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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뼈들이 능히 살겠느냐?

에스겔 조용기............... 조회 수 2482 추천 수 0 2009.04.27 12: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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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겔37:1-10 
설교자 : 조용기 목사 
참고 : 2004년 4월 11일 주일3부설교 
 
“여호와께서 권능으로 내게 임하시고 그 신으로 나를 데리고 가서 골짜기 가운데 두셨는데 거기 뼈가 가득하더라 나를 그 뼈 사방으로 지나게 하시기로 본즉 그 골짜기 지면에 뼈가 심히 많고 아주 말랐더라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 뼈들이 능히 살겠느냐 하시기로 내가 대답하되 주 여호와여 주께서 아시나이다 또 내게 이르시되 너는 이 모든 뼈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너희 마른 뼈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찌어다 주 여호와께서 이 뼈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생기로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리라 너희 위에 힘줄을 두고 살을 입히고 가죽으로 덮고 너희 속에 생기를 두리니 너희가 살리라 또 나를 여호와인줄 알리라 하셨다 하라 이에 내가 명을 좇아 대언하니 대언할 때에 소리가 나고 움직이더니 이 뼈, 저 뼈가 들어 맞아서 뼈들이 서로 연락하더라 내가 또 보니 그 뼈에 힘줄이 생기고 살이 오르며 그 위에 가죽이 덮이나 그 속에 생기는 없더라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너는 생기를 향하여 대언하라 생기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생기야 사방에서부터 와서 이 사망을 당한 자에게 불어서 살게 하라 하셨다 하라 이에 내가 그 명대로 대언하였더니 생기가 그들에게 들어가매 그들이 곧 살아 일어나서 서는데 극히 큰 군대더라“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어둠이 세상을 덮을때 주께서 사망권세 이기시고 부활하심으로 온누리에 생명의 광명한 빛이 되어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태양이 만물을 비추듯이 주님 부활의 생기가 천지에 충만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세상에는 어둠권세가 많고 분열과 시기와 분노와 싸움이 꽉들어찬곳에 그리스도의 사랑과 화평과 은혜가 찾아와 주시옵소서. 하나님 우리 아버지여 지금 북한땅에는 부활의 그리스도를 마음껏 예배하고 섬기지 못하는 수많은 우리 동포들이 억압을 당하고 인권을 상실하고 굶주림에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우리 아버지여 하루속히 자비가 임하시고 해방이 다가오고 마음문 열고 주님을 섬기고 예배할수 있는 우리 동포들이 되게 도와 주시옵소서. 아버지 피비린내 나는 싸움이 계속되는 이라크를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하루속이 주의 부활의 영광이 이라크 땅에 임하여서 평화가 다가오게 도와 주시옵시고 서로 생명을 아끼고 존중하는 이라크가 되게 도와 주시옵소서. 하나님 아버지 4월 15일이면 우리 나라의 총선이 있습니다. 이 총선을 통하여 혼돈과 곪아빠진 우리나라가 새롭게 부활하게 도와 주시옵소서. 주님의 축복하심으로 말미암아 선한 일꾼들이 선출되게 도와 주시옵소서. 주님을 경배하고 주님을 사랑하며 주님을 섬기는 일꾼들이 대거 국회로 들어가게 도와 주시옵소서. 주님을 두려워하고 경배하며 주의 집이 될 모든 사람들이 또 모든 정당이 주님을 사랑하는 정당이 국회로 들어가 이 나라를 바로잡아 주님의 영광으로 충만한 나라가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이 나라의 모든 지도자들 전체 위에 그리스도의 영광이 같이 하여 주셔서 사람의 지혜로 이 나라를 다스리지 말고 기도하고 믿음으로 하나님의 명철을 얻어서 이 나라를 다스리게 도와 주옵소서. 부활의 그리스도시여 우리 가운데 와 계시니 감사합니다. 오늘 놀라운 능력과 은총으로 우리를 가득 채워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 아멘

[서론]
‘이 뼈들이 능히 살겠느냐?’ 이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에스겔 선지자를 환상중에 들어올렸습니다. 먼 산골짜기로 데리고 갔습니다. 나무 한그루, 풀 한포기 없는 자산. 흙들은 다 마르고 바위 투성이인 그 산골짜기에 내려 놓았는데 거기에 뼈가 가득합니다. 사방으로 보니 뼈들이 마르고 말라서 도저히 사람의 뼈라고 할수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에스겔보고 말씀하기를 “에스겔아~ 이 뼈들이 살겠느냐?” 기가막힌 질문입니다. 인간으로 생각할 때 절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래서 에스겔을 말했습니다. “주께서 아시옵니다.” 사람은 알지 못합니다. 주님이 말씀하기를 “에스겔아~ 이 뼈들에게 야웨의 이름으로 대언하라. 뼈에 생기가 들어가고, 심줄이 생기고, 살이 돋아 오르고, 피부가 덮여서 살게 하라.” 그래서 에스겔은 자기의 생각과 자기의 경험으로는 절대로 이룰수 없는 것이지만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을 대언할 수는 있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생기야 이 뼈들에게 들어가서 살아나고 심줄이 돋고 살이 돋아 오르고 피부가 덮이고 사람으로 살아나라!” 그러니 갑자기 생기가 들어오니 뼈들이 소리가 납니다. 덜거덕 소리가 나더니 다 서로 연결되어 사람들의 형상으로 가득하자 그 다음에는 힘줄이 돋아 오르고 살이 솟아 오르고 피부가 오르더니 거대한 무리가 있는 골짜기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살아나지 못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에스겔아 생기에게 명령하여서 이 사람들에게 들어가서 사람이 일어나게 하라” 에스겔이 “생기야 사방에서 불어와 이 사람들에게 들어가서 살아나라.” 생기가 들어오니 그 많은 사람들이 살아나 일어나는데 대군대였더라고 말한 것입니다. 놀라운 부활의 역사를 주님께서 보여주신 것입니다.

[본론]
1. 사망으로 점령된 세계

첫째로 우리가 이 사망으로 점령된 세계에 모든 사람들이 마르고 마른뼈다귀같이 된 이세계에 주님께서 과연 부활을 주실수 있겠습니까?
여러분 하나님이 지으신 세계는 이런 세계가 아닙니다.
창세기 1장 31절에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
하나님이 보시기에 그냥 좋은 것이 아니라 심히 좋았으니 이 세계가 얼마나 아름답게 지었졌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보는 이런 세계에 이런 자살의 마른뼈다귀같은 이런 세계가 아니었습니다.
시편104장 24절에 “여호와여 주의 하신 일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주께서 지혜로 저희를 다 지으셨으니 주의 부요가 땅에 가득하니이다”
주님은 이땅을 부요가 가득한 땅으로 만드셨습니다. 오늘과 같이 굶주리고 메마르고 헐벗고 고통스러운 세계로 주님이 만들지 않으셨습니다. 이땅에 정의가 가득하고 거룩함이 충만하고 병들거나 아픔이 없고 저주와 가난이 없고 죽음이 없고 평화가 넘치고 사랑이 충만하고 기쁨이 가득하고 소망이 넘치고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한 세계를 하나님께서 지어서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아름다운 땅의 주인인 아담이 하나님을 반역하고 타락하여 스스로를 마귀의 종으로 내놓았습니다. 아담의 죄악과 마귀가 합작하여 오늘날 우리가 보는 이 처참한 세계, 마른 뼈다귀같은 세계를 만들어 놓고 말았습니다.
요한1서 5장 19절에 “또 아는 것은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고 온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처한 것이며”라고 말했습니다.
온 세상이 악한 자 안에서 생겨서 악한 마귀가 죄악과 더불어 정의가 죽어 마른 뼈다귀가 되게 하고 건강과 생명이 죽어 마른 뼈다귀가 되게 하고 축복과 풍요가 죽어 마른 뼈다귀가 되게 하고 영생이 죽어 마른 뼈다귀가 되게 하고 평화가 사라져 마른 뼈다귀가 되게 하고 사랑이 죽어 마른 뼈다귀가 되게 하고 기쁨이 사라져 마른 뼈다귀가 되게 하고 소망이 사라져 마른 뼈다귀가 되게 하고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가고 세속만 가득한 마른 뼈다귀의 골짜기로 이 세상을 만들어 놓고 말은 것입니다.
에스겔 37장 11절에 보니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 뼈들은 이스라엘 온 족속이라 그들이 이르기를 우리의 뼈들이 말랐고 우리의 소망이 없어졌으니 우리는 다 멸절되었다 하느니라” 이것이 오늘날 세상 사람들의 부르짖음과 탐식이 아니겠습니까? 우리 뼈들이 다 말라 우리의 소망이 없어지고 우리는 다 멸절되게 되었다고 탄식하지 않습니까?
실존주의 철학자들은 인간을 그렇게 보았습니다. ‘인간은 부정적이고 절망적인 존재’라고 했습니다. 키테코르(?)는 인간을 ‘죽음에 이르는 병든자’라고 말했으며 칼 야스파스는 인간을 ‘고통, 싸움, 죽음 등에 애워싸여 괴로워 하는 존재’라고 하였으며 하이테크는 ‘죽음이라고 하는 치유될 수 없는 고통 가운데 서있는 존재’라고 하였으며 사르트르는 ‘인간은 무능력함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존재에 대하여 책임을 져야만 하는 불행과 고통을 짊어진 존재’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오늘 현실 주위를 살펴보면 어느곳을 보아도 마른 뼈다귀 뿐인 것입니다. 이 뼈다귀들이 서로 부딪혀서 요란한 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SBS 2004년 3월 20일 뉴스케스터에 보니 40대 아들이 병원비가 많이 나온다는 이유로 요양원에서 치료중인 60대 노모를 강제로 퇴원시켜 버려 결국 노모가 버림받아서 돌아간 시체로 발견되었습니다. 도덕적인 뼈다귀입니다. 39세의 아들이 1억원 가량의 고향 선산과 예금 통장을 자신 명의로 이전하라. 75세의 어머니 옷을 모두 벗긴채 나흘동안 감금하고 쇠망치로 마구 두들겨 패서 거의 죽게 만들었습니다. YTN 2004년 3월 14일 뉴스케스터입니다. 여러분 패륜의 마른 뼈다귀 아닙니까? 이런 것이 정상적인 것이라고 할수 있겠어요? 살인의 마른 뼈다귀가 이 땅에 꽉들어차 있습니다. 두 처제가 돈 문제로 형부를 살해한뒤 야산에 버린 것이 중앙일보 2004년 4월 4일자에 나와 있습니다. 채권 해결을 의뢰한 30대 여인을 유인해 금품 4억원을 빼앗고 죽여서 암매장한 것이 YTN 2004년 4월 4일 뉴스에 나와 있습니다. 한해 우리나라에서만 행해지는 낙태시술은 150만에서 200만톤으로 태아 4명중 1명꼴로 어머니 뱃속에서 죽임을 당합니다. 거대한 살인, 거대한 태아의 무덤이 오늘 현실사회인 것입니다. 이것이 마른 뼈다귀같은 우리 현실을 심성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오늘날 세상 사람들은 돈만 번다면 어떠한 부도덕한 일도 하지요. 세계적인 제약회사인 클락소 생식 클라인(?)에서 고아들을 대상으로 에이즈 백신 실험을 했습니다. 부모가 없다고 고아들을 데려가서 에이즈를 걸리게 하고 에이즈 백신 실험을 했다. 이 얼마나 비도덕적이고 비윤리적이고 처참한일입니까? 그러나 이것이 오늘날 에스겔 골짜기의 마른 뼈다귀같은 패륜과 도덕의 죽임인 것입니다. 반인륜적인 행태가 이땅에 얼마나 일어나고 있습니까? 안방에서 자고 있던 자신의 친딸을 성추행하고 가출한 딸의 친구를 성폭행한 혐의로 40대 남성이 구속되었습니다. SBS 2004년 4월 5일 뉴스. 한 성폭력상담소에서 발표한 통계를 보면 2004년 근친상간이 1992년에 비해 무려 18배나 증가했다고 말합니다. 아들의 담임을 유인해 성관계를 갖고 돈을 털어낸 여인이 구속된 것도 2004년 4월 6일에 나오고 이것이 오늘날 우리의 현실적인 상황입니다. 우리의 삶이 메마른 골짜기의 마른 뼈다귀같이 되었습니다. 윤리도 마른 뼈다귀, 도덕도 마른 뼈다귀, 인정도 마른 뼈다귀, 사랑도 마른 뼈다귀, 희망도 마른 뼈다귀 모든 것이 마른 뼈다귀가 되었습니다.

2. 이 뼈들이 능히 살겠느냐?

오늘 두 번째 생각하고 싶은 것은 주님의 질문입니다. ‘이 뼈들이 능히 살겠느냐? 이 마른 뼈들이 다시 살아날 수 있겠는가?’ 이 세상, 이 사회, 이 가정이 살만한 가정이 되겠느냐는 것입니다. 여러분 부활이라는 말은 없는 것이 생겨나는 것이 아닙니다. 부활이란 죽은 것이 다시 살아나는 것입니다. 아담과 마귀로 말미암아 죽어버린 이 세상이 다시 복구되고 살아나는 것이 부활인 것입니다. 사망의 세력은 잡은자 마귀가 다 죽어버려 마른 뼈다귀가 된 세상과 삶을 하나님이 원상복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이 뼈들이 능히 살겠느냐?”고 질문했을때 에스겔은 너무나 기가 막히기 때문에 “오직 주께서 아시나이다.”라는 대답밖에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 뼈들을 살리려고 예수님이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종교를 철학을 의식을 주시려고 오신 것이 아닙니다. 뼈들을 살리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아담의 반역죄를 청산해서 하나님과 사람사이의 막힌담을 헐어버리고 하나님의 부활의 영이 우리에게 쏟아질수 있게 하기 위해서 주님이 오신 것입니다.
로마서 5장 19절에 “한 사람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것 같이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주께서 죄악을 제하고 우리를 의인으로 만들어서 부활할수 있게 만들려고 오신 것입니다. 부활의 생기를 불어 넣어야 되므로 로마서 8장 11절에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우리의 죽은 인생을 살리는 부활의 생기로써 예수님이 이땅에 오신 것입니다. 여러분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십자가 의 고난을 통해서 반역의 대가를 다 지불했습니다. 우리가 어머니 뱃속에서 상속받은 죄, 우리의 허울, 태어나서 지은 모든 허울을 다 청산하신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5장 21절에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우리의 죄는 주님 통장에 들어가고 주님의 의는 우리 통장에 들어오고 우리가 인생의 통장을 열어보니 죄는 하나도 없고 예수님의 위로만 가득차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은혜로 우리를 죄에서 건져서 영원한 의로운 삶을 얻게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주님은 무덤에 들어가셨다가 부활하심으로 사망을 이기고 부활의 생기의 근원이 되신 것입니다. 오늘 예수 그리스도는 역사적인 인물이 아니라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부활의 생기이신 것입니다. 이땅에 마른 뼈다귀가 꽉들어차고 에스겔 골짜기가 된 이땅에 예수님께서는 부활의 생기로써 우리에게 찾아오신 것입니다.
로마서 1장 4절에는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결의 영, 부활의 영으로써 이 마른 골짜기에 주님 찾아오신 것입니다. 생명의 근본이 되신 예수님
에베소서 1장 20절에 보면 “그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그 부활의 그리스도이신 것입니다.
로마서 4장 25절에 “예수는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하셨기 때문에 살아나신 그리스도가 이 뼈다귀 골짜기를 찾아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9만리 장천 먼리있지 않습니다.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은 오늘날 에스겔 골짜기 마른 뼈다귀같은 우리 가슴속에 우리 가정에 우리의 삶과 세계에 지금 찾아와 계신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 거룩함을 부활시켜 주십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오셔서 우리 전에 지은 모든 죄를 다 청산하시고 거룩함으로 우리르 채워주시는 것입니다.
“전에 악한 행실로 멀리 떠나 마음으로 원수가 되었던 너희를 이제는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케 하사 너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고자 하셨으니”다고 골로새서 1장 21절로 22절에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정의를 부활시키기 위해서 우리 가운데 오신 것입니다.
로마서 4장 25절에
“예수는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기 때문에 주님은 정의를 우리 가슴속에 부활시키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오늘 주님은 건강과 생명을 부활시킵니다.
디모데후서 1장 10절에 “이제는 우리 구주 그리스도 예수의 나타나심으로 말미암아 나타났으니 저는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신지라”
오늘 우리의 가슴속에 들어오셔서 오늘 사망에서 건지시고 우리의 육체를 질병과 사망에서 건져서 치료해 주시는 주님이신 것입니다.
사도행전 4장 10절에 “너희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알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이 죽은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건강하게 되어 너희 앞에 섰느니라”
오늘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속에는 부활의 영, 생명의 영이 가득차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영도 마음도 부활의 생명으로 충만할 수 있습니다. 주님은 축복과 부요를 부활시키기 위해서 우리 가운데 오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10장 10절에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부활하신 예수님은 메마른 뼈다귀 세계속에 풍성한 부요를 보이시기 위해서 와서 계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가운데 영생을 부활시켜 주십니다.
요한복음 11장 25절로 26절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부활이요, 생명이신 그리스도가 이 사망으로 꽉들어찬 골짜기에 와서 생명의 놀라운 부활을 갖다 주시는 것입니다.
평화를 부활시키기 위해서 예수님은 오늘날 와 계십니다. 우리의 가슴속에도 스스로 불안과 좌절과 절망이 있고 만인이 만인을 대적해서 싸우고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해서 싸우는 이 세계에 평화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 가운데 예수님은 평화를 부활시키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오시면 우리에게 평화의 왕으로써 우리를 다스려 주십니다.
골로새서 1장 20절에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을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케 되기를 기뻐하심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평화를 가질수가 있습니다. 어떤 집사님의 말을 들으니까 같은 교회에 나오는 집사님이 너무 미워서 치가 떨렸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 집사님만 보면 기도도 안나오고 ‘저 집사가 천당가면 나는 안가겠다.’는 생각이 나더랍니다. 그럴 정도로 미운 집사님이었는데 하루는 꿈을 꾸는데 꿈에 예수님의 손이 나타나더니 눈앞을 싹 가리더랍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손의 못자국에 구멍이 뚫어졌으니까 그 구멍으로 내려다 보니까 그 집사님이 보이는데 그렇게 이쁘고 아름답고 좋을수가 없더랍니다. 예수님이 손을 싹 떼어서 깼습니다. 내눈으로 볼때는 저렇게 우스꽝스럽고 죽었으면 좋겠다 생각이 나는 집사님이지만 예수님 보시기에는 아름답고 귀하게 보시는구나. 예수님의 사랑을 통해서 보아야 되겠구나. 그때부터 그 집사님만 보면 자기 손을 이렇게 내어서 ‘못자국을 통해서 보자’ 그 다음부터 그 집사님이 아름답게 보이고 귀하게 보여서 사랑을 베풀고 (?) 기도하니까 두 사람이 그렇게 화평하고 평화롭게 되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평화를 부활시키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랑을 부활시키기 위해서 우리에게 오신 것입니다.
로마서 5장 5절에 “소망이 부끄럽게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됨이니”
그리스도는 사랑을 부활시키기 위해서 우리 가운데 역사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기쁨을 부활시키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골로새서 1장 11절에 “그 영광의 힘을 좇아 모든 능력으로 능하게 하시며 기쁨으로 모든 견딤과 오래 참음에 이르게 하시고”
우리 마음속에 기쁨이 있어야 고난을 이길수가 있습니다. 기쁨의 체험이 없으면 고난을 이길수가 없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부활의 기쁨을 가지고 오셨습니다. 우리속에 기쁨으로 충만하게 하심으로 우리 생활에 다가오는 모든 세력과 어려움을 견디게 만들어 주는 거십니다.
주님은 또한 소망을 부활시키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디도서 3장 7절에 “우리로 저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어 영생의 소망을 따라 후사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소망이 얼마나 좋습니까? 사람은 밥을 안먹고도 40일을 살수도 있습니다. 숨을 안쉬고는 4분밖에 못삽니다. 소망이 없으면 1초도 살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마음속에 영원한 소망을 가지고 오셨습니다. 소망을 부활시킨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은 하나님의 영광을 우리속에 부활시킨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속에 다가오면 영광가운데는 기쁨이 있고 의가 있고 평강이 있고 희락이 있고 소망이 가득차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그리스도라고 생각할때는 그리스도는 부활의 영광을 가지고 우리에게 모든 것을 살리기 위해서 오셨다는 것을 생각해야 되는 것입니다.
겨울철에 만물이 얼어붙고 눈보라치고 삭풍이 부는 그때는 몸서리치지 않습니까? 산과 들을 바라볼때 다 사망의 세력이 다 듣고 있습니다. 그러나 기쁨이 다가오면 얼음이 녹고 눈이 녹아지고 땅속에서 파릇파릇 새생기가 돋아오고 나무에 싹이 나고 잎이 돋고 아름다운 꽃이 피는 부활의 천지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겨울과 같은 우리의 가슴속에 우리 가정과 생활에 에스겔 골짜기같은 마른 뼈다귀가 꽉들어찬 곳에 부활의 영광으로 다가오시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살아납니다. 모든 것이 아름답게 꽃피어 오르는 것입니다.
영국의 더맘지방에 있던 일입니다. 갑자기 석탄광 하나가 무너지는 바람에 그안에서 일하고 있던 164명의 광부들이 생매장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사람들은 죽어간 사람들에 대해 깊은 슬픔을 가지고 시체발굴을 하기 시작했는데 그런데 시체옆에 판자가 발견되었습니다. 그곳에는 놀랍게도 다음과 같은 글이 써있었습니다. ‘주님이 우리와 같이 하십니다. 우리는 갈준비가 되었습니다. 주여 축복하소서. 우리는 대단히 유쾌한 기도회를 가졌습니다. 우리모두는 영원한 영광을 위해 죽을 준비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곧장 죽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가 부활하셨으므로 우리는 이곳에 남지 않고 부활의 생명가운데 아름답게 꽃피울 것입니다. 화요일 오후 2시’ 그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영생의 기쁨을 가지고 세상을 떠났던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자는 이처럼 죽음 앞에서도 기뻐할수 있습니다. 부활의 주님이 영생을 부활시켰다는 것을 알기 때문인 것입니다.
칼바르트는 말하기를 ‘인간의 최후의 목표는 죽음이 아니라 부활이라’고 말했습니다. 예수 안믿는 사람들은 삶의 최후의 목표가 죽음이지만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은 최후의 목표는 부활인 것입니다. 우리가 육신으로 죽어도 우리 영혼은 하나님 품에 안겨 있다가 부활의 날에 그리스도와 더불어 내려와서 부활의 아름다운 몸을 입게 될것입니다. 그러므로 부활은 우리의 영원한 소망이 되는 것입니다.

3. 복음증거는 생기를 대언하는 역사다

셋째로, 복음증거는 생기를 대언하는 사역입니다.
에스겔 37장 9절로 10절에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너는 생기를 향하여 대언하라 생기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생기야 사방에서부터 와서 이 사망을 당한 자에게 불어서 살게 하라 하셨다 하라 이에 내가 그 명대로 대언하였더니 생기가 그들에게 들어가매 그들이 곧 살아 일어나서 서는데 극히 큰 군대더라”고 말한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예수 전도한다는 것은 대언자의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의 생기를 사람들에게 불어주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 사람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살아날 수 없는 사람, 범죄인, 파괴된 가정, 절망적인 현실을 향해서 우리는 하나님을 대신해서 생기를 대언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기적이 우리의 대언을 통해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여러분은 에스겔과 같습니다. 마른 뼈다귀 골짜기에서 인간의 생각이나 이성으로써는 절대로 희망이 없는곳에 하나님은 대언을 하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대언할수 있습니다. 왜, 예수님이 죽었다가 부활하셨으므로 예수 이름으로 대언하고 예수 이름으로 기도할 때 기적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빌립집사는 사마라아에 내려가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는 생기의 대언자가 되었습니다.
사도행전 8장 5절로 8절에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 그리스도를 백성에게 전파하니 무리가 빌립의 말도 듣고 행하는 표적도 보고 일심으로 그의 말하는 것을 좇더라 많은 사람에게 붙었던 더러운 귀신들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나가고 또 많은 중풍병자와 앉은뱅이가 나으니 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복음을 대언하면 생기의 역사가 일어나기 때문에 신자들이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기적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변화가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는 그리스도를 백성에게 전파했다고 말했습니다. 생기의 근원이신 예수님을 전했습니다. 에스겔이 뼈다귀 골짜기에서 대언한 것처럼 빌립은 사마리아에 내려가서 하나님을 대신해서 그리스도를 전파했습니다. 생기를 대언했습니다. 그러자 마귀와 귀신이 쫓겨 나갔습니다. 마귀와 귀신은 사망의 세력인데 생기를 전도하자 사망의 세력이 무너졌습니다.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것 뿐입니다. 우리의 가슴속에 도적이 들어오면 도적질 당하고 죽임을 당합니다. 모든 것이 고통과 괴로움이 꽉들어 찹니다. 가정에 마귀가 들어오면 무질서하고 미워하고 분노하고 파괴됩니다. 사회마다 비뚫어지고 정의가 사라지고 죄악이 가득차면 그속에 도적이 들어와 있습니다. 마귀가 들어와 있습니다. 나라가 혼돈하고 고통이 꽉들어차 있으면 그나라의 배후에 도적이 들어와 있습니다. 마귀가 들어와 있습니다. 이 사망의 세력이 어떻게 무너집니까?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하면 마귀와 귀신이 소리치며 떠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10장 38절에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붓듯 하셨으매 저가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를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
오늘날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하면 마귀와 귀신들이 무너집니다. 쫓겨 나갑니다. 사망의 세력이 물러갑니다. 무질서와 파괴와 힘든 개인과 가정과 생활과 사회와 국가가 고침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가 잘살게 되는 길도 복음 전하는 길인 것입니다. 우리 사회가 편안하게 되는 것도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우리 가정이 화평하게 되는 것도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파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귀와 귀신이 쫓겨 나가면 우리 속에 평안과 기쁨과 안정이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사마리아에 그리스도의 복음이 증거되고 생기가 일어나니 많은 사람에게 붙었던 귀신들이 소리치며 떠나가고 하나님의 영광이 다가오게 된것입니다. 그리고 중풍병자와 앉은뱅이가 나았다고 말한 것입니다. 여러분 그리스도의 생기가 들어오면 중풍병자와 앉은뱅이가 나았다고 말했습니다. 도덕적인 불구자가 얼마나 많습니까?
갈라디아서 5장 24절에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우리 도덕적인 불의와 부정을 십자가에 다 못박은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6장 19절로 20절에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여러분 도덕적으로 불구자가 된 사람들도 예수 그리스도의 생기가 들어오면 고침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를 양육하시되 경건치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 근심함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 살도록 도덕적인 불구자가 낫습니다. 중풍병자와 앉은뱅이라는 것은 도덕적인 중풍병자와 앉은뱅이가 나을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이러한 역사가 일어나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이 증거되면 살인자도 변화를 받고 방탕자도 변화를 받고 술주정뱅이, 아편중독자, 음란방탕한 자가 고침을 받습니다. 도덕적인 불구자가 고침을 받고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정신적인 불구자들도 고침을 받고 일어나는 것입니다. 정신적으로 시기와 분노와 질투와 살인과 괴로움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생기가 들어오면 변화를 받습니다.
디모데후서 1장 7절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이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리고 육체적인 불구자는 말할 필요없이 주님이 고치시지요. 우리 병을 주님께서 친히 감당하시도 연약을 짊어졌으므로 예수 이름으로 육신적인 질병의 불구자를 주님이 치료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불구가 된 가정과 사회는 주님의 생기가 들어오면 치료함을 받아 온전한 가정이 되고 온전한 사회로 변화될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어떠한 부형님이 내게 와서 그런 간증을 했었어요. 아내와 사이가 좋지 못해서 우울증에 걸렸습니다. 집에만 들어오면 부인하고 다퉜습니다. 이 사람들은 고등교육도 받았고 수입도 많았으며 훌륭한 저택을 가지고 자녀들 놓고 잘 사는 형편인데도 부인과 잦은 의견 충돌로 기쁨을 잃고 부인은 술이 취해 집에 와서 고래고래 고함을 치고 가재도구를 부수고 그렇게 했습니다. 그는 마치 급한 물살에 떠내려가는 나무토막과 같은 인생을 살고 절망했습니다. 항상 입버릇처럼 죽었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친구의 인도를 받아서 우리 교회에 와서 말씀을 듣고 예수님을 영접하자 생기가 들어왔습니다. 삶이 부활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 신앙을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하나님 저렇게 불평하고 바가지 긁는 아내를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그는 제게 말하기를 전에는 아내가 밖에 나갔다 들어오면 ‘자동차 사고나서 죽었으면 좋겠다.’ 건강 진단을 가면 ‘재생불가한 암에 걸렸으면 좋겠다. 그러면 새장가 들지.’ 그런생각이 늘 들었는데 예수를 믿고 난 다음 마음이 달라져서 그렇게 불평하는 아내도 ‘하나님 주신 것을 감사하다. 하나님의 선물이다. 좋은 자녀과 집을 주신 것도 감사합니다.’ 계속 그가 감사를 드리자 마음은 흑암에서 벗어나고 점점 마음이 평안해지고 기뻐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자기힘이 아닌 하나님의 힘으로 그는 이 모든일을 이길수가 있었습니다. 그는 신경질을 내는 부인 앞에서 ‘하나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말했습니다. 부인이 고함을 치면 칠수록 너털 웃으면서 ‘감사합니다. 고함치는 마누라도 감사합니다. 신경질내는 부인도 감사합니다.’ 그러니 부인이 남은 속이 상해 죽겠는데 너털웃음 웃고 감사하고 약올린다고 더 고함을 치면 ‘더 고함을 치니 감사합니다.’ 하루는 부인이 와서 “당신 도대체 돌았오 어떻게 됐소? 어떻게 사람이 이 모양이야? 내가 아무리 성을 내도 반응도 없고 늘 감사만 하니 어떻게 된일이야?” “나도 사람인데 그렇지 않을 리가 있겠오? 그러나 예수를 믿고 예수님이 내속에 들어오자 나를 변화시켜 주셨습니다. 주님이 화내지 않고 주님이 신경질 내지 않고 불평하지 않고 감사하도록 나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나는 예수님께 기도하고 교제하자 내가 변화 받았으니 이제부터 당신 나보고 아무리 말을 걸어도 내가 화내지 않아요. 아무리 바가지 걸어도 화내지 않아요.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부인도 그말에 너무 감동해서 왜 교회가 사람들이 그렇게 많은가 구경하겠다고 따라왔다가 회개하고 예수믿게 되고 그도 생기가 들어와서 부활을 하고 가정이 마른 뼈다귀같은 가정이 사랑이 일어나는 가정이 되었다는 간증을 들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오시면 여러분 이러한 가정적인 불구를 주님께서 고쳐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사마리아성에 큰 기쁨이 있었더라고 말한 것입니다. 여러분 기쁨은 삶의 원동력이 되는 것입니다. 요사이 회장이 자살하고 정치인이 자살하고 학교교사가 자살하는 것은 환경에 어려움을 당하자 기쁨을 잃어버리기 때문인 것입니다. 사람이 기쁨을 잃어버리면 삶의 의욕을 상실하고 자살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마리아성에 그리스도가 전파되매 그리스도가 들어오니 큰 기쁨의 부활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기쁨을 주시는 원천이 되시는 것입니다.
시편 16편 11절에 “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주의 우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예수님이 같이 계시면 기쁨이 충만하고 그 우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님을 믿고 그리스도가 우리속에 있으면 하나님이여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기쁨으로 충만하게 해달라고 기도할 수 있습니다. 기쁨을 생각하고 기쁨을 꿈꾸고 기쁨을 기도하고 기쁨을 감사하고 나는 기쁨이 같이있다고 입으로 시인하고 기쁨을 빼앗아 가는 원수 마귀가 예수의 이름으로 내어 쫓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시편 107편 9절에 “저가 사모하는 영혼을 만족케 하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
우리 주님이 우리에게 오시면 우리 마음을 충만케 하심으로 기쁨이 강물처럼 넘쳐나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1장 4절에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여러분 저는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항복하고 대동화전쟁이 종식 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그 기쁨과 감격을 가누지 못한 우리나라 사람들 손에 손에 태극기를 들고 거리를 달려나와 밤새토록 만세를 부르고 밤이나 낮이나 장구를 치고 꽹과리를 치고 뛰고 구르며 춤추었던 것을 지금도 기억합니다. 제가 나이 어린 때였지만은 그러나 그때의 감격은 지금도 저의 마음속에 사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이처럼 36년 동안 일본의 압제에서 해방 얻을때 마음속에 큰 기쁨이 있었습니다. 해방과 자유가 기쁨을 가져옵니다.
여러분 겨울철에 돌밑에서 노랗게 죽은 나무풀을 돌을 옮겨 놓으면 노란 풀이지만 며칠이 지나면 푸르게 꽂꽂하게 자라게 되는 것을 보는 것입니다. 악재에서 벗어나면 생명으로 넘쳐나게 되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마귀의 세력에 눌린 우리의 삶에 해방을 가져 오셨습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는 귀신에게 해방되고 육체적인 정신적인 장애에서 해방되고 마음속에 기쁨이 넘쳐 흐르게 되어 삶속에 천국이 부활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다가오신다는 것은 부활의 생명으로 채워 주시기 위해서 다가오는 것입니다. 여러분과 내가 예수를 전도한다는 것은 생기를 대언하는 역사를 하는 것입니다.

[결론]
에스겔 37장 13절에 “내 백성들아 내가 너희 무덤을 열고 너희로 거기서 나오게 한즉 너희가 나를 여호와인줄 알리라”고 말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모시면 우리의 마음속에 무덤문이 열려 버리는 것입니다. 우리 가정에 무덤문이 열립니다. 우리 사회와 국가에 모든 문이 열리고 부활의 생명으로 나오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주님은 사망을 벗어 버리게 하시고 생기로 채워 주셔서 뼈다귀가 생명을 얻되 풍성하게 얻어 부활의 삶을 누리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종교가 아닙니다. 철학이 아닙니다. 어떤 윤리나 도덕의 훈련과 교육도 아닙니다. 그리스도는 마른 뼈다귀같은 인생을 다시 부활시켜서 생기로 충만케 하는 생명의 원천이 되어 주시는 것입니다.

[기도]
사랑이 많으시고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아담과 하와의 타락이후로 마귀가 죄로 더불어 우리의 삶을 메마른 강토로 만들고
골짜기에 뼈다귀가 가득한 인생으로 만들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사람의 생각으로는 이 뼈다귀가 살아날수가 있지 않습니다. 정치를 통해서나 과학을 통해서 교육을 통해서 사상을 통해서 뼈다귀가 살아나지 않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가 죽었다가 부활하셔서 생기가 되었으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전파할 때 뼈다귀들이 살아나는 것입니다. 아버지여 그리스도를 모시고 부활로 충만하여 우리 모든 뼈다귀가 살아나서 큰 십자가 군대가 되게 도와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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