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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본문 : | 마6:19-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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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자 : | 김지철 목사 |
| 참고 : | 소망교회 |
두 주 전부터 “인생은 유혹이다.”라고 하는 제목으로 연속해서 말씀드리고 있습니다. 지난주에는 게으름이라는 유혹에 대해서 말씀드렸습니다. 게으름이란 시간을 잘못 사용하는 유혹입니다. 오늘은 돈에 대한 유혹을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물질을 잘못 사용하는 유혹입니다. 다음주에는 권력에 대해서, 그리고 그 다음 주에는 성에 대해서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돈이 인간에게 유혹이 되는 이유는 왜일까요? 우리는 하루하루 돈 없이 살 수 있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루 세 끼를 안 먹고 살 수 있다고 주장할 수 있는 사람도 결코 있지 아니합니다. 요사이는 또 ‘웰빙’이라고 하는 이 화두가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면서 더 편안하게 더 안락하게 생을 즐기라고 우리를 유혹하면서 우리에게 돈이 필요하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마케팅은 소비자들의 돈 주머니를 어떻게 꺼내 놓게 할 것인지, 그것을 끊임없이 연구하면서 우리를 유혹하고 있습니다. 돈이란 아주 매력적인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마력적이기까지 합니다. 아마 돈을 싫어하는 분들은 한 분도 없을 것입니다. 길 가다가 놓여 있는 휴지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 없다가도, 어떤 사람이 길 가면서 만 원짜리 돈을 막 뿌려 대어 혼란하고 혼잡스러운 일들이 발생하는 것을 보도를 통해 우리는 보곤 합니다. 돈은 많은 사람들의 눈을 갑자기 번쩍 뜨이게 하는 힘을 갖고 있습니다. 때로는 인격적인 힘까지 들어가 있습니다. 마치 살아 움직이는 것 같습니다. 돈이 있는 곳에 사람들이 모여들고 돈이 움직이는 것에 사람들이 그곳을 따라서 돌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아주 유혹적입니다. 돈만 있으면 인간이 갖고 있는 모든 욕구를 다 충족시킬 수 있다고 하며, 돈은 자기가 신이라고 사람들을 끊임없이 유혹하며 그들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고 있습니다. 이 돈이라고 하는 것이 욕망과 함께 접촉하게 되면 하나님 역시도 이 세상을 마치 살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을 하게 해 줍니다.
여러분, 돈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돈이 여러분을 끌고 가고 있습니까? 아니면 여러분이 돈을 다스리고 있습니까? 예수님은 산상설교를 통해 우리에게 말씀해 주십니다.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 예수님도 돈의 위력을 엄청나게 생각하고 계십니다. 여기서 재물이란? 만물입니다. 돈입니다. 누구와 대등한 존재인가 하면, 하나님과 대등한 존재이기까지 합니다. 하나님을 섬길 것인가? 아니면 돈을 섬길 것인가? 그만큼 돈은 사람들에게 엄청난 위력을 갖고 사람의 마음을 흔들고 있다고 얘기를 합니다. 왜 그럴까요? 돈, 재물이 사람에게 들어오면 그 재물이 사람의 주인 노릇을 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을 섬길 것이냐? 돈을 섬길 것이냐? 하나를 사랑하게 되면 하나를 미워하게 된다.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면 돈에 대해서 넘어설 수 있게 되는데, 돈을 사랑하게 되면 하나님을 대적하게 된다고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제일 처음에는 내가 돈의 주인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돈에 맛 들여지고 돈이 나를 주장하면서 돈이 나의 주인이 되고 맙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보물이 있는 곳에 그 사람의 마음도 들어가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무슨 뜻입니까? 돈이 그 사람을 지배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바로 보물이라는 것에는 내 모든 정성과 내 모든 사랑이 그 속에 들어가 있는데 보물이 나를 지배하는 만큼 내가 변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종교개혁자 칼빈은 “재물이 인간의 마음을 지배하는 한, 하나님은 그분의 권위를 나타내실 수가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돈! 꼭 돈만은 아닙니다. 우리의 삶에서 조금 넓혀서 보면, 때로는 일일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취미일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잡귀일 수도 있습니다. 스포츠 마니아들을 보면 그 스포츠에 모든 것을 거는 것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 골프를 즐길 수는 있지만 골프 마니아가 되면 아침부터, 점심, 저녁까지 밤잠 자면서도 어디를 때려야,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는지 골프 생각만 날 것입니다. 자동차 드라이브를 좋아하는 사람들, 자동차 마니아들, 음악 마니아들, 영화 마니아들, 영화 한 편이라도 안 보면 잠을 잘 수 없는 그런 마니아도 있습니다. 그것은 영화를 즐기는 것이 아니라 영화에 의해 붙잡힘을 받는 그런 사람들로 바뀌는 것이 됩니다. 일중독에 걸리는 경우도 그렇습니다. 일 자체를 즐거워했는데 어느 날 일중독에 걸리는 순간 일이 나를 지배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전문성을 갖는다는 것은 아주 귀한 일입니다. 자기의 전문 분야에 독특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하는 것도 아주 아름다운 것입니다. 그러나 그 전문 분야가 자기의 삶을 지배하므로 자기 자신이 갖고 있는 인격적인 자유마저도 포기하게 되면 그때부터는 그 모든 것이 거꾸로 가고 마는 것입니다. 이런 현대인들의 삶의 모습을 에리히 프롬은 『소유냐? 존재냐?』라고 하는 그 양식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삶에는 소유적 양식이 있고 존재적 양식이 있는데, 그럼 소유적 인간 양식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어려운 말을 썼지만 사실은 간단한 것입니다. 자기가 갖고 있는 존재의 이유를 모든 소유물로 평가한다는 뜻입니다. 내가 얼마만큼 돈을 많이 가졌는가? 내가 어떤 차를 타고 다니는가? 내가 몇 평 아파트에 살고 있는가? 내가 어떤 직업을 갖고 있는가? 내가 어떤 명예를 갖고 있는가? 끊임없이 업적으로 보이는 이 형상에 의해서 자기의 삶을 평가하려고 할 때, 그 사람은 아무리 돈을 많고, 아무리 명예가 많고, 아무리 학식이 많아도 그 사람의 실존 자체는 소유적 인간에 불과하다고 지적을 해 줍니다. 그러나 존재적 인간이 있습니다. 자기의 모습 그대로 자기를 귀히 여기는 것! 직업에 귀천이 없이 자신의 직업을 즐거워하면서 담당하는 것! 자기의 삶이 비록 경제적 여유가 없어도 그 삶을 즐길 줄 아는 그 사람, 자기 그 존재 자체로 만족하는 그 사람이 바로 존재적 인간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이것을 굳이 신앙적인 언어로 바꿔서 얘기한다면 이렇게 얘기할 수도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이유를 대라! 나는 축복 받기를 원합니다. 나는 건강해지기를 원합니다. 나는 세상에서 이 직업에 내가 모든 명예의 지위를 얻기를 원합니다. 예수 믿는 그 자체가 뭔가 내게 소유되는 것이 더 많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예수를 믿으면서도 소유적 인간의 속성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를 믿는 이유는,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로 고백하고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 이것만으로 내 인생에 내 신앙에 기쁨이 들어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마저도 감사할 수 있습니다. 그것마저도 그것만으로 기뻐할 수 있습니다.”라고 고백하게 될 때에 그것은 존재적 신앙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겠습니다. 분명히 우리가 돈에 대해 다시금 얘기를 한다고 하면, 돈 자체를 어떻게 보면 중립적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돈이 나하고 접촉되는 순간 돈은 매력과 마력을 발휘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돈에 집착하게 됩니다. 돈을 향해서 끊임없이 추적하게 됩니다. 그리고 돈이 우리의 욕심과 탐심이 함께 만나면 파괴적인 역사까지 나타나게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바울은 사람의 이런 연약성을 이렇게 지적해 줍니다. 디모데전서 6장 10절에 보면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돈이 자기 안에서 중립적이 되고 자기가 돈을 마음대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돈이 나를 붙잡게 되며 돈을 사랑하게 되는 것! 돈이 나의 우상이 되는 것! 이 돈에 의해서 내 전체가 굴러 가는 것! 그것은 일만 악의 뿌리가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부자에 대한 화를 왜 얘기했을까요? 돈은 곡간에 쌓아 두고 그 돈으로 만족하겠다고 생각하는 그 부자, 거기에는 하나님의 은총이 들어갈 자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은혜의 역사가 나타낼 수가 없기 때문에 화가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돈이 하나님을 대체하고 있습니다. 돈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이때 우리에게 중요한 삶의 태도는 ‘이것이냐? 저것이냐?’를 결정해야 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에서 가장 넘기 어려운 부분이 이것입니다. ‘이것이냐? 저것이냐?’ 즉, ‘하나님이냐? 내가 갖고 있는 여태까지의 자존심이냐?’ 양자택일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이냐? 내가 갖고 있는 내 능력이냐?’ 처음 단계에서 결정하지 아니하면 우리의 신앙은 예수를 믿는 것 같은데 계속 끌려만 갑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 같은데 우리 마음속에는 기쁨과 감사가 생겨나지 않습니다. ‘이것이냐? 저것이냐?’를 결정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제자들을 만나실 때, “나를 따라오라.” 하시면서, 자기가 갖고 있는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주님을 따라오라고 하셨을까요? 베드로는 그물을 버렸습니다. 베드로는 직업을 버렸습니다. 부모와 처자식을 다 내려놓았습니다. 이 엄청난 결단. 하나님만을 주인으로 모시기 위해서 이 결정을 요청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것은 인간 내면에 일어나는 혁명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 혁명에 실패하면 쿠데타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혁명의 첫머리부터 실패하기 때문에 그 다음을 나갈 수가 없습니다.
분명히 돈이란, 말썽적인 힘이 있습니다. 돈이란, 유혹적인 힘이 있습니다. 돈이란, 인격적으로 우리의 삶 전체를 휘두르므로 끊임없이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하고 하나님 앞에 모든 것을 무릎 꿇고 내어 놓지 않는 이런 엄청난 힘이 있다는 사실을 우리 예수님은 우리에게 가르치신 것입니다. 여러분, 이 단계를 넘어서야 돈으로부터 자유로워집니다. 돈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게 되면 돈의 유혹에서 넘어갈 수가 없습니다. 이것이 첫번째 단계입니다. 돈이 갖고 있는 두 번째 단계에서 돈이란, 하나님의 사람은 돈이 결코 내 주인이 될 수가 없고 돈은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선물임을 깨닫게 됩니다. 그때의 돈은 하나님의 복이 되는 것입니다. 그때의 돈은 내가 하나님을 위해서 내 생애에 하나님께서 주신 복을 누리도록 하나님께서 주시는 귀한 선물이 됩니다. 마치 하늘과 땅을 우리에게 주신 것처럼, 우리에게 시간과 지혜와 용기를 주신 것처럼, 하나님께서 돈을 우리에게 주심으로 돈 버는 능력도 주시고 돈을 사용할 줄 아는 능력도 주신 것이 하나님의 선물인 것을 깨닫게 됩니다. 바로 아브라함이 그랬으며, 욥이 그랬습니다. 다윗이 받았던 복이 그러한 것입니다. 이때 하나님을 찬양하게 됩니다. 그러나 세 번째 단계에 나아갈 때에 진정한 의미에 있어서 돈을 바르게 사용할 줄 아는 사람이 됩니다. 세 번째 단계는, 돈이란 하나님과 우리의 이웃을 위해 섬기는 선물입니다. 가난한 자를 돌보고 고통 받는 자를 세우기 위한 수단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 되도다.” 여러분, 어떻게 기도하시겠습니까?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돈을 꾸는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아니면 다른 사람들에게 나눠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그렇게 기도할 것입니까?
세리장이었던 삭개오가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그가 변화된 첫번째가 “내가 토색한 것이 있으면 4배나 갚겠고 내가 갖고 있는 재산의 절반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겠다.”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때 예수께서 그 모습을 보시면서 기뻐하시며 “하나님의 구원이 바로 너의 집에 이르렀다.”고 칭찬하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의 영적인 회개, 우리의 마음의 회개는 우리의 물질적 회개까지 동반해야 하는 것입니다. 마르틴 루터가 이렇게 말을 합니다. 인간에게는 세 가지 회심이 필요하다. “첫째는 마음의 회심, 그 다음에 생각의 회심, 그 다음에 돈지갑의 회심이다.” 지갑의 회심까지 되어야 온전한 회심이 된 거라고 이야기합니다. 거지 나사로의 비유를 여러분은 아시지 않습니까? 거기에 나오는 부자의 문제점은 무엇일까요? 자기 바로 코앞에 있는, 고통 받고 있었던 거지 나사로가 그렇게 먹을 것이 없어 굶주려 있을 때, 그 부자는 나사로에게 베풀어 주지를 않았습니다. 돈과 재물, 그것이 자기의 인생을 만족하는 것으로 착각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세계식량계획에서 2002년에 발표한 기아와 굶주림에 관한 보고 내용 몇 가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세계 인구 8억 명 정도가 매일 굶주림에 허덕이면서 잠자리에 든다고 얘기를 합니다. 전 세계 인구의 10% 이상입니다. 그 중 대부분은 어린아이와 여성들입니다. 두 번째로 다섯 살 이하의 어린이 2억 명 정도가 식량 부족으로 인해서 평균 체중 미달입니다. 세 번째로 7초마다 어린이 한 명이 굶주림 혹은 그로 인한 질병으로 죽습니다. 네 번째, 그러나 세계에는 모든 인류가 먹기에 충분한 식량이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지금도 사람들이 죽어 가고 있는 것입니다. 신명기 15장 11절에 “땅에는 언제든지 가난한 자가 그치지 아니하겠으므로 내가 네게 명령하여 이르노니 너는 반드시 내 땅 안에 너의 형제 중 곤란한 자와 궁핍한 자에게 네 손을 펼지니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것들이 조금 있습니까?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서 사명을 감당하라고 우리에게 주신 선물인 것입니다. 돈과 재물이 이 마력적인 성격에도 불구하고 이웃을 섬기고 나누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선물해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돈을 자기만을 위해서 갖고 있다가 버리면 마치 잃은 것과 같습니다.
어떤 사람이 자기 집 지하실 깊은 곳 아무도 모르는 곳에 금은보화를 갔다가 쌓아 놓았습니다. 그리고 매일 밤마다 내려가서 그 금은보화를 보면서 ‘아! 좋구나!’ 하고 흐뭇한 눈길로 보며 “오~사랑스러운 나의 금은보화여! 세상에 어떤 것이 이 금은보화보다 나의 마음을 기쁘게 해 줄 것이 있으랴?” 그렇게 스스로 자기 즐거움 속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지하실에 들어갔습니다. 이 지하실은 한번 들어가면 열쇠가 있어야 나올 수 있는데, 그날은 열쇠 없이 들어가 버렸습니다. 그는 그 금은보화를 보고 그 다음에 그곳에서 나올 수가 없었습니다. 그 뒤 한참이 지난 어느 날, 어떤 인부들이 지하에 큰 방이 있는 것을 보고 그것을 다 부숴 보았더니 그 안에 금은보화와 해골 하나가 들어 있었습니다. 여러분, 어쩌면 우리의 삶이 금과 은과 보화를 따라가다 보면 이런 경우에 빠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어떤 분이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자녀들에게 유산을 남기지 말자!” 그러나 저는 그렇게 얘기할 수가 없습니다. 자녀들에게 유산을 남겨 주시길 바랍니다. 먼저 신앙의 유산을 남겨 주시고, 재물의 유산을 남겨 주시되 절반 이하로 남겨 주시기를 권면합니다. 절반 이상은 주시지 않는 것이 자녀들에게도 좋고 우리 부모님들에게도 좋습니다. 나머지 절반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노후를 위해서 대비하시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쓰시고 그리고 우리가 인생 떠날 때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기탁하시길 바랍니다. 돈이란 함께 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많은 분들은 돈을 자기 마음대로 써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조차도 “교회는 10의 1조만 관여해라! 나머지 10의 9는 내 마음대로 쓸 수 있게 좀 내 달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10의 1조도 하나님의 것이고 10의 9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바르게 사용하지 아니하면 우리가 갖고 있는 진정한 의미에 있어서 그리스도의 참된 모습이 우리를 통해서 나타날 수가 없습니다.
저는 소망교회를 다시금 생각해 봅니다. 소망교회는 교회 중에 소망이 있는 교회입니다. 소망교회에서 열리고 있는 이번 우리 총회의 주제가 이것입니다. “교회, 세상의 소망”이 되기 위해서는 이 땅에 백성들에게 우리의 가진 것들을 나눠야 합니다. 믿음의 유산을 나눠야 되고 우리의 사랑을 나누어 줄 때에 진정한 의미에 있어서 세상에 소망이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교회란 성도들입니다. 성도들 마음속에 이 돈을 바르게 사용할 수 있는 마음가짐이 될 때에 ‘아! 저 성도가 세상의 소망이구나!’ 하고 우리를 향해 칭찬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잠언 11장 24절과 25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니라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자기도 윤택하여지리라” 카네기가 그런 얘기를 합니다. 진정한 부자는 자기 혼자 부자가 되는 사람이 아니라 자기 옆에 있는 사람을 부자 되게 할 줄 아는 사람이 진정한 부자라고 이야기합니다. 여러분, 돈은 나만을 위해 쓰면 가난뱅이가 되는 것입니다. 돈,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임을 알고 하나님을 위해서 그리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그리고 이 땅의 백성들을 위해서 올바르게 쓰일 때 바로 이 성도들은 이 세상에 소망이 되고 우리 교회는 세상에 소망을 줄 수 있는 그런 교회가 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 기도: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우리가 가진 것이 있고 때로는 편안하게 살고 있기 때문에 고통 받고 없어 아파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다 알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주님, 용서해 주시옵소서. 우리에게 주신 이 모든 것이 내 것이 아니고 내 노력과 내 능력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었기에 이만큼의 건강과 이만큼의 재물의 축복을 누리게 된 것임을 압니다. 주님, 이 귀한 것을 다시금 하나님을 위해서 또 이 세상을 위해서 바르게 사용할 수 있는 지혜와 용기를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김지철 목사(소망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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