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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믿음의 사람들

마태복음 한태완............... 조회 수 3299 추천 수 0 2009.04.29 13:4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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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마8:5-13 
설교자 : 한태완 목사 
참고 : http://je333.com 
 마 8: 5∼13, 마 9: 18 ∼ 26, 마 15:21 ∼ 28

오늘은 예수님의 제자는 아니지만, 예수님이 칭찬하신 믿음의 사람 4사람(백부장, 혈루증 여인, 야이로, 가나안 여인)의 소원과 그들의 믿음을 살펴보고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백부장
예수님께서 가버나움에 계셨을 때 한 로마군대의 백부장이 예수님께 나아와 자기 하인의 중풍병을 고쳐주실 것을 호소합니다. 우리가 그에게서 얻을 교훈은
첫째, 백부장은 하인을 사랑하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그 당시 하인들은 짐승 취급도 받지 못하였지만 백부장은 그 하인이 중풍으로 드러눕자 안타깝게 여기고 하인의 질병 문제를 가지고 예수님께 찾아왔습니다. 그 당시 하인만 무시를 당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도 무시를 당하였는데 그 예수님을 찾아와서 하인의 치료를 부탁한 것은 하인을 뜨겁게 사랑을 하였다는 증거입니다.
둘째, 백부장은 하인의 문제를 예수님께 가지고 나와서 간구하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그는 예수님께 “주여 내 하인이 중풍병으로 집에 누워 몹시 괴로워하나이다”라고 간구하였습니다. 자기의 부모나 자신의 문제, 자기 가족의 문제가 아니라 하인의 질병 문제를 가지고 예수님을 찾은 것은 보통 일이 아니었습니다. 큰 믿음이 아니고서는 정말 힘든 일입니다.
셋째, 백부장은 예수님의 말씀의 능력을 믿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예수님께서 백부장의 믿음을 보시고 “내가 가서 고쳐 주리라”고 말씀하시자 백부장은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치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삽나이다. 나도 남의 수하에 있는 사람이요 내 아래도 군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라고 말을 하였습니다. 백부장의 이 고백은 예수님의 말씀의 능력을 믿는 믿음입니다.
넷째, 누가복음 7장 5절에 보면 그는 유대인들을 위해 회당을 건립하는 등 이방인이면서도 유대인들에게 선행을 많이 베풀었으며 따라서 유대인들로부터 존경을 받은 것으로 나타납니다.
다섯째, 백부장은 예수님의 칭찬을 받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예수님은 백부장의 믿음을 보시고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하였노라”(마8:10)고 칭찬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으로부터 인정받는 믿음이나 칭찬 받는 믿음을 소유하면 기적을 체험하며 기도 응답을 받습니다. 본문에 보면 예수님께서 백부장에게 “가라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라고 선포하신 즉시 하인의 병이 깨끗하게 치료를 받았습니다. 백부장의 믿음이 여러분들의 믿음이 되기를 바랍니다.

2. 혈루증 여인
12년간 혈루증으로 고통을 당하면서 많은 의원에게 괴로움을 받고 재산을 다 허비하였지만 아무 효험이 없고 도리어 병이 더 중하여진 여인이 예수님을 만나 고침을 받은 사건에 대하여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본문의 내용이 마가복음 5장 25∼34절에 보면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혈루증에 걸렸다가 예수님을 만나 고침 받은 여인의 믿음을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예수님에 대한 소문만 듣고도 예수님을 믿은 믿음입니다. 마가복음 5장 7절에 보면 ‘예수의 소문을 듣고 무리 가운데 섞여 뒤로 와서 그의 옷에 손을 대니’라고 하였습니다. 이 혈루증 환자는 예수님을 만나본 적이 없고 다만 누군가로부터 소문만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소문을 듣고 예수님의 능력을 믿고 예수님께 온 것입니다. 보지도 못하고 믿는 믿음이 복된 믿음이지만 이런 믿음을 갖기는 결코 쉽지 않습니다. 성경은 예수님에 대한 최고의 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그대로 믿는 자들은 기적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둘째, 용기 있는 믿음입니다. 혈루증은 자궁의 하혈 증상으로 당시 종교적으로 부정하게 여겨, 다른 사람과 접촉을 금지했습니다.(레15:19-27) 또한 여인의 부정한 하혈은 죄의 상징으로 간주되기도 하였습니다.(겔36:17) 이런 여인들은 사람을 접촉하면 안됩니다. 그런데 이 여인은 예수님을 만나려는 용기 있는 믿음과 열정 때문에 무리 가운데 섞여 예수님의 뒤로 와서 옷에 손을 대었습니다. 부정한 여인이 예수님의 옷을 만진 것은 용기 있는 믿음 때문입니다. 우리도 이렇게 용기 있는 믿음을 가져야 기적을 체험을 할 수 있습니다.
셋째, 예수님의 전능하신 능력을 믿는 믿음입니다. 예수님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예수님께서 능력이 나와 질병에서 해방을 받을 줄로 믿고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대었습니다. 안수를 받고도 믿지 않는 사람들에 비할 때 얼마나 큰 믿음입니까? 예수님의 전능하신 능력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변함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예수님의 전능하신 능력을 믿으면 기적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넷째, 예수님의 칭찬을 받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본문 22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겉옷을 만지는 여인에게 ‘딸아 안심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라고 칭찬을 하셨습니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으로부터 칭찬 받은 믿음을 가진 자들은 다 기적을 체험하였고 또 응답을 받았습니다. 성도 여러분, 이 여인이 가지고 있는 믿음을 가지시기를 기원합니다.

3. 야이로의 신앙
이스라엘 민족이 70년간 바벨론의 포로생활을 마치고 귀환한 후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회당을 건축했습니다. 이 회당을 관리하는 자가 회당장인데 본문에서는 직원이라고 표기하였지만 이 직원이 회당장입니다.(막5:22-43, 눅8:41-56절 참조) 이 회당장에게 딸이 있었는데 그 딸이 죽었습니다. 그때 회당장은 유대교 관리이지만 예수님을 찾아와서 부탁하여 이미 죽은 딸을 살려내었습니다. 야이로의 믿음을 살펴보면
첫째, 야이로의 믿음은 겸손한 믿음입니다. 회당장 야이로는 사랑하는 딸이 죽었을 때 예수님께 달려와서 엎드려 절하고 딸이 방금 죽었으니 손을 얹어 살려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딸이 죽었다고는 하지만 회당장인 야이로가 예수님을 찾아와서 엎드려 절하는 것은 그 당시 정서상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당시 정서로 보면 회당장이 예수님을 찾아온 것 자체가 겸손이며 엎드려 절을 한 것은 더 큰 겸손입니다. 성경 가운데 보면 겸손한 자들은 다 기적을 체험하였고 응답을 받았습니다(눅 18;13∼14).
야보고서 4장 6절에 보면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라고 말씀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겸손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둘째, 문제가 있을 때 예수님을 찾아온 야이로의 믿음입니다. 회당장 야이로는 외동딸이 죽었을 때 병원을 찾아간 것이 아니고 무당집을 찾아간 것도 아니고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야이로는 가장 지혜로운 행동을 취한 것입니다. 우리도 세상을 살다보면 여러 종류의 어려움을 당할 수 있는데 그 어려움을 해결하는 최상의 방법은 그 문제를 가지고 예수님께 달려가는 일입니다. 야이로처럼 말입니다.
셋째, 야이로가 자기 딸의 병과 죽음의 경험을 한 것은 그의 가정을 향한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였습니다. 우리도 고난이 임했을 때 그것을 괴로워만하지 말고 하나님께 나아가 무릎을 꿇고 간구하면 하나님께서 응답하고 축복하신 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넷째, 야이로는 예수님의 전능하신 능력을 믿었습니다. 본문 9장 18절에 보면 회당장 야이로는 예수님께 와서 엎드려 절하고 ‘내 딸이 방금 죽었사오나 오셔서 그 몸에 손을 얹으소서 그러면 살겠나이다’라고 말했습니다. 회당장 야이로는 예수님께서 오셔서 죽은 딸에게 안수를 해주시면 죽은 딸이 살아날 것을 믿었습니다. 예수님은 믿음대로 역사를 하십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물러나게 하시고 죽은 자의 손을 잡아 일으키셨습니다. 야이로의 믿음대로 그 딸은 살아났습니다. 성도 여러분, 이런 기적을 체험하시기를 바랍니다.

4. 가나안 여인
한번은 예수님께서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가시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가시는 곳에는 얼마나 사람들이 많이 모여들었는지 모릅니다. 잠시 쉬실 만한 시간을 내기도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가나안 여자 하나가 나타나서 소리 지르기 시작했습니다.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히 귀신들렸습니다." 이 여인은 간절한 요구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이 여인의 딸이 귀신에게 시달리는 것이 너무 보기에 안타까워서 예수님을 찾아와 소리 지르면서 딸의 병을 고쳐 달라고 애원했습니다.
이 여인의 딸이 귀신이 들려서 아주 어려운 형편에 처하자 이 여인은 능력 많으신 예수님은 무엇이던지 사실 수 있는 분, 못 고치는 병이 없으신 분으로 확신했기 때문에 예수님을 찾아와서 간구한 것입니다.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히 귀신이 들렸습니다."
여기 '다윗의 자손'이란 말은 메시야에 대한 호칭입니다. 마태복음 9i장에 보면 앞을 보지 못하는 두 맹인이 예수님을 따라오며 소리 지르는 장면이 나옵니다.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했습니다. 같은 마태복음 12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귀신 들려 눈멀고 벙어리 된 자를 데리고 왔을 때 그를 불쌍히 여겨 고쳐 주셨습니다. 이것을 본 모든 사람들이 다 놀라서 말하기를 "이는 다윗의 자손이 아니냐?"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다윗의 자손'이란 말은 '메시야'란 말과 같은 의미로 사용된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학자들은 이 여인이 벌써 이방종교에서 유대교로 개종했던 것이 아닌가하고 말하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이방사람들은 다윗의 자손이 메시야인 것을 모를 터인데 이 여인은 벌써 알고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이라고 불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보다 메시야에 대한 소문이 벌써 여기까지 전파되어 예수님에 대한 인식이 일반화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여인은 예수님을 쫓아오며 안타깝게 자기 땅의 병을 고쳐 달라고 애원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우리가 지금까지 생각하고 알고 있던 그런 분과는 너무 다른 모습으로 나타났습니다. 예수님은 병든 사람을 보시면 당장 고쳐 주셨습니다. 저녁이 되어도, 끼니에 대한 대책이 없는 무리를 보실 때 목자 없는 양처럼 민망히 보시고 기적을 행해서 배불리 먹게 하고 열두 광주리나 남게 하셨습니다. 맹인들이 소리칠 때 그들을 불러서 고쳐 주신 주님이셨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동정심이 많으신 예수님이 가나안 여인이 그렇게 소리치며 따라와도 못 들으신 것은 아니실 것인데 이상할 정도로 한 말씀도 대답하지 않으셨습니다. 아무 반응도 없으셨습니다. 왜 예수님이 이 가나안 여인의 부르짖음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으셨을까요? 여기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추측이 있습니다만 저는 '이 여인의 믿음을 더 깊게 하기 위하여 시간을 끈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합니다. 이와 같은 주님의 침묵은 그 여인의 믿음을 더 크게 하는데 결정적이었던 것만은 틀림이 없습니다. 사실 하나님의 침묵이 우리의 믿음을 향상시킬 때가 많습니다.
야이로나 이 가나안 여인처럼 자녀를 위해 자신의 체면을 생각지 않고 무릎꿇고 간구하는 부모의 간절한 기도는 하나님께서 응답하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저 유명한 어거스틴의 어머니 모니카를 기억합니다. 그 아들 어거스틴이 방탕한 생활을 하며 마니교를 신봉하고, 세상에서 많은 사람에게 인기를 누리며 사는 것을 볼 대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던 어머니로서는 아들 어거스틴이 그 잘못된 길에서 돌아오기 위하여 얼마나 애쓰며 눈물로 기도했는지 모릅니다. 10년이 넘게 하나님께 애원했습니다. 그러나 아들 어거스틴의 생활에는 아무런 변화가 나타나지 않고 오히려 더 심해지고 있었습니다. 모니카는 낙심했습니다. 한 번은 너무 속이 상하고 안타까워서 가지 교구의 암브로스 감독을 찾아가서 아들의 심령을 위해 호소하면서 흐느껴 울었습니다.
'신부님, 제 아들 어거스틴을 하나님께서 영원히 버리신 것 같아요, 제가 아무리 오랜 세월동안 제 아들의 심령을 위해 기도 드렸지만 하나님은 제 기도에 아무런 응답이 없으십니다. 제 아들이 돌아오기를 10년이 넘게 애타게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내 아들의 생활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고 오히려 더해 가는 것 같습니다. 신부님, 저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면서 신부 앞에서 울음을 그치지 못했습니다. 이 때 눈물을 흘리며 애타는 심정으로 호소하는 어거스틴의 어머니 모니카의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암브로스 감독은 조용히 입을 열어 말했습니다. "자매님, 너무 염려하지 마십시오. 절대로 낙심하지 마세요. 눈물로 간절하게 기도하는 어머니가 있는 아들은 절대로 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계속 기도하세요."
암브로스 감독의 격려의 말에 힘을 얻은 모니카는 계속 하나님께 기도 드렸습니다. 그 결과 어거스틴이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게 되었고 우리 기독교 역사상 빛나는 인물이 되지 않았습니까?
그렇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애타게 간절히 기도해도 이루어지지 않는 일들이 있습니다. 물론 내 욕심을 위해 잘못 구하는 것이 있다면 이루어지지 않는 편이 더 나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나님의 뜻대로 구하는 기도임에도 불구하고 응답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잠잠히 침묵을 지키실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럴 때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 가나안 여인처럼 우리는 계속 간구해야 합니다. 문이 열릴 때까지 두드려야 합니다. 그런데 이것 보세요. 예수님은 아무런 반응이 없으신데 이 여인은 계속 부르짖습니다.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히 귀신이 들렸습니다. 나를 불쌍히 여겨 주세요' 예수님을 수행하던 제자들이 시끄럽고 귀찮게 여겨져서 예수님께 "선생님, 저 여자가 아까부터 와서 저렇게 계속 소리 지르는 데 이거 도무지 시끄러워서 못 견디겠습니다. 선생님께서 뭐라고 한마디 말씀하셔서 돌려보내면 좋겠습니다."고 제의했습니다. 예수님의 신중한 태도에 비해서 제자들은 대조적으로 단순하게 생각했습니다. 귀찮게 생각해서 빨리 돌려 보내자고만 했습니다. 이 때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이 말씀의 의미는 첫째 단순하고도 무관심한 제자들을 깨우치기 위해서 예수님 자신이 세상에 오신 목적을 밝히신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양입니다. 그리고 메시야는 이스라엘의 목자입니다. 요한복음 10장에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린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들을 때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이 유대인에게 국한되고 이방인을 완전히 도외시한 듯한 느낌이 듭니다. 그런데 요한복음 10장 16절에 보면 다른 면도 없지 아니합니다. "또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야 할 터이니 저희도 내 음성을 듣고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으리라"고 주님 말씀하셨습니다. 어쨌든 우리는 주님의 말씀에서 이스라엘을 대하는 예수님의 열렬한 사랑을 엿볼 수가 있습니다.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 메시야는 먼저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기 위해 오셨지마는 이스라엘이 종래 배척하므로 복음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로마서 2장에 말씀한 대로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그 다음은 이방인"의 공도가 확립된 것입니다.
이 경위를 변증하는데 오늘 주신 말씀의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집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이 말씀을 들을 때 보통 사람 같으면 낙심하고 물러 설 수 있는 일입니다. "그렇지. 나는 유대인이 아니니까 저분하고는 상관없지. 내가 공연히 사간만 낭비했지." 하면서 돌아갔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여인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멀리서 소리 지르다가, 이제는 더 가까이 와서 전하면서 애원했습니다. 제자들의 냉대에도 이 여인을 물러서게 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의 무관심해 보이는 태도도 이 여인의 열심을 꺾지 못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기도에는 열심히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께 간절하게 기도해야 합니다.
전에 한나라는 여인은 어린애가 없어서 하나님의 성막에 가서 기도했습니다. 한나는 마음이 괴로워서 통곡을 하며 하나님께 소원 기도를 드렸습니다. "만군의 여호와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아보시고 나를 생각하시고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사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
한나가 얼마나 간절하게 열심히 기도했던지 성막을 책임지고 있는 엘라 선지가 와 보니 꼭 술취한 여인처럼 보였습니다. 그래서 한나더러 "네가 언제까지 취하여 있겠느냐? 포도주를 끊으라"고 했습니다. 그 때 한나가 뭐라고 대답했습니까? "나의 주여, 그렇지 아니하나이다. 나는 마음이 슬픈 여인입니다. 포도주나 독주를 마신 것이 아니고 여호와 앞에 나의 심정을 통한 것뿐입니다. 당신의 여종을 악한 여자로 여기지 마십시오. 내가 지금까지 말한 것은 나의 원통함과 격동됨이 많아서입니다." 하나님은 한나의 간절한 기도를 들으시고 아들 사무엘을 주셨습니다.
이 가나안 여인은 이런 냉대를 받으면서도 예수님께 가까이 나아와 간청했습니다. "주여, 저를 도와 주세요. 저를 도와 주세요." 미친 듯이 애원했습니다. 이 때 예수님이 이 여인에게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사실 그 당시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을 개나 돼지처럼 생각했습니다. 예수님도 그 당시 유대인들의 일반적인 관념 그대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만약 제가 여러분들을 향하여 예수님이 가나안 여인에게 말씀하신 것처럼 말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아마 흥분하고 격분하실 분이 많으실 것입니다. 삿대질을 하며 달려드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실망해서 돌아가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저 목사가 미친 것 아닌가?'하며 고개를 기웃거리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문자 그대로 아수라장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이 여인을 보세요. 예수님께로부터 이처럼 천대와 무시를 당하면서도 조금도 불쾌한 감정을 나타내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그대로 받아 드리며 "주님, 옳습니다. 저는 사실 개와 같이 보잘 것 없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주님, 개도 주인의 상아래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먹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저는 부스러기라도 좋으니 그 부스러기를 좀 주세요." 이 여인은 겸손과 기지 그리고 인내의 미덕이 조화된 훌륭한 신앙의 소유자였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오해할 수도 있고, 시비할 수도 있고, 반항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여인은 오히려 개로서 족했고, 당연한 권리에서가 아니라 부스러기를 주워 먹으려는 겸손과 간절한 그리고 부스러기만 가지고도 넉넉하겠다는 믿음의 소유자였습니다. 그러면서도 결코 낙심하거나 후회할 줄 모르는 인내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건전한 신앙에는 이런 미덕이 갖추어 있어야 합니다. 이런 그녀의 믿음에 예수님은 이 여인에게 응답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트렌취의 말처럼 "야곱이 밤을 새우면서 씨름하여 얻음 힘을 이 여인도 얻은 것"입니다.
야곱은 얍복강에서 하나님의 사자를 만나 밤새 씨름을 했습니다. 날이 밝아 올 때 하나님의 사자가 야곱에게 '이제는 놓아 달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당신이 나를 축복해 줏지 아니하시면 내가 당신을 놓지 않겠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사자가 야곱에게 '네가 하나님과 겨루어 이겼다. 네 이름을 야곱이라 하지말고 이스라엘이라 하라'고 했습니다. 이 여인의 경우 여러 가지 장애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장애는 오히려 이 여인의 믿음이 깊어지는데 도움이 되었을 뿐입니다.
이 여인의 첫 번째 청원은 예수님께서 침묵으로 대하셨습니다. 두 번째 청원은 냉정하게 개처럼 취급받았습니다. 세 번째 청원도 격찬으로 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여인의 간절하면서도, 열렬하면서도, 겸손하면서도 끈질긴 믿음에 대하여 크게 감동을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 사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이 여인에게 하신 칭찬 같은 것을 받아본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제자들에게는 "믿음이 적은 자들아 왜 의심하느냐?"고 책망하신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이방 여인에게 '네 믿음이 크도다'고 칭찬하셨습니다. 이 여인에게 있어서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이 여인은 예수님에게 칭찬만 받은 것이 아닙니다. 그 다음에 주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네 소원대로 되라'는 응답을 받았습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약속입니까? 이 여인의 딸은 무서운 귀신이 들려 말로 다 할 수 없는 고통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귀신을 내어쫓을 수 있는 능력이 있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님을 온전히 의지하면 주님께서 우리의 믿음을 보시고 우리의 소원을 들어 주십니다.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그렇습니다. 믿음과 축복은 정비례합니다. 크게 믿으면 큰 축복 받습니다. 작게 믿으면 작은 축복을 받습니다. 아무것도 안 믿으면 아무 축복도 받을 수 없습니다. 믿음은 말하자면 상수도 파이프와 같습니다. 하나님의 수원지에는 축복의 생수가 무진장으로 저장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믿음의 파이프를 연결하느냐 하는데 따라서 하나님의 축복의 생수가 우리에게 임합니다.
가령 주사 바늘만큼 가느다란 파이프를 하나님의 축복의 수원지에 연결했으면 그 파이프를 통해 그저 졸졸 내리기 때문에 주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기쁨도 감사도 만족도 찬송도 승리도 없이 살아갑니다. 오히려 근심과 걱정 두려움과 한숨 속에서 불행하게 삽니다. 그러나 큰 믿음을 가진 사람은 아름드리 수도 파이프를 연결했기 때문에 축복의 생수가 폭포수처럼 쏟아집니다. 그러므로 큰 믿음 가지고 사는 사람은 감사와 감격, 기쁨과 찬송, 전진과 승리의 삶을 살수가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큰 믿음 가지고 큰 축복 받으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성경은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말씀했습니다. 큰 믿음 가지고 입을 넓게 여는 것은 내가 할 일입니다. 그리고 넓게 열린 입에 채워주시는 것은 하나님이 하실 일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큰 축복을 주시기 원하시는데 우리의 믿음의 그릇이 작아서 이 큰 축복을 포기하는 적은 없습니까? 믿음의 큰그릇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이 베드로, 야고보 그리고 요한을 데리고 산에 오르셔서 변화하신 모습을 보여 주신 후 산에서 내려오시는데 큰 무리가 둘러서 있고 제자들과 어떤 사람이 시비가 붙은 것을 보았습니다. '무슨 일이냐?' 고 물었더니 어떤 사람이 나오면서 "선생님, 벙어리 귀신들린 내 아들을 데려 왔습니다. 이 귀신이 어디서든지 저를 잡으면 거꾸러져 거품을 흘리며 이를 갈며 몸은 날로 파리해 갑니다. 내가 선생님의 제자들에게 내어쫓아 달라고 했더니 해 보자고 말은 했어도 애를 고새만 시키고 아무런 진전이 없습니다. 선생님이 혹시 하실 수 있거든 좀 위를 불쌍히 여겨서 도와 주세요."
이 말을 들은 예수님께서 정색을 하시고 아이 아버지 에게 "할 수 있거든 이란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때 아이 아버지가 소리지르며 말했습니다. "내가 믿습니다. 내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 예수님은 그의 신앙을 확인하신 후에 그 아이의 병을 고쳐 주셨습니다.
오늘 이 말씀을 듣고 보는 모든 분들이 큰 믿음을 가져서 주님께로부터 칭찬과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라'는 말씀을 듣기를 축원합니다.
* 기도: 굳건한 믿음을 기뻐하시는 주님, 우리에게도 백부장의 믿음과 혈루증 여인의 믿음과 야이로의 믿음과 가나안 여인과 같은 주님께 칭찬받는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늘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큰 믿음과 산 신앙을 가지고 승리하는 삶을 살게 하소서 우리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한태완 목사

* 2부 : 분반(구역)공부 자료

1. 말씀: 라이킨의 법칙

흔히 80대 20의 법칙이라고 부르는 '라이킨 법칙'이 있습니다. 백화점 매상의 80퍼센트는 상위 20퍼센트의 고객이 올려주고 은행 예금의 80퍼센트는 상위 20퍼센트의 부자들이 예금하고 걸려오는 전화의 80퍼센트는 항상 전화를 거는 20퍼센트가 하는 것이고 자주 쓰는 한자나 영어의 80퍼센트는 20퍼센트의 단어가 차지하고 대학교수들은 레포트의 20퍼센트만 읽어도 80퍼센트를 이해할 수 있고....
마찬가지로 하루에 할 일을 10가지 적어보면 그 중 중요한 2-3가지 일이 전체 일의 80퍼센트를 차지하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근심 걱정이 많은 사람들의 특징은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많은 일에 이것 저것 신경을 쓴다는 것입니다. 열 가지 일 중 가장 중요한 두세 가지에만 집중해도 일의 80퍼센트는 이루어진답니다. 교회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20퍼센트의 성도들이 교회 일의 80퍼센트를 하고 20퍼센트의 성도들이 내는 헌금이 교회 예산의 80퍼센트를 차지하고 무슨 일이든 10명 중 2명만 찬성하면 그 일의 80퍼센트는 이루어진 것이다 다름없습니다. 20퍼센트에 집중하여 전심전력하면 일의 80퍼센트를 이룰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큰 믿음의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 묵상 및 토의
0 나는 내 신앙 양심에 부끄러움이 없는가?
0 나는 생활 중에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얼마나 믿고 있는가?
0 아직도 나의 신앙은 표적을 보고 믿는 신앙 밖에 되지 않는가?
0 나는 어떤 곤경 상태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소유하고 있는가?
0 나는 굳센 믿음 생활을 하고 있습니까? 믿음으로 어떠한 역경과 어려움 가운데서도 소망을 잃지 않고 살아가고 있습니까?
0 약속을 믿는 것에는 신뢰가 필요하듯이, 언약을 믿는 것에는 신앙이 필요합니다. 나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고 인내할 수 있습니까?

3. 예화(1) : 빛으로 밝게 삽시다.

얼마 전 별세한 큰 믿음의 정치인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은 웃음과 미소로서 8년 간 미국을 이끌었습니다. 알츠하이머병에 걸리고도 자신의 병을 국민들에게 발표하면서
"하나님이 나를 당신의 집으로 부를 때 그 때가 언제일지 몰라도 나는 우리 나라에 대한 무한한 사랑과 우리 나라의 미래에 대한 영원한 소망을 갖고 떠날 것입니다. "
얼마나 밝은 사람입니까? 1981년 3월 30일, 존 힝클리의 저격으로 쓰러져 병원에 긴급 후송되어서는 놀라서 뒤 따라 달려온 부인 낸시에게
"여보, 그 녀석이 총을 쏠 때 내가 머리 숙이는 것을 깜빡 잊었구려....“
그 순간 긴장과 충격과 염려로 꽉 굳어만 있던 보좌관, 경호원, 의료진 모두가 자신들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리면서 분위기가 그렇게도 밝아졌다고 합니다. 빛으로 밝게 삽시다.

* 예화(2) : 놀라운 믿음

40일 새벽기도 내내 하루도 빠지지 않고 참석한 집사님이 계셨습니다. 그것도 자동차로 1시간씩이나 운전을 해야 하는 먼 거리였습니다. 새벽기도를 마치던 날 목사님이 그와 인터뷰하며 이렇게 질문했습니다. “교회가 너무 멀지 않았나요?” 그러자 그 분의 대답이 이랬습니다. “저는 한번도 교회가 멀다고 생각해 본 일이 없습니다” 그 믿음과 신앙에 모두 놀라는 성도와 목사님에게 그가 이렇게 덧붙이는 것이었습니다. “제 집이 멀었을 뿐이지요”
“내가 이르노니…이만한 믿음은 만나 보지 못하였노라 하시더라”(눅 7:9)

* 예화(3) : 노아와 같은 믿음

어떤 한 인부가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아주 신실한 크리스천이었습니다. 그런데 함께 일하는 동료들은 모두 다 하나님을 믿지 않은 불신자들이었습니다. 그날도 마찬가지로 열심히 땀을 흘리면서 담을 쌓다가 점심시간이 되어서 도시락을 먹게 되었습니다. 다른 동료들은 기도도 하지 않고 허겁지겁 도시락을 펼치고 밥을 먹었지만 이 사람은 하나님께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기도하는 이 사람의 모습을 보고서 다른 사람들이 놀리기 시작합니다. 심지어 공사장을 지나가던 개가 몰래 와서 기도하던 틈을 타서 그만 도시락을 훔쳐 달아나버렸습니다. 사람들이 배를 잡고 웃기 시작합니다. 도시락을 잃어버린 사람을 향하여 손가락질 하면서 놀려대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이때에 기도를 마친 이 신실한 크리스천은 조용히 일어나서 자신의 도시락을 찾기 위해서 개에게 다가갔습니다. 이 모습을 보고서 앉아 있던 모든 사람들이 더 크게 웃기를 시작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사람들의 웃음소리에 그만 담장이 무너져 비웃던 모든 사람들이 자신들이 쌓던 담장 밑에 깔려버리는 사고가 발생하고 말았습니다. 노아도 이처럼 그 시대에 홀로 외롭게 하나님을 섬기던 의인이었습니다. 그러나 홍수의 심판이 전 인류를 심판할 때에 하나님께서 노아의 의로움을 보시고 그와 그의 가족들만을 구원하셨습니다. 아무리 우리 신앙인의 삶이 외롭다고 할지라도 선한 믿음의 삶을 살아가기기 매우 힘든 세상이 되었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노아처럼 끝까지 하나님을 섬기는 의인의 삶을 살아가야만 될 줄로 믿습니다.

4. 찬송: (344장) 이 눈에 아무 증거 아니 뵈어도

1. 이 눈에 아무 증거 아니 뵈어도 믿음만을 가지고서 늘 걸으며 이 귀에 아무소리 아니 들려도 하나님의 약속 위에 서리라
2. 이 눈에 보기에는 어떠하든지 이미 얻은 증거대로 늘 믿으며 이 맘에 의심 없이 살아갈 때에 우리 소원 주 안에서 이루리
3. 당신의 거룩함을 두고 맹세한 주 하나님 아버지는 참 미쁘다 그 귀한 모든 약속 믿는 자에게 능치 못할 무슨 일이 있을까

[후렴]
걸어 가세 믿음 위에 서서 나가세 나가세 의심 버리고 걸어 가세 믿음 위에 서서 눈과 귀에 아무 증거 없어도

5, 복음성가: 이 믿음 더욱 굳세라

1. 여기에 모인 우리 주의 은총 받은 자여라
주께서 이 자리에 함께 계심을 믿노라
언제나 주님만을 찬양하며 따라 가리니
시험을 당할 때도 함께 계심을 믿노라
이 믿음 더욱 굳세라 주가 지켜 주신다.
어둔 밤에도 주의 밝은 빛 인도하여 주신다.

2. 주님이 뜻하신 일 헤아리기 어렵더라도
주님의 뜻 안에서 내가 있음을 아노라
사랑과 말씀들이 나를 더욱 새롭게 하니
때로는 넘어져도 최후 승리를 믿노라
이 믿음 더욱 굳세라 주가 지켜 주신다.
주의 뜻 이루어질 때까지 믿음 더욱 굳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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