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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과 순종

누가복음 조용기............... 조회 수 2984 추천 수 0 2009.04.27 12: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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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눅4:25-30 
설교자 : 조용기 목사 
참고 : 2004년 4월 25일 주일2부설교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엘리야 시대에 하늘이 세 해 여섯 달을 닫히어 온 땅에 큰 흉년이 들었을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과부가 있었으되 엘리야가 그 중 한 사람에게도 보내심을 받지 않고 오직 시돈 땅에 있는 사렙다의 한 과부에게 뿐이었으며 또 선지자 엘리사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문둥이가 있었으되 그 중에 한 사람도 깨끗함을 얻지 못하고 오직 수리아 사람 나아만뿐이니라 회당에 있는 자들이 이것을 듣고 다 분이 가득하여 일어나 동네 밖으로 쫓아내어 그 동네가 건설된 산 낭떠러지까지 끌고 가서 밀쳐 내리치고자 하되 예수께서 저희 가운데로 지나서 가시니라”

[기도]
양발에 대못이 박히시고 물과 피를 다 쏟으신 우리 예수님께서 그 크신 사랑과 은총으로 우리 가운데 와 계시며 우리를 품어 주시고 안아 주시며 업어 주시는 것을 감사드립니다. 우리 하나님 아버지여 성령의 능력으로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을 사랑하고 경배하고 섬기고 따르는 성도들이 되게 도와 주시옵시고 예수를 모르는 모든 사람들이 다 회개하고 주 예수를 믿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나라 이 민족을 주님께서 품에 품어 주시고 5천만이 회개하고 주님께로 돌아오게 도와 주시옵소서. 하늘나라 역사가 이 나라 정부, 국회 모든 삶속에 나타나게 도와 주시옵소서. 북한을 해방시켜 주시옵시고 하루속히 주의 구원의 따사로운 햇빛이 비취게 도와 주시옵시고 룡천에 대폭발로 수많은 인명이 살상되고 고통속에 있습니다. 하나님 긍휼을 베풀어 주시옵시고 이러한 것이 계기가 되어서 그들에게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이 임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따듯한 동포애가 넘쳐날 수 있도록 주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옵소서. 보혜사 성령이여 바람같이 불같이 생수같이 이 자리에 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 아멘

[서론]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믿음과 순종’이란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애굽에서 해방시켜 인도해 내신 이스라엘 백성을 광야에서 다 멸하신 이유는 그들이 계속된 불신앙과 불순종 때문이었습니다.

[본론]
1. 고향땅 나사렛의 불신앙과 불순종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복지의 경계인 가데스 바네아에서 하나님을 격노하게 만든 것이 바로 집단적인 불신앙과 불순종이었습니다. 열두명의 정탐꾼이 40주 40야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와서 보고할 때 열사람의 정탐꾼이 그 땅을 악평하고 공포와 불안을 넣어 주었습니다. 그 열정탐꾼의 가슴속에는 하나님이 계시지 않았었습니다. 인본주의적으로 보고, 듣고, 관찰한 것을 말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에 대한 신앙이 없었고 하나님에 대한 순종함이 없었습니다. 그들의 영향력으로 말미암아 온 이스라엘 백성이 밤새도록 통곡을 하고 울며 지도자를 세워서 애굽으로 도로 돌아가자고 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집단적인 반항이요, 불신앙이요, 불순종이었습니다. 그 결과로 하나님은 진노하사 그들을 광야로 회진시켜 40년동안 방황하게 하면서 다 멸하시게 한것입니다. 바로 하나님이 가장 미워하시는 것이 불순종과 불신앙인 것입니다. 우리 주 예수님께서 고향땅 나사렛에 오셔서 회당에서 말씀을 증거할 때 바로 꾸짖은 것도 이 사실인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회당에서 구약의 예를 들어 말씀을 하셨습니다. 엘리야 시대에 하늘이 3년 6개월을 온땅에 큰 흉년이 들었을 때 많은 사람이 굶어 죽어서 이스라엘에 과부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그 많은 과부가 이스라엘 땅에 있었으면서도 그 과부들은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고 순종치 아니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들에게 도움을 베풀지 아니했습니다. 이스라엘이 아닌 이방 사렙다에 과부가 있었습니다. 사렙다 과부는 시돈땅에 사는데 시돈땅은 바로 바알을 섬기는 이방땅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렙다의 과부는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분에게는 비록 이방인이지만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보내셨습니다. 엘리야가 가니까 이 사렙다의 과부가 나무를 줍고 있었습니다. 엘리야는 말했습니다. “빨리가서 빵을 만들어서 물 한사발 가지고 내게 오너라.” 그때 과부가 말했습니다. “나는 밀가루 한움큼과 기름 조금밖에 없고 이것을 가지고 마지막 빵을 구워서 먹고 나와 내 아들은 죽으려고 합니다. 그래서 나무를 줍고 있습니다.” “그것은 당신 마음대로 하려니와 먼저 가서 당신이 그 밀가루와 기름으로 빵을 만들어서 내게 가지고 오시오. 나에게 물 한사발도 가지고 오시오. 그러면 이 가뭄이 끝날때까지 당신의 밀가루통에 밀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기름병에 기름이 마르지 아니할 것입니다.” 사렙다의 과부는 이 엘리야의 말을 믿었습니다. 배가 고팠습니다. 밥을 달라고 우는 어린아이를 데리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믿음과 순종을 가지고 우는 어린아이를 떨치고 그것으로 떡을 구워서 엘리야에게 갖다 주었습니다. 엘리야가 그 떡을 받아 먹고 물을 마시고 난 다음에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여서 그 3년 6개월동안 가뭄이 지나갈 동안에 밀가루통에 밀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기름병이 기름이 말라지지 않았었습니다.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믿음과 순종이 있는 곳에는 주님이 찾아가시는 것입니다.
또한 엘리사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문둥이가 있었는데 그 문둥이들이 하나님이 문둥병을 고쳐줄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한사람도 없었습니다. 하나님을 순종치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을 늘 침략하던 이웃 원수의 나라 수리아의 대 장군 나아만은 장군이었지만 문둥병 환자였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포로로 잡아온 이스라엘의 조그마한 어린 소녀가 주모를 돕고 있었는데 하루 주모에게 말했습니다. “우리 주인께서 이스라엘에 가서 엘리사 앞에서 섰으면 좋았겠습니다. 왜냐 엘리사가 기도하면 우리 주인님의 문둥병이 나을것입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는다고 이 조그만한 어린 소녀의 말을 듣고 대장군 나아만이 이스라엘을 찾아 왔습니다. 이스라엘 왕에게 찾아왔고 왕이 “내가 신이 아닌데 사람을 죽이고 살릴수 없는데 어떻게 문둥이를 고치냐”고 옷을 찢고 시리야가 빌미를 만들어서 우리 나라를 처들어 올려고 한다고 할 때 엘리사가 “그러지 말고 그 사람을 내게로 보내라” 했습니다. 나아만 장군이 장군복을 입고 큰 군대를 거느리고 엘리사의 집 문앞에 와서 섰는데 엘리사는 나오지도 아니하고 그 종이 나와서 하는말이 “저 요단강에 가서 일곱 번 목욕을 하고 돌아가시오.” 나아만는 화가 났습니다. “내가 불온천리하고 하나님의 기적을 믿고 왔는데 나를 이렇게 박대하다니 엘리사가 직접 나와서 나에게 거룩한 물을 뿌리고 손을 흔들어 축도를 하고 고쳐줄줄 알았는데 나를 저 요단강물에 가서 목욕하라고? 요단강물은 흙탕물인데 우리나라에는 아바나 강과 바르바르강 푸르고 맑고 깊은 강이 있는데 목욕할 바에야 우리나라 강에서 하지 여기서 할것이냐?”고 분해서 돌아서는데 밑에 사람들이 달라들어서 “아버지여, 그렇게 하지 마소서. 이보다 더 큰일 하라고 해도 할 것 아니겠습니까? 강에가서 목욕하라는데 못할 것 뭐가 있습니까? 갑시다.” 그러자 그들의 간청에 그는 마음을 돌이켰습니다. 그래서 요단강에 가서 일곱 번 목욕을 하고 나니까 문둥병이 깨끗이 사라지고 어린아이와 같이 부드러운 살을 갖게 된것입니다. 주님께서 이말을 나사렛 회당에서 하셨습니다. 이 사렙다의 과부도 시돈땅의 이방 여인이고, 나아만 장군도 이스라엘과 원수가 되었던 수리아의 대장군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친백성이라도 믿지 않고 순종치 아니하면 도와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원수의 나라 이방인이라도 하나님을 공경하고 믿고 순종하면 주님께서 주의 사자를 보내어서 돌보아 주신다는 것입니다.
시편 81편 10절로 11절에 “나는 너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 네 하나님이니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하였으나 내 백성이 내 소리를 듣지 아니하며 이스라엘이 나를 원치 아니하였도다”
듣지 아니하니까 순종하지 않는다 말입니다. 원치않는 것은 믿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대개 야웨는 변혁지 아니하십니다. 하늘과 세계와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은 지금도 전능한 능력으로 우리의 요구를 채워주시기를 원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주를 믿는다는 사람들이 주의 말씀을 듣지 아니하고 믿지 아니하므로 하나님께서는 그 가운데 나타나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말만 “나는 예수 믿는다. 나는 세례 받았다. 나는 교회 출석한다.” 그렇게 한다고 해서 하나님이 역사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찾는 것은 형식과 의식이 아니라 여러분 마음속에 있는 순종과 믿음을 찾고 계신 것입니다. 순종이 있고 믿음이 있으면 오늘날도 하나님은 기사와 이적을 나타내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장엄한 종교적인 의식을 집행한다 하더라도 순종이 없고 믿음이 없으면 하나님과 우리는 관계가 끊어져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손이 짧아 우리를 구원하지 못함이 아니요 하나님의 귀가 둔하여 우리 기도를 듣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불순종이 있고 불신앙이 있으므로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운신하시지 아니하시는 것입니다.

2. 마르다와 마리아의 불신앙과 불순종 및 회개

신약성경에 마르다와 마리아의 사건을 보십시오. 그 오라버니 나사로가 죽었습니다. 일찍 조실부모하고 오라버니만 믿고 살았는데 오라버니가 병들어서 시들시들하다가 죽어 버리고 그를 장사지낸지 나흘이 되어서 예수님이 찾아 오셨습니다. 그때에 마르다는 예수께 나와서 원망을 했습니다. “주는 나흘전에 이 자리에 계셨더라면 우리 오라버니가 죽지 않았을 것인데 나흘후에 이제 오시니 우리는 희망이 없다는 것입니다.” 마르다와 마리아는 절망했습니다. 예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는데 여기 마르다는 나흘전에 예수님은 인정하나 지금의 예수님은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큰 문제인 것입니다. 나흘전에 오셨으면 우리 오라버니가 죽지 않을 것인데 이제 오셨으니 우리 오라버니는 죽어서 무덤에 들어간지 나흘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 말씀을 들어 보세요.
요한복음 11장 21절로 26절에 “마르다가 예수께 여짜오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그러나 나는 이제라도 주께서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구하시는 것을 하나님이 주실 줄을 아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오라비가 다시 살리라 마르다가 가로되 마지막 날 부활에는 다시 살 줄을 내가 아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예수님은 여기에 필사적인 노력을 하는 것입니다. 지금 네 오라버니가 살 것이다. 마르다는 “하하~ 부활의 날에나 살것입니다.” 이에 예수님이 “내가 지금 부활이요, 생명인데 지금 나를 믿는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나를 믿는자는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니 이것을 믿느냐?” 마르다는 “주님이 예수 그리스도요 구주인 것을 믿습니다.” 자꾸 뒷북을 칩니다. 주님은 지금 살아있는 하나님, 지금 기적을 행하시고 “지금 네 오라버니를 살리겠다.”고 하는데 마르다는 “부활의 날에나 살아날 것입니다.” “지금 내가 부활이라.”고 하니까 “주님이 구주인 것을 믿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지금 살아서 역사할 것을 마리아는 마르다는 인정하지 않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마르다와 마리아를 데리고 무덤에 가서 울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나사로가 부활할 것을 알고 계셨는데 왜 울었을까요? 마르다와 마리아의 불신앙과 불순종 때문에 울은 것입니다. 그들이 믿고 순종했더라면 어떠한 역경에 처해도 두려워하고 놀라지 않고 좌절하고 절망하지 않았을 것인데 현재 주님이 살아계심에도 불구하고 그 주님과 함께 있음에도 불구하고 믿지 않고 순종하지 아니하므로 그들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고통과 괴로움으로 슬퍼하는 것을 주님이 탄식하시고 너무나 가련하게 여기셔서 눈물을 흘리신 것입니다. 주님이 마르다와 마리아를 데리고 무덤가에 와서 마르다를 보고 말했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돌을 옮겨 놓으라 하시니 그 죽은 자의 누이 마르다가 가로되 주여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요11:39) 반항입니다. 주님께서 그처럼 사랑하사 가르친 제자인 마르다와 마리아가 이처럼 불순종하고 불신앙할줄 예수님은 몰랐습니다. 예수님이 저들을 데리고 나사로의 무덤가에 와서 살려 놓을테니 무덤 돌문을 옮겨놓으라고 하는데 마르다와 마리아는 반항했습니다. “우리 오라버니가 무덤에 들어간지 나흘이 되어 썩은 냄새가 나는데 무덤돌을 옮겨 놓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창피만 당할것이고 같이 온 사람들이 우리를 뭐라고 말하겠습니까? 안옮겨놓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사랑한다는 사람들이 위기에 처했을 때 그리스도의 명령에 반항하고 불순종한 것입니다. 오라버니가 살아날 것을 믿지 않았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통분히 여기셔서 통렬하게 꾸짖었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신대”(요11:40) 많은 안믿는 유대인들이 그곳에 모여 있었습니다. “내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않았느냐? 불순종하고 불신을 하면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지 못할 것 아니겠는가?” 예수님의 노하심에 마르다와 마리아는 가슴이 아팠습니다. 그들은 마음을 고쳐 먹었습니다. 그들은 회개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불순종하고 불신앙해도 주님이 꾸짖으심을 받고 회개하면 주님이 우리를 사용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다. 우리는 인간이기 때문에 약해서 불순종하고 불신앙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꾸짖었을 때 회개해야 되는 것입니다. 회개하지 아니하면 주의 영광은 지나가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왜 오늘 우리 교회에는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지 않습니까?” “왜 나의 생애에는 영광이 나타나지 않습니까?” 그렇게 묻습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말씀합니다. “회개하라. 불순종을 회개하라. 불신앙을 회개하라. 그리고 순종하고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난다.” 마르다와 마리아는 믿기로 마음을 바꿔 먹었습니다. 여러분 지금까지 불순종하고 불신앙했더라도 오늘 이시간에 하나님 말씀을 듣고 마음을 바꾸면 하나님은 여러분을 영접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그들은 믿기로 마음을 바꿔먹고 달라 들어서 둘이가 돌을 옮겨 놓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돌문은 큽니다. 굴을 파고 시체를 넣고 큰 돌문으로 막아 놓아서 짐승이 들어가서 시체를 훼손하지 못하게 해놓은 것입니다. 마르다와 마리아는 이 돌에 매달려서 돌문을 옮겨 놓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 그들이 믿었으면 순종하여 행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 돌문은 예수님이 옮겨주지 않습니다. 이웃사람들도 도와주지 않습니다.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은 자기가 해야 됩니다. 할 수 없는 것은 주님이 하시지만은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인 것입니다. 순종하여 돌을 옮겨 놓고 믿으면 주님께서 기적을 행하시는 것입니다. “주님 나를 구원해 주시옵소서.” 그럴려면 교회에 나와야 돼요. “주여 나를 축복해 주시옵소서.” 십일조를 내야 돼요. “주님 나를 고쳐 주소서.” 하나님 섬기고 기도해야 돼요. 내가 할수 있는 일은 해야 되는 것입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인 것입니다. 주님은 여러분의 믿음을 보시기를 원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믿음은 믿음이 아닙니다. 주님은 크고 적은 일에 있어서 여러분의 행함있는 믿음을 보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항상 성경에는 주님이 저들의 믿음을 보시고 네 믿음데로 될찌어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보이는 믿음이 믿음입니다. 보이지 않는 믿음은 믿음이 아닙니다. 물속에 가라앉은 땅은 땅이 아닙니다. 물위에 솟아오른 땅이 땅입니다. 보이지 않는 믿음은 믿음이 아닙니다. 보이도록 나타난 믿음이 믿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르다와 마리아가 눈에 보이는 믿음을 실천하라고 주님께서 강요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고 순종하라. 그들은 돌을 매달려 옮겨 놓아 돌문이 굴러가자 무덤문이 펑 열리고 썩은 냄새가 코를 찔렀습니다. 그럴 때 예수님께서는 그 무덤 앞에 서서 말씀했습니다. “나사로야 나오라!” 모든 사람들이 긴장을 하고 보고 있습니다. 마르다와 마리아도 가슴 졸이고 보고 있습니다. 그들은 전부 무덤문을 들여다 보고 있습니다. 캄캄한 무덤속에 무엇이 일어날까. 얼마있지 않자 하얀물체가 움직이는 것이 보이더니만 나사로가 수의를 입은채로 걸어나온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믿고 순종하면 오늘날도 기적이 일어납니다.
오래전 ‘Hey God' 이라는 제목의 아주 재밌고 놀라운 체험담을 적은 간증집을 제가 읽어 보았었습니다. 거기에는 이탈리아에서 미국으로 이민간 포글리오라는 가족이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한 간증을 그집 아들이 책으로 지은 것이었습니다. 이집의 가장은 철도회사의 노무자라서 살림이 넉넉하지 못한데다가 일곱식구라는 대가족이 살고 있었습니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스파게티를 즐겨 먹는데 어느날 그 집의 식구들도 먹을수 없는 한명분의 스파게티밖에 없는데 그 남편이 친구들을 네명이나 데리고 왔습니다. “어~ 여보! 내 친한 친구들 네명 데리고 왔으니 오늘 스파게티를 잔뜩 주세요. 하루종일 너무나 중노동을 했더니 배가 출출합니다.” 큰일났습니다. 집안에는 한사람 먹을 스파게티도 부족합니다. 그런데 그 남편은 성격이 고약합니다. 만일 스파게티가 안나오면 야단법석이 나고 집안이 뒤집어질 것입니다. 그 남편은 예수를 믿지 않지만 부인은 아주 독실한 신앙인이고 성령충만이 받은 분이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순간 그 어머니가 갑자기 방으로 뛰어 들어가더니만 성경책을 들고 나와요. 그러더니 성경을 머리에 얹고 성경위에서 조그만한 스파게티를 얹어 놓고서 기도를 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주님이시여, 한사람먹기도 부족한 스파게티밖에 없습니다. 우리 남편이 네사람의 친구를 데리고 왔습니다. 우리 식구들하고 네사람하고 합쳐서 어떻게 이 스파게티를 먹습니까?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한 것을 믿습니다. 나는 주님께 순종했고 십일조 드리고 교회 열심히 나갔었습니다. 위기에 처할 때 주님은 나와같이 계시지 않습니까? 주님이시여, 하나님 말씀과 스파게티를 가지고서 나는 주님께 기도합니다. 기적을 일으켜 주시옵소서.” 그러더니만 그 아들이 보는 앞에서 솥에 물을 부글부글 끓여서 스파게티 조그마한 것을 집었는데 그 아들이 들여다 보니까 어디가 있는지 눈에 보이지도 않아요. 하도 적어서. 그런데 어머니는 찬송을 부르면서 그릇을 열한개를 내놓아요. 가족 식구에다가 남편친구들까지 다먹을 큼직한 그릇을 내놓고 찬송을 부르면서 막 솥을 휘젖더니만 폭 떠서 스파게티를 그릇에 담고 푹 뜨는데 아들이 놀라 눈이 휘둥그레 보는 것은 떠서 담는데 또 한그릇 가득한데 또 스파게티가 있고 또 떠서 담는데 또 한가득있고 그 그릇에 스파게티가 다담아 그날 저녁에 모두다 배부르게 먹고 남아서 그 이튿날 아침까지도 식구들이 다 먹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본 아들이 ’Hey God'이라는 책을 썼는데 아들은 이 책에서 어머니의 단순한 믿음으로 인생의 방향을 바꾸게 되었음을 위대한 믿음을 얻게 되었다고 간증을 했습니다. 2천년전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요사이 일어난 이야기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한 것입니다. 우리가 가짜로 믿고, 가짜로 순종하지 말고 진짜로 믿고 진짜로 순종하면 오늘날도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 가운데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3. 예수님의 초청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마태복음 11장 28절로 30절에 우리를 초청하고 계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이 말씀을 하실때는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들에 서 계셨습니다. 소가 밭을 갈고 있습니다. 어미 소위에 멍에가 얹혀 있고 새끼소는 어미소 곁에서서 이랑을 갑니다. 농부가 때리면 어미소는 잔뜩 힘을 주고 온몸에 땀을 흘리면서 목에 멍에 걸린데로 쟁기를 끌고 나갑니다. 그러나 새끼는 어머니 멍에밑에 있기 때문에 하나도 무겁지 않습니다. 그냥 옆에 따라만 갑니다. “허~ 쉽고 편안한데 엄마는 왜 저렇게 땀을 흘리고 야단이야?” 그러나 멍에는 엄마목에 걸렸고 새끼소는 그냥 엄마 멍에밑에 따라만 가는 것입니다. 그것을 보시고 예수님 말씀한 것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내 멍에 밑으로 들어오너라. 내 멍에 밑에 들어오면 쉽고 가볍게 인생을 살아갈 수 있다.” 여러분 짐은 주님께서 지시고 일을 주님께서 하시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우리를 쉬게 하자면 우리의 짐을 주님이 대신 짊어지시고 우리 일을 해주셔야 우리가 쉬지 우리 짐 잔뜩 짊어지고 우리 일 잔뜩하는데 어떻게 쉴수 있습니까?
예레미야 33장 2절로 3절에 “일을 행하는 여호와, 그것을 지어 성취하는 여호와, 그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자가 이같이 이르노라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네가 일을 짊어지지 마라. 일은 내것이요, 내가 한다. 내게 부르짖어 기도하고 맡기라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6장 33절에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송강 정철이 훈민가 중에서 이런 시가 있어요.
『이고진 뎌 늘그니 짐프러 나를 주오. 나는 졈엇거니 돌히라 무거울가. 늘거도 셜웨라커든 짐을 조차 지실가.』 이 시의 젊은이는 한 노인이 무거운 짐을 이고 지고 땀을 흘리며 고생고생하며 걸어가는 것을 보고 측은이 여겨 그 짐을 대신 짊어지고 그 노인을 쉽고 평안하게 가시도록 하겠다는 그런 시인 것입니다. 바로 예수님이 하신말도 그와 똑같은 말씀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무거운 짐을 지고 고생하는 것을 보시고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하시며 예수님은 우리에게 쉽고 가볍게 인생을 살아갈 수 있도록 짐을 대신 져주시겠다고 초청하시는 것입니다. “죄짐이 무거우냐? 세상의 짐이 무거우냐? 마귀의 멍에가 무거우냐? 병의 짐이 무거우냐? 먹고 사는 삶이 그렇게 수고하고 무거우냐? 인생살이가 고생스러우냐? 죽는 고통이 괴로우냐? 그짐 네가지지 말아라. 내가 짊어져 주마. 내가 멍에를 짊어지고 내가 짊어져주마. 내 십자가의 멍에 내가 다 짊어졌으니 그냥 믿고 순종하고 내 밑에 들어오너라. 그러면 너는 평안하게 인생을 살아갈 수 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초청입니까?
한 소년이 있었는데 몹시 가난하지만 신앙을 지키며 십일조를 드렸습니다. 소년은 성실과 믿음이 인생의 성공을 가져옴을 믿고 가난과 싸워 나갔습니다. 그 결과 30세에 모빌 런치서비스라는 회사를 설립하게 되었고 이어서 세계적인 도너츠 상표를 개발했습니다. 그가바로 던킨 도너츠 창업주인 로젠버그입니다. 전세계 어느곳에 가도 던킨 도너츠의 상점이 있습니다. 그는 72세를 맞이하는 생일축하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가난하고 못배운 환경에서 자랐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늘 제 짐을 맡아 주셨습니다. 성공은 지식에 있지 않고 태도에 있다고 나는 믿습니다.” 이 사람은 가난하고 교육도 못받았습니다. 그러나 늘 하나님께 짐을 맡기고 살았습니다. 주님이 짐을 맡아 주시고 이끌어 주어서 그는 대기업가로 성공했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지식이 성공을 시킨 것이 아니라 삶의 태도가 성공을 시킨 것이다.” 무슨 태도냐? “믿고 순종하는 태도가 그의 인생을 성공으로 만들어 주었다.”고 간증한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나는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고 했으니 예수님의 멍에밑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두가지 조건이 필요합니다. 온유해야 되고 겸손해야 됩니다. 온유하다는 것은 길들임을 잘받은 따뜻하고 부드러운 성품을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가축들은 온유한 짐승입니다. 사람에게 길들임을 잘받아서 개나 소나 말이나 다 온유한 짐승들입니다. 사자나 호랑이나 여우나 이리와 같이 사나운 짐승들은 사람에게 길들여지지 않아요. 온유하다는 것은 길들임을 받아서 순종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3장 18절에 “또 하나님이 누구에게 맹세하사 그의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느뇨 곧 순종치 아니하던 자에게가 아니냐”
온유하지 못하면 하나님의 도움을 받지 못합니다.
히브리서 5장 8절로 9절에도 “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었은즉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시편 37편 11절에 “오직 온유한 자는 땅을 차지하며 풍부한 화평으로 즐기리로다”
오늘날 우리가 왜 예수 믿으면서 많은 시험을 당하고 환난을 겪고 풍랑을 통할때가 있습니까? 하나님은 우리가 깨어져서 순종하기를 원하시기 때문에 교육시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증명했는데 우리가 순종하지 아니하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땅을 차지하게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굽이굽이마다 골목골목마다 하나님은 우리의 순종을 시험해 보시는 것입니다. 고난이 닥쳐와야 살든지 죽든지 흥하든지 망하든지 성하든지 쇠하든지 나는 주님을 따르겠습니다하고 순종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네게 손해 나니까 탁탁 털어 버리고 돌아서는지 주님이 테스트 해보시는 것입니다. 주님의 멍에밑에 들어가서 주님이 우리 짐을 짊어지게 하기 위해서는 여러분 주께 순종해야 됩니다. 온유한 마음으로 주님을 따라가야 되는 것입니다.
존 칼빈은 말하기를 “믿음이란 눈을 감고 귀를 귀울이고 무조건 따르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완전복종을 요구하신다.”고 말한 것입니다. 자꾸 눈으로 보고 환경을 바라보고 요동하지 말고 눈딱감아 버리고 귀에 들리는데로만 따라가요. 벼랑이라도 그냥 가라면 가는 곳입니다.
나는 옛날에 서대문에서 목회할 때 미공군 서전드 니커슨이라는 뚱뚱하고 마음좋은 군인이 있었습니다. 그는 열심히 교회 나와서 주님을 섬기고 마음씨 착한 분이었는데 그가 한번은 영창에 들어갔어요. 왜 그러느냐. 비행기를 타고 공중에 날다가 부조종사로써 앉아 있으면서 조종사하고 말하기를 “나는 지금이라도 예수님이 밖에 나타나서 걸어 나오라고 하면 비행기 문열고 걸어나간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조종사가 이말을 잘못듣고 이게 미쳐가지고서 공중에서 비행기 문열고 내려간다고 하는말로 듣고 급히 밑으로 연락해서 비행기를 급강하 시켜서 비행장에 내려서 감옥에 넣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재판을 받아 본 결과에 “나는 예수를 잘믿는 사람인데 옛날에 베드로가 물위로 걸은 것처럼 오늘날 예수님이 공중에 나타나서 날보고 걸어오라하면 나는 비행기 창문을 열고 걸어나가겠다고 말을 했지 예수님 오라고 안했는데 내가 혼자 걸어나가겠다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영창에서 나온적이 있습니다. 그만한 순종이 있어야 돼요. 아에 눈딱감아 버리고 귀에 들리는 말만 따라서 주님께서 가라면 가고 서라면 서고 돌라면 돌고 하는 것이 믿음인 것입니다.
티트리트 본헤프는 “신앙은 주님의 명령과 순종 바로 그것이다.” 신앙이란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이 신앙입니다.
맥도날드는 “순종이야말로 모든 문을 여는 열쇠”라고 말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음이 온유한 사람 순종하는 사람은 내 멍에밑에 들어올수 있다. 그 다음 겸손한 사람이 내게 들어올수 있다. 겸손한 사람은 자기 몸을 낮추고 주를 믿는 사람이 겸손한 사람인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5장 5절, 7절에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복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
교만한 사람은 하나님께 맡기지 않아요. 내가 내 힘으로 나의 능력으로 나의 수단과 방법으로 살겠다고 하지요. 겸손한 사람은 주님께 내어 맡기고 믿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 6절에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찌니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겸손한 사람이 믿어요. 교만한 사람은 믿지를 않습니다.
에베레스트를 정복한 짐 휘테이크라는 미국의 등산가의 이야기를 제가 읽어 보았습니다.
에베레스트산을 정복하기 위하여 고도의 훈련을 해왔던 미국의 등반대원들이 네팔에 모였습니다. 네팔 안내원은 그들을 보고 “여러분이 저 정상까지 올라가고 싶다면 저를 전적으로 믿고 따라오셔야만 합니다.” 그렇게 말하니까 그때 모든 대원들은 “저녀석, 병신같은놈, 무식한놈, 우리는 수년간 이 에베레스트산을 정복하기 위하여 혹독한 훈련을 한 전문가들인데 기껏해야 등산안내원 주제에 감히 우리에게 자기를 믿고 따라오라고? 웃기는 놈이야”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교만해서 그 등산안내원의 말을 믿지 않았었습니다. 그러나 짐 휘테이크는 “나는 정상에 꼭 올라가고 싶습니다. 당신이 하라는데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결국 안내원을 믿고 겸손히 그가 인도하는데로 따랐던 짐 휘테이크만이 에베레스트산 꼭대기까지 올라간 미국의 최초인이 된것입니다. 겸손하니까 믿고 따라갔지요. 교만한 사람들은 그 안내인을 믿지 않고 그를 따르지 않고 다른길로 갔다가 다 실패하고 말은 것입니다. 주를 믿는다는 것은 겸손한 마음이 있어야 주를 믿습니다. 교만한 마음 있는 사람은 자꾸 주님을 비평하고 판단하고 의심하고 믿지 않습니다. 겸손한 사람은 끝까지 믿고 따라가는 것입니다.

[결론]
에베레스트산을 정복하기 위해서도 안내원의 말을 겸손히 믿고 따라가야만 한다면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겸손히 주님을 믿고 따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수가 있습니다. 주님은 말씀합니다. 인생을 쉽고 편안하게 살수 있다. 너희 인간의 힘으로 인생을 살면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너희가 짊어져야 된다. 너희짐 너희가 짊어지고 너희 일 너가 하자니 피땀을 흘리지 않느냐? 그러나 내게 순종하고 나를 믿고 내게 다 맡기면 짐은 내가 짊어진다. 일은 내가 한다. 너는 내 무릎에 앉아서 살아라. 내 등에 엎혀서 살아라. 나 멍에 밑에 너는 나를 따라오면 된다. 멍에는 내 목에 걸렸고 네 목에 걸려있지 않다. 짐은 내가 끌고 있다. 일은 내가 하고 있다. 너는 공짜인생을 사는 것이다. 은혜로 살아라. 인생은 자기의 노력으로 사는 사람이 있고 주님의 은혜로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기 노력으로 사는 사람은 주님을 믿고 순종하지 않는 사람 자기 힘으로 인생을 사는 사람입니다. 은혜로 사는 사람은 주님을 믿고 순종하여 모든 것을 주님께 다 맡기고 주님을 따라가는 사람은 은혜로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똑같이 이 지구상에 살지만 피땀을 흘리고 고생하면서 자기 힘으로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쉽고 가볍게 주님의 은혜로 주님께 의지해서 주님의 복을 받아 인생을 선물로 살아가는 사람도 있는 것인데 여러분은 믿음과 순종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체험하고 은혜로 살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전능하시고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여!
모든 사람들이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발버둥을 치고 있습니다.
아담, 하와 이후로 하나님을 저버린 인생은 인생을 자기의 수단과 방법과
자기의 노력으로 살려고 무거운 짐지고 수고하고 고생하고 피땀 흘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오셔서 우리의 짐을 대신 짊어져 주시고 우리의 일을 대신 십자가에서 다 이루셨습니다. 주님은 십자가에 우리의 모든 짐과 일을 짊어지시고 우리로 하여금 믿음과 순종으로 주님 십자가 밑에 들어오기를 원하시오니 아버지여 믿고 순종하고 살게 도와 주시옵소서. 성령께서 도와 주셔서 전적으로 주님께 순종하고 전적으로 주님을 믿고 의지하고 편안한 마음 가지고 쉽고 가볍게 은혜로 인생을 살게 도와 주시옵소서.
발버둥치며 살지 말고 은혜로 인생을 살게 도와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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