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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본문 : | 마6:9-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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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자 : | 조용기 목사 |
| 참고 : | 여의도순복음중앙교회 2004년 3월 28일 주일3부설교 |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서론>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주께서 가르치신 기도’ 그 둘째를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우리의 모든 일에 먼저 할 것과 나중 할 것이 있습니다. 기도에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먼저 하나님의 관심사를 가지고 기도를 하고 나면 그 다음 하나님은 우리의 관심사, 우리의 소원을 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의 기도가 응답받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의 관심사를 제켜 놓고 자기의 소원만 아뢰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기도를 들어주실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전번 주간에 하나님의 관심사에 관해서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하나님의 관심사에 대한 기도였었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관심사를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은 우리 인간의 관심사에 관해서 응답하여 주시기 원하기 때문에 인간의 소원과 관심사를 하나님께 아뢰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로써 아뢰어야 하나님께서 역사하십니다. 기도는 마치 수도의 파이프와 같습니다. 여러분 수도 파이프가 우리 부엌에 들어와 있어도 수도꼭지를 틀어야 물이 나오는 것처럼 기도는 수도꼭지와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언약과 축복이 아무리 우리에게 주어졌어도 우리가 기도의 수도꼭지를 틀어야만 하나님의 은총이 임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인생사에 대한 기도는 어떤 기도를 해야 될까요?
<본론>
1.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첫째로, 하나님께서는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라는 기도를 하라는 것입니다. 일용할 양식은 우리의 삶의 가장 기초적인 요소인 것입니다. 사람이 이 땅에 살자면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어디에 살까하는 것은 기본적인 문제인 것입니다. 이것을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기도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성경에도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까?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염려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요 너희 천부께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될 줄을 아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것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알고 우리보고 기도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어느 신학자가 말하기를 “하나님은 우리 육신의 요구에는 관심이 없으시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나 마 7: 9~11에는 그렇게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면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면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아들이 떡을 달라는데 “필요 없어” 그리고 돌을 주겠습니까? 아들이 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이나 먹어” 그렇게 할 아버지가 있겠어요? 우리 인간도 자기 자식들에게 떡 주고 생선줄 줄 아는데 하물며 천부께서 구할 때 우리에게 좋은 것 안주시겠냐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일용할 양식을 구하기 위한 여러분 것은 모든 것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일용할 양식을 얻으려면 교육이 있어야 돼죠. 교육받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교육을 받고 난 다음 직장을 얻어야 됩니다. 직장을 달라고 하는 것도 일용할 양식을 달라고 기도하는데 포함되어 있습니다. 또 직장이 있으면 왔다갔다 교통편이 필요한 것입니다. 혹은 교통을 할 수 있도록 차비를 달라든지 자동차를 달라든지 그것도 하나님의 뜻입니다. 또 우리가 일용할 양식을 가지고 살기 위해서는 집이 필요하지 않습니까? 집을 달라고 기도하고 집이 있으면 또 가족이 있어야 되잖아요. 가족을 달라고 기도하고. 우리의 사는데 필요한 모든 것이 일용할 양식을 달라는데 포함되어 있습니다.
초대교회 당시의 영지주의자 마르시오는 육체는 악한 것이고 영은 선한 것이라는 이원론적인 생각으로 하나님께 육신을 위해서 필요한 양식을 구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중세후기의 왈도파 역시 진실한 기독교인은 가난해야 하기 때문에 하나님께 육신의 필요를 위해서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은 우리의 육신의 요구에 관심이 없으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누구보다도 우리의 육신적인 요구에 관심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기도문에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구하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육신의 일이 악한 것이고 육신의 일에 관심이 없다면 왜 하나님이 영으로 그냥 계시지 그 아들을 육신의 몸을 쓰고 이 세상에 오시게 하셔서 우리와 더불어 먹고 마시며 우시고 고통당하시고 우리 짐을 지시고 결국에는 십자가를 짊어지고 몸을 찢고 피를 흘려 우리의 죄와 불의, 추악과 저주, 절망과 죽음을 대신 갚았을까요? 하나님이 육신의 일이 아무 소용이 없고 악한 것이고 무관심한 것 같으면 육신을 쓰고 세상에 오셔서 육신에 있는 우리들을 도우려고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영적으로 우리를 지으셨을 뿐 아니라 영이 육신 속에 거하여 이 세상에 살도록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영의 세계만 하나님이 지은 것이 아니라 물질세계, 육신세계를 하나님이 지으신 것입니다. 우리가 순서를 바꾸지 아니하면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것은 아름다운 것입니다. 그 나라와 그 의를 먼저 구하고 하나님을 먼저 섬기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누리라고 주신 우리의 육신이나 물질세계는 다 아름다운 것이고 영광스러운 것이고 신령한 것입니다.
종교 개혁자 마르틴 루터는 일용한 양식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습니다. “생명 보존하는데 필요한 모든 것이 양식인데 이것은 음식, 건강한 몸, 좋은 기후, 집, 가정, 좋은 정부, 평화를 다 포함한다.”고 말했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구할 때 그 일용할 양식이 온갖 우리 생활에 필요한 요소들을 다 포함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를 원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는 매일매일 하나님께 이러한 복을 구해야 되는 것입니다. 복이 어디에서 옵니까? 하늘에서 오지 않습니까? 태양은 아름다운 빛을 우리에게 퍼부어 줍니다. 복이 아닙니까? 공기도 복이요, 물도 복이요, 온갖 세상만물이 다 복이 아닌 것입니까? 복의 근원은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우리는 매일매일 하나님께 복을 구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를 지날 때 하나님께서는 일용할 양식을 그들에게 허락했습니다. 하루 이틀이 아닌 40년을 하늘에서 만나를 비와같이 부어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 만나를 일주일 분, 한 달 분, 일 년 분을 주신 것이 아니라 매일매일 그날 먹을 양식을 그날 주셨습니다.
출16: 4에 “때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서 양식을 비 같이 내리리니 백성이 나가서 일용할 것을 날마다 거둘 것이라 이같이 하여 그들이 나의 율법을 준행하나 아니하나 내가 시험하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하나님을 섬기되 매일 섬기고 기도하고 믿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한꺼번에 일주일씩 기도를 하고 마라는 것이 아닙니다. 한꺼번에 한 달 치 기도를 하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매일매일 하나님께 나와서 그날에 우리의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아뢰야 되는 것입니다.
시68:19에 “날마다 우리 짐을 지시는 주 곧 우리의 구원이신 하나님을 찬송 할찌로다.”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짐을 날마다 하나님께 아뢰야 돼요. 일주일치, 한달 치를 한꺼번에 아뢰라고 말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날 짐을 그날 하나님께 아뢰야 되는 것입니다.
시88:9에 “여호와여 내가 매일 주께 부르며 주를 향하여 나의 두 손을 들었나이다”
매일 그날그날 하나님께 두손 들고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고전2:9에는 “기록된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고 생각지 못한 것을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서 다 예비해 놓으셨습니다. 그리고 매일매일 우리가 부르짖어 기도할 때 매일매일 하나님은 응답해 주시기를 원하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과의 끊임없는 교통이 필요한 것입니다. 한꺼번에 많은 양을 구하는 것은 탐욕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매일매일 양식을 구하는데 그것을 이틀 분을 구해보니까 이튿날 아침에 구한 만나가 다 썩고 냄새가 나고 벌레가 생겼습니다.
출16:20에 “그들이 모세의 말을 청종치 아니하고 더러는 아침까지 두었더니 벌레가 생기고 냄새가 난지라 모세가 그들에게 노하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틀분 양식을 저장한 사람에게 노한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이 우리의 삶의 근본이 되시고 우리 하나님이 우리의 양식의 창고가 되시기 때문에 다른 데에 쌓아 놓을 필요 없이 매일매일 주님께 구하면 주님이 하늘 창고에서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이만큼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두려워 말고 놀라지 말고 하나님을 의뢰하라.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욕심을 부리면 안 됩니다.
시106:14~15에 “광야에서 욕심을 크게 발하며 사막에서 하나님을 시험하였도다. 여호와께서 저희의 요구한 것을 주셨을찌라도 그 영혼을 파리하게 하셨도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욕심을 내면 하나님이 응답을 하실지라도 그 영혼이 죽고 마는 것입니다.
약4:2~3에 “너희가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고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나니 너희가 다투고 싸우는도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고 했습니다.
우리 자식이 번연히 술먹고 음란하고 방탕하기 위해서 돈을 달라고 할 때 알고 부모님이 돈을 줄 리가 있겠습니까? 올바르게 쓰겠다면 주지만은 잘못 쓰려고 하는데 어떻게 주겠습니까? 우리도 욕심과 정욕과 탐욕으로 하나님께 구하면 하나님이 응답하지 아니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진실로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며 매일매일 필요한 양식을 구합니다. 매일 필요한 건강을 구하고 매일 필요한 능력을 구하고 은혜를 구하면 하나님은 매일매일 같이 주시는 것입니다.
21세기 성자로 불리우는 테레사는 켈거타 사랑의 집에서 7천명의 인도 사람들을 돌보았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음식을 담당하는 수녀가 테레사에게 찾아와서 “원장님! 금요일과 토요일에 먹을 쌀이 떨어졌어요.” 그렇게 말했습니다. 테레사 수녀는 “걱정하지 마세요. 아버지되신 하나님이 알아서 돌보아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테레사는 하나님께 나와서 엎드려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7천명의 사랑의 집에 있는 이 환자들이 금요일 날 토요일 날 먹을 양식이 떨어졌습니다. 아버지께서 돌보아 주시옵소서.’ 그런데 금요일 아침에 트럭소리가 나더니 빵을 잔뜩 실은 트럭이 사랑의 집 정문에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쌀밥을 먹는 대신에 금요일 날 토요일 날 빵으로 배를 불렸는데 그 빵이 어디서 왔느냐 켈거타 모든 학교가 당국의 갑작스런 지시로 휴교를 하는 바람에 급식으로 준비된 빵이 모두 산더미처럼 남았기 때문에 “이것 어디 갔다줄꼬? 테레사 수녀가 경영하는 사랑의 집에 갖다 주자.” 그래서 빵을 가지고 와서 금요일 날 토요일 날 배불리 그 환자들이 7천명이나 빵을 먹었습니다.
여러분 필요하다면 학교 급식을 하나님이 돌려서라도 일용할 양식을 대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녀들을 굶기지 않으시고 일용할 양식을 주시기 때문에 여러분 두려워 말고 놀라지 마십시오. 육신의 부모도 자식에게 먹을 주시거든 하늘과 땅을 지으시고 그 아들을 선물로 주신 하나님이 여러분의 먹을 것 주시지 않을 리가 없습니다. 담대한 믿음으로 기도하십시오. 그 때문에 주기도문에 주님께서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달라고 기도하라고 하나님 말씀 하셨습니다.
2.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둘째로,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달라고 기도하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여러분 용서는 십자가 정신의 기본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와 불의, 추악과 저주와 절망과 죽음을 짊어지고 몸 찢고 피 흘려 죽으셨지 않습니까? 그가 매달려 있을 때 원수들이 그를 침 뱉고 머리를 흔들고 온갖 욕을 다했습니다. 그를 가혹하게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예수님이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아버지여, 저들이 알지 못해서 저렇게 하오니 용서하여 주옵소서.’ 주님이 당한 고통 여러분 보통이 아닙니다.
‘패션오브크라이스트’라는 영화에 보면 주님이 빌라도의 뜰에서 매를 맞는 모습과 십자가를 짊어지고 골고다로 향하는 그 모습과 십자에서 처참하게 못 박힌 모습은 가히 인간의 상상을 초월한 고통입니다. 저는 그 영화를 보면서 몸서리쳤습니다. 죄가 저렇게 무서울 수가 있느냐, 죄의 대가가 저렇게 무서울 진즉 만일 예수님을 믿지 않고 자기 죄를 담당하려고 한다면 그 심판의 고통은 어떠할까 몸서리쳤습니다. 이 영화를 보다가 심장마비가 걸려 죽은 사람도 있고 극한 죄를 짓고 살인죄를 감추었던 사람도 이 영화를 보고 깊은 충격을 받고 당국에 가서 죄를 회개하고 스스로를 체포되게 한 사람도 있다고 합니다. 이럴 정도로 충격적인 영화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죄 없는 자로써 죄 있는 자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매달려 있으면서 끝까지 용서해 주신 것입니다. 율법주의자에게는 십자가가 없습니다. 율법으로만 보는 사람은 남을 발가벗기고 남을 할퀴고 남을 더럽히고 짓밟는 것이 율법이라는 것입니다. 율법은 용서가 없습니다. 그러나 십자가에는 용서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보고 뭐라고 말씀하는 것입니까?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처라.” 죄 없는 자 누가 있어요? 십자가는 용서의 처소인 것입니다. 십자가 없는 율법은 무자비하게 벗기고 할퀴고 더럽히고 짓밟습니다. 여러분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끌어안고 믿는 사람인 이상 주님께로부터 용서받은 사람인 이상, 예수 그리스도의 뜻을 쫒아 이웃을 용서해야만 되는 것입니다.
마5:43~44절에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정말로 어려운 말씀입니다. 저는 이 말씀을 처음 읽었을 때 몸부림쳤습니다. 상당히 마음에 고통당했습니다. “주여 원수를 사랑할 수가 있습니까? 원수를 미워는 안하겠습니다만 사랑은 못하겠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말합니다. 원수를 사랑하고 너를 핍박하는 자를 위해서 기도하라. 이것이 십자가의 정신이요, 그리스도의 은혜인 것입니다. 이러므로 원수를 사랑하라고 말씀하시는데 용서해 줄 것은 마땅한 일인 것입니다. 인간은 용서와 화해와 사랑이 없이는 살수가 없어요. 여러분 인간이 하나님이 아닌 이상 인간은 많은 실수를 하고 죄를 짓지 않습니까? 죄짓지 않은 남편 보았습니까? 실수하지 않는 아내를 보았습니까? 완전한 부모 보았습니까? 완전한 자식을 보았습니까? 우리는 다 허물이 많고 죄가 많은 사람입니다. 아내는 남편을 끊임없이 용서해 주어야 됩니다. 남편도 아내를 끊임없이 용서해야 되고 부모는 자식을 자식은 부모를 용서하고 화해하고 사랑해야 되는 것입니다. 용서가 없이 율법주의로 나간다면 서로 물고 찢고 싸우고 치고 때리고 피투성이가 되고 절망하고 말 것입니다.
마18:35에 “너희가 각각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내 천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베드로는 일곱 번 용서하면 대단히 많은 해준 줄 알고 가슴을 펴고 “주여, 내 이웃이 나에게 잘못했을 때 일곱 번 용서하면 됩니까?” 예수님이 베드로 가만히 보시고 “베드로야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잘못하고 돌아와서 회개하거든 용서해 주라”고 했습니다. 일곱 번씩 일흔 번은 490번입니다. 그것은 끝없이 용서해 주라는 것입니다.
엡4:32에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하나님이 너를 용서해 준 것을 생각하고 그것처럼 이웃을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용서해 주라고 말했습니다.
벧전4: 8에 “무엇보다도 열심 으로 서로 사랑할찌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미움은 죄를 벗기지만은 사랑은 죄를 덮습니다. 인간은 항상 이웃과 공존의 관계 속에 살고 있습니다. 성경에는 나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용서해 준 것 같이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라고 했습니다. 우리 단위로 삽니다. 인생은 우리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우리로써 태어나는 것입니다. 아버지, 어머니가 있어야 태어나잖아요. 그러므로 벌써 인간의 생명으로 태어날 때 단위가 ‘우리’입니다. 아버지, 어머니 나와함께 우리가 세상에 사는 것입니다. 여러분 인생은 항상 우리입니다. 가족은 다 우리지요. 형제들과 함께 그리고 시집 식구들도 있고 친정 식구들도 있고 동창생도 있고 이웃도 있고 우리 단위로 사는 것입니다. 나 혼자만 사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관계가 올바르게 될 때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도 올바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웃과 우리가 올바른 관계를 맺어야 돼요. 그것이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는 맺는 것입니다. ‘아 나만 예수 잘 믿으면 된다. 너희들이야 죽든 살든 내가 무슨 관계가 있느냐?’ 주님은 ‘나는 너와 상관이 없다’고 말할 것입니다.
옛날에 내가 서대문에 있을 때 늘 잊지 않는 생각이 하나 있습니다. 한 전도자가 내게 와서 “서대문교회 주의 종으로 삼아 달라고 해요. 자기는 철야기도도 많이 하고 금식기도도 많이 하고 전도도 열심히 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열심 하게 보였어요. 그래서 내가 "그럼 가족관계를 묻겠다고 ”부인과 자녀들은 몇이나 있느냐니까.” 너털웃음 웃으면서 가슴을 치면서 “주를 위해서 분토와 같이 버렸습니다.” 그렇게 말하더라고. 내가 너무나 충격을 받았어요. 그래서 내가 그 사람을 자세히 보고 “나도 당신을 분토와 같이 버리노라.” 자기의 자식을 분토와 같이 보내고 주님을 위해서 일한다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자기 친족을 돌보지 않는 자는 불신자보다 더 악하다고 성경이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존재는 가족 단위에서 시작합니다. 나는 내 가족과 운명을 같이 하고 그리고 내 이웃과 함께 운명을 같이 합니다. 그래서 내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골3:12~14에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의 택하신 거룩하고 사랑하신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 누가 뉘게 혐의가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언제나 주님은 말합니다. 내가 너희를 용서한 것처럼 너도 용서해 주라. 너희가 용서 안하면 나도 용서 안하겠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의 죄도 사하여 달라고 기도하라고 말한 것입니다.
월남 전쟁 때 미군이 네이팜탄을 마을에 투하하여 마을은 순식간에 불바다로 변화고 있었습니다. 그 불길 속에서 겁에 질린 한 소녀가 울부짖으며 알몸으로 도망쳐 나온 모습을 사진으로 여러분 보셨을 겁니다. 저도 그때 그 사진을 본 것이 영롱하게 마음속에 기억되어 있습니다. AP통신의 한 기자는 이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 전쟁의 참화를 생생하게 보여준 것으로 퓰리처상을 받았습니다. 그 사진의 아이는 킴푹 여사입니다. 킴 푹 여사가 한국에 왔을 저를 찾아와서 저의 사무실에서 장시간 서로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때 그 킴푹 여사는 자기의 경험담을 제게 말했습니다. 그는 세계 평화를 호소하는 명예대사로 활동하고 있는데 17번이나 수술을 받으며 미국을 증오하고 미국사람이 미워했으며 전쟁을 증오 했습니다. 그녀의 마음속에 미움이 꽉 들어차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녀가 말하기를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나날이 그 마음속에 꽉 들어찬 증오와 미움으로 말미암아 자기의 마음이 죽어가고 몸이 시들어 가고 생활에 좌절과 절망이 꽉 들어찼다는 것입니다. 마치 눈에 안 보이는 감옥 속에 들어가서 꼼짝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미국으로 건너가서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고 십자가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자기 죄를 다 자백하고 그리고 미워한 죄를 다 고백하고 미국을 용서하고 미국의 군인들을 용서하고 전쟁을 다 용서한 결과에 눈에 안 보이는 감옥의 창살에서 벗어나 그때부터 얼굴에 광채가 나고 행복과 기쁨이 넘치고 진실한 행복과 사랑이 넘쳐나 이웃을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고 제게 고백했습니다. 여러분 그 킴 푹 여사는 네이팜탄으로 온몸이 모두 다 구워 놓은 것 같아요. 얼마나 아프고 고통스럽고 괴로웠겠습니까? 안 미워할 수가 없어요. 그 네이팜탄을 투하한 미국을 미워하고 미국 군인들을 미워하고 전쟁을 미워하고 그가 하는 말이 미워하고 있을 동안에 자기의 인생은 참혹하고 답답하고 고통스럽고 불행했다는 것입니다. 십자가 밑에서 용서하고 나니까 살아난 것과 새가 새장에서 날라 나온 것 같고 너무나 기쁘고 즐겁고 쾌활하고 그때부터 마음도 고침 받고 육신도 고침 받고 행복하게 되었다는 그 말은 참 놀라운 말이었었습니다.
우리교회 자매님이 내게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자매님은 남편과 교회에 열심히 나왔는데 성수주일하고 철야기도도하고 가정예배도 드리고 잘 믿는 행복한 가정이었고 하나님이 복을 주셔서 굉장히 부요해 지자 그만 남편이 타락했습니다. 주일날 교회 안 나오고 성경도 읽지 않고 술 먹고 외도하고 방탕하고 도박에서 결국에는 사업체 다 날리고 살림 다 날리고 쪽박 차고 단칸 셋방에 들어가서 살게 되었습니다. 그 부인이 너무너무 남편이 원망스럽고 밉고 저주스러워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제게 신앙상담을 왔습니다. 그래서 내가 그 자매님에게 말했습니다. “자매님! 남편을 미워하고 저주하고 몸부림치면 결국에는 그 미움이 자매님을 속에서부터 죽입니다. 그 미움이 자매님을 파괴합니다. 마음이 파괴되고 육체가 병들고 생활이 절망하게 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밑에서 남편을 용서해 주십시오. 남편을 용서해 주고 계속해서 남편을 위해서 기도해주고 남편보고 절대로 당신 때문에 우리 가정이 망했다고 원망하고 불평하지 마세요. 해봤자 소용이 없습니다. 역효과가 납니다. 더 남편을 좌절하고 타락하게 만듭니다. 그러니까 십자가 밑에서 남편을 무조건 용서해 주고 그리고 하나님 앞에 기도드리십시오.” 그 자매님이 집으로 돌아가서 그때부터 끊임없이 십자가 밑에서 남편의 죄를 다 용서하고 9년 동안 하나님이 남편을 구원하고 가정을 복구시켜 주시기를 기도했습니다. 그동안에 한 번도 남편에게 당신 때문에 우리 가정이 망했다는 원망을 안 하고 기도 만했습니다. 9년이 지나자 남편이 눈물을 흘리면서 그 부인 앞에 와서 무릎을 꿇었습니다. “당신 같은 천사는 처음 보았다. 나는 당신이 나를 욕하고 꾸짖고 저주하고 할퀴어 주기를 바랬다. 그러면 내 마음에 보상이라도 될것이니까. 한결같이 당신은 눈물만 흘리면서 기도하고 나에게 원망하지 않고 저주하지 않고 기도하고 축복만 해주는 바람에 내가 얼마나 괴로웠는지 말도 못한다. 나를 용서해 주시오. 내 당신 따라 다시 교회 나가리이다.” 그래서 9년 만에 그 남편이 교회 나오고 회개하고 변화 받고 다시 하나님이 복을 주어서 회복시켜 잘살게 되었는데 오늘 이 예배에 나와서 내 설교 듣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부인이 만일 남편을 저주하고 욕하고 상처를 입혔다면 남편은 그것을 기회로 삼아서 더 타락하고 인생을 포기 했을 런지도 모릅니다. 용서는 우리에게 큰 화해와 변화를 갖다 주는 것입니다. 용서만큼 위대한 힘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능력이 없어서 그 아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까? 하나님이 호령과 명령을 하시고 율법으로 심판하고 판단해서 우리를 돌이킬 수 있으면 얼마든지 그렇게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직 용서만이 사람을 변화시키고 새 사람으로 만들 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이 십자가에 못 박혀 힘없이 늘어진 것입니다. 그를 통해서 용서와 화해를 주시고 그 용서와 화해를 통해서 우리를 변화시키고 새 사람을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3.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셋째로, 하나님께서는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여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하라고 말한 것입니다.
시험이란 즉, 마귀의 미끼인 유혹인 것입니다. 시험에 들면 마귀의 낚시에 걸리게 됩니다. 마귀는 유혹의 미끼를 낚시에 걸어서 던집니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여러 가지 유혹의 미끼를 가지고서 던지면 그 유혹을 탁 물면은 낚아채는 것입니다. 마귀에게 낚아 채이면 그때로부터 한없는 고통과 괴로움을 겪게 되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 보십시오. 완전한 사람으로 지음을 받고 완전한 에덴동산에 있었는데 하나님께서 말씀하기를 “동산의 모든 실과는 따먹되 선악을 아는 실과는 먹지 말라. 먹는 날에는 너희가 죽으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사탄이 그것을 통해서 시험했습니다. 마귀가 뱀의 형상으로 와서 하와에게 말했습니다. “동산의 실과를 따먹지 말라고 하더냐?” “아니라 따먹되 선악을 아는 실과는 먹지 말라. 만지지도 말라. 죽을까 하노라 하더라.” “아니야~ 안 죽는다. 이 실과를 먹으면 너희 눈이 밝아 너희도 하나님처럼 될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샘을 내어서 못 먹게 하신 것이다.” 마음속에 원망과 탐심을 넣어준 것입니다. 그래서 하와가 그 말을 듣고 그 실과를 보니 먹음직하고 보암직하고 지혜를 얻을 만큼 탐스러운지. 손을 내어 그 실과를 따먹고 남편에게 주고 하나님을 대적하고 타락해 버리고 말은 것입니다.
욕심이 잉태하면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습니다. 마음에 탐욕이 들어오면 비정상적인 행동을 하게 되고 비정상적인 행동이 오래가면 사망을 낳잖아요.
다윗 보십시오. 그가 열심히 전쟁에 나가서 싸울 때는 하나님을 섬기고 잘 살았는데 생활이 부요해지고 전쟁도 이기고 많은 나라를 정복하고 난 다음에는 자기가 직접 전쟁에 나올 필요가 없으니까 요압장군을 전쟁에 보내고 자기는 늦잠자고 오후에 늦게 왕궁의 옥상정원에 거닐고 있다가 보니까 저 밑에 담 너머 한 여인이 눈같이 흰 살결을 내보이면서 목욕을 하고 있습니다. 아~ 먹음직하고 보암직하고 탐스럽습니다. 유혹을 당해서 다윗이 사람을 보내어서 그를 불렀습니다. 알고 보니 자기가 일선에 내보낸 이스라엘 군인의 아내입니다. 우리아의 아내며 그 밧세바를 취했습니다. 그리고 집으로 보냈는데 밧세바가 얼마 있지 않더니 연락이 왔습니다. “당신으로 말미암아 잉태하였나이다.” 그것을 숨기려고 우리아 불러다가 아내와 같이 동침시키려고 하니 우리아는 충성스러운 군인이라 “나는 내 군인들이 천막 밑에 있고 이슬을 맞고 자며 전쟁을 하고 있는데 내가 어떻게 집에 와서 아내하고 먹고 마시고 자겠습니까?” 하고서 왕궁의 수위실에서 잠을 잡니다. 집에 안 들어 가요. 그래서 요압장군에게 편지를 써서 “일선으로 오거든 가장 위험한데 보내어서 이 사람 죽게 하라” 그래서 요압에서 연락이 왔어요. “당신이 전갈한데로 아주 일선에 보내어서 이 사람이 원수의 활에 맞아 죽었습니다.” 다윗이 “허허허, 전쟁이란 원래 죽이기도 하고 죽기도 하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이 선지자 나단을 보내서 다윗에게 “당신이 이죄를 짓고 하나님 앞에 심판을 받을 것이라.” 다윗은 그 말을 듣고 놀래서 꿇어 앉아 통곡을 하고 울고 죄를 고백했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의 죄를 용서해 주었으나 그 이후로 다윗의 가정에 칼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다윗의 생애는 그 이후에 늘 불행의 연속이었습니다. 심판을 받은 것입니다.
그때 시51:10~12절을 다윗은 지어서 회개를 했습니다.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신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키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
다윗은 그 생애 속에 그의 온전하게 하나님을 섬겼으나 유혹에 떨어져서 남의 아내를 탐하여 간음을 하고 그 남편을 죽인 살인죄를 지은 것이 그 생애 일대 흠점이 되고 말은 것입니다. 맹자의 어머니가 아들 교육을 위해서 집을 세 번씩이나 옮겼다는 사실을 잘 아시죠?
묘지 곁에 사니까 밤낮 바라보는 것이 장례식이라 늘 짐승이나 벌레를 잡아 죽이면 그 아들이 “어아홍, 어아홍, 어아 남차 어아홍, 이제가면 언제 오나. 어아홍, 어아홍” 어머니가 가만히 들으니 큰일 났다 말입니다. 그래서 안 되겠다고 시장터로 집을 옮겼더니 장사하는 것을 보고 이제는 어머니가 집에 들어오니까 얘가 “헐찍 헐찍한 물건 자 사세요. 떨이입니다. 떨입니다. 반값에 드립니다.” “야 이것 큰일 났다.” 그래서 할수 없이 서당 옆으로 집을 옮겼더니 그때부터는 “하늘 천 따지 검을현 누루 황 집우 집주 넓을 홍 거칠 황...” 천자문을 외워. 그래서 성년이 되었다는 말이 있습니다.
바라보고 마음에 상상하면 그대로 끌려가게 되므로 유혹을 이기려면 피해야 되는 것입니다. “아~ 나는 유혹 같은 것 문제없다. 나는 죄를 이길 수 있다.” 그럴 수 있는 사람 없어요. 사람이 바라봄의 법칙을 통해서 유혹을 바라보면 유혹이 내게 끌려오고 내가 유혹으로 끌려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요사이 인터넷을 통해서 젊은이들이 모든 부패한 사항, 음란과 방탕한 정보들을 접수하고 타락하고 살인도하고 방탕도 하는 것을 우리가 보잖아요. 바라봄의 법칙은 무서운 것입니다. 미국의 유명한 부흥사가 된 분의 간증을 들어 보았는데요. 그는 술주정뱅이요, 알콜 중독자인데 예수를 믿고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술을 안 먹겠다고 결심을 하고 자기가 직장에서 오는데 꼭 자기가 늘 들리던 술집을 지나오는데 그 술집 앞을 지나올 수 있다고 생각하고 왔는데 술집 앞에 딱 발이 서게 되면 “주여! 술집에 안 들어가게 해주시옵소서. 주여! 안 들어가게 해주시옵소서. 아이 한번만 들어가자 까짓 껏.” 그래가지고 술을 또 마시는 거에요. 집에 와서 통회하고 회개하고 자복하고 직장에 왔다가 그 이튿날 또 그길로 오다가 또 술을 마시는 거에요. 유혹을 이길 수가 없어요. 그래 나중에 목사님과 카운셀링 하기를 목사님이 “멀더라도 길을 돌아서 가라. 술집 앞을 지나가지 마라.” 그래서 술집 앞을 지나가지 말고 돌아서 간 이후로부터는 술 마시는 것을 이겼다는 간증을 했습니다. 유혹은 피해야 되는 것입니다. 맞부딪히면 유혹에 떨어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나쁜 친구를 피해야 됩니다. 같이 돌아다니면 물들게 되는 것입니다. 나쁜 곳은 안가야 되는 것입니다. 가는 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유혹의 탐심을 거부하고 악한 자 마귀를 우리는 대적하며 살아야 됩니다. 이 세상은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기 때문에 믿음을 굳게 하여 늘 마귀를 대적해야 돼요. 온 세상은 악한 자에게 속하고 그 악한 자 속에 우리가 들어와 사니까 악한 자가 어찌하든지 우리를 유혹으로 끌어 들이려고 하지 않습니까? 믿음을 굳게 하여 늘 마귀를 대적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이 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제일 먼저 부탁한 것이 너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라고 말한 것입니다. 귀신을 늘 쫓아내야 돼요. 조금이라도 유혹이 들어오면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물러갈찌어다.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물러갈찌어다.” 단호하게 대적하고 물리치면 마귀는 한길로 왔다가 일곱 길로 도망을 치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우리가 권세가 있다고 말합니다.
눅10:19에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주었으니 너희를 해할 자가 결단코 없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약4:7에는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순복할찌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갈5:1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우리는 믿음에 굳세게 서서 예수 이름으로 원수 마귀와 유혹을 단호하게 대적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마귀가 우리를 피해서 떠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제가 어떤 부형님과 신앙상담을 한 적이 있는데 그 부형님은 꾀 여유 있는 생활에 지식수준도 높은 분입니다. 요즘 들어와서 아예 부인이 몸서리치게 보기 싫다는 것입니다. 걸음걸이도 보기 싫고 말하는 것도 듣기 싫고 모습도 보기 싫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실제 그 부인은 제가 잘 아는데 외모도 이쁘고 성격도 원만하고 괜찮은데 남편이 부인하고 못살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남편이 하는 말이 자기 이성적으로 생각해보면 이혼을 하면 자기들도 애들이 있는데 애들도 불행하게 되고 자기도 불행하게 되고 모든 것이 엉망이 될 것인데도 불구하고 그러나 자기 부인만 보면 몸서리나게 실증이 나고 밉고 집에 들어오기가 싫고 고통스러우니 나는 어떻게 해야 됩니까? 그렇게 저보고 한탄을 해요. 제가 가만히 보니까 그 부인 남편이 마귀에게 눌렸어요. 내가 “부형님! 부형님 자신부터 변화가 되어야 되는데 스스로 변화가 안 되지요. 심리적으로 훈련을 받아서 변화될 것이 아닙니다. 내가 보기에는 마귀가 눌렀습니다. 부인을 미워하는 마귀, 또 세상을 향한 음란 마귀가 당신을 누르고 있습니다. 당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예수 이름으로 마귀를 대적하고 보혈로 씻음을 받고 성령으로 사랑을 부어 주도록 기도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매일같이 집에서 아내를 미워하는 원수 귀신아 물러갈찌어다. 물러갈찌어다. 주여 보혈로 이 마음을 씻어 주시고 성령이 사랑의 은사로 부어 달라고 기도를 하십시오.” 그리고 제가 예수 이름으로 그 부형님에게 안수하고 힘차게 마귀를 꾸짖었습니다. “이 음란의 귀신아 이 가정을 파괴하려는 귀신아 이 아내를 미워하는 귀신아 물러 갈찌어다. 물러 갈찌어다.” 그리고 갔는데 얼마 세월이 지나고 난 다음 이 남편이 제게 다시 왔어요. 얼굴이 편안하게 보이고 얼굴에 미소를 가지고 와서 “목사님~ 내가 많이 달라져 보이죠?” “어떻게 되었습니까?” “목사님 시키는 데로 집에 가서 그냥 마누라 미워하는 귀신아 물러가라! 마누라 미워하는 귀신아 물러가라! 예수의 보혈로 씻어 주시고 성령으로 사랑을 부어 달라고 자꾸 기도를 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마치 꿈에서 깨어나듯이 어두움에서 밝은 빛이 비취듯이 마음이 확 열리고 변화가 오더니만 미운생각이 싹 사라져 버리잖아요. 안개가 걷어지듯이 미운생각이 떠나가고 내가 왜 미워 했던가 마음이 편안해지고 사랑을 하게 되니 나도 편하고 가정도 편하고 행복하고 너무나 좋아졌습니다.” 마귀를 대적하라 저가 너희를 피하리라. 비정상적인 것은 다 마귀의 역사인 것입니다. 비정상적인 것은 우리가 예수 이름으로 내어 쫓아야 돼요. 쫓지 않으면 그대로 있습니다. 쫓아야 물러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은 이 세상에 오셔서 그 사업을 시작하자마자 천국 사업에서 늘 귀신 쫓아내는 일을 하셨습니다. 우리 생각보다 더 놀랍게도 우리의 생활에 귀신들이 우리에게 잘못된 유혹을 하고 잘못된 길로 이끌어 가고 있습니다.
마르틴 루터는 매일같이 아침에 일어나서 기도하기를 나를 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해달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매일매일 귀신은 우리에게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러 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매일 주님은 기도할 때 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시고 유혹에 떨어지지 말게 하옵시고 다만 악에서 악한 귀신에서 건져 달라고 기도하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것처럼 우리의 생활 속에 마귀의 유혹은 매일같이 있고 귀신의 공격은 매일같이 있습니다. 그것을 그냥 무료하게 지나면 안 됩니다. 매일같이 우리는 주님이 기도하라고 한데로 유혹에 떨어지지 않도록 해달라고 기도하고 귀신을 쫓아내야 되는 것입니다. 일어서나 앉으나 귀신의 유혹과 공격을 내어 쫓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주님께서 우리를 해방시켜 주시고 자유롭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기도의 끝은 하나님에 대한 찬양이어야 됩니다. 하나님의 나라, 절대주권 영광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다는 그 찬미를 끝으로 우리가 기도를 마쳐야 될 것입니다.
우리는 이와 같으신 하나님께 항상 경배의 기도를 드리고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먼저 하나님의 관심사를 우리가 기도하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하나님의 관심사를 기도하고 난 다음에는 우리의 인간의 관심사에 관해서 딱 지적하신 것입니다. 일용할 양식 구하라. 일용할 양식을 얻기 위해서 필요한 모든 요소를 합쳐서 구하라. 그리고 용서해 줘라. 내가 용서해 주는 것처럼 나도 용서해 주마. 그리고는 시험에 들지 않도록 늘 기도하라. 마귀를 쫓아내어라. 유혹에 들지 않게 기도하고 악한 자에게 건져 달라고 기도하고 악한 자를 대적하라. 그러면 매일같이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는 삶을 살수 있다고 말씀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결론>
여러분 우리의 기도에 하나님의 관심사를 언제나 마음에 먼저 두고 기도하고 우리의 인간의 관심은 하나님이 반드시 들어 주시는 것이니까 흔들리지 않는 믿음으로 기도하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이 많으신 우리 하나님 아버지!
높이 계신 우리 아버지를 찬양합니다. 아버지의 나라가 항상 우리 교회 가운데 성도의 마음속에 임하시고 하나님의 뜻이 하나도 남김없이 이루어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날 구하오니 우리 성도들의 마음에 믿음, 소망, 사랑 주시고 일용할 생활을 축복해 주시 옵시고 치료해 주시고 시험에서 건져 주시고 마귀에서 해방시켜 주시고 승리의 삶을 살도록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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