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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의 의미와 원인에 관한 연구

정치건강취미 대명교회............... 조회 수 3629 추천 수 0 2009.04.06 08: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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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질병의 의미와 원인에 관한 연구

질병의 의미와 원인

1.질병의 일반적 의미와 원인

질병에 대한 일반적인 의미를 살펴보면 우리말 큰사전에 신체의 온갖 기능의 장애로 인한 온갖 병을 일컬음 으로 기록되어 있고,성서 대백과 사전에는 병이란 몸의 일부 또는 몸 전체에 생기는 질병 증상을 말한다 라고 질병을 정의하고 있다. 또한 투니어(Tournier)는 말하기를 질병은 장차 다가올 죽음의 표시이다.모든 질병은 그 안에 죽음의 싹을 내포하고 있다 고 질병을 정의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질병이란 평온의 상태가 아니며 무질서의 상태로 보며 동시에 질병은 편안하지 않은 것(dis-ease)이다.
또한 건강이란 신체적,정신적 또는 사회적으로 완전히 좋은 상태를 말하는 것이며 그 반대되는 상태를 질병이라고 한다 라고 질병을 정의하고 있다.

1) 유전적 요인
질병의 유전적 요인으로는 알콜중독이나 마약사용(니코친,환각제,피임약 등)을 통하여 정신적 충격이나 자궁내 감염등이 후손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다.

2) 물리적 요인
물리적 요인으로는 영야부족,신진대사 및 내분비 장애,그리고 종양 등으로 나타나는 후천적 물리적 현상이다.

3) 정신적 요인
정신적 요인으로는 걱정,불안,외로움,슬픔,죄책감 등의 심리적인 마음의 상태로 다가오는 후천적인 정신적 상태이다.

4) 사회 환경적 요인
사회 환경적 요인으로 사회의 진리,정의,사랑의 결핍 등으로 다가오는 현상이다.
이렇게 질병의 원인에는 육체의 병,정신적인 병,영적인 병,사회적인 병이 있는데,이것들은 모두가 유전적인 요인과 아울러 환경적인 원인 그리고 후천적인 요인들로 나타나고 있다.

2. 질병의 성경적인 의미와 원인

질병의 성경적인 의미를 살펴볼 때,많은 사람들이 외부에 나타난 그 병상에만 관심을 가지고 질병을 고쳐보려고 애를 쓴다. 그러나 질병의 깊은 뿌리는 곧 인간의 죄와 부패에서 시작됐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롬6:23)고 성경에서 밝혀주고 있다. 그러므로 눈에 보이지 않는 질병의 뿌리는 죄에 있는 것이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이 사망을 퉁하여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 (히2:14)가 끊임없이 질병에 생명을 공급하여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요10:10) 파괴적인 역사를 계속하고 있다. 그렇기에 성경은 밝혀 가르치기를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붓듯 하셨으매 저가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자를 고치셨으니 (행10:38)라고 하셨다.
예수님께서 고치신 모든 병은 그 배후에서 마귀가 생명을 공급하고 있었으며 예수님께서 이 마귀의 영을 쫓아내시자 건강의 생명을 공급하심으로 깨끗하게 낫도록 만드신 것이다. 사단 이란 용어는 히브리어인데 그 뜻은 저항자 또는 반역자 이다. 신약에는 사단 이라는 히브리어 대신 디아볼로스 ( )라는 단어가 나오는데 그 뜻은 비방자 그리고 중상자 이며, 그 말이 마귀 라는 단어로 번역되었다. 이 말은 영어(Devil)로 번역 되었고 디아 ( )라는 말의 뜻은 통하여 라는 말이고, 볼로스 ( )라는 뜻은 던진다 라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마귀란 던져 버리는 자 라는 뜻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또한 사단 을 고후4:4에 이 시대의 신 으로 기록되어 있고,마13:19,38에는 사악한 자 로 불리워지며 39절에 우리의 적 이

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계12:10에는 참소 하는자 로 나와 있으며,요8:44에는 사단 을 예수님께서 살인자요,거짓말 장이요,거짓의 아비 라고 말씀하셨고,엡2:2에는 공중의 권세를 잡은 자 로 그리고 마12:24,눅11:15에는 귀신의 왕 으로 겔28:14에 기름 부음을 받은 덮는 그릅 등으로 기록이 되어 있다.

1) 죄로 인한 원인
질병은 인간의 죄로 인한 타락에서부터 시작되었고 이 죄의 타락은 사단으로부터 왔으므로,성경적인 질병의 원인은 죄로인한 결과라는 사실을 입증하고 있다:
웃시야가 손으로 향로를 잡고 분향하려 하다가 노를 발하니 저가 제사장에게 노할 때에 여호와의 전 안 향단 곁 제사장 앞에서 그 이마에 문둥병이 발한지라 (대하26:19).
이러한 죄의 결과로 웃시야 왕은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문둥병에 걸려서 별궁에 홀로 거하다가 그 병으로 죽은 것이다. 구약시대에는 하나님 앞에 범죄함으로 병들은 사람들이 많이 있을 뿐만 아니라,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죽은 사람들도 많이 있었다.
신약시대에 나타난 질병과 죄 문제는 다음 성경을 인용해서 규명해보려고 한다. 예수께서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소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막2:5). 예수님은 중풍병자에게 죄 문제를 우선적으로 지적했다. 따라서 사람의 질병은 죄와 깊은 관계를 가지고 나타난다.

2) 하나님의 섭리로 온다
병의 원인은 하나님의 섭리로 나타나기도 한다. 그 예로써 욥의 병을 말할 수 있다. 욥은 의인이었으며,그는 하나님 앞에 범죄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에게 참기 어려운 병마가 찾아왔다. 욥을 쳐서 그 발바닥에서 정수리까지 악창이 나게 한지라 (욥2:7). 욥의 병은 본인의 죄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병이었다. 본인의 죄와 관계 없이 하나님의 섭리로 오는 병이 있으므로 무조건 병 중에 있는 형제들을 죄와 관련시켜서 비방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3)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원인
하나님은 사람에게 고통과 아픔을 주는 질병을 치료하심으로 영광을 받으신다. 사람들이 병들었을 때에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라 치료하심으로 영광을 받으시는 것이다. 길가실 때에 날 때부터 소경된 사람을 보신지라 제자들이 물어 가로되 랍비여 이 사람이 소경으로 난 것이 뉘 죄로 인함이오니이까 자기오니이까 그 부모오니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가 죄를 범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니라 (요9:1-3). 지금도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하여 신유의 이적이 필요하시다면 하나님께서는 앉은뱅이를 일어서게 할 수 있으며,귀머거리를 듣게 할 수 있고,소경을 보게 할 수 있는 신유의 이적을 나타낼 수 있는 것이다.

4) 부주의로 인해서 온다
인간의 질병은 부주의로 발생할 수 있다. 아무리 신앙생활을 충실히 한다 해도 절제하지 않고 위생에 주의하지 않으면 질병에 걸리게 된다. 신자가 하나님과 정상적인 관계를 유지한다 해도 의식주 문제를 원만히 해결하지 못하면 병에 걸려서 죽게된다. 금식기도를 자주하면 물론 신앙적으로는 원만한 생활을 할 수 있으며 또한 하나님께서도 기뻐하실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육체는 약해진다. 육체가 약해지면 자연히 질병이 찾아온다. 이러한 원리는 그리스도인이라고 해서 예외일 수는 없다.

5) 악령의 작용으로 인한 질병
복음서에는 악령의 작용으로 인한 흉악하고 잔인한 모습들을 잘 나타내 주고 있다. 귀신들려 벙어리된 자(마9:32-34),귀신들려 앓으며 꼬부라진자(눅13:10-13),귀신들려 정신이상이 된자(마8:28-34) 등 악령의 작용으로 인해 질병의 원인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모든 병의 원인이 바로 귀신이다는 이론은 두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는데,긍정적인 대답과 부정적인 대답이다. 긍정적으로 보면 세상에 악한 영들이 존재하니 질병과 사고와 갖가지 재난이,약육강식이 존재하나 하나님께서는 천년왕국 때 모든 악한 영들을 잡아 무저갱에 일천년 동안 가두면(계20:1-3) 땅에는 전혀 악한 영들의 역사가 없기 때문에 질병도 사라질 것이다 라는 면으로는 이해가 되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모든 병이 귀신들림이라는 견해가 잘못인 것은 예수님의 치유이적이 모두 귀신을 쫓음으로 해서 치료하신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복음과 치유(약5:13-18)

(약5:14-16)"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저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위하여 기도할찌니라 (15)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 하리니 주께서 저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찌라도 사하심을 얻으리라 (16) 이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 병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 하는 힘이 많으니라"

<서론>
예수께서는 복음을 전하시면서 병자를 고쳐주셨다. 그 내용에서 병의 원인과
잘못된 치유법, 치유의 순서 등을 보여주셨다.

1. 성경에는 치유의 약속이 있다.

1) 막6:56 "다 성함을 얻으니라"
2) 마8:17 "우리 연약한 것을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3) 시53:5, 요삼1:2

2. 잘못된 치유법

1) 영혼의 병을 고치지 않는 것
2) 마음의 병을 먼저 고치지 않고 육신의 병만 고치려는 것
3) 의사, 약 등을 전적으로 의존하는 것
4) 미신등을 의존하는 방법

3. 병의 원인을 진단해 보자.

1) 생리적인 것 -- 과로, 연령(창48:1,10)
2) 실수로 인한 것 -- 실족, 술(호7:5)
3) 하나님의 뜻이 있는 병(고후12:7, 단8:27)
4) 죄로 인한 병
① 죄 -- 저주받은 병(원래가진 병)(창3:16-19)
② 조상의 죄 -- 특히 우상숭배(삼하12:15, 출20:4-5)
③ 자범죄로 인한 병(왕하5:27, 대하21:12-19, 고전5:5)
5) 마귀(귀신)가 가져다 주는 병
특징 -- 병명 불분명, 이유없는 두통, 머리에서 소리가 남, 치유되지 않으
면서 순간적 변동
① 정신(막5:3-15)
② 마음(엡4:23-27)
③ 육신(욥2:7, 막9:17, 눅13:16)
④ 환경(마12:25-28)

4. 치유 방법 -- 계속

(시103:1-5)

<연구문제> 인간에게는 도저히 사람의 기술이나 약물의 힘으로 고칠 수 없는 병이 더 많으며 병명을 밝히지 못하고 죽어가거나 앓고 있는 병이 대부분이며건 강하던 사람도 갑자기 불치병과 여러가지 병에 평생을 시달리는 사람이 많다

예)
1) 수리아의 귀신들린 간질병자 2) 문둥병자 3) 소경 바디메오 4) 눈멀고 벙어리된 자 5) 두로.시돈의 흉악한 귀신들린 자
6) 성전의 앉은뱅이 7) 38년된 병자 8) 손 마른자
9) 혈루증 여인 10) 빌립보의 정신이상자 .....
<주의사항> 이러한 병의 원인은 전부 영적인 병이므로 예수 영접하여 구원부터 받지 아니하면 치유가 불가능하며 잠시 다른 방식으로 치유되었다가 점점 더 악화되어 간다.

<예수님의 치유> 성경이 가르치는 치유의 순서?

1. 영적치료
1) 믿음(약5:15-16, 막10:52, 행4:9-10)
2) 예수그리스도 영접
요1:12 -- 영접(λαμβανω람바노) - "굳게 붙든다, 취한다"는 의미
행8:4-13
행10:38
3) 예수 영접하면 변하는 것 세가지
① 하나님의 자녀(요8:44 --> 요일3:2)
② 정신적인 변화(롬6:17 --> 롬6:22)
③ 점진적인 생활의 변화(엡2:2 --> 갈5:18)
4) 원죄, 우상숭배한 조상과 본인의 죄가 없어지는 이유(요일3:8, 마12:28 막3:14-15)
2. 모든 영적, 정신적, 육체적인 병은 마음을 타고 들어온다.
1) 그 마음은 미혹의 영이 작용한다.
2) 미혹의 영에 관하여
왕상22:20-22 "누가 아합을 꾀겠느냐?...한 영이 내가 꾀겠나이다 ... 거짓 말하는 영이 되어" 삿9:23 "악한 신을 보내시매"
겔14:9 "유혹의 영이 선지자에게 붙어"
3) 미혹의 영의 특징
① 평생을 따라다님 ② 계속 증가함 ③ 결국 육체를 멸함
엡4:25-27 살후2:10-11 고전5:5
4) 이기는 길
(잠4:23) - 마음을 지키고
(엡4:27) -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
(벧전5:7) -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요일3:8) - 마귀의 일을 멸하신 예수님
(엡6:11) - 하나님의 전신갑주 - 말씀무장, 기도무장
(엡6:19) - 복음증거
(마12:29) - 사단 결박 (약4:7) - 하나님께 순복, 마귀 대적

질병의 통로

앞에서 논의했듯이 질병의 실제적인 원인은 사단이라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렇게 질병의 배후가 사단이라는 것이 드러났으면,사단은 어떠한 통로(Channel)로 질병을 사람 몸속에 들여와 고통과 아픔을 주는가? 질병이 사람 몸속에 들어오는 데는 세 가지의 통로가 있는데,그것은 첫번째로 영적인 요인인 죄(sins)와 두번째로 심리적인 요인인 나쁜 감정들(bad emotions)과 세번째로는 물리적인 요인으로 자연법칙의 파괴(breaking the natural laws)이다.

1) 영적인 요인들-죄(Spiritual Factors-sins)
사람이 죄를 짓게 되면 하나님의 심판이 따른다. 죄를 짓고도 회개치않을 때는 하나님의 심판이 그 위에 머물게 된다. 인간이 죄를 지으면 곧 회개하지 않는 이상 하나님이 심판이 그 위에 머물러 있게 되며 동시에 귀신이 침투하여 몸 속에 병균이 들어갈 수 있도록 역사한다. 그 이유는 죄를 지은 당사자와 하나님 사이에 생긴 죄로 말미암아 단절이 생겼기 때문이다. 귓ㄴ은 사람과 하나님 사이에 죄로 생긴 다널 속에 파고 들어와 온갖 수단을 다 동원하여 사람을 파괴하고 죽이고 있다.
민12장과 21:1-9에 보면 사람들이 하나님께 죄를 범함으로 육체적인 질병에 시달리는 것을 볼 수 있다. 또한 신28장에도 같은 우너리가 나오는데 인간이 하나님께 불순종의 죄로 말미암아 오는 질병에 대해 기록해 놓고 있다(신28:15-22). 이렇게 볼 때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는 죄를 범했을 때에 하나님의 거룩한 보호의 손길에서 벗어나게 된다. 하나님의 보호의 손길이 떠나가면 그 때 사단이 틈을 타 질병을 유발시키는 것이다. 아담이 범죄하기 전에 에던동산에서 아담과 하와가 질병에 걸려 본 적이 없었다는 것을 우리는 잘안다. 그러기에 질병의 통로는 죄라는 영적인 요인을 통하여 사람들에게 들어오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2) 심리적 요인-나쁜 감정들(Psychological Factors-bad emotions)
질병이 육체 속에 들어오는 통로 중 심리적 요인으로는 바쁜 감정들,즉 질투,공포,쓴감정,염려,분노,후회,용서못하는 마음,자기 중심 등의 감정으로,이러한 나쁜 감정들은 질병을 몸 속으로 들어오게 하는 요인이 된다. 샌포드(E.L.Sanford)는 쓴 마음(bitterness),분노(anger),후회(resentment) 등의 나쁜 감정들이 질병을 일으킨다고 말하고 있다.
심령의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한다(잠17:22). 즉 마음 속에 근심이 가득차면 육체에 질병이 생긴다는 말씀이다. 좌절과 염려,근심,걱정,불안,초조,분노 등의 나쁜 감정들은 육신 속에 병이 들어오도록 초청작용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럼 왜이런 나쁜 감정들이 마음에 있으면 질병으로 변하는가? 그것은 사람이 마음 속에 나쁜 감정을 가지고 있을 때에 나쁜 감정들은 신경조직(NERVOUS SYSTEM)에 영향을 주게되고 심경조직은 몸의 세포에 병적인 자극을 주게 된다. 이럴때 세포가 약해진 틈을 타서 병균이 들어오게 되고 질병이 생기고 성장하게 되는 것이다.그러므로 정신과 신체적 관계(Psychosomatic relationship)는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진리이다.

3) 육체적 요인들-자연 법칙의 파괴
(Physical Factors-breaking natural laws)
하나님께서는 자연과 자연 법칙을 창조하셨다. 그리고 사람의 몸 속에는 이 창조의 자연 법칙이 존재하고 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사람의 몸은 대단히 논리적이고 합리적이며 과학적이다. 이러므로 사람의 몸 속에 작용하고 있는 자연 법칙을 깨뜨려 파괴하면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불순종의 죄를 범하게 되는 것이며,그 결과 아픔을 통한 질병이 닥쳐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사람의 몸 속에 자 하고 있는 자연 법칙을 깨뜨리면 병균이 몸 속에 들어와 질병을 유발하게 된다. 사람이 과로를 하게 되는 경우에 육체가 피로하게 된다. 이 때 자연 법칙에 의하여 육체를 쉬어주어야 하게 되어있다. 그러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무시하는 경우 육체 속에 흐르는 자연 법칙을 어기므로 파괴되어 병균이 침투하여 질병이 생기에 되는 것이다.

상한 마음

크리슨 해리슨 목사

하나님 아버지께서 여러분을 축복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대구를 향해 가지신 하나님의 계획하심과 그리고 예정하신 뜻에 대해 감사드립니다. 하나님께서 대구를 사랑하시고 더욱더 하나님의 사랑을 이 도시 안에 부어주실 것입니다. 어제밤에 우리가 하나님께서 창조하실 때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셨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우리의 영과 혼과 육을 다 회복시키시기 위해 오셨다는 사실에 대해 배웠습니다. 그리고 뿌리에 대해서도 이야기했습니다. 어떻게 뿌리가 두가지가 필요한지, 첫번째 뿌리가 필요한 것은 자라게 하는 흙이 필요합니다. 쓴뿌리, 거절하고 거역하게 만드는 뿌리를 자랄 수 있게하는 아주 비옥한 땅, 그 흙이 어떤 것인지 보았습니다. 그 흙이 바로 상한 심령이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마음을 열고, 삶을 열어서 많은 치유하심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우리가 우리 삶을 하나님 앞에 열어 드릴 때 하나님께서 치유하실 것입니다. 회복시키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놀라우신 분이십니다.
어떤 때는 우리가 기도하기 힘들만큼 우리가 마음이 아플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그렇지만 말씀을 듣고도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마음 속에 있는 아픔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로 그런 똑같은 문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출애굽기를 보십시오.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출애굽기 1장 14절에 『고역으로 그들의 생활을 괴롭게 하니 곧 흙 이기기와 벽돌 굽기와 농사의 여러가지 일이라 그 시키는 역사가 다 엄하였더라』고 했습니다. 그들의 생활이 괴로왔던 것은 고역 때문이었습니다.
출애굽기 2장 23절에 보면 『여러 해 후에 애굽 왕은 죽었고 이스라엘 자손은 고역으로 인하여 탄식하며 부르짖으니 그 고역으로 인하여 부르짖는 소리가 하나님께 상달한지라』고 했습니다. 그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부르짖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고역과 묶임 때문입니다. 이것은 하나님 앞에 부르짖었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부르짖었다고 했습니다. “아, 너무 힘들어, 너무 고통스러워" 이것이 바로 이 사람들이 부르짖은 내용입니다. 어떤 번역은 사람들이 소리질렀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 사람들에게는 너무 힘들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 사람들은 기도조차 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주님 도와주세요. 도와주세요."라고 할 수 없었습니다. 그냥 “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여기 보면 하나님께서 그 고통 소리를 들으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긍휼히 여기셨다고 했습니다. 24절에 보면 『하나님이 그 고통 소리를 들으시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언약을 기억하사 이스라엘 자손을 권념하셨더라』고 했습니다. 비록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도할 수는 없었지만 마음 속에 고통할 뿐이었지만 하나님은 듣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도움을 보내주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의 기도에 따라 좌우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때는 우리가 너무 힘들고, 기도하기 힘들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하나님께서는 은혜를 내려주시고 계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정말 많은 고통을 느끼고 있었을 때 하나님께서 모세를 보내셨습니다. 6장 9절에 보면 『모세가 이와 같이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하나 그들의 마음이 상함과 역사의 혹독함을 인하여 모세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더라』고 했습니다. 모세의 말을 들을 수 없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모세를 구원자로 보내주셨는데 불구하고 모세의 말을 듣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마음 안에 상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모세가 포기했나요? 절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계속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마지막에 결국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은혜로 충만하신 분이십니다.
여기 어떤 분은 마음 안에 상처를 갖고 계신 분이 있습니다. 지금 현재 갈등을 겪고 있는 분이 계십니다. 설교 말씀을 듣고 반응하기가 힘든 분이 계십니다. 만약 여러분이 그렇다면 ‘나는 정말 하나님의 눈에서 벗어났구나 나는 실패했구나' 하고 절대 그렇게 생각하시면 안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여러분에게 은혜를 주기를 원하십니다. 여러분을 도와주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굉장히 사랑하시고, 여러분의 삶을 돌봐 주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여러분의 기도에 따라 좌우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비록 기도할 수 없을지라도 하나님은 여전히 여러분을 사랑하시고, 은혜를 주시기 원하십니다.
계속해서 어제의 강의 이어서 할려고 합니다. 다시 뿌리에 대해 다시 보겠습니다. 우리가 두번째 뿌리에 대해 말했던 것이 뿌리가 자라기 위해 씨가 땅에 뿌려져야 한다고 했습니다. 씨가 무엇이죠? 씨는 우리가 삶을 살아가면서 우리가 당하는 여러가지 경험들을 말합니다. 그 경험들은 우리에게 굉장히 고통을 주었던 것들입니다. 어쩌면 그것들은 계속해서 반복해서 일어나고, 또 일어나고 그런 일들일 수 있습니다. 아니면 삶 가운데 한번 일어났지만 굉장히 격렬하고 아팠던 경험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픈 경험들이 어렸을 때 일어났다면 그 아픔은 문제가 있는 또는 결손 가정에서 많이 일어납니다.
어제 저녁에 잘못된 가족관계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정말 문제있는 가정에 대해 이해하고 계십니다. 왜냐하면 성경에서 그런 가정의 예를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 문제 있는 가정에 대해 이해하시고 그 상황들을 다 알고 계시구나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문제있는 가정들은 처음 세대에서 그 다음 세대로 계속 그 세대로 내려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럼 성경 말씀에서 몇가지 예를 보겠습니다. 사사기 11장 1~3절에 『길르앗 사람 큰 용사 입다는 기생이 길르앗에게 낳은 아들이었고 길르앗의 아내도 아들들을 낳았더라 아내의 아들들이 자라매 입다를 쫓아내며 그에게 이르되 너는 다른 여인의 자식이니 우리 아버지 집 기업을 잇지 못하리라 한지라 이에 입다가 그 형제를 피하여 돕 땅에 거하매 잡류가 그에게로 모여 와서 그와 함께 출입하였더라』고 했습니다.
길르앗은 문제있는 가정을 갖고 있었습니다. 아내가 있었고 아내는 길르앗에게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러나 길르앗은 기생과 관계를 가졌습니다. 그래서 그 기생으로부터 한 아들을 낳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기생으로부터 낳은 아들까지 합쳐서 모두 같이 살았습니다. 아들이 자라면서 본 부인의 아들이 기생의 아들을 거절하기 시작했습니다. 왜냐하면 기생의 아들이라는 이유 때문에. 그래서 입다는 집을 뛰쳐 나가 다른 곳으로 갔습니다. 그곳에서 잡류의 두목이 되었습니다. 훔치고 싸우는 그런 사람이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가족으로부터 거절을 당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그를 도와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들 변화시키셨습니다. 그러나 입다는 치유받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입다는 굉장히 용감한 사람이었습니다. 무엇이든지 싸워서 이길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이 입다에게 가서 우리를 위해 전쟁에 나가 싸워달라고 했고, 그는 이스라엘의 영웅이 되었습니다. 굉장히 용감한 용사가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입다는 어떻게 가정을 가져야하는지 몰랐습니다. 그는 결혼했지만 첫 딸이 굉장히 아름다운 딸이었습니다. 가족의 삶이 어떤 것인지 알지 못했기 때문에 입다가 성질 급하게 한 맹세를 하고 말았습니다. 그 맹세 때문에 외동딸이 죽어야만 했습니다.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계속 이어집니다. 입다가 문제 있는 가정에서 자라났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삭이 다른 예입니다. 이삭과 아내 리브가에게 문제가 있었습니다. 이삭은 한 아들을 좋아했고, 리브가는 다른 아들을 좋아했습니다. 두 아들을 같이 사랑하지 못했습니다. 굉장히 큰 문제였습니다. 만약 아버지가 한 아들을 좋아하고 엄마가 다른 아들을 좋아한다면 언제든지 가정은 나누이고, 많은 문제를 야기시킵니다.
이것이 어디서부터 온 것일까요? 이것은 이삭이 아주 어렸을 때부터 발생된 것입니다. 이삭의 아버지 아브라함으로부터 온 것입니다. 거기에 거절당한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선택받은 아들이 있었습니다. 이삭은 선택받은 아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삭이 알았던 것은 오로지 선택받은 아들이 어떤 것인가 하는 것밖에 몰랐습니다.
결과 이삭이 어떤 아버지가 되었는가 하면 ‘이것은 나의 아들이고, 내가 택했다. 그래서 이 아들만 사랑하겠다.' 이런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또 다른 예가 있습니다. 사무엘상 1장 1,2절에 『에브라임 산지 라마다임소빔에 에브라임에 사람 엘가나라 하는 자가 있으니 그는 여로함의 아들이요 엘리후의 손자요 도후의 증손이요 숩의 현손이더라 그에게 두 아내가 있으나 하나의 이름은 한나요 하나의 이름은 브닌나라 브닌나는 자식이 있고 한나는 무자하더라』고 했습니다.
제가 영국에서 초신자였을 때 사무엘상에 있는 이야기를 여러번 설교말씀으로 들었습니다. 이것은 사무엘이 어떻게 태어나고 어떻게 선지자가 되었는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설교하실 때 보통 1절과 2절을 많이 인용하셨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다른 해설을 붙이지 않는 것입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왜 그 사람은 아내가 둘있었죠"라고 물어보면 목사님은 대답하기를 “그냥 그때 전통이었어요. 죄가 아니예요.” 목사님께서 별로 그것에 대해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영국에서는 대부분 두 아내가 있다는 것에 대해 이해하지 못합니다. ‘이것이 아마 부정한 일인가? 성적인 죄인가?’ 하는 것에 대해서는 이해하지만 두 아내가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이해하지 못합니다. 굉장히 평범하지 않은 일입니다. 성경 시대에는 두 아내가 있다고 했는데 우리 중 어떤 사람은 머리에 마치 종이 울리는 것 같이 ‘아내가 둘이잖아?'라고 놀라실 분이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 중에 어떤 분은 아버님이 두 아내를 둔 분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결혼을 만드셨습니다. 모든 종류의 사람이 결혼할 수 있습니다. 크리스찬도, 모슬렘인도, 불교인도, 흰두교도인도, 믿지 않는 사람도 다 결혼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결혼은 하나님의 생각에서 나온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결혼을 고안하셨을 때는 그것은 하나님의 생각이었고 오로지 한 남자에 한 여자였습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결혼을 고안하신 의도셨습니다.
누가 자기 남편에게 두번째 아내가 있다는 것을 좋아할 사람이 있겠습니까? 아무도 그런 사람이 없습니다. 이것은 굉장히 스트레스 쌓이는 일이고,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제가 말레이지아에 있을 때 친구집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그곳은 시골에 있는 아주 조용한 곳이었습니다. 친구는 의사였고, 넷 집이 한 곳에 모여 있었는데 아주 아름다운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집 뒷 쪽에 이상한 소음이 있는 것입니다. 꼭 기계소리 같았습니다. 기분이 이상했습니다. 제가 말하기를 “무슨 소리야?” 그리고 이층으로 올라가 봤습니다. 거기에 조그마한 소녀 아이가 있었습니다. 그 아이는 중국 아이인데 아주 귀엽고 예쁜 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이 얼굴에는 표정이 없었고 정원에서 무릎을 꿇고 있었습니다. 아이의 엄마는 30세 정도로 아주 매력적인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가 엄마 앞에서 엄마의 얼굴을 바라보며 무릎을 꿇고 있었는데 엄마가 발을 들어서 아이를 발로 차고 넘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엄마가 발로 찰 때마다 그런 소리가 들렸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여자 아이가 넘어지고 난 다음 다시 일어나서 무릎을 꿇고 앉아 있어야만 합니다. 그러면 엄마가 다시 발로 차고, 아이는 넘어지고, 아이는 다시 앉고, 엄마는 다시 차는 이런 일이 계속 반복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엄마가 장난을 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찰 때마다 아이의 입에서 그런 소리가 났던 것입니다. 이런 일이 벌어질 때 어떤 남자가 집으로 들어왔습니다. 남자는 이 여자가 하는 일을 말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여자가 남자에게 돌아서더니 그 남자에게 소리를 지르는 것입니다. 여자가 남자를 비난하자 이 남자는 떠나버렸습니다.
제가 친구에게 저 집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물었습니다. 그 친구가 말하기를, 그 여자는 둘째 부인인데 그 남편은 점심 때마다 그 여인을 보러 오고, 밤이 되면 도시에 있는 첫째 부인에게로 간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여자는 말레이지아 사람이었지만 말레이지아어, 영어를 말하지 못하고, 중국말 만했습니다. 그래서 이 둘째 부인은 친구가 없었기 때문에 이 여자아이를 중국에서부터 여기까지 데리고 왔다는 것입니다. 이 여자에게는 이 중국 아이 밖에는 없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여자는 둘째 부인이었습니다. 누가 둘째 부인으로 있는 것을 좋아할 사람이 있겠습니까? 이것은 보통 사람에게는 아주 힘든 상황입니다.
이 경우처럼 엘가나에게는 두 아내가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두 아내를 어떻게 사랑해야 할지 몰랐던 사람이었습니다. 여기 보면 한나를 사랑했지만 어떻게 사랑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엘가나는 한나에게 많은 것들을 주곤했습니다. 그렇지만 이 사람은 한나의 진짜 필요가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한나가 기도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한나에게 아들을 주셨습니다.
사무엘은 엘가나의 아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엘가나는 한나에게 “당신이 아들을 낳아 주어서 너무 행복하다." 이렇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한나, 너가 하고 싶은 대로 이 아들에게 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한나가 이 아들을 성전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교회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한나가 말하기를 “이 아이를 하나님께 바칩니다."라고 했습니다. 한나는 사무엘을 돌보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도 돌보지 않았습니다. 제사장이 아이를 돌보았습니다. 엘리라는 제사장이었습니다. 엘리는 영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엘리도 어떻게 가족을 가져야 하는지 몰랐던 사람이었습니다.
2장을 보겠습니다. 11절, 12절에 『엘가나는 라마의 자기 집으로 돌아가고 그 아이는 제사장 엘리 앞에서 여호와를 섬기니라 엘리의 아들들은 불랑자라 여호와를 알지 아니하더라』고 했습니다. 엘가나는 그냥 집으로 갔습니다. 엘가나는 한나와 함께 아들 사무엘을 1년에 한번 방문했습니다.
이것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만약 여러분이 이런 경우라면 …. 만약 여러분의 부모가 여러분을 교회에 데려가서 목사님에게 말하기를 “목사님, 여기 제 아들입니다. 이 아이를 하나님께 바칩니다. 이 아이를 돌봐아주세요." 그리고는 부모님은 집으로 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1년에 한번 그 교회에 가서 여러분을 보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러면 좋겠습니까? 만약 그렇다면 여러분 마음 안에 고통을 느끼실 것입니다. 그리고 좋은 가정에 대한 어떤 개념이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12절에 보면 엘리의 아들은 불량자였고, 하나님을 알지 못했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게 바로 사무엘이 자라난 집의 가정 환경이었습니다. 엘리는 아주 아주 영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어떻게 아들들을 다스려야 하는지 몰랐습니다. 어떻게 아들을 사랑해야 하는지 몰랐습니다. 어떻게 하나님의 방법으로 살아가야 하는지 아들에게 가르칠지 몰랐습니다. 그것이 바로 사무엘이 자라난 가정 환경이었습니다.
8장을 보겠습니다. 1절부터 3절까지 보면 『사무엘이 늙으매 그 아들들로 이스라엘 사사를 삼으니 장자의 이름은 요엘이요 차자의 이름은 아비야라 그들이 브엘세바에서 사사가 되니라 그 아들들이 그 아비의 행위를 따르지 아니하고 이를 따라서 뇌물을 취하고 판결을 굽게 하니라』고 했습니다. 영적인 아버지, 나쁜 아들, 그것이 바로 같은 패턴을 따라가는 것이었습니다. 바로 엘리와 같은 패턴이었습니다. 엘리는 영적이었지만 나쁜 아들이 있었습니다. 사무엘은 아주 영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사무엘도 어떻게 그 아들들을 다스려야 할지 몰랐습니다. 왜냐하면 문제 있는 가정에서 사무엘도 자랐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문제있는 가정은 성경에서 굉장히 이해되어지고 있습니다.
오늘 밤에 모든 세세한 것들을 다 볼 시간은 없습니다. 그리고 역시 다윗도 그런 문제 가정에서 자란 사람이었습니다. 다윗은 가장 어린 막내 동생이었습니다. 사랑받지 못한 막내 아들이었습니다. 막내 아들이 양을 돌보도록 밖으로 내 보내졌습니다. 그것은 아들이 할 일은 아니었습니다. 이것은 종이나 할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가족들은 아주 부자였습니다. 그런데도 양을 돌보라고 다윗을 내보냈습니다.
이 시대에 양을 돌보는 사람은 양과 함께 잠을 자야 합니다. 밤에 집에 올 수 없습니다. 양들과 같이 2,3주 같이 보내야 합니다. 바로 다윗은 거절당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이 가졌던 가장 큰 문제 중에 하나가 다른 사람과 관계하는, 교제하는 그런 문제였습니다.
다윗은 노래를 아주 잘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다윗은 아주 강해서 곰이나 사자가 오면 싸워서 이길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정말로 사람들과 관계와 교제하는 데 있어서 문제가 있었습니다.
사무엘이 다윗을 왕으로 기름부었을 때 이것은 훌륭한 선택이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처음과 끝을 다 보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사무엘상 16장 7절 말씀에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 용모와 신장을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중심을 보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중심을 보셨습니다. 왜냐하면 다윗은 아주 아름다운, 순결한 그런 마음을 가졌습니다. 그렇지만 중심이 정말로 효과적으로 드러나기 전에 이것은 먼저 깨끗하게 순결하게 되는 과정을 거쳐야 했습니다. 그리고 다윗은 치유함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하나님은 마지막 결과를 보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그냥 현재만 보시지 않고 그 결과도 함께 보고 계셨습니다.
다윗은 한번 보십시다. 사무엘상 16장 12절 말씀에 『이에 보내어 그를 데리고 오매 그의 빛이 붉고 눈이 빼어나고 얼굴이 아름답더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이가 그니 일어나 기름을 부으라』고 했습니다. 바로 이것이 그의 외모였습니다. 남자의 외모가 어떤지, 빰이 붉고, 눈이 총명하고, 성경 말씀에 얼굴이 아름다왔다고 했습니다. 바로 핸섬한 젊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중심을 기억하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기름을 붓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다윗이 다른 직업을 갖게 되었습니다. 23절에 보면 『하나님의 부르신 악신이 사울에게 이를 때에 다윗이 수금을 취하여 손으로 탄 즉 사울이 상쾌하여 낫고 악신은 그에게서 떠나니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다윗의 두번째 직업이었습니다. 사울이 악신에 의해서 고통을 받을 때 다윗은 그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여러분, 이런 상황을 상상할 수 있겠습니까? 자, 여기 젊은 남자가 귀신 들려 화난 왕을 보아야 했습니다. 이 왕은 화가 나면 죽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수금을 들고 그 방으로 들어가서 두려워하면서 수금을 타야만 했습니다. 왕을 내내 지켜 봐야 했습니다.
17장 15절에 보면 『다윗은 사울에게로 왕래하며 베들레헴에서 아비의 양을 칠 때에』라고 했습니다. 다윗은 양치는 일과 두가지 일을 했습니다. 사람과의 관계는 전혀 없었습니다. 그리고 어떤 일이 일어났는데, 팔레스타인의 골리앗이라는 용사가 이스라엘에게 도전해 왔습니다. 굉장히 큰 사람이었습니다. 아주 거인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은 두려워하고만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결코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갑옷을 입으려고 했는데 갑옷이 맞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냥 돌만 들고 그 사람에게 갔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나아갔습니다. 다윗은 곰도 죽였습니다. 사자도 죽였습니다. 그래서 팔레스타인 거인은 문제가 없었습니다. 돌팔매로 거인을 맞추어 거인은 죽었습니다. 자, 어떻게 되었습니까? 새로운 영웅이 탄생했습니다. 이제 사울왕은 옛날 오래된 영웅이 되었습니다. 7절,8절에 보면 『여인들이 뛰놀며 창화하며 가로되 사울의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한지라 사울이 이 말에 불쾌하여 심히 노하여 가로되 다윗에게는 만만을 돌리고 내게는 천천만 돌리니 그의 더 얻을 것이 나라 밖에 무엇이냐 하고』라고 했습니다.
“사울의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이 말은 여인들이 도시로 나와서 템버림을 들고 춤추면서 노래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빰이 불고, 눈이 빼어나고 아주 잘 생긴 사람이었습니다. 아! 다윗, 새로운 영웅! 다윗은 아주 유명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어떤 사람이 다윗을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18:20에 보면 『사울의 딸 미갈이 다윗을 사랑하매 혹이 사울에게 고한지라 사울이 그 일을 좋게 여겨』라고 했습니다. 제가 초신자였을 때부터 미갈에 대해 많이 들었습니다. 제가 듣기를 미갈은 아주 좋지 않은 여자라고 들었습니다. 다윗이 성령이 충만해서 하나님 앞에서 춤을 출 때 미갈은 창문 밖으로 내다보고 멸시했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그것 때문에 미갈은 평생토록 아이를 낳지 못했습니다. 이것은 목사님이 우리에게 보통 설교하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성경에서는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정말 문제가 무엇입니까?
미갈이 나쁜 사람이고, 다윗이 나쁜 사람이고 하는 그런 문제가 아닙니다. 이 두 사람 결혼했죠? 그런데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사울이 화가 났습니다. 그래서 결혼한 초기에 미갈이 다윗을 보내야만 했습니다. 19장 11절부터 12절에 보면 『사울이 사자들을 다윗의 집에 보내어 그를 지키다가 아침에 그를 죽이게 하려한지라 다윗의 아내 미갈이 다윗에게 일러 가로되 당신이 이 밤에 당신의 생명을 구하지 아니하면 내일에는 죽임을 당하리라 하고 미갈이 다윗을 창에서 달아 내리우매 그가 도망하여 피하니라』고 했습니다.
미갈은 다윗을 사랑했습니다. 그래서 다윗을 보내주었습니다. 그리고 미갈은 화가난 아버지를 혼자서 대면해야 했습니다. 다윗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결혼 첫 해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사무엘상 25장 42,43절 『급히 일어나서 나귀를 타고 따르는 처녀 다섯과 함께 다윗의 사자들을 따라가서 다윗의 아내가 되니라 다윗이 또 이스르엘 아히노암을 취하였더니 그들 두 사람이 자기 아내가 되니라』고 했습니다.
다윗이 두 여자를 아내로 더 취했습니다. 그럼 미갈은 어떻게 된 것일까요? 44절에 보면 『사울이 그 딸 다윗의 아내 미갈을 갈림에 사는 라이스의 아들 발디에게 주었더라』고 했습니다. 미갈이 역시 다시 결혼했습니다. 이번에는 어떤 영웅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과 결혼했습니다.
사무엘하 3장에 보면, 사울이 죽자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윗에게 왕이 되어달라고 간청했습니다. 3장 13절에 보면 『다윗이 가로되 좋다 내가 너와 언약하려니와 내가 네게 한가지 일을 요구하노니 나를 보러올 때에 위선 사울의 딸 미갈을 데리고 오라 그렇지 않으면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라 하고』고 했습니다. 다윗은 지금 두 아내가 더 있고 미갈은 다시 결혼했습니다. 미갈은 지금 아주 행복합니다.
15절, 16절에 보면 『이스보셋이 보내어 그 남편 라이스의 아들 발디엘에게서 취하매 그 남편이 저와 함께 오되 울며 바후림까지 따라 왔더니 아브넬이 저에게 돌아가라 하매 돌아가니라』고 했습니다. 남편으로부터 미갈을 데리고 왔습니다. 미갈은 가기를 원치 않았습니다. 여기 말하기를 남편으로부터 데리고 왔다고 했습니다. 남편은 아내 미갈을 울면서 따라왔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미갈을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윗이 있는 곳에 가까이 왔을 때에 사람들이 남편에게 “가라 더 이상 미갈은 너의 아내가 아니다"라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렇지만 다윗은 정말 미갈을 사랑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5장 13절에 보면 『다윗이 헤브론에서 올라온 후에 예루살렘에서 처첩들을 더 취하였으므로 아들과 딸들이 또 다윗에게서 나니』 처첩들은 더 취했습니다. 그리고 더 많은 여자 친구들도 생겼습니다. 더 많은 아이들이 생겨났습니다. 다윗은 정말 어떻게 사랑해야 할지 알지 못했습니다. 오로지 정욕으로 사람들을 취하는 것만 알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미갈이 상처받은 여자가 된 것입니다. 미갈의 마음은 너무 너무 고통스러웠습니다. 이 받은 고통 때문에, 다윗의 마음도 역시 고통스러웠습니다. 왜냐하면 다윗도 많은 고통을 겪었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아주 나쁘고 못된 짓을 했습니다. 정말 많은 문제를 가졌습니다.
그러나 마지막에는 하나님께서 다윗을 자유롭게 하셨습니다. 왜 이런 실제 이야기들이 성경에 기록되어야만 합니까? 우리들에게 무엇인가를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께서 문제있는 가정을 이해하신다는 것을 보여주시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이 기록된 것입니다.
여러분이 다윗의 이야기를 보게 된다면 사무엘의 이야기를 보게 된다면 하나님께서 문제있는 가정으로부터 어떻게 우리를 구원하시고 우리를 치유하시고 회복시키시는 것을 여러분이 알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에게 소망을 주는 것입니다. 과거에 어떤 일이 일어났던지 간에 우리는 여전히 소망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진실한 것들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쉬는 시간 후에 문제 있는 가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문제들에 대해 더 보겠습니다. 그렇지만 쉬는 시간 전에 같이 기도하고 싶습니다. 계속해서 하나님께서 우리 삶에 치유함을 가져다 주시기 위해 기도합시다. 제가 심령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인데, 정말 여러분 마음 안에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사랑을 부어주시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대구에 사랑을 부어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제가 어디 가든지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정말 제 심령으로 느끼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 있는 모든 분들이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굉장히 갈망하고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삶에 깨어진 아픔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치유하시고 회복시키기를 원하십니다. 같이 기도합시다.
.....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다스리고 계셔서 감사합니다. 왕의 왕이시요, 주의 주이십니다. 그래서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왕이라고 선포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밤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구의 왕이라고 선포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찬양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위의 글은 예수전도단 가정 치유세미나 기간동안 크리슨 해리슨 목사님의 세미나 내용을 글로써 그대로 풀어놓은 것입니다.

거절감의 상처를 치유하기

목회자에게서 가장 많이 나타나는 것이 “거절”에 대한 두려움이다. 어디에서 목회를 할 때 교인들이 거절하지 않을까 결국에는 교회는 떠나야 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불안감을 가지고 있다. 필자가 알고 있는 한 목회자는 열심히 섬겨서 부흥하던 교회에서 거절을 당했다. 처음에는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았지만 차츰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었다. 경제적인 압박을 하기 시작하였고 끝내는 월급을 주지 않았다. 그것은 월급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목회자 존재 자체가 싫다는 반응이었던 것이다.

목회자는 자신이 거절당했음을 알아야 했고 그 교회를 떠나 개척교회를 했다. 하지만 “거절”에 대한 상처는 결코 회복되지 않았다. 교인들이 작은 권고 한마디만 해도 “저 사람도 나를 거절하려고 하는 구나”라고 괴로워하고 때론 공포에 시달리기도 하였다. 그는 그러한 상황에 대하여 부정적으로 대응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니까 목회를 열심히 하면 뭐해 또 이런 일로 쫓겨날 텐데...”하면서 교회 성장에 관심을 포기했다. 그리고 “나는 안 되...나는 또 거절 당할거야”라고 자기 연민에 빠졌다. 자신이 영원한 실패자임을 인정했다. 그리고 결코 자신에 대한 자신감을 회복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이 거절감은 그 교회로부터 받은 상처인가? 그렇지 않다. 이 상처의 골은 어려서부터 있었던 것이다. 이 목사는 동생을 편애하는 어머니의 양육을 받으며 자라왔다. 어머니는 언제나 동생에게만 관심이 있고 동생에게만 지대한 헌신과 사랑을 표현했다. 하지만 이 목사에게는 어디에서 무엇을 먹고 어디에서 자는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같은 학교를 다녀도 점심시간에는 가정부를 시켜서 동생에게 점심을 따듯하게 배달했다. 하지만 큰 아들은 도시락을 가지고 갔는지도 관심이 없었다. 여기서부터 상처는 시작된다. “나는 거부되었다.”

거절당한 사람들은 괜히 슬프다. 그리고 자기 연민에 빠져 산다. 한 사모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외모도 아름답고 마음도 착한 사모이지만 항상 “거절감”에 시달려 슬픈 인생을 살아와야 했다. 그는 언제나 인생을 “거절”이라는 기초 위에 세웠다. 교회에서는 교인으로부터, 사랑하는 사람에 대하여도 거절 받을 위기감으로, 자녀에 대하여도 거절당할 것이라는 슬픔을 안고 살아왔다. 슬프고 자신이 처량해서 어느 날은 이유 없이 울었다. 어디에 가도 자신은 없었다. 그리고 드러낼 수 없는 죄의식 속에서 자신을 학대하였고 나아가서는 자신에 대한 혐오감을 갖게 되었다. 이것은 본인뿐만 아니라 다른 가족들에게도 상처를 주었으며 본인은 각종 비난을 받으면서 활기, 원기, 의욕 등이 상실되고 실의에 빠져 살게 되었다.

그런데 이 사모는 내적치유세미나에서 “어머니의 태”안으로 다시 들어가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어머니의 태는 괴로운 곳이었다. 아무도 피해를 줄 수 없는 따듯하고 안전하고 평화로운 곳이어야 했지만 사모가 경험한 어머니의 태는 고통 자체였다. 그 사모는 그 태안에서 한쪽 구석에서 죽지 않으려고 두려워 떨며 웅크리고 있는 자신을 보았다. 왜냐하면 어머니가 53세에 임신을 하여 계속 태를 죽이려고 시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너 때문에 못살아...내가 부끄러워서 못살아..어서 죽어버리기나 해라”하면서 배를 치고 저주를 하고 어느 때는 높은 바위 위에 올라가 뛰어내려 유산이 되도록 시도하였다. 그렇게 해서 태어난 사모였다.

그 사모는 그 경험을 통하여 태초에 어머니로부터 거부당한 인생임을 알게 되었다. 그러한 거절감이 어디로부터 오는지 몰랐지만 하나님은 조명하여 주셨고 어머니로부터 임신되어서는 안 될 임신으로 철저하게 무시당하고 저주받고 거절당하였던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사모는 태어나서도 어머니의 부끄러움 인생에 가려 자신도 부끄럽고 태어나서는 안 될 존재라는 비난을 들으며 자라났던 것이다. 이 사모 역시 어머니가 학교에 찾아오는 것이 너무 부끄러웠다. 친구들은 “너의 할머니니”하고 묻곤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치유 과정을 통하여 어머니로부터 거절 받은 인생이지만 결코 하나님으로부터 거절 받은 것이 아님을 알게 해 주셨다. 모든 인생의 호흡은 주님 손에 있으며 주님이 철저하게 섭리하셨고 그 생명을 보호하여 주셨음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 사모는 태 안에서 웅크리고 무서워 떠는 작은 생명을 어루만지면서 당신의 품으로 빛가운데로 인도하시는 주님의 손을 보았다. 그리고 사모는 주님의 은혜를 체험하였고 더 이상 거절감으로 괴로워하지 않아도 되었던 것이다. 자신의 인생이 너무 귀하고 감사하게 생각이 되었다. 누구보다 더 철저하게 자신의 생명을 지켜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게 되었고 자신을 부끄러워하던 어머님도 마음 속 깊이 용서를 하였다. 현재 목회하는 남편을 도우면서 건강하게 생활하고 있다.

이제 이러한 거절감이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사단은 이러한 거절감을 극대화시켜 슬픔, 자기 연민, 자기 혐오, 낮은 자화상, 열등감, 의욕상실..등을 갖고 살게 하여 건강한 인생을 파괴한다. 이제 이러한 거절감과도 아름답게 작별하자...그리고 대신 그 강한 손으로 끝까지 붙잡아주시고 포기하지 않으시고 사랑하시는 주님의 품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 분이 베푸시는 은혜의 깊은 강으로 들어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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