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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순절날이 이미 이르매

사도행전 조용기............... 조회 수 2171 추천 수 0 2009.05.01 22:0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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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행2:1-4 
설교자 : 조용기 목사 
참고 : 2004년 5월 30일 주일3부설교 
 
 “오순절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 같이 한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불의 혀 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 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서론]

오늘은 성령강림주일입니다.
‘오순절날이 이미 이르매’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구약때에 오순절날은 두가지 의미가 있는 행사였습니다. 첫 번째는 이스라엘 백성이 유월절을 지내고 애굽에서 탈출하여 시내산에서 모세가 하나님께 율법을 받은 것을 기념하는 날로 오순절날을 지냈었습니다. 두 번째는 통상 유월절로 50일째 풍성한 수확으로 복주신 것을 감사하여 밀추수의 첫열매로 빵 두덩어리를 만들어서 염소새끼 한 마리와 함께 하나님께 흔들어서 예물을 드리는 제사가 바로 오순절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유월절 양잡는 날에 십자가에서 우리구원의 어린양으로 죽으시고 부활하신 50일만에 오순절에 하나님께서 성령을 부어 주시고 마가요한의 다락방에서 첫교회가 탄생한 것입니다. 이는 비유컨데 신약에서 율법대신에 성령을 주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말미암아 처음익은 열매인 교회가 시작되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오순절날에 강한 바람같이 성령이 임하셨다고 했는데

[본론]
1.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이 임하신 성령님

첫째로, 이강한 바람같이 임하신 성령님이 누구신지 우리가 알아야 됩니다.
바람은 하나님의 영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아담을 지으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 넣으시니 생령이 된지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창세기 2장 7절에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생기는 히브리어로 ‘내 샤마로’ 하나님의 숨 혹은 하나님의 호흡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숨 즉 호흡을 아담과 하와를 만드시고 난 다음 ‘훅’하고 불어 넣으시니아담과 하와가 생령이 되어서 살아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호흡이나 숨은 바로 하나님의 영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또한 에스겔 골짜기에 마른 뼈다귀가 살아난 장면을 보십시오.
에스겔 37장 5절에 “주 여호와께서 이 뼈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생기로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리라”
여기에 있는 생기는 히브리어로 ‘루아흐’라고 하는데 이는 숨, 호흡, 바람, 영등을 떠난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마른 뼈다귀에 하나님의 숨을 내어 뿜었다. 하나님의 생기를 불었다. 그러니까 그 뼈다귀가 모두다 살아나서 대군대가 되었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부활하신 후 예수님께서 제자들이 모인곳에 나타나셔서 숨을 내어 쉬시며 성령을 받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숨을 내쉬고 성령을 받으라. 예수님의 숨이 즉 하나님의 영, 성령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님은 하나님의 숨이요, 하나님의 입바람인 것입니다. 오순절날에 강한 하나님의 입바람, 숨 즉, 성령이 임하신 것입니다. 강한 바람이 불었다는 것은 하나님의 성령이 강하게 역사하신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침체하고 오염된 썩은 공기를 몰아내고 신선한 생명과 깨끗한 공기를 얻기 위해서는 깨끗하고 신선한 강한 바람이 불어와야 분위기를 변화시킬수 있습니다. 옛날에 우리가 가난할때에 집집마다 연탄을 피웠지 않습니까? 많든지 적든지 연탄가스가 조금씩은 세어서 방안에 공기가 탁합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창문을 활짝 열어놓고 방문을 활짝 열어 놓으면 바깥에 신선한 공기가 와서 탁한 오염된 공기를 다 불어내고 방안의 공기를 신선하게 했던 것을 우리는 느끼고 체험하곤 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공기가 탁한곳이 멕시코시입니다. 멕시코시는 화산의 분지밑에 세운 도시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분지가 되어 있으므로 모든 자동차 배기가스나 오염된 가스가 꽉 들어차 있어요. 저도 멕시코시에 여러분 가서 대집회를 인도했는데 정말 숨이 막힐 지경입니다. 눈이 따가워서 눈을 뜰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한번씩 불어오는 큰 바람, 태풍이 오면 바람이 오염된 공기를 다 씻어내고 신선하고 깨끗해서 도시가 살게끔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오늘날 서울도 그렇지 않습니까? 스모그 현상 때문에 공기가 뿌옇게 되어 마치 안개낀 것 같습니다. 이 오염된 공기를 몰아내기 위해서 바람이 불어오면 한번씩 태풍이 불어오면 서울 하늘이 그렇게 맑을수가 없잖아요. 우리 나라에서 강릉의 공기가 가장 좋은데 이는 바람 때문입니다. 대관령으로부터 거센 바람이 불어 내려서 강릉에 모여있던 모든 오염된 공기를 몰아내고 맑고 신선한 공기로 채워야 되기 때문에 강릉에 사는 사람들이 제일 장수한다고 말합니다. 바람이 이와같이 새로움을 가져다 줍니다. 성령도 바람과 같습니다. 성령의 강한 바람이 세상에 꽉들어찬 오염을 침체된 공기를 몰아내고 깨끗하고 신선한 공기와 분위기로 변하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이 세상은 마귀와 귀신들로 오염된 세상입니다. 이 세상의 신, 더러운 귀신, 악한 귀신, 거짓말 귀신, 연약의 귀신, 질병의 귀신등으로 오염된 환경을 맑히기 위해서는 성령의 강한 바람이 불어 와야 되는 것입니다. 귀신의 오염된 바람이 꽉들어차서 우리를 부패하고 더럽고 세속적으로 만드는 것을 깨끗하고 정결하고 거룩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성령의 맑은 바람이 강하게 불어와야만 되는 것입니다. 성령바람이 불어오면 이 오염된 모든 귀신바람을 다 쫓아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제가 한때 프랑스의 스트라스부르그에서 대성회를 인도할때에 화란에서 한 청년이 와서 저에게 신앙상담을 요청했습니다. 그 청년은 제 발앞에 무릎을 꿇고 제 손을 잡고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말했습니다. “목사님 저를 도와 주십시오. 저는 제 자신을 주체할 수가 없습니다. 제 속에 있는 악의 힘에 사로잡혀 숱한 나날을 고통속에 살았습니다. 감옥에도 수차례 갔다왔고, 집안식구들과도 수없이 싸웠습니다. 저는 도둑질을 일삼고 사람을 때리고 기물을 파괴하며 음란하고 방탕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데 아무리 그렇게 안하려고 해도 작심사흘로 곧장 그 죄악에 말려 들어가고 맙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안됩니다. 목사님 저를 좀 살려 주십시오.” 그래서 제가 그 청년에게 말했습니다. “당신이 그 악에 끌려가는 것은 악한 영이 속에 있기 때문이다. 힘으로도 능으로도 되지 않지 않느냐, 이 악한 영을 쫓아낼수 있는 유일한 길은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는 길밖에 없다. 예수님이 보혈로 당신을 청소해 주면 예수님의 영인 성령이 마음속에 들어오게 되면 악한 생각이 사라지고 악한 정욕이 사라지고 당신이 변화받을수 있지. 당신의 힘과 능으로는 안된다. 타율적으로 하나님의 능력이 와야 된다. 지금도 당신은 악한 마귀의 영에 잡혀서 악한 생각을 하고 악한 행동을 하는데 이 악한 영을 몰아내고 하나님의 성령이 들어오시면 변화될수 있으니 이 집회 동안에 예수를 믿고 성령을 받으라”고 했습니다. 그는 집회 동안에 많이 회개하고 부르짖어 성령을 받고 난 다음 성회 마지막날 대중앞에 나와서 이런 간증을 했습니다. “여기 올때까지만해도 제 마음은 악한 생각으로 가득차 있었는데 지금은 악의 세력에서 완전히 해방되었습니다. 지금 제 마음속에는 성령께서 와 계십니다. 얼마나 기쁘고 평안하고 상쾌한지 말로다할 수가 없습니다. 오랜 세월동안 마귀의 탁하고 오염된 분위기 속에서 살았던 그가 용서와 의를 얻고 성령이 신선한 생기로 채워 주시니 기쁨과 평안과 즐거움이 말로 다 할 수가 없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겉으로 보기에는 눈부신 과학문명을 이루어 놓았지만 실상 마음속은 시궁창 같습니다. 시기, 분노, 질투, 교만, 탐욕, 공포, 불안, 절망, 좌절, 미움, 음란등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이런 오염된 마음을 어떻게 맑힐수가 았겠습니까? 성령 바람이 불어오면 변화되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마음에서부터 이 더러운것들이 사라지고 믿음, 소망, 사랑, 의, 평강, 희락이 가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운명과 환경을 변화시킬수 있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씻고 성령바람이 우리속에 불어와야만 되는 것입니다. 성령임재만이 믿음, 소망, 사랑, 평강을 가져오고 마음에 기쁨이 충만하게 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14장 17절에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로마서 15장 13절에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케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성령이 오시면 소망이 넘치게 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7장 38절에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고 말씀한 것입니다.
1904년 전후하여 웨일스와 아일랜드에 굉장한 성령부흥이 일어났습니다. 수만명의 사람들이 회개하고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로 이 웨일스나 아일랜드의 술집, 도박장, 극장, 당구장이 다 문을 닫고 각종 사회악이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급기야 감옥까지 텅텅비어 경찰관이 할 일이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북아일랜드의 조선소 직공들은 부흥회를 통해 성령의 역사를 체험했습니다. 그러자 죄를 공개적으로 회개하는 일들이 벌어졌습니다. 그 결과 훔쳐갔던 물건을 반환을 했는데 너무 많이 반환을 하기 때문에 회사에서 훔친 물건 돌아온 것을 수용하기 위해서 큰 창고를 지어야만 했습니다. 탄광지대에서는 광부들 사이에 자주 일어났던 다툼이 사라졌습니다. 석탄을 나르는 당나귀까지도 성령의 은혜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왜냐, 성령역사로 이제는 탄광의 광부들이 당나귀를 때리고 발로 찼는데 성령받은 광부들은 당나귀를 쓰다듬어 주고 사랑해 주고, 발길로 안찼으니까 당나귀조차 성령의 은혜를 받았다고 했습니다.
미국 플로리다주의 팬사콜라에는 해군비행장이 있습니다. 그래서 군인들이 많이 왕래하였고 그들을 상대로한 매춘없이 성행하였습니다. 이 지역은 동성연애와 마약중독과 주술로 인해 죄악이 만연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1995년 브라운스빌 하나님의 성회 교회가 이 지역에 들어와 성령의 놀라운 부흥의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브라운스빌 교회 아침부터 저녁까지 들어와서 예배를 드리고 줄을 서서 있었습니다. 온도시가 성령으로 변화를 받게 된것입니다. 그결과 많은 범죄자들이 회개하고 그리스도께로 돌아왔습니다. 또 술주정뱅이들과 마약중독자들로 분비던 거리가 변화되기 시작했습니다.
1996년 플로리다주 전체의 청소년 범죄율이 1% 증가하는 하면 이 브라운스빌은 오히려 13%나 떨어졌습니다. 성령부흥이 시작된지 6개월만에 전체 범죄율은 브라운스빌에서 17%나 줄어든 것입니다. 범죄의 탁한 공기가 신선한 성령의 맑은 공기로 바꾸어졌기 때문인 것입니다. 여러분 태풍이 불어와서 바다가 뒤끊는 것을 보았을 겁입니다. 파도가 치고, 바다가 뒤엎어 집니다. 배들이 파선을 당하고 고난을 겪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런 태풍이 싫어합니다. 그러나 자연은 이 태풍을 가져와야만 바다에 생기를 불어 넣을수 있는 것을 알기 때문에 태풍이 불어오는 것입니다. 태풍으로 바닷물이 정화됩니다. 지구에서 끊임없이 오염된 물이 강을 통해서 바다에 들어오니 바닷물이 썩습니다. 그러나 태풍으로 물이 막 뒤엎어지고 흔들리므로 그 썩어져 가는 물이 전부 맑게 정화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태풍을 통해서 공기중에 산소가 바닷물속에 녹아 들어가기 때문에 생선과 조개와 해초가 살고 식물들이 살아갈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거대한 폭풍우가 불어닥쳐 바람이 바다를 뒤엎어 놓으면 종국적으로 바다에 생명을 주고 부패를 방지하는 정화기능을 하여 참으로 유익한 일이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성령의 바람이 한번 우리에게 불어 닥치면 우리가 정화되고 하나님의 생명으로 충만하게 되는 것입니다. 힘으로도 능으로도 안되지만 성령바람이 불어오면 성령바람으로 말미암아 모든 귀신바람 다 물러가고 모든 오염은 사라지고 생기로 충만하고 신선함으로 충만하고 건강으로 충만한 심신이 되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2. 불의 혀같이 임하신 성령님
둘째로, 오순절날에 성령은 불의 혀같이 임했다고 말한 것입니다.
불의 혀같이 임했다. 불은 어두움을 밝힙니다. 성령께서는 어두운 인간의 마음속에 빛되신 예수님을 나타내십니다.
요한복음 1장 4절에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고 말했습니다.
요한복음 8장 12절에 “예수께서 또 일러 가라사대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성령께서 빛대신 예수님을 우리에게 모셔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 마음속에 들어오므로 우리 어두운 마음이 밝아지는 것입니다. 어떠한 청년이 제게 와서 이런 질문을 했어요. “목사님! 예수님과 마귀와의 거리가 얼마나 멉니까? 예수님이 우리에게 오는데 거리, 시간이 얼마나 걸리며 마귀가 우리에게서 나가는데 시간이 얼마나 걸립니까?” 그래서 “여보시오. 예수님과 성령엔 시간과 공간의 차이가 없습니다. 예수님이 오는데도 시간과 공간의 차이가 없고 마귀가 떠나가는데도 시간과 공간의 차이가 없습니다. 예를 들어 말하면 방안에 들어가서 캄캄한데 스위치를 올려 빛이 오면 순식간에 환해지고 어두움은 어디 갔습니까? 온데간데없이 사라지지 않습니까? 그러나 불을 탁 끄면 순식간에 어두움이 방에 꽉들어 찹니다. 빛은 예수님이고 예수님이 오시자마자 마귀는 사라져 버립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떠나가자 마자 마귀는 들어오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마귀 사이에 거리가 없습니다. 시간적 차별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항상 예수님을 모시고 살면 마귀는 떠나가 버리고 예수님이 떠나가면 순식간에 마귀가 들어가서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일을 한다고 제가 말을 해주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밝은 빛 가운데서 살아가려면 언제나 빛되신 예수님을 모셔야 되는데 예수님이 우리속에 들어오시는 것은 성령을 통해서 들어오시는 것입니다. 성령님을 항상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들이고 의지하면 성령이 빛되신 예수님을 우리 마음속에 모셔 들이고 예수님이 계신 이상 마귀의 어두움은 떠나가고 사망의 세력은 물러가는 것입니다.
또한 성령이 불같이 임했다는 것은 불은 더러운 것을 태웁니다. 성령께서는 육체의 소욕을 태우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 아담과 하와의 혈통을 통해서 태어난 이상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은 모두다 부패한 사람들입니다. 심성이 부패해서 사람의 수양과 도덕으로는 고칠수가 없습니다. 구원받고 나도 육체의 부패한 소욕이 늘 우리에게 있어서 우리의 신앙을 대적하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5장 19절로 21절에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라고 말한 것입니다.
제가 미국 선교 여행중에 어느 성도님댁에 저녁식사를 초대받아 갔는데 그곳에 같이 참여한 교포한분이 제게 이런 말을 해요. “목사님! 나는 예수믿기 전에는요 내 육신이 원하는데로 육신의 정욕을 따라 살았는데 마음이 편안했어요. 죄지어도 편안하고 방탕해도 편안했어요. 그런데 예수를 믿고 난 다음부터 시작해서 내 마음에 평안이 사라졌어요. 육신의 소욕대로 살고나면은 양심에 가책이 오고 고통스러워 잠을 잘수 없고 늘 회개해야 되고 예수믿고 마음이 편안하다고 하더니 마음이 더 괴로워졌어요.” 그래서 “그 이유가 있습니다. 당신이 구원받았기 때문에 마음이 괴로워진 것입니다. 구원받기 전에는 마귀가 점령하여 탐욕을 따라 살아도 아무 가책이 없었지만 이제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씻고 성령이 성전삼고 들어와 있으니 성령이 마귀의 소욕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육신의 소욕을 성령이 거역하고 성령은 불길로써 태웁니다. 양심의 가책을 통해서 태우니까 괴롭지요. 그러므로 모든 예수믿는 사람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마음속에 갈등과 고통을 가지고 있고 갈등과 고통을 가지고 있다는 그 자체가 구원을 받고 성령이 와 있다는 증거니 오히려 기뻐하고 즐거워 하십시오.” 제가 그렇게 말했습니다. 사실이에요. 여러분 예수 믿는 사람 믿기 전에는 세상에 취하여 술취하고 방탕하고 음란하고 세속을 따라 살아도 마음에 가딱 없었어요. 자기 타당화하고 살았어요. 그러나 예수를 믿고 난 다음 성령이 들어오시면 사태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성령은 육신의 소욕을 불태웁니다. 정욕을 불태웁니다. 성령이 오면은 양심의 가책이 불타는 것 같습니다. 죄를 짓고 편안하지 않습니다. 잠이 오지 않습니다. 회개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 통회하고 자복해야 마음에 평안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 성령이 오시면 우리의 속에 있는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 세상 자랑을 불태우는 것입니다. 우리가 더욱 하나님 안에서 평안을 구하려면 우리의 모든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 세상 자랑을 성령님께 내어 놓고 성령님이 불태어 주기를 원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 집안에 쓰레기가 가득 차 있으면 온갖 파리들이 다가오고 냄새가 납니다. 어떻게 합니까? 쓰레기를 태워 버리면 파리도 안오고 냄새도 나지 않습니다. 우리속에 육신의 정욕, 탐욕과 욕심이 있으니까 마귀도 다가오고 온갖 부정, 부패로 썩은 냄새가 나지만 우리가 성령께 의지해서 다 불태워 버리면 깨끗해 집니다. 하나님의 성령은 태우는 불인 것입니다. 우리에게 와서 우리의 정욕과 탐욕을 불태워 주시고 더러움을 청소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항상 성령님께 나의 모든 탐심과 욕심과 정욕을 불태워 달라고 기도하면 성령께서 이를 불태워 주시고 우리를 정결케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에 성령은 불로만 임하는게 아니라 불의 혀로 임했다고 한것입니다. 혀는 말하는 것 아닙니까? 성령께서 불의 혀로 임했다는 것은 우리가 성령의 불을 받으면 불같은 증인이 된다는 것입니다. 혀가 불이 붙어서 열심히 전도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1장 8절에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제가 신학교 다닐 때 우리 동창생중에 수원에서 온 자매님이 한분 있었는데 굉장히 수줍음을 많이 타고 사람들 앞에서 얼굴을 들지 못해요. 이름을 물어도 이름을 대답 못해요. 그런데 제가 놀란 것은 파고다 공원에 전도하러 갈때는 꼭 따라 나오는데 그 대중들 앞에서 설교 하라고 하면 기도하고 난 다음 일어나서 얼마나 유창하게 능력있게 얼굴이 홍당무가 되어서 전도를 하는지 감탄을 했습니다. “야~ 저사람 어떻게 저렇게 변화 되었느냐” 그러나 설교하고 내려오면 또 수줍어해서 얼굴을 못듭니다. 성령은 불의 혀입니다. 성령이 오면 혀가 불같이 뜨거워지는 것입니다. 불같이 뜨거워지니 말안하고 견딜수가 있어요? 왜 성령받은 교회, 성령받은 성도들이 열심히 전도하고 교회가 확장하고 자랍니까? 모두다 혀에 불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앉으나 서나 집에나 시장터에서나 계속 전도하거든. 그러므로 성령충만한 교회 성령받은 성도들을 통해서 하늘나라가 확장되고 교회가 성장하는 것입니다.
감리교의 창설자 요한 웨슬레는 원래 미국 선교사로 떠났으나 선교에 실패해서 영국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그가 탄배가 테스강 한 가운데서 풍랑을 만나 거의 침몰할 위기에 처할 때 요한 웨슬레는 겁이나 죽을지경입니다. 그는 선교까지 갔다가 돌아오면서도 아직 중생의 체험을 못했습니다. 극도로 공포에 처했는데 같이 배를 타고 돌아오는 모라비안 선교사와 그 가족들은 그 풍랑가운데 찬송을 부르고 기도를 하고 박수를 치고 기뻐합니다. “도대체 저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 저렇게 되었을까?” 굉장히 마음에 충격을 느꼈습니다. 요행으로 배가 파산하지 않고 영국에 돌아오고 난 다음에 별 할 일이 없으니까 이럭저럭 시간을 보내다가 하루는 그가 런던의 올드 스케이트라는 곳에서 조그만한 기도모임이 있어 참석했는데 그곳에서 루터의 로마서 강해 서론을 읽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죄를 용서받고 의롭게 함을 받는다는 그 말씀을 듣다가 갑자기 마음이 뜨거워지면서 성령의 불이 요한 웨슬레 속에 임했습니다. 요한 웨슬레 속에 하늘이 성령의 불로 임하여지자 기쁨이 넘치고 소망이 넘치고 두려움이 다 사라졌습니다. 그는 즉시로 느꼈습니다. “아~ 그 파산할 배에 탔던 모라비안 성도들이 그 위기에서도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찬송을 부른 것은 성령을 받아서 그렇구나” 그래서 요한 웨슬레는 그날 이후에 온 영국에 돌아 다니면서 목숨을 바치고 위대한 믿음을 가지고 전도해서 영국을 변화시켰습니다. 그는 후년에 말하기를 “내가 평생에 복음을 전한 것은 항상 내 마음속에 성령의 설레이는 불길이 있어서 그 성령의 설레이는 불길 때문에 쉬지 않고 전도할 수 있었다.”고 말한 것입니다. 오늘날 성령이 임하시면 여러분 마음속에 설레이는 불길이 되는 것입니다. 성령의 불이 혀처럼 설레이기 때문에 우리가 가만히 있을수가 없습니다. 혀에 불이 붙었으니 어떻게 가만히 있겠습니까? 앉으나 서나 예수 그리스도는 구주라고 전도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것입니다.

3. 충만하게 임하신 성령님
셋째로, 여기에 마가 요한 다락방에 모인 사람들이 모두다 성령으로 충만했다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성령은 우리와 함께 거하시고 우리 안에 들어오시고 또 우리 위에 임하시면 충만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와 함께 거하시는 성령은 우리에게 감화와 감동과 변화를 가져오고 끊임없이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께로 성령님이 이끌어 주시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장 26절에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성령의 감화 강동이 늘 있어야 우리가 죄악의 수렁에 빠지지 않고 이 세상에 살아갈 수 있어요. 한 노인수도사가 젊은 사업가에게 말했습니다. “물고기가 마른땅에서 죽듯이 자네도 세상에 뒤엉키면 파멸하게 되네. 물고기는 물로 돌아가야 되고 자네는 성령께로 돌아가야 해” 그 사업가는 아연질색하면서 말했습니다. “그러면 제가 사업을 그만두고 수도원으로 돌아가란 말입니까?” 그 노인은 다시 말했습니다. “분명히 그런 것은 아니야. 내가 하는말은 사업은 그대로 붙들고 있어도 언제나 함께 계시는 성령님을 의식하고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들이고 의지하고 있으면 성령이 언제나 너를 세속에 빠지지 않게 만들어 준다.”고 말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성령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신령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입니다. 항상 하나님 생각하고 예수님을 섬기도록 성령은 우리 마음속에 감화와 감동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성령이 우리 마음속에 들어와 계시면서 우리를 거듭나게 하고 내적 변화를 가져오고 영적생명을 주며 열매를 맺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5장 22절로 23절에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라고 했는데 사람의 열매 아닙니다. 성령의 열매입니다. 우리가 애쓰고 힘쓴다고 맺어지는 것이 아니라 성령이 오시면 우리속에서 이런 열매를 맺도록 인도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저는 고재봉에 대한 이야기를 읽어 보았습니다. 한때 우리 한국사회를 뒤흔들어 놓았던 어마어마한 흉악범 사형수 고재봉입니다. 그는 이웃집 라디오를 훔쳤는데 이웃집에서 그것을 고발해서 잡혀 들어가 감옥살이를 하고 원한을 품고 나와서 도끼로 이웃집 사람을 부부, 어린아이 다 몰살시켰습니다. 그 결과로 체포되어 재판을 받고 사형언도를 받고 사형수가 되어 감옥에 갇혔는데 너무나 포악해서 그 사람 근처에 갈수가 없습니다. 간수들도 근처에 못갑니다. 한번은 교도소장이 고재봉이 어떻게 있는지 보려고 창살사이로 얼굴을 들였다가 고재봉이가 손살같이 일어나서 손가락으로 눈을 찔러가지고서 쓰러진적도 있습니다. 이와같이 흉악한 고재봉이가 되어서 아무도 그 근처에 가려고 하지 않았는데 어떠한 예수 믿는 사람이 고재봉이를 방문해서 성경책 한권을 주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도 당신처럼 죽을 수밖에 없었던 죄인이었으나 이 성경을 읽고 구원을 얻었습니다. 그러니 당신도 성경을 한번 읽어 보십시오.” 고재봉이가 별 도리도 없고 독방에 혼자있으니까 성경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또 읽고, 또 읽다가 성령의 감동을 받아 눈물을 흘리고 회개하고 예수님을 구주로 모시고 보혈로 씻었습니다. 혼자서 기도하다가 성령충만함을 받았습니다. 성령이 충만해지자 고재봉이가 변화되었는데 그 표정이며 행동 그 모든 것이 부드러워지고 사랑이 넘치게 되었습니다. 가장 포악했던 사형수 고재봉이 가장 온유한 사람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이처럼 큰 인격적인 변화를 가져오니 소문이 온 교도소에 꽉들어찼는데도 자나깨나 예수믿고 구원받으라고 전도를 했습니다. 그래서 형무소에 있던 재소자 2천명중에 1,800명이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게 된것입니다. 온 형무소가 교회가 되어 버리고 만것입니다. 흉악범, 살인범이 회개하고 성령받자 성령의 열매로 이렇게 사랑이 충만하고 온유하고 은혜로운 사람으로 변화된 것입니다. 사형이 집행되기 전에 마지막 기도를 드리는 목사님이 목이 메어 기도를 끝맺지 못하자 그는 기도를 이어 받아 이렇게 마무리 지었습니다. “사랑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저를 구원하신 하나님! 감옥에 있는 모든 영혼들을 구원해 주시고 군장교는 장교가 되기전에 먼저 크리스챤이 되게 해주시며, 저를 사형집행하는 사수도 저를 주님께 보내기 위하여 총을 쏘는 것이니 용서해 주옵소서. 제가 세상에서 지은죄를 용서받고 주님을 뵙게 되었으니 감사 찬송드립니다.” 마지막으로 그는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한 후에 하늘가는 밝은길이 내 앞에 있으니하고 찬송을 부르면서 총살형을 당했습니다. 복수심에 불탄 한 가족을 몰살시켰던 흉악범이 예수를 영접하고 성령을 받고 난 다음에 천사와 같이 변화된 것입니다. 사람의 힘으로는 속사람을 변화시킬수 없습니다. 오직 성령만이 속사람을 변화시켜 영적 생명을 누리고 열매를 맺게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과 제가 거룩하고 참되고 의롭게 되기 위해서는 성령충만해야 되는 것입니다. 성령이 오셔야 우리로 하여금 천사처럼 변화받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이 우리에게 임하셔서 충만해 지면 은사와 직분이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2장 7절로 11절에 “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남을 주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어떤이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이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다른이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이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어떤이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이에게는 예언함을, 어떤이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이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이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시느니라”라고 말한 것입니다.
여러분 성령충만 받고 나면 여러분 방언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각종 은사가 나타납니다. 묵시의 은사로써 지혜의 말씀의 은사, 지식의 말씀은사, 영분별의 은사가 나타나고, 발설의 은사로써는 방언, 방언통역, 예언의 은사가 나타나고 그리고 기적의 은사로써는 믿음의 은사, 병고치는 은사, 능력의 은사가 나타나잖아요. 이러한 은사들을 주님께서 주셔서 성령으로 능력있게 복음을 전하게 합니다.
또 성령이 우리에게 오시면 직분을 주셔요.
로마서 12장 6절로 8절에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혹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섬기는 직분도 주시고 “혹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 열심히 교회학교를 가르치고 지역장, 구역장으로 가르치는 은사도 주시고 “혹 권위하는 자면 권위하는 일로” 남을 위로하는 이러한 역할도 하나님이 은사로 주시고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가난한 사람을 구제하는 일도 성령의 은사로 주시는 것입니다.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교회의 여러 가지 행정을 하는것도 은사로 주시고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 남을 불쌍히 여기고 도와주는 것도 성령의 은사로 주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성령께서 오셔서 우리에게 성령의 은사, 직분을 주셔서 성령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고 성도를 섬기고 교회를 받들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다른 방언으로 말하게 하신 성령님
넷째로, 마가 요한의 다락방에 모인 사람들이 모두다 바람같이 불같이 성령을 체험하고 성령충만을 하고 난 다음에는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실제적으로 우리가 성령받으면 방언이 나옵니다.
고린도전서 14장 18절에 “내가 너희 모든 사람보다 방언을 더 말하므로 하나님께 감사하노라”고 말했으며 고린도전서 14장 49절에 “그런즉 내 형제들아 예언하기를 사모하며 방언 말하기를 금하지 말라”고 했으며
고린도전서 14장 2절에 “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나니 이는 알아 듣는 자가 없고 그 영으로 비밀을 말함이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사람들이 제게 많이 묻습니다. “왜 알아듣지 못하는 방언을 하느냐”고요. 저는 방언 기도를 많이 합니다. 아는 말로 기도는 일정시간에 하고 나면 할말이 없습니다. 그저 할렐루야 할렐우야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말밖에 할 일이 없습니다. 그러나 방언을 하면 몇시간이고 기도할 수 있습니다. 방언은 성령이 우리 영으로 더불어 하나님께 기도하게 만드는 기도의 은사인 것입니다. 방언기도는 우리의 기도를 풍부하게 합니다. 성경은 말하기를 “방언을 말하는 자는 개인의 덕을 세운다.” 개인에게 신앙의 덕이라는 것은 신앙을 깊이 있게 하고 자라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설교하기 전에 방언으로 기도를 많이 하면 영생이 깊어지고 능력이 개발딥니다. 여러분 지역장, 구역장 여러분께서 지역이나 구역을 인도하러 가실 때 방언으로 기도를 많이 하고 가면은 생각지 않은 영성이 개발되고 영력이 생기고 능력과 기름부음이 생기는 것을 느낄수가 있는 것입니다. 방언은 기도의 은사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아는말로 기도하고 방언으로 기도하고 아는말로 찬송하고 방언으로 찬송하면 우리의 영성이 굉장히 깊이 개발되고 은혜를 남치게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적으로 방언으로써 전도한일도 있어요. 내가 일본에 전도하러 갔는데 일본여자 성도 한분이 제게 이런 간증을 했습니다. 자기 집안에는 자기가 혼자 예수 믿고 성령받고 방언을 하는데 방언이 하두 잘나와서 “혹시 내가 지어서 하는 것 아닐까?”라는 의심이 생길정도 였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동생에게 전도해도 동생이 예수를 안믿는데 동생은 이태리로 건나가서 사업을 하고 살았다는 것입니다. 하루 사업수당 이태리로 전화를 걸었어요. 동생이 누눔이십니까? 하는데 그만 입에서 방언이 나와서 미쳐 중지하기 전에 방언을 잘 말하세요. 그러니까 동생이 “예 누님 뭐라구요?” "아이고 미안하다 나는 늘 방언으로 기도하니까 기도를 들자마자 나도 모르는 사이에 방언이 나왔네. 없는 것으로 하자. 그리고 하니까 누님이 지금 방언으로 말한 것이 무슨 말인지 압니까? 분명히 이태리말로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피흘려 죽었다가 부활하셔서 우리 모든 죄를 사했으니 더도 예수믿고 구원받으라.“ 그렇게 말을 했습니다. 그 누님은 이태리어 한말도 모릅니다. 오랜세월동안 동생이 구원받기 위해서 기도했으니까 그날 전화를 통해서 하나님의 성령이 직접 전도를 해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그 동생이 그 말을 듣고 회개하고 예수를 믿게 되었다는 간증을 제게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도 필요하면 하나님이 직접 방언을 통해서 전도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에 방언을 말한다는 것은 비유적으로 우리가 해석할수 있습니다. 우리가 외국에 이민가면 그 나라 방언을 배워야 됩니다. 미국에 건너가면 미국 방언인 영어를 배워야 되고, 일본에 건너가면 일본방언인 일본어를 배워야 됩니다. 방언이란 외국말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천국 백성이 되었으면 천국방언을 배워야죠. 예수믿고 구원받은 사람이 세상말만 하고 다니면 안되는 일입니다. 하늘나라말을 해야합니다. 하늘나라 말을 어떻게 합니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로 말미암아 용서받은 의인이 되고 영광을 받았습니다. 나는 용서받고 의롭게 되고 영광을 얻었다고 말하는 사람은 하늘나라 말을 하는 사람인 것입니다. 나는 예수님의 보혈로 거룩함을 얻고 성령받았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채찍에 맞으신 공로로 병고침 받고 건강을 얻었다. 그것 하늘나라 말입니다. 나는 예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저주에서 해방되고 아브라함의 복과 형통을 받았다. 그것 하늘나라 말이에요. 나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부활과 영생과 천국을 얻은 사람이다. 하늘나라 말입니다. 우리가 우리 정체성을 분명히 하늘나라 말로 늘 말해야 됩니다. 우리 새로운 신분도 증거하는 것은 하늘나라 말입니다. 나는 택한 백성이다. 나는 왕같은 제사장이 되었다. 나는 거룩한 나라요,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이다. 하늘나라 말입니다. 아담과 하와속에 삼대재앙을 받아 영혼도 죽고 저주받고 육신도 병들고 죽었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로 영혼이 잘되고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게 되었다. 하늘나라 말입니다. 세상 그런말 없어요. 나는 나의 인간의 수단과 방법으로 살지 않고 주를 믿음으로 은혜로 산다. 하나님이 내 짐을 짊어져 주시고 하나님이 내 일을 해주시기 때문에 하나님을 믿고 은혜로 나는 산다.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매일매일같이 모든일을 이기고 극복하고 승리하며 산다. 이것 하늘나라 말인 것입니다. 이런말은 세상 사람이 못알아 들어요. 무슨말인지. 그러나 예수믿는 사람은 다 알아 듣습니다. 하늘나라 말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우리가 다 하늘나라 방언을 말할줄 알아야만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혀가 온몸을 다스리기 때문에. 여러분이 무슨말을 하는가 그것이 여러분의 몸과 생활을 다스립니다.
야고보서 3장 2절로 5절에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 우리가 말을 순종케 하려고 그 입에 재갈 먹여 온 몸을 어거하며 또 배를 보라 그렇게 크고 광풍에 밀려가는 것들을 지극히 작은 키로 사공의 뜻대로 운전하나니 이와 같이 혀도 작은 지체로되 큰 것을 자랑하도다 보라 어떻게 작은 불이 어떻게 많은 나무를 태우는가”
어마어마한 말씀 아닙니까? 적은 새치혀가 온몸을 다스린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난폭하게 뛰어가는 말도 입에 재갈하나 물려 놓으면 마음대로 좌우로 조종할수 있어요. 큰 배가 좌우로 방향을 트는 것은 눈에 안보이는 물밑에 있는 키로써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냥불 조그마한 것이 온 도시를 태우지 않습니까? 혀는 바로 그와 같다는 것입니다. 우리 지체중에 굉장히 적지만은 우리의 운명과 환경을 좌우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잠언서 18장 21절에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으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령이 임하시면 제일먼저 우리 혀를 사로 잡아서 다른 방언으로 말하게 하는 것입니다. 혀를 사로잡아야 온몸을 사로잡고 그 운명의 키를 사로잡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받고 우리가 은혜를 받았으면 성령이 우리 혀를 사로잡아서 부정적인 말대신에 긍정적인 말을 하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무능력이 말이 아닌 능력의 말을 하고 미움의 말이 아닌 사랑의 말을 하고 파괴적인 말이 아닌 창조적인 말을 하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성령충만 받으면 우리 가정과 생활과 사회에 성령이 주시는 새로운 말로 충만해야만 되는 것입니다. 성령이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씀할 때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속에 살아갈수가 있는 것입니다.
나는 이런 이야기 들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시험적으로 자기의 배란다에 화분 두 개를 갖다 놓았는데 똑같은 꽃을 심고 똑같이 물을 주면서 한쪽 화분에는 “너 이쁘다. 귀엽다. 아름답다. 좋다.” 그리고 다른 화분은 보고 욕을 했습니다. “보기도 싫고, 꼴 사납고, 못되게 생겼다.” 얼마 안있으니까 이쁘다고 한 화분에는 웃으면서 꽃이 피었는데 욕을 한 화분은 시들어 죽어 버렸어요. 실제로 일어난 일인 것입니다. 여러분 피조물도 일반 동식물도 사랑하면 생기가 넘쳐나고 미워하면 죽습니다. 하물며 가정에서 남편이 부인을 욕하고 구박하면 부인이 생기가 사라지지요. 부인이 남편을 자꾸 욕하고 부정적으로 말하면 남편이 실패와 낭패를 당하지 않겠어요? 자식도 공부 못한다고 자꾸 욕을 하면 완전히 생기를 잃어 버린 거에요. 자꾸 사랑해 주고 칭찬해 주고 격려해 주면 생기가 돋아나는 거에요. 우리 입의 말로 죽이고 살립니다. 입의 말로 노여나고 사로잡히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령은 우리의 혀를 사로 잡으려고 하시는 것입니다. 나는 이런 이야기를 읽어 보았습니다. 한 의사 선생님이 수술을 하려고하는데 환자가 의사를 보고 하는말이 “나 수술받으면 꼭 죽어요.” 그래서 선생님이 깜짝 놀랬습니다. “아니 왜요.” “나는 수술을 받으면 죽는다고 마음에 생각이 돼요. 나는 죽어요.” 의사 선생님이 수술을 안했습니다. 유명한 의사 선생님입니다. 그래서 간호사가 물었습니다. “이사람 수술해야 사는데 왜 수술 안합니까? 이 사람은 수술해도 죽고, 안해도 죽는다. 자기가 이미 죽는다고 자꾸 입으로 시인하니까 그 사람은 사망에 잡혀서 입에 말을 바꾸기 전에는 내가 수술해도 죽고 수술안해도 죽을테니까 내가 원망들을 필요없이 수술안하겠다.”고 하더랍니다. 어느 뇌 전문가가 뇌 세포의 98%가 말의 지배를 받는다고 발표한 적이 있습니다. 뇌는 몸의 모든 신경을 통제하므로 결국 말이 우리의 온몸을 다스린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긍정적이고 창조적인 말을 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제이 위클리프는 말하기를 “혀는 뼈가 없지만 뼈를 부스러 뜨릴수 있다.”고 말한 것입니다. 아메리칸 인디안의 속담에 “당신이 생각하고 있는 것을 만번이상 말하면 당신은 그렇게 된다.”고 말합니다. 빌리 그라함은 말하기를 “성공한 사람들은 세가지 말을 절대 안한다. 없다. 잃었다. 한계가 있다.는 말은 안하고 언제나 있다. 찾았다. 할수 있다.“ 이말만 한다고 말했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입의 말이 우리를 성공하고 실패하게 하고 병들게 하고 건강하게 만들고 생명으로 넘치게 하고 파탄에 이르기도 하는 것입니다. 제가 알고 있는 한 자매님이 제게 이런 간증했어요. 시집을 갔는데 남편이 광산업을 해요. 그래서 봄이면 집을 떠나면 겨울에 돌아왔어요. 겨울추울 때 한달쯤 집에 있다가 또 정월달 해도잉 되면 또 집을 떠나요. 그러니 생활비도 안대주고 나그네처럼 집에 왔다가는 일년내내 떠나 있습니다. 그래도 부인이 예수를 잘믿고 기도하면서 남편을 욕하지 않았어요. ”여보 떠나가 있어도 건강하고 밥챙겨 먹고 그리고 병들지 말아야 됩니다. 가정생활은 걱정하지 마세요. 내가 어떻게 하든지 애들과 꾸려 나겠습니다.“ 그래서 자꾸 남편을 축복해 주니까 남편이 굉장히 감동을 받아서 어느날 뜻밖에 편지가 한통 날라 왔어요. ”여보 그동안 고생많았소. 너무 무심했던 나를 용서하구려. 이제는 생활비 걱정말고 좀 편히 지내며 몸조심 하시오.“ 하면서 그때부터 생활비를 보내 오더랍니다. 그래서 부인이 이제 편지를 답장을 쓰는데 칭찬하는 말로 가득차게 만들었습니다. 사랑과 축복의 말을 가득써서 답장을 보냈습니다. 그해 가을에 또 한통의 편지가 남편에게 왔어요. ”여보 이제 나의 방랑생활도 끝마쳐야겠소. 그동안의 잘못을 속죄하는 의미에서라도 좋은 남편, 훌륭한 아빠가 되도록 노력하겠오.“ 그리고 얼마후에 집에 돌아와서는 정말로 착한 남편, 착한 아버지가 되고 가족을 위해서 헌신 노력하는 귀한 남편이 되었다는 간증을 제게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사랑과 축복이 담긴 말은 사람을 변화시키고 환경을 복되게 만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떠한 형편에 처하든지 불평이나 저주의 말을 해서는 안됩니다. 오히려 그럴때일수록 천국의 언어인 축복과 사랑의 말을 하면 성령이 그 혀를 통해서 기적을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만일 이 자매님이 남편을 욕하고 저주하고 바가지 긁었더라면 그 남편은 영영히 떠나갔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남편을 축복하고 늘 격려하고 좋은 말을 해주어서 그 말이 그 사람을 변화시켜 버린 것입니다. 여러분의 입술에 말이 나가서 여러분의 운명을 창조하는 것입니다. 누에가 입에서 나오는 실로써 자기가 들어갈 고치를 만드는 것처럼 여러분의 입술의 고백이 여러분이 살아갈 환경을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무슨말을 하는가 항상 조심해야 됩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임하시면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천국 방언으로 말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결론]
오순절날 임하신 성령님은 영원토록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성령님은 제 삼위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성령하나님과 함께 살고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계시고 우리에게 충만히 채워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권능으로 충만케 하십니다. 이 성령님은 바로 급하고 강한 바람같이 여러분에게 임하셔서 모든 오염된 마귀와 세속을 불어 내어 버리고 신선하고 깨끗하게 만들어 주는 성령이시오, 불의 해같이 임하여서 모든 더러움을 태우고 여러분에게 증거하는 능력을 주시는 성령이시오, 충만하게 임하셔서 여러분에게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게 하시고 다른 방언으로 말하게 하셔서 여러분으로 하여금 새 사람이 되어 새로운 환경을 만들어 살도록 만들어 주는 것이 성령인 것입니다. 오늘 성령은 구만리 장천 멀리 계시지 않고 이 자리에 계십니다. 여러분과 함께 계십니다. 여러분속에 계십니다. 여러분에게 충만히 임하여 계신 것입니다. 여러분을 돕기 위해서 항상 기다리고 계시는 성령인줄을 알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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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6 누가복음 믿음과 순종 눅4:25-30  조용기 목사  2009-04-27 2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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