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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를 이렇게 살자

고린도전 최용우............... 조회 수 1872 추천 수 0 2009.04.13 21:5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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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고전13:13 
설교자 : 조용기 목사 
참고 : 2004년 1월 4일 주일2부설교 
말씀 :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서론>
『새해를 이렇게 살자』 이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잠언서 20장 18절에 보면 “무릇 경영은 의논함으로 성취하나니 모략을 베풀고 전쟁할지니라”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새해라는 생존경쟁터에 나갈 때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영적 모략을 가지고 나가야 승리하는 새해를 살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영적 모략은 간단합니다. 새해를 살아갈 때 우리 가슴속에 간직하고 가야될 것은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가지고 나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본론>
1. 믿음으로 순종하며 살자
첫째로, 믿음으로 사는 새해를 우리가 모색해야 됩니다.
믿음은 우리가 우리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서 배울수가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우리 모든 믿는 자의 모범이 되고 사표가 되기 때문인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나이 일흔 다섯 살에 영광의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아브라함에게 소명을 주셨습니다.
창세기 12장 1절로 4절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찌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좇아 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그 나이 칠십 오세였더라”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소명을 받았을 때 가나안 땅으로 나아가는 지도 한 장 없었습니다. 가나안의 삶이 어떠하다는 역사적인 지리적인 정보도 전혀 갖지 못했습니다. 오직 아브라함이 바라본 것은 하나님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만 바라보고 출발했습니다.
성경은 히브리서 11장 8절에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쌔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어디로 가야될지 몰랐습니다. 한발자국, 한발자국 옮길때마다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의 인도를 받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를 지날 때 하나님이 만나를 주시지 않았습니까? 열흘분도 주지 않고 한달분도 주시지 않았었습니다. 주님은 매일매일 만나를 거두도록 하셨습니다. 그것은 매일매일 하나님을 바라보고 식생활 문제를 해결하는 것입니다. 어지간하면 한주일치를 주실수도 있는데 최소한도 보름먹을 양식을 한꺼번에 주실수도 있는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하루하루 주님과 교통하며 주님을 바라보고 주님을 의지하며 살기를 원했었습니다.
옛날에 신사참배 안하려고 거부하다가 서대문 형무소에 들어가서 수많은 고생을 당한 고 안이숙씨의 찬송쪽에도 ‘내일일은 난 몰라요. 하루하루 살아요.’ 그 다음 모르겠습니다. 하루하루 살았어. 일본사람의 그 말로다 할 수 없는 핍박을 받으면서 감옥속에서 하루하루 요행도 불행도 자기힘으로 할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하루하루 산다. 우리 아브라함에게 배울 신앙은 바로 그것입니다. 우리가 10년 앞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려 주시옵소서. 1년 후에 어떠한 일이 일어날지 알려 주시옵소서. 그렇게 하면 하나님 응답 안하십니다. 한날 괴로움은 그날에 족하니라. 오늘 하루 주님을 바라보고 주님의 인도를 받고 살라는 것입니다.
빌리 그라함이 한국에 와서 집회할 때 와서 노래 불러준 킴 윅스란 한국계 미국 여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6.25때 전선에서 폭격을 만나 두눈을 잃었습니다. 고아로써 고원에 있을 때 미국 상사 한 사람이 양딸을 삼아서 미국으로 데려가서 인디아나 주립대학을 졸업하고 오스트리아 음악학교에 유학을 하고 난 다음 굉장히 훌륭한 영적인 성악가가 되었습니다. 그가 빌리 그라함때 우리 한국에 와서 찬송을 불렀습니다. 그런데 그 간증이 굉장히 감정어린 간증을 했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나는 장님입니다. 나를 인도하는 사람 없이는 나는 움쩍도 할수 없습니다. 길거리에 나갈때는 항상 인도하는 사람이 내 손을 잡고 인도해 주는데 그때마다 그 사람이 10m 밖에 계단이 있습니다. 50m 밖에 웅덩이가 있습니다.” 이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바로 앞에 계단이 있으니까 발을 높이세요 걸리지 않게... 바로 앞에 웅덩이가 있으니까 옆으로 비키세요. 언제나 그렇게 말하지요.” 그러면 바로 앞에 계단이 있고 바로 옆에 웅덩이가 있고 그래서 가다보면 목적지에 도달한다. 그러면서 “비록 나는 장님이 되어서 안내자의 그말을 가지만은 인생도 그렇지 않느냐고 하나님이 1년 앞길, 10년 앞길은 보여주지 않더라도 내 하루하루 살아갈 동안에 내 앞길 요것은 요렇게 하라. 저것은 저렇게 하라.” 바로 내 앞에 있는 한걸음 한걸음을 주님이 인도해 주시고 그 걸음을 따라 갈때에 나중에 1년이 되고, 10년이 되고 결국에는 천국까지 목적지에 도달할수 있다고 말씀한 것입니다. 여러분 그러므로 우리가 이 새해를 살동안에 너무 거창스럽게 “하나님이여, 1년 동안에 일어날일 보여 주시옵소서. 몇 달후에 어떻게 될지 인도해 주시옵소서.” 그렇게 하지 말고 “아버지 오늘도 새날을 맞이했습니다. 이 하루를 주님이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이 하루를 주님께 의지하고 살겠으니 주님이 붙들어 주시옵소서.“ 그럴 때 주님은 하루 하루 주님을 의지하여 살도록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우리가 믿음을 쫓아 살때에는 하나님께 모든 짐과 일을 맡기고 살아야 됩니다.
고린도후서 6장 1절로 2절에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하노니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가라사대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를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라고 한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오늘 은혜의 시대에 우리가 기도하고 하나님께 구원을 바라는 신앙생활을 안하면 은혜를 헛되게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은 주님이 과거에 계신 하나님 아니시고 미래에 계신 하나님 아니시고 현재 우리와 같이 계셔서 지금 우리 기도를 들으시고 지금 우리를 돕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우리의 짐을 맡길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기도를 들으시고 뭘 도우십니까? 우리의 짐을 대신 짊어져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1장 28절에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는 것입니다. 짐을 맡기고 쉬라는 것입니다.
시편 68편 19절에 “날마다 우리 짐을 지시는 주 곧 우리의 구원이신 하나님을 찬송할찌로다”
과거만 우리 짐을 저주시는 분이 아니고 미래에만 짐을 저주시는 것이 아니라 날마다 우리의 짐을 지어주시는 구원의 하나님, 지금도 하나님은 여러분의 짐을 짊어지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매일매일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주님께 내어 맡기고 사는 것입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어디에 가서 살까, 무엇을 할까 모든 그 짐을 야웨께 맡기면 매일매일 하나님이 우리 짐을 지시고 우리를 쉬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우리의 일은 우리의 일이 아닙니다. 이제 우리와 같이 계시는 하나님은 우리의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예레미야서 33장 2절로 3절에 “일을 행하는 여호와, 그것을 지어 성취하는 여호와, 그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자가 이같이 이르노라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일은 내가 한다. 일은 내가 성취한다. 너가 할 일은 내게 부르짖어 기도하는 것이다. 그러면 내가 응답하고 크고 비밀한 일을 보여주겠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가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짐을 하나님께 맡기고 일을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섬기고 순종하며 사는 것이 믿음으로 사는 삶인 것입니다. 눈에 안보이는 하나님의 손을 잡고 기도하며 나가는 이러한 믿음의 삶을 금년도에 우리가 살아야 할것인 것입니다.
중국 선교사로 유명한 선교사로 유명한 허드슨 테일러는 믿음으로 중국 내지에 들어갔습니다. 선교활동을 하다보니 점점 일은 많아지고 도울 손길은 없고 물자와 돈이 부족해서 너무나 스트레스를 받아 정신 분열증에 걸릴 지경이었습니다. 그는 고민고민 하다가 하루 성경을 읽었는데 요한복음 15장을 읽었습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느니라”(5절) 그 말을 읽을 때 하나님의 성령께서 그 마음 속에 환하게 비춰 주었었습니다. “아~ 포도나무 가지가 습기와 양분을 끌어 당기려고 발버둥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 아닌가! 나무가 습기와 양분을 가지에게 전달해 주면 가지는 그것을 받아서 잎피고, 꽃피고, 열매만 맺으면 되는 것이 아닌가. 예수님이 포도나무요 나는 예수께 붙은 가지이므로 예수님이 내게 필요한 인원도 전달해 주시고 물자도 전달해 주시고 돈도 전달해 주시면 나는 받아서 일만하면 될 것 아닌가! 왜 예수님 할 일을 내가 맡아서 고민을 했는가!” 크게 깨닫고 회개하고 그 마음속에 넘치는 평화를 얻게 된 것입니다. 그날부터는 그는 번민하지 않고 고민하지 않았습니다. “주님! 도울수 있는 사람을 보내는 것도 주님이 하시고 물자를 보내는 것도 주님이 하시고 돈을 보내는 것도 주님이 하시는 일이고 나는 받아서 시키는 일만 하면 되는 것이니 주님께서 나를 붙들어 주옵소서”그날부터는 그가 엎드려서 주님께 달라고 기도하는 것마다 주님이 응답하여 주어서 그는 중국이 공산화 되기전까지 중국내지에서 크게 복음으로 성공하는 역사를 베풀수 있게 된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짐은 우리의 주 되시는 예수님께서 다 짊어져 주십니다. 새해에는 우리의 모든 문제와 고민을 주님께 맡기고 우리의 기도를 듣고 우리를 도우시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사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소망을 가슴에 품고 살자
둘째로, 새해에는 소망을 가슴에 품고 살아야 됩니다.
소망이 없으면 사람은 살수가 없습니다. 소망이 있으면 어떠한 역경도 참고 견뎌 나갈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에게 확실한 소망이 있습니다. 그것은 천국 소망인 것입니다. 이 세상 소망은 구름같고 부귀와 영화 또한 꿈이지만 천국소망은 확신한 소망인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살다가 죽는다는 것은 냉엄한 현실이 아닙니까? 매일같이 사람이 죽어갑니다. 지금도 죽어갑니다. 죽는 사람은 대열에서 떨어져 나가서 사라지고 살아있는 사람은 어깨를 서로 비벼 가면서 경쟁하면서 뛰어가기 때문에 죽는 사람은 잊어 버립니다. 죽는 사람은 기억에서 사라집니다. 그러나 우리 차례가 오면 우리도 대열에서 떨어져서 죽고 사람들은 우리들을 잊어 버리는 것입니다. 죽음이라는 것은 냉험한 현실입니다.
히브리서 9장 27절에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이처럼 정해놓은 것입니다. 아무도 피할수 없습니다. 확실하게 다가오는 사건입니다. 그리고 예수를 믿지 않고 죽은 사람은 확실하게 지옥으로 내려갑니다.
요한계시록 20장 13절로 15절에 “바다가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지우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
지옥도 확실한 것입니다. 예수를 믿지 않고 구원을 받지 않은 사람이 가는 곳은 바로 지옥이요, 불못인 것입니다. 이것 거짓이 없습니다.그러나 우리는 소망이 넘친 것은 예수를 믿을 때 누구든지 구원을 받을수 있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여러분 콩심은데 콩나고 팥심은데 팥나잖아요. 아무것도 안심으면 잡초만 나잖아요. 예수를 심어야 영생의 열매를 맺게 되는 것이지 심지 않으면 아무것도 안 생기는 것입니다. 예수의 복음을 듣지 못해서 예수님의 생명의 씨앗을 못심은 사람도 생명을 얻지 못하고 예수의 복음을 듣고도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은 생명의 씨앗을 심지 않았으므로 생명의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입니다. 오직 생명의 씨앗은 예수님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생명 씨앗을 심어야 영생으로 거두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없이 구원 받을수 없습니다. 예수를 믿어 거듭나고 생명의 열매를 맺은 사람은 반드시 천국에 가고 그리스도를 심지 않고 마음속에 잡초만 무성한 사람은 반드시 지옥으로 가는 것입니다.
로마서 5장 1절로 2절에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우리 마음에 큰 즐거움과 기쁨이 있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이루고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기 때문에 소망이 넘치게 되는 것입니다. 천국이 왜 확실한가. 천국서 예수님이 오셨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세상에 있는 사람이 천국 이야기를 하면은 아리송하지만은 천국에서 예수님이 오셔서 우리 위하여 십자가에 못박히고 피흘리고 죽었다가 부활하셔서 또 천국으로 가셨습니다. 확실하게 하나님이 사람으로 오셨다가 우리를 대속하시고 또 하늘로 가셨기 때문에 예수님의 말씀은 틀림이 없는 사실인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장 1절로 3절에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왜 자꾸 근심하느냐? 하나님 믿었으니 나도 또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주님있는 곳에 같이 있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우리 뭐 저 천국 말죽거리에 갔다 놓겠다. 그말씀 안하셨습니다. 주님 계신곳에 우리도 같이 있겠다. 얼마나 소망찬 말인 것입니까? 바울선생은 셋째 하늘에 올라갔다가 그 영광을 보고 내려온 이후로는 항상 그는 몸을 떠나 그리스도와 함께 있기를 소원했었습니다.
그는 고린도후서 5장 1절에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나니”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렇게 소망한다가 아닙니다. 나는 안다. 직접 내가 가서 보고, 듣고, 만지고, 체험했으니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줄 나는 안다. 얼마나 확신에 찬 말인 것입니까?
사도요한은 밧도섬에서 유배를 가 있다가 하나님의 성령의 감동을 받아서 천국에 올라가서 천국의 영광을 보았습니다.
요한계시록 21장 1절로 2절에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이것은 소설이 아닙니다. 만화가 아닙니다. 확실한 것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과 새 예루살렘이 우리를 위해서 예비해 있다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날이 이제 심히 가까웠습니다. 금년도가 우리 마지막 이땅에서 사는 날이 될지도 모릅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있을곳을 예비한지 2천년의 세월이 지나갔습니다. 모든 것이 예비 되었습니다. 이제 주님은 준비된 사람을 데리러 곧장 오실 것입니다.
로마서 13장 12절로 14절에 “밤이 깊고 낮이 가까왔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고 말한 것입니다.
이제는 깰때가 왔습니다. 회개할때가 왔고 마음을 정결하게 할 때가 왔고 주님께 순복할때가 왔고 봇짐을 쌀때가 온것입니다. 깨어야 됩니다. 잠들어서는 안됩니다. 우리 미국 하나님의 성회 선교사로써 몽고에서 오랫동안 일하다가 미국으로 돌아온 분이 계신데 그분의 간증을 제가 읽어 보았습니다. 몽고에서 일하다가 외딸이 몽고에서 병들어 죽었습니다. 의료시설이 없고 약이 없으니까 미국같으면 살릴수 있었는데 할수없이 몽고에서 딸이 죽고 딸을 묘지에 파 묻고 그 아버지가 너무나 가슴이 쓰리고 아파서 통곡을 하고 울었습니다. 집에 돌아와서도 잠을 못이루고 몸부림을 치며 가슴을 치고 머리를 뜯으면서 울었습니다. 그러다가 깜박 잠이 들었습니다. 갑자기 꿈에 하늘나라가 황금빛으로 물들고 온 세상이 들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온 천지를 우렁차게 울리는 나팔소리가 한번 크게 울리고 두 번째 나팔소리가 울리고 세 번째 나팔소리가 울리니까 주안에서 죽은 자들이 다 흰옷을 입고 부활합니다. 자기가 그때 나팔 소리 들으면서 묘지가에 있었는데 자기의 딸이 일어나서 자기를 향하여 손을 펴고 웃는데 어린딸인데 20세가 넘은 너무나 아름답고 치렁치렁 머리카락을 나부끼면서 천사와 같이 아름다운 모습으로 “아버지, 나 여기 왔어요.”“어떻게 네가 죽었는데 여기에 왔느냐?” "아버지, 부활의 그날에 내가 이와같은 모습으로 아버지를 만나러 올것입니다. 나는 지금 천국에 와서 주님과 함께 있습니다. 주님이 나를 돌보아 주십니다. 곧 주님 오실 때 부활의 그날에 내가 이 모습으로 아버지를 맞이할 터이니 너무 슬퍼하지 말고 너무 염려하지 말고 눈물을 닦으십시오.”그는 그 장면을 보고서 깨어났습니다. 너무나 마음에 감격을 입고 그날 이후로 눈물을 그쳤습니다. 그는 이제 그 이상 그딸이 있는 묘지에 꽃다발을 놓으려고 가지 않았습니다. 왜냐, 그 딸이 그 묘지에 있지 않고 하늘에 있으며 부활의 날에 그리스도와 함께 찬란한 모습으로 찾아오는 영광을 바라보았기 때문인 것입니다. 천국은 확실히 있고 지옥도 확실히 있습니다. 여러분 저는 성경은 매년마다 반드시 한번씩 읽습니다. 사람이 지은책은 아무리 좋은 책이라도 한번 읽고는 더 읽지 않습니다. 그러나 작년에 제가 3번 읽은 책이 있습니다. 금번 네 번째 또읽고 있습니다. “천국은 확실히 있다”["Heaven is so real" Choo Thomas 씀, 조용기 옮김, 서울말씀사]는 이 책입니다. 한 사람이 천국에 17번 갔다 왔습니다. 우리 성경에는 천국과 지옥에 대한 제목으로 하나님말씀 많이 했지만 천국의 내용은 별로 설명해 놓지 않았습니다. 저는 항상 알고 싶었습니다. 천국은 어떠한 곳이며, 지옥은 어떠한 곳일까? 반드시 천국이 있고 지옥이 있는 것은 나는 알고 있지만 내용을 내가 모르니까 주님이 그 내용은 상세히 말씀 안해서 늘 아쉽게 여겼는데 이 책을 읽고 그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아~ 천국의 내용은 이렇구나. 지옥의 실상은 이렇구나~“ 너무나 감동해서 세 번 읽고 지금 네 번째 읽고 있습니다. 여러분 천국은 확실히 있습니다. 지옥도 확실히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열심히 전도하고 기도해서 우리의 부모, 형제, 일가, 친지, 이웃을 주께로 인도하려고 최선을 다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런 소망이 우리 가운데 있어서 항상 우리는 천국소망 가운데 살아야 됩니다. 또 이땅에 사는 동안에도 우리가 주안에 있으면 주안에서 소망이 있어요.
시편 146편 5절에 “야곱의 하나님으로 자기 도움을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그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께 소망을 두면 복이 있어요. 왜냐하면 우리의 목자되신 예수님이 우리를 매일매일 이끌어 가기 때문에 성경 로마서 8장 28절 말씀대로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그래서 소망이 있어요. 나쁠때도 소망이 있고 좋을때도 소망이 있고 성공할때도 소망이 있고 실패할때도 소망이 있는 것은 주님 안에서는 끝장이에요. 합동하여 선을 이루게 되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리스에 있었던 일입니다. 집안이 너무 어려워 학교를 다니지 못해 겨우 자기 이름만 쓸줄 아는 한 사람이 있었는데 어느날 한 은행에서 수위 모집이 있어 응시했는데 이름 석자밖에 못쓰니까 시험지 문제가 뭔지 읽을 수가 없어서 그만 낙방했습니다. 은행 수위 시험에 낙방을 해서 너무나 낙심을 해서 교회에 가서 엉엉 울었습니다. “하나님 나는 왜 가난한 부모를 만나서 초등학교도 못나오고 이름 석자밖에 못적는 무식쟁이가 되어서 은행 수위에 떨어졌습니까? 하나님 나같은 사람도 이 세상에 살아갈 필요가 있습니까?” 그때 성령께서 마음에 강하게 말했습니다. “야~ 잔소리 말고 봇짐을 싸고 미국으로 가라. 노동자로써 미국으로 가라!” 그래서 그는 얼떨결에 “가겠습니다.” 봇짐을 다 싸서 미국으로 이민을 갔습니다. 뉴욕에 노동자로 가서 노동일을 했습니다. 조금 돈이 모여지자 조그만한 가게를 열고 아침 일찍 일어나고 저녁 늦게까지 뼈 빠지게 일하며 주님께 십일조 드리고 열심히 기도하며 그는 일을 했습니다. 점점 돈을 벌어서 사업이 커졌습니다. 그가 60이 될 때는 브로드웨이에서 알아주는 사업가가 되었습니다. 그가 60세 생일에 잔치를 베풀 때 금융가인 월가에서 알아주는 인물들이 다 참석을 했습니다. 그는 세계에 유명한 인물이 되었습니다. 그때에 신문기자가 와서 물었습니다. “선생님, 자서전을 쓰세요. 자서전. 선생님같은 분이 입지전적인 인물이기 때문에 자서전을 쓰면 후세에 많은 도움이 될것입니다.” 그래서 씽긋이 웃면서 “여보시오. 나는 이름 석자밖에 못적는데 어덯게 자서전을 써요?” 그러니까 신문기자가 쯧쯧 혀를 차면서 "선생님이 만일 글을 알고 유식했으면 굉장히 유명한 사람이 되었을껄요?" 고개를 흔들면서“여보시오. 내가 글을 앍고 유식한 사람이 되었으면 그리스 은행 수위장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때 시험에 합격되어서 지금까지 있었으면 수위 중에도 으뜸이 되는 수위장은 될 수 있지만 이처럼 부자는 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나는 비록 이름 석자밖에 못 적지만 주님을 섬기고 주님을 따라왔기 때문에 주님이 나를 도와서 오늘 미국에서 이렇게 큰 부자가 되게 만들었습니다” 라고 그는 간증을 했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 세상에서 교육을 못받았다. 가문이 좋지 않다. 환경이 어렵다. 이것은 인간적으로 하는 말인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께 소망을 주고 주님을 의지하고 기도하고 나가면 모든 것이 합동하여 선을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절대로 주님은 우리를 손해나게 하지 않는 영원한 십자가 플러스 인생을 살도록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새해를 살면서 결코 좌절하지 말고 그리스도 안에서 천국소망과 현재의 주님이 합동하여 선을 이루는 역사를 베푼다는 소망 가운데 살아야 돼요. 긍정적이고 적극적이고 창조적인 삶을 우리가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3. 사랑을 실천하며 살자
셋째로, 우리는 이 새해를 살 때 사랑을 실천하며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 모든 사람들은 다 사랑에 빚졌습니다. 인간적으로 봐도 부모에게 사랑의 빚을 지고 혹은 남편에게 사랑의 빚을 지고 아내에게 사랑의 빚을 지고 이웃에 사랑의 빚을 졌습니다. 조금이라도 사랑받지 않고 이 세상에 태어나고 사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가장 위대한 사랑의 빚은 우리 하나님께 진 빚인 것입니다.
요한1서 4장 8절로 11절에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사랑이란 입술로 말하는 사랑이 아닙니다. 실천적인 사랑에 대한 것입니다. 실천적 사랑이란 뭡니까? 짐을 나누어 지고 삶에 동참하고 삶의 희노애락을 나누고 섬기는 것이 실제적인 사랑입니다.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하면서 “주시옵소서. 주시옵소서. 주시옵소서. 나만 사랑해라. 나만 사랑해라.” 이것은 사랑이 아니죠. 사랑이란 삶에 동참하고 짐을 나누어저야 되는 것입니다. 좋은 것 서로 나누어야 사랑이죠. 그리고 섬기는 것이 사랑이죠.
하와이 주에서 하도 문둥병 환자가 많은지라 하와이 정부에서 문둥병 환자를 전부 몰로카이섬으로 모아 놓았습니다. 문둥병이 걸렸으니 희망이 없지 않습니까? 몰로카이섬에 모인 사람들은 술마시고 아편맞고 서로 죽이고 싸우고 생지옥도 그런 지옥이 없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자원해서 선교를 들어간 분이 다미엔 신부입니다. 다미엔이 젊은 나이에 키도 훤출하고 혈색도 좋고 잘생긴 분이 들어가서 “여러분 하나님은 사랑입니다.” 하니까 그 사람들이 모두다 아우성을 쳤습니다. “하나님 사랑? 너는 잘먹고, 잘입고, 건강하니까 하나님의 사랑이라 하지만 하나님이 살아 계시면 우리처럼 코가 문들어지고 입술이 썩어 내려 앉고 손가락과 발가락이 떨어져 나간 이러한 삶을 준 그 하나님이 사랑이란 말이냐? 당장 나가지 않으면 죽여 버리겠다.” 다미엔이 생각해 보니까 자기에게는 건강도 있고 청춘도 있고 꿈도 있고 그렇지만 저 문둥병자들 온몸이 문둥이 걸려서 몸이 썩어져 가는데 하나님이 사랑을 베푼다. 그말을 믿겠느냐 말입니다. 그래서 다미엔은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나에게 문둥병 환자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문둥병 환자가 되어서 저 사람들의 생활에 동참하고 그 사람들의 고통을 함께 나누고 그리고 섬기게 하여 주시옵소서.” 간절히 기도했는데 하루는 자기 몸에 붉은 반점이 생긱기 시작했습니다. 문둥이 반점입니다. 너무나 기뻐해서 하나님께 감사했는데 얼마있지 아니하여 눈썹이 빠지고 그리고 손가락이 문드러지기 시작하고 코가 문드러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문둥병 환자들에게 나갔습니다. “나의 문둥병 형제, 자매 여러분! 보십시오. 나도 여러분과 같은 문둥병 환자입니다. 그러나 내속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는 나의 영혼을 구원하셔서 영원한 소망을 주었습니다. 비록 이 세상에서는 죄로 말미암아 우리가 문둥병에 걸려서 고통을 당하지만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몸찢고 피흘려 우리 위해서 죽으신 그 보혈을 의지하면 우리의 영혼이 구원받아 장차 이 썩어질 몸을 벗어 버리고 부활의 새몸을 얻어 영원한 천국에서 살게 됩니다. 나의 문둥병 형제여 내 속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는 여러분 속에도 들어오기를 원하십니다.” 사람들은 감동했습니다. 왜, 다미엔이 입으로만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실천하고 있는 것입니다. 문둥병에 동참하고 그 삶을 나누고 섬기기 때문에 몰로카이에 있는 모든 문둥병 환자들은 모두 다 예수께로 돌아와서 구원을 받고 생지옥이 천국으로 변화되어 버리고 말은 것입니다. 사랑이란 입술로만 말하는 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이란 동참하고, 나누고, 그리고 섬기는데 사랑이 있는 것입니다.
로마서 12장 10절에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라고 말했었으며
로마서 12장 15절로 16절에 “즐거워하는 자들로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로 함께 울라 서로 마음을 같이 하며 높은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 체 말라”고 말한 것입니다.
즐거워하는 자들로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로 함께 우는 삶에 동참하는 것이 여러분 사랑의 실천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라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께서 왜 사랑이라고 말할수 있습니까? 예수님이 하나님으로 천국에 계시면서 너희들 회개하라. 그렇게 했다면 우리는 신학은 알고 철학은 알지라도 사랑은 모를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으로서 사람이 되어 오셨습니다. 우리와 같은 이 세상에 죄많고 세속적이고 마귀가 득실거리고 병들고 가난하고 미워하고 슬퍼하고 탄식하고 좌절하고 절망하고 죽는 이 세상에 인간의 몸을 쓰고 오셨습니다. 우리와 같이 생활에 동참하고 우리와 함께 삶을 나누고 주님께서 우리를 섬겨 주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는 사랑을 보고, 듣고, 만지고, 체험했습니다. 하나님이 사랑이라는 것은 하나의 신학적인 공허한 단어가 아닙니다. 확실하게 현실적으로 우리의 가슴에 메아리치는 체험적인 사랑인 것입니다. 사랑속에 하나님이 계시고 천국이 그곳에 있습니다.
요한1서 4장 16절로 17절에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시느니라 이로써 사랑이 우리에게 온전히 이룬 것은 우리로 심판날에 담대함을 가지게 하려 함이니 주의 어떠하심과 같이 우리도 세상에서 그러하니라”
아무리 교회 지위가 높아져서 목사, 장로, 안수집사, 권사 이렇게 된다 하더라도 사랑이 없으면 가짜입니다. 사랑 가운데 하나님이 계시고 사랑안에 천국이 있습니다. 직위가 하나님을 모시고 오지 않습니다. 지위속에 천국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이 없으면 모든 직위는 다 거짓되고 헛된 것이 불과한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4장 8절에 “무엇보다도 열심으로 서로 사랑할찌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면은 우리는 덮게 돼요. 남의 허물을 덮어주고 상처를 치료해주고 씻어주고 살려주는 것입니다. 미워하는 사람은 덮어주지 않고 벗기고 할퀴고 덮어 씌우고 짓밟고 죽이는 것 아닙니까? 우리가 입으로만 사랑하지 말고 우리의 실천적인 삶속에 사랑을 나타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는 우리는 사랑한다고 말할 수가 없습니다. 이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어떻게 압니까? 우리의 생활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되었지 않습니까? 종교란 뭡니까? 기독교 신앙이란 뭡니까? 의식이요, 형식이요, 신학이요, 철학입니까? 교회당입니까? 아닙니다. 사랑속에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님이 계신 것입니다. 사랑을 제켜 버리면 교회당은 하나의 건물입니다. 신학과 철학은 냉랭한 인간의 논리의 장난에 불과한 것입니다.
40년 동안 종교생활을 하면서도 여전히 자기 중심적인 생활속에서 신앙의 감격이 없어 살아온 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수녀원에 들어가서 엄한 궤율과 의무에 열중해 보면서 신앙에 뜨거운 감격을 느끼려고 하는데 마음에 냉랭했습니다. 수녀원에서 왔다갔다 하면서 복도에 예수님이 빌라도의 뜰에서 로마 군인들에게 채찍에 맞는 그림을 그려 놓았는데 늘 보고 지나다녀도 아무 감격도 없었습니다. 하루는 복도를 지나가다가 그 그림을 힐끗 처다보는데 갑자기 전광석화와 같이 하나님의 계시가 비춰 왔습니다. 예수님께서 빌라도의 뜰에서 허리를 굽히고 로마의 군인들에게 무자비하게 채찍에 맞아 피투성이된 모습을 보고 “아~ 왜 하나님의 아들이 저 채찍을 맞아야 되느냐? 나 때문에... 나의 죄 때문에 십자가에서 못박히고 저 채찍을 맞았구나” 그만 그 복도에서 그는 무릎을 꿇었습니다. 엉엉 목놓아 울었습니다. 한없이 울었습니다. “주여~ 왜, 왜 죄도없고 흠도 없는 하나님의 어린양 예수님이 저렇게 채찍에 맞아 등이 찢어지고 십자가에 매달려야 합니까? 나 때문에 그렇지 않습니까? 내 죄 때문에...” 거기에서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어마어마한 빚을 짊어졌습니다. “나는 예수님의 사랑에 빚진 사람이다.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빚을 갚아야 되겠다.” 그는 거기에서 큰 감동을 느끼고 “나는 세상에서 가장 가난하고 헐벗고 굶주리고 비천한데 가서 버림받은 사람, 소외된 사람, 병든 사람, 행려병자, 문둥이들과 함께 살면서 그들에게 사랑을 갚아야 되겠다. 예수님의 사랑의 빚을 갚아야 되겠다.” 일생을 인도의 캘거타의 가난한 곳에 가서 그 생애를 바치고 노벨 평화상까지 탔습니다. 그 이름은 바로 테레사 수녀입니다. 그가 이 세상을 뜰 때 남긴 유언의 말이 굉장히 가슴을 울립니다. 그는 세상을 떠나면서 다음과 같은 유언을 남겼습니다. “서로 사랑하십시오. 진정한 사랑은 계산하지 않습니다. 그저 줄뿐입니다.” 진정한 사랑은 계산하지 않습니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할 때 계산하고 사랑합니까? 그냥 주는 것이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실 때 계산하고 사랑하셨습니까? 그냥 주신것이지요.
진실로 그리스도의 사랑을 아는 자들은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습니다. 계산하지도 않습니다. 죽기까지 자신을 사랑하신 그리스도의 그 사랑의 빚을 사람들에게 갚으려고 노력하면서 사는 것입니다. 자기 아들을 내어 놓기까지 사랑한 주님, 목숨을 우리 위해서 부어주신 예수님의 사랑, 우리는 그 사랑에 크게 빚진 사람들로써 사랑을 실천하면서 새해를 살게 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시편 127편 1절로 2절에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숫군의 경성함이 허사로다 너희가 일찌기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삶이란 집, 성취라는 성(城)도 사랑이 없으면 다 허사입니다. 가정도 사랑이 없는 가정 허사지요. 사업도 사랑이 없는 사업. 물질만 있지 허사지요. 정치적인 지위나 권력도 사랑이 없으면 물고 찢고 싸우고 사람들을 고통시키는 허무한 일이지요. 이 세상에 크고 작은 일을 다 합쳐서 우리를 보람차게 하고 가치있게 하고 빚나게 하는 것은 사랑입니다. 믿음, 소망, 사랑 이 세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중에 사랑이 제일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결론>
어떤 내용을 가슴에 담고 1년을 살아갈것이냐는 것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그 삶의 내용이 그대로 열매를 맺게 될 것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여러분의 가슴에는 무엇을 담고 이 일년을 살아가시겠습니까? 텅빈 가슴을 그대로 가지고 미움과 분노와 질투와 시기, 분쟁을 담고서 살아가겠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씻고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가슴 속 내용으로 삼고서 1년을 살겠습니까? 여러분은 오직 믿음, 소망, 사랑이 맺는 열매를 맺고 사시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전능하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우리를 불러서 우리의 가슴속에 십자가를 통해서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담아 주시니 감사합니다. 우리의 상처입고 황막한 마음속에 이렇게 귀한 보배를 담아 주셔서 우리는 믿음, 소망, 사랑을 내용으로 삼고 이 한해도 성공적인 인생을 살아갈수 있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보혜사 성령이여 항상 믿음으로 살게 하옵소서. 항상 소망을 갖고 살게 하시고 사랑을 실천하고 사랑의 빚을 갚으면서 살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 아멘

<결신>
여러분이 예수를 구주로 모시지 않은 사람은 마음속에 잡초만 무성한 밭과 같습니다. 생명을 심지 않았으매 마귀의 잡초, 탐욕의 잡초만 무성할 것입니다. 그 잡초를 거두어 버리고 에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씨앗을 심으면 영생으로 열매를 거두게 됩니다.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가운데 머물러 있습니다. 나는 아직 예수 믿지 않습니다. 타락했습니다. 나도 예수 믿고 구원받기를 원하니 나를 위해서 기도해 주십시오. 하시는 분은 대강당, 텔레비실과 지교회와 지성전과 일본 여러 교회에서와 국내 지방교회와 기도처에서와 기독교 TV, CBS TV, 극동방송, 기독교 방송 들으면서 보면서 인터넷 앞에서 예배 드리면서 그 자리에서 일어나 주시기 바랍니다. 일어나서 예수를 구주로 모시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십시오. 예수없이 사는 길은 절대로 없습니다. 심지 않고 거두는 일이 있을수가 있어요?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는데 예수를 심어서 영생으로 거두는 것입니다. 예수를 심지 않으면 지옥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날 일어난 여러분은 이 기도를 소리내어 따라해 주십시오.
사랑하시는 하나님! 저는 죄인입니다. 어디에서 와서 왜 살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고, 방황하며 지냈습니다. 오늘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믿음으로 일어났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 저를 씻어 주시옵소서. 저를 위하여 죽으시고 저를 위하여 부활하신 예수님을 제 구주로 모셔 들입니다. 지금부터 영원토록 주님과 함께 살겠습니다. 하나님은 내 아버지가 되셨습니다. 예수님은 나의 구주가 되셨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저를 구원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 아멘
주님의 이름으로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구원으로 이끌어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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