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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족할 줄 아노라

요한복음 이재철............... 조회 수 2477 추천 수 0 2009.05.12 00:1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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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요21:25 
설교자 : 이재철 목사 
참고 : 주님의교회 주일낮 예배/ 1998. 6. 21 창립10주년/임직식/고별설교 

 92년 4월 넷째 주일이래, 지난 6년 2개월 동안 함께 은혜를 나누었던 요한복음 마지막 장 마지막 절은 이렇게 끝나고 있습니다. `예수의 행하신 일이 이외에도 많으니 만일 낱낱이 기록된다면 이 세상이라도 이 기록된 책 을 두기에 부족할 줄 아노라'
 
이것은 요한복음의 마지막 절인 동시에 4복음서를 종결하는 최종 구절이기도 합니다. 만약 이 마지막 구절이 없었다면, 우리의 신앙은 필경 4복음서의 틀 안에 갇혀 기형화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마지막 구절로 4복음서가 끝남으로 인하여, 우리는 4복음서를 토대로 하여 성경 전체를 통해 계시되신 삼위일체 하나님으로서의 예수 그리스도와 바른 만남, 바른 사귐, 바른 섬김을 가질 수 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인간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던 임마누엘 하나님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온 곧 인류를 위해 시공을 초월하여 이 땅위에서 행하신 일이 어찌 고작 4복음서에 기록된 것뿐이겠습니까? 비천한 갈릴리의 어부에 불과했던 요한 사도 한 사람에게 베풀어주신 은혜에 대해서만도, 요한은 요한복음보다 훨씬 더 긴 책을 쓸 수 있었을 것입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지난 2천년 동안 이 땅을 거쳐간 수없이 많은 그리스도인들 개개인에게 주님께서는 요한 사도에게와 똑같은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 한사람 한사람들의 삶이 다 한결같이 책 한권 분량 이상의 은혜로 가능할 수 있었음을 감안한다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요한 사도가 이렇게 말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할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의 행하신 일이 이 외에도 많으니 만일 낱낱이 기록된다면 이 세상이라도 이 기록된 책 을 두기에 부족할 줄 아노라'
 
예수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행하신 행적과 베푸신 은혜를 모두 기록할 경우 이 세상이라 할지라도 그 모든 책을 수용하기에 부족할 것이라는 이 말씀을 다르게 표현한다면, 우리를 향하신 주님의 은혜는 너무나 크고 엄청나서 주님 안에 거하는 한 우리에게 부족함이 있을 수 없다는 의미가 될 것입니다. 다윗이 무엇이라 노래했습니까?―"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시23:1)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목자로 삼은 자에게 무슨 부족함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이런 의미에서 주님의 은혜를 모두 기록한다면 세상이 부족할 것이라는 요한의 고백과, `내가 부족함이 없다'는 다윗의 노래는 같은 의미의 다른 표현일 뿐임을 알게 됩니다.

그러나 만약 요한 사도의 이 고백으로 모든 것이 끝나 버렸다면, 오늘 아침 우리가 이 구절에 관심을 가질 이유가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창립 10주년을 맞이하는 오늘 요한복음의 이 마지막 구절에 유의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바로 이 구절과 엇물려 사도행전의 막이 오르고 있음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 마지막 구절을 교량으로 하여 4복음서와 사도행전이 연결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슨 의미이겠습니까? 복음 안에서 부족함이 없는 주님의 은혜를 깨닫는 자만 사도행전의 삶을 펼쳐 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부족함이 없는 은혜―이것만이 사도행전의 문을 여는 열쇠요, 그 막을 올리는 동력입니다. 배운 것도 가진 것도 없던 갈릴리의 어부들이 어떻게 사도행전의 증인들이 될 수있었겠습니까? 복음 안에서 얻은 부족함이 없는 주님의 은혜였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부족함이 없는 주님의 은총 속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사도행전의 삶을 살았습니까? 거창한 구호부터 제정했었습니까? 각분야 전문가들의 자문을 구해 야심찬 마스터플랜부터 세웠습니까? 예루살렘 성전보다 더 웅장한 예배당을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건축키 위해 전력투구했습니까? 아닙니다. 그들은 어느 곳에 있든 말씀의 증인 ―말씀을 전하고 말씀대로 살았을 뿐이었습니다. 그것이 전부였습니다. 그런데 제사장들을 비롯한 당시 유대교 지도자들은 그와같은 사도들을 죽이려 안달하였습니다. 그들의 눈으로 볼 때 사도들이 하는 짓이란 기존의 모든 질서를 파괴하는 불온한 반체제 행위요, 그같은 짓을 자행하는 사도들은 사회를 뒤흔드는 불순 세력에 지나지 않았던 것입니다.

과연 사도들은 전혀 무익한, 아니 해롭기 만한 불순 무리들이었습니까? 아닙니다. 그들은 명실공히 사도로써 말씀대로 살았을 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종교 지도자들이 말씀의 증인이었을 뿐인 사도들을 불순 세력으로 간주하고 거세하기 위해 안달했다는 것은, 그들 자신들이 하나님의 말씀과는 전혀 동떨어져 있었음을 증명하는 증거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당시 예루살렘 성전을 중심으로한 유대교 집단과 사도들의 무리를 비교해 본다면, 그 양자 사이에는 조직적으로나 수적으로나 자금 면에서나 규모면 에서나 도저히 비교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의 엄청난 차이가 있었습니다. 적어도 외형적으로만 본다면 거대한 유대 종교 집단이 사회적으로 훨씬 더 큰 영향력을 가져야 마땅했습니다 그러나 새 역사의 대업은 볼품없던 소수 사도들의 무리에 의하여 전개되었습니다. 그들에 의해 인류의 역사가 새로와 진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동떨어져 있을 때 유대교 집단이 아무리 거대하고, 예루살렘 성전이 아무리 웅장해도 세상을 밝히는 진리의 등불일 수 가 없었습니다. 오히려 그것은 세상의 어둠을 가증시키는 흑암의 원천이었을 뿐입니다.

반면에 세상적으로는 비천하기 짝이 없었던 사도들에 의하여 어떻게 새 역사가 전개될 수 있었습니까? 그들은 비록 비천하고 소수였을 망정 주님의 말씀대로 살 때, 말씀되신 주님께서 친히 그들을 도구 삼아 역사 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도들로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었지만, 주님으로서는 결코 불가능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사도행전이란 실은 무엇입니까? 부족함이 없는 주님의 은혜를 깨달은 사람들이 주님의 말씀대로 살 때, 그들을 통하여 주님께서 이 땅위에 친히 펼치신 주님의 역사, 곧 `예수행전'인 것입니다. 사도행전을 주님의 영이신 성령님을 일컬어 `성령행전'이라 부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오늘은 주님의교회 창립 10주년이 되는 주일입니다. 10년이란 한 시대의 매듭을 짓는 날입니다. 그 동안 우리 교회는 늘 개혁이란 관점에서 한국 교계의 주목을 받아 왔습니다. 마치 개혁의 선봉에선 교회인 것처럼 인식되어 온 것입니다. 적지 않는 사람들이 우리를 가리켜 소리 없이 혁명을 일으키고 있다는 표현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엄밀한 의미에서 사실이 아닙니다. 우리는 단 한 번도 의도적이거나 인위적으로 개혁 혹은 혁명 그 자체를 우리의 목적으로 삼았던 적이 없었습니다. 단지 우리는 주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애썼을 뿐입니다.

주님께서 인간의 야망과 욕망으로 더럽혀진 예루살렘 성전을 가리켜 강도의 굴혈이라 부르신 반면 주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을 일컬어 교회라 정의해 주셨기에, 우리는 그저 건물에 불과할 뿐인 예배당을 소유하려하지않고 교회인 우리 자신들을 그리스도안에서 바로 세우기에 주력했을 뿐입니다. 옛날 이스라엘 사람들이 바치는 두 번의 십일조 중에서 첫 번째 것은 성전을 위하여 그리고 두 번째 것은 이웃을 위하여 사용하라고 말씀하셨기에, 헌금의 50%로 이웃과 나눔을 실천해 왔을 뿐입니다.

헌금이란 내게 있는 모든 것이 주님께로부터 왔음을 믿고 고백하는 증표로 드리는 것이라 말씀하셨기에, 주님의 것을 주님께 바르게 바쳐 드리기 위하여 헌금 봉투에서 우리 이름을 삭제했을 뿐입니다. 주님께서는 주님을 믿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가리켜 구별없이 제사장이라 말씀하셨기에, 주일 낮 예배 시간에 안수 받지아니한 서리 집사들까지도 남녀 불문하고 순서대로 대표 기도를 드리고 있을 뿐입니다. 주님께서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인간의 고백 위에 분명히 `내 교회' 즉 사람의 교회가 아닌 주님의 교회를 세우신다 말씀하셨기에, 어떤 경우에도 우리 자신이 주님의 교회를 특정인간의 교회로 전락시키는 범죄를 부지중에라도 저지르지 않기 위하여 임직자들의 임기를 스스로 정하여 실천하고 있을 뿐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지난 10년간 단지 주님의 말씀대로 살려 했을 뿐인데도, 결과적으로 그것이 사람들에게 개혁과 혁명으로 받아 들여졌다면, 그리고 도처에서 여러 교회들이 우리를 본받고자 하고 있다면, 이것이야말로 가슴아프게도 이 땅의 많은 교회들이 주님의 말씀과 멀어져 있음의 반증 아니겠습니까? 다수의 교회들이 주님의 교회로부터 인간의 교회화되었음의 역작용 아니겠습니까? 만약 이것을 부정할수 없다면, 이 땅위에 하늘을 향해 솟아 있는 교회들의 십자가가 부지기수임에도 불구하고 이 사회가 새로워지기는 커녕, 날이 갈수록 더 부패해지는 이유를 이제야 밝히 알 수 있습니다. 말씀에서 멀어진 교회란 또 하나의 단순한 이해 집단에 지나지 않기에, 이해관계로 얽히고 설킨 이사회의 문제를 해소하기보다는 심화시킬 따름입니다.

그렇다면 또 다시 새로운 10년을 맞이하는 문턱에 선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참으로 더럽고도 더러운 죄인이었던 우리의 죄값을 친히 십자가 위에서 못 박혀 대신 치루어 주시므로 우리에게 새 생명을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부족함이 없는 은혜 속에서, 더더욱 말씀대로 살기 위해 늘 경건의 훈련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부지중에라도 말씀에 등돌리는 일이 없도록 우리의 심령을 말씀에 동여 매어야 하지 않겠습니끼? 그때 말씀대로 살고자 하는 우리를 통하여 이 시대를 위한 `예수행전'이 더 눈부시게 전개될 것입니다. 우리는 올해의 표어를, 21세기를 내다보면서 이사야 43장 18절∼21절에 근거하여 `새일을 행하리라'로 정한바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매사에 철저한 말씀의 증인되어 역사를 새롭게 하시는 예수행전의 도구 되는 것 외에, 이 세상에 도대체 무슨 새일이 있겠습니까? 참된 새로움은 유한한 세상이 아니라 오직 영원 속에만 존재합니다.

돌이켜 보면, 제 개인적으로도 지난 10년은 주님의 부족함이 없는 은혜의 연속이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수치스럽기 짝이 없는 과거의 소유자에 지나지 않는 제가 이곳에서 목회자로 쓰임 받는 감격을 누렸습니다. 매주일 말씀을 전하면서 성경의 문외한이었던 제가 먼저 말씀의 광맥을 캐어 내는 은총 속에 거하였습니다. 중단 없이 교회가 성장하는 보람도 맛보았습니다. 무엇보다 여러분들과 같은 훌륭한 교우님들과 함께 신앙 생활하는 벅찬 환희를 누렸습니다. 제가 아무리 강단에서 소리쳐 말씀을 외친다 할지라도 여러분들이 말씀을 따라 살려하지않았다면, 오늘과 같은 주님의 교회는 결코 존재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말씀 속에서의 변화를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기뻐하였기에, 주님의 교회는 명실공히 주님의 교회일 수 있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주님께서 베풀어 주셨던 은혜였습니다. 그렇기에 교회 학교 학생을 포함한 2천 6백여 교우 여러분 한분 한분은 저를 향한 주님의 부족함이 없는 은혜인 동시에, 주님을 향한 저 자신의 신앙고백이기도 합니다. 여러분들과의 아름다운 만남을 주선해 주시고 주관해 주신 분이 주님이셨던 것입니다. 이 엄청난 은혜를 2천 6백권의 책엔들 어찌 다 피력해낼수가 있겠습니까? 설령 하늘을 두루마리 삼고 바다를 먹물 삼는다 할지라도 불가능할 것입니다.

이제 저는 주님의 이 측량 불가능한 은혜에 보답하기 위하여 10년의 임기를 마치고 약속대로 주님의 교회를, 여러분을 떠납니다. 주님을 사랑하고 여러분을 사랑하기에, 이 땅의 모든 교회는 주님이 주인 되시는 주님의 교회이어야 한다는 주님의 말씀을 훼손치 않기 위하여 저는 떠납니다. 10년이란 세월은 한편으로는 짧기도 하지만, 그러나 한 인간의 영상이 깊이 새겨지고 우상화 되기에는 충분히 긴 세월입니다.―지금 이 교회의 곳곳에는 주님의 영상보다 이재철의 영상이 더 짙게 새겨져 있습니다.

사람들은 `주님의교회'하면 주님은 제쳐놓고 먼저 이재철 목사를 연상합니다. 주님의 교회가 오늘의 모습으로 있게 된 것이 마치 이재철의 역량인 듯, 이재철에게 찬사를 보냅니다. 주님의 역사를 경험하고서는 주님께 감사드리려 하기보다는, 이재철에게 감사하려 합니다. 우리가 지난 10년간 그토록 애써왔음에도 불구하고 이와 같은 실정이라면, 우리 교회인들 어찌 조만간 인간의 교회로 전락치 않겠습니까? 삼위일체 되신 하나님의 말씀보다 하찮은 인간에 불과한 이재철의 말을 더 신뢰하려는 불상사가 어찌 일어나지 않겠습니까? 제가 만약 제 자신의 인간적 야망을 성취하기 위하여 교인들을 거짓된 길로 인도하려 한다 할지라도, 절대 다수가 의심 없이 따라오지 않는다는 보장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저 자신이 주님의 자리에 앉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우리 모두의 불행일 뿐입니다. 인간이 주인된 교회를아무리 열심히 다닌다 할지라도 우리가 궁극적으로 만날 곳은 공동묘지 이상 일수는 없습니다.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이 어떻게 인간을 공동묘지 너머로 인도해 갈수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오늘 기쁨으로 여러분들을 떠납니다. 하찮은 이재철이란 인간의 굴레와 한계로부터 여러분들을 해방시켜드리기 위하여 떠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들을 주님에 의한 주님의 사람으로 더욱 든든히 세워 드리기 위하여 저는 떠나갑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저는 오늘 여러분을 떠나면서 주님을 믿는 한 인간으로서 고해 성사하는 심정으로 고백 드립니다. 지난 10년 동안 주님의 교회를 위해, 그리고 여러분들을 위하여 제가 한 것이라고는 단언하거니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만약 제가 제 능력으로 무엇을 하고자 하였더라면, 이 교회는 주님의 교회가 아니라 사람의 교회로 이미 무너지고 말았을 것입니다. 저는 단지 주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주님의 말씀에 따라 있어야 할 곳에 있었을 뿐입니다. 그때 주님께서 친히 주님의교회를 오늘의 아름다운 모습으로 가꾸어 주셨습니다. 모든 것이 다 주님께서 하신 일입니다. 주님의 교회는 100퍼센트 주님의 작품입니다. 이 사실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이 바로 저 자신이기에, 다음 주일부터 임영수 목사님께서 오시게 되었음을 누구보다 기뻐하지않을수 없습니다.

뉴질랜드에 갔을 때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별―남십자성이 밤하늘에서 반짝이는 것을 보았습니다. 같이 하늘이라 불리지만 한국에서 보는 하늘과 뉴질랜드의 하늘이 동일하지 않았습니다. 그 어느 쪽도 진정한 하늘 일수가 없었습니다. 그것은 모두 하늘의 한 부분이었을 뿐입니다. 따라서 하늘 전체를 알기 위해서는, 지금 내가 지금보고 알고 있는 하늘이 모두가 아니라는 자기부인부터 시작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따라서 여러분들께서는 이제부터 저를 잊으셔야합니다. 저를 기억한다는 것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새로운 목사님이 오셨음에도 불구하고 떠나버린 목사에게 집착한다는 것은, 한국에서 보이는 하늘만을 하늘이라 우기는 것과 같이 어리석은 일일 뿐입니다. 임영수 목사님은 이 시대에 가장 영성이 깊은 목회자입니다. 이제 다음 주일부터 임영수 목사님을 통하여 이제껏 까지는 전혀 경험치 못했던 더 크신 주님을 바라보며, 부족함이 없는 더 크신 은혜를 누리십시오. 그리고 주님의 그 크신 은혜에 응답드리면서 매사에 투철한 말씀의 증인이 되십시오. 주님께서는 여러분들을 통해 주님의교회를 21세기를 향한 교회의 표본으로 더 아름답게 빛어가실 것이요, 주님의교회를 통하여 이 나라의 역사 속에 예수행전―당신의 새일을 펼쳐 가실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웃으며 서로 작별을 고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헤어짐이 있는 곳에 주님과의 뜨거운 만남이 있습니다.
`너희는 이전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적일을 생각하지 말라. 보라 내가 새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사43:18∼19a)

기도 드리시겠습니다.
주님! 지난 10년동안 한결같은 은혜를 베푸시사 우리 모두 주님의 교회되는 감격을 맛보게 해 주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주님의 은총이 늘 이곳에 함께하여 주시기를 간구드립니다.
저는 지난 10년 동안 주님의 명에 따라 이곳에서 주님을 가리키는 손가락 역할을 하다가, 이제 주님의 때가 되어 저의 손가락을 거두고 떠납니다. 지금 주님 앞에 머리 숙인 교우님들의 심령속에, 행여라도 주님보다 주님을 가리킨 제 손가락의 영상이 더 깊이 새겨져 있다면, 이 시간 주님의 보혈로 친히 씻어 주시고 지워 주시기를 바랍니다. 혹 저의 부족함으로 인하여 상처받은 영혼들이 있다면 이 죄인의 허물을 용서하여 주시고, 그 분들의 심령을 따뜻하게 위로해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다음 주일부터 말씀을 전하여 주실 임영수 목사님을 통하여 모든 교우님들이, 지난 10년 동안 예기치도 못했던 더 크신 주님, 더 부족함이 없는 주님의 은혜를 체험케 하옵소서. 그 은혜로 인하여 모든 교우님들이 더 더욱 말씀의 증인들이 되게 하여주옵소서. 날마다 말씀을 쫒아 사는 교우님들을 인하여, 지난 10년 동안의 주님의교회보다 앞으로의 주님의교회가 더 밝은 진리의 빛을 이 세상을 향해 발할 수 있게 하여 주옵소서. 주님께서 주인 되신 주님의교회가 21세기 새 역사의 문을 여는 열쇠로 쓰임 받게 하여 주옵소서.
10년 동안 부족한 종에게 넉넉한 마음의 형님 되어 주었던 장로님들, 자상한 누님이었던 권사님들, 사랑하는 친구였던 교우님들, 혈육처럼 가까웠던 교역자들, 주님의교회를 위하여 보이지 않는 곳에서 헌신을 마다치 않았던 모든 신실한 주님의 종들, 그리고 오늘 직분을 받는 임직자들이 부족함 없는 주님의 은총 속에서 다 예수행전의 도구들이 되어, 일평생토록 주님의 새 일을 이 땅에 이루어 가는 기쁨 속에서 살아가는 자들이 되게 하여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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