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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신앙과 참 신앙의 차이

갈라디아 박홍섭............... 조회 수 2467 추천 수 0 2009.05.11 00:5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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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갈6:1-14 
설교자 : 박홍섭 목사 
참고 : 07.3.11. 한우리성경강해 글쓴이 :한우리교회 (박홍섭목사) 
 8년 전 우리 교회가 구서동에 있었을 때 사택이 무지개 아파트였습니다. 지금도 가끔 그 동네를 지나갈 때면 같은 동에 살았던 7살짜리 남자애가 생각나는데 이 녀석은 특이하게도 만날 때마다 자기 아빠는 고려대학교 법학과를 나왔다고 자랑하는 아이였습니다. 누가 물어보지도 않는데 만나기만 하면 “우리 아빠 고려대 나왔어요....” 이제는 중학생이 되어 있을 터인데 아직도 그렇게 자기 아빠를 자랑하고 다니는지 궁금합니다.

어린애들은 언제나 자기 아빠 자랑을 많이 합니다. 의사, 변호사, 목사를 아빠로 둔 어린 아이 셋이 자기 아빠 자랑을 하는데 의사 아들이 먼저 말합니다. “너희들, 우리 아빠가 돈을 얼마나 많이 버는지 알아? 한번 치료해주면 돈을 이만큼 벌어” 그러자 옆에 있던 변호사 아들이 더 크게 팔을 벌리면서 “우리 아빠는 더 많이 벌어 한번 재판하면 이 만큼 생긴다니까.” 그러자 목사 아들이 풀이 죽어 가만히 있다가 잠시 후 좋은 생각이 났다는 듯 큰 소리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건 아무 것도 아냐, 우리 아빠가 한번 설교하면 돈 걷으러 일어나는 사람이 열 명도 넘어..”

사람에게는 누구나 자랑하려는 마음이 있습니다. 무엇인가를 자랑한다는 것은 내가 그것을 귀하게 여기고 소중하게 생각한다는 의미가 있으므로 그 사람이 자랑하는 내용을 보면 그 사람이 누구인지를 알 수 있으며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습니다. 특별히 성도가 무엇을 자랑하는가를 보면 그 사람의 신앙과 영성을 알 수 있기 때문에 자랑의 내용은 굉장히 중요한 자기 신앙의 바로미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들이 자랑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살펴보면서 우리의 신앙이 어떤 자리에 있는지를 확인하는 시간이 되면 좋겠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갈라디아 교회는 유대 율법주의의 공격에 휘청거리고 있었던 교회였습니다. 이에 바른 복음에 기초한 신앙을 지키기 위해 격앙된 마음으로 편지를 쓰고 있는 바울은 할례와 의식 준수를 강조하는 유대교의 율법주의를 육체를 자랑하고 자기를 자랑하는 거짓 신앙이라고 규정하면서 하나님의 은혜와 복음에 기초한 바른 신앙은 절대로 자기를 자랑할 수 없음을 자신의 고백을 통하여 강조하면서 편지를 마무리 하고 있습니다. 다시 한번 본문을 같이 읽겠습니다. 갈6:11-14절입니다. “내 손으로 너희에게 이렇게 큰 글자로 쓴 것을 보라 무릇 육체의 모양을 내려 하는 자들이 억지로 할례 받게 함은 저희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인하여 핍박을 면하려 함뿐이라. 할례 받은 저희라도 스스로 율법은 지키지 아니하고 너희로 할례 받게 하려 하는 것은 너희의 육체로 자랑하려 함이니라.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지금 갈라디아 교회를 미혹하고 있는 유대 율법주의는 할례를 받아야만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고 의식과 유대교의 법들을 준수해야만 온전한 구원에 이를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바울의 지적은 무엇입니까? 13절처럼 정작 그들 자신은 하나님의 거룩한 율법을 지키지 않으면서도 할례를 주장하는 것은 그들의 신앙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기 위한 참된 신앙이 아니라 순전히 자기 자랑과 육체를 과시하는 거짓된 신앙이라는 것입니다.

성경은 자기 자랑이 결코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 것이며 바른 신앙의 열매가 아니라고 반복해서 강조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1장29절을 보면 하나님께 합당치 못한 일 중에 하나가 자기 자랑이라고 말씀하고 있으며, 고전5:6절에는 “너희의 자랑하는 것이 옳지 아니하도다.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지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라고 함으로 공동체의 하나 됨을 깨트리고 세속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오는 것이 자기자랑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또한 약4:16절은 세상에 속한 자랑이 허탄한 자랑이라고 말씀함으로 자기 자랑은 절대로 바른 신앙의 내용이 아닌 것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참된 신앙은 무엇을 자랑하는 것입니까? 렘9:23-24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백성들이 자랑해야 할 것은 지혜와 용맹과 부함이 아니라 하나님을 아는 것과 하나님이 인애하시고 공평하시고 정직하다는 것을 자랑하라고 했습니다. 한 마디로 하나님을 자랑하는 것이 참된 신앙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알게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 중에서도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그래서 참된 신앙은 언제나 하나님을 알게 하고 그분의 인애와 공평과 정직을 알게 하는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하고 자랑합니다.

오늘 바울은 자신의 고백을 통해 그것을 밝히고 있습니다. 14절을 다시 보십시오.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우리는 여기서 사도가 바른 신앙을 하나님을 자랑하는 것이되 단순히 그리스도를 자랑한다고 하지 않고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자랑한다고 말하는 것에 주목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생애 가운데 자랑거리가 될 만한 것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어두운 밤 찬란한 빛을 발하며 아기예수의 탄생을 알리던 동방에 나타난 별의 이적과, 오병이어의 기적과 병든 자를 고치시고 귀신들린 자를 쫓으시고 온전하게 하시던 그 일, 풍랑 이는 바다를 걸으시고 광풍을 잠잠케 하셨던 일, 혹은 저 위대한 평화의 대헌장이라고 일컬어지는 산상수훈을 설교하시던 팔복 산을 자랑할 수도 있으며, 죽은 나사로를 살렸던 엄청난 일도 자랑거리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뛰어 넘어 사도는 고백합니다.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결코 자랑할 것이 없나니”

왜 사도는 십자가만을 자랑하게 되었을까요? 왜 하필이면 멸망의 십자가, 저주의 십자가, 모든 사람들이 외면하고 미련하고 부끄럽게 여기는 고난의 십자가가 그에게는 유일한 자랑거리가 될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바로 사도 자신이 오직 그 십자가로 말미암아 구원받았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오직 이 십자가를 통해서만 다른 죄인들을 구원하실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세월이 흘러가고 역사가 흘러가고 시대가 바뀌고 상황이 바뀌어도 오직 인간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방법은 십자가뿐이며, 오늘도 십자가만이 우리가 누구인지를 말해주고 어떻게 소망 없는 우리를 하나님이 사랑으로 구원해주는가를 말해주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십자가의 놀라운 은총에도 감사하지 않는 것은 자신들이 얼마나 비참한 죄인이었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죄인을 기다리고 있는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이 얼마나 끔찍하고 불같은지 전혀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죄와 심판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한 채 은혜를 은혜로 깨닫는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죄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체, 그리고 그 죄에 대해 하나님이 얼마나 진노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체 은혜로 넘어가게 될 때 기독교는 경박한 방종의 종교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십자가가 없었다면, 거기에서 우리 주님이 피 흘리며 하나님의 저주와 심판과 진노를 담당하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절대로 가망이 없고 도무지 소망이 없었던 진노의 자식이었던 것을 알 때 우리는 십자가를 자랑하게 되고 나아가 십자가만 자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왜 하필이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어야 했을까요? 다른 방법으로 죽으시면 안 됩니까? 다른 여러 가지 죽으시는 방법이 있습니다. 교수형도 있고, 단두대의 처형방법도 있습니다. 만약 그렇게 죽으셨다면 우리는 십자가를 노래하지 않고 단두대, 올가미를 찬양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른 그 어떤 방법의 죽음도 인간의 죄를 처리하는 방법으로 인정치 않으십니다. 오직 나무에 달린 자마다 하나님의 저주를 담당한다고 신21:23과 갈3:13에 말씀하신 것처럼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달려 불같은 하나님의 심판과 저주를 당하셔야만 했습니다. 십자가외에는 하나님의 저주와 심판을 담당할 수 있는 죽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그 어떤 방법도 인간의 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합니다. 돈도 권세도, 지위도, 명예도, 철학도, 사상도 아무리 뛰어난 지능의 과학이라 할지라도 인간의 죄 문제만은 해결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오직 십자가만이 우리의 죄를 해결하고 구원하는 하나님의 지혜요 능력이 되기 때문에 우리는 바울처럼 십자가를 자랑하는 것입니다. 그 저주의 죽음, 그 치욕스러운 죽음만이 우리를 구원하는 유일한 하나님의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목 놓아 십자가를 찬양하는 것입니다. “십자가, 십자가 무한영광일세...”

사랑하는 여러분, 이 십자가의 사건은 한번만 경험하고 말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주님의 십자가 때문에 구원받은 사람들이라면 끊임없이 우리를 유혹하는 세상과 그 유혹에 자꾸만 끌려가는 우리의 타락한 자아를 매일매일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합니다. 지금 바울이 십자가를 통하여 세상이 내게 못 박혀 있다. 내가 또한 세상에 대해 계속해서 못 박혀 있다고 말하는 고백이 현재 완료로 고백하고 있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헬라어의 현제 완료는 계속되고 있는 상태를 나타내는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바울은 예수님을 만난 그 때부터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의 삶과 심령이 계속해서 십자가 사건에 경험적으로 영향을 받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처럼 십자가의 사건이 구원 받은 자의 삶속에서 끊임없이 계속되는 영적경험으로 남아있지 않는 한 우리는 세상 사람들과 다름없이 세상을 자랑하며 영적으로 무기력하게 되고 정상적인 신앙생활을 하지 못하게 될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저는 오늘 여러분에게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이 현재완료의 시점이 되고 있는지 묻고 싶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 사건이 지금도 여전히 여러분의 심령에, 삶에, 생각에, 욕망에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습니까? 더 이상 세상이 우리를 유혹할 수 없도록, 더 이상 내 삶이 세상의 유혹에 맞추어 장단을 맞추고 세상에 기쁘게 반응하는 삶이 되지 않도록, 더 이상 육체를 자랑하는 삶이 되지 않도록 매일 매일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고 있습니까?

왜 이것이 중요합니까? 그것은 우리가 계속적인 십자가의 경험을 통해 세상과 나를 죽이지 못한다면, 그래서 십자가를 자랑하지 못하게 된다면 고린도 교회처럼 문제 많은 교회와 문제 많은 신자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고린도교회는 오늘 한국교회와 가장 닮은 교회입니다. 그들은 우리 주 예수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고전1:2)이며, 세례를 받았으며(1:13) 또한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들(1:4)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교회는 부끄러운 실패를 경험하였습니다. 교회 안에 심각한 파당이 생기고(1:11,)가정은 파괴, 계모와 더불어 근친상간에 이르는 패륜의 물결들이 교회 안에서 조차 용납(5:1-)되고 있었습니다.

이 모든 문제는 그들이 그리스도인이 되지 아니한데 있는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인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십자가의 지배를 받지 못한 옛날방식 그대로 육체를 자랑했기 때문입니다. 상황은 다르지만 고린도교회나 갈라디아교회의 문제는 자기를 자랑하고 육체를 자랑하는 것이었습니다. 어째서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의 무리라고 불리어지는 고린도 교회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며 세례를 받고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한 고린도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이 이러한 신앙과 삶의 실패를 경험하게 되었습니까?

그들이 그리스도인들이면서 비 기독교인처럼 육체를 자랑하는 사람들이 된 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어째서 이들은 한 성령 안에서 같은 세례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나뉘어져 분쟁하고 있습니까? 빛의 자녀로 부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왜 이처럼 음란하고 타락한 세대의 자식처럼 살아가고 있습니까? 그들도 한 때 바울이 전하는 십자가의 복음 앞에서 “수다한 무리”가 되어 빈손 들고 나아가 믿고 세례를 받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행18:8) 그런데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그토록 소중한 복음의 경험을 버리고 이처럼 무지하고 죄 많은 세상의 풍조를 따라 살도록 만들어 버렸습니까? 무엇이 이들로 하여금 이처럼 도시의 정신에 매몰되어 타락한 방식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탈선하여 살아가도록 만들은 것입니까?

이들의 실패는 십자가에 대한 태도에 있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한때는 믿었지만 지금은 더 이상 그 십자가의 정신에 지배받지 않고, 한때는 십자가를 이해했지만 지금은 그 십자가가 그들의 관심사가 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고린도전서에서 그 교회의 문제를 나누기에 앞서 고전 1:18에서 2:16까지 무려 삼십여 절에 걸쳐서 그처럼 길게 십자가의 도에 대하여 말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입니다. 그들의 모든 문제는 다른 것이 아니라 바로 십자가를 놓친 결과이며 그로 말미암아 자신이 누구인지를 잊어버리게 되었고 그 결과 자기를 자랑하고 육체를 자랑하는 자리에 가게 되었다고 지적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갈라디아 교회와 고린도교회의 실패를 통해 우리의 삶을 들여다봅시다. 십자가를 잃어버리면 다른 것이 다 있다고 해도 교회는 교회다워지지 못하고 성도는 성도다워지지 못합니다. 그들이 십자가에 사로잡히는 일에 실패하자 성도의 이름은 더럽혀졌고, 세례는 무색하게 되었으며, 하나님의 은혜는 값싼 세상의 욕심과 교환되었고, 자신들이 어떤 파당에 속하고 있고 얼마나 많은 재물을 소유하고 있으며 어떻게 인생을 즐기며 살고 있는지가 자랑거리가 되었습니다. 성령께서 그들에게 은혜를 주셨지만 그들은 자신들에게 그런 신령한 은혜를 주신 하나님을 찬양하기보다 그것을 받은 자신들의 신앙적인 우월을 자랑하는데 급급하였습니다. 십자가가 무너지자 은사도 하나님의 교회를 섬기는 데 올바르게 기여하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이 모든 실패는 그들이 십자가를 붙들지 않고 십자가에 붙들려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자랑할 것이 아무 것도 없는 죄인입니다. 이런 죄인에게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이 임했습니다. 복음을 제대로 이해하고 구원을 제대로 이해한다면 결코 자랑할 수 없습니다. 생명도, 재물도, 건강도, 지식도, 구원도, 믿음도, 인간이 누리는 모든 것은 모두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이것을 안다면 자랑할 수 없습니다. 자랑한다면 이 모든 것을 주신 하나님을 자랑하고 예수님을 자랑해야 합니다. 아직도 은근히 학벌과 경력, 가문, 성공, 등을 내세우고 있지 않습니까? 혹시 나도 모르는 사이 기도와 구제와 금식과 봉사를 자랑하고 있지 않습니까?

내게는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 외에는 자랑할 것이 없다고 하는 바울의 음성을 들어보십시오. 그가 갈라디아서를 쓴 것은 다메섹에서 그리스도를 만난 지 삼십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후였습니다. 젊음과 패기에 넘치던 청년 시절은 지나가고, 윤기 있던 피부는 어느 듯 육로의 위험과 해로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춥고 패고프고 매 맞는 고난의 세월을 통하여 깊은 골이 파였습니다. 이별을 위한 순교의 종소리가 서서히 들려오는 인생의 석양에서 확신에 찬 음성으로 말하는 노 사도의 말을 들어보십시오.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오늘 우리의 자랑은 무엇입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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