숙, 인격적 발달, 건강한 자의식을 촉진시킵니까,     아니면 저해합니까?

3. 당신은 어떻게 하나님 체험을 했습니까? 자세하게 묘사해 보십시요. 무엇이 그것을 하나     님 체험이라고 생각하게끔 만들었습니까?

4. 어떤 종류의 하나님 체험을 갈망하고 있습니까?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이에 관해 어떻     게 기도합니까?

5. 삼위일체 하나님의 삼위께서 각각 어떻게 당신의 하나님 체험에 관여하십니까? 이 점에     관해, 당신의 경험들은 무엇을 말해 줍니까? 당신의 기도는 어떻게 당신과 하나님의 한     계를 반영하고 있습니까?

6. 하나님과의 관계에 관해 당신으로 하여금 감사의 마음을 갖게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7 부모님, 선생님들, 권위자들, 친구들에 의해 제시된 하나님은 어떤 분이었습니까?

8. 기독교 영성 안에 있는 역사적 긴장들의 목록을 읽었을 때, 당신의 배경에 대해 무엇을     배웠습니까?

9. 당신의 개인적 경험을 통해서 하나님에 대해 발견한 것은 무엇입니까?

10. 위의 질문들(1~4)에 대한 당신의 응답을 통해 어떤 통찰이나 느낌을 발견한 것이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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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Teresa of Avila, Way of Perfection, ed. E. Allison Peers (New York: Image Books, 1964).

2) Ann Ulanov, "Picturing God," in A Guide to Prayer for all God's People, ed. Rueben Job and Norman Sawchuck (Nashville: The Upper Room,1990). 171.
3) David A. Seamands, "Healing Our Feelings about God: Why People Feel Bad about a God Who Is Good," Good News(March / April 1986): 88-93  이 논문은 David A. Seamands,  Healing of Memorries (Wheaton: Victor,1985)에서 발췌함.
4) Sherwood Wirt, ed., The Confessions of Augustine in Modern English (Grand Rapids: Zondervan, 1986).
5) Richard Foster, Streams of Living Water: Celebrating the Great Tradition of Christian Faith (San Francisco: Harper ft Row,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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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7 영성묵상훈련 [어거스틴 참회록31] 최고 선(善)이신 하나님. 어거스틴 2009-03-31 3958
1416 수도관상피정 쉬지말고 기도하라 헨리 나우웬 2009-03-28 3368
1415 수도관상피정 관상기도의 성서적 이해 박노열 목사 2009-03-28 2873
1414 수도관상피정 관상기도의 현대적 이해 오방식 2009-03-28 2591
1413 수도관상피정 묵상의 훈련 리처드 포스트 2009-03-28 2907
1412 수도관상피정 기도의 훈련 리처드 포스트 2009-03-28 2806
1411 영성묵상훈련 [어거스틴 참회록30] 나쁜짓은 점염된다 어거스틴 2009-03-23 36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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