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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차(視覺差)

민수기 최용우............... 조회 수 1594 추천 수 0 2009.04.13 21:4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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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민13:30-33 
설교자 : 조용기 목사 
참고 : 2003년 12월 21일 주일3부 설교(여의도순복음교회) 
“갈렙이 모세 앞에서 백성을 안돈시켜 가로되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 하나 그와 함께 올라갔던 사람들은 가로되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 하고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그 탐지한 땅을 악평하여 가로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그 거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거기서 또 네피림 후손 아낙 자손 대장부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의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

<서론>
저는 오늘 여러분과 함께 「시각차」라는 말씀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삶의 모든 논쟁은 모두 시각차에서 난다고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부부의 이혼이유 중 하나가 마음이 맞지 않는다는 것인데 그것도 서로 사물을 바라보는 시각차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노사간의 투쟁, 지역간의 알력, 정당간의 논쟁, 국가간의 분쟁 등 이 모두가 서로 다른 입장에서 본 시각차 때문인 것입니다. 인간적인 시각차는 대화를 통하여 좁혀질 수가 있습니다. 화해와 일치를 가져올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서는 타협이 결코 있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진리에는 결코 회색지대인 타협은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시각과 인간의 시각 사이에 갈등을 가진 우리의 위치를 알아보고 단호하게 인간의 시각을 버리고 하나님의 시각을 받아 들여서 하나님 편에서 사는 그 길을 모색해 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본론>

1. 가데스 바네아에서의 하나님과 인간의 시각차

첫째로,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여 광야를 지나 적과 꿀이 흐르는 땅인 가나안에 들어갈 국경지대인 가데스 바네아에 왔었을 때 열 두 정탐꾼을 택해서 40일 동안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오라고 했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큰 화근이었습니다. 그들이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와서 보고 하는 보고는 하나님의 시각과 엄청난 차이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정반대적인 인간의 감각과 이성과 경험에 입각한 시각을 보고했습니다. 그 결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선택에 중요한 악영향을 미치고 이스라엘 나라가 파멸당할 수 있는 위기에 까지 다가오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가나안 땅을 보신 시각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했습니다.
민수기 14장 7절로 8절에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일러 가로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고 말씀했습니다.
현재의 눈에는 적과 꿀이 흐르지 않아도 현재에는 광야요, 사막이라도 하나님의 시각을 가지고 들어가면 믿음으로 행할 때 그 땅에 젖이 흐르고 꿀이 흐르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의 시각과 하나님의 시각이 거기에 다릅니다. 인간은 현재 봐야 되고 현재 체험해야 되지만은 하나님은 현재 안보이고 현재 체험 못해도 말씀을 따라 나가면 그대로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가나안 땅에 있는 적들은 이미 정복된 상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민수기 14장 9절에 “오직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 밥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 말라 하나”
아무리 적이 강해도 이미 그들은 정복당한 적이다. 하나님 보는 시각으로서는 그들이 키가 장대하고 강성한 국민이라도 이미 패배한 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시각을 받아들이느냐 아니냐하는 것은 우리 삶에 중대한 관건입니다. 그런데 그 땅을 정탐하고 온 10명은 전혀 하나님의 시각과 다른 보고를 했습니다. 그들은 말하기를 “우리가 들어가 본 땅은 주민을 삼키는 박토더라. 광막한 황야와 사막이더라. 젖도 나지 않고 꿀 한 방울도 못 보았다.
여러분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은 현재적인 환경을 통해서 주는 약속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믿을 때 황량한 광야에서 젖이 흐르기 시작하고 사막에서 꿀이 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믿음을 통해서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우리의 꿈과 믿음을 통해서 기적이 일어나는 것이지 현재 그렇게 육신적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꿈과 믿음을 통해서 하나님은 젖이 흐리고 꿀이 넘쳐나게 만들어 주는 땅인에 그들은 하나님의 시각으로 보지 않고 꿈과 믿음으로 보지 않고 인간의 육신의 감각을 통해서 볼 때 그 땅은 사막과 광야에 불과한 것입니다.
민수기 13장 32절에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그 탐지한 땅을 악평하여 가로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그 거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라고 말했습니다.
강한 적, 아무리 무서운 적이라도 이미 주님이 정복해 놓았다면 이겼다고 생각하고 들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내 믿음대로 될찌어다라고 하는데 이 사람들은 감각적으로만 보고 민수기 13장 43절에 “거기에서도 네피림의 후손 아낙자손 대장부를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의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라고 자기를 메뚜기로 비하해 버리고 완전히 부정적이고 파괴적인 그러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보신 시각과 열 정탐꾼이 본 시각은 천양지차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이 보고를 듣고 난 다음 하나님이 보신 시각을 따라서 갈 것이 아니라 인간이 본 시각을 따라서 갈 것이냐, 선택해야 되는. 그런데 대중은 부정적인 말을 들었습니다. 인간이 보고하는 인간이 본 시각대로 받아 들여서 그 땅은 주민을 삼키는 땅이고, 광야도 사막의 땅이다. 그 거민은 너무나 커서 장대하고 아낙자손 대장부가 있으니 우리는 들어가서 치지 못한다. 우리 장광을 채워서 애굽으로 돌아가자. 하나님의 계획과 정반대의 결정을 내려 버리고 말은 것입니다.
여러분 이러므로 우리의 생활 속에 우리가 말씀을 듣고 기도하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받아들일 것이냐, 내가 보고 듣고 말하고 냄새 맡고 만져보고 감각적으로 경험하고 이성적으로 깨달은 그것을 따라서 우리 운명이 기로에 서게 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수아와 갈렙의 보고를 듣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시각으로 그 땅을 보지 아니하고 열 정탐꾼의 시각으로 그 땅을 보고 하나님을 반역하고 그들은 애굽으로 돌아가자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진노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열 정탐꾼을 그 자리에서 재앙을 맞아 죽게 했습니다. 그리고 그 부정적인 시각을 모두다 광야로 회지시켜서 40년 동안 광야에서 방황하면서 다 소멸되게 만들은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을 결정한 여호수아와 갈렙은 광야 40년을 통해서 살아 적과 꿀이 흐르는 땅에 후손들을 데리고 들어갈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그러므로 우리들의 삶 속에 언제나 사람의 눈으로 보는 것하고 하나님의 눈으로 보시는 것하고 분명한 구별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사람의 눈으로 보면 사람의 생활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눈으로 보고 그것을 꿈과 믿음으로 삼으면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안개가 자욱한 어느 날 배한척이 항구에 정박한 채 출발을 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선장은 난간에 올라서 안개가 걷히기를 턱을 고이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 잘생긴 신사가 오더니만 “나 영국에서 온 사람인데 캐나다의 퀘벡에 가서 토요일 날 부흥회를 인도해야 됩니다. 이 배가 오늘 떠나야 됩니다. 선장님 출발 시키십시오.” 선장이 가만히 보면서 ‘이 사람 돌았나? 모습은 보니 아주 훌륭한 사람 같은데 말하는 것 보니까 완전히 돌은 사람 같구나‘ “여보시오. 당신 눈에 안개가 안보이오? 이렇게 안개가 자욱히 끼었는데 어디에 배를 출항시킨단 말이오?” 그러니까 그 신사 하는 말이 “예 안개가 보여요. 그러나 나는 안개 저 건너편에 안개를 움직이는 하나님의 손도 보입니다. 당신은 그 하나님의 손이 안보입니까?” 선장이 “허허” 웃으면서 “이 사람 돈사람이구나” 그런데 강제로 팔을 끌면서 “선실로 들어가십시다. 나는 57년 동안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과 매일 기도하며 만나온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한번도 실수한 적이 없었습니다. 오늘 내가 기도하면 안개가 걷히니까 선장과 함께 기도하러 가십시다.” 그래서 강제로 선실로 끌려 내려갔는데 선장은 기도 안했어요. “웃기는 소리한다. 안개가 자욱한데 안개밖에 안 보이는데 어디에 하나님이 보이느냐?” 그러나 죠지 뮬러는 무릎을 꿇고 엎드려서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 나는 영국에서 퀘벡에 부흥회를 왔는데 배가 움직이지 아니하면 토요일 날 말씀을 전할 수 없습니다. 이 안개를 제켜 주시옵소서.” 간절히 기도하고 “하나님이 내 기도를 들어줄 것을 믿습니다.” 하고 일어나더니만 “자 배를 엔진을 걸어서 가십시다.” “여보 웃기는 소리 하지 마시오.” “창문 열어 보세요.” 창문을 열어 보니까 기도하는 그 짧은 시간에 안개가 완전히 사라지고 햇빛이 쨍쨍 비취기 시작했습니다. 선장이 도저히 믿을 수가 없습니다. 이 선장의 눈에는 안개밖에 안보였지만 조지 뮬러 목사님의 눈에는 하나님이 보였던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우리 주위에 다가오는 불안, 공포, 초조, 좌절, 절망 이런 것만 보고 있으면 우리가 꼼짝도 못하지요. 그러나 우리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 때 사망만 있고 캄캄함만 있는 것이 아니라 주께서 우리와 함께 계신 것을 볼 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계신 것 이것을 봐야 돼요. 예수 믿는 사람은 주님께서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항상 같이 있겠다고 말씀한 것입니다. 너희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너희 가운데 있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자리에 인간의 육으로 보면 우리 성도들만 모여 있지만 하나님의 눈으로 보면은 예수님이 여기에 와서 계신 것입니다. 우리가 사람만 보지 말고 이 자리에 계신 예수님을 볼 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시각으로 사물을 보게 되면 인간적인 능력으로 살지 않고 하나님의 기적으로 살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의 시각과 인간의 시각

둘째로, 하나님의 시각과 인간의 시각차를 우리가 한번 분명히 보십시다.
하나님이 오늘날 안믿는 세상 사람을 볼 때 어떻게 보십니까? ‘아~ 옷 잘 입었구나! 잘났구나! 교육 잘 받았고, 영양도 좋고, 키도 크고, 훌륭하게 생겼구나!’ 그렇게 보십니까? 하나님이 오늘 인간을 보실 때는 죄와 허물로 죽은 인간으로 봅니다. 살았다하나 죽었다. 고깃덩어리는 살아 있어도 70, 80년 되면 죽을 것이고 영혼은 이미 죽어서 하나님과 교통이 없다.
어떤 사람이 교회에 갔는데 목사님이 “여러분 죄 짐을 지고 허리가 굽어지도록 무거워서 질질 메지 말고 주님 앞에 나오라” 하니까 이 사람이 일어나서 “목사님 하나 물으십시다. 나는 예수 안 믿으니까 죄인이지요. 그런데 나는 하나도 안 무겁습니다. 50kg 입니까? 100kg 입니까? 죄가... 안무거운데요.” 그 목사님 설교를 하다말고 껄껄 웃으시면서 “죽은 시체에게 가서 쌀가마니 얹어 놓아 보세요. 무겁다고 하는가... 당신 영혼이 죽었기 때문에 그 무거운 죄 짐을 지고도 무거운 줄 모릅니다. 내가 죄인이라고 가슴 치는 사람은 그 사람은 영이 살았기 때문에 죄가 무거운 줄 아는데 당신 영혼이 완전히 죽었기 때문에 아무리 죄짐을 얹어 놓아도 무거운 줄 모르니까 당신이야말로 회개하지 아니하면 지옥 직행한다.”고 그렇게 말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 인생을 볼 때는 죄와 허물로 죽은 인생으로 봐요.
에베소서 2장 1절에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골로새서 2장 13절에 “또 너희의 범죄와 육체의 무할례로 죽었던 너희를 하나님이 그와 함께 살리시고 우리에게 모든 죄를 사하시고”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니 오늘날 세상 사람들이 살았다고 큰 소리 해도 영적으로 죽은 사람들로 하나님이 보시고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시각은 그렇습니다. 인간의 시각은 안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사람 볼 때 세상과 마귀의 종이 된 인간으로 보는 것입니다. “아~ 나는 자유롭다. 아침에 마음대로 일어나고 먹고 싶은 것 먹고, 저녁에 자고, 가고 싶은데 가니 자유인이 아닌가?” 그러나 하나님이 볼 때는 죄와 마귀와 세속의 노예가 된 것입니다. 그 사람 세상 따라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 세상 따라 코에 끼어서 끌려 다닙니다. 마귀가 지으라는 죄는 다 따라가서 짓습니다. 죄의 종이 아닙니까? 여러분 보세요. 아버지가 어떻게 다섯 살, 여섯 살 되는 아들과 딸을 한강에 가서 이 추운 겨울에 내 던집니까? 그렇게 비정하고 몰인정한 인간이 죄인이 아닙니까? 죄와 마귀에게 덮어 씌이지 아니하고 그러한 일을 할 수가 있어요? 망년이라고 해서 모두다 파티에 정신이 없습니다. 벌써 몇 사람 죽었어요. 이제 막 고등학교를 졸업한 어린 여성이 직장에 취직이 되어서 망년회에 가서 못 먹는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비틀거리다가 전철에서 노선에 떨어져서 들어오는 전철에 바쳐 죽었습니다. 부부간에 똑같이 망년회 갔다가 남편이 먼저 집에 돌아오고 부인이 늦게 들어온다고 들어오는 부인을 두들겨 패서 죽였습니다. 뭐 이 세상이 지금 그런 세상인데 이게 여러분 세상과 마귀의 종이 되었다고 주님께서 말씀하는 것이 너무나 사실 아닙니까? 이 세상은 마귀의 종이 된 인간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보시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이 인생을 보실 때 마음도 몸도 병든 인간으로 봅니다. 몸이 병 안 들면 마음이 병들었죠. 여러분 마음에 염려, 근심, 불안, 초조, 절망이 없는 사람이 있어요? 미움, 분노, 질투, 시키 없는 사람 있어요? 이것 다 마음에 병들어서 병적 증상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심한 사람이 있고 덜한 사람이 있지만 모두다 마음이 병들고 그 다음 육체가 병들고 생활이 병들었습니다. 하나님은 인생을 볼 때 병든 인간으로 보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생을 저주의 종으로 봅니다. 에덴에서 저주를 받아 가는 곳마다 저주의 안개구름에 쌓여서 피땀을 흘려야 살수 있는 고달픈 인생입니다. 저주받은 인생입니다. 하나님은 인생의 종말이 영적으로 죽고 육적으로 죽고 영원한 지옥 불에 떨어질 존재로 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차라리 구원받지 못 할 바에는 태어나지 않은 것이 좋다고 말했습니다. 인간은 존귀하나 깨닫지 못하면 멸망하는 짐승보다 못합니다. 짐승은 죽어서 없어지지만 사람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왜,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으로 지음 받았는데 하나님은 영이시라 우리도 영입니다. 영은 죽지 않습니다. 영원히 불은타도 죽지는 않아요. 하나님이 인간을 볼 때는 허무와 무의미한 삶으로 봅니다. 빈 배를 타고 간다고 하는 얼마 전에 우리 한국에 지도적으로 유명한 정치인 한사람이 세상을 떴었습니다. 그 성함은 제가 말씀하지 않지만 그 호는 허주라고 했습니다. 빈배. 제가 그 어른을 몇 년 전에 만나서 같이 식사를 하면서 간절히 전도를 했습니다. “선생님, 선생님의 호가 허주 아닙니까? 빈 배 아닙니까? 그 빈 배를 그대로 끌고 가다가 지옥에 떨어지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 빈 배에 예수님을 모시세요. 예수를 믿어야 됩니다. 아무리 정치적으로 지금 영광을 얻고 있지만 세상과 그 가운데 있는 것은 다 헛된 것입니다. 아무리 봄에 무성하고 싱싱하던 나뭇잎사귀도 순식간에 가을이 오고 낙엽이 되어 길거리에 떨어져 뒹굽니다. 내 인생이 무엇이냐, 잠시 있다 사라지는 안개라고 했습니다. 늦기 전에 예수를 믿으세요.” “허허~ 오늘 같이 밥 먹고 즐기러 왔는데 나에게 전도하려고 만나자고 했군요.” “전도해야 돼요. 구원을 받고 그 배속에 예수님을 모시고 정치도 하고 사회도 살아가십시오.” 대답을 안 하지요. 그런데 얼마 전에 암으로써 세상을 떠시게 되었다고 해서 제가 심방을 갔습니다. 혼수상태에 계세요. 예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를 드렸습니다. “주여~ 정신이 맑아지게 해주시옵소서. 그래서 예수님을 전도하게 해주시옵소서.” 정신이 맑아졌어요. 저를 보고 반갑다고 고개를 끄덕끄덕 하십니다. “또 왔습니다. 달리 온 것이 아니라 빈 배에 예수 모시라고 또 왔습니다. 지금 이제 떠날 때가 가까웠습니다. 빈 배를 가지고 떠나겠습니까? 예수님을 모시고 천당을 가시겠습니까? 빈 배로 가면 천당을 못갑니다. 예수님을 모시면 그 배가 천국을 향해서 갑니다. 예수를 꼭 모시십시오. 모신다고 말씀을 하십시오.” 고개를 끄덕끄덕 하시더라구요. 그래서 제가 기도해 주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천국으로 가달라고 간절히 간구하고 왔는데 며칠 전에 세상을 뜨고 영결식을 한 것을 신문에서 보았습니다.
사람이란 허무와 무의미의 종입니다. 이 세상에 아무리 부귀, 영화, 공명을 가졌다 해도 여러분 하나도 가지고 가지 못합니다. 어떤 부자를 장례 지내는데 자꾸 관 밖으로 팔을 내밀고 관 뚜껑을 못 덮게 하더라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아무리 관 밖으로 팔을 내어도 그가 벌은 돈 안고 가지 못하고 짊어지고 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은 풀과 같고 영화는 풀의 꽃과 같아 풀은 시들고 꽃은 떨어지고 그날이 반드시 다가오는 것입니다. 거기에 우리가 빈배만 가지고 가면 어떻게 합니까? 여러분 우리다 빈 배 가지고 있지 않아요? 먹고, 입고, 마시고 사는 것은 지나가 버리면 그뿐 아니요? 여러분 잘 먹고, 잘 입고, 잘 사는 것 돌이켜 보십시오. 지난날에 있은 것 지금도 있습니까? 없잖아요. 빈 배 아니요? 예수님만이 이 배의 주인이 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인간들은 그렇게 안 봐요. 하나님은 그렇게 보시는데 인간은 인간은 자기를 볼 때 하나님 계시지 않다. 나는 무신론자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인간은 아메바에서 출발해서 진화해서 인간이 되었지 하나님 없다. 그렇게 오늘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세상에 사는 것이 물질과 권력만 있으면 최고다. 물질과 권력만능주의라고 말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세상 이렇게 악하고 살벌하고 무섭습니다. 학교교육을 시키는 것도 전부 물질과 권력을 얻기 위해서 교육을 시키고 있어요. 윤리와 도덕, 믿음, 소망, 사랑과는 정 거리가 멉니다. 모두다 권력을 얻도록 물질을 얻도록 출세하라. 출세하라. 그런 교육을 시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인간을 바라볼 때 물질과 권력만 있으면 최고라고 보고 있는 것입니다.
케이블 TV 애니메이션 채널 조사해 보니 15살 이하 어린이 1만 6천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한 결과에 어린이 두 명 중 한명은 1백억 원 이상은 있어야 부자라고 생각하며 부자가 되고 싶은데 이 가운데 아무리 많은 돈이 있어도 모자란다는 응답이 15%나 되었습니다. 15살 이하의 어린 청소년들이 벌써 얼마나 간이 커졌든지 1백억 원 가져야 부자라고 부를 수 있다. 그중에 15%는 백억도 모자란다. 우리 시대에 살아온 사람들은 1억이라고 해도 억 소리가 나는 것입니다. 1억을 손에 쥐어보지 못하고 죽는 우리 국민이 얼마나 많습니까? 오늘날 어린이 교육이 어떻게 되었기에 벌써 어릴 때부터 억은 돈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백억 단위를 어떻게 합니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라. 권력을 얻고, 권력과 결탁하고 돈을 벌어라. 거기에 윤리와 도덕성이라는 것은 있을 필요가 없다. 이것이 오늘날 여러분 물질, 권력만능주의로 세계가 흘러가고 인간은 그것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인간이 인간을 바라볼 때는 성공과 쾌락이 삶의 전체라고. 나 성공하고 잘 먹고 잘 입고 잘 살면 그것으로 마지막 최고다. 내일은 생각하지 않습니다. 내일은 안보여요. 하루살이 한 마리가 메뚜기하고 아주 재밌게 놀았어요. 하루 종일 메뚜기하고 저녁에 놀다가 앉아 저녁 어스름이 되니까 메뚜기가 “야~ 우리 가서 자고 내일보자.” 하루살이가 “내일이 모냐?” 메뚜기가 “내일? 내일이라는 것은 오늘 밤을 지나고 난 다음 아침에 태양이 부옇게 떠오르면 내일이란다.” “거짓말 말아라. 그런 것이 어딨어?” 윙하고 날아가 버렸습니다. 하루 만에 그는 죽어 버리기 때문에 내일이 없습니다. 아무리 메뚜기가 하루살이에게 내일이 있다 해도 하루살이는 믿지 않습니다. 그런데 메뚜기가 하루살이 친구를 잃어 버렸으니까 개구리하고 친구를 삼았습니다. 개구리하고 한여름 잘 지나고 가을이 늦어서 추워지니까 개구리 하는 말이 “이제 겨울이 오면 동면을 해야 된다. 우리는 굴속에 들어가서 동면을 해야 되니까 명년에 보자” 그러니까 메뚜기가“명년이 뭐야?”“야, 명년이라는 것은 이렇게 눈 덮이고 얼음 얼은 것이 다 녹아지고 춘삼월이 다가와서 봄이 오는 그 명년이야~”“거짓말 말아라. 명년이 어딨어?” 메뚜기는 1년밖에 못사니까 명년이 없어요. 오늘날 세상사는 사람들은 성공하고 쾌락만 누리면 되리라 천당, 지옥 웃기는 소리 하네. 천당이 어딨으며 지옥이 어딨느냐? 죽으면 그뿐이지... 우리같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깨달음을 얻어서 하늘나라를 볼 수 있는 사람 이외에는 육에 속한 사람은 쾌락과 성공만이 사는 것이 전체고 그것이 영원히 계속할 것이라고 착각을 하고 있다. 아무리 사람은 죽고 천당이 있고 지옥이 있다고 해도 안 믿으려고 합니다. 모르니까요. 성령이 와서 우리 마음에 비취지 아니하면 인간의 지식으로나 감정으로나 경험으로는 알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이 예수를 믿고 천국을 알고 지옥을 알았다는 것은 기적 중의 기적인 것입니다.
예수님이 가이사 빌립보에서 제자들을 보고 말했습니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인간의 시각으로 볼 때는 예레미야라고 합니다. 눈물을 많이 흘립니다. 엘리야라고 합니다. 기적을 행하시니까요. 또 세례요한이라고 말합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다 잠잠하고 있는데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엄청난 말입니다. 헐루한 옷을 입고 머리는 기르고 수염은 나고 노숙을 하고 밥을 얻어먹는 그 분을 보고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 인간적으로 봐서는...... 그러니까 예수님이 무릎을 탁 치시고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것은 혈육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아버지라”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아들의 뜻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다고 말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계시를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구주로 알고 천당도 지옥도 알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계시적인 지식 감각적인 지식이 아닙니다. 온 세상 사람들은 감각적인 지식만 나아졌기 때문에 계시적인 지시는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 성공과 쾌락만 있으면 그로써 끝이 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공과 쾌락이 얼마나 갑니까?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요, 권무십년(權無十年)이라. 열흘 붉은 꽃이 없고, 십년 가는 권세가 없다고 인생의 성공과 쾌락도 순식간에 다 지나가 버리고 황량한 죽음이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사람을 볼 때 우리는 오늘날 과학이 발달된 시대에 살고 있다. 인간은 이성과 과학을 통해서 이 세상을 유토피아로 만들 수 있으니 천당 웃기지 마라. 우리 손으로 천당 만든다. 그러나 그렇게 만들어놓은 세상의 비극을 보십시오. 이라크 전쟁에 그 과학의 무지무지한 파괴력을 보았지요. 북한이 과학을 통해서 원자탄을 만들고 위협하는 것, 세계가 고통을 당하고 있는 것을 보지요. 오늘날 과학을 통해서 우리가 얼마나 위험과 좌절과 절망에 처해있는 세상입니까? 과학이 유토피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온 세상을 순식간에 파멸로 이끌어갈 수 있는 무덤으로 변화시키고 말았다는 것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인간의 힘으로 지상에 천국이 오지 않는 것입니다. 인간이 과학지상주의를 부르짖지만은 그대로는 되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죽음은 미래적 사건이며, 천국, 지옥은 없다고 생각하는데 요사이 인터넷에서 저에게 오는 편지가 목사님이 자꾸 요사이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하시는데 그것 좀 안하면 좋겠습니다. 사람이 죽기 싫거든 이 세상에 붙어서 개똥밭에 굴러도 세상에 살고 싶다. 그러니까 강단에서 죽음에 대한 말과 천당과 지옥 말을 하니까 듣기 싫다고 그래요. 듣기 싫어도 해야지 어떻게 합니까? 감옥이 있다는 것 듣기 좋은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죄 지으면 감옥 간다고 말해야지요. 우리의 인생이 예수님 없이는 죽고 죽은 후에 심판이 있고 믿는 자는 영생에 믿지 않는 자에게는 영벌에 들어간다는 것 말해야 돼요. 세상사람 듣기 싫어요. 그러나 우리는 진리를 말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인간들은 죽음은 미래적 사건이니 나와 지금 관계가 없고 천국, 지옥은 없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아~ 예수 믿는 사람 너무나 완고하다. 산 위에 올라가는데 이 길도 있고 저 길도 있는데 불교를 믿든 마호메트를 믿든 도교를 믿든 다 믿으면 다 천당에 간다. 여러분 그런 거짓말이 어디 있습니까? 내가 빚을 잔뜩 지었는데 길거리 걷는 사람 붙잡고 내 빚 갚아 달라면 갚아줄 사람 있어요? 죄의 빚을 짊어지고 죽어가는 우리들에게 대신해서 죄의 빚을 짊어지고 죽어주신 이는 예수닙 밖에 없는 것입니다. 절대 진리가 예수 안에 있습니다. 위대한 종교가가 많습니다. 철학가도 많고요. 인생의 교사가 많아요. 좋은 일입니다. 감사한 일입니다. 그러나 구원받는 길을 예수님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죄짐을 대신 짊어지고 십자가에 몸 찢고 피 흘려 죽어서 갚아준 이는 예수밖에 없습니다. 그것 어떻게 아냐? 부활했으니까요. 빚 갚으니까 감옥에서 나오잖아요. 우리 이씨 조선시대에도 나라 돈 천 냥 먹으면 사형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감옥에 갇혔을 때 천 냥 빚을 갚으면 해방되어 나왔습니다. 어떤 사람이 나라 돈 천 냥 먹고 옥에 들어갔는데 얼마 있다가 살아서 걸어 다니면 ‘아~ 저 분 빚을 갚았구나!’ 안 살아 걸어 다니면 ‘사형 당했구나!’ 그렇습니다. 많은 사람이 내가 구주라고 말하고 내가 진리라고 말하고 내가 사람을 살린다고 말했지만 죽음의 무덤에 들어가고 나온 사람이 없습니다. 그 감옥에서 못 나왔습니다. 그러나 유일하게 나온신 분 한분 계십니다. 예수님인 것입니다. 사셨네. 사셨네. 구주 예수 사셨네. 우리의 죄를 짊어지고 죽음의 감옥에 들어갔다가 사흘만에 다 청산해 버리고 나왔었습니다. 예수님이 살아 계시므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 죄는 청산되었어요. 율법이 아무리 우리를 정죄해도 겁나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갚았습니다. 마귀가 아무리 비난해도 겁나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다 갚아 버렸습니다. 예수님의 보혈의 온실 속에 들어 있으면 마귀도 율법도 우리를 정죄하거나 비난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만이 절대 진리요, 절대 구원자가 되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시각을 받아들이고 하나님 말씀대로 예수님 앞에 나와서 십자가를 믿으면 큰 역사가 일어나지요. 하나님의 시각을 그대로 받아 들여서 우리가 죄인이요, 우리가 절망적이고 허무와 무의미한 존재고 멸망할 존재라는 것을 알면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해답을 제시해 놓지 않습니까?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은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겠다는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문제를 해결해 놓았지 않았습니까?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모셔 들이면 하나님의 해답을 받아들이면 예수를 통해서 값없이 용서와 의로움과 영광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 영국에 처칠 수상이 한참 전쟁의 막바지에 폐렴이 걸려서 죽게 되었습니다. 그럴 때 알렉산더 플레밍이라는 의학박사가 페니실린을 발명해서 그 주사를 놓아서 처칠이 살아났습니다. 그래서 2차대전을 승리로 이끈 것입니다. 알렉산더 플레밍은 참 좋은 신자였습니다. 그에게 신문 기자들이 찾아가서 물었습니다. 당신이 과학자로써 지금가지 발견한 것 중에 무엇이 가장 위대합니까? 플fp밍이 가만히 쳐다보고서 하신 말씀이 “내가 발견한 가장 위대한 것은 내가 죄인이라는 것을 발견한 것 하고 이 죄를 예수님의 십자가에 대신 짊어지고 몸 찢고 피 흘려 죽어 주셔서 나를 용서하고 구원해 주셨다는 이것을 발견한 것입니다.” 과학자 말치고는 너무나 엄청난 종교적인 말 아니겠습니까? 기자들의 기대는 어긋났지만은 플레밍이 말한 것은 솔직한 고백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발견한 가장 위대한 진리는 우리가 죄인이라는 것과 예수님이 우리 죄를 갚았다는 것입니다. 그것보다 더 위대한 진리와 그보다 더욱더 놀라운 소식이 어디 있습니까?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시각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세상과 마귀를 벗어 버리고 성령 충만과 거룩함을 얻게 되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마음도 몸도 고침을 받습니다. 예수님은 치료자로 오셨기 때문에 십자가를 통하여 우리에게 치료와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김진도 집사가 간증한 간증을 보니까 부친이 재작년에 갑자기 치매증세가 왔습니다. 대소변도 가리지 못하고 아들 부부 얼굴도 몰라봤습니다. 교구 식구들에게 기도를 요청하고 치매에서 놓여남을 받은 아버지의 모습을 마음속에 바라보았습니다.
하나님의 시각을 통해서 바라보았습니다.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가 나음을 입었다. 그런데 의사가 하는 말은 “그런 소리 하지 마십시오. 당신 아버지의 뇌의 반이 세포가 죽었습니다. 절대로 회복되지 않습니다.” 인간의 시각으로 본 것입니다. 그것을 보면 기도도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 집사님은 하나님의 시각으로 보았습니다. “나는 몰라요. 하나님이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나음을 입었다고 했으니까 나는 하나님의 시각으로 보고 우리 아버지가 나은 줄 믿습니다.” 식구들도 기도하고 구역원들도 기도하고 여섯 달을 계속 낙심하지 않고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이 어른이 치매에 걸려서 천지를 분별하지 못하면서도 오직 한 것은 그런 가운데도 성경은 늘 읽고 주기도문은 줄줄 외운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성령이 도와서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자기 정신으로 한 것 아니에요. 그리고 난 다음에 점점 회복되어서 아들도 알아보고 딸도 알아보고 대소변도 가리고 요사이는 노인정에 즐겁게 다닌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시각으로 보면 절망이지요. 하나님의 시각으로 보면 희망이 있지요. 하나님은 하나님의 시각을 보고 예수를 통해서 우리가 축복을 받은 줄 알면은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가 믿고 나올 때 십자가로 우리 저주를 제하시고 우리에게 축복을 주신 것을 받아 들여야만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저주를 대신 짊어지고 축복을 십자가에 주셨기 때문에 예수 믿는 종교는 축복의 종교요, 예수 믿는 도는 축복의 도요, 예수를 통해서 내가 저주에서 해방되었다는 것을 믿어야 되는 것은 하나님의 시각으로 보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리스도가 우리 저주를 짊어지고 갔다고 했기 때문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빈 배를 타지 않고 그리스도가 우리의 생명의 가치가 된 어디서 와서 왜 살며 어디로 가는지를 알게 되고 예수님 안에서 믿음, 소망, 사랑이 넘쳐나고 의와 희락과 평강이 넘쳐나고 예수 안에서 천당의 영광이 넘쳐나는 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하나님께 받는 은혜는 말로 형용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영생 천국에 들어갈 때 여러분 얼마나 얼마나 영광스럽겠습니까? 십자가를 통하여 값없이 아무 공로도 없이 주님의 보혈능력 때문에 하늘문이 열리고 눈물과 근심과 탄식과 이별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앓는 것이 없는 영생천국, 하나님이 예비한 아름다운 맨션, 아름다운 산천초목, 그 아름다운 영원한 처소에 우리가 들어가서 영원히 산다는 것을 생각할 때 얼마나 놀랍습니까? 이것은 사람의 시각으로 보지 않고 하나님의 시각으로 보고 예수를 믿으면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하나님의 시각으로 보는 인생과 해결책을 버리고 십자가를 등진 사람들은 영적인 죽음을 가슴에 안고 사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사망이 그 속에 꽉 들어차 있고 잃어버린 사람입니다. 어디서 와서 왜 살며 어디로 가는지 모릅니다.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 세상 자랑, 욕심만 가지고서 살다가 정처 없이 떠납니다. 잃어버린 사람. 길을 잃어버린 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습니까? 소망과 평안과 기쁨도 다 잃어버리고 그저 돈, 돈, 돈하고 삽니다. 돈이 뭡니까? 영국의 런던에 어느 신문사에서 돈이 무언지 정의를 하면 상을 주겠다 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응모했는데 신문배달 하는 어린소년의 응모가 1등이 되었습니다. 그가 뭐라고 했습니까? ‘돈은 천당 가는 것만 제외하고는 온 세상 어디 통과 안 되는 데가 없는 패스포트다. 돈은 행복만 제켜 놓고 이 세상에 못 살 물건이 없는 것이 돈이다.’ 올바르게 봤습니다. 돈이 아무리 많아도 천당은 못가요. 돈이 아무리 많아도 행복은 돈 주고 사지 못해요. 여러분 이 세상에 소망과 평안과 기쁨은 예수님 안에서만 얻을 수 있는데 그것을 돈이나 지위나 명예로 얻을 수 있다고 하기 때문에 처참한 고통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 없이 텅 빈 인생을 사람들은 살다가 빈 배 가지고서 어떻게 이 세상을 떠나가겠습니까? 절대 절망인 죽음이 오면 무방비 상태입니다. 방비를 할 수 없어요. 죽음이 오는데 어떻게 방비합니까? 사람들은 항상 바쁘다고 말합니다. 나는 그림을 보니까 어느 그림에 어떤 회사 사장이 앉아서 일을 열심히 하는데 수차 뒤에 와서 시간 좀 내주십시오. 그리고 예수를 믿으십시오. 나 바빠요. 나 믿을 시간 없어요. 또 다음에 와서 예수님이 와서 등을 두드리면서 ‘회개하고 예수를 믿게 구원을 받게..’ 시간 없어요. 자꾸 그런 말 하지 마세요. 세월이 흘러서 이 사람 백발이 되고 이제 노인이 되었는데도 지금도 앉아서 열심히 일을 합니다. 등을 툭툭 두드리면서 “가자꾸나!” “시간 없어요. 못가요.” 돌아보니까 죽음의 사자가 왔어요. 죽음의 사자가 와서 “가자!” 시간이 아무리 없어도 이제 가야 되는 것입니다. 죽음의 사자에게 끌려서 사지로 끌려갑니다. 여러분 절대절망인 죽음에 무방비한 사람들이 바로 하나님의 계획을 버리고 십자가를 저버린 사람들의 운명이 아니겠습니까? 영원한 지옥불이 불탈 것입니다.
제가 일본 후쿠오카에 가면 구경 가는 곳이 있습니다. 화산지대입니다. 큰 분지 밑에 물이 부글부글 끓고 있어요. 100도가 넘는답니다. 물이 호수처럼 된 물이 끓고 있는데 이야기를 들으니까 자살할 사람들이 많이 와서 그 물속 위에서 다이빙해 들어가서 죽는다고 해요. 죽어도 더럽게 죽어요. 100도로 끓는 물에 다이빙해서 들어가서 자기가 익어서 죽는데 몸은 익어서 죽고 영혼은 불 못에 들어가서 불타고 그런 법이 어딨어요. 사람이 여러분 불 못에 들어가서 영원히 영원히 불탄다는 것 쉽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손톱 속에 가시하나 박혀도 밤새도록 아파서 잠을 못 자는데 온몸이 불덩어리가 되어서 불속에 들어가서 이글거리는 곳에 어떻게 영원히 지내요. 그럴 리가 있을라구. 그것은 인간의 시각이구. 하나님의 시각으로는 하나님께서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않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여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했습니다. 첫째 사망은 몸이 죽는 것이고 둘째 사망은 지옥 불에서 영원히 불타는 것입니다.

<결론>
하나님이 인생과 세상을 보는 시각은 절대 진리요, 타협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진리이신 예수님을 믿고 모셔 들이면 천국의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반드시 들어가게 돼요. 그러나 하나님의 시각을 반대하고 인간적인 시각을 따르면 영적인 죽음과 정신적인 광야를 방황하다가 우주의 쓰레기 소각장인 ‘게헨나’ 즉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반드시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선택의 기로에 서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 만사를 바라보고 하나님이 명하신대로 순종할 것을 선택할 것이냐, 인본주의로 인간이 보는 시각으로 만사를 보고 하나님을 등지고 살다가 영원한 파멸을 당할 것이냐 오늘날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기도>
사랑이 많으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생명과 사망, 영생과 영멸, 영광과 수치가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의 시각으로 보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는 영원한 구원을 받을 수 있고
인간적인 시각을 보면 무신론자, 불신자, 반역자들이 되어 영원히 버림받고 불과 유황 불에 타게 됩니다. 야웨 하나님이여, 원하고 기도하오니 우리 눈을 밝히사 모두 다 하나님의 시각으로 인생과 사물을 보게 도와 주시옵시고 하나님의 시각으로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게 도와 주시옵시고 구원을 얻어 천국 영생에 들어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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