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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고후 4:7-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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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조용기 목사 |
참고 : | 2004년 1월 11일 주일2부설교 |
말 씀 :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핍박을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우리가 항상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도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서론>
「이 보배를 질그릇 안에」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인생길에 평탄한 행로는 없습니다. 내가 가야 할 길을 타인이 대신 가 줄 수도 없습니다. 들판을 지나 강을 건너고 험한 산 준령을 넘어 캄캄한 터널을 통과하고 비바람치는 폭풍우에 몸이 흠뻑 젖는가 하면 또한 눈보라치는 산악을 지나면서 뼈속까지 추위에 떨고 또 햇볕 쨍쨍한 들판에 나오고. 이와같은 것이 우리 인생에 역사입니다. 그러나 이 인생길에 하나님의 백성은 항상 다른 동반자가 있습니다. 그분이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항상 함께 하시면서 우리에게 빛이 되시고 생명이 되시고 구원자가 되시고 보좌가 되셔서 인생여정을 감당케 해주십니다. 주님의 도우심없이 우리는 인생 일생을 넉넉히 이기고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우리의 실상은 흙으로 만든 질그릇입니다. 질그릇 그 자체는 별 가치도 없고 떨어지면 쉽게 깨어집니다. 그러나 그 질그릇에 보배를 담으면 그 질그릇의 가치와 중요성은 엄청나게 달라집니다. 우리가 주 예수님을 우리의 가슴에 모시면 지극히 귀중한 질그릇이 됩니다. 만왕의 왕, 만주의 주 지극히 크시고 광대하신 하나님을 모시게 된 질그릇의 정체는 달라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본론>
1.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해도 싸이지 않는다
그러므로 첫째,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지고 살면은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않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열왕기하 6장 14절로 17절에 보면 아람왕 벤하닷이 이스라엘의 선지자 엘리사를 잡아야 되겠다고 마음에 한을 품었습니다. 그래서 엘리사가 도단성에 와 있다는 정보를 얻고는 대군대를 동원해서 밤새껏 도단성을 첩첩이 둘러 쌌습니다. 아침에 엘리사의 종이 밖에 나가보고 기겁을 하고 뛰어 들어왔습니다. “선생님, 선생님! 이제 우리는 죽었습니다. 아람군대가 도단성을 첩첩이 둘러싸고 있습니다. 성 건너편에 하늘을 찌를듯한 아람군대의 군기와 창검이 번쩍이고 있습니다.” 그때 엘리사가 종을 보고 말했습니다. “조용히 하고 앉으라. 우리와 같이 계신 이가 저들과 함께 있는 것보다 많다.” 그리고 기도하기를 “하나님이여, 눈을 들어 보게 하옵소서.” 하나님이 종의 눈을 열매 종이 눈을 열어 보니까 아람군대와 엘리사 사이에 하늘에 불말과 불병거가 첩첩이 둘러싸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결국 아람군대는 엘리사를 포로로 잡지 못했습니다.
여러분 우리도 일생을 살면서 우리 주위에 아람군대와 같은 원수가 첩첩이 둘러 쌉니다. 사방으로 우겨싸임을 받을 때가 한두번이 아닙니다. 죄가 우리를 둘러싸고, 세상 유혹이 우리를 둘러싸고, 혹은 질병이 우리를 첩첩이 둘러싸고, 생활의 염려, 근심, 불안, 초조, 절망이 우리를 둘러싸는가 하면 원수가 둘러싸고 우리를 공격합니다. 우리가 그때 우리 힘으로 싸우려고 하다가는 우리 질그릇은 박살이 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안에 계신 예수님을 의지할 때 우리는 문제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예수님밖의 다른 것을 의지하면 우리는 반드시 깨어집니다. 질그릇은 대항할 만한 힘이 없습니다.
성경은 히브리서 10장 38절에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우리 안에 예수님이 계신 것을 알면은 예수님은 하늘과 땅과 세계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지으신 하나님이십니다. 이 하나님을 우리가 믿고 의지하고 환경을 바라보고 뒤로 물러가면 안됩니다.
요한1서 4장 4절에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저희를 이기었나니 이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이보다 크심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안에 계신이가 세상이보다 큽니다. 우리는 초라하고 보잘 것 없어도 우리 안에 우주와 만물을 지으신 보배이신 예수님을 모시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플러스, 우리는 어떠한 일에도 승리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지금부터 약 100년전 영국의 런던 다리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추운 겨울날 한 불쌍한 노인이 지나가는 행인들로부터 동전 한푼을 얻을까 싶어서 다 낡은 바이올린을 열심히 켜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별로 신통치 않는 재주에 지나가는 사람은 한 사람도 귀를 기울이는 사람이 없고 동전 한푼도 던지는 사람 없습니다. 날은 점점 추워지고 노인의 손은 굳어졌습니다. 그런데, 어떤 외국인이 여행을 하다가 그곳을 지나가게 되었는데 가만히 서서 노인을 보더니만 노인앞에 나가서 “노인장 그 바이올린을 내게 좀 빌려 주십시오.” 노인이 조금 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그러나 날씨도 춥고 손도 굳어졌으니까 바이올린을 빌려 주었습니다. 이 노신사는 바이올린을 켜기 시작했습니다. 어찌나 그 선율에 아름다운 음악이 흘러 나오는지 지나가는 사람마다 발을 멈추고 돈을 던져 넣기 시작했습니다. 그 걸인 노인의 모자에 동전이 던져지니 은전이 던져지니 나중에는 지폐가 던져서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계속해서 이 노신사가 바이올린을 타니까 대군중이 모여서 그 추운날에 정신없이 그 바이올린을 들었습니다. 경찰관이 교통에 방해가 되기 때문에 놀라서 이 분을 저지하려고 뛰어 왔다가 경찰관조차 그 음악에 그만 홀딱 빠져 가지고서 정신없이 듣고 있었습니다. 한참동안 듣고 있다가 한 사람이 고함을 쳤습니다. “아~ 저 사람은 니콜로 파가니니다.” 세계적인 바이올린의 천재, 니콜로 파가니니가 그 옆을 지나가다가 노인의 불쌍한 모습을 보고 그 다 낡은 바이올린을 빌려서 타기 시작하니까 그 다 낡아 빠진 바이올린에서 나오는 선율이 모든 사람을 매혹시켜 버리고 말은 것입니다. 군중들 사이로 파가니니는 사라졌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다 낡아빠진 바이올린과 같습니다. 우리가 열심히 켜 봤자 별볼일 없어요. 사람들이 관심도 없고 원수가 치면 우리는 무너집니다. 그러나, 우리 속에 우리를 켜주는 위대한 주님이 계신 것입니다.
불의하고 추악한 우리 인간은 낡은 바이올린과 같이 보잘 것 없지만 그리스도의 손에 들려질 때에 그 가치의 중요성은 하늘과 땅처럼 달라지는 것입니다. 아무리 우리가 우겨쌈을 당하여도 예수님이 우리를 들어 쓰는 이상 우리는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싸이지 않습니다. 우리와 같이 계신 이가 원수들보다 강합니다.
2. 답답한 일을 당해도 낙심하지 않는다
둘째로,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합니다.
역대하 20장 11절로 13절에 보면 유대의 여호사밧왕이 갑자기 모합 암몬 및 마온 왕의 연합군의 침공을 받아 유대가 멸망의 위기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성경에 보면 “이제 저희가 우리에게 갚는 것을 보옵소서 저희가 와서 주께서 우리에게 주신 주의 기업에서 우리를 쫓아 내고자 하나이다 우리 하나님이여 저희를 징벌하지 아니하시나이까 우리를 치러 오는 이 큰 무리를 우리가 대적할 능력이 없고 어떻게 할 줄도 알지 못하옵고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 하고 유다 모든 사람은 그 아내와 자녀와 어린 자로 더불어 여호와 앞에 섰더라”
여기에 여호사밧 왕의 답답한 심정을 보십시오. 적군은 처들어 와서 유다를 포위했는데 대적할 능력도 없고 어찌할 줄도 알지 못하고 주만 바라보니 얼마나 답답하겠습니까? 그럴 때에 하나님께서는 역대하 20장 15절로 17절에 이렇게 선지자를 통해서 대답하십니다.
“야하시엘이 가로되 온 유다와 예루살렘 거민과 여호사밧왕이여 들을찌어다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말씀하시기를 이 큰 무리로 인하여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말라 이 전쟁이 너희에게 속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라 내일 너희는 마주 내려 가라 저희가 시스 고개로 말미암아 올라 오리니 너희가 골짜기 어귀 여루엘 들 앞에서 만나려니와 이 전쟁에는 너희가 싸울 것이 없나니 항오를 이루고 서서 너희와 함께 한 여호와가 구원하는 것을 보라 유다와 예루살렘아 너희는 두려워하며 놀라지 말고 내일 저희를 마주 나가라 여호와가 너희와 함께 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매”
대적할 능력도 없고 어떻게 할 줄도 모르고 당황하여 주님만 바라볼 때 하나님께서 대답하신 것을 보십시오.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는 것은 하나님이 같이 계시면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싸워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 전쟁에는 너희가 싸울 것이 없다. 이 전쟁은 야웨의 전쟁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사실을 우리는 항상 잊지 말아야 돼요.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답답한 일을 당하고 어찌할 줄도 모르고 대항할 능력도 없고 좌절할 수밖에 없을 때 늘 알아야 될 것은 이 질그릇 속에 보배되신 야웨께서 함께 하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는 보배를 질그릇에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답답한 일을 당해도 우리 속에 계신 주님을 의지하면 주님은 우리를 위해서 싸워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싸우는 것이 아닙니다. 인생을 우리 힘으로 살면 우리가 책임져야 되지만 주님이 우리를 위해서 살아 주시면 삶의 전쟁은 주님의 전쟁이지 우리의 전쟁이 아닌 것입니다.
역대하 20장 20절로 21절에 보면 “이에 백성들이 일찌기 일어나서 드고아 들로 나가니라 나갈 때에 여호사밧이 서서 가로되 유다와 예루살렘 거민들아 내 말을 들을찌어다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견고히 서리라 그 선지자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형통하리라 하고 백성으로 더불어 의논하고 노래하는 자를 택하여 거룩한 예복을 입히고 군대 앞에서 행하며 여호와를 찬송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 감사하세 그 자비하심이 영원하도다 하게 하였더니”
하나님을 의지하면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하면 형통할 수 있습니다. 결국 저들은 성가대를 조직해서 군대들 앞에 세워 적군들이 나타났을 때 찬양을 불렀습니다. 그러자 적군들 가운데 대혼란이 일어나서 모압과 암몬과 마온 군사들이 서로 죽이고 살상하여 전쟁은 대승리로 끝나버리고 말은 사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에게도 답답한 일이 너무 많잖아요. 부부갈등. 요사이 부부갈등이 얼마나 많습니까? 한국의 이혼율이 세계에서 두 번째 갑니다. 거의 50%나 됩니다. 그러므로, 두 가정중에 한 가정은 갈등을 겪고 있습니다. 자녀문제가 참으로 괴롭습니다. 더구나 수능시험을 치는 자녀를 가지고 있는 부모들은 말할 수 없는 심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형제간에 다툼도 있고 생활이 풀리지 않을 때 생활고로 말미암아 고통을 당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답답한 일을 당하여 낙심될 때 내 안에 나와 함께 예수님이 계심을 알고 믿고 기도드리고 의지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힘으로 짊어질 수 없는 짐을 우리가 짊어지려고 버둥대면 눌릴 따름입니다. 우리가 해결할 수 없는 일을 우리가 어떻게 해결하겠습니까? 일로 말미암아 망하지 않겠습니까? 항상 주께서 내짐지어 주시고 일해 주심을 기억하고 시인하고 믿고 기도하고 감사하고 의지해야 되는 것입니다.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한다고 말했습니다.
시편 55편 22절에 “네 짐을 여호와께 맡겨 버리라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영히 허락지 아니하시리로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맡겨야 주님이 책임지시지요. 맡기지 아니하면 주님이 책임지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께 맡길 때 용기와 평안과 힘을 얻을 수 있고 낙심치 않게 되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4장 6절로 7절에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우리 마음에 하나님의 평안이 들어와서 어두움을 밝혀 줄 때까지 하나님께 엎드려 울며 기도하고 맡기면 내 속에 계신 하나님이 일어나서 나를 위하여 싸워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구만리 장천 멀리 계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를 구주로 모신 사람은 이 질그릇 속에 보배인 예수님을 이 자리에 모시고 계십니다. 예수님을 여기저기 찾지 마십시오. 여러분 속에 계신 것입니다.
제이 씨 페니[J. C. Penney]라면 미국에 있는 사람들은 모르는 사람이 없습니다. 어느 도시에 가도 제이 씨 페니의 백화점이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1929년 미국 증권시장 파동때 제이 씨 페니는 증권에 투자해서 망해 버렸습니다. 쫄딱 망해서 한푼없는 거지가 되었습니다. 그는 정신적이 번뇌로 밤잠을 자지 못하고 심한 우울증에 걸려서 결국엔 병원에 입원한 신세가 되었습니다. 너무 사람이 고민을 많이 하면 대상포진이라고 해서 온 몸에 물집이 생깁니다. 대상포진이 온 몸에 생겨서 설상가상으로 고통과 눈물로 시간을 보냈었습니다. 그는 살 희망을 잃었습니다. 왜냐하면 있는 재산 다 잃어 버리고 빚은 태산같이 짊어지고 살 길이 없었습니다. 좌절과 절망에 둘러 쌓였습니다. 이제는 자살하는 길밖에는 살아갈 길이 없습니다. 아무리 수면제를 복용해도 듣지를 않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아침 그의 병실이 바로 병원 예배실 곁에 있었는데 예배실로부터 찬송 소리가 들려 옵니다. 그는 찬송가 소리에 귀를 귀울였습니다. 그 다음에는 목사님이 성경을 읽고 설교를 하는데 설교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 환자들이 모여서 다같이 통성기도를 하는데 그것도 함께 고요히 그 기도 소리를 따라 마음 속으로 기도하는데 갑자기 그 마음에 말할 수 없는 평안이 물결처럼 밀려 들어왔습니다. 페니는 그 당시를 회상하며 다음과 같이 고백했습니다. “그것은 기적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찬송과 성경말씀과 기도소리를 듣고 있었을 때 캄캄한 굴속에서 서서히 햇빛이 비취더니 나중에는 그 굴속이 온통 빛으로 가득차는 듯 했습니다. 그것은 마치 지옥에서 천국으로 옮겨진 것같은 느낌이었습니다. 그날로 그는 절망을 딛고 일어났습니다. 마음에 새로운 용기와 희망과 평안과 기쁨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병원에서 퇴원해서 그는 또다시 꿈을 가지고 열심히 일을 했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점점 받아서 미국 전역에 1,700 여개의 백화점을 경영하는 백화점 왕이 되고 또다시 억만장자로 일어설 수가 있게된 것입니다. 인생을 살면서 굴속에 갇혀 있는 것처럼 답답하게 여기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굴을 뚫어 터널을 만들고 어둠 속에서 빛이 되시는 주님이 질그릇 같은 우리 안에 계시기 때문에 낙심하거나 절망해서는 안됩니다. 내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고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않습니다. 어떠한 답답한 일보다도 더 위대하고 크신 예수님이 우리 속에 와서 계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3. 핍박을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않는다
셋째로, 핍박을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핍박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온 세상이 마귀에게 속해 있기 때문에 마귀 속에 사는 우리가 핍박을 안당할 수가 있겠습니까?
요한1서 5장 19절에 “또 아는 것은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고 온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처한 것이며”라고 말한 것입니다.
어느 곳에 가나 마귀는 득실거립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셔서 마귀 권세를 깨뜨리고 천국을 가져 오셨습니다.
요한1서 3장 8절에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셔서 십자가에서 몸을 찢고 피흘려 마귀의 일을 멸해 버린 것입니다. 마귀는 십자가에서 정사와 권세를 다 빼앗겨 버리고 말은 것입니다. 권세를 뺏긴 마귀는 악랄하게 이제는 저항을 하고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5장 8절로 9절에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니라”
계속해서 마귀를 쫓아내야 돼요. 항상 파리처럼 자꾸 덤벼 듭니다. 항상 쫓아내야 돼요. 오늘날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이상으로 마귀는 영적으로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우리를 공격해 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이 땅을 떠나기 전에 제자들에게 부탁한 말 중에 너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매일같이 쫓아내야 돼요. 아침에도 점심때에도 저녁때에도 마귀를 쫓아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영적 전쟁터에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과 나는 아직까지 평화로운 세계에 있지 않습니다. 이 땅에서 게릴라전하는 마귀와 귀신들과 끊임없이 전쟁합니다. 예수님 강림하는 그날에 평화가 다가올 것입니다.
에베소서 6장 12절에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끊임없이 정사와 권세와 이 세상 어두움의 주관자들과 공중에 권세와 악의 영들이 우리를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아니하고 계속해서 공격해 오는 것입니다. 이를 우습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마귀는 결사적입니다.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이 낙심 시키고 패배시키고 지옥으로 끌고 가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매일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보배로운 피를 의지하고 마귀와 대항해서 싸워야 됩니다. 마귀가 강한 곳은 핍박이 심하고 약한 곳은 핍박이 약합니다. 우리나라 같은 곳에는 이미 마귀의 권세가 무너져 있기 때문에 핍박이 약합니다. 그러나 북한 보십시오. 중국 보십시오. 중동 보십시오. 얼마나 마귀 권세가 아직 강하기 때문에 어마어마한 핍박을 하는 것입니다.
디모데후서 3장 12절에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
우리가 주님을 섬기고 더 경건하게 살려고 할수록 마귀의 핍박은 더 심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핍박을 당할 때 낙심하지 말 것은 핍박을 당해도 버린 바 되지 않는다고 말했었습니다. 마귀는 우리가 완전히 버림받은 자가 되기를 원하지만은 핍박을 당해도 예수님이 우리속에 계시므로 핍박을 당하는 우리가 버린 바 되지 않는 것은 예수님이 함께 핍박을 받기 때문인 것입니다.
사울이 예수믿는 사람을 잡아서 죽이고 감옥에 갇히게 하기 위해서 이스라엘의 이웃인 시리아 나라 수도 다메섹으로 원정을 갔을 때 그는 길 중간에서 하늘의 햇빛보다 더 밝은 빛이 비추고 말에서 떨어졌을 때 하늘에서 음성이 들렸습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핍박하느냐”“주여, 뉘시니이까”“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사울은 예수님을 본적이 없습니다. 예수님 사역당시에 사울은 이스라엘에 있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교회를 핍박하고 예수 믿는 사람을 핍박하니까 주님이 말씀하기를 “너는 나를 왜 핍박하는가”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오늘날 우리속에 와 계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질그릇을 깨뜨리려고 하면 그 속에 있는 보배가 상처를 입습니다. 우리를 핍박하면 우리 속에 계신 예수님이 함께 핍박을 당하게 되기 때문에 주님이 핍박받은 우리 속에서 우리에게 위로하시고 힘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핍박당할 때 바깥에서 고난이 다가와도 속에서는 주님이 크게 위로해 주시므로 핍박을 능히 이길수 있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1장 4절로 5절 말씀 우리 다같이 함께 소리내어 읽어 보십시다.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것 같이 우리의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
보십시오. 환난이 크게 다가와서 우리를 어마어마하게 핍박을 하면 우리 속에는 환난을 이길 수 있는 쿠션의 위로가 예수로 말미암아 넘쳐나는 것입니다. 어떠한 환난이나 고난이나 핍박이나 고통이 다가와도 이길 수 있는 것은 우리속 에 있는 위로 때문인 것입니다. 밖에서 아무리 쳐도 안에서 위로해 주십니다. 아무리 핍박해도 우리가 버린 바 되지 않는 것은 위에서 그것을 안아 주시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7장 4절에 “내가 너희를 향하여 하는 말이 담대한 것도 많고 너희를 위하여 자랑하는 것도 많으니 내가 우리의 모든 환난 가운데서도 위로가 가득하고 기쁨이 넘치는도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좋을 때는 좋아서 좋고, 핍박을 받을 때는 겉으로는 울지만 속으로는 위로와 기쁨이 넘치니까 좋은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핍박을 당하면 더 많이 기도하게 되고 신앙이 순수하게 되고 하나님을 더 의지하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편안할 때는 자꾸 세상을 향하고 세상을 의지하지만 핍박과 고난 당할 때는 우리가 점점 깨어져서 주님을 의지하게 됩니다.
고린도후서 1장 8절로 10절에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힘에 지나도록 심한 고생을 받아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우리 마음에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뢰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뢰하게 하심이라 그가 이같이 큰 사망에서 우리를 건지셨고 또 건지시리라 또한 이후에라도 건지시기를 그를 의지하여 바라노라”
그러므로 핍박당할때에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하게 되고 하나님과 더욱 가까워지는 것입니다. 또 핍박 당하면 하늘에서 상이 크지요. 핍박없는 사람은 상이 없잖아요.
마태복음 5장 11절로 12절에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
핍박은 받으면 받을수록 하늘나라에 상급이 온라인 되어서 입금이 되는 것입니다. 점점 우리에게 상급이 많아지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 속에 예수님이 위로해 주시면 어떠한 핍박도 이길수 있어요.
미국에 유명한 롤랜드 헤이즈 [Roland Hayes] 는 대중가수지만 예수 잘 믿기로 유명한 사람이었습니다. 흑인 가수이기 때문에 굉장히 어려움을 많이 겪었습니다. 그가 독일의 베를린에서 독창회를 가졌을 때 일입니다. 이 독창회에 모인 사람들은 거의 백인들이었습니다. 막이 오르고 롤랜드 헤이즈가 노래를 부르려고 할 때 갑자기 누군가 “흑인의 노래는 들을 수 없다. 이 검둥아 노래를 집어치워!” 그리고 상스러운 욕을 하고 백인들이 그만 책을 던지고 방석을 던지고 침을 뱉고 했습니다. 롤랜드 헤이즈는 너무나 좌절하고 절망해서 그는 노래를 부르지 않으려고 돌아서서 커튼 뒤로 돌아가려고 하는데 눈앞에 예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빌라도의 법정에서 유대인들이 욕을 하고 침을 뱉고 손가락질을 하고 온갖 곤욕을 받을 때도 예수님은 아무 말도 아니하고 고개를 숙이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자, 이 롤랜드 헤이즈의 마음속에 예수님이 저렇게 손가락질을 당하고 모욕을 당하고 고난을 당해도 아무 대답하지 않고 뒤로 물러가지 않는데 왜 내가 뒤로 물러가야 되겠는가. 도로 청중앞에 나가서 그 예수님을 바라보고 그는 눈물을 줄줄 흘리고 서있습니다. 눈물을 흘리고 있으니까 그 소란스럽던 독일 청중들이 한 10분 후에 조용해졌습니다. 그럴 때 헤이즈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감동해서 노래를 부르자마자 모든 청중이 다 일어나서 박수갈채를 하고 그는 거대한 성공을 거둘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 핍박과 환난 중에도 속에 예수님의 위로가 넘쳐 나니까 그 모든 것을 극복하고 그는 사명을 다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핍박을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는 것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다 가지신 에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속에 와서 우리와 함께 핍박을 받아 주시고 핍박 받을 때 우리 속에 위로의 쿠션이 되어 주시고 기쁨의 샘물이 되어 주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4. 거꾸러뜨림을 당해도 망하지 않는다
넷째로,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거꾸러뜨린다는 것은 죽임을 당하는 것입니다. 예수 믿다가 죽임을 당하는 일이 허다이 있습니다. 과거에는 예수 믿는 다는 것은 순교를 당하는 것과 이퀄이었습니다. 그러나, 죽임을 당해도 망한다. 흔적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들이 예수를 십자가 못박혀 죽였어도 예수님은 망하지 않고 사흘만에 부활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은 오늘날 망한 것이 아니라 온 천하에 전파되어 20억이 넘는 사람들이 예수를 구주로 믿고 있는 것입니다.
죽임을 당하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이 우리 속에 계시므로 우리가 안망합니다.
요한계시록 1장 18절에 “곧 산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찌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
세세토록 살아있는 그 예수님이 우리 속에 계시므로 죽어도 살고 살아도 사는 우리들이 된것입니다.
스데반 집사가 그리스도를 증거하다가 잡혀서 유대인들에게 심판을 당하고 돌무더기 속에 들어갈 때 어떻게 했습니까? 스데반이 말하기를 “보라 하늘문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보좌 우편에 선 것을 보는도다.” 유대인들이 돌을 비오듯이 던져서 스데반을 죽였지만 스데반은 돌무더기에 들어가면서 “주여, 저들이 알지 못해서 이렇게 하니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시옵소서.”하고 무릎을 꿇고 세상을 떴습니다. 스데반이 헛되게 죽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스데반을 죽이는데 총책임자로 있은 사람이 사울이요, 후에 바울이 되는데 그 사울의 마음 속에 한없는 충격을 스데반이 준 것입니다. “어떻게 죽으면서도 원망하지 않고 축복을 하고 죽을수 있는가!” 결국 그때받은 충격이 사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깨어지고 예수님을 구주로 모실 수 있는 터를 닦아 놓은 것입니다. 사울의 죽음은 헛되지, 스데반의 죽음은 헛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 죽으면 생명의 면류관을 받습니다. 생명의 면류관은 순교자만 받는 면류관입니다.
요한계시록 2장 10절에 보면 “네가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 말라 볼찌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고 했습니다.
죽도록 충성하면 생명의 면류관을 받습니다. 개신교 선교사로 우리나라에 와서 순교한 사람은 기록상에 토마스 선교사인 것입니다. 그는 24살에 신혼의 신부를 데리고 중국 선교사로 왔다가 병으로 부인이 죽었습니다. 그는 큰 슬픔과 괴로움으로 한때 좌절했지만 기도로 선교의지를 가다듬었습니다. 마침 한국에서 천주교인들이 핍박을 받고 있으며 선교사 오기를 갈망한다는 말을 듣고 성공회의 지원을 받아 한문성경과 전도지를 많이 받아서 1865년 배를 타고 한국의 서해안에 도착했습니다. 토마스 목사는 두달동안 여러 섬을 돌면서 성경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는 일단 중국으로 돌아갔다가 다음 해 다시 미국 상선을 타고 서울로 간다는 것이 그만 대동강 하류에 닿게 되어 근처에 상륙했다가 그는 백 여권의 성경을 주민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런데, 배가 물이 찰 때 왔다가 물이 빠지자 모래 사장에 좌초되고 말은 것입니다. 그러는 동안에 평안 감사가 군인들을 이끌고 나와 제너럴 셔먼[General Sherman]호 선원들을 대항하여 싸웠으나 결국 배는 불타고 선원들은 다 죽었습니다. 토마스 목사도 잡혀서 모래 사장에 끌려 나와 그는 끝까지 한권이라도 더 많은 성경을 주민에게 뿌리려고 하다가 결국 대동강변에서 참수를 당해서 죽었습니다. 기록에 보면 그가 목이 날라가서 머리가 떨어지는데도 목이 없는 그 성대에서 “예수, 예수, 예수”라고 외치더라는 것입니다. 그가 27살 때 죽임을 당했지만 예수님은 기적을 계획하셨습니다. 거꾸러뜨림을 당해도 망하지 않는다. 토마스 선교사가 한국에 와서 죽음을 당한 것이 흔적이 없이 망한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때에 토마스 목사에게서 성경을 받은 사람중 홍신길, 최지량은 교회를 세웠고, 성경을 뜯어 벽지로 바른 박영식은 신자가 되었고, 그의 집은 교회가 되었으며 토마스 목사의 목을 자른 집행한 형 집행인 박충권은 평양교회 장로가 되었습니다. 보십시오. 그를 잡아 죽인 사람들이 모두다 그 피값으로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고 하늘나라에 기둥들이 되었던 것입니다.
유세비우스의 교회사에 보면 열 두제자의 순교일지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베드로는 로마에 가서 전도하다가 십자가에 거꾸러 못박혀 죽었습니다. 안드레는 그리스에 가서 전도하다가 아가야성에서 엑스[X]자형의 십자가에 줄로 매달려 죽임을 당했습니다. 야고보는 예루살렘에서 헤롯에게 칼로 목베임을 당했으며 요한은 에베소에서 전도하다가 핍박을 받아 끓는 기름가마에 던졌지만 저절로 튀어 나오는 바람에 박해 하던 사람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결국 그는 밧모섬에 귀향 보내졌고 그곳에서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 요한계시록을 기록했습니다. 빌립은 소아시아 브루기아에서 전도하다가 기둥에 매달려 죽임을 당했습니다. 바돌로매는 아르메니아 인도에 가서 전도하다가 십자가에 거꾸러 못박혀 죽임을 당했습니다. 도마는 인도에 가서 전도하다가 창에 맞아 죽었습니다. 마태는 이디오피아에 가서 전도하다가 목베임을 당했습니다.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는 성전 꼭대기에서 떨어뜨려 죽임을 당했습니다. 가나안인 시몬은 애굽에서 전도하고 다시 유대에 돌아와 전도하다가 활에 맞아 죽었습니다. 야고보의 동생 유다는 페르시아에 가서 전도하다가 활에 맞아 죽었습니다. 가롯 유다 대신 12제자의 반열에 오른 맛디아는 이디오피아에 가서 전도하다가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 예수님의 열두제자 중에 순교 안당한 사람은 사도요한 한 사람밖에 없습니다. 다 순교를 당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망했습니까? 그들의 전도를 통해서 그리스도의 복음은 온 천하를 석권하고 말은 것입니다. 그들의 순교의 피의 부르짖음 때문에 오늘날 한국에, 오늘 이시간 여의도순복음교회까지 성도들이 가득차게 된것입니다.
우리가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않는 것은 죽었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이 우리 속에 와서 계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4장 10절로 11절에 “우리가 항상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도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우리 산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기움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니라”
아무리 죽음이 다가와도 우리 속에 있는 부활한 예수님의 생명이 우리를 넘치게 붙잡아 주시고 계시기 때문에 망하지 않는 것입니다.
<결론>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핍박을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우리는 이 땅에서 살다가 우리속에 계신 이 보배로운 예수님의 손을 잡고 눈물과 근심과 탄식과 이별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앓는 것이나 죽는 것이 없는 영원히 영광스럽고 아름다운 하늘집으로 들어가게 될것입니다.
<기도>
사랑이 많으시고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여
우리는 비록 보잘 것 없는 질그릇이지만 깨어져서 거름무더기에 던져 버릴 질그릇이 아니라 보배로운 예수님을 담은 질그릇이 된 것을 감사하옵나이다.
질그릇인 우리 자체는 아무 가치가 없지만 보배를 담고 있는 질그릇은 계산할 수 없이 귀한 질그릇이옵니다. 그러므로 이 보배로운 예수님이 우리 속에 계시므로 예수님을 우리가 모시고 섬기고, 충성을 다하고,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여 이 예수님을 주님으로 섬기고 무릎을 꿇고 그리스도에게 일생을 내어 맡기는 우리들이 되게 도와 주시옵소서. 예수님 때문에 살고 예수님 섬기기 위해서 살게 하여 주시옵시고 예수님과 함께 사는 이 한해가 되게 도와 주시옵소서. 어떤 일을 당해도 우리 속에 예수님이 계신 것을 잊지 말게 도와 주시옵소서. 우겨쌈을 당해도 싸이지 않는 예수님이 계시고 답답한 일을 당해도 낙심할수 없는 예수님이 계시고 핍박을 당해도 우리를 버리지 않는 예수님이 계시고 거꾸러 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않게 하는 예수님이 계신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 아멘
<결신>
여러분 가운데 아직 예수를 구주로 믿지 않는 사람은 마귀가 꽉들어 찬 그릇입니다.
마귀가 점령한 질그릇은 이 세상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 세상 자랑만 따라 살다가 나중에는 깨어진 산산 조각난 질그릇이 되어 지옥불에 던짐을 받습니다. 천국에 가든지 영원한 지옥불에 떨어지든지 둘중에 하나를 우리가 선택해야 됩니다. 보배를 담은 질그릇은 천국으로 가고 마귀를 담고 있는 질그릇은 지옥으로 갑니다. 오늘 이시간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회개하고 예수를 구주로 모시면 보배로운 그릇이 되는 것입니다.
나는 아직 예수 믿지 않습니다. 타락했습니다. 나도 예수 믿고 보배로운 예수님을 모신 질그릇이 되기를 원하니 나를 위해서 기도해 주십시오. 하시는 분은 대강당, 텔레비실과 지교회와 지성전과 일본 각 교회와 국내 지방교회와 기도처에서와 기독교 TV, CBS TV, 극동방송, 기독교 방송, 인터넷으로 예배 드리는 전세계 성도 여러분 그 자리에서 일어나 주시기 바랍니다. 일어나서 예수를 구주로 모시십시오. 여러분이 결단을 내리지 아니하면 주님은 여러분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내가 예수 믿겠다는 결단은 내가 내리는 것이지 이웃 사람이 대신 내려주지 않습니다. 죽음도 삶도 영생도 지옥도 내가 결단하는 것입니다. 오늘 주님께서 부르실 때 결단을 내리고 예수님을 구주로 모셔 들여야 됩니다. 일어나신 여러분 소리내어 이 기도를 따라해 주십시오.
사랑하시는 하나님! 저는 죄인입니다. 어디에서 와서 왜 살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고, 방황하며 지냈습니다. 오늘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믿음으로 일어났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 저를 씻어 주시옵소서. 저를 위하여 죽으시고 저를 위하여 부활하신 예수님을 제 구주로 모셔들입니다. 지금부터 영원토록 주님과 함께 살겠습니다. 하나님은 내 아버지가 되셨습니다. 예수님은 나의 구주가 되셨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저를 구원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 아멘
주님의 이름으로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신유>
몸이 아프신 분은 아픈데 손을 얹으시고 문제를 가지신 분은 가슴에 손을 얹으십시오.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죽었다가 부활하신 우리의 보배 예수님이 우리속에 계심을 감사드립니다. 이 보배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권세를 의지하고 기도하오니 아버지여 병든자를 다 고쳐 주시옵소서. 고쳐 주시옵소서. 고쳐 주시옵소서. 악한 병마야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각자의 몸에서 떠나가라. 떠나가라. 떠나가라. 떠나가라. 예수 이름으로 고침을 받을찌어다. 예수 이름으로 고침을 받으찌어다. 전능하신 아버지여 주의 능력의 손으로 안수하여 주시고 복을 내려 주시옵소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놀라운 은총과 축복과 위로와 기쁨으로 넘치도록 채워 주시옵소서. 영원히 잘되고 범사가 잘되며 강건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 아멘
<서론>
「이 보배를 질그릇 안에」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인생길에 평탄한 행로는 없습니다. 내가 가야 할 길을 타인이 대신 가 줄 수도 없습니다. 들판을 지나 강을 건너고 험한 산 준령을 넘어 캄캄한 터널을 통과하고 비바람치는 폭풍우에 몸이 흠뻑 젖는가 하면 또한 눈보라치는 산악을 지나면서 뼈속까지 추위에 떨고 또 햇볕 쨍쨍한 들판에 나오고. 이와같은 것이 우리 인생에 역사입니다. 그러나 이 인생길에 하나님의 백성은 항상 다른 동반자가 있습니다. 그분이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항상 함께 하시면서 우리에게 빛이 되시고 생명이 되시고 구원자가 되시고 보좌가 되셔서 인생여정을 감당케 해주십니다. 주님의 도우심없이 우리는 인생 일생을 넉넉히 이기고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우리의 실상은 흙으로 만든 질그릇입니다. 질그릇 그 자체는 별 가치도 없고 떨어지면 쉽게 깨어집니다. 그러나 그 질그릇에 보배를 담으면 그 질그릇의 가치와 중요성은 엄청나게 달라집니다. 우리가 주 예수님을 우리의 가슴에 모시면 지극히 귀중한 질그릇이 됩니다. 만왕의 왕, 만주의 주 지극히 크시고 광대하신 하나님을 모시게 된 질그릇의 정체는 달라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본론>
1.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해도 싸이지 않는다
그러므로 첫째,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지고 살면은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않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열왕기하 6장 14절로 17절에 보면 아람왕 벤하닷이 이스라엘의 선지자 엘리사를 잡아야 되겠다고 마음에 한을 품었습니다. 그래서 엘리사가 도단성에 와 있다는 정보를 얻고는 대군대를 동원해서 밤새껏 도단성을 첩첩이 둘러 쌌습니다. 아침에 엘리사의 종이 밖에 나가보고 기겁을 하고 뛰어 들어왔습니다. “선생님, 선생님! 이제 우리는 죽었습니다. 아람군대가 도단성을 첩첩이 둘러싸고 있습니다. 성 건너편에 하늘을 찌를듯한 아람군대의 군기와 창검이 번쩍이고 있습니다.” 그때 엘리사가 종을 보고 말했습니다. “조용히 하고 앉으라. 우리와 같이 계신 이가 저들과 함께 있는 것보다 많다.” 그리고 기도하기를 “하나님이여, 눈을 들어 보게 하옵소서.” 하나님이 종의 눈을 열매 종이 눈을 열어 보니까 아람군대와 엘리사 사이에 하늘에 불말과 불병거가 첩첩이 둘러싸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결국 아람군대는 엘리사를 포로로 잡지 못했습니다.
여러분 우리도 일생을 살면서 우리 주위에 아람군대와 같은 원수가 첩첩이 둘러 쌉니다. 사방으로 우겨싸임을 받을 때가 한두번이 아닙니다. 죄가 우리를 둘러싸고, 세상 유혹이 우리를 둘러싸고, 혹은 질병이 우리를 첩첩이 둘러싸고, 생활의 염려, 근심, 불안, 초조, 절망이 우리를 둘러싸는가 하면 원수가 둘러싸고 우리를 공격합니다. 우리가 그때 우리 힘으로 싸우려고 하다가는 우리 질그릇은 박살이 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안에 계신 예수님을 의지할 때 우리는 문제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예수님밖의 다른 것을 의지하면 우리는 반드시 깨어집니다. 질그릇은 대항할 만한 힘이 없습니다.
성경은 히브리서 10장 38절에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우리 안에 예수님이 계신 것을 알면은 예수님은 하늘과 땅과 세계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지으신 하나님이십니다. 이 하나님을 우리가 믿고 의지하고 환경을 바라보고 뒤로 물러가면 안됩니다.
요한1서 4장 4절에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저희를 이기었나니 이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이보다 크심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안에 계신이가 세상이보다 큽니다. 우리는 초라하고 보잘 것 없어도 우리 안에 우주와 만물을 지으신 보배이신 예수님을 모시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플러스, 우리는 어떠한 일에도 승리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지금부터 약 100년전 영국의 런던 다리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추운 겨울날 한 불쌍한 노인이 지나가는 행인들로부터 동전 한푼을 얻을까 싶어서 다 낡은 바이올린을 열심히 켜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별로 신통치 않는 재주에 지나가는 사람은 한 사람도 귀를 기울이는 사람이 없고 동전 한푼도 던지는 사람 없습니다. 날은 점점 추워지고 노인의 손은 굳어졌습니다. 그런데, 어떤 외국인이 여행을 하다가 그곳을 지나가게 되었는데 가만히 서서 노인을 보더니만 노인앞에 나가서 “노인장 그 바이올린을 내게 좀 빌려 주십시오.” 노인이 조금 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그러나 날씨도 춥고 손도 굳어졌으니까 바이올린을 빌려 주었습니다. 이 노신사는 바이올린을 켜기 시작했습니다. 어찌나 그 선율에 아름다운 음악이 흘러 나오는지 지나가는 사람마다 발을 멈추고 돈을 던져 넣기 시작했습니다. 그 걸인 노인의 모자에 동전이 던져지니 은전이 던져지니 나중에는 지폐가 던져서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계속해서 이 노신사가 바이올린을 타니까 대군중이 모여서 그 추운날에 정신없이 그 바이올린을 들었습니다. 경찰관이 교통에 방해가 되기 때문에 놀라서 이 분을 저지하려고 뛰어 왔다가 경찰관조차 그 음악에 그만 홀딱 빠져 가지고서 정신없이 듣고 있었습니다. 한참동안 듣고 있다가 한 사람이 고함을 쳤습니다. “아~ 저 사람은 니콜로 파가니니다.” 세계적인 바이올린의 천재, 니콜로 파가니니가 그 옆을 지나가다가 노인의 불쌍한 모습을 보고 그 다 낡은 바이올린을 빌려서 타기 시작하니까 그 다 낡아 빠진 바이올린에서 나오는 선율이 모든 사람을 매혹시켜 버리고 말은 것입니다. 군중들 사이로 파가니니는 사라졌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다 낡아빠진 바이올린과 같습니다. 우리가 열심히 켜 봤자 별볼일 없어요. 사람들이 관심도 없고 원수가 치면 우리는 무너집니다. 그러나, 우리 속에 우리를 켜주는 위대한 주님이 계신 것입니다.
불의하고 추악한 우리 인간은 낡은 바이올린과 같이 보잘 것 없지만 그리스도의 손에 들려질 때에 그 가치의 중요성은 하늘과 땅처럼 달라지는 것입니다. 아무리 우리가 우겨쌈을 당하여도 예수님이 우리를 들어 쓰는 이상 우리는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싸이지 않습니다. 우리와 같이 계신 이가 원수들보다 강합니다.
2. 답답한 일을 당해도 낙심하지 않는다
둘째로,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합니다.
역대하 20장 11절로 13절에 보면 유대의 여호사밧왕이 갑자기 모합 암몬 및 마온 왕의 연합군의 침공을 받아 유대가 멸망의 위기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성경에 보면 “이제 저희가 우리에게 갚는 것을 보옵소서 저희가 와서 주께서 우리에게 주신 주의 기업에서 우리를 쫓아 내고자 하나이다 우리 하나님이여 저희를 징벌하지 아니하시나이까 우리를 치러 오는 이 큰 무리를 우리가 대적할 능력이 없고 어떻게 할 줄도 알지 못하옵고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 하고 유다 모든 사람은 그 아내와 자녀와 어린 자로 더불어 여호와 앞에 섰더라”
여기에 여호사밧 왕의 답답한 심정을 보십시오. 적군은 처들어 와서 유다를 포위했는데 대적할 능력도 없고 어찌할 줄도 알지 못하고 주만 바라보니 얼마나 답답하겠습니까? 그럴 때에 하나님께서는 역대하 20장 15절로 17절에 이렇게 선지자를 통해서 대답하십니다.
“야하시엘이 가로되 온 유다와 예루살렘 거민과 여호사밧왕이여 들을찌어다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말씀하시기를 이 큰 무리로 인하여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말라 이 전쟁이 너희에게 속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라 내일 너희는 마주 내려 가라 저희가 시스 고개로 말미암아 올라 오리니 너희가 골짜기 어귀 여루엘 들 앞에서 만나려니와 이 전쟁에는 너희가 싸울 것이 없나니 항오를 이루고 서서 너희와 함께 한 여호와가 구원하는 것을 보라 유다와 예루살렘아 너희는 두려워하며 놀라지 말고 내일 저희를 마주 나가라 여호와가 너희와 함께 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매”
대적할 능력도 없고 어떻게 할 줄도 모르고 당황하여 주님만 바라볼 때 하나님께서 대답하신 것을 보십시오.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는 것은 하나님이 같이 계시면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싸워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 전쟁에는 너희가 싸울 것이 없다. 이 전쟁은 야웨의 전쟁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사실을 우리는 항상 잊지 말아야 돼요.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답답한 일을 당하고 어찌할 줄도 모르고 대항할 능력도 없고 좌절할 수밖에 없을 때 늘 알아야 될 것은 이 질그릇 속에 보배되신 야웨께서 함께 하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는 보배를 질그릇에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답답한 일을 당해도 우리 속에 계신 주님을 의지하면 주님은 우리를 위해서 싸워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싸우는 것이 아닙니다. 인생을 우리 힘으로 살면 우리가 책임져야 되지만 주님이 우리를 위해서 살아 주시면 삶의 전쟁은 주님의 전쟁이지 우리의 전쟁이 아닌 것입니다.
역대하 20장 20절로 21절에 보면 “이에 백성들이 일찌기 일어나서 드고아 들로 나가니라 나갈 때에 여호사밧이 서서 가로되 유다와 예루살렘 거민들아 내 말을 들을찌어다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견고히 서리라 그 선지자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형통하리라 하고 백성으로 더불어 의논하고 노래하는 자를 택하여 거룩한 예복을 입히고 군대 앞에서 행하며 여호와를 찬송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 감사하세 그 자비하심이 영원하도다 하게 하였더니”
하나님을 의지하면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하면 형통할 수 있습니다. 결국 저들은 성가대를 조직해서 군대들 앞에 세워 적군들이 나타났을 때 찬양을 불렀습니다. 그러자 적군들 가운데 대혼란이 일어나서 모압과 암몬과 마온 군사들이 서로 죽이고 살상하여 전쟁은 대승리로 끝나버리고 말은 사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에게도 답답한 일이 너무 많잖아요. 부부갈등. 요사이 부부갈등이 얼마나 많습니까? 한국의 이혼율이 세계에서 두 번째 갑니다. 거의 50%나 됩니다. 그러므로, 두 가정중에 한 가정은 갈등을 겪고 있습니다. 자녀문제가 참으로 괴롭습니다. 더구나 수능시험을 치는 자녀를 가지고 있는 부모들은 말할 수 없는 심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형제간에 다툼도 있고 생활이 풀리지 않을 때 생활고로 말미암아 고통을 당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답답한 일을 당하여 낙심될 때 내 안에 나와 함께 예수님이 계심을 알고 믿고 기도드리고 의지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힘으로 짊어질 수 없는 짐을 우리가 짊어지려고 버둥대면 눌릴 따름입니다. 우리가 해결할 수 없는 일을 우리가 어떻게 해결하겠습니까? 일로 말미암아 망하지 않겠습니까? 항상 주께서 내짐지어 주시고 일해 주심을 기억하고 시인하고 믿고 기도하고 감사하고 의지해야 되는 것입니다.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한다고 말했습니다.
시편 55편 22절에 “네 짐을 여호와께 맡겨 버리라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영히 허락지 아니하시리로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맡겨야 주님이 책임지시지요. 맡기지 아니하면 주님이 책임지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께 맡길 때 용기와 평안과 힘을 얻을 수 있고 낙심치 않게 되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4장 6절로 7절에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우리 마음에 하나님의 평안이 들어와서 어두움을 밝혀 줄 때까지 하나님께 엎드려 울며 기도하고 맡기면 내 속에 계신 하나님이 일어나서 나를 위하여 싸워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구만리 장천 멀리 계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를 구주로 모신 사람은 이 질그릇 속에 보배인 예수님을 이 자리에 모시고 계십니다. 예수님을 여기저기 찾지 마십시오. 여러분 속에 계신 것입니다.
제이 씨 페니[J. C. Penney]라면 미국에 있는 사람들은 모르는 사람이 없습니다. 어느 도시에 가도 제이 씨 페니의 백화점이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1929년 미국 증권시장 파동때 제이 씨 페니는 증권에 투자해서 망해 버렸습니다. 쫄딱 망해서 한푼없는 거지가 되었습니다. 그는 정신적이 번뇌로 밤잠을 자지 못하고 심한 우울증에 걸려서 결국엔 병원에 입원한 신세가 되었습니다. 너무 사람이 고민을 많이 하면 대상포진이라고 해서 온 몸에 물집이 생깁니다. 대상포진이 온 몸에 생겨서 설상가상으로 고통과 눈물로 시간을 보냈었습니다. 그는 살 희망을 잃었습니다. 왜냐하면 있는 재산 다 잃어 버리고 빚은 태산같이 짊어지고 살 길이 없었습니다. 좌절과 절망에 둘러 쌓였습니다. 이제는 자살하는 길밖에는 살아갈 길이 없습니다. 아무리 수면제를 복용해도 듣지를 않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아침 그의 병실이 바로 병원 예배실 곁에 있었는데 예배실로부터 찬송 소리가 들려 옵니다. 그는 찬송가 소리에 귀를 귀울였습니다. 그 다음에는 목사님이 성경을 읽고 설교를 하는데 설교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 환자들이 모여서 다같이 통성기도를 하는데 그것도 함께 고요히 그 기도 소리를 따라 마음 속으로 기도하는데 갑자기 그 마음에 말할 수 없는 평안이 물결처럼 밀려 들어왔습니다. 페니는 그 당시를 회상하며 다음과 같이 고백했습니다. “그것은 기적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찬송과 성경말씀과 기도소리를 듣고 있었을 때 캄캄한 굴속에서 서서히 햇빛이 비취더니 나중에는 그 굴속이 온통 빛으로 가득차는 듯 했습니다. 그것은 마치 지옥에서 천국으로 옮겨진 것같은 느낌이었습니다. 그날로 그는 절망을 딛고 일어났습니다. 마음에 새로운 용기와 희망과 평안과 기쁨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병원에서 퇴원해서 그는 또다시 꿈을 가지고 열심히 일을 했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점점 받아서 미국 전역에 1,700 여개의 백화점을 경영하는 백화점 왕이 되고 또다시 억만장자로 일어설 수가 있게된 것입니다. 인생을 살면서 굴속에 갇혀 있는 것처럼 답답하게 여기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굴을 뚫어 터널을 만들고 어둠 속에서 빛이 되시는 주님이 질그릇 같은 우리 안에 계시기 때문에 낙심하거나 절망해서는 안됩니다. 내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고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않습니다. 어떠한 답답한 일보다도 더 위대하고 크신 예수님이 우리 속에 와서 계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3. 핍박을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않는다
셋째로, 핍박을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핍박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온 세상이 마귀에게 속해 있기 때문에 마귀 속에 사는 우리가 핍박을 안당할 수가 있겠습니까?
요한1서 5장 19절에 “또 아는 것은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고 온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처한 것이며”라고 말한 것입니다.
어느 곳에 가나 마귀는 득실거립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셔서 마귀 권세를 깨뜨리고 천국을 가져 오셨습니다.
요한1서 3장 8절에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셔서 십자가에서 몸을 찢고 피흘려 마귀의 일을 멸해 버린 것입니다. 마귀는 십자가에서 정사와 권세를 다 빼앗겨 버리고 말은 것입니다. 권세를 뺏긴 마귀는 악랄하게 이제는 저항을 하고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5장 8절로 9절에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니라”
계속해서 마귀를 쫓아내야 돼요. 항상 파리처럼 자꾸 덤벼 듭니다. 항상 쫓아내야 돼요. 오늘날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이상으로 마귀는 영적으로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우리를 공격해 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이 땅을 떠나기 전에 제자들에게 부탁한 말 중에 너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매일같이 쫓아내야 돼요. 아침에도 점심때에도 저녁때에도 마귀를 쫓아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영적 전쟁터에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과 나는 아직까지 평화로운 세계에 있지 않습니다. 이 땅에서 게릴라전하는 마귀와 귀신들과 끊임없이 전쟁합니다. 예수님 강림하는 그날에 평화가 다가올 것입니다.
에베소서 6장 12절에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끊임없이 정사와 권세와 이 세상 어두움의 주관자들과 공중에 권세와 악의 영들이 우리를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아니하고 계속해서 공격해 오는 것입니다. 이를 우습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마귀는 결사적입니다.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이 낙심 시키고 패배시키고 지옥으로 끌고 가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매일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보배로운 피를 의지하고 마귀와 대항해서 싸워야 됩니다. 마귀가 강한 곳은 핍박이 심하고 약한 곳은 핍박이 약합니다. 우리나라 같은 곳에는 이미 마귀의 권세가 무너져 있기 때문에 핍박이 약합니다. 그러나 북한 보십시오. 중국 보십시오. 중동 보십시오. 얼마나 마귀 권세가 아직 강하기 때문에 어마어마한 핍박을 하는 것입니다.
디모데후서 3장 12절에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
우리가 주님을 섬기고 더 경건하게 살려고 할수록 마귀의 핍박은 더 심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핍박을 당할 때 낙심하지 말 것은 핍박을 당해도 버린 바 되지 않는다고 말했었습니다. 마귀는 우리가 완전히 버림받은 자가 되기를 원하지만은 핍박을 당해도 예수님이 우리속에 계시므로 핍박을 당하는 우리가 버린 바 되지 않는 것은 예수님이 함께 핍박을 받기 때문인 것입니다.
사울이 예수믿는 사람을 잡아서 죽이고 감옥에 갇히게 하기 위해서 이스라엘의 이웃인 시리아 나라 수도 다메섹으로 원정을 갔을 때 그는 길 중간에서 하늘의 햇빛보다 더 밝은 빛이 비추고 말에서 떨어졌을 때 하늘에서 음성이 들렸습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핍박하느냐”“주여, 뉘시니이까”“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사울은 예수님을 본적이 없습니다. 예수님 사역당시에 사울은 이스라엘에 있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교회를 핍박하고 예수 믿는 사람을 핍박하니까 주님이 말씀하기를 “너는 나를 왜 핍박하는가”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오늘날 우리속에 와 계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질그릇을 깨뜨리려고 하면 그 속에 있는 보배가 상처를 입습니다. 우리를 핍박하면 우리 속에 계신 예수님이 함께 핍박을 당하게 되기 때문에 주님이 핍박받은 우리 속에서 우리에게 위로하시고 힘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핍박당할 때 바깥에서 고난이 다가와도 속에서는 주님이 크게 위로해 주시므로 핍박을 능히 이길수 있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1장 4절로 5절 말씀 우리 다같이 함께 소리내어 읽어 보십시다.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것 같이 우리의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
보십시오. 환난이 크게 다가와서 우리를 어마어마하게 핍박을 하면 우리 속에는 환난을 이길 수 있는 쿠션의 위로가 예수로 말미암아 넘쳐나는 것입니다. 어떠한 환난이나 고난이나 핍박이나 고통이 다가와도 이길 수 있는 것은 우리속 에 있는 위로 때문인 것입니다. 밖에서 아무리 쳐도 안에서 위로해 주십니다. 아무리 핍박해도 우리가 버린 바 되지 않는 것은 위에서 그것을 안아 주시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7장 4절에 “내가 너희를 향하여 하는 말이 담대한 것도 많고 너희를 위하여 자랑하는 것도 많으니 내가 우리의 모든 환난 가운데서도 위로가 가득하고 기쁨이 넘치는도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좋을 때는 좋아서 좋고, 핍박을 받을 때는 겉으로는 울지만 속으로는 위로와 기쁨이 넘치니까 좋은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핍박을 당하면 더 많이 기도하게 되고 신앙이 순수하게 되고 하나님을 더 의지하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편안할 때는 자꾸 세상을 향하고 세상을 의지하지만 핍박과 고난 당할 때는 우리가 점점 깨어져서 주님을 의지하게 됩니다.
고린도후서 1장 8절로 10절에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힘에 지나도록 심한 고생을 받아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우리 마음에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뢰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뢰하게 하심이라 그가 이같이 큰 사망에서 우리를 건지셨고 또 건지시리라 또한 이후에라도 건지시기를 그를 의지하여 바라노라”
그러므로 핍박당할때에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하게 되고 하나님과 더욱 가까워지는 것입니다. 또 핍박 당하면 하늘에서 상이 크지요. 핍박없는 사람은 상이 없잖아요.
마태복음 5장 11절로 12절에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
핍박은 받으면 받을수록 하늘나라에 상급이 온라인 되어서 입금이 되는 것입니다. 점점 우리에게 상급이 많아지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 속에 예수님이 위로해 주시면 어떠한 핍박도 이길수 있어요.
미국에 유명한 롤랜드 헤이즈 [Roland Hayes] 는 대중가수지만 예수 잘 믿기로 유명한 사람이었습니다. 흑인 가수이기 때문에 굉장히 어려움을 많이 겪었습니다. 그가 독일의 베를린에서 독창회를 가졌을 때 일입니다. 이 독창회에 모인 사람들은 거의 백인들이었습니다. 막이 오르고 롤랜드 헤이즈가 노래를 부르려고 할 때 갑자기 누군가 “흑인의 노래는 들을 수 없다. 이 검둥아 노래를 집어치워!” 그리고 상스러운 욕을 하고 백인들이 그만 책을 던지고 방석을 던지고 침을 뱉고 했습니다. 롤랜드 헤이즈는 너무나 좌절하고 절망해서 그는 노래를 부르지 않으려고 돌아서서 커튼 뒤로 돌아가려고 하는데 눈앞에 예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빌라도의 법정에서 유대인들이 욕을 하고 침을 뱉고 손가락질을 하고 온갖 곤욕을 받을 때도 예수님은 아무 말도 아니하고 고개를 숙이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자, 이 롤랜드 헤이즈의 마음속에 예수님이 저렇게 손가락질을 당하고 모욕을 당하고 고난을 당해도 아무 대답하지 않고 뒤로 물러가지 않는데 왜 내가 뒤로 물러가야 되겠는가. 도로 청중앞에 나가서 그 예수님을 바라보고 그는 눈물을 줄줄 흘리고 서있습니다. 눈물을 흘리고 있으니까 그 소란스럽던 독일 청중들이 한 10분 후에 조용해졌습니다. 그럴 때 헤이즈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감동해서 노래를 부르자마자 모든 청중이 다 일어나서 박수갈채를 하고 그는 거대한 성공을 거둘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 핍박과 환난 중에도 속에 예수님의 위로가 넘쳐 나니까 그 모든 것을 극복하고 그는 사명을 다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핍박을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는 것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다 가지신 에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속에 와서 우리와 함께 핍박을 받아 주시고 핍박 받을 때 우리 속에 위로의 쿠션이 되어 주시고 기쁨의 샘물이 되어 주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4. 거꾸러뜨림을 당해도 망하지 않는다
넷째로,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거꾸러뜨린다는 것은 죽임을 당하는 것입니다. 예수 믿다가 죽임을 당하는 일이 허다이 있습니다. 과거에는 예수 믿는 다는 것은 순교를 당하는 것과 이퀄이었습니다. 그러나, 죽임을 당해도 망한다. 흔적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들이 예수를 십자가 못박혀 죽였어도 예수님은 망하지 않고 사흘만에 부활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은 오늘날 망한 것이 아니라 온 천하에 전파되어 20억이 넘는 사람들이 예수를 구주로 믿고 있는 것입니다.
죽임을 당하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이 우리 속에 계시므로 우리가 안망합니다.
요한계시록 1장 18절에 “곧 산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찌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
세세토록 살아있는 그 예수님이 우리 속에 계시므로 죽어도 살고 살아도 사는 우리들이 된것입니다.
스데반 집사가 그리스도를 증거하다가 잡혀서 유대인들에게 심판을 당하고 돌무더기 속에 들어갈 때 어떻게 했습니까? 스데반이 말하기를 “보라 하늘문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보좌 우편에 선 것을 보는도다.” 유대인들이 돌을 비오듯이 던져서 스데반을 죽였지만 스데반은 돌무더기에 들어가면서 “주여, 저들이 알지 못해서 이렇게 하니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시옵소서.”하고 무릎을 꿇고 세상을 떴습니다. 스데반이 헛되게 죽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스데반을 죽이는데 총책임자로 있은 사람이 사울이요, 후에 바울이 되는데 그 사울의 마음 속에 한없는 충격을 스데반이 준 것입니다. “어떻게 죽으면서도 원망하지 않고 축복을 하고 죽을수 있는가!” 결국 그때받은 충격이 사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깨어지고 예수님을 구주로 모실 수 있는 터를 닦아 놓은 것입니다. 사울의 죽음은 헛되지, 스데반의 죽음은 헛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 죽으면 생명의 면류관을 받습니다. 생명의 면류관은 순교자만 받는 면류관입니다.
요한계시록 2장 10절에 보면 “네가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 말라 볼찌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고 했습니다.
죽도록 충성하면 생명의 면류관을 받습니다. 개신교 선교사로 우리나라에 와서 순교한 사람은 기록상에 토마스 선교사인 것입니다. 그는 24살에 신혼의 신부를 데리고 중국 선교사로 왔다가 병으로 부인이 죽었습니다. 그는 큰 슬픔과 괴로움으로 한때 좌절했지만 기도로 선교의지를 가다듬었습니다. 마침 한국에서 천주교인들이 핍박을 받고 있으며 선교사 오기를 갈망한다는 말을 듣고 성공회의 지원을 받아 한문성경과 전도지를 많이 받아서 1865년 배를 타고 한국의 서해안에 도착했습니다. 토마스 목사는 두달동안 여러 섬을 돌면서 성경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는 일단 중국으로 돌아갔다가 다음 해 다시 미국 상선을 타고 서울로 간다는 것이 그만 대동강 하류에 닿게 되어 근처에 상륙했다가 그는 백 여권의 성경을 주민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런데, 배가 물이 찰 때 왔다가 물이 빠지자 모래 사장에 좌초되고 말은 것입니다. 그러는 동안에 평안 감사가 군인들을 이끌고 나와 제너럴 셔먼[General Sherman]호 선원들을 대항하여 싸웠으나 결국 배는 불타고 선원들은 다 죽었습니다. 토마스 목사도 잡혀서 모래 사장에 끌려 나와 그는 끝까지 한권이라도 더 많은 성경을 주민에게 뿌리려고 하다가 결국 대동강변에서 참수를 당해서 죽었습니다. 기록에 보면 그가 목이 날라가서 머리가 떨어지는데도 목이 없는 그 성대에서 “예수, 예수, 예수”라고 외치더라는 것입니다. 그가 27살 때 죽임을 당했지만 예수님은 기적을 계획하셨습니다. 거꾸러뜨림을 당해도 망하지 않는다. 토마스 선교사가 한국에 와서 죽음을 당한 것이 흔적이 없이 망한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때에 토마스 목사에게서 성경을 받은 사람중 홍신길, 최지량은 교회를 세웠고, 성경을 뜯어 벽지로 바른 박영식은 신자가 되었고, 그의 집은 교회가 되었으며 토마스 목사의 목을 자른 집행한 형 집행인 박충권은 평양교회 장로가 되었습니다. 보십시오. 그를 잡아 죽인 사람들이 모두다 그 피값으로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고 하늘나라에 기둥들이 되었던 것입니다.
유세비우스의 교회사에 보면 열 두제자의 순교일지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베드로는 로마에 가서 전도하다가 십자가에 거꾸러 못박혀 죽었습니다. 안드레는 그리스에 가서 전도하다가 아가야성에서 엑스[X]자형의 십자가에 줄로 매달려 죽임을 당했습니다. 야고보는 예루살렘에서 헤롯에게 칼로 목베임을 당했으며 요한은 에베소에서 전도하다가 핍박을 받아 끓는 기름가마에 던졌지만 저절로 튀어 나오는 바람에 박해 하던 사람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결국 그는 밧모섬에 귀향 보내졌고 그곳에서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 요한계시록을 기록했습니다. 빌립은 소아시아 브루기아에서 전도하다가 기둥에 매달려 죽임을 당했습니다. 바돌로매는 아르메니아 인도에 가서 전도하다가 십자가에 거꾸러 못박혀 죽임을 당했습니다. 도마는 인도에 가서 전도하다가 창에 맞아 죽었습니다. 마태는 이디오피아에 가서 전도하다가 목베임을 당했습니다.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는 성전 꼭대기에서 떨어뜨려 죽임을 당했습니다. 가나안인 시몬은 애굽에서 전도하고 다시 유대에 돌아와 전도하다가 활에 맞아 죽었습니다. 야고보의 동생 유다는 페르시아에 가서 전도하다가 활에 맞아 죽었습니다. 가롯 유다 대신 12제자의 반열에 오른 맛디아는 이디오피아에 가서 전도하다가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 예수님의 열두제자 중에 순교 안당한 사람은 사도요한 한 사람밖에 없습니다. 다 순교를 당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망했습니까? 그들의 전도를 통해서 그리스도의 복음은 온 천하를 석권하고 말은 것입니다. 그들의 순교의 피의 부르짖음 때문에 오늘날 한국에, 오늘 이시간 여의도순복음교회까지 성도들이 가득차게 된것입니다.
우리가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않는 것은 죽었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이 우리 속에 와서 계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4장 10절로 11절에 “우리가 항상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도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우리 산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기움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니라”
아무리 죽음이 다가와도 우리 속에 있는 부활한 예수님의 생명이 우리를 넘치게 붙잡아 주시고 계시기 때문에 망하지 않는 것입니다.
<결론>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핍박을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우리는 이 땅에서 살다가 우리속에 계신 이 보배로운 예수님의 손을 잡고 눈물과 근심과 탄식과 이별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앓는 것이나 죽는 것이 없는 영원히 영광스럽고 아름다운 하늘집으로 들어가게 될것입니다.
<기도>
사랑이 많으시고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여
우리는 비록 보잘 것 없는 질그릇이지만 깨어져서 거름무더기에 던져 버릴 질그릇이 아니라 보배로운 예수님을 담은 질그릇이 된 것을 감사하옵나이다.
질그릇인 우리 자체는 아무 가치가 없지만 보배를 담고 있는 질그릇은 계산할 수 없이 귀한 질그릇이옵니다. 그러므로 이 보배로운 예수님이 우리 속에 계시므로 예수님을 우리가 모시고 섬기고, 충성을 다하고,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여 이 예수님을 주님으로 섬기고 무릎을 꿇고 그리스도에게 일생을 내어 맡기는 우리들이 되게 도와 주시옵소서. 예수님 때문에 살고 예수님 섬기기 위해서 살게 하여 주시옵시고 예수님과 함께 사는 이 한해가 되게 도와 주시옵소서. 어떤 일을 당해도 우리 속에 예수님이 계신 것을 잊지 말게 도와 주시옵소서. 우겨쌈을 당해도 싸이지 않는 예수님이 계시고 답답한 일을 당해도 낙심할수 없는 예수님이 계시고 핍박을 당해도 우리를 버리지 않는 예수님이 계시고 거꾸러 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않게 하는 예수님이 계신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 아멘
<결신>
여러분 가운데 아직 예수를 구주로 믿지 않는 사람은 마귀가 꽉들어 찬 그릇입니다.
마귀가 점령한 질그릇은 이 세상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 세상 자랑만 따라 살다가 나중에는 깨어진 산산 조각난 질그릇이 되어 지옥불에 던짐을 받습니다. 천국에 가든지 영원한 지옥불에 떨어지든지 둘중에 하나를 우리가 선택해야 됩니다. 보배를 담은 질그릇은 천국으로 가고 마귀를 담고 있는 질그릇은 지옥으로 갑니다. 오늘 이시간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회개하고 예수를 구주로 모시면 보배로운 그릇이 되는 것입니다.
나는 아직 예수 믿지 않습니다. 타락했습니다. 나도 예수 믿고 보배로운 예수님을 모신 질그릇이 되기를 원하니 나를 위해서 기도해 주십시오. 하시는 분은 대강당, 텔레비실과 지교회와 지성전과 일본 각 교회와 국내 지방교회와 기도처에서와 기독교 TV, CBS TV, 극동방송, 기독교 방송, 인터넷으로 예배 드리는 전세계 성도 여러분 그 자리에서 일어나 주시기 바랍니다. 일어나서 예수를 구주로 모시십시오. 여러분이 결단을 내리지 아니하면 주님은 여러분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내가 예수 믿겠다는 결단은 내가 내리는 것이지 이웃 사람이 대신 내려주지 않습니다. 죽음도 삶도 영생도 지옥도 내가 결단하는 것입니다. 오늘 주님께서 부르실 때 결단을 내리고 예수님을 구주로 모셔 들여야 됩니다. 일어나신 여러분 소리내어 이 기도를 따라해 주십시오.
사랑하시는 하나님! 저는 죄인입니다. 어디에서 와서 왜 살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고, 방황하며 지냈습니다. 오늘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믿음으로 일어났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 저를 씻어 주시옵소서. 저를 위하여 죽으시고 저를 위하여 부활하신 예수님을 제 구주로 모셔들입니다. 지금부터 영원토록 주님과 함께 살겠습니다. 하나님은 내 아버지가 되셨습니다. 예수님은 나의 구주가 되셨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저를 구원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 아멘
주님의 이름으로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신유>
몸이 아프신 분은 아픈데 손을 얹으시고 문제를 가지신 분은 가슴에 손을 얹으십시오.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죽었다가 부활하신 우리의 보배 예수님이 우리속에 계심을 감사드립니다. 이 보배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권세를 의지하고 기도하오니 아버지여 병든자를 다 고쳐 주시옵소서. 고쳐 주시옵소서. 고쳐 주시옵소서. 악한 병마야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각자의 몸에서 떠나가라. 떠나가라. 떠나가라. 떠나가라. 예수 이름으로 고침을 받을찌어다. 예수 이름으로 고침을 받으찌어다. 전능하신 아버지여 주의 능력의 손으로 안수하여 주시고 복을 내려 주시옵소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놀라운 은총과 축복과 위로와 기쁨으로 넘치도록 채워 주시옵소서. 영원히 잘되고 범사가 잘되며 강건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 아멘
설교를 올릴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 주세요. 이단 자료는 통보없이 즉시 삭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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