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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양을 먹이라, 치라

요한복음 이재철............... 조회 수 5228 추천 수 0 2009.05.11 23:5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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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요21:15∼17 
설교자 : 이재철 목사 
참고 : 1998. 5. 24./주님의교회 주일낮 예배 

한 가수가 주님을 만났습니다. 진리 안에서 새 생명을 얻은 것입니다. 자연히 그는 모든 면에 걸쳐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가치 기준이 달라 졌습니다. 부르는 노래가 바뀌었습니다. 만나는 사람들이 바뀌었습니다. 무엇보다 모든 결정의 근거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주일이면 사업장의 문을 닫았습니다. 일반 대중을 상대로 하는 그의 사업장은 일주일 중 일요일의 매출이 가장 높았습니다.

그러나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는 제4계명 즉 하나님의 명령을 안 이상, 일주일의 첫날이 자신에게 가장 큰 매출을 안겨다 주는 일요일이 아니라 주님에게 받쳐져야 할 주일임을 안 이상, 그는 주일이면 주저 없이 사업장의 문을 닫는 것을 철칙으로 삼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종업원들의 발 앞에 무릎을 꿇고서 진심으로 그들에게 용서를 구했습니다. 그 동안 주일에도 영업을 해 왔음은 종업원들이 주님을 만나 주님께 경배 드릴 기회를 박탈한 범죄 행위라 여겨졌기 때문이었습니다.

지난 5월초 그는 하나님을 경배하는 찬양 콘서트를 개최하였습니다. 그가 하나님께 찬양을 드릴 때마다 많은 사람들이 소리 없이 눈물을 닦았습니다. 저도 그 중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만큼 그 공연은 은혜스러웠습니다. 그날 그 공연장이야말로 한 인간이 신앙인이 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잘 보여주는 본보기였습니다. 만약 그가 아직 주님을 만나지 못한 사람이었다면 그날 그가 부르는 노래의 레퍼토리가 달랐을 것입니다. 그 자리에 앉아 있는 청중도 달랐을 것이요, 그가 청중에게 던지고자 한 메시지도 달랐을 것이며, 공연장의 분위기 또한 광란 이상은 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주님을 만나므로 인하여 노래도 밴드도 청중도 분위기도 모든 것이 다 바뀌어지고 만 것입니다.

말하자면 그 한사람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세계가 완전히 달라진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참된 신앙의 실체입니다.

신앙이란 삶의 방향을 바꾸는 것입니다. 이제껏 걸어오던 길을 바꾸는 것입니다. 이처럼 새로운 방향으로 새로운 길을 걷노라면 전개되는 세계가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어둠의 세계에서 빛의 세계로, 죽음의 세계에서 생명의 세계로, 욕망의 세계에서 진리의 세계로, 굴종의 세계에서 자유의 세계로, 카오스의 세계에서 코스모스의 세계로 향한 대전환이 일어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믿음의 성숙도란 바로 이 새로워진 세계의 넓이, 즉 이 세계 속에 얼마나 많은 사람을 초청하고 수용할 수 있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것입니다.

새벽이 동터 오는 갈릴리 바닷가―그 새벽의 고요함을 깨트리고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물으셨습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그때마다 베드로가 대답했습니다.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주여!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주님께서는 주님을 세 번 부인했던 배신자 베드로에게 세 번이나 같은 질문을 반복해 주심으로, 베드로로 하여금 주님에 대한 사랑을 세 번 되풀이 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베드로의 사랑의 고백이 끝날 때마다 주님께서는 이렇게 명령 하셨습니다.
`내 arnion을 먹이라'
`내 probation을 치라'
`내 probaton을 먹이라'
주님께서는 이 세 번에 걸친 명령을 통하여 주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갓 태어난 새끼에서부터 시작하여 중간기를 거쳐 큰 양에 이르기까지 만나는 모든 양을 구별 없이 먹이고 치는 것임을 강조하고 계십니다. 즉 만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사람들에 대한 돌봄없이 주님을 사랑한다 함은 성립될 수 없음을 분명히 밝히신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는 지난주일 상세하게 살펴보았습니다. 그렇다면 주님의 양들을 치고 먹인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겠습니까?
양을 먹인다는 동사 bosko 그리고 친다는 동사 poimaino는 아무에게나 해당되는 단어가 아닙니다. 오직 목자에게만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그것도 어설픈 목자가 아니라 전문 목자이어야 합니다. 양을 먹이고 치는 전문 목자가 행하여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 있다면 무엇이겠습니까? 우리는 그 해답을 시편 23편 1절∼2절을 통하여 얻을 수 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 만 한 물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아무 꼴이든 눈앞에 있는 것을 양에게 먹이는 것은 비단 전문 목자가 아니라 하더라도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진정 좋은 목자란 자신의 양떼에게 최상의 꼴을 먹일 수 있는 초장과 최적의 안식처가 될 물가를 알고 그곳으로 양떼들을 인도하는 자입니다. 다시 말해 양떼들에게 가장 좋은 환경, 최선의 세계를 제공하는 자입니다. 그 세계를 향하여 양들의 방향을 바꾸어 주는 자입니다. 그 세계를 향하는 길 위로 양들을 인도하는 자 입니다.
그래서 방향과 길을 바꾼 양떼들 앞에는 최상의 세계가 전개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들을 인도하는 목자가 그 세계를 이미 알고 있는 그 세계의 전문가인 까닭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그 세계가 푸른 초장이요 쉴 만한 물가라 할지라도 그 속으로 인도하여 들인 양이 몇 마리에 불과하다면 그 목자는 전문 목자일 수가 없습니다. 참된 목자란 최상의 세계속으로 한 마리라도 더 많은 양을 인도하고 수용하며 책임지는 자임은 두말할 나위조차 없습니다.

그렇다면 주님을 진정으로 사랑하기에 주님의 양들을 치고 먹이는 자란 어떤 자라 정의 할 수 있겠습니까? 먼저 그리스도안에서 자신의 세계가 바뀌어진 자요, 그 생명의 세계, 진리의 세계, 빛의 세계 속으로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은 사람을 인도해 들이는 자입니다. 다시 말해 그 세계를 향하여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은 사람의 삶의 방향과 길을 바꾸어 주는 목자가 되는 것입니다.

400년에 걸친 에집트의 노예 생활로부터 해방을 얻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유를 찾아 나온 역사적 기록이 구약성경 두 번째 책인 출애굽기입니다. 이 출애굽기를 영어로는 exodus라고 합니다. 그 의미는 `대 이동' `대 탈출'이란 뜻입니다. 1∼20명 혹은 수백 명이 아닌 거대한 한 민족이 출애굽 했다는 관점에서 본다면 그것은 대 이동이요, 출애굽할 때 마치 도망치듯 황급히 나왔다는 의미에서 본다면 대 탈출임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영어 exodus의 어원인 헬라어 exodos의 본뜻은 `대 이동' 혹은 `대 탈출'과는 거리가 멉니다.

주전 250년경 랍비들이 히브리어로 기록되어 있는 구약성경을 당시의 공용어인 헬라말로 번역하면서 출애굽기의 제목을 헬라어로 exodus라 붙인 이래, 이것은 출애굽기의 공식 명칭이 되었습니다. exodos란 전치사 ex와 명사 hodos가 합쳐진 합성어인데 ex란 `∼로부터' 혹은 `∼밖으로'란 뜻이고, hodos란 `길'이란 의미입니다. 따라서 `ex-hodos'의 본래 의미는 `그 길 밖으로'의 뜻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제껏 걸어오던 길을 바꾸었다는 말이요, 방향을 바꾸었다는 말입니다. 죄악과 죽음과 어둠과 욕망의 노예 상태를 상징하는 애굽의 길을 벗어 던졌다는 것입니다. 어디를 향하여? 가나안을 향하여, 가나안에 이르는 길을 향하여 말입니다. 그렇다면 `ex-hodos'의 참된 의미는 세계의 전환입니다. `ex-hodos'하므로써 애굽이란 어둠과 죽음과 욕망의 노예된 세계가, 가나안이란 빛과 생명과 자유의 세계로 바뀌게 된 것이었습니다.

이 `ex-hodos'의 대역사를 이끈 자가 누구였습니까? 바로 모세였습니다. 어떻게 그가 이 일을 이룰 수 있었습니까? 하나님의 인도하심 속에서 그는 이미 40년전에 ex-hodos를 실천했던 사람, 애굽이란 어둠의 세계를 벗어 던진 자였기 때문입니다. 비록 그의 몸은 40년 동안 미디안 광야란 공간 속에 거하고 있었지만, 그의 심령 속에는 이미 새로운 빛의 세계가 찬란하게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그 세계를 품고 애굽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그 세계 속에 이번에는 400년 동안 어둠의 노예 생활하던 그 백성들을 품었을 때 가나안을 향하여 이스라엘 민족의 세계가 바뀌어지는 대장정이 시작되었으니, 바로 이것이 출애굽의 의의요 ex-hodos의 본질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모세는 훌륭한 목자였습니니다. 이와같은 출애굽의 역사, ex-hodos는 구약에만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신약시대에도 있었습니다.

우리는 변화산 사건을 잘 알고 있습니다. 어느 날 주님께서 제자 중 베드로와 요한 그리고 야고보만을 데리고 기도하러 높은 산으로 올라가셨습니다. 그곳에서 제자들은 놀라운 광경을 목격하게 됩니다. 기도하시는 예수님의 용모가 변화되어 얼굴이 해같이 빛나며 옷이 빛처럼 희어지는 것이었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그 순간 하늘에서 모세와 엘리야가 내려오더니 주님께서 그들과 더불어 말씀을 나누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무슨 말씀을 나누었는지를 누가복음은 이렇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문득 두 사람이 예수와 함께 말하니 이는 모세와 엘리야가 영광 중에 나타나서 장차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을 말씀할 새"(눅 9:30∼31)
주님께서는 이제 곧 당신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에 대하여 말씀을 나누셨습니다. 별세란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실 것을 의미함은 물론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별세하실 것'이란 이 단어를 헬라어 원문은 ex-hodos, 즉 출애굽기의 제목과 꼭같은 용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바로 주님의 십자가가 ex-hodos, 또 하나의 출애굽기였습니다. 십자가야 말로 죽음과 멸망으로 이를 수밖에 없는 세계에서 벗어나 영원한 생명과 부활의 세계로 이르게 해 주는 길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목자중의 목자, 목자장이 되셨습니다. 이처럼 주님께서 먼저 ex-hodos 하시사 우리를 영원한 새 세계로 품어 주셨기에 우리가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을 깨닫는다면, 이 세계 속으로 한사람이라도 더 많은 사람을 인도해 들이는 이 시대의 ex-hodos, 이 시대의 출애굽기를 우리의 삶으로 엮어 나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ex-hodos는 그냥 엮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ex-hodos는 자기희생, 자기헌신을 기꺼이 감당하는 자에 의하여만 이루어집니다. 출애굽기의 대역사는 모세의 자기 희생과 헌신 위에서 이루어졌고, 부활의 ex-hodos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을 통하여 전개되었습니다. 이것은 마치 양초가 자기를 태우는 희생을 감수하므로 빛의 세계를 던져 주고, 소금이 스스로 소멸되는 헌신을 주저치 않으므로 생명의 세계를 제공해 주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이것은 아무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한 번 깊이 생각해 보십시다. 양초가 자기를 태우는 것이 과연 자기의 희생이기만 합니까? 소금이 스스로 녹아지는 것이 정녕 자기 헌신입니까? 빛을 발할 수 없는 양초라면 그것은 이미 양초가 아닙니다. 양초라면 반드시 어둠 속에 빛의 세계를 던져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 양초는 필히 스스로를 태워야 합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양초의 자기 희생이 아니라 스스로 빛의 세계가 되기 위한 자기 승화입니다.

짠맛을 낼 수 없는 소금이라면 그것은 주님의 말씀처럼 길가에 버리워져 사람의 발아래 짓밟히는 무용지물일 뿐 어떤 경우에도 더 이상 소금이 아닙니다. 소금은 짠 맛을 내어야 생명을 지킬 수 있고 이를 위해서는 반드시 녹아야만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소금이 기꺼이 녹아지는 것이야말로 스스로 생명의 세계로 화하기 위한 자기 존중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영원한 생명의 세계로 향하는 길을 우리에게 열어 주시기 위하여 당신 자신이 십자가 위에서 죽으셔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만약 그분이 우리를 위하여 죽으시지 않았다면 인간으로 오신 그 분이 어찌 우리를 위한 임마누엘 하나님이 되실 수 있겠습니까?

그 분이 십자가 위에서 스스로 당하신 죽음이야말로 하나님으로서 하나님이신 하나님 당신을 증거 하는 하나님의 자기 증명이었습니다. 출애굽의 대역사를 위하여 모세는 자신의 여생을 온전히 던져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경우 모세의 말년이 미디안 광야에서 의미 없는 실패자로 끝나 버렸을 것을 감안한다면, 모세의 자기 던짐이야말로 하나님으로부터 새세계를 얻은 목자로서의 자기 완성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를 못박고 자기를 불태운다는 것은 엄청난 아픔이요 고통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를 불태우지 않거나 자신을 못박지 않고서야 어찌 자신을 빛으로 생명으로 승화시킬 수 있겠습니까? 자신을 던지지 않고서야 어찌 타인을 수용하는 빛과 생명의 세계로 자신을 완성시켜 갈 수가 있겠습니까?

 그렇기에 그 아픔은 아픔일 수만은 없습니다. 그것은 마치 해산하는 여인의 진통이 아픔으로 시작하나 태어난 생명으로 인해 환희로 끝나듯이, 새로운 ex-hodos의 시발점이기에 전혀 다른 차원의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깨달은 베드로는 이 이후 사도행전의 막을 여는 첫 목자가 되었습니다. 사도행전이 무엇입니까? 어둠과 죽음의 세계 속에 있는 사람들을 빛과 생명의 세계로 인도해 낸 또 다른 출애굽기, ex-hodos를 이루어 낸 목자들의 이야기입니다. 이처럼 베드로는 진리의 빛을 위해 자신을 불태우므로 `내양을 치고 먹이라'는 주님의 명령을 완수 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진리의 배신자였던 자기 자신에 대한 눈부신 자기 승화였습니다.

진리 안에서 자기를 못박고 진리를 위해 자신을 불태우기를 두려워 마십시오. 그것은 자기를 빛으로 승화시키는 동력입니다. 그것은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은 사람을 위하여 이 시대의 ex-hodos, 이 시대의 출애굽기를 자신의 삶으로 기록하는 목자의 지혜입니다. 그것은 바로 목자장 되신 주님을 사랑하는 참 그리스도인 됨의 사랑의 증거입니다.
그렇기에 내 양을 먹이라는 것은 다른 사람을 위하기 이전에 바로 나 자신을 바른 사람 만들어 주시려는 주님의 은총이요, 사랑입니다.
 
기도 드리시겠습니다.
 
진리의 배신자였던 우리를 변함없이 사랑하여 주시사 죽음과 어둠의 세계로부터 우리를 빛과 생명의 세계로 ex-hodos 시켜 주신 주님을 사랑합니다. 이 세계속으로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은 생명을 인도해 들이기 위하여 이 시대의 빛과 소금이 되기를 주저치 말게 하소서. 그것은 자기 희생이 아니라 자기 승화요, 자기 존중이요, 자기 완성을 뜻하기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주님에 대한 우리 사랑의 증거임을 잊지 않게 하소서.진리를 위하여 자신을 불태우는 우리의 삶이 많은 사람의 삶의 방향을 바꾸어주는 생명의 신호등이 되게 하소서.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은 사람의 삶의 길을 바꾸어 주는 진리의 길잡이가 되게 하소서. 경제 위기 속에서 지칠 대로 지친 이 나라의 백성들을 위해, 이 시대의 ex-hodos를 엮어 가는 진정한 출애굽의 목자들이 되게 하옵소서.
― 아 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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