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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아들의 착각

누가복음 최용우............... 조회 수 1590 추천 수 0 2009.04.13 21:5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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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눅15:11-24 
설교자 : 조용기 목사 
참고 : 2004년 1월 18일 주일3부설교 
“또 가라사대 어떤 사람이 두 아들이 있는데 그 둘째가 아비에게 말하되 아버지여 재산 중에서 내게 돌아올 분깃을 내게 주소서 하는지라 아비가 그 살림을 각각 나눠 주었더니 그 후 며칠이 못되어 둘째 아들이 재물을 다 모아가지고 먼 나라에 가 거기서 허랑방탕하여 그 재산을 허비하더니 다 없이한 후 그 나라에 크게 흉년이 들어 저가 비로소 궁핍한지라 가서 그 나라 백성 중 하나에게 붙여 사니 그가 저를 들로 보내어 돼지를 치게 하였는데 저가 돼지 먹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고자 하되 주는 자가 없는지라 이에 스스로 돌이켜 가로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군이 얼마나 많은고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군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직도 상거가 먼데 아버지가 저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아들이 가로되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하나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저희가 즐거워하더라”

<서론>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둘째 아들의 착각」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작년 12월 14일 전남 장성 야산에 친구 3명이 사냥을 갔다가 수풀속을 헤치고 가는 친구를
멧돼지로 착각하여 총을 쏘아서 즉사시킨 사건이 생겼습니다. 고의는 아니지만 착각이 엄청난 비극을 가져온 것입니다.
아담의 타락도 착각에 기인한 것입니다. 즉, 자기도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는 착각을 했습니다. 그 결과 그의 후손들이 오늘날도 자기가 삶의 주인이라는 착각속에 살고 있으며 그 결과 엄청난 불행을 당하고 있습니다.

<본론>

1. 아버지처럼 주인이 되려고 함

오늘 읽은 누가복음 15장을 보면 한 아버지가 두 아들을 길렀습니다. 큰 농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농장 주위에는 수풀이 우거지고 또 농장은 과수원에 여러 가지 과일을 농작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때를 따라 오곡백과를 추수하고 또 목장에는 양떼들, 소떼들이 많았습니다. 아주 풍성한 농부였었습니다. 자녀들은 겨울에 따뜻하게 입히고 여름에는 시원하게 입혔습니다. 교육도 잘 시켰고 그리고 일꾼들과 함께 들에가서 일도 하고 그렇게 했습니다. 그래서 외면적으로 볼 때 부족함이 조금도 없었습니다. 행복할 따름인 것입니다. 잘먹고, 잘입고, 잘살고, 평화롭고, 행복하고 또 농장경영도 잘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아버지의 마음속에 큰 염려와 근심이 다가오고 이마에 주름살이 펴지지 않는 것은 둘째 아들이 아직까지도 나이가 차지 아니하여 정상적인 어른으로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할수 있는 처지가 못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처럼 주인이 되겠다고 착각을 하고 나섰습니다. “내가 아버지를 섬길 필요가 어디 있습니까? 나도 아버지처럼 주인이 되어서 많은 종을 거느리고 주인 행세하고 살겠습니다.” 그렇게 해서 아버지에게 자꾸 재산을 나누어 달라고 강요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5장 11절로 12절에 “또 가라사대 어떤 사람이 두 아들이 있는데 그 둘째가 아비에게 말하되 아버지여 재산 중에서 내게 돌아올 분깃을 내게 주소서 하는지라 아비가 그 살림을 각각 나눠 주었더니”
너무너무 아버지를 강요하기 때문에 아버지가 어찌할 도리가 없지요. 그는 아버지 섬기기를 싫어했습니다. “내가 왜 아버지를 섬겨야 하나? 내가 주인이 되면 내 중심으로 내 마음대로 살것인데 내가 이 집에 있어서 우리 아버지를 섬기고 살 필요가 없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날 인생들이 착각하는 것이 그것입니다. 인간들이 자기가 하나님인줄 생각하고 자기가 인생의 주인인줄 생각하고 하나님을 섬기지 아니하고 자기를 섬기고 자기가 인생의 주인으로 착각하고 사는 것이 타락한 아담의 후예인 오늘 인류들인 것입니다.
성경 말라기 1장 6절에 보면 “내 이름을 멸시하는 제사장들아 나 만군의 여호와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아들은 그 아비를, 종은 그 주인을 공경하나니 내가 아비일찐대 나를 공경함이 어디 있느냐 내가 주인일찐대 나를 두려워함이 어디 있느냐 하나 너희는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이름을 멸시하였나이까 하는도다”하고 하나님은 탄식하고 계신 것입니다.
이 둘째는 그때로부터 아버지에게 복종하기를 싫어합니다. 아버지가 아침 시간에 일어나라고 해도 자기 맘대로 늦잠자고 들에 나가서 일을 하라고 해도 일도 돌보지 아니하고 종들을 좀 감독하라고 해도 감독도 안합니다. 이제는 아버지에게 복종하기를 싫어합니다. 자기 인생 자기 맘대로 삽니다. 내인생 내가 사는데 아버지가 왜 간섭이오? 이게 정말 큰 문제입니다. 여러분 오늘날 세상 사람도 그렇지 않습니까? 하나님 왜 내게 간섭합니까? 내 인생 내가 사는데 내 맘대로 사는데 왜 하나님이 이래하라 저래하라 간섭을 합니까? 자기 인생 자기가 살수 있는 능력이 있느냐 하면 능력도 없으면서 그런 소리 해요.
이사야 1장 3절로 4절에 보면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하셨도다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 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를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도다”라고 하나님은 탄식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둘째는 아버지를 기쁘게 하고 싶은 마음이 없어요. 어찌하든지 아버지 속을 상하게 해야 돼요. 그래서 아버지의 얼굴에 주름이 깊이 파헤쳐 지고 아버지의 얼굴에 그늘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탄식하고 아버지는 괴로워 했습니다. “왜 아들이 아버지를 고통주고 있는가! 오늘날도 여러분 우리 인생들이 하나님 아버지를 얼마나 괴롭히는지 압니까? 아버지의 얼굴에 그림자가 지고 아버지가 얼마나 슬퍼 탄식하며 방탕하고 죽음으로 가는 자식들 때문에 고뇌하고 계신줄 아십니까? 그런데 이 아들이 기어코 아버지의 재산을 강제로 빼앗았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그 재산을 다 팔아서 거액을 챙겼습니다. 그리고는 주인이 되었다고 착각한 이 둘째 아들은 아버지가 없는 먼 나라로 떠났습니다. 왜 아버지가 가까이 있으면 아버지가 간섭하니까 자기가 주인노릇 하는데 훼방이 되니까 아버지가 그림자도 비취지 않는 먼나라로 갔습니다. 아담과 같지요. 에덴을 떠나서 세상으로 갔습니다. 세상에는 하나님이 안계십니다. 하나님 그림자도 비치지 않는 곳에 가서 이제 하나님 간섭없이 내 인생 내가 살아보겠다고 떠난 아담과 오늘날 인생들과 같은 것입니다.

2. 주인이 되었다고 착각함

누가복음 15장 13절에 보면 “그 후 며칠이 못되어 둘째 아들이 재물을 다 모아가지고 먼 나라에 가 거기서 허랑방탕하여 그 재산을 허비하더니”
이제 주인 노릇할만한 능력이 있으면 잘 돈을 증식시켜서 수입과 지출이 맞게 살아갈 것인데 주인노릇할 권한이 없고 능력이 없거든요. 돈은 잔뜩 갖다 맡겨놓고 그 다음에는 그 돈으로 허랑방탕합니다. 좋은 저택을 사고, 종들도 집안에서 섬기는 종들, 집밖에서 섬기는 종들을 수십명 갔다놓고 그리고 수행원들도 데리고 거드렁 거리고 마차를 타고 수행을 하고 콘도도 사서 놓고 놀러도 가고 친구들하고 공짜술 사주니 친구들이 영웅으로 대접하고 아 여자들이 돈 빼앗아 먹겠다고 온갖 교태를 다 부리고 온갖 아양을 부리고 서방님이라고 옷을 잡고 매달리고 “정말 좋은 세상이구나. 이것 정말 내가 주인노릇하고 사니까 간섭하는 사람도 없고 어머어마하게 좋구나.” 그는 큰 착각에 빠졌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이 세상에 금전과 부귀 영화를 가지고 자기가 주인이 된것처럼 하나님 없이 거드렁 거리지만 착각입니다.
시편 52편 7절에 “이 사람은 하나님으로 자기 힘을 삼지 아니하고 오직 그 재물의 풍부함을 의지하며 제 악으로 스스로 든든케 하던 자라 하리로다”
잠언 27장 24절에 “대저 재물은 영영히 있지 못하나니 면류관이 어찌 대대에 있으랴”
결국에는 지위, 명예, 권세, 부귀, 영화, 공명은 낙엽처럼 떨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이 둘째에게 굽신거리고 영웅으로 취급하고 여자들이 교태를 떠는 것은 돈보고 하는 것입니다. 그가 주인이 되어서 정말 리더쉽이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닙니다. 돈이 있으니까 돈이 나올 동안에는 그 사람에게 면전복배를 하고 온갖 교태를 다 하고 돈 때문에 잘났다고 아부하니까 정말 자기가 잘난줄 알지요. “와 내가 정말 우리 아버지 같이 째째하지 않고 이렇게 나는 인심도 쓰고 아주 사람이 소탈하고 훌륭한 사람이라”고 스스로 큰 착각에 빠진 것입니다. 여러분 착각이라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줄 모릅니다. 사람이 착각에 빠저 놓으면 모든 것을 잘못보고, 잘못 생각하고, 잘못 말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착각속에 영원히 있을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얼마 있지 아니하여 이 젊은 청년에게 착각이 가져온 무시무시한 비극에서 깨어날 때가 왔습니다. 꿈이 깨어진 것입니다. 착각으로 가진 꿈은 반드시 종말이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5장 14절로 16절에 “다 없이한 후 그 나라에 크게 흉년이 들어 저가 비로소 궁핍한지라 가서 그 나라 백성 중 하나에게 붙여 사니 그가 저를 들로 보내어 돼지를 치게 하였는데 저가 돼지 먹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고자 하되 주는 자가 없는지라”
큰 흉년이 다가옵니다. 왜, 수입은 없고 지출만 자꾸 하는데 흉년이 안다가올 턱이 있어요? 이 젊은이 아버지에게 가져온 돈을 나중에 보니까 금고에 다 바닥이 났습니다. 이제는 돈이 없어요. 흉년이 들었습니다. 돈이 없으니 얼마있지 아니하여 집도 차압당하고 콘도도 차압 당하고 어리어리한 마차도 말도 다 차압 당하고 집에 있는 모든 하인들은 다 떠나가고 친구들도 뒤돌아 보지 않고 그렇게 서방님이라고 따르던 여자들은 눈길도 주지 않습니다. 완전히 인생 처참하게 되고 말았습니다. 착각의 꿈에서 깨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 인생들이 오늘날도 착각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떠나서 나는 부자라 부유한 것이 많고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하나 실제 인간의 실존은 절망입니다. 죄책과 정죄를 떠나지 못하고 죄의 노예가 되어 있으며 허무와 무의미 속에 빠져 허우적 거리고 있습니다. 인생이 어디서 와서 왜 살며 어디로 가는지 삶의 의미도 가치도 목적도 모릅니다. 그러다가 인간은 죽잖아요. 죽어서 영원히 멸망하는데 그길에 해결책이 없습니다. 저 화성에 로봇은 보낼줄 알면서 죽음 건너편에 어떻게 할지 알지 못합니다. 사람들은 오늘날 사랑의 기근에 들어 있습니다. 사랑하지 않습니다. 평안에 기근이 들어 있습니다. 마음에 평안이 없습니다. 행복에 기근이 들어서 행복함의 삶속에서 사라졌습니다. 신의가 땅에 떨어졌습니다. 모든 것이 불안, 공포, 절망이 꽉들어 찼습니다. 오늘 인간들은 정신적인, 영적인 생활에 큰 기근이 들어 온 것입니다. 어디가도 흉년이 들었어요. 어떤 사람이 나보고 며칠전에 와서 물어요. “왜 목사님 이 세상이 이렇게 요란스럽습니까? 이 세상의 나라가 나라가 일어나고 민족이 민족을 대적하고 이란, 이라크 사태에 그렇지 않으면 테러리즘, 지진이 일어나고 전에 없던 병들이 생겨나고 이거 왜 이렇습니까?” 그래서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잠깨라고 그럽니다. 꿈 깨라고... 인간이 하나님을 떠나서 자기가 주인인줄 알고 자기가 하나님인줄 알고 자기를 경배하고 자기의 힘을 의지하나 이 세계를 경영할 수 있는 힘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 다 소모하고 이제 큰 영육간에 흉년이 들어서 갈바를 모르는 인생들이 깨어나라고 하나님께서 큰 재앙을 지구에 내리시고 있습니다.” 제가 그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성경에는 보면 시편 105편 16절에 “그가 또 기근을 불러 그 땅에 임하게 하여 그 의뢰하는 양식을 다 끊으셨도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이 청년은 빈털털이가 되었습니다.
누가복음 15장 30절에 “아버지의 살림을 창기와 함께 먹어버린 이 아들이 돌아오매 이를 위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나이다”렸다고 말씀했습니다.
잠언서 23장 5절에 “네가 어찌 허무한 것에 주목하겠느냐 정녕히 재물은 날개를 내어 하늘에 나는 독수리처럼 날아가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완전히 빈털털이가 되고 아무도 자기를 섬겨주지 아니하고 반겨워 주지 않고 환영도 안했습니다. 이제는 자기의 정체가 들어나게 된것입니다. 사람은 여러분 부귀, 영화, 공명이 있을때는 자기가 잘난줄 알고 그 착각속에 살지만 낭패와 실망을 당하고 부귀와 영화가 다 떠나가고 친구들이 다 등을 돌릴 때 자기의 정체가 깨달아지는 것입니다. 착각에서 깨어날 수 있습니다. 배가 고프고 추워야 사람은 깨어지는 것입니다. 배고프고 춥지 아니하면 착각속에 살지만 배고프고 추워지면 비로소 내가 내 인생을 스스로 경영할 수 없는 무능력하고 비참한 인간이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되고 하나님께로 돌아올수 있는 마음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이 사람은 너무나 이제 배가 고프고 춥습니다. 집도 없지요. 돈도 없지요. 그래서 직장을 얻기 위해서 줄을 서서 겨우 얻은 것이 돼지치는 것입니다. 유대인들 사회는 돼지치는 것이 가장 천한 직업입니다. 저 시골 들로 나가서 돼지를 칩니다. 옛날에 푹신푹신한 베개를 베고 금침을 덮고 잤는데 이제는 돼지소굴에 나무목침을 베고 지푸라기를 덮고 다 떨어진 옷을 입고 냄새가 쿨쿨 나는 곳에서 잡니다. 옛날에는 아침, 저녁 배불리 먹었는데 너무 배가 고파서 돼지가 먹는 쥐엄열매 나누어 먹으려다가 돼지에게 물려가지고서 몸에 돼지 물린 이빨 자국이 이곳저곳 나있습니다. 자기 인생이 너무나 비참하게 된것입니다. 이는 비참한 삶에 처하게 되자 이 사람이 스스로를 돌이켜 보고 그의 망상과 착각에서 깨어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여러분 사람은 존귀하나 깨닫지 못하면 멸망하는 짐승과 같습니다. 깨닫는 것은 자기가 고통에 처해야 비로서 착각에서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컴퓨터 파일을 압축하는 기술을 최초로 개발하여 엄청난 돈을 벌었던 필립 카츠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2000년 4월 14일 미국 중서부 위스콘신주 밀위키의 한 싸구려 호텔방에서 시체로 발견 되었는데 마시다 만 위스키 병이 왼손에 꼭 쥐어져 있고 머리는 무엇에 부딪혀 한쪽이 움푹패어 있었습니다. 한때 수백만 장자였던 사람이라고 믿어지지 않는 몰골이었습니다. 그는 23살에 획기적인 압축 프로그램을 개발했고 PK웨어라는 회사를 차려 Microsoft와 IBM등 세계적인 회사들을 고객으로 확보하여 일순간에 백만장자로 껑충 뛰어 올랐고 주체할수 없이 돈을 벌었습니다. 미국의 메스컴이 연일 그 분에 대해서 말하고 모든 사람들이 천재라고 치켜 올렸습니다. 그렇게 돈을 많이 벌었지만 그는 인생을 매니지할 힘이 없었습니다. 그때로부터 술을 마시고 여자들과 방탕하기 시작해서 얼마있지 아니하여 술중독에 섹스 중독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완전히 술과 여자로 탕진가산 했습니다. 그 결과 몇 년 후에 그는 빈털털이가 되어 싸구려 호텔방을 전전하다가 37세의 젊은 나이에 비참하게 죽고 만 것입니다. 여러분 인생이란 하나님 없이 자기 스스로가 인생을 매니지 하겠다고 나오는 자체가 잘못된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에덴에서 나와서 자기 스스로 하나님없이 살겠다고 했는데 오늘 세계를 어떻게 관리했습니까? 오늘 세계는 바야흐로 좌절과 절망을 향해서 줄달음질 치고 있지 않습니까? 사람들마다 마음에 불안과 초조와 공포속에 있습니다. 내일 어떠한 일이 일어날지 알지 못하는 불안속에 있는 것입니다. 세계는 결코 평안한 곳이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청년이 이 비참한 상황에 떨어지고 난 다음 큰 행운은 뭐냐면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짐승과 다른 것은 짐승은 비극에 떨어져도 돌이킬줄 모르는데 사람은 깨달을수 있다는 것입니다. 춥고, 배고프고, 비참할 때 그는 마음속에 깨달음이 다가왔습니다.
성경 누가복음 15장 17절로 19절에 “이에 스스로 돌이켜 가로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군이 얼마나 많은고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군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
아버지 주인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야 나는 아버지가 굉장히 독재자고 어마어마한 이기주의자인줄 알았는데 이제 알고보니 아버지 주인은 참 좋은 주인이었다. 아버지는 수입과 지출에 발란스를 잡을줄 알고 사업할 때 비료를 언제 가져오며 사람을 얼마나 쓰며 종자를 얼마나 뿌려야 되며 어떻게 돌봐야 되며 또 그것을 거두어서 어떻게 판매하는 것을 잘하는 능력있는 관리자였다. 내가 아버지를 오해했구나. 내가 아버지를 잘못 알았구나. 나는 도저히 아버지처럼 할수 있는 능력이 없는자이다. 아버지와 똑같은 주인이 될 수가 없다.”
이사야 44장 21절에 “야곱아 이스라엘아 이 일을 기억하라 너는 내 종이니라 내가 너를 지었으니 너는 내 종이니라 이스라엘아 너는 나의 잊음이 되지 아니하리라”
우리는 하나님의 종입니다. 우리 힘으로 하늘과 땅과 세계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경영할 수 없습니다. 그런 능력이 없어요.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을 모시고 살면은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우리 일생 우리를 경영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짐도 하나님께 맡기고 우리의 일도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을 의지하면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와 함께 인생을 살아 주시는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위대한 삶을 살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의 종인 것을 기억하지 못하고 하나님과 같이 주인 행세를 하려고 하니까 이름은 주인이지만 경영할 능력이 없기 때문에 이 둘째와 같이 낭패와 실망을 당하는 것입니다.

4. 깨달음

그리고 이 둘째는 가만히 생각하니 아버지가 얼마나 자기를 사랑했다는 것을 기억했습니다. “야~ 아버지가 봄이면 봄에 옷해입혀 주고 여름에는 시원한 옷해주고 겨울에는 따뜻하게 옷입고 살게 해주시고 모든 먹을 양식을 공급해 주시고 교육도 시켜 주시고 잘 돌봐 주셨다. 이제 돌아보니 아버지가 나를 괴롭힌 것이 아니라 너무나 사랑해 주었다.” 아버지의 사랑을 그는 춥고 배고플 때 깨닫게 된것입니다.
성경 요한일서 3장 1절에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얻게 하셨는고, 우리가 그러하도다 그러므로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함은 그를 알지 못함이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된 것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내가 자격이 있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까? 내 인생 돌아 보십시오. 얼마나 더럽고 추하고 넝마같은 정죄받을 인생이 아닙니까? 내가 가슴펴고 “아버지여 나는 당당하게 하나님의 아들이 딸이 될 수 있는 자격이 있습니다.”라고 나올 사람이 과연 있어요? 우리가 생각해 봐도 우리가 하나님이면 우리같은 사람 자식으로 안삼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죄를 짓고 불의하고 추악하며 버림을 받아야 마땅한 우리들을 죄있는 그대로 못난 그대로 빈손 든 그대로 끌어 안아서 자식으로 삼아주는 이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큽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에 이 탕자가 아버지 사랑 깨달은 것처럼 깨달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탕자는 생각하기를 자기가 생각하는 이 아버지를 섬기는 종들, 아버지를 주인으로 섬기는 종과 품꾼들이 얼마나 잘사는가! 종과 품꾼들을 위한 주택도 지어 주시고 그들에게 먹을 것 입을 것 마실 것, 살 것을 풍족하게 해주시고 그들의 후생을 얼마나 잘돌봐 주는가. 우리 아버지는 정말 멋있는 주인이었다. 나는 아버지처럼 주인이 되려고 했지만 그렇게 훌륭한 주인 될 수 있는 능력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시편 37편 19절에 “저희는 환난 때에 부끄럽지 아니하며 기근의 날에도 풍족하려니와”
우리가 하나님을 주인으로 섬기고 하나님을 따라가면 환란날에도 부끄럽지 않고 고통당할때도 풍족하게 우리 주인은 돌보아 주시는 것입니다. 이 청년이 깨달은 것은 자기는 주인이 아닐뿐 아니라 주인될 능력이 없음을 깨달은 것입니다. 이것이 거대한 깨달음입니다. 자기는 주인이 아닐뿐 아니라 주인될 능력도 없다. 그래 뭐냐. 자기는 누구냐. 품꾼의 하나밖에 될 자격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이 깨달음이 중요한 것입니다 여러분. 이 청년의 운명이 바뀔수 있던 것은 자기는 주인인줄 알았는데 착각이었고 주인이 될 능력도 없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결국은 품꾼이다. 주인을 섬기고 받들고 모시면 자기 인생 자기가 사는 것이 아니라 주인이 살아주는 것이 자기의 처지라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깨달아야 될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아닙니다. 우리가 우리 인생에 주인이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 인생을 잘 매니지 할만한 능력도 없습니다. 죄도 척결하지 못합니다. 생의 의미도 창출하지 못합니다. 죽음의 저 강을 건너갈 수 있는 힘도 없습니다. 스스로 믿음, 소망, 사랑, 의, 평강, 희락을 가질수도 없습니다. 우리는 주인이 아닐뿐 아니라 주인과 같은 능력도 없고 주인을 섬기는 품꾼이 되어서 주인을 모시고 살면은 주인이 나를 돌보아 주는 우리 인생이라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의 주인입니다. 나는 결혼식 할 때마다 젊은 부부를 보고 늘 말합니다. 이제 결혼하여 인생을 출발하는데 두 사람이 꼭 알아야 될 것은 두 사람의 인생은 두사람이 사는 것이 아니라 두사람의 인생 주인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이 두 사람의 인생의 주인이고 가정의 주인이다. 그리고 두 사람이 생활의 주인도 하나님이다. 그러므로 두 사람이 살아갈 때 의견이 부딪히고 서로 충돌이 오더라도 주인인 하나님께 부탁하면 주인이 화해시켜 주시고 두 사람을 잘살게 도와 주신다. 두 사람이 살아갈 때 생이 곤란스럽고 괴로울 때 주인인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면 주인이 인생을 함께 살아주므로 문제를 해결해 주신다. 절대로 두사람 내 인생 내가 산다고 나가지 말아라. 큰 낭패를 당한다. 주인이 하나님이면 하나님이 인생을 살아주시면 영혼이 잘되고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을수 있는 확신을 가지고 살수 있다. 그런 교훈을 제가 늘 하곤 합니다. 이 둘째 아들은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이제는 돌아가자. 회개라는 것을 돌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참 회개한다는 것은 나의 인생을 내가 주인된 것을 버리고 참 주인인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이 회개인 것입니다. 내가 주인이라고 생각하면서 종교를 가지는 것은 회개가 아닙니다. 내 주인된 착각을 버리고 나는 품꾼의 하나인 것을 깨닫고 참 주인인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이것이 회개가 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5장 20절에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직도 상거가 먼데 아버지가 저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뭐라고 말씀합니까?
이사야 57장 15절에 “지존무상하며 영원히 거하며 거룩하다 이름하는 자가 이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높고 거룩한 곳에 거하며 또한 통회하고 마음이 겸손한 자와 함께 거하나니 이는 겸손한 자의 영을 소성케 하며 통회하는 자의 마음을 소성케 하려 함이라”
통회하고 자복하고 깨어져서 나오는 사람을 주님은 박대하시지 아니하시고 주님께서 받아 주시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이사야 55장 6절오 7절에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
하나님은 그 크신 자비와 긍휼로 손을 활짝펴고 우리가 잘못된 길에서 돌이키고 착각에서 깨어나서 원래 하나님이 지으신 그 본질로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력으로 살게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은혜로 살도록 만들어진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를 돌보아 주시고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감사하고 사랑하며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살게 되어있지 자력으로 하나님 없이 인생을 살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생이 하나님을 떠나 은혜를 저버리고 자력으로 살려고 해서 이 많은 시험과 환난과 고통과 가시밭 인생길을 걸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5. 둘째 아들에 대한 아버지의 태도

30년 전쯤 제주도 성산포로 들어가다 보면 길목에 서서 눈이오나 비가오나 항상 떠나간 아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한 할아버지의 모습을 볼수가 있었습니다. 1960년대 월남전이 일어났을 때 그의 아들은 동네 다른 청년들과 함께 월남전에 참전하게 되었는데 아들은 “아버지 건강한 모습으로 월남에 가서 싸우다가 돌아오겠습니다.”고 했는데 1년 만에 그 아들은 전사했습니다. 전사 통지서가 왔으나 아들을 너무나 사랑하는 아버지에게 가족들이 그 사실을 숨겼습니다. 전쟁이 끝나자 동네 청년들은 하나, 둘 돌아오기 시작했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아들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청년의 아버지는 포기하지 않고 아침만 되면 길가에 나와서 10년을 하루같이 아들을 기다립니다. 10년을 하루같이 아들이 오는가 이길을 살피고 저길을 살피며 그는 봄, 여름, 가을, 겨울없이 몸이 지쳐서 나중에는 일어나지 못하고 세상이 끝날때까지 아들의 이름을 부르고 그분은 세상을 떴습니다. 육신의 아버지도 떠나간 아들을 이처럼 기다리는데 우리를 지으신 영의 아버지가 얼마나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우리를 찾기 위해서 그 맏아들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어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짊어지고 몸을 찢고 피를 흘리고 능지처참을 당해서 죽어서 우리죄를 다 갚도록 해놓고 난 다음 “얘들아 너희 죄를 내가 책망하지 않겠다. 너희 잘못을 내가 꾸짖지 않겠다. 내 아들을 통해서 내게로 돌아만 오라. 돌아오라.” 우리 하나님 아버지는 오늘도 이 시간에 천사들과 함께 여러분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계신 것입니다. 어서 돌아오오. 어서 돌아만 오오. 지은 죄가 아무리 무겁고 크기로 주 어찌 못감당하고 못받으시리오. 우리 주의 넓은 가슴은 하늘보다 넓고 넓어. 어서 돌아오오. 어서 돌아오오. 우리 주는 날마다 기다리신다오. 밤마다 문열어 놓고 마음 조리시며 나간 자식 돌아오기만을 밤새도록 기다린다오. 어서 돌아오오. 어서 돌아만오오. 채찍 맞아 아파도 주님의 손으로 때리고 어루만져 위로해 주시는 우리 주의 넓은 품으로 어서 돌아오오. 어서 돌아오오. 이것이 우리 아버지의 심정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잘못해서 채찍을 때릴지라도 때리고 난 다음 눈물을 흘리며 어루만저 주시는 것이 우리 아버지인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사랑과 이 하나님의 간절한 기다림을 저버린다면 우리는 이 세상에 존재할 필요가 없는 쓰레기가 되고 말것입니다. 여러분 이 아들은 깨닫고 난 다음 아버지께로 돌아왔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누가복음 15장 20절로 24절에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직도 상거가 먼데 아버지가 저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아들이 가로되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하나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저희가 즐거워하더라”
이 아들은 아버지 앞에 고개를 들 수 없습니다. 그는 허리를 굽히고 아버지께 와서 무릎을 꿇고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이제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으려고 온 것 아닙니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벌써 아버지가 보니까 얘는 주인이 아니고 품꾼으로 왔습니다. 나갈 때는 내가 주인이라고 큰 소리 하고 대문을 박차고 나간 아들이 이제는 주인이 아니고 품꾼으로 돌아옵니다. 회개했습니다 여러분. 이제는 품꾼입니다. 주인 대접 받기위해 온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아버지는 이 아들에 대해서 두말할 것 없습니다. 그냥 끌어 안았어요. 그 냄새나는 아들을 끌어 앉고 목을 얽매고 울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가 말했습니다 종들에게 “제일 좋은 옷을 갖다가 입혀라.” 여러분 허술한 옷도 아닙니다. 입다 말은 옷도 아닙니다. 아직 목욕도 안한 그를 제일 좋은 옷 갖다 입혀라. 우리 하나님이 우리가 예수 믿고 돌아오면 어떻게 합니까? 제일 좋은 옷을 갖다 입혀라.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피로써 빨래한 의의 옷을 갖다 입혀라. 이보다 더 의로운 옷은 없습니다. 이것보다 더 광채나는 옷은 없습니다. 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로써 빨래한 광채나는 의로운 옷을 입은 자만이 하나님 앞에 나설수가 있는 것입니다. 인간의 행위로 말미암아 아무리 짜집기를 한 옷이라도 그는 하나님 앞에 입고 나설 수는 없습니다. 오늘 죄를 짓고 불의하고 추악하고 버림을 받아야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주인된 것을 포기하고 품꾼이 되어서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나오면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로써 씻고 정하게 한 빛난 의의 옷을 입혀 주시는 것입니다. 의의 옷을 입혀라. 얼마나 놀랍습니까? 우리의 공로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닙니다.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인하여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우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또한 우리가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반지를 갖다 끼워라. 유대인의 나라에서는 어린 아이가 태어나면 아버지의 이름, 어머니 이름, 자기 이름을 적은 반지를 끼워 줍니다. 이는 내 아들이라. 내 딸이라는 것입니다. 가족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 둘째 아들은 집을 나갈 때 반지를 뽑아서 던져 버렸습니다. 나는 이 집 식구 아니다. 이제 나는 주인이 되어 당당한 자립을 하고 나간다고 했는데 아버지 그 반지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그 아들 돌아올 때 끼워 주려고 그 반지 간직하고 있다가 아들이 돌아오니까 종들에게 반지를 끼워라. 이제는 내 자식이다. 우리 식구다. 반지를 끼워라. 오늘 우리가 예수 믿고 회개하고 나오면 하나님 뭐라고 한 줄 압니까? 성령의 인을 처라.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었으니 성령의 인을 처라. 성령의 반지를 도장처럼 가슴에 처라. 이제는 외인도 아니요, 이방인도 아니요, 하나님의 백성이요, 하나님의 친자녀가 된것입니다.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 된것입니다. 얼마나 놀라운 지위를 주십니까? 얼마나 큰 은혜인 것입니까? 그리고는 아버지가 아들의 발을 내려다 보았습니다. 맨발벗고 종살이하고 맨발벗고 자갈길, 가시밭길을 걸어왔으니 발이 걸레처럼 되었습니다. 말했습니다 종들에게. “신발을 갖다 신겨라.” 옛날에 밭에서 일할 때 종도 주인도 같이 일하지만 누가 종이요, 누가 주인의 아들인가 알려면 신발을 신었는지 안 신었는지 봐야지 됩니다. 신발을 안신은 사람은 종이고 신발을 신은 사람은 주인의 아들입니다. 신발을 갖다 신겨라. 더 이상 발이 걸레가 되도록 찢기도록 자갈길에 가시밭길에 맨발로 걷지 않도록 하라. 여러분 우리에게 어떻게 합니까? 우리가 자기 개인적인 힘으로 살려고 할 때 우리의 발이 걸레가 되지 않았습니까? 발이란 삶의 행동을 말하는 것입니다. 삶의 행위에서 얼마나 찢기고 상처입고 피투성이가 되지 않았습니까? 오늘 예수께로 나오면 주님 말합니다. 은혜의 신발을 신겨라. 용서와 의의 신발을 신겨라. 거룩함과 성령충만함의 신발을 신겨라. 치료와 건강의 신발을 신겨라. 아브라함의 복과 형통의 신발을 신겨라. 영생천국의 신발을 신겨라. 이제는 맨발벗고 살지 말고 하나님 은혜로 살도록 하라. 예수 믿는 사람과 안믿는 사람 뭐가 다릅니까? 안믿는 사람은 자기 자력으로 살기 때문에 맨발벗고 살고 믿는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해서 신발을 신고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신발을 신겨 주어서 하나님의 은혜를 가지고서 우리는 자갈밭도 가시밭길도 상처입지 않고 살아갈수가 있는 것입니다. 신발을 신겨라. 이상 더 피흘리고 상처입고 살지 않습니다. 그리고는 “살찐 송아지를 잡아라!”빼빼 마른 송아지를 잡아라. 병든 송아지를 잡아라. 요사이같이 조류독감이 걸려서 못팔아먹을 송아지를 잡아라. 뭐 그런 것 아닙니다. 살찐 송아지를 잡아라. 가장 살찌고 좋은 송아지를 잡아라. 이 아버지의 자식에 대한 사랑을 보십시오. 우리가 예수 믿고 나오면 하나님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여러분 우리가 예수 믿고 나오면 우리 가슴속에 영적으로 얼마나 살찐 송아지를 잡지 않습니까? 우리 마음속에 믿음, 소망, 사랑으로 채워 주시고 의와 평강과 희락으로 채워 주시고 마음에 소망이 넘치게 만들어 주지 않습니까? 우리의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게 하라고 말씀하지 않습니까?
여러분 이 말씀을 따라 읽어 주십시오. 잠언서 22장 4절입니다.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응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
하나님은 주께 회개하고 나오는 사람에게 말합니다. 재물을 주라. 영광을 주라. 생명을 주라. 이것을 가지고 오너라.
시편 30편 11절 우리 다같이 소리내어 한번 읽어 보십시다. “주께서 나의 슬픔을 변하여 춤이 되게 하시며 나의 베옷을 벗기고 기쁨으로 띠 띠우셨나이다”
이게 하나님께 돌아오면 우리가 체험하는 것입니다. 슬픔이 변하여 춤이 되고 베옷을 벗기고 기쁨으로 옷을 입혀 준다.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는 은총을 주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인된 오만한 착각을 버리고 회개하여 품꾼으로서의 겸비한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주인으로 삼고 예수님을 주인으로 삼고 믿음으로 나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영접하사 우리에게 제일 좋은 옷을 입히고 반지를 끼워 주고 신발을 신겨 주고 살찐 송아지를 잡는 놀라운 은총을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결론>

착각을 하고 살 때는 자기를 잃어 버린 자와 죽은자인 것입니다. 오늘날 세상 사람들은 모두다 착각을 하고 자기가 하나님인줄 알고 자기를 섬기고 자기의 인생 자기가 주인 노릇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저들을 볼 때 이 사람들은 잃어 버린 자와 죽은자인 것입니다. 잃어버린 자와 죽은자는 나중에 쓰레기 더미 영원한 게헨나 지옥으로 던져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나 깨달음을 갖고 회개하고 돌아오면 죽었다가 살아나며 잃었다가 도로 찾은자가 되어서 하나님 말합니다.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살아났다. 잃었다가 얻었다. 다 함께 즐거워하자.” 오늘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고 돌아오면 온 하늘에 천사들이 하나님과 더불어 기뻐 박수를 치고 즐거워 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여러분 이 땅에서 죽은자로 살고 잃어 버린 자로 살다가 영원한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짐을 받을 사람이 된다는 것은 얼마나 비극인 것입니까? 우리 주 예수를 구주로 모시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면 죽었다가 살아나는 것입니다. 길을 잃었다가 도로 찾은 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이 함께 사시는 것입니다. 내 인생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와 더불어 인생을 살아 주시는 것입니다. 하늘과 땅과 세계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지으신 전지전능, 무소부지하신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를 위해서 예비한 모든 것을 허락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날마다 우리의 짐을 지시는 주 곧 구원의 하나님을 찬미하라고 말씀한 것처럼 우리 주님이 날마다 우리 짐을 지어 주시고 우리의 일을 하나님이 친히 맡아 해주시는 것입니다. 일을 행하는 야웨, 그일을 지어 성취하는 야웨, 그 이름을 야웨라는 자가 이같이 이르노라.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보여 주리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은혜 받을 때 내가 너희 기도를 들어주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와 주겠으니 지금이 바로 은혜받을때요, 지금이 바로 구원의 날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짐을 맡기고 일을 맡기고 이제는 하나님의 종으로써 시종으로써 머슴으로써 일꾼으로써 품팔이로써 주인을 섬기며 하나님과 더불어 인생을 사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
우리 조상 아담을 따라서 우리는 주인인줄 큰 착각을 하고 나왔습니다.
주인 행세를 하다가 완전히 영도 마음도 몸도 생활도 작살이 나고 거지가 되고 말았습니다.
내 아버지 하나님이시여, 주인 흉내는 내나 주인이 될 수 있는 능력이 없고
자기 인생을 관리할 수 있는 기능도 없는 우리들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지금도 착각에 빠져있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스스로 부하다고 하나 거지요, 스스로 잘산다고 하나 비참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죄악의 누더기 옷을 입고 거드렁 거리고 있습니다.
허무와 무의미의 넝마를 입고 무엇이 있는줄 자랑하고 있습니다.
죽음의 처참한 비극을 안고도 영원히 살것처럼 거드렁 거리는 비극적인 존재인 것입니다. 아버지여 착각에서 깨어나게 하여 주시고 참으로 자기의 위치를 깨닫고
아버지 앞에 겸손하게 품꾼으로 나오는 우리들이 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 아멘

<결신>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오늘 하늘 문 열어 놓고 간절한 마음으로 여러분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 아들 예수님을 보내셔서 십자가에서 우리 대신하여 몸을 찢고 피흘려 우리의 죄와 잘못을 다 청산해 버려서 우리가 돌아올수 있는 길에 막힌 담을 다 헐어 버리고 주님이 성령 등불 밝혀 놓고 기다리십니다. 이 하나님의 은혜 받을 시기에 여러분 하나님께로 돌아 오십시오. 이제 하나님이 더 이상 자식을 기다리지 않겠다고 문 닫는 날에는 죽은 자와 잃어 버린 자는 처참하게 되는 것입니다. 보라 지금이 은혜받을 만한 때요, 지금이 구원의 날이니 나는 아직 예수 믿지 않습니다. 타락했습니다. 나도 예수 믿고 돌아오겠으니 나를 위해서 기도해 주십시오. 하시는 분은 대강당과 텔레비실과 지교회와 지성전과 지방 교회와 일본 여러 교회와 기독교 TV, CBS TV, 극동방송, 기독교 방송, 인터넷 앞에서 일어나 주시기 바랍니다. 이 시간에 일어나 주십시오. 여러분께서 하나님께로 돌아온다는 결단의 의지를 가지고 일어나십시오. 비밀로 돌아올수는 없습니다. 어떻게 아버지께 돌아오는데 비밀로 돌아옵니까? 주인된 교만한 마음을 저버리고 겸손한 품꾼의 마음으로 주님께로 돌아오면 오늘 주님이 환영해 주시고 널리 용서해 주시고 구원해 주십니다. 일어난 여러분 이 기도를 따라해 주십시오. 사랑하는 하나님! 저는 죄인입니다. 어디에서 와서 왜 살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고, 방황하며 지냈습니다. 오늘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믿음으로 일어났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 저를 씻어 주시옵소서. 저를 위하여 죽으시고 저를 위하여 부활하신 예수님을 제 구주로 모셔들입니다. 지금부터 영원토록 주님과 함께 살겠습니다. 하나님은 내 아버지가 되셨습니다. 예수님은 나의 구주가 되셨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저를 구원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 아멘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합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구원하여 주셨습니다.

<신유>
몸이 아프신 분은 아픈데 손을 얹고 그 외에는 가슴에 손을 얹으시기 바랍니다.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리가 옛날에는 다 스스로 주인되고 스스로 하나님인줄 알고 자기의 뜻대로 자기를 섬기며 살다가 이제 깨어져서 우리가 품꾼의 하나로 하나님께 나왔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주인이요, 우리의 하나님이 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고 섬기기 위해서 나왔아오니 아버지 하나님이여 예수 이름으로 우리를 고쳐 주시옵소서. 영도 고쳐 주시고 마음도 몸도 고쳐 주옵소서. 고쳐 주옵소서. 고쳐 주옵소서. 예수 이름으로 깨끗이 낫게 하나님이 기적을 베풀어 주옵소서. 아버지여 수고하고 무거운 짐도 다 아버지께 나왔습니다. 아버지께서 이 짐을 다 맡아 주장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이여 예수 그리스도의 놀라운 은혜와 평안을 우리에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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