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
.........
출처 : |
---|
Augustinus 참회록 - 제3권 카르타고에서
7.마니교도의 불합리한 가르침
사실 나는 실재하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만일 누가 '악은 어디서 왔는가?' 라든가
'하나님은 형체를 지니고 있는가?' 라든가
'동시에 아내를 여러 명 두고 사람을 죽이고
짐승을 제물로 바치는 자들도 의인인가?
하는 따위의 질문을 받게 되면 여지없이 흔들려서
어리석은 기만자들의 의견에 동의하고 말았습니다.
그리하여 형편을 잘 모르는 나는 당황했고,
진리를 벗어나서 진리에 거스리는
행동을 한다고 믿었습니다.
당시의 나는 악이란 결국 무(無)에 이르게 될
선(善)의 타락일 뿐이라는 것을 몰랐습니다.
눈으로는 물체밖에 보지 못하고 정신으로는
환상밖에 보지 못하던 내가 어떻게
정신의 세계를 볼 수 있겠습니까?
나는 하나님은 영(靈)이며 그에겐 길이와 폭이 넓은 지체가 없을 뿐 아니라
그분의 존재는 어떤 덩어리가 아니라는 것을 몰랐습니다.
어느 한 덩어리는 전체에 비해 적고,
만약 그것이 어느 일정한 공간에 국한되어 있다면
무한 보다 못하며 영이나 하나님처럼 어디에나 계신 것이 아니라면
어떻게 그를 하나님이라고 하겠습니까?
그러나 나는 우리 안에 있는 그것의 본 모습이 무엇이며
성경 속에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어졌다' 라고
표현된 까닭을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나는 진정한 저의를 몰랐습니다.
그것은 관례에 따라 옳고 그름을 가리지 않고
전능하신 하나님의 법에 따라 가립니다.
나라마다 시대마다 서로 다른 윤리나 습속이 그것을 통해서 형성되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또한 때와 장소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모세. 다윗, 그 외에 하나님의 입을 통해서 찬양된
모든 사람들은 바로 이 법에 의해서 의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매한 자들은 법정의 방식대로 판결하고
인간 종족의 습속을 한데 묶어서 그들의 부분적인 특수한 법속(法俗)에 맞추며
그들에게 죄인이라는 판정을 내리려고 합니다.
이것은 마치 무장하려는 사람이 무엇을 어디에 입고 신어야 할지 몰라서
허둥거리는 모습과 같습니다.
그것은 또 오후에는 쉬기로 되어 있는 날에,
오전에는 팔던 상품을 오후에는 왜 팔지 않느냐고 투덜거리는 것과 같습니다.
또는 어느 가정에서 노예가 해서는 안될 일을
그 집의 노에가 손을 대어 일을 벌여 놓은 것과,
이전에 식당에서 금지되었던 일이 마굿간 뒤에서 일어난 것을 보고,
똑같은 가정이요 똑같은 식구인데 어디서는 못하고
누구에게는 허락되지 않느냐고 화를 내는 것과 같습니다.
이 시대의 의인들에게 허용되지 않는 일이
저 시대의 의인들에게는 허용되었다는 것과,
하나님께서 역사적 상황을 참작하셔서 그때 그사람들에게 주신 지시와
오늘날 우리에게 주시는 지시가 다른데도
두 가지가 모두 같은 정의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라는 말을 듣고
분노하는 사람도 그와 똑같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때그때 이유가 있어서 그때 그 사람에게는 그것을,
이때 사람에게는 이것을 명하셔도 정의에 복종하는 것은 결국 마찬가지입니다.
사실 그들은 같은 날, 같은 집, 같은 사람이라도 각자에게 맞는 일이 있으며
오랫동안 허용되었던 일이 어느 기간에는 허용되지 않게 되고
이쪽 구석에선 허용되고 명령된 일이
저쪽에서는 금지되고 처벌된다는 사실을 생각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렇다면 정의는 다양하게 변하는 것일까요?
아니,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은 정의가 지배하는 시간이 동일한 과정을 취하지 않기 때문이며
그러므로 그것을 시간이라고 합니다.
인간들은 지상에서 사는 날이 짧기 때문에 자기가 경험하지 못한
그 전의 여러시대나 다른 여러 민족의 사정을
자기가 경험한 시대나 민족의 사정과 관련시켜서 판단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 개개의 육체, 개개의 날이 가정을 문제삼는다면
그들은 별로 어렵지 않게 무엇이 적당한가를 알 수 있으며
거기서 그른 일도 여기서는 옳은 일이 됩니다.
그 당시 나는 아직 그런일을 몰랐었고
도처에서 그러한 것이 많았지만 나는 그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 무렵 나는 자주 시를 지었는데
각운을 아무데나 붙여서는 안되고 운율에 맞추어 변화시켜야 하며,
같은 시구에 있어서도 계속 같은 각운을 붙여서는 안됩니다.
그러나 시작(詩作)의 규칙이라고 할 수 있는 시학 자체는
그 근본 법칙상 유동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통일된 전체 가운데 모든 것을 동시에 내포하는 것입니다.
그래도 나는 선량하고 성스러운 사람이 따르고 있는 정의가
그것 보다 훨씬 숭고한 방법으로 명령하는 모든 것을 소유하면서
조금도 변하지 않고 변화는 여러 시간에 모든 것을 한꺼번에 취급하지 않고
그 때마다 알맞게 지시를 해주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어리석게도 경건한 조상들을,
하나님의 명령과 영감에 따라서 현재 있는 것만을 사용하고
하나님의 계시에 따라 미래를 예언한 그들을 비난하고 있었습니다.
7.마니교도의 불합리한 가르침
사실 나는 실재하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만일 누가 '악은 어디서 왔는가?' 라든가
'하나님은 형체를 지니고 있는가?' 라든가
'동시에 아내를 여러 명 두고 사람을 죽이고
짐승을 제물로 바치는 자들도 의인인가?
하는 따위의 질문을 받게 되면 여지없이 흔들려서
어리석은 기만자들의 의견에 동의하고 말았습니다.
그리하여 형편을 잘 모르는 나는 당황했고,
진리를 벗어나서 진리에 거스리는
행동을 한다고 믿었습니다.
당시의 나는 악이란 결국 무(無)에 이르게 될
선(善)의 타락일 뿐이라는 것을 몰랐습니다.
눈으로는 물체밖에 보지 못하고 정신으로는
환상밖에 보지 못하던 내가 어떻게
정신의 세계를 볼 수 있겠습니까?
나는 하나님은 영(靈)이며 그에겐 길이와 폭이 넓은 지체가 없을 뿐 아니라
그분의 존재는 어떤 덩어리가 아니라는 것을 몰랐습니다.
어느 한 덩어리는 전체에 비해 적고,
만약 그것이 어느 일정한 공간에 국한되어 있다면
무한 보다 못하며 영이나 하나님처럼 어디에나 계신 것이 아니라면
어떻게 그를 하나님이라고 하겠습니까?
그러나 나는 우리 안에 있는 그것의 본 모습이 무엇이며
성경 속에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어졌다' 라고
표현된 까닭을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나는 진정한 저의를 몰랐습니다.
그것은 관례에 따라 옳고 그름을 가리지 않고
전능하신 하나님의 법에 따라 가립니다.
나라마다 시대마다 서로 다른 윤리나 습속이 그것을 통해서 형성되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또한 때와 장소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모세. 다윗, 그 외에 하나님의 입을 통해서 찬양된
모든 사람들은 바로 이 법에 의해서 의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매한 자들은 법정의 방식대로 판결하고
인간 종족의 습속을 한데 묶어서 그들의 부분적인 특수한 법속(法俗)에 맞추며
그들에게 죄인이라는 판정을 내리려고 합니다.
이것은 마치 무장하려는 사람이 무엇을 어디에 입고 신어야 할지 몰라서
허둥거리는 모습과 같습니다.
그것은 또 오후에는 쉬기로 되어 있는 날에,
오전에는 팔던 상품을 오후에는 왜 팔지 않느냐고 투덜거리는 것과 같습니다.
또는 어느 가정에서 노예가 해서는 안될 일을
그 집의 노에가 손을 대어 일을 벌여 놓은 것과,
이전에 식당에서 금지되었던 일이 마굿간 뒤에서 일어난 것을 보고,
똑같은 가정이요 똑같은 식구인데 어디서는 못하고
누구에게는 허락되지 않느냐고 화를 내는 것과 같습니다.
이 시대의 의인들에게 허용되지 않는 일이
저 시대의 의인들에게는 허용되었다는 것과,
하나님께서 역사적 상황을 참작하셔서 그때 그사람들에게 주신 지시와
오늘날 우리에게 주시는 지시가 다른데도
두 가지가 모두 같은 정의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라는 말을 듣고
분노하는 사람도 그와 똑같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때그때 이유가 있어서 그때 그 사람에게는 그것을,
이때 사람에게는 이것을 명하셔도 정의에 복종하는 것은 결국 마찬가지입니다.
사실 그들은 같은 날, 같은 집, 같은 사람이라도 각자에게 맞는 일이 있으며
오랫동안 허용되었던 일이 어느 기간에는 허용되지 않게 되고
이쪽 구석에선 허용되고 명령된 일이
저쪽에서는 금지되고 처벌된다는 사실을 생각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렇다면 정의는 다양하게 변하는 것일까요?
아니,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은 정의가 지배하는 시간이 동일한 과정을 취하지 않기 때문이며
그러므로 그것을 시간이라고 합니다.
인간들은 지상에서 사는 날이 짧기 때문에 자기가 경험하지 못한
그 전의 여러시대나 다른 여러 민족의 사정을
자기가 경험한 시대나 민족의 사정과 관련시켜서 판단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 개개의 육체, 개개의 날이 가정을 문제삼는다면
그들은 별로 어렵지 않게 무엇이 적당한가를 알 수 있으며
거기서 그른 일도 여기서는 옳은 일이 됩니다.
그 당시 나는 아직 그런일을 몰랐었고
도처에서 그러한 것이 많았지만 나는 그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 무렵 나는 자주 시를 지었는데
각운을 아무데나 붙여서는 안되고 운율에 맞추어 변화시켜야 하며,
같은 시구에 있어서도 계속 같은 각운을 붙여서는 안됩니다.
그러나 시작(詩作)의 규칙이라고 할 수 있는 시학 자체는
그 근본 법칙상 유동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통일된 전체 가운데 모든 것을 동시에 내포하는 것입니다.
그래도 나는 선량하고 성스러운 사람이 따르고 있는 정의가
그것 보다 훨씬 숭고한 방법으로 명령하는 모든 것을 소유하면서
조금도 변하지 않고 변화는 여러 시간에 모든 것을 한꺼번에 취급하지 않고
그 때마다 알맞게 지시를 해주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어리석게도 경건한 조상들을,
하나님의 명령과 영감에 따라서 현재 있는 것만을 사용하고
하나님의 계시에 따라 미래를 예언한 그들을 비난하고 있었습니다.
|
혹 글을 퍼오실 때는 경로 (url)까지 함께 퍼와서 올려 주세요 |
자료를 올릴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 주세요. 이단 자료는 통보 없이 즉시 삭제합니다. |
최신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