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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절대긍정

시편 조용기............... 조회 수 1732 추천 수 0 2009.04.09 14:4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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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시23:4-6 
설교자 : 조용기 목사 
참고 : 2003년11월 30일 주일2부설교(여의도순복음교회)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찌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저는 여러분과 함께 ‘영원한 절대긍정’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죄, 유혹, 정욕, 탐심, 질병, 고통, 가난, 미움, 절망, 죽음 등등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이와같은 수많은 부정적인 환경속에서 성장하면서 자연적으로 부정적인 생각과 인격을 형성하게 되었습니다. 부정적인 사람이 되는데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자연 그대로 내버려 두어도 쉽게 부정적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긍정적인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마음에 결단과 부단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의 사람이 되고 하나님의 말씀을 갖게 되면 영원한 절대 긍정적인 삶을 살수가 있습니다.
시편 23편은 절대 긍정적인 사람이 되는 길을 우리에게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1.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체험

첫째로, 시편은 우리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의 체험을 다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생명에는 기쁨과 활기와 희망과 꿈과 행복이 따르지만 사망에는 슬픔과 무기력과 절망과 좌절과 불행과 고독이 따르게 되는 것입니다.
로마서 5장 12절에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고 말했습니다.
모든 사람이 사망 아래서 살고 있기 때문에 오늘 세상에는 슬픔이 꽉 들어차고 무기력, 절망, 좌절, 불행, 고독이 횡횡하고 있는 것입니다.
전도서 2장 22절로 23절에 “사람이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와 마음에 애쓰는 것으로 소득이 무엇이랴 일평생에 근심하며 수고하는 것이 슬픔 뿐이라 그 마음이 밤에도 쉬지 못하나니 이것도 헛되도다”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망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삶속에 넓은 들판을 걷고 평탄한 평지만 걸어가는 것이 아니라 음침한 골짜기를 지난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음침한 골짜기를 마귀의 습격이 있는곳, 으시시한 공포의 곳, 버림받은 곳, 피할곳이 없는 곳, 벗어날 힘도 방책도 없는 이와같은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때가 많습니다. 오늘날 경제적인 고통속에서 파산을 당하고 생활고에 허덕이며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얼마전에 강도를 하다가 잡혀온 사람의 말을 들으니까 부인은 만삭이 되고 먹을 것은 없고 직장은 잃고 할수 없어서 강도가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그것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는 동안에는 그는 버림받은, 피할곳이 없는, 벗어날 힘도 방책도 없는 절망 상태에서 강도로 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인간이 삶중에서 체험하는 최악의 어두운 곳이 바로 음침한 골짜기입니다. 이럴 때 사람은 삶의 의욕을 상실하고 타락을 하든지 자살합니다.
성경 시편 107편 10절로 11절에 “사람이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 앉으며 곤고와 쇠사슬에 매임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며 지존자의 뜻을 멸시함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작년 한 여론조사 결과 우리나라 성인 다섯명중에 한명은 자살충동을 느껴본적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자살 이유로는 경제적인 이유가 34%로 가장 많고, 다음이 고부갈등, 부부문제, 미혼자는 애인, 친구문제, 직장문제 순서로 자살을 하고 싶었다는 것입니다. 주부들은 절반 가량이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요즘 생활고나 성적비관으로 자살이 속출하고 있는 것을 보며 그 심정이 이해된다고 하는 사람이 국민중에 70%나 되는 것입니다. 지구촌 전체로는 40초에 한사람씩 자살을 합니다. 복지시설이 잘된 선진국에서는 주로 알콜중독, 가정불화, 무력감 때문에 자살합니다. 스위스는 매년 1,300여건, 홍콩은 1,100명, 일본에서는 90년대 이후 장기침체로 대량실업이 발생하면서 우울증에 시달리다가 자살하는 이가 하루에 평균 100명입니다. 자살율 세계 최고요, 정신질환수도 세계 최고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난다는 것은 어마어마하고 고통스러운 경험입니다. 그러나 주를 의지하는 사람은 이와같은 것들을 지나면서도 해를 두려워하지 아니할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는 희망을 잃어 버리고 큰 상처를 입고 제기불능이 된다고 생각하므로 극도의 불안과 공포에 시달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을 의지하는 사람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 처해 있더라도 두려워하지 않고 이를 이길수 있는 것은 사망보다 더 크시고 위대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두려움보다 더 위대하신 이를 우리가 확실히 알고 그를 모시고 있으면 두려움이 사방에서 오더라도 두려움보다 크신 이분앞에 두려움은 한길로 왔다가 일곱길로 도망치게 되는 것입니다.
요한1서 4장 4절에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저희를 이기었나니 이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이보다 크심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크고 작은 이가 부딪히면 큰이가 이기는 것입니다. 우리 속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보다 더 크고 위대하기 때문에 이길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18절에 “사랑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들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다고 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우리가 가슴에 받아 들이고 하나님의 은혜의 날개밑에 들어가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미국의 샌프란시스코 금문교는 1930년대 세운 세계에서 가장 높고 긴 교각을 가진 아름다운 다리입니다. 다리 위에서 아래쪽 바다를 내려다 보면 현기증이 날 정도로 높습니다. 이 금문교를 지을 때 많은 중국 노동자들을 불러다가 금문교를 지었습니다. 그런데 그 금문교를 짓는 동안에 많은 사람이 난간에서 떨어져 바다에 빠져 죽었습니다. 하다많은 사람이 희생을 당하기 때문에 할수없이 시에서는 막대한 비용을 들여 금문교 다리를 짓는 밑에 철망을 쳤습니다. 서커스 하는 사람밑에 망을 쳐놓고 서커스 하는 사람이 떨어지더라도 받아 주도록 그렇게 철망을 쳤습니다. 그리고 다리를 짓는데 희안하게도 철망을 쳐놓고 난 다음에는 한사람도 다리에서 떨어지는 사람이 없었다고 말한 것입니다. 똑같은 금문교 다리요, 똑같은 바다요, 똑같은 바람이 부는데도 철망을 치기 전에는 사람들이 종이장같이 떨어졌는데 철망을 치고 난 다음에는 난간을 유유이 걸어 다니면서도 떨어지는 사람이 없었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건 왜 그렇습니까? 마음에 안심을 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철망이 없을때는 ‘내가 떨어져 죽지, 떨어져 죽지’하고 불안과 공포심을 가지기 때문에 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철망이 있으니까 ‘떨어져도 나는 죽지 않고 산다’는 마음에 확신과 안심이 있었으므로 그들은 떨지않고 난간을 걸어 다녀도 헛발을 딛지 않은 것입니다. 우리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지라도 주님께서 우리와 같이 계시고 주의 능력의 날개아래 피하고 있다는 것을 믿고 알게 되면 마음속에 안심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눈에는 아무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고 내 앞길 칠흙같이 어두워도 주께서 나와 동행하시고 함께 계신다. 그러므로 나는 의지할때가 있다 할 때 마음에 안심이 되고 이 모든 좌절과 절망을 이길수 있는 힘이 생겨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다 부활했잖아요. 주님은 어떤 사망도 극복하시는 부활의 주님이신 것입니다. 죽음조차도 예수님을 막아 놓을수 없습니다. 사망은 그 음침한 골짜기가 예수님의 부활로 말미암아 광명한 천지가 되어 버리고 말은 것입니다.
요한복음 16장 33절에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이긴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동행하고 계신 것입니다. 빛이 어두움을 이기듯 예수님은 사망조차도 다 물리치고 이기신 것입니다.
요한1서 5장 5절에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뇨”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인줄 믿으면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가 되시고 예수님은 우리의 구주가 되시고 그 안에 있는 우리들은 사망의 세력조차 이길수가 있는 것입니다.
미국의 크리스탈처치 목사인 ‘로버트 슐러’ 목사님의 절대 긍정의 신조는 이렇습니다. ‘산이 앞에 가로막힌다 해도 나는 단념하지 않으리라. 나는 계속 도전하리라, 나는 산에 오르리라. 아니면 산밑에 터널을 파고 통과하리라. 아니면 하나님의 도움을 받아 그대로 산을 변화시켜 금광으로 만들어 버리겠다.’ 로버트 슐러 목사님은 절대 긍정적인 믿음을 가진 사람인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하여 죽으시고 부활하신 주님이시라는 것을 알고 예수님이 항상 같이 계신다는 것을 알면은 그리스도의 품안에서 우리는 어떠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도 능히 지나갈수 있고 헤를 두려워 하지 아니할 것입니다.
시편 91편 2절로 12절에 “내가 여호와를 가리켜 말하기를 저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나의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하리니 이는 저가 너를 새 사냥군의 올무에서와 극한 염병에서 건지실 것임이로다 저가 너를 그 깃으로 덮으시리니 네가 그 날개 아래 피하리로다 그의 진실함은 방패와 손 방패가 되나니 너는 밤에 놀램과 낮에 흐르는 살과 흑암 중에 행하는 염병과 백주에 황폐케 하는 파멸을 두려워 아니하리로다 천인이 네 곁에서, 만인이 네 우편에서 엎드러지나 이 재앙이 네게 가까이 못하리로다 오직 너는 목도하리니 악인의 보응이 네게 보이리로다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는 나의 피난처시라 하고 지존자로 거처를 삼았으므로 화가 네게 미치지 못하며 재앙이 네 장막에 가까이 오지 못하리니 저가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사 네 모든 길에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 저희가 그 손으로 너를 붙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리로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주님이 나의 피난처요, 요새요, 의뢰하는 하나님이 되시면 그가 여러분을 새 사냥꾼의 올무에서와 극한 염병에서 건지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1800년도에 6천명에서 만명이 모여서 예배 드리는 교회당을 짓고 인도한 영국의 위대한 목회자 스펄젼 목사님은 이런 체험을 말했습니다. 그가 목회할 그때에 영국에는 콜레라가 만연했습니다. 템즈강변에 가난한 사람들이 콜레라에 걸려 수없이 앓다가 죽었습니다. 그런데 당국에서 조차 겁을 내어 가지고서 콜레라 환자들을 돌보지 아니하고 죽은 시체를 끌어내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스펄젼 목사님은 자진해 가서 콜레라 환자들을 돌보고 기도해 주고 죽은 사람 시체를 끌어 내어서 화장을 하고 그렇게 하는데 너무나 지치고 스펄젼 목사님 자신도 하루에 콜레라에 걸려 버리고 말은 것입니다. 그는 온몸에 열이 확확나고 구토가 나고 설사가 하기 시작했습니다. 좌절하고 절망해서 ‘나도 이제 콜레라에 걸려서 죽는가 보다’하고 생각하고 한 콜레라 환자집을 심방하고 오는 중에 어느 조그마한 가게를 지나는데 가게 종이 쪽지가 바람에 휙휙 날리고 있거든. 그래서 그는 차를 세워서 내려 가지고서 그 종이쪽지를 보니까 이렇게 기록해 놓았습니다. “내가 말하기를 야웨는 나의 피난처시라하고 지존자로 거처를 삼았으므로 화가 내게 미치지 못하며 재앙이 내 장막에 가까이 오지 못하리니” 시편 91편 9절로 10절. 딱 적어 놓았다고... ‘아~ 하나님이 나를 절망에서 살리려고 이름도 모르는 이 가게 앞에 이러한 성경구절을 적어서 붙여 놓았구나. 그래서 그말을 읽고 자신의 영혼을 크게 흔드는 체험을 하고 그는 그 자리에서 눈물을 흘리며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이여, 야웨는 나의 피난처시며 내가 지존자로 거처를 삼았으므로 콜레라의 화가 내게 미치지 못하고 콜레라의 재앙이 나의 장막에 오지 못함을 믿습니다.‘ 마음이 뜨거워지고 눈물이 쏟아지더니만 그만 열도 뚝 떨어지고 구토도 나오지 않고 콜레라가 나아 버리고 말은 것입니다. 스펄젼 목사님은 이 놀라운 기적을 체험한 것입니다. 만일 스펄젼 목사님이 두려워하고 무서워하고 놀라고 떨었다면 그도 콜레라 환자가 되고 희생이 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여러분 주님은 우리에게 그냥 같이 계신 것이 아닙니다. 목자는 언제나 손에 지팡이와 막대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지팡이와 막대기가 없는 목자는 목자가 아닙니다. 목자는 양을 인도할 때 그 손에 항상 지팡이와 막대기가 있습니다. 주님의 지팡이는 건지는 도구입니다. 양이 올무에 걸렸거나 빠지면 주님께서는 그 지팡이로 건져냅니다.
시편 5편 8절에 “여호와여 나의 원수들을 인하여 주의 의로 나를 인도하시고 주의 길을 내 목전에 곧게 하소서”라고 말했고
시편 43편 3절에 “주의 빛과 주의 진리를 보내어 나를 인도하사 주의 성산과 장막에 이르게 하소서”라고 기도했으며
시편 107편 14절에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그 얽은 줄을 끊으셨도다”고 노래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지팡이를 가지고 여러분을 인도하며 여러분이 수렁에 빠졌을 때 건져 내는 역할을 하십니다. 막대기는 원수를 물리치는 도구입니다. 막대기를 가지고 원수가 오면 주님이 후려쳐서 원수를 물리치는 것입니다.
시편 121편 5절로 7절에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자라 여호와께서 네 우편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낮의 해가 너를 상치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 아니하리로다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케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키시는 하나님인 것입니다.
스바냐 3장 15절에 “여호와가 너의 형벌을 제하였고 너의 원수를 쫓아내었으며 이스라엘 왕 여호와가 너의 중에 있으니 네가 다시는 화를 당할까 두려워하지 아니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1967년 이스라엘과 아랍과의 6일 전쟁이 있었습니다. 병력면에서 열세인 이스라엘이 막강한 아랍을 6일만에 격파하여 세계 전쟁사에 경이로운 기록을 남겼습니다. 전쟁이 끝난후 한 기자가 이스라엘의 백인 총리와 인터뷰를 가졌습니다. “막강한 아랍을 이길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입니까?” 이스라엘 군대에서는 절대로 내려서 안되는 명령이 하나있습니다. 그것은 앞으로 가라는 명령입니다.“ ”그러면 도대체 무슨 명령을 내립니까?“ 기자가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며 묻는 질문에 백인 총리는 짤막하면서 단호하게 대답했습니다. ”나를 따라오라!“ 이스라엘의 장교는 절대로 밑에 있는 하사관이나 군인들을 보고 ”앞으로 나가라 는 명령은 안내립니다. 이스라엘 장교는 언제나 나를 따르라! 최전선의 앞에 서서 나가기 때문에 모든 군사들이 두말하지 않고 따라와서 전쟁에 이겼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것은 그들이 어디에서 전략을 배웠습니까? 우리의 목자되신 하나님! 우리 주 예수님은 결코 양무리의 뒤에서 채찍을 때려서 인도하지 않습니다. 주님은 지팡이와 막대기를 가지고 앞장서서 인도하여 가시는 것입니다. 양은 예수님을 바라보고 따라만 가면 되는 것입니다. 목자이신 예수님은 지팡이로 우리가 잘못가면 목을 걸어 당겨 주시고, 건져 주시고, 막대기로 원수를 치면서도 앞장서서 주님이 걸어 가시면서 ”나를 따르라. 나를 처다보고 따르라!“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주님을 섬기는 종으로 살 때 주님은 우리를 책임져 주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모든 환경에서 넉넉히 이기게 되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 35절로 39절에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기록된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하나님이 우리에 대한 사랑이 얼마나 끈질기고 크기 때문에 우주에 어떤 세력이 와도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들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사랑을 끊을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어마어마한 사랑을 가지고서 우리와 같이 계시며 사나운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 때 우리와 함께 하시고 지팡이와 막대기로 건지시고 싸워 주셔서 헤를 받지 않게 하는 하나님을 모시고 있으니 마음속에 여러분 긍정적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보고 어떻게 부정적이 될 수 있습니까?
미국 시사주간지 내셔널이코노미스트지에 도너츠의 세계적인 대명사인 ‘던킨도너츠’라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도너츠 회사의 설립자이자 회장인 빈 로덴버그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는 세 번이나 치명적인 암에 걸렸으나 하나님을 바라보고 긍정적인 생활태도를 통해서 암을 다 물리치고 세 번다 살아난 사실을 소개했습니다. 그는 85세까지 장수하다가 작년에 작고했는데요. 로덴버그 회장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누구나 긍정적인 사고방식과 믿음으로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가면 좋은 결과를 기대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이것은 각종 질병이나 시련과 가지가지 문제를 해결하는데 큰 도움이 됩니다. 나는 1971년에 폐암에 걸렸으나 절대긍정적인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나는 산다는 확신과 기도를 하고 긍정적인 마음으로 기뻐하며 견뎠는데 폐암이 낫고 말았습니다. 6년후에는 임파선 암이 걸렸으나 또다시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고 긍정적인 믿음을 가지고 십자가를 목에 걸고 감사와 찬양하고 기도하며 나는 암으로 죽지 않는다. 절대 산다는 긍정적인 믿음을 가지고 싸운 결과로 또 임파선 암에서 고침을 받았습니다. 1990년에는 고환암을 앓았는데 이것은 치명적인 암이라고 진단을 받았으나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고 치료받은 결과 그것도 나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막대한 재산을 환원하고 암퇴치에 앞장서게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무슨 일이든 긍정적인 마음의 믿음을 가지고 열심을 하면 당신의 삶은 가장 가치있게 될것입니다. 우리는 아버지 하나님이 계시고 우리를 위해서 몸을 찢고 피흘려 값주고 사신 끔찍한 사랑을 가진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고 있기 때문에 어떠한 환경이 다가와도 긍정적인 믿음을 가질수가 있습니다.”

2. 원수의 목전에서 상을 베푸심

둘째로, 성경은 원수의 목전에 진수성찬을 베푸시는 주님이라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원수가 멀리있지 않습니다. 원수가 집안 식구라고 예수님이 말했습니다. 사울은 그 사위 다윗과 싸웠습니다. 다윗의 원수는 바로 장인이 원수였습니다. 여러분 가인은 그 형제 아벨과 싸웠습니다. 바로 가인이 그 동생 아벨을 처죽였습니다. 스승과 제자간에 원수가 됩니다. 예수님은 스승이고 가룟유다는 제자인데 가룟유다가 스승을 죽는데 내놓았습니다. 민족과 민족, 나라와 나라 어느곳에나 원수는 있습니다. 원수가 없이 살려면 이땅을 떠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이땅에 있는 이상 가장 가까운 내 혈족으로부터 시작해서 이웃, 친족, 친지간 원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왜냐하면 마귀는 우리를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기 위해서 어느 사람에게나 들어가서 우리를 죽이려고 역사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항상 우리의 삶의 태도가 우리의 힘으로 원수와 싸우려고 하면 안됩니다. 바울선생은 말하기를 내가 산 것은 내가 아니요,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께서 내 안에 사시면 나의 주인은 내가 아니요, 예수님이 나의 주인입니다. 나는 하나님이 거하는 집이요, 하나님은 주인으로써 내 몸에 계시기 때문에 주인인 하나님께서 나를 돌보아 주시고 나는 주인을 섬기는 종으로만 살면 주인이 모든 삶을 책임져 주시는 것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자기 집의 주인이 되어 있기 때문에 자기집의 주인이 자기가 된다면 자기가 그집을 지키고 보호하고, 수선하고 돌봐야 되지 않습니까? 자기의 힘이 모자라면 자기 집을 지키거나 보호하거나 수선하거나 돌보지 못하잖아요. 그러나 우리의 성전 하나님의 집에 주인이 우리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님이 주인이 되시고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님을 섬기는 종이 된다면 우리 주인 되신 하나님께서 전지전능, 무소부지하신 능력으로 우리의 집을 보호하시고 지키시고 수선하시고 돌보아 주시니 집이 무너지지 아니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주인되신 하나님께서는 원수가 다가오면 원수의 목전에서 진수성찬을 베풀어 주겠다고 말씀한 것입니다. 다윗이 베푼 골리앗 상을 보십시오. 여러분 골리앗은 블레셋 군대의 장군이었습니다. 바로 블레셋 군대가 보는 앞에서 하나님은 다윗에게 능력을 주어서 골리앗의 목을 치고 진수성찬을 베풀었습니다.
사무엘상 17장 50절로 51절에 보면 블레셋 군대의 목전에서 골리앗 상을 베푸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다윗이 이같이 물매와 돌로 블레셋 사람을 이기고 그를 쳐 죽였으나 자기 손에는 칼이 없었더라 다윗이 달려가서 블레셋 사람을 밟고 그의 칼을 그 집에서 빼어내어 그 칼로 그를 죽이고 그 머리를 베니 블레셋 사람들이 자기 용사의 죽음을 보고 도망하는지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블레셋 원수 군대들이 목전에서 다윗에게 골리앗 진수성찬을 차려 주었습니다. 골리앗을 다윗은 쳐서 이겼기 때문에 온 이스라엘에 알려지게 되고 만성천자가 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은 것입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에게 베푸신 상을 보십시오. 느브갓네살 대왕의 목전에서 풀무불상을 베풀어 주신 것입니다. 느브갓네살 천하에 대왕이요, 공중에 나는 새도 명령으로 떨어 뜨리는 위대한 왕, 그 왕을 대적해서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왕의 명령을 거역하고 우상에 절하지 않았습니까? 왕은 진노해서 일곱배나 뜨겁게한 풀무불에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던져 넣었습니다만 하나님은 그 원수의 목전에서 진수정찬을 차려 주었습니다.
다니엘 3장 28절로 30절에 “느부갓네살이 말하여 가로되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을 찬송할찌로다 그가 그 사자를 보내사 자기를 의뢰하고 그 몸을 버려서 왕의 명을 거역하고 그 하나님 밖에는 다른 신을 섬기지 아니하며 그에게 절하지 아니한 종들을 구원하셨도다 그러므로 내가 이제 조서를 내리노니 각 백성과 각 나라와 각 방언하는 자가 무릇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께 설만히 말하거든 그 몸을 쪼개고 그 집으로 거름터를 삼을찌니 이는 이같이 사람을 구원할 다른 신이 없음이니라 하고 왕이 드디어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바벨론 도에서 더욱 높이니라”
느브갓네살이 아주 감탄했습니다. 세사람이 풀무에 던졌는데 네사람이 불풀무에서 춤을 추고 있었습니다. 그 네 번째는 하나님의 아들과 같이 보였다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이 뛰어 들어오신 것입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불풀무에서 나왔을 때 그는 묶어 놓은 밧줄만 타버렸지 머리카락 하나 타지 않고 옷하나 그슬리지 않았었습니다. 주님께서는 느브갓네살 대왕 목전에서 풀무불상을 베풀어 주신 것입니다. 오늘날도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 앞에 부르짖어 기도하면 하나님은 크고 비밀한 일을 나타내셔서 우리에게 원수의 목전에서 진수성찬을 차려 주시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33장 3절에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우리가 아는 것이야 우리가 해결할수 있지요. 우리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역사로써 원수의 목전에서 진수성찬을 차려 주겠다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2장 9절에 “기록된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고 말했었습니다.
눈에는 아무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소리 안들리고 마음에 생각도 못한 것을 주님은 이루어 주시는 것입니다.
원수의 목전에서 진수성찬을 베푸시기 때문에 원수가 오면 밥상도 오는 것입니다. 원수가 안오면 밥상도 없어요. 원수가 오면 주님이 원수의 눈앞에서 진수성찬 차리시고 자기 자녀들에게 먹이시고 힘을 얻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기름으로 머리에 바르셔서 높여 주시는 것입니다. 기름을 바른다는 것은 성령의 기름을 주셔서 능력을 주시고 높여 주심을 말합니다.
미가서 7장 8절에 “나의 대적이여 나로 인하여 기뻐하지 말찌어다 나는 엎드러질찌라도 일어날 것이요 어두운데 앉을찌라도 여호와께서 나의 빛이 되실 것임이로다”
여러분 하나님이 같이 계시면 엎드러져도 일어나고 어두운데 앉아도 하나님이 빛이 되어서 와서 계시는 것입니다.
시편 92편 10절로 11절에 “그러나 주께서 내 뿔을 들소의 뿔 같이 높이셨으며 내게 신선한 기름으로 부으셨나이다 내 원수의 보응 받는 것을 내 눈으로 보며 일어나 나를 치는 행악자에게 보응하심을 내 귀로 들었도다”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미국의 33대 대통령이었던 트루먼은 은퇴후 어느날 트루먼 기금 도서관에 들렀습니다. 마침 동네 초등학교 학생들이 와있다가 노인 대통령을 발견하고 “야~”하고 모여 들어서 대통령 주위를 감쌌습니다. “대통령 할아버지는 우리들 나이에 인기가 있었죠? 학교에서 반장을 하셨겠죠?” 트루먼 대통령은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면서 “정반대야, 나는 어려서부터 눈이 몹시 나빠 안경없이는 맹인과 같았단다. 재주도 없고 공부도 별로 잘하지 못하고 정말로 겁쟁이였단다.” 아이들은 뜻밖이라 놀라며 다시 물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대통령까지 되셨어요?” 그러자 트루먼씨는 차분한 음성으로 아이들을 둘러보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내안에 계시는 하나님이 나와 항상 함께 계시고 나를 도와 주시고 내가 힘에 겨워서 아무것도 할수 없을때에도 나에게 힘을 주신다는 성경말씀을 평생으로 믿었단다. 그래서 나는 무엇이든지 다 할수있다고 믿었단다. 하나님이 내 등뒤에 계시니까.” 트루먼 대통령은 제2차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끄신 위대한 대통령이었지만 그는 말하기를 ”나약하고 겁이 많고 사람들 앞에 나서기를 좋아하지 않는 성격이었지만 속에 계신 하나님이 도와주신다고 알고 긍정적인 믿음으로 고백했다“. 그는 대통령이 되고 미국을 구출할수 있었습니다.
우리 복음성가에 있지 않습니까? 나의 등뒤에서 나를 도우시는주, 평안히 길을 갈때는 보이지 않지만 지치고 곤하여 넘어질때는 다가와 손내미시네. 일어나 걸으라. 내가 새힘을 주리니. 일어나 너 걸으리 내가 너를 도우리 (아멘) 할렐루야~. 그 결과로 우리 하나님과 같이 있으면 잔이 넘칩니다. 잔이 넘친다는 것은 큰 기쁨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슬픔과 환난에 눈물을 주는 것이 아니라 기쁨을 주십니다.
시편 68편 19절에 “날마다 우리 짐을 지시는 주 곧 우리의 구원이신 하나님을 찬송할찌로다”
날마다 우리의 짐을 지어 주시는 주님이십니다.
시편 30편 5절에 “그 노염은 잠간이요 그 은총은 평생이로다 저녁에는 울음이 기숙할찌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
11절에 “주께서 나의 슬픔을 변하여 춤이 되게 하시며 나의 베옷을 벗기고 기쁨으로 띠 띠우셨나이다”
잔이 넘치게 해주시는 주님이신 것입니다.

3. 야웨의 집에 영원히 거함

셋째로, 성경은 우리의 미래에는 야웨의 집에 영원히 거하겠다고 말한 것입니다.
아무리 현실에 하나님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 같이하여 지팡이와 막대기로 나를 안위해 주시고 또 원수의 목전에서 진수성찬 차려 주신다고 해도 미래에 죽고 난 다음에 아무것도 없어 진다면은 얼마나 좌절과 절망이 다가오겠습니까? 그러나 우리의 미래는 야웨의 집에 영원히 거하겠다는 것입니다. 하루, 이틀 거하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야웨의 집에서 살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육신의 장막집은 병들고 쇠약해지고 무너집니다. 우리의 몸이 얼마나 오래 간다고 생각합니까? 우리도 소년시절이 있었고 청년의 아름다운 시절이 있었습니다. 장년의 활기찬 시절도 있지만은 쉬 백발이 되고 온몸엔 병들이 생겨납니다. 전문가의 말을 들으니까 사람은 35세부터 완전히 늙기 시작한답니다. 35세가 피크랍니다. 옛날에는 35세에 거의다 죽었답니다. 요사이는 음식이 좋고 약이 좋아서 몸에 염증이 생기고 고장이 생겨도 좋은 영양과 약을 통해서 35세를 극복하고 80세까지 살게 되었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80을 살고 90을 산다해도 사람이 한번나서 죽는 것은 정한 이치요, 죽고 난 다음에는 심판이 있는 것입니다.
시편 90편 3절에 “주께서 사람을 티끌로 돌아가게 하시고 말씀하시기를 너희 인생들은 돌아가라 하셨사오니”
안돌아갈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다 돌아갑니다. 이 자리에 앉은 여러분 우리들도 30년의 세월만 지난다면 거의 다 갈길을 가고 맙니다.
시편 103편 15절에 “인생은 그 날이 풀과 같으며 그 영화가 들의 꽃과 같도다”
히브리서 9장 27절에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가을이 와서 낙엽이 뒹구는 것을 보면 우리 마음에 감회가 깊습니다. 그렇게 여름철에 싱싱하고 푸르청청하던 나뭇잎이 이제는 울긋불긋 단풍이 들어 떨어져서 바람에 날려 갑니다. 그것을 볼 때 우리 인생의 종말을 우리도 가슴속에 느끼지 아니할 수가 없습니다. 너희 인생이 무엇이냐 잠시있다 사라지는 안개니라. 내일일을 자랑치 말라. 오늘 네게 어떠한 일이 일어날지 알지 못한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 세상 삶의 집도 그렇습니다. ‘아~ 나는 대통령이다. 나는 총리다. 나는 장관이다. 나는 회장이다. 나는 사장이다. 나는 이렇다’ 하고 으시댑니다. 세상집을 지어놓고 큰 소리 합니다. 바다에 가면 여러분 조그마한 바닷게가 모래안에 자기 집을 지어놓고 “아~ 내집이다. 내집이다.” 파도가 확 치밀어 오면 내집이 어디있습니까? 아무것도 없이 다 사라져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모래위에 지은집 바람이 불고 창수가 나면 부딪혀 무너지는 것입니다.
전도서 5장 15절에 “저가 모태에서 벌거벗고 나왔은즉 그 나온대로 돌아가고 수고하여 얻은 것을 아무 것도 손에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무엇을 안고 지고 갈수 있습니까? 빈손들고 가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7장 26절로 27절에 “나의 이 말을 듣고 행치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인생의 집은 육신의 집도 늙고 병들어 무너집니다. 세상에 지은 집도 다 무너지고 마는 것입니다. 성경에 시편 127편에 그렇게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숫군의 경성함이 허사로다”라고 말했습니다.
어느 시골 초등학교에 선생님이 애들을 데리고 소풍을 갔다가 점심을 먹고 난 다음에 자유시간을 주었습니다. 지금은 여러 가지 놀이가 많지만 우리 어릴때는 놀이가 없어요. 애들이 그때는 땅에 줄을 그려놓고 땅따먹기를 합니다. 가위, 바위, 보하고 땅을 따먹고, 가위, 바위, 보하고 땅을 따먹고. 그렇게 하다가 네가 내 땅을 많이 차지했다. 아니다. 나는 억지로 땅을 차지하지 안했다고 패싸움이 벌어졌습니다. 패싸움이 벌어져서 엉켜가지고서 멱살을 잡고 머리를 박고 치고 박고 야단입니다. 그런데 선생님이 호루라기를 ‘호르르르’ 불었습니다. 놀라서 처다보니까 “자~ 이제 한줄로 다서라~ 집으로 돌아가자” 털털 털고 줄을 서기 위해서 나오보니 뒤에 남은 것은 네땅도 내땅도 없고 모래땅만 남았습니다. 이땅에 우리는 땅따먹기를 하고 있습니다. 좀더 많은 땅을 따먹은 사람들이 좀 땅을 잃어 버린 사람도 있습니다. 요사이 정치권에도 여당과 야당이 땅따먹기 합니다. 대통령과 야당 당수도 땅따먹기를 해서 한분은 안내놓겠다고 하고 한분은 내놓으라고 금식까지 하고 앉아 있습니다. 주님이 호루라기를 불면 네땅도 내땅도 아무것도 없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 마음속에 아는 것이 지혜인 것입니다. 어디로 갑니까? 야웨의 집으로 가든지 영원한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여하든지 둘중에 하나를 택해야 됩니다. 우리 예수믿는 사람은 야웨의 집으로 가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장 1절로 3절에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예수님과 함께 영원히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계시면 그것이 천국인 것입니다. 그곳에 삶의 의미와 가치와 영광과 평안과 기쁨이 넘쳐나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영원히 야웨의 집에 있을 것을 생각할 때 기가 막히지 않습니까? 야웨의 집에 어떠한 일이 일어날 것이냐, 성경은 거기에서 조금만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21장 1절로 7절에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보좌에 앉으신 이가 가라사대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또 가라사대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 하시고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로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유업으로 얻으리라 나는 저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이것이 야웨의 집입니다. 우리 하나님의 집이요, 예수님이 2천년이 걸려서 예비한 아름다운 있을 곳입니다. 저 건너편 강언덕에 아름다운 땅이 있도다. 믿음으로 그곳에 가겠네. 주님이 황금종 울리면 우리 다 손 털털털 털고 눈물과 근심과 고통과 괴로움으로 얼룩진 땅을 뒤로 두고 아버지 집으로 가게 될것입니다. 얼마나 놀라운 희망입니까?

이 세상이 아무리 험하고 내 비록 아무리 약해도 주께서 지팡이와 막대기를 가지시고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나와 함께 계시고 해를 받지 않게 해주시고 원수의 무자비한 공격도 주께서 대신 싸우셔서 오히려 잔치상으로 만들어 기쁨이 넘치게 하시고 죽음이 오면 아버지 집으로 이끌어 주시니 어떤 절대절망이나 부정적인 세력도 이 막강하신 주님 앞에서는 빛앞의 어두움처럼 사라지고 영원한 긍정만이 우리에게 남아 있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어두움은 사라지고 빛만 있는 것입니다. 죽음은 사라지고 생명만 있는 것입니다. 고독은 사라지고 항상 주께서 목자로 계셔서 우리와 함께 계신 분만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부정은 없습니다. 죽으나 사나 긍정만 있을 따름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품에 품고 가시는 그길에 어떠한 부정적인 세력도 한길로 왔다가 일곱길로 도망치게 되실 것입니다.

사랑이 많으시고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에게 주신 그 놀라운 은총과 사랑에 감격하지 아니할수 없습니다.
야웨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저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저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계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니 주께서 원수의 목전에서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나의 평생에 주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아버지여 이 계시의 말씀을 우리에게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우리는 이 계시의 말씀을 가슴가득히 받아 들이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아버지를 우리 마음속에 주인으로 모시고 섬기는 종으로써 넘치는 기쁨과 소망과 긍정적인 삶의 자세를 가지고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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