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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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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별
J. A. Bakke, Holy Invitations,
최승기 역, ?거룩한 초대? (서울: 은성, 2007), pp. 397-431.
나는 반드시 내 마음의 움직임들에 주의를 집중하는 법을, 그 움직임들을 타인의 도움을 받아 현명하고 주의 깊게 살펴보는 법을, 그리고 그 움직임들을 계속 반복해서 시험해 보는 법을 배워야만 한다. 이 과정에서 나는 두 가지 어려운, 겉으로 보기에 양립이 불가능해 보이는, 태도들을 배워야만 한다. 나 자신과 나의 반응들을 신뢰하는 것이 그 하나며, 또 다른 하나는 나 자신이 얼마나 쉽게 미혹 당하는가를 인정하는 것이다. 분별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나의 경험 가운데 드러내 보이실 것이라는 사실을 믿는 것을, 그리고 그와 유사한경험들을 분별없이 쉽게 믿어버리는 경향성을 주의 깊게 경계하는 것을 필요로 한다. - 월리엄 베리(William Barry)1)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 12:2)
이것은 하나님의 영이 내게 말씀하신 것인가, 아니면 다른 어떤 것인가? 나는 어떤 방식으로 결정하는가? 하나님의 임재, 바람, 뜻에 대한 질문의 답을 찾는 것을 종종 분별이라 부른다.
분별은 수많은 아이디어들과 느낌들을 구별하여,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을 알아내는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우리는 성령께 깨어 있으면서 현재 발생하고 있는 깃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또한 하나님의 주도(initiatives)와 우리의 응답 사이에 존재하는 크고 미묘한 차이들을 감지할 필요가 있다.
우리의 분별 능력은 관찰하려는 자발성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우리의 삶을 면밀히 살펴보면, 우리는 끝없이 밀려오는 자극의 물줄기 중 그 일부분에만 의식을 집중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우리들 중에 내적 경험들보다 외적인 대상, 관계, 경험들을 보다 쉽게 알아차리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내적인 문제에 먼저 주의를 기울이는 사람들도 있다.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지는 모든 정보에 동등한 주의를 기울일 수는 없다. 특정한 시간에 실제로 벌어진 일 안에는 우리가 그 일에 관해 인식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들이 내포되어 있다. 우리가 지각하는 것들 중에는 일정 시간 동안 우리의 에너지와 주의를 끄는 것들이 있는가하면, 그냥 배후에 머무르는 것들도 있다. 그러나 중요한 인간관계와 같은 것들은 수년 동안 우리의 에너지와 주의를 끌어당긴다.
앞에 언급한 내용이 특별히 새롭거나 놀랄 만하지는 않지만, 그것은 우리가 얼마나 많은 것들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는지를 깨닫도록 도와준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스쳐지나가듯 감지한 것은 무엇이며, 의도적으로 주의를 집중한 것은 무엇이며, 무시한 것이 무엇인가를 알아차리도록 도와준다. 우리의 생각, 행동, 경험을 더욱 자세히 살펴보면, 우리가 그동안 얼마나 많은 정보를 알아차리지 못했는가를 깨닫고 놀라게 된다.
보다 의도적으로 우리의 삶을 살펴보면 우리의 마음과 정신에 떠오르는 것들이 모두다 자신에게서 기원(起源)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비록 많은 생각과 태도들을 우리의 것으로 쉽게 단정하지만,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기대한 것보다 훨씬 더 깊은 긍휼이나 은혜를 우리 안에서 발견하기도 한다. 또 정반대로, 나 자신의 비열함보다 더욱 비열한 어떤 것을 인식하기도 한다. 우리는 이러한 것들이 우리 자신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하게 안다. 그것들은 다른 근원에서 유래했다. 최선의 인식과 응답을 하지 못하도록 우리를 미혹하는 악한 근원에서 유래한 것들을 의심하도록 성령께서는 우리를 자극하고 불안하게 반드신다. 이러한 성령의 활동을 알아차린다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우리는 우리의 태도들, 의견들, 그리고 행동들의 참된 근원을 이해하고 알아차릴 수 있기를 원한다. 분별의 연습이 그것을 도와줄 수 있다.
성경 말씀과 같은 외부적 자료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의사소통을 발견하든, 아니면 우리의 기도를 관찰하고 성찰하는 것과 같은 내부적 자료를 통해서 하나님의 의사소통을 발견하든, 우리와 하나님의 관계의 분석은 그것과 상관없이 우리의 마음 안에 존재하는 소란스럽고 시끄러운 환경에서 이루어진다. 때때로 내부와 외부로부터 주어지는 연속적인 자극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임재, 은혜, 그리고 말씀을 발견한다는 것은 지난 한 과제처럼 느껴진다. 우리의 마음에서 떠오르는 것들을 인식하는 데 점차 익숙해짐에 따라 우리가 인식하지 못한 것들이 너무도 많음으로 인해 성령께서 말씀하신 것을 쉽게 놓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동시에 우리는 성령의 직접적인 자극과 초대에 바르게 응답한 경우도 많다는 것을 발견한다. 분별을 지속적으로 시행하면, 우리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경청할 수 있는 우리의 능력을 더욱 신뢰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무엇보다 먼저 우리는 분별의 두 영역을 고찰할 필요가 있다. 분별의 첫 번째 영역은 영적 경험들이다. 즉 영적 경험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인지의 여부를 분별하는 것이다. 두 번째 영역은 분별의 시행 방식들이다.
분별과 하나님 체험
"하나님이 이르시되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또 이르시되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출 3:5-6)
"내가 아직 너희와 함께 있어서 이 말을 너희에게 하였거니와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 14:25-27)
비록 불타는 떨기나무 가운데 계신 하나님을 보지는 못했을지라도, 당신은 하나님을 만났다는 느낌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당신이 하나님을 만나고 있다는 것을 확신했을 때의 경험을 생각해 보라. 당신이 그러한 경험을 많이 했다면, 지금 주의를 집중해야할 필요가 있는 경험이 그중 어떤 것인가를 하나님께 여쭤 보라. 그것은 바로 당신이 하나님을 향해 생동감을 느끼고, 성령의 음성을 경청하기 위해 마음을 개방한 때임에 틀림없다. 그것은 최근의 경험일 수도 있고, 상당히 옛날의 경험일 수도 있다. 잠시 멈춰서, 어떤 것을 고찰하고 싶은지를 곰곰이 생각해 보라. 그후 고요한 가운데, 당신이 선택한 경험에 근거하여 당신과 하나님과의 관계가 어떠한지, 그리고 그 관계의 특질들이 무엇인지를 성령께서 보여주시도록 간구하라. 당신의 경험을 기도하는 마음으로 살펴본 후, 다음의 질문에 답하여 보라.
1. 당신은 그 하나님 체험을 어떻게 묘사하겠는가?
2. 당신은 어떻게 느꼈는가?
3. 좋게 여겨지는 것은 무엇인가? 그 체험의 어느 부분에서 두려움을 느꼈는가? 그 체험은 무엇과 같았는가?
4. 당신이 선택한 그 체험의 질, 특징, 맛들을 당신은 어떻게 묘사하겠는가? 그 체험에서 하나님은 어떤 분과 같았는가? 당신은 누구와 같았는가?
5. 그 체험의 단기적인 그리고 장기적인 결과들은 무엇이었는가?
6. 그 체험이 제기하는 질문들은 무엇인가?
하나님과 함께 우리 자신의 역사를 살펴보는 것은 추후에 발생될 경험들의 진위를 분변하는 데 도움을 준다. 참됨이 입증된 하나님 체험은 계속해서 일어날 하나님 체험들의 진위를 판별하는 하나의 기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체험이 어디에서 기인한 것인지, 그 순간 우리의 마음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그 체험은 우리의 기도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를 반드시 물어야만 한다. 우리는 특정한 체험이 우리의 태도와 일상생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흐리고 계속 진행될 하나님과의 관계에는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인지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어떻게 타인에게 반응하고 있는가? 우리는 체험으로부터 흘러나온 은총이나 변화들을 어떻게 묘사하는가?
어떤 사람의 체험이 참된 하나님 체험이라면, 거기에는 참된 하나님 체험임을 규정짓는 특징들이 내포되어 있다. 그 특징들은 삶의 치미 있는 통합을 창출하며, 자신이나 타인을 위한 좋은 열매를 맺으며, 자신에게만 몰두하는 경향성을 약화시키는 것들이다.2)
그러나 하나님과의 만남에 대한 즉각적 반응은 그와 같지 않을 수 있다. 우리는 당혹감과 혼란스러움을 느낄 수 있으며, 심지어 그 경험이 긍정적이었다는 확신이 서지 않을 수도 있다. 우리는 상상을 초월하는 사랑을 인식할 수도 있나. 우리의 통상적인 자아 인식과 개인적인 경계선은 그 순간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이것은 우리를 당황하게 한다. 그래서 우리는 자기 몰두, 자기 보호, 그리고 그 체험의 분석에 빠져들 수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함을 경외하는 상태에 거하거나, 그동안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방식으로 온전함을 경험할 수도 있다. 우리는 거룩한 분이신 하나님과 교제하기에는 우리 자신이 너무도 보잘것없게 느껴져서 숨고 싶어 할지도 모른다. 왜 하나님께서 특정한 방식들을 사용하여 우리에게 나가오시는지, 혹은 웨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는지를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알 수 없을 때가 있다. 그 기간은 몇 날, 몇 달, 심지어 몇 년이 될 수도 있다. 우리의 하나님 체험이 위의 어떤 경우에 해당하든지와 관계없이 기도, 성경연구, 홀로 있음, 영성일지 작성을 통해서 얻게 된 우리의 체험에 주의를 집중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또한 영성지도자나 신뢰할 수 있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우리의 경험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 한다. 하나님과의 만남들이 우리를 깜짝 놀라게 하거나 당혹하게 만드는 새로운 시야들을 제공해 줄 때 조차도, 그 만남들은 하나님을 보다 더 깊이 만나길 원하는 간절한 열망을 우리 안에 불러일으킨다. 우리는 하나님과 궁극적인 사랑의 관계 안에 거하도록 창조되었다. 그것 외에는 그 어떤 것도 우리의 영혼을 만족시킬 수 없다. 우리의 경험을 고찰할 때, 우리는 자신의 "영적 지문"(spiritual fingerprints)에 관해 배울 수 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창조하셨는지를 깨닫게 되며, 점점 우리의 역사와 문화의 방해를 덜 받게 된다. 이전에 경험했던 것과는 다른 하나님 체험을 할 때, 우리는 질문을 하게 된다.
참된 하나님 체험은 종종 연달아 이어지는 질문을 야기한다. 또한 그것은 우리가 이해했던 하나님 보다 더 크신 하나님을 일견(gllmpse)한 경험을 남긴다.
분별의 방식들
우리의 분별 방식들을 성찰함에 따라, 우리가 어떻게 실제적으로 결정과 행동에 도달하게 되는지를 발견할 수 있다. 우리를 인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기 위해 우리가 하는 일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초대와 안내를 듣고 보기 위해 노력할 때, 우리가 실제적으로 하는 일은 무엇인가? 때때로 우리가 했다고 생각하거나 말하는 것이 실제로 행했던 것과 다르다는 것을 발견하고 우리는 놀란다. 이것 자체가 나쁘거나 혹은 좋거나 하지는 않지만, 대신 우리에게 교육적인 정보를 제공해 준다.
우리들 대부분은 스스로 선호하는 익숙한 분별의 방식들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그 방식들을 거의 자동적으로 사용한다. 그것들은 성경을 읽는 특정한 방식, 의논할 수 있는 신뢰할 만한 사람을 찾는 것, 혹은 조용히 피정을 갖는 것 등을 포함한다. 우리는 이러한 방식들이 만족스러웠기 때문에, 그것들이 모든 경우에 다 적합한지 혹은 하나님께서 그것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를 탐구하려고 하지 않는다. 우리는 크고 작은 기회들이 주어졌을 때, 분별의 방식에 관해 기도하는 것이 익숙하거나 혹은 익숙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신앙의 여정을 걸어가는 동안 다양한 사람들, 정황들, 경험들을 사용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분별하기를 성령께서 원하신다는 것은 분명하다. 우리는 다음의 기도를 계속해서 드려야 한다. "하나님의 영이시여, 제가 어떻게 분별하기를 원하십니까?"
크리스천들은 상당히 폭넓은 다양한 분별의 방식들을 사용해 왔다. 그것들 모두는 하나님께 열린 마음으로 기도하는 것에 중점을 둔다. 그러한 방식들에는 성경 읽기, 가르침, 예배, 기도, 금식, 타인과의 컨설팅, 하나님에 대한 우리 자신의 느낌, 침묵, 독거, 그리고 성찬 등이 포함된다. 자기 집착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운 상태에서 하나님을 경청하고 따를 수 있도록 우리를 일깨울 수 있는 것이라면, 그 어떤 것이나 분별을 도와줄 수 있다.
분별은 하나의 삶의 중요한 방식이 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분별은 늘 하나님께로 향하는 습관, 그리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경청하려는 습관이 될 수 있다. 이 점에서 분별은 신앙생활과의 분리가 불가능하다. 그러am로 신앙생활과 분리된 채로 분별을 탐구하는 것은 어렵다. 그리고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을 찾고자 할 때, 그들이 실행하는 행동들을 결정하는 분별의 방식(practice)이 있다.
우리의 분별의 방식들이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도록 우리를 계속해서 돕는다면, 우리는 다른 방식들을 탐구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때때로 우리는 과거에 좋은 결과를 도출했던 방식들을 사용하여 성령의 인도하심을 감지하려고 노력 했음에도 불구하고 만족할 만한 결론을 얻지 못할 때도 있다. 그러면 우리는 하나의 특정한 분별 방식에 너무 지나치게 의존해 온 것이 아닌지, 그리고 우리가 의식하지 못한 채 하나님보다는 방식을 더 신뢰한 것은 아닌지를 질문하게 된다. 분별을 배울 수 있는 모든 기회들은 우리의 주의를 하나님의 영을 철저히 의지하는 데 집중하도록 요구한다. 우리는 종종 우리가 하나님과의 열려진 관계, 즉 판에 박힌 것과 같은 형태로 축소될 수 없는 관계 안에 있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분별의 요소들
비록 분별의 방식이 유일하지 않고 우리가 특정한 경우를 위한 하나님의 뜻을 의도적으로 구하지만, 분별의 과정에는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요소들이 있다.
의도적으로 하나님의 영이 우리에게 말씀하시도록 초대하는 것.
성령의 의도를 정확하게 감지하여 해석할 수 있는 은혜를 구하는것.
분별을 구조화하기 (이번 분별 과정의 초점은 무엇인가? 우리는 무엇을 추구하고 있는가?)
성경, 기도 정보를 모아 평가하는 다른 도구들을 사용하는 것.
분별의 전 과정에 걸쳐 계속해서 기도하기.
잠정적인 결론에 도달하기
그 결론을 시험하기.
결정에 근거하여 행동하기, 그리고 드러나는 것을 인지하기.
삶의 정황과 선호하는 방식 때문에 이러한 요소들이 다양한 순서로 등장하기 한다. 예들 들면 우리가 의도적으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요청하기 전에, 분별의 초점이 분명해질 수도 있다. 혹은 분별의 과정을 밟아가는 것이 현명할 것이라고 결정하기 전에, 우리는 질문을 고찰하여 잠정적 결론에 도달할 수도 있다. 때때로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이 자료에 내포되어 있다는 것을 이해하기 전에, 우리는 다양한 근원으로부터 자료를 입수한다. 종종 분별은 고정 된 순서대로 시작되지 않는다. 분별의 필요성은 삶과 삶의 도전들의 흐름의 자연스런 결과로 생겨난다. 알 수 없는 어느 시점에, 우리는 하나님의 시각과 인도하심에 대한 우리의 갈망을 인지하여 분별의 과정에 참여하게 된다.
분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요인들
분별의 필요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분별을 필요로 하는 어떤 상황들, 즉 인생의 반려자나 직업을 선택하는 것과 같은 상황들은 다른 상황들보다 더욱 중요하다. 이와 같은 인생의 주요한 선택들은 우리 삶에 큰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어떤 선택이 종국에 가장 중요한 것으로 판명될 것인지를 판단하는 것은 종종 우리 능력 밖의 일이다.
선택에 직면했을 때, 우리는 종종 직접적이고 즉각적인 반응을 한다. 왜냐하면 요구되는 것이 무엇인지가 분명하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가 매우 쉽게 결정을 내리는 것을 보고 스스로 놀란다. 우리가 분별의 과정에 대해 생각하기도 전에, 모든 것이 처리된다. 이처럼 명확한 선택은 하나의 신적 선물이다.
우리가 장점과 단점을 모두 지닌 두 가지 좋은 안을 놓고 선택해야하는 상황에 직면했을 때, 우리는 종종 하나님의 뜻을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 더 많은 도움을 얻기 원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보다 명확하게 파악하길 갈망한다.
애매한 상황에서 하나님의 뜻을 인지하여 따르는 우리의 자유를 훼손시킬 수 있는 요인들을 보다 예민하게 인식하게 된다. 우리가 두려워하는 것이든 바라는 것이든 그 무엇이나 우리를 어긋나게 할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우리는 우리의 두려움과 바림들이 무엇인지를 지칭하고, 성령의 인도를 감지하도록 도전 받는다.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자신의 뜻과 하나님의 뜻을 놓고 씨름한 것이 진퇴양난의 한 예이다. 우리 역시 종종 하나님의 길과 우리의 개인적 선호 사이에서 선택해야만 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과 신실하심을 신뢰하도록 돕는 것에 주의를 기울임으로써, 그리고 우리의 두려움과 바람들을 인식함으로써 분별의 과정을 도울 수 있다. 우리는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내길 원하며, 관찰한 것들을 가지고 기도하길 원한다.
때때로 우리는 중요한 정보를 숨기는 경향이 있다. 다음의 요인들은 분별에 영향을 미치는 자발성의 측면을 지적한다. 이 특징들을 읽고 나면, 분별을 위한 우리의 자유, 즉 하나님을 청종하는 우리의 자유에 중요한 것들이 무엇인지 알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선하심과 관대하심을 신뢰하는 자발성.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신다. 하나님은 당신이 하나님만을 위해서 뿐 아니라 당신을 위해서도 최선의 길을 선택하기를 윈하신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불가능한 과제를 우리 홀로 떠맡도록 하지 않으셨다는 사실을 재차 확신시켜 주시길 간구한다(우리의 두려움 중 더러는 성령의 임재, 혹은 하나님의 돌보심과 인도하심을 의심하는 것으로부터 파생된다). 우리의 결정이 자신이나 타인들에게 파괴적이지 않을 것이리라는 확신을 성령께로부터 얻기 원한다. 우리는 분별의 과정 가운데 발생하는 모든 것들 안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발견할 수 있는 은혜를 위해 기도한다.
치러야 할 대가가 무엇이든지 간에 하나님의 길을 따르려는 자발성.
하나님을 경청하고 따르는 우리의 헌신의 정도를 설명할 때는 솔직한 것이 중요하다. 때때로 우리는 하나님의 관점을 듣기 원하지만, 성령께서 보여주신 것을 가지고 무엇을 할 것인지에 관해서는 확실하지 않을 수도 있다. 우리를 주저하게 만드는 이유에 대해 우리는 솔직하길 원한다. 우리가 보다 더 자발적이 되기를 원하는지에 대한 확신이 없을 때조차도,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태도를 더욱 부드럽게 만들어 주시길 간구할 필요가 있다.
진실하기를 원하는 자발성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진실하기를 원하신다. 우리가 실제로 생각하고, 느끼고, 믿고, 바라고, 두려워하는 것을 솔직하게 말하기를 하나님은 원하신다. 그것들이 설령 우리에 대해 무엇을 드러내든지 상관없이, 하나님은 우리가 솔직하길 원하신다. 가령, 나는 인내하고 싶어 한다. 내가 생각하고 느끼는 것을 그대로 드러낼 때 나는 종종 나 자신, 타인들, 그리고 하나님께 무척이나 성급한 내 모습을 보게 된다. 내가 솔직할 때, 하나님께서는 내가 무시하고 싶어 하는 것들을 열어 보여주신다.
우리 자신의 웰빙에 대한 감각을 인지하는 자발성
우리의 의사 결정 능력은 굶주림, 분노, 외로움, 질병 혹은 피로에 의해 강하게 영향을 받는다. 우리가 그러한 상태들을 경험할 때, 훨씬 여유로운 상태에서 새로운 조건들을 검토할 수 있게 되기 전까지 이전의 결정을 유지하는 것이 현명하다.
우리의 선호도를 인지하고, 그에 관해 기도하는 자발성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조건들이 무엇이며, 우리의 선호도가 무엇인지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두려움과 바람들 중 어떤 것이 우리의 판단에 영향을 주고 있는지에 대해 숙고할 필요가 있다.
분별의 단 한가지 방식에만 의존하지 않으려는 자발성
우리는 특정한 상황에 적합한 분별의 방식이 무엇인지를 하나님께 물을 필요가 있다. 가령 피정을 하는 것, 타인에게 조언을 구하는 것, 가능한 대안들의 목록을 기록해 보는 것 등등에서 어느 것이 적합한 방식인가를 하나님께 물어야 한다. 구체적인 기회나 분별의 과정을 통해서 성령께서 우리에게 배우도록 요청하시는 것은 무엇인가? 이에 대한 대답이 이 질문의 유일한 결과물은 아닐 것이다. 우리는 질문의 답을 추구하는 과정 자체를 통해 하나님을 더욱 신뢰하게 된다.
한 원천에만 매달리지 않고 다양한 정보에게 개방되려는 자발성
분별의 질문에 대한 답변은 예상하지 못했던 원천에서 나올 수도 있다. 주어진 분별의 주제에 대한 정보를 충분히 갖지 못한 아이나 어른은 단순히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대답을 제시할 것이다. 성령께서는 다양한 정보를 통한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우리들이 개방되어 있기를 원하신다.
능동적이거나 수동적이 되려는 자발성
우리는 모든 적절한 정보의 취득을 간절히 바란다. 그러나 때때로 하나님은 우리가 능동적으로 행동하기보다 기다리기를 요청하신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와 타인에게 속한 정보가 무엇인지를 드러내 주시도록 기도할 필요가 있다. 모든 사람들에게 속한 것으로서 함께 나눌 필요가 있는 것은 무엇인가? 하나님께 속한 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
대면하려는 자발성
하나님의 마음과 생각을 분별해 감에 따라, 우리는 불유쾌하고, 불편하며, 원치 않는 정보들을 계속해서 언급해야할 필요가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이 분명해지기 전까지 이러한 과정을 계속할 필요가 있다.
기다리라는 응답을 받아들이라는 자발성
"예"나 "아니요"라는 응답의 시기가 무르익었다고 생각할 때, 혹은 재정적 고려사항들, 일의 환경들, 관계들 때문에 응답해야 하는 압박감을 느낄 때, "기다리라"는 음성을 듣는 것은 힘든 일일 것이다.
행동의 과정에 대한 분명한 이해를 하기까지 요구되어지는 시간은 얼마든지 드리겠다는 자발성
마감시한에 쫓기게 되면, 우리는 그것에 대해 기도하게 된다. 때때로 우리는 최선이라고 여겨지는 것을 따라 행동할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서, 만일 하나님의 뜻이 우리가 선택한 것이 아니라면, 성령께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 보이실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행동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성경을 최상의 권위로 삼으려는 자발성
우리가 생각한 해결책은 그 무엇이나 성경과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그러면 우리의 해결책은 하나님의 의도와 조화를 이루게 될 것이다.
계속해서 기도하려는 자발성
분별을 함에 있어서 우리는 우리의 느낌이나 생각과 상관없이 계속해서 기도해야 한다. 불편함을 느끼는 잠시 동안 우리는 기도를 쉴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의 근본 태도는 다음과 같아야 한다. "하나님, 제가 비록 도망가더라도 다시 돌아올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그러고 싶지 않을 때라도 당신께 돌아올 것입니다. 저는 계속해서 당신과 진실한 의사소통을할 것입니다. "하나님께 되돌아갈 수 있기 위해서 우리는 때때로 홀로 있는 시간을 필요로 한다.
그룹분별에서 사용되어질 수 있는 과정을 이해하려는 자발성
그룹에서 각 개인은 특정한 분별 과정에 참여할 것인지의 여부를 결정할 필요가 있다. 각 개인은 조종되지 않은 채 자유롭게 결정을 내려야만 한다.
위에 언급된 것을 통해서 분별의 작업을 해나갈 때, 다양한 생각들과 느낌들이 자극되어 떠오르게 될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러한 과정을 통해서 많은 정보를 모은다. 어떤 특정한 생각들이나 감정들로 인해 우리 자신이나 타인을 판단하는 대신에, 우리가 얻은 정보를 기도로 가져가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는 자신이나 타인을 강요하여 변화시키려고 하지 않는다. 우리 자신의 참된 견해와 반응에 따르길 원하며, 또한 하나님께서 이 모습 이대로의 우리 자신과 함께 분별의 과정에 참여해 주시길 원한다. 하나님께 대한 개방성은 성령의 음성을 경청하는 우리의 능력과 하나님께 순종하는 우리의 용기를 훼손시킬 수 있는 많은 것들을 인식하여 방출하도록 돕는다.
로욜라의 이냐시오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 개발해야할 다섯 가지 추가적 영역에 관해 기술했다.
1 . 내적 자유
우리는 내적 자유를 개발해야만 한다. 그래서 부, 명예, 교만에 의해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 내적 자유의 결핍은 삶을 하나님 중심이 아니라 우리 중심으로 살아가게 만든다. 자기중심의 경향성은 참된 분별을 방해한다.
2. 지식
우리 자신, 우리의 가장 깊은 바람, 그리고 우리의 개인적 은혜와 유혹의 역사를 아는 것은 분별을 위한 핵심적인 배경을 제공해준다. 교육을 통한 지식은 우리가 비판적으로 사고할 수 있도록, 복잡성을 인식할 수 있도록, 구조와 체계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어떤 존재가 되기를, 우리가 어떤 일을 하기를 원하시는 지에 관한 구체적인 지식이 필요하다.
3. 상상력
분별의 과정은 우리가 쉼을 갖고 재충전되었을 때 더욱 생동감을 띨 수 있다. 왜냐하면 그럴 때 우리는 새로운 가능성들을 상상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새로운 가능성들을 상상할 수 없을 때, 우리는 참으로 곤경에 처하게 된다.
4. 인내
하나님을 기다리는 것은 어렵다. 성실하게 우리 자신의 발달 과정을 기다리는 것은 어렵다. 우리는 즉각적으로 손에 넣을 수 있는 것에 안주하려는 유혹에 빠지기가 쉽다. 우리는 또한 삶의 얽힌 실타래들이 풀어질 때를 기다리거나 삶의 전환기에 속해있음을 인식하면서 기다리는 대신에 억지로 안을 짜내려는 유혹에 빠지기가 쉽다.
5. 행동하는 용기
하나님의 뜻이 분명하게 여겨질 때 조차도 우리의 결정을 인정하지 않거나 지지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 우리는 그 결정의 열매를 살펴봄으로써, 분별의 결론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행동을 시작함에 따라 무슨 일이 발생하는가? 계속해서 기도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은 또한 우리 와 동행하신다.3)
이냐시오의 영신수련에 참여한 크리스천들이 많이 있다. 이 영신수련은 영적 분별에 대해 더욱 배우고자 하는 의도로 성경 읽기, 기도, 그리고 영성일지의 작성을 매일 시행한다. 이냐시오는 분별의 세 가지 경우에 대해 기술했다. 첫째, 하나님께서 직접적으로 우리를 부르실 때이다. 즉 하나님께서 우리를 직접적으로 만나주셔서, 하나님의 뜻이 너무도 분명하여 특별한 분별의 과정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경우이다 이때 우리에겐, 하나님의 확인을 요청하는 기도만이 필요하다. 둘째, 선택해야 할 사안들을 고려할 때 우리 안에 느껴지는 감정들에 주의를 기울이는 경우이다. 이냐시오는 우리가 사안들을 놓고 기도해야 하며, 그 사안들이 우리 안에 야기하는 영적 위안(consolation)과 영적 황량(desolation)의 패턴들을 인지해야 한다고 말한다. 영적 위안은 활기를 얻고, 희망에 차며, 영적인 만족을 느끼는 것을 말한다(때때로 우리가 경험하는 고통과 어둠도 영적 위안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그 고통과 어둠이 우리를 하나님께로부터 떨어지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 가까이 나아가게 하는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영적 황량은 활기를 잃거나 하나님에로부터 멀어짐을 느끼게 되는 것을 말한다. 우리의 느낌들을 주목하여, 그것들에 대해 기도하는 것이 중요하다. 셋째, 우리가 이성에 초점을 맞추는, 혹은 가능한 안들의 효과들을 논리적으로 성찰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는 경우이다. 때때로 자신과 같은 상황에 처한 사람이 자신에게 찾아와서 조언을 구할 때 어떤 조언을 해줄 것인가를 상상해보는 것도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데 도움이 된다. 혹은 자신이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다고 상상하면서, "내가 무엇을 하고 싶어 했을까?"를 생각해보는 것도 분별에 도움을 준다.
기도 가운데 발생한 우리의 감정들을 사용하여 결정에 도달했다면, 그 상황의 여러 측면들을 논리적으로 검토해 봄으로써, 그리고 우리의 결정에 대해 하나님께서 확증해 주시기를 요청함으로써, 우리의 결정을 시험해 볼 것을 이냐시오는 권면한다. 반면 우리가 이성을 통해 결정했다면 그 결정을 놓고 기도하면서 우리 안에 어떤 감정들이 발생하는지를 살펴보아야한다. 우리가 이성과 감정이 일치하는 착실한 분별의 결론에 이르렀을 때 더 이상 사안들을 살펴보는 것을 그치고 마음의 평화를 맛본다. 분별의 과정에 참여하는 것은 특정한 상황을 위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는 것 이상의 유익을 제공한다. 우리가 의도적으로 분별에 참여할 때, 우리는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그리고 우리를 깜짝 놀라게 하는 측면들이 있음을 발견한다. 또한 우리 자신의 마음의 바람들에 더욱 귀를 기울이게 된다.
분별과 그리스도의 몸
분별은 종종 우리가 지니지 않은 은사들에 의존한다. 우리들은 서로의 통찰들, 자원들, 그리고 기도를 필요로 한다. 성경은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으로 지칭한다. 그리스도의 몸이란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고, 각 개인들이 지체로 기능하여 협력하는 공동체를 말한다. 우리 인간의 몸의 한부분이 모든 일을 다 수행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마찬가지로 신앙 공동체의 어떤 한사람이 필요한 모든 일, 심지어 우리 자신을 위한 모든 일을 수행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는 서로 도와가며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을 예배하도록 창조되었다. 크리스천은 기도, 예배, 봉사의 영역에서 서로를 돕는다. 우리는 일대일 관계나 소그룹 혹은 대그룹의 관계를 통해서 서로를 격려한다. 그리고 함께 기도하고 성찰하면서 하나님의 임재와 뜻을 분별한다. 퀘이커 교도들과 같은 그룹들은 그룹이 개인의 분별을 도와줄 수 있는 체계화된 방식들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분별을 위한 그룹들은 명확 위원회(Clearness Comnlittee)라고 불린다. 이 위원회는 다섯 혹은 여섯 사람으로 구성되며, 질문은 하되 대답을 주지는 않는다.4)
우리의 분별의 방식과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이라고 믿는 바를 누군가와 할께 이야기하는 것은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필수적으로 해야만 하는 핵심적인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이유로 인해 영성지도에 참여한다. 영성지도의 대화에서 우리는 분별의 기회들, 가능성들, 그리고 선택들에 관해 설명하고, 논의하고, 기도한다.
문별의 주제들
모든 영성지도의 만남들은 분별의 측면을 담고 있다. 왜냐하면 영성지도의 대화들은 성령의 음성을 다른 것들과 구별해 내는 것을 최우선의 과제로 삼기 때문이다. 피지도자들이 제기하는 주제들은 그들의 태토와 선택들, 삶의 스타일에 대한 고려사항들, 결정해야할 사항들,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성령의 초대에 자유롭게 응답할 수 있는 영역들, 성경의 자극들에 저항을 느끼는 영역들을 포함한다. 사실, 하나님의 뜻에 관해 제기하는 질문들은 그 무엇이나 분별의 주제가 될 수 있다. 분별의 주제는 선택들, 관계들, 어디서 살며 누구와 살 것인지, 어떤 흥미로운 것을 어떤 방식으로 추구할 것인지, 어떻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어떻게 살 것인지의 문제들을 포함한다. 분별의 질문들을 다음의 질문들과 관련된 하나님의 의도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요약될 수 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누구와 함께 있어야 하는가?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나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이 모든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성령께서는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도록 지금 어떻게 초대하고 계시는가?
영성지도 만남에서 빈번하게 떠오르는 주제는 교회의 선택과 교회사역에의 참여에 관한분별이다. 우리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심화시키라는 부르심을 경험할 때, 타인들과의 관계가 악화되는 것 같이 느낄지도 모른다. 우리는 혼란스러움, 좌절, 분노, 실망감을 느낀다. 왜냐하면 다른 교인들은 유사한 부르심, 하나님을 향한 유사한 비전과 바람을 느끼지 못하는 것같이 보이기 때문이다. 영성지도의 관계는 하나님이 우리 교회나 우리가 속한 영적 공동체들에 관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탐구할 수 있는 안전하고 비밀이 보장되는 공간을 제공한다.
우리는 때때로 하나님의 영이 우리로 하여금 함께 예배드리던 공동체를 떠나도록 요청하기도 하신다고 ALE는다. 이러한 분별은 최대한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움직임을 고려하도록 만드는 복합적인 동기들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우리가 하나님에게서 부여받은 잠재력과 자유를 발휘하여 살아갈 수 있는, 우리 자신이 될 수 있는, 하나님의 뜻을 배울 수 있는, 하나님의 은혜를 타인과 나눌 수 있는 공동체에 속하기를 원하실 것이라고 희망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지금의 공동체에 남아 있거나, 같은 교난에 속한 다른 교회로 옮겨 가거나, 혹은 다른 교단에 속한 교회로이동하기를 원하실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이동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생각할 때 조차도,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우리에게 머무르도록 지도하신다.
분별을 인지하기
하나님의 영의 인도하심은 확인할 수 있는 여러 가지 특징을 지닌다. 그 중 어떤 것들은 판단이 용이하나, 어떤 것들은 어렵다.
제안된 행동이 그리스도의 가르침, 성품, 행동과 조화를 이루는 것인지의 여부를 묻는 것이 판단을 위한 핵심적인 질문이다. 우리의 결정을 따라 행하면, 우리의 행동은 그리스도를 반사하는 것일까? 우리의 행동이 그리스도의 삶의 원리를 반사하는 것일까?
두 번째로 중요한 질문은 성경과의 관련성이다. 우리가 고려하고 있는 안은 성경의 가르침과 어떻게 부합되는가? 그 안에는 어떤 성령의 열매-사랑, 기쁨, 평화, 인내, 친절, 양선, 충성, 온유, 절제-가 배태되어 있는가?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께 맞출 수 있는 은총을 구하면서, 우리는 성경과 그리스도와의 관계라는 렌즈들을 통해서 가능한 선택 안들을 조사 해야만 한다.
그러나 이미 언급한바와 같이 우리가 두 가지 가치 있는 안들, 즉 모두 다 그리스도의 삶과 성경의 가르침에 부합되는 두 가지 행동 방식들에 직면하게 되는 경우가 매우 많다. 이 두 안들을 검토해 본 후에도 우리는 여전히 혼란스러울 수 있다. 기도하는 마음을 지니고, 그 안들을 머리로만 가상적으로 시행해 보는 것은 어떤 안이 하나님의 뜻에 더욱 적합한 것인지를 인지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하나의 안을 선택했다고 가정하고, 그로 인해 생겨난 생각과 느낌들을 인지한다. 즉 우리가 활기와 흥분을 느끼는지, 아니면 에너지가 약화되는 것을 느끼는지를 살펴본다. 우리는 또한 가능한 안들과 관련하여 우리의 기도와 하나님과의 관계에 어떤 일들이 발생하는지를 살펴볼 수 있다. 우리의 기도가 생동감이 넘치고 감동적인가, 아니면 침몰하는 것 같은가? 우리가 이와 같은 방식으로 가능한 안들 하나하나에 하루 내지는 이틀의 시간을 부여하여 그 각각의 안에 내해 생각하고, 기도하고, 숙고한다.
우리의 결정에 뒤이어 우리의 마음과 외적 환경에 무엇이 발생하는지를 관찰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 하나님의 영이 우리를 특정한 방식으로 인도하실 때, 외적 환경들은 하나님의 인도에 대한 우리의 내적감각과 부합될 것이다. 상황이 우리가 예상한 대로 진행되지 않을 때는, 시점이 적절하지 않거나 우리가 성령의 인도하심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적절한 때가 이르러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길이 열리기 전까지 기다리는 대신에, 우리는 상황을 강제로 창출하기 위해 에너지를 낭비하기도 한다.
분별과 평안
기독교의 분별 전통에 따르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감지하여 따를 때 우리는 평안, 안정감, 고요함을 경험하게 된다. 그러면 우리는 더 이상 안들을 검토하지 않을 뿐 아니라 혼란스러움도 겪지 않게 된다. 우리는 마음에 평안을 얻게 된다.
그러나 평안 그 자체는 우리가 하나님의 인도에 따라가고 있다는 것을 확증해 주는 충분한 증거가 되지 못한다. 고의적으로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고 있는 사람들도 적어도 일정 기간 동안은 거짓 평안을 경험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이 성경의 원리와 그리스도의 방식과 는 반대되는 가치들과 행동들을 선택한 후에도 평안을 느낀다면, 그것은 분별을 계속해야한다는, 그리고 "성경과 분명히 반대되는 것에 대해서도 왜 나는 평안을 느끼는가?"라는 질문을 해야 한다는 신호이다.
분별은 우리 자신의 은혜와 유혹의 역사라는 틀 안에서 반드시 재구성(contextualized)되어야만 하는 복합적인 과정이다. 하나님의 뜻에 관한 분별은 공식을 따르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와 하나님과 함께해 온 개인적 역사로부터 흘러나오는 것이다. 이 사실은 심지어 예수 그리스도의 삶에서도 발견된다. 누가복음 4장에는 예수님께서 40일간금식하신 후 광야에서 사탄에게 시험받으시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다. 사탄은 1) 돌을 빵으로 변화시키도록, 2) 사탄을 경배함으로 세상 나라의 영화와 권위를 받도록, 3)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어 구해줄 것이기 때문에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도록 예수님을 시험했다. 사탄은 예수님께 세상의 악을 다루는 것에 관한 하나님의 뜻을 기다리지 않은 채 그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확언하라고 유혹한다. 세 가지 시험 모두 다 그리스도로 하여금 소명을 하나님의 방식이 아닌 그의 방식대로 수행하라는 것과 관련된 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성경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과 하나님의 방식을 언급하시고 사탄을 물리치신다.
똑 같은 핵심적인 유혹-하나님의 방식이 아니라 자신의 방식에 따라 삶을 살고 소명을 수행하라는 것-이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예수님의 씨름 안에도 존재한다. 동산에서 밤이 이르기 훨씬 전,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따를 것을 결정하시고 제자들에게 자신이 십자가에서 죽게 될 것이라는 말씀을 하신다. 예루살렘으로 발걸음을 향했을 때, 예수님은 죽음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마 26:1-2).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은 이 순간에 하나님께 예라고 말씀드리면 죽음이 매우 가까워진다는 것을 아시고 예수님은 비탄과 절망에 직면하시게 되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길을 자신의 운명으로 이해하셨다는 것을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안다. 예수님과 아바(Abba)와의 관계, 그리고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것만을 행하려는 패턴이 예수님의 삶의 토대였다(요 8:28-29). 예수님은 그 어떤 분별의 공식이나 법칙들을 초월하는 하나님 아버지에 대한 깊은 신뢰와 자발성을 지니셨다.
예수님은 조롱과 십자가 처형의 엄한 과정이 실행되도록 허용함으로써 분별했던 것을 따랐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처형을 당했던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감정적인 그리고 육체적인 고통을 겪으셨다. 그리고 예수님은 추가적으로 세상의 모든 죄의 무게를 짊어지셨다.
그럼 평안이란 무엇인가? 샬롬(Shalom)? 구약 성경에서 샬롬-평안-이란 단어는 웰빙, 성취, 완성, 만족을 의미한다. 그것은 내적 조화, 안정감, 고요함의 느낌을 지칭한다. 하나님은 샬롬의 원천이며, 참된 평안의 근원이며, 거룩한 온전함의 창시자이다. 예수님은 단지 분별의 부산물로서가 아니라 지속적인 삶의 방식으로서 하나님의 충만함과 아버지와의 교제 안에서 살았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평안으로 충만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평안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그들을 평안으로 축복하셨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 14:27), 바울은 빌립보서에서 하나님의 평안에 대해 말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 4:6-7).)
그러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절규하실 때, 그 소리는 평안의 소리가 아니었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마27:46). 이 절규는 황량, 고뇌, 인류의 깨어짐에로의 그리스도의 참여로부터 나온 것이다. 예수님은 성경을 잘 알고 계셨기 때문에, 시편 22편의 첫 구절을 사용하여 소리쳐 기도한 것이라고 말하는 학자들도 있다. 그러나 황량에서 위안으로 이동해 가는 시편 22편의 나머지 부분을 사용해서, 예수님께서 침묵으로 계속 기도하셨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거기에는 응답되지 않은 질문들이 많이 존재한다. 항상 함께하신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이 그 임재를 인식할 수 있었는지의 여부와 관계없이 그 고통의 과정에도 예수님과 함께 하셨다. 아마도 오늘날 크리스천들의 경험을 살펴보면 예수님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얻을 수 있다.
분별에 참여하여 분별의 기도를 삶의 선택을 위한 토대로 삼는 사람들은 다음의 것들을 행한다.
그들의 마음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을 공개하고, 어떤 것도 하나님께 감추지 않는다.
볼 수 있기를 간구한다.
그들 자신과 그리고 하나님과 씨름한다.
그들은 하나님의 바람들을 경청한다고 믿는다.
기꺼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보여주신 것을 선택한다. 심지어 개인적인 고통의 순간에도, 그리고 적절한 선택처럼 보이지 않을 때에도 기꺼이 그것을 선택한다.
그들이 이것들을 행할 때, 그들은 생각과 감정의 일치를 포함한 깊은 내적 일치에 이르게 된다. 혹은 하나님께서 요청하시는 것에 대해 이성적인 이해에 이르지 못한다 할지라도, 그들은 하나님의 요청에 대해 정당함을 느끼며, 그것에 따라 행동하는 것에 대해서 평안함을 느낀다.
그들이 말하는 바가 샬롬처럼 들린다. 즉 하나님의 충만함이 그들 안에 거하는 것처럼 들린다. 거기에는 내적 안정감이 존재한다. 그들은 성령께서 주신 마음의 질을 경험한다. 그러나 그 마음의 질을 경험하기 위해선 그들 자신의 자발적 동의가 필요하다.
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라고 믿는 것에 동의를 한 후에 온화함을 경험할지도 모른다. 결론을 얻기 위한 씨름은 계속된다. 우리가 결론을 향해 나아갈 때 아직도 드러나지 않은 많은 어려움들에 직면한다. 우리는 또한 기쁨을 경험한다. 마치 영혼을 통해 흘러나오는 생수와 같이 무어라 정의하기 어려운 기쁨, 우리가 치러야 할 희생이나 복종을 아주 작아 보이게 만드는 기쁨을 경험한다. 그 기쁨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그 기쁨이 너무도 좋아서, 우리는 그 기쁨이 없었다면 결코 탐구하지 않았을 많은 것들을 기꺼이 탐구한다. 하나님 때문에 동의한 것은 무엇이나 선으로 인도된다. 그것의 정당함은 결코 부정할 수 없다. 우리는 어떤 것이 정당하다고 느끼지만, 그 이유에 대해서는 모를 수도 있다. 많은 것들이 우리 시야의 한계 너머에 존재한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고 확증하신다는 것을 안다.
우리가 하나님의 평안을 경험할 때, 그 평안은 상황에 의해 제거되지 않는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하나님의 평안은 혼란스러운 표피적 생각들, 느낌들, 그리고 육체적 고통 그것들 밑에 온전한 모습으로 머물러 있을 수 있다.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이나 우리를 곤란하게 하는 것들로부터 우리 자신을 부드럽게 분리시키면서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로 향할 때, 우리는 우리를 지탱해 주는 평안의 임재를 발견하고 놀라기도 한다.
때때로 사람들은 평안함, 명확함, 확고함, 모든 것을 끌어안은 온전함(wholeness)을 느낀다고 말한다. 그들은 이러한 평안을 최상의(sublime) 혹은 초월의(transcendent)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설명하려고 시도한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이 느낀 것을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는 용어를 찾는 것을 포기하게 된다. 왜냐하면 그 경험은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성령의 바람을 깨달아 동의하였을 때 하나님에 의해 이끌리어 말할 수 없는 평안에 의해 떠받쳐진다. 그들의 관심을 사로잡았던 환경은 대수롭지 않게 여겨지거나 존재하지 않은 것처럼 여겨진다. 그들의 마음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이 정확히 있어야 할 자리에 있는 것같이 느껴진다.
깊은 내적 평안이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평안은 때때로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합한 것을 선택했다는 확증이기도 하다. 비극적이고 혼돈된 상황들 한가운데서도 이러한 평안을 경 험 했던 사람을 나는 알고 있다. 그 사람의 평안을 지켜봄으로써, 나는 예수님께서 그러한 평안을 경험하셨다는 것을 믿게 되었다. 십자가라는 견딜 수 없이 두려운 고통 그리고 평안이 내포된 하나님의 온전함이 서로 공존했다.
분별의 신비
분별이 분명할 때 우리는 때때로 해야 할 일이 무엇이며, 그 시점이 언제인지를 안다. 우리는 또한 그것을 할 에너지도 지니고 있다는 느낌을 갖는다. 적어도 하나님께서 지금(know) 우리에게 행하도록 요청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는 분명하다. 그런 연후, 성령께서 우리의 다음 발걸음을 인도하실 것이다. 비록 현재 행하는 것이 얼마나 오래 걸릴지, 그리고 다음의 단계가 무엇일지에 관한 정보가 하나도 없다 할지라도 말이다.
또 어떤 때는 심지어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기 위한 모든 과정을 수행한 이후에도 하나님의 뜻을 잘 알게 되었다고 말하기가 곤궁스럽다. 마치 하나님께서 우리가 다음 단계를 잘 알지 못한 채 기꺼이 아무조건도 없이 하나님을 신뢰하기를, 불확실함을 지니고 살아가기를, 계속해서 믿음과 사랑을 지니기를 원하시는 것같이 느껴질 때가 있다. 분별의 결과가 드러나는 것은 우리의 순종적 응답과 행위에 달려있다. 성령께서는 오랜 기간 동안 상황의 분명한 파악을 위해 기도하게끔 우리를 인도하신다. 그러나 여전히 많이 것들이 하나님의 신비 안에 감추어져 있다.
분별은 복잡한 주제이다. 우리는 단지 그 문만을 열었을 뿐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고유하게, 개인적으로, 인격적으로 다가오신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분별에는 주목할 필요가 있는 중요한 요소들이 있다. 우리가 어떤 방식을 사용하든, 우리가 어떤 질문을 놓고 기도하든 분별의 과정은 하나님의 사랑, 우리의 자발적 응답과 복종, 우리의 관점 대신 하나님의 관점을 선호하는 것을 포함한다.5) 우리가 하나님의 인도를 분별할 때 다음의 것들을 찾는다. (1) 그리스도의 태도와 행동과 부합됨, (2) 성경적 가르침, 가치들과 일치함, (3) 우리의 개인적 역사와 현재 지닌 하나님과의 관계에 부합됨, (4) 다양한 관계들과 상황들을 통해 우리 안에 맺힌 성령의 열매, (5) 하나님의 요청이라고 믿는 것에 대한 개방적 태도, (6) 내면의 중심에 자리 잡은 평안의 느낌.
참된 분별은 대부분 마음의 태도와 관련되어 있다. 즉 하나님과 하나님의 일을 사랑하고 갈망하는 태도이다. 연린 마음으로 경청함, 기꺼이 하나님을 신뢰함, 모든 것이 은혜에 달려 있다는 인식들이 성령의 자극을 알아차리게 하는 토대이다. 만일 분별에 관해 보다 더 철저한 탐구를 원한다면, 참고문헌에 제시된 서적들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성찰을 위안질문
1. 분별에 대해 어떤 경험들을 가지고 있습니까?
2. 당신의 분별의 역사를 몇 부분으로 나눈다면, 그 각 부분에 적합한 명칭을 붙여 보십시오. 분별의 과정, 분별에 대한 인식, 분별에 사용된 특정한 방식들은 어떻게 변화했습니까?
3. 어디로부터 분별에 대한 정보를 구합니까?
4. 기도와 성경이 당신의 분별의 과정과 어떤 관련을 맺습니까?
5. 다른 사람들도 그 분별의 과정의 한 부분을 담당합니까? 누구입니까? 당신이 느끼는 하나님의 뜻과 비교하여,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와 의견에 어느 정도의 무게를 둡니까?
6. 어떻게 어떤 특정한 정보의 원천이 신뢰할만하다는 결정을 내립니까?
7. 당신이 선호하는 분별의 방식은 무엇입니까?
8. 당신이 시도한바 있는 것으로, 도움이 되지 않은 분별의 방식은 무엇입니까?
9.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잘못 해석한 적이 있습니까? 그 결과는 어떠했습니까? 언제 어떻게 재분별의 과정을 밟았습니까? 무엇이 당신으로 하여금 은혜, 자유, 그리고 회복을 경험하게했습니까?
10. 분별에 관한 어떤 질문들을 가지고 있습니까? 분별과 관련하여, 성렁께서 당신으로 하여금 더 성장하도록, 혹은 더 탐구하도록 요청하시는 영역이 있습니까?
11. 당신은 분별의 과정과 질문들에 관해 누구와 함께 이야기할 수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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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William Barry, "Toward a Theology of Discernment," The Way Supplement 64(Spring 1989): 136.
2) Gerald May,'Authentic Spiritual Experience 11 Shalem News 12, no. 1 (February 1988): 5.
3) James Wakefleld, Listeing Prayer: A New Annotation and Introduction to the Spiritual Exercises of St. Ignation of Loyola(1992)는 Our Saviour's Lutheran Church, 1040 C. Avenue, Lake Oswego, OR 97034; 503-635-4563에서 구할 수 있다. 또한 다음의 자료들을 보라. Wilkie Au, By Way of the Heart: Toward a Holistic Christian Spirituality(New York: Paulist Press, 1989), 76-78; Philip Boroughr, "Using Ignatian Discernment", Review for Religious 51, no. 3(May/june 1992): 373-87.
4) Parker J. Palmer, "The Clearness Committee: A Way of Discernment," in Communion, Community, Commonweal: Reading for Spiritual Leadership. ed. John S Mogabgab(Nashville: The Upper Room, 1991), 131-30; Richard J. Foster, Celebration of Discipline : The Path to Spiritual Growth(San Francisco: Harper & Row. 1988), chapter 12, "The Discipline of Guidance"( 집단 분별에 관한 탁월한 논의임).
5) 분별의 방신들에 관한 설문서에 응답하면서, 신학교 학생들은 그들이 적어도 한번 이상 사용한 바 있는 도움이 될 만한 방식들을 기록했다. 그것들은 다음과 같다. (1) 성령의 음성을 구하고 경청하는 것, (2) 성경, (3) 홀로 있음, 조용한 장소, 명상, 관상, (4) 타인들-신뢰하는 친구들, 가족구성원들, 때때로 높은 위치에 있는 사감들, 그리고 아이들, (5) 책들-기독교 고전들, 자서전들, 문학 작품들, 찬송가들, (6) 기도의 과정, (7) 예배와 예배 공동체, (8) 음악-음악을 감상하거나 찬양함, 찬송가, 명곡, 그레고리안 성가, 명상곡을 노래함, (9) 직관, (10) 설교들, (11) 현재 삶의 경험들과 환경들, (12) 과거의 경험들, (13) 논리적 일관성, (14) 공개적으로 혹은 비공개적으로 주어진 기회들, (15) 공통된 흐름, 수렴, 조화, (16) 분별의 은사와 은총을 특별히 구함, (17) 일지의 기록, (18) 확인과 확증, (19) 금식 (20) 학문적 자료들, (21) 지속적으로 반복해서 떠오르는 생각들의 역할로 인해 명확해지는 경험, (22) 다양한 가능성들을 고찰할 때 느끼는 긴장과 같은 육체적 반응들, 운동, 산책, 마사지를 포함한 신체적 영향들, (23) 자연-하나님과 창조세계, 자연이 아름다운 장소나 삭막한 장소에 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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