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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희생

마태복음 한태완............... 조회 수 2465 추천 수 0 2009.04.29 13:3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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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마16:25 
설교자 : 한태완 목사 
참고 : http://je333.com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문학가 '쉘 실버스타인'의 작품 중에 유명한 글이 있습니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입니다. 그 글의 일부를 소개합니다.
옛날에 한 그루의 나무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나무에게는 귀여운 한 작은 소년이 있었습니다. 그 소년은 매일같이 그 나무에게로 왔습니다. 그리고 소년은 바람에 날리는 나뭇잎을 열심히 주워 모아 왕관을 만들어 쓰고 숲 속의 왕 놀이를 즐겼고, 나뭇가지를 타고 그네를 타기도 하고, 열매를 따먹기도 하고, 숨바꼭질도 하고, 나무 그늘 아래서 낮잠도 자고, 그렇게 나무와 소년은 사랑하며 행복하게 지냈습니다. 그러나 세월은 자꾸 흘러 소년도 나이가 들어 나무를 찾는 시간이 줄어들고 나무는 때때로 고독하기도 했습니다. 나무는 소년과 함께 옛날처럼 놀고 싶었는데 소년은 나이가 들면서 나무와 노는 것보다 돈이 필요했고 나무는 사과 열매를 주었습니다. 소년은 열매를 따 가지고 멀리 떠났지만 그래도 나무는 행복했습니다. 오랜만에 돌아온 소년과 옛날처럼 놀고 싶은 나무에게 소년은 보금자리의 필요를 요구하고 나무는 자기의 가지를 베어가라고 하여 소년은 나뭇가지를 베어갔지만 그래도 나무는 행복했습니다.
오랜 세월이 흘러 소년이 늙어 돌아왔을 때 나무는 아무것도 줄 것이 없다고 하자 소년은 필요한 것이 쉴 곳이라고 합니다. 나무가 베어진 자신의 나무 밑둥에 앉으라고 하자 노인이 된 소년은 그 위에 걸터앉았습니다. 그러면서도 나무는 그저 행복했습니다. 나무는 자신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주었습니다. 그러면서도 나무는 마냥 행복했습니다.
오늘은 그리스도인의 자기 희생의 필요성을 생각해 봅시다.

첫째, 자기 희생은 성도의 의무입니다.(롬12:1,2)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치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고전10:24)
나폴레옹의 프랑스 군대가 모스크바를 향해 진격할 때 러시아 카자크 족이 포위하고 포위망을 좁혀오자 프랑스 군대는 후퇴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카자크 족이 어느새 모든 교량을 파괴하고 퇴로를 완전히 차단해버렸습니다. 매서운 추위 속에 눈보라가 몰아치기 시작했습니다. 나폴레옹은 강물이 얕은 쪽을 골라 병사들에게 부서진 다리의 교각을 붙들게 하여 가교를 만들게 해서 병사들을 철수시키는데 성공했습니다. 마지막 병사가 건너가자 물 속에서 교각을 붙잡고 가교를 만들었던 병사들에게 철수 명령이 내려졌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모두 교각을 붙든 채 얼어죽었던 것입니다.
이 아름다운 희생은 사명의 엄숙함을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사람에 대한 충성도 이러하거늘 하물며 영생의 주님께 대한 성도의 충성이 이에 못 미친다면 어찌 십자가 군병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 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빌2:4)

둘째, 주를 좇기 위한 선행 조건입니다.
캐나다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어느 날 전세 경비행기 한 대가 공중을 날고 있을 때 조종사가 객석에 나타나 "이 비행기가 고장이 나서 곧 추락합니다. 이 기내에는 현재 저를 포함하여 5명이 탑승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낙하산은 4개밖에 없습니다."라고 하고는 먼저 낙하산을 메고 탈출해 버렸습니다. 그 후 한 손님이 일어나 "나는 일국의 대통령이다"라고 하면서 낙하산 하나를 가지고 내려가 버리자, 뚱뚱하고 잘생긴 사업가가 허둥지둥 낙하산 하나를 가지고 탈출해 버렸습니다. 낙하산은 하나밖에 없는데 손님은 히피 청년과 50대 목사 이렇게 둘입니다. 목사가 청년에게 낙하산을 양보하자 청년은 낙하산이 둘이라고 하면서 바로 앞에 탈출한 사업가는 청년의 배낭을 구명대로 착각하고 메고 내려갔다는 것입니다.
이와 비슷한 얘기로 1943년 2월 미군 수송선 돌체스터 호는 그린랜드 근해에서 빙산과 충돌, 미군 4백여 명이 죽는 대참사를 빚었습니다. 당시 수송선에 있던 군목 4명의 희생은 지금까지 아름다운 이야기로 남아있습니다. 그들은 기독교 목사와 카톨릭 신부 등으로 살아난 사람들은 이렇게 회고했습니다. "그 네 분은 모두 구명 자켓이 있었는데 다른 사람에게 나눠주고 구조활동을 했죠. 침몰 직전 그들은 서로 손잡고 조용히 기도했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온전하고자 할찐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하시니"(마19:21)

셋째, 그리스도의 사랑을 먼저 받은 자로서 마땅히 할 일입니다.
1902년 6월11일. 한국 최초의 선교사인 아펜젤러를 태운 배가 군산 근해에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선박이 충돌해 이화학당의 여학생 두 명이 바다에 빠졌습니다. 아펜셀라는 여학생들을 구출하기 위해 바다에 뛰어들었습니다. 자기 자신은 얼마든지 살아날 수 있었으나 44살의 나이에 목숨을 잃었습니다.
미국인들은 그의 죽음을 애석하게 여겼습니다.
"아펜셀라는 총명하고 잘 생긴 사람입니다. 미국에서 얼마든지 장래가 보장된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낙후된 한국에서 죽은 것은 매우 슬픈 일입니다."
그러나 아펜셀라의 희생은 결코 헛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세운 배재 학교와 정동제일교회에서 수많은 인재들이 배출됐습니다. 그의 세 자녀는 모두 한국의 선교사로 헌신했습니다. 기독교는 역설의 종교입니다. 한 톨의 씨앗이 땅에 떨어져 썩어야 수십 배의 열매를 맺습니다. 내 속의 나를 비워야 마음속에 안식과 평화가 깃듭니다.
성경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존하리라"(요12:24-25)고 하였습니다.

넷째, 그리스도께서 모범을 보이셨기 때문입니다.(요15:13)
알프스에 사는 재미있는 개미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 개미들은 특이합니다. 개미 집 속에 불타는 초를 세워놓으면 개미는 몸으로 불을 끄는 데 전력을 다합니다. 개미의 몸이 불타면 ‘키츤스’라는 불연성의 진액이 나와 불이 꺼진다고 합니다. 이러한 개미의 희생정신이 개미를 곤충의 왕이 되게 하는 것이 아닐까? 희생이란 참으로 아름다운 것이요, 위대한 힘을 발휘하는 원동력입니다. 부모님의 희생의 삶은 자녀를 훌륭하게 성장케 합니다. 순국 선열들의 고귀한 희생이 있었기에 나라가 든든히 서 있는 것입니다. 한국 교회가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성장을 가져온 것도 믿음의 선배들의 순교의 피가 이 땅에 뿌려졌기 때문입니다. 앞서간 믿음의 종들의 희생적인 삶이 없었더라면 오늘날 한국 교회가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아프리카 땅에 복음이 전파된 것도 리빙스턴 선교사와 슈바이처 박사같이 복음을 위해서 불타는 가슴으로 희생적인 삶을 살았던 위인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구원받은 성도로서의 나의 삶은 어떠한가? 사랑은 무엇입니까? 우리를 위하여 모든 것을 아낌없이 주신 예수님에 대하여 생각해봅니다. 주님의 십자가 희생이 나의 삶 가운데 메아리치고 있는가? 주님의 희생의 보혈이 나의 몸 속에 흐르고 있는가? 주님은 우리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살을 갈기갈기 찢으시고 보배로운 피를 흘려주셨습니다. 실로 이 세상에 주님의 희생만큼 아름답고 귀한 것은 없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생축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엡5:2)

다섯째, 어머니의 희생적인 사랑과 짐승도 새끼를 위해서는 희생하기 때문입니다.
펠리컨이라는 새는 겨울에 부화하는데 어미 새가 새끼에게 먹일 것이 없으므로 결국엔 그 가슴의 살을 떼어 먹이며 그 피를 먹임으로써 새끼를 살리고 자신은 죽는다고 합니다. 이성이 없는 짐승의 세계에서도 순수하고 뜨거운 모성애의 희생이 있습니다. 자녀에 대한 책임 있는 부모의 희생적 사랑은 행복한 가정의 필수조건으로 이것이 깨어지면 그 가정은 파탄의 가정으로 전락하게 됩니다.
이노우에 가오루는 일본의 근대화를 이끈 명치유신의 주역입니다. 그가 젊었을 때 이야기입니다. 이노우에 가우루가 어느 날 모종의 중대회의를 마치고 밤늦게 귀가하던 중에 난데없이 나타난 괴한들의 습격을 당한 적이 있습니다. 얼마나 심하게 맞고 또 칼에 찔렀던지 전신에 성한 곳이란 한군데도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집으로 업혀 온 그는 형에게 애원을 했습니다.
"형. 난 이제 살 가망이 없어. 이왕 죽을 것이면 이 엄청난 고통이나마 빨리 면하게 해줘." 절박한 호소였습니다. 안락사를 시켜달라는 주문이었습니다. 형의 생각으로도 동생이 이 상황에서 다시 살아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 생각됐습니다. 하지만 형이 동생을 어찌 죽일 수 있을까? 머뭇거리고 있는 형을 향해 동생이 거듭 사정을 했습니다. 마침내 형은 결단을 했습니다. 칼집에서 칼을 뽑아 치켜올렸습니다. 그리고 동생의 목을 향해 칼날을 내리치는 순간이었습니다. 아니,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내려쳐야 할 동생의 목은 보이지 않고 어머니의 몸뚱이가 있지 않겠습니까? 그들의 어머니는 이미 짓이겨진 아들의 몸 위로 순간적으로 자신의 몸을 내던진 것이었습니다. 결국 어머니의 두려움 없는 애절한 사랑 때문에 동생의 소원은 들어 줄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 후 이노우에는 어머니의 초인적인 간병과 정성어린 의사의 치료로 되살아나게 되어 후에 일본의 역사적 인물로 한 몫을 담담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희생적인 어머니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남편이 병으로 세상을 떠난 부인이 다섯 살과 세 살된 아들을 키우기 위해 철길 가에 있는 신발공장에 취직을 했습니다. 매일 아침 출근할 때 두 아이들을 맡길 곳이 없기 때문에 안고, 업고, 공장으로 출근하여 공장 안에 조그만 방에서 놀게 하고 부인은 일을 했습니다. 따뜻한 어느 봄날, 방안이 답답하다고 두 아이들이 엄마 몰래 철길로 나갔습니다. 철길에서 조약돌 치기도 하고 가위, 바위, 보 놀이도 하면서 놀고 있을 때 기차가 달려들었습니다. 누군가가 애들이 없다는 소리에 엄마가 뛰어나가 보니 철길에서 놀고 있고 있었습니다. 쏜살같이 달려가 두 아들을 철길 밖으로 던져 낸 순간 기차가 뛰어들어 엄마를 치고 지나갔습니다. 동네 사람들이 그 엄마의 장례를 치르고 난 후 두 형제는 고아원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자라서 어른이 된 후 어머니의 무덤에 조그마한 묘비를 세우고 다음과 같이 새겨 놓았습니다. "어머니, 우리 어머니, 사랑하는 우리 어머니"라고. 그 어머니의 사랑의 절정은 두 아들을 기르기 위해 일당 몇 백 원을 받으며 일했던 그것이 아닙니다. 두 아들을 기르기 위해 자신이 굶고 아이들 입에 먹을 것을 넣어 주었던 그것이 아닙니다. 그 기찻길에서 놀고 있던 두 아이의 생명을 건져내고 자신의 목숨을 버렸던 그 사건에 있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절정은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신 것입니다. 찬송 작사자 하버겔은 "내 너를 위하여 몸 버려 피 흘려 네 죄를 속하여 살길을 주었다. 너 위해 몸을 주건만 날 위해 무엇 주느냐"라고 읊었습니다. 왜 우리가 주님을 사랑한다고 말해야 합니까? 그것은 주님께서 나를 사랑하셨고 지금도 사랑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여섯째, 자기 목숨을 버리는 것이 참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사랑이 없나니"(요15:13)
제2차 세계대전 때에, 일본은 작전상 매우 중요한 태국의 콰이강에다 교량을 건설할 때 수많은 연합군 포로들을 사용하였습니다. 병력과 전쟁물자를 운반하기 위한 대단히 중요한 철도의 건설이었습니다. 이 다리의 건설은 매우 극적인 사건이었기에 영화제작까지 하게 된 것을 우리가 압니다. 이 콰이강의 교량건설에는 수많은 인명이 희생되었고, 여러 가지의 영웅적인 이야기도 많이 얽혀있는데, 다음의 사실은 참으로 우리의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영웅적인 사건입니다.
한번은 다리 건설에 사용하는 중요한 공구(연장)가 없어졌습니다. 일본군은 연합군 포로들이 다리 공사를 지연시키려고 연장을 갖다가 버린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일본군은 전체 연합군 포로들을 다 집합시키고 그 둘레 사방에 기관총을 설치해 놓은 다음, 공구를 안 갖다 놓으면 전부 사살해 버리겠다고 했습니다. 무서운 순간이었습니다. 연합군 포로들은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당황해 했습니다. 이제 몇 초나 몇 분 안에 갖다버린 사람이 안 나오면, 일본군의 기관총이 틀림없이 불을 뿜기 시작할 것입니다. 이때에 한 영국군인이 일어났습니다. 자기가 갖다버렸다고 했습니다. 일본군은 그를 앞으로 나오라고 했습니다. 그러더니 일제히 기관총들이 그 군인을 향해서 사격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영국군인은 온몸이 벌집처럼 뚫어지며 피를 토하고 죽어버렸습니다. 놀라운 일은, 며칠 후에 그 연장이 발견되었는데 그것은 누가 감춘 것도 아니었으며, 누가 갖다 버린 것도 아니었으며, 미처 찾지를 못했던 장소에서 발견이 된 것이었습니다. 그 영국군인의 희생은 모든 전우들을 살린 영웅적인 죽음이었던 것입니다.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롬5:7)

일곱째, 하나님의 의를 드러내기 위함입니다.
1798년에 제너는 천연두로 죽어 가는 많은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젖소에서 천연두의 면역성을 가진 우두를 발견했습니다. 그것을 사람에게 주사하면 천연두 면역성이 생긴다는 것을 학회에 보고했습니다. 학회에서 마지막 실험 단계에 들어갔을 때 당시에 제일 유명했던 영국의 학계의 권위 있는 의사들을 위시해서 많은 동료 의사들은 질투와 시기에서 그를 비웃고 조롱했습니다. 그들은 시골뜨기 의사가 의학의 ABC도 모르고 하나님과 의학을 모독한다고 했습니다. 동물과 사람을 구별할 줄도 모르느냐고, 동물에게 실험한 것이 사람에게 적용이 될 수가 있겠느냐고 조롱을 하면서 그것을 없애 버리려고 했습니다. 만일 그 학회에서 그것이 부결이 되면 당시는 인체 실험이 매우 어려운 때이고 권위주의 시대였기 때문에 다시 빛을 보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그는 눈물을 머금고 "몇 달 전에 어느 사람에게 주사를 해서 듣지 않았습니까?"하고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그들은 한 사람의 임상 실험을 가지고 되느냐며 또 비난을 했습니다. 그러자 제너는 눈물을 흘리면서 "여러분, 제 말을 들어 보십시오. 저는 23명을 실험했고, 낳은 지 열 하루밖에 되지 않은 제 아들에게도 실험을 했습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때 장내는 숙연해졌습니다. 그것은 결사적인 실험이었습니다. 인류에게서 천연두를 없애 버리기 위한 한 알의 밀알이 된 것입니다. 희생이 없이 위대한 일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또 다른 이야기입니다. 이름도 알려져 있지 않은 미국 선교사 한 분이 중국에 와서 전도를 하는데, 때마침 이름 모를 전염병이 유행하여 수많은 중국인들이 희생당하게 되었습니다. 선교사는 급히 그 전염병의 병균을 유리병 속에 담아 면역체를 만들기 위해 의학이 발달한 미국으로 떠났습니다. 샌프란시스크에 상륙하려고 할 때, 검역소 직원들이 철저하게 승객들을 조사하기 시작했습니다. 발각되면 면역체고 뭐고 헛일이라고 생각한 선교사는 고민 끝에 병균을 자신의 입에 털어 넣고 유리병은 바닥에 버렸습니다. 조금뒤 그의 온몸에 병균이 퍼지면서 열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급히 병원으로 달려가서 의사들에게 이렇게 외쳤습니다.
"내 몸은 지금 중국에서 번지고 있는 전염병에 감염되었습니다. 이 병균을 뽑아 면역체를 만들어 주세요. 그것을 중국에 보내 많은 사람들을 살려주시기 바랍니다."
그 후 선교사는 숨을 거두었고, 그 희생의 대가로 전염병의 면역체가 만들어져 중국내의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구했다고 합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10:31)

여덟째, 그리스도의 구속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언덕 꼭대기에 있는 논에서 추수를 하던 한 농부가 땅이 흔들리는 것을 느끼고 먼바다를 내려다보니 바닷물이 순식간에 멀리 빠져나가는 것이 곧 해일이 몰려 올 징조였습니다. 그런데 언덕 밑 낮은 지대에서는 이웃 사람들이 그것도 모른 채 정신 없이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농부는 궁리 끝에 볏집단을 모아 불을 붙이고는 창고 처마 밑에 달려있는 종을 힘껏 쳐댔습니다. 그제야 사람들은 언덕 쪽을 바라보았고 불을 끄려고 모두 올라왔습니다. 그들이 올라오자마자 그곳엔 큰 파도가 몰려와 순식간에 물바다를 이루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무사할 수 있었으나 대신 그 농부는 1년 동안 땀흘려 농사지은 자신의 벼가 다 타버리는 큰 희생을 치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가장 귀한 많은 사람의 생명을 건질 수 있었으니 자신의 희생을 아까워하거나 속상해 하지 않았음은 물론이겠지요. 주위를 돌러본다면 나의 작은 희생으로 이웃에게 큰 유익을 주는 일이 얼마든지 있지 않을까요?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구속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에 열심하는 친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딛2:14)
우리는 이러한 이야기들을 들을 때마다, 우리를 영원히 살게 하시려고 십자가 위에서 대신 죽어주신 그리스도의 거룩하신 죽음을 숙연히 묵상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우리가 새 생명 가운데 살게 되었으므로 우리도 예수와 복음을 위해 목숨을 버릴 각오로 신앙생활을 하시기를 바랍니다.
* 기도: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시고 목숨을 버리신 주님! 주님의 크신 사랑에 감사드립니다. 우리를 위하여 당하신 예수님의 수치와 멸시와 고난을 묵상합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본받아 날마다 자신을 부인하며 저에게 주신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기 원합니다. 십자가의 구속의 사랑을 찬양하며 그리스도의 향기를 나타내는 삶을 살게 하소서. 혀로는 주님의 영광을 위해 살겠노라고 말하면서 늘 우리 자신의 유익만을 위해 살았던 온전하지 못했던 우리의 모습들을 봅니다. 연약한 우리들을 고치셔서 진정한 헌신과 열정으로 주를 온전히 섬기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한태완 목사
* 금언:
0 자기 자신을 희생하는 것처럼 행복한 일은 없다(도스토예프스키)
0 희생된 자들은 불쌍히 여겨야 할 자들이 아니다. 불쌍히 여겨야 할 자들은 그들에게 희생을 강요시킨 자들이다.
* 묵상
● 예수님의 희생을 본받아 나는 어떤 일을 행하였습니까?
● 예수님과 복음을 위해 헌신하고 버린 것이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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