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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을 판단하지 말라

고린도전 항태완............... 조회 수 2551 추천 수 0 2009.05.10 23:4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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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고전4:5 
설교자 : 한태완 목사 
참고 : 2001년 4월22일 저녁 예배시 
본문: "그러므로 때가 이르기 전 곧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 것도 판단치 말라 그가 어두움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 그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께로 칭찬이 있으리라"

어느 날 나귀가 등에 짐을 잔뜩 싣고 길을 걷다가 그만 연못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나귀는 허우적거리며 살려달라고 소리를 쳤습니다. 그때 연못가에 있던 개구리가 소리를 쳤습니다. "이 바보 같은 녀석아, 연못에 좀 빠졌다고 뭘 그리 엄살이냐! 나는 너보다 몇 십 배나 몸집이 작지만 연못에서 헤엄치고 논다!"
이 이야기 속에 나오는 개구리는 바로 우리들 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종종 자신을 표준으로 삼고, 자신과 다른 언행을 하는 사람들을 신랄하게 비판합니다. 우리는 많은 시간을 다른 사람을 비판하는데 써버립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형제들아 피차에 비방하지 말라 형제를 비방하는 자나 형제를 판단하는 자는 곧 율법을 비방하고 율법을 판단하는 것이라 네가 만일 율법을 판단하면 율법의 준행자가 아니요 재판자로다. 입법자와 재판자는 오직 하나이시니 능히 구원하기도 하시며 멸하기도 하시느니라 너는 누구관대 이웃을 판단하느냐"(약4:11-12) "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판단하느뇨 어찌하여 네 형제를 업신여기느뇨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롬14:10)
우리는 다른 사람을 판단할 자격이 없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사람은 다 다르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뿐입니다.(10인 10색)
세상에는 천 가지 만 가지의 직업이 있습니다. 화가나 소설가의 경우처럼 혼자서 고독하게 작업을 해야하는 직업이 있는 가 하면 교사나 목사처럼 늘 많은 사람들과 접촉해야 하는 직업도 있습니다.
또한 일반대중에게 노출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가수, 탤런트, 배우 등의 직업도 있습니다. 어떤 종류의 직업이든 여러 사람의 관심의 대상이 되는 직업에 종사하게 되면 그 관심도에 비례하여 행동은 그만큼 더 부자연스러워지게 됩니다.
특히 교사라든지 목사의 경우는 그 직업의 성질상 바르고 참되게 살도록 교육하고 훈계해야 하는 책임이 따르기 때문에 이에 따른 인간적인 고충이 더 많게 마련입니다.
어떤 목사님께서 그가 가지고 있는 고충을 이렇게 털어놓은 적이 있습니다. "심방에 주력하면 설교가 서툴다고 합니다. 공부를 하면 교인 하나 하나의 시중을 들어주지 않는 다고 합니다. 목사부인이 나서서 말하면 저래서 야단이라고 합니다. 집 속에 들어앉아 있으면 목사부인이 아무 것도 안 한다고 합니다. 아이가 없다면 인정을 모른 다고 하고, 다섯이나 여섯 있으면 지나치게 많다고 불평을 합니다."
이웃을 성급하게 판단하는 것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한 사실을 소개합니다.
어느 목사 사모님이 아주 내성적이고 말이 없어서, 심방을 가면 가만히 앉아 있지말고 그 집에 대해 무엇이든지 칭찬을 해주라는 권고를 받았답니다. 그러던 중 어느 집에 심방을 갔는데 참으로 가난한 집이었습니다. 어느 것도 칭찬할 만한 것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집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이 바로 예쁘게 수 놓은 책상보였습니다. 그 사모님은 수를 참 잘 놓았다고 한참 칭찬을 해주었습니다. 그날 저녁, 그 집에서 선물이 왔는데 그 책상보를 잘 개어서 다리고 포장을 해서 보냈더랍니다. 그러자 소문이 돌기를 사모님이 얼마나 탐심이 많은지 그 가난한 집의 책상보를 빼앗아 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이후로 사모님은 마음에 큰 상처를 입어서 거동을 못하고 말도 잘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말한 사람은 사모님을 고의적으로 해치고자 말한 것이 아니고 아무 생각 없이 쉽게 말한 것이지만, 이와 같이 사건의 내용을 모르는 채 얼마든지 남의 가슴을 찢어 놓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그 때의 상황과 형편을 다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이웃을 향해 이야기하는 것, 특별히 교회 안에서 성도들간의 대화에 조심해야 합니다.(잠20:19, 마12:36)
무고한 비방에 대한 결과에 대하여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징계를 받게 된다.(민12:8-13) "앉아서 네 형제를 공박하며 네 어미의 아들을 비방하는 도다... 네 죄를 네 목전에 차례로 베풀리라 하시는 도다"(시50:20-21) 둘째, 악을 낳게 된다.(요삼1:10) 셋째, 부끄러움을 당하게 된다.(벧전3:16) 넷째, 하나님께 버림을 받는다.(롬1:28-32)
우리는 서로를 판단하기보다는 서로가 연약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서로를 세워주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사람은 잘못 판단하기 쉽습니다. 내가 보기에는 틀려도 하나님 보시기에 옳은 일도 있고, 현재는 틀려 보이지만 나중에 옳은 것이 판명되기도 하고, 겉으로는 좋아 보여도 속으로 나쁠 수도 있습니다.(잠14:12) 또 내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남의 눈에 티를 빼라고 하기도 쉽습니다.(마7:1-2, 롬14:1, 벧전2:1)
이웃에 대한 험담을 잘하는 아낙네가 있었습니다. 그는 누구에게든 단점을 먼저 들춰내 헐뜯어 친구가 별로 없었습니다. 어느 날 그의 집에 친정어머니가 찾아왔습니다. 역시 아낙네는 창가에 앉아 어머니에게 이웃집의 불결함에 대해 험담을 해댔습니다. "저기 봐요, 옆집 빨래 줄에 널린 옷들이 너무 더러워요. 세탁을 엉터리로 했나봐요" 그러자 어머니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더 자세히 보렴. 이웃집 빨래가 더러운 것이 아니라 너희 집 유리창이 더러운 거야"
색안경을 끼고 보면 상대방이 그 색깔대로 보입니다. 또한 우리는 남을 비판하는 만큼 자기도 비판을 받게 되고 남에게 너그러우면 자기도 너그러운 판단을 받게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겸손한 사람, 많이 아는 사람은 남을 판단하지 않습니다. 손가락 하나로 남을 가리키면 세 개는 나를 지적합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귀가 길고 혀가 짧습니다.
사람은 흔히 어느 한 면만을 보고 판단하기 쉽습니다. 페르시아에 네 아들을 둔 왕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왕은 아들들을 불러놓고 한 가지 명령을 했습니다.
"지금부터 내 말을 잘 들어라. 첫째 아들은 겨울, 둘째는 봄, 셋째는, 여름, 넷째는 가을에 정원 뒤편의 망고나무를 관찰하라. 다른 계절에 망고나무를 보아서는 안 된다."
네 명의 아들은 왕의 명령에 그대로 순종했다. 1년 후 왕은 네 아들을 불러놓고 물었다. "자, 이제부터 너희가 본 망고나무를 내게 설명해다오." 네 아들의 대답은 각양 각색이었다. "불에 타고 남은 폐허 같습니다. 잎이 푸르고 싱그럽습니다. 꽃은 장미처럼 아름답습니다. 주렁주렁 열린 열매가 탐스럽습니다, 왕은 네 아들의 손을 잡고 교훈을 주었다.
"너희들의 대답은 모두 옳다. 망고나무는 계절마다 각각 다른 모습을 보인다. 한 가지 모습만 보고 그것이 전부인 것처럼 생각해선 안 된다. 이것이 너희들에게 주는 교훈이다."
성급한 결론은 편견을 낳습니다. 노아가 술 취한 적이 있다고 술주정뱅이라고 보면 안됩니다. 다윗이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와 간음했다고 그를 색마로 보면 안됩니다. 하나님은 다윗을 "마음에 합한 자"라고 하였습니다. 베드로가 닭 울기 전에 세 번 부인했다고 비겁한 인간으로만 보면 안됩니다.
우리가 보기에 안 좋은 사람도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사람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들의 판단은 모두가 나름대로의 편견과 선입견이 작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2: 17절에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판단과 정죄의 세계에서 벗어나라'는 말씀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나는 옳고 너는 그르다"는 생각에 푹 젖어있는 모습을 봅니다. 선악과의 정체, 즉 인간의 죄성이 바로 이 선악과라는 사실입니다. 부부갈등, 고부갈등, 노사갈등, 여야 갈등 등 모든 갈등의 핵심은 '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는 선악과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우리는 누가 3자를 험담해도 옳다, 그르다, 좋다, 나쁘다로 보지말고, 또 누가 나를 험담해도 마음 아프게 생각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우리가 형제를 판단하는 것은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는 죄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성경 야고보서 2장 1- 9절까지 함께 읽어봅시다. "내 형제들아 영광의 주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너희가 받았으니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말라 만일 너희 회당에 금가락지를 끼고 아름다운 옷을 입은 사람이 들어오고 또 더러운 옷을 입은 가난한 사람이 들어 올 때에 너희가 아름다운 옷을 입은 자를 돌아보아 가로되 여기 좋은 자리에 앉으소서 하고 또 가난한 자에게 이르되 너는 거기 섰든지 내 발등상 아래 앉으라 하면....만일 너희가 외모로 사람을 취하면 죄를 짓는 것이니 율법이 너희를 범죄자로 정하리라"
오래 전에 우리 나라에서도 상영이 되었던 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는 파란 만장한 삶을 살다가 오토바이 사고로 세상을 떠난, 실제 인물 토마스 로렌스의 일대기입니다. 그는 영국의 탐험가요 고고학자요, 군인이었는데, 이미 아는 대로 로렌스는 육군 장교로서의 복무를 그만두고 영국 공군에서 항공기 정비병이 되었습니다. 가끔 그는 토마스 하디의 집에 가서 그들 부부와 함께 차를 마셨습니다. 어느 날 오후 그는 토마스 하디의 집에서 돌체스터 시장의 부인과 한 자리에 앉게 되었는데, 시장 부인은 모욕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시장 부인은 하디 부인에게 "나는 일생동안 졸병과 함께 앉아서 차를 마신 적이 없다"고 프랑스어로 말하였습니다. 이 부인은 이 공군 정비병이 누구인지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오랫동안 깊은 침묵이 흘렀습니다. 드디어 로렌스는 예의 바르게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마담, 죄송합니다만, 하디 부인은 프랑스어를 알아듣지 못합니다. 제가 통역을 해드릴까요?" 이 말을 듣고 시장 부인은 기절할 듯이 놀라고 말았습니다. 참으로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는 것은 위험한 일입니다. 비록 외모와 실제가 다 같이 보잘 것 없다고 할지라도, 사람을 대하는 태도는 결코 그런 자세를 가져서는 안됩니다. 외모뿐 아니라 소문이 다른 간접적인 경로를 통해서도 우리는 그런 잘못을 범하고 있습니다. 비록 보잘것없이 보여도 한 인격으로 보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결코 외모로 판단하지 않으십니다. 과부의 엽전 한 잎을 부자의 두 랩돈보다 더 크게 보셨습니다. 왜냐하면 과부의 엽전 한 잎은 생활비 전부를 낸 것이고 부자의 두 렙돈은 생활비 일부를 낸 것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아는 어떤 분은 점심도 굶고, 차비도 아끼려고 수 십리 길을 걸어서 그 돈으로 헌금하는 사람도 보았습니다. 그 돈은 우리가 보기에는 작은 액수일지 모르지만 하나님 보시기에는 부자의 수 백만 원의 헌금보다도 더 크게 보실 것입니다.
얼마 전 어떤 잡지에 이런 기사가 난 것을 보았습니다. 그 유명한 이스라엘의 여 수상이었던 골다 메이어의 수기에 '나는 어렸을 때부터 하도 못생겨서 사람으로부터 업신여김을 받았다. 심지어는 부모도 나를 시원치 않게 여겼다. 그래서 에라, 공부나 해야겠다 하고 열심히 했더니 결국은 오늘에 정치가가 되었다.'라는 말이 있다고 합니다.
소크라테스는 얼굴이 못생겼고, 눈도 작은 데다가 키도 작은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종교개혁가 칼뱅도 빼빼 마른 몸에, 눈이 나쁘고 신경질적인 사람이었으며, 미국의 링컨 대통령도 몸과 얼굴이 깡마르고 다리는 유달리 길어서 고릴라라는 별명이 붙어있었다고 합니다.
성경에 나타난 가장 위대한 인물 사도 바울도 키는 작고, 시력도 좋지 않은 보잘것없는 외모를 지닌 분이었다고 합니다.
백범 김구선생은 과거에 낙방한 후 인생의 다른 길을 찾다가 부친으로부터 "네가 큰 일을 하려면 사람 보는 법부터 배우라"는 말을 듣고 열심히 관상학을 공부하다가 자신의 외모를 살펴본 후 크게 실망했습니다. 생긴 대로 운명이 결정된다면 자신의 앞날은 꽉 막혀 희망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김구가 외모에 집착하지 않고 다시 공부, 민족지도자가 된 것은 다음 글을 읽고 나서부터였습니다. "얼굴 모양이 잘 생긴 것은 몸이 건강한 것만 못하고 몸이 건강한 것은 마음이 바른 것만 못하다."
하나님은 사람을 결코 외모로 보시지 않고 그 중심을 보십니다.(롬2:11, 골3:25) 사울이 불순종으로 하나님께서 버리심으로 이스라엘 왕을 다시 세우기 위해 사무엘이 이새의 집에 갔을 때, 이새의 맏아들 엘리압을 보고 그를 택해 기름 부으려 하자 하나님께서 "그 용모와 신장을 보지 말라......사람은 그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그 중심을 보느니라"(삼상16:7)하시고 다른 아들들도 다 물리치고 막내아들 다윗에게 기름을 붓게 하셨습니다. 또 뽕나무 위에 기어올라간 난쟁이 세리장 삭개오의 중심을 보시고 예수님께서는 그를 위로 하셨습니다. 이렇듯 주님은 외모로 사람을 취하는 일이 없습니다.(갈28:6, 엡6:9)
그런데 오늘날 교회 안에서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여 차별대우하는 일이 일어나는 것은 잘못된 일입니다. 외모라고 하는 것은 비단 용모뿐만이 아니라, 돈 있는 것, 똑똑한 것, 능력 있게 보이는 것, 사회적 지위 등도 포함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보시는 것은 이러한 외모가 아니라 그 사람의 중심 곧 진실한 믿음과 충성됨 그리고 정직성을 보시고 귀히 쓰는 일꾼으로 삼으심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베드로 사도는 성도에게 이렇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너희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벧전3:4)
또한 신명기 말씀에는 "재판은 하나님께 속한 것인즉 너희는 재판에 외모를 보지 말고..."(신1:17), "너는 굽게 판단하지 말며 사람을 외모로 보지 말며 또 뇌물을 받지 말라"(신16:19)하였습니다. 일본 에도시대(1598-1867)에 이타쿠라 시게무네란 명 재판관이 있었습니다. 그는 어떤 외부의 압력이나 유혹에 굴하지 않고 바른 양심에 서서 공정한 판결을 내려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았습니다. 어느 날 그는 한 사람으로부터 "선생님이 그렇게 공정한 재판을 내릴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그는 웃으며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저는 사람의 외모나 얼굴을 보지 않고 판결합니다. 사람에 대한 인상은 잘못하면 판단을 흐리게 할 수 있습니다. 내 눈에 좋게 보인다고 다 선인일 수 없습니다." 그러면서 시게무네는 이런 말을 덧붙였습니다. "어떤 사람은 사람의 얼굴만 봐도 판결을 할 수 있다는데 전 아직 그 경지까지 이르지 못했습니다."
외모로 사람을 판단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오류이며 독선입니까? 중요한 것은 외모가 아니라 속 사람 일 것입니다.
미국에서 남북전쟁이 터지기 몇 해전, 오하이오주의 큰 농장에 한 초라한 소년이 찾아와 일자리를 구했습니다. 주인은 일손이 모자랄 때라 소년을 채용했습니다. 그런데 3년 뒤 이 "머슴"이 자기 딸과 사귀는 것을 알고 내 쫓았습니다. 그로부터 30년 뒤 주인은 낡은 창고를 수리하다 그 소년의 짐을 발견하고 내용물을 살피던 중 소년의 이름이 제임스 A 가필드라는 것과 현직 20대 미합중국 대통령과 동일인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농장 주인은 대통령 사위를 맞을 기회를 놓친 것입니다. 외모로 사람을 판단할 일이 아닙니다. 우리 사회의 일반적인 풍조라 하겠지만 배우자를 선택할 때도 학벌과 재력, 집안 배경은 늘 중요한 조건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특히 결혼 상대를 고를 대 그리스도인들은 믿음만 좋으면 하겠다고 하다가도 막상 자신에게 선택의 기회가 주어지면 어느 경우 믿지 않는 사람들과 같거나 더 까다로운 예를 볼 수 있습니다. 모든 조건을 다 원하고 그 위에 믿음까지 좋은 짝을 구하니 쉽지가 않은 것입니다. 사람 사는 세상에는 모든 것을 무시할 수 없지만 조건에도 우선 순위가 있습니다. 우리는 모든 선택에 하나님의 영광과 그 분의 뜻에 우선 순위를 두고, 외모로 판단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외모로 판단하지 말고 공의의 판단으로 판단하라 하시니라."(요7:24)
* 기도: 심판의 주가 되신 하나님 아버지, 드러난 겉모습만으로 사람을 판단했던 저희들의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우리의 잘못된 편견과 선입견으로 이웃을 바라보고 판단함으로 주님의 영광을 가리운 적이 있었습니다. 앞으로는 이웃을 자기보다 낫게 여기고, 서로 격려하고, 세워주고, 협력하며, 서로 나누며 살게 하옵소서. 이 세상에서의 남은 생애가 거짓되지 않은 삶의 모습이 되게 인도하옵소서. 오직 한 분, 주님만이 우리의 기쁨과 소망과 생명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가 말은 너무 많이 하고 행동은 너무 적게 하는 것을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를 성령의 뜨거운 열정으로 가득 채워 주옵소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등대교회 성도들이 서로 사랑하게 하옵소서. 우리 교회가 날로 성장하게 하시고 우리 담임목사님께 성령충만함을 더하사 우리를 인도하시는데 조금도 어려움이 없게 하시고 영육 간에 더욱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01년 4월22일 저녁 예배시 한 태 완 목사 설교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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