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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전3:1-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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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조용기 목사 |
참고 : | 2004년 6월 13일 주일3부설교 |
“천하에 범사가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이 이룰 때가 있나니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 죽일 때가 있고 치료 시킬 때가 있으며 헐 때가 있고 세울 때가 있으며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춤출 때가 있으며 돌을 던져 버릴 때가 있고 돌을 거둘 때가 있으며 안을 때가 있고 안는 일을 멀리 할 때가 있으며 찾을 때가 있고 잃을 때가 있으며 지킬 때가 있고 버릴 때가 있으며 찢을 때가 있고 꿰맬 때가 있으며 잠잠할 때가 있고 말할 때가 있으며 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으며 전쟁할 때가 있고 평화할 때가 있느니라 일하는 자가 그 수고로 말미암아 무슨 이익이 있으랴 하나님이 인생들에게 노고를 주사 애쓰게 하신 것을 내가 보았노라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의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 사람이 사는 동안에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는 줄을 내가 알았고”
[서론]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현재와 과거 그리고 미래”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우리는 현재라는 시간에 살고 있기 때문에 온통 관심사가 현재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자식이 있기 위해서는 부모가 있어야 하는 것처럼 현재가 있기 위해서는 반드시 과거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현재는 미래를 낳는 모체가 됩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과거의 역사에서 현재를 만드시고 현재에 일하셔서 우리의 미래를 만들어 내시는 것입니다.
[본론]
1. 현재에서 되돌아본 과거
첫째로, 우리는 현재가 있기 위해서 걸어온 과거를 반드시 돌아 보아야 됩니다.
왜냐하면 현재는 하나님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살아온 과거를 돌이켜 보면 길목마다 하나님이 함께 계셨던 발자취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여러분 요셉을 한번 보십시오. 요셉이 애굽의 국무총리가 되고 난 다음에 그 높은 보좌에 앉아서 과거를 거듭거듭 되돌아 보았을 것입니다. 요셉은 애굽에 오지 않았었으면 애굽의 국무총리가 될 리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가 애굽으로 오기 위해서는 형들에게 팔려야만 되었습니다. 형들에게 팔려갈때는 절망적으로 불행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보좌에 앉아서 생각해 보니 그 불행속에 하나님의 손길이 있었던 것을 바라볼수가 있었습니다. 애굽은 노년에 라엘에게서 얻은 요셉을 각별히 사랑하므로 형들이 불평을 많이 말했습니다. 게다가 요셉이 꿈을 두번이나 꾸고 형들에게 꿈자랑을 하매 형들이 더욱 미워했습니다. 형들이 세겜에서 양떼를 칠 때 아버지 야곱이 형들에게 음식을 갖다 주고 정황을 살펴 오라고 했을 때 요셉이 오는 것을 보고 형들이 요셉을 죽이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창세기 37장 18절로 20절에 보면 “요셉이 그들에게 가까이 오기 전에 그들이 요셉을 멀리서 보고 죽이기를 꾀하여 서로 이르되 꿈 꾸는 자가 오는도다 자, 그를 죽여 한 구덩이에 던지고 우리가 말하기를 악한 짐승이 그를 잡아먹었다 하자 그 꿈이 어떻게 되는 것을 우리가 볼 것이니라 하는지라”
그래서 형들이 요셉을 잡아 빨가벗기고 마른 우물에 던져 넣었다가 나중에 아라비아 대상이 지나가는 것을 보고 요셉을 은 20냥에 종으로 팔아 버리고 말은 것입니다. 요셉이 돌이켜 볼 때 그때는 형언할 수 없는 좌절이요, 절망이었지만 이제 총리대신이 되고 난 다음 보니 그것이 모두 하나님의 섭리요, 큰 은혜였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때는 캄캄하여 하나님이 어디계신지 모르겠으나 이제보니 형들이 그들을 잡아서 옷을 벗기는데도 하나님이 계셨고 마른 우물에 던져 넣은 그 우물에도 하나님이 계셨고 아라비아대상에게 팔려갈때도 하나님이 함께 계신 것을 환하게 볼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우리의 삶의 뒤를 돌아보면 골목마다 하나님이 같이 계신 것을 체험적으로 볼수 있습니다. 요셉이 보디발의 집, 종살이 10년은 너무나 괴로운 것입니다. 그는 청소년 시절을 종으로써 뼈가 으스러지는 수고를 하며 살았습니다. 그때마다 많이 울고 가슴을 치고 통탄하고 아버지가 보고 싶어서 몸부림쳤을 것입니다. 어디에도 하나님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고 국무총리가 되어 돌아보니 보디발의 집 종살이 10년은 반드시 필요한 교육이었습니다. 방대한 애굽의 국민들을 다스리는데 어마어마한 인내가 필요한데 그 인내의 교육을 보디발의 집 종살이 10년 동안에 배우게 된 것입니다. 그는 인내의 교육이 필요했습니다. 종살이가 괴로웠지만 실상은 인내의 특수학교에 하나님이 입학시켜서 공부를 시킨 것입니다. 그때는 몰랐으나 세월이 지나고 돌아보니 환하게 볼 수 있었습니다. 그 훗날에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당했습니다. 그 일조차도 하나님이 선으로 바꾼 것을 보았습니다. 그때는 이렇게 억울한 일이 세상에 어디 있느냐. 내가 어떻게 하다가 보디발의 아내에게 참소를 당해서 짓지 않은 죄를 지었다고 뒤짚어 쓰고 시위대 뜰 감방에 갖힐수가 있느냐. 너무나 고통스럽고 괴로웠습니다. 보디발의 아내가 요셉을 아무리 꾀여도 요셉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창세기 39장 9절로 10절에 “이 집에는 나보다 큰이가 없으며 주인이 아무 것도 내게 금하지 아니하였어도 금한 것은 당신 뿐이니 당신은 자기 아내임이라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 하리이까 여인이 날마다 요셉에게 청하였으나 요셉이 듣지 아니하여 동침하지 아니할 뿐더러 함께 있지도 아니하니라”
그런데도 불구하고 보디발의 아내의 참소로 시위대 감옥에 갖혔습니다. 기가막힌 절망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살펴보면 너무나 큰 하나님의 은총이요, 섭리였습니다. 왜냐하면 그 감옥에 안갖혔으면 바로왕을 만날 도리가 없습니다. 감옥에 갖혔기 때문에 그곳에서 바로왕의 떡장관, 술장관을 만나게 되었고 떡장관, 술장관의 꿈을 해석해 주고 그 꿈대로 떡장관은 사형을 당하고 술장관은 복직이 되어서 그 술장관이 천거로 말미암아 요셉은 바로왕 앞에 서서 바로의 꿈을 해석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 때문에 요셉이 보디발의 집 뜰에 있는 감옥에서 3년동안 옥살이 해야 되는가. 그렇게 물을 것입니다. 그러면 요셉이 종살이 할 때는 너무 바빠서 기도하고 묵상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감옥 3년에 그는 많은 시간을 가지고 기도하고 묵상하여 영성을 기르고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했기 때문에 바로왕에 섰을 때 바로의 꿈을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 능히 해석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 3년의 기도생활이 얼마나 중요했습니까? 3년의 묵상과 하나님의 교통이 있었기 때문에 영안이 밝아지고 영의 귀가 밝아지고 영의 깨달음이 밝아져서 바로의 꿈을 명쾌하게 해석해 주어서 애굽과 전 중동을 굶주림에서 건질수 있는 지도자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과거 그 당시에는 너무나 불행한 사건들이 애굽의 총리가 된 현재에 뒤돌아 볼때는 모두가 하나님의 섭리요, 은혜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나중 야곱이 아버지 가족을 다 거느리고 고센땅으로 그 아들 요셉을 쫓아 왔습니다. 요셉의 형들이 야곱이 죽은후에 요셉이 미워해서 벌을 할까 두려워해서 죄를 용서해 달라고 와서 엎드려서 빌었을 때 요셉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당신들은 나를 헤아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당신은 두려워 마소서.”
돌이켜 본 요셉의 과거는 그 당시에 처절한 고통이고 절대절망이었으나 이제는 그것이 하나님의 황금길이요, 은총이요, 축복이요, 영광의 역사였다는 것을 깨달아 알수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과거 그 당시에는 하나님의 역사를 알수가 없었습니다. 지나고 현재 돌아보면 과거에 하나님이 같이하신 그 발자취를 어느곳에나 발견할수 있고 여러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수가 있습니다. 여러분 저도 종종 이제는 과거를 되돌아 봅니다. 나이가 이제 칠십이 가까웠으니 어릴 때 옛생활을 돌이켜 보고 하나님이 나와같이 계신 것을 기억하고 감사를 할 수밖에 없습니다. 제가 17살에 치명적인 폐병에 걸렸습니다. 그때는 너무나 큰 불행이었습니다. 왜 이런일이 내게 다가옵니까? 나의 꿈은 산산조각으로 다 깨어지고 폐병환자로써 희망이 없습니다. 어떻게하여 나는 그렇게 절망에 처했냐고 그때 탄식하고 하나님은 계시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에 와서 돌이켜 보니 그 너무나 큰 절망이 너무나 큰 행복의 시간이었습니다. 그때 폐병에 걸려서 안쓰러졌으면 예수 절대 안믿었어요. 대대로 불교집안에서 예수를 믿을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폐병으로 쓰러지고 앞날이 캄캄하고 절망에 처했을 때 하나님이 찾아 오실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보면 그 사건은 하나님의 위대한 축복이요, 하나님의 섭리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그것이 너무나 큰 불행이요, 괴로움이었습니다.
시편 23편 3절로 4절에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찌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때는 천지를 살펴보아도 주님이 보이지 않습니다. 나홀로 고독하게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지나는 것 같지만 세월이 지나고보면 아 그때 하나님이 계셔서 지팡이와 막대기로 나를 이끌어 주셨구나 하는 것을 고백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저는 불광동 대조마을의 개척시절에 너무나 가난하고 서러웠습니다. 끼니가 없고 춥고 고통스러워서 너무나 괴롭고 많은 시간을 울면서 주님앞에 부르짖어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돌아와 보니 그때 환경이 있었기 때문에 오늘 희망의 복음, 삼중축복, 전인구원의 신학을 깨달을수 있었습니다. 그때 내가 좋은 목회장소에 가서 호위호식하며 평안하게 목회했더라면 하루에 다섯시간씩 엎드려 몸부림치며 기도하고 하나님 앞에 발버둥치며 부르짖고 가난하고 헐벗고 굶주리고 죽어가는 사람과 함께 먹고, 입고, 자고, 슬퍼하면서 하나님 앞에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의 신학을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과거를 돌이켜 보면 그 당시에는 쓰고 고통스럽고 괴로운 환경이었지만은 이제는 그것이 천금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귀한 축복이 된 것입니다. 저는 서대문시절을 돌이켜 봅니다. 1964년도에 과로로 쓰러졌습니다. 그래서 저를 들것이 들고 적십자병원을 싣고 갔습니다. 의사선생님들은 저를 보고 너무 과로했고 심장이 아주 나빠졌기 때문에 목회를 계속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때 너무나 고통스러워서 “하나님 나는 한참 젊은 시절에 목회가 꽃피려고 하는데 왜 나를 버리십니까? 왜 나를 이렇게 병상에 들어 누웠습니까? 하나님 어디 계십니까?” 아무리 부르짖어도 하나님은 대답하지 않으셔서 나는 버림받은줄 알았는데 그래서 제가 정상적인 목회를 할 수 없기 때문에 그때에 성경을 읽다가 개발한 것이 구역시스템인 것입니다. 온세계에서 구역시스템을 개발하고 활성화시킨 것은 그때 저의 병을 통해서 그렇게 한 것입니다. 내가 정상적인 목회를 할 수 없고 심방도 못하고 하니까 우리 구역장들을 훈련시켜서 내 대신 심방하고 가르치고 기도해주고 은혜를 베풀고 새로운 신자들을 인도하도록 그렇게 조직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요사이 이 구역시스템은 온 천하에 알려져서 미국이나 구라파, 남미 할것없이 거대한 교회들이 다 이 구역시스템을 배워 가지고서 오늘날 큰 교회로 성공하게 된것입니다. 지금 제가 돌아보면 그때에 쓰러진 것이 참 잘되었습니다. 그때 안쓰러졌으면 제가 기고만장하여 어린나이가 교회가 성장하니까 날좀보소. 날좀보서. 아주 내가 교만하고 오만하고 자랑하고 모든 것은 다 내가 해야 된다고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쓰러졌기 때문에 나의 힘이 한계점에 도달하고 내 힘으로 할 수 없었기 때문에 평신도들을 훈련해서 구역을 조직하고 수많은 평신도를 훈련해서 주의 사업을 함께 하도록 했으므로 오늘날 이렇게 큰 교회가 되고 또한 그것이 모범이 되어 온천하에 교회들을 부응시키고 성장시키는 원동력이 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가 과거를 돌이켜 보면 그때 쓰디쓴 체험이 오늘에는 달고단 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만 되는 것입니다.
과거당시에 너무 괴롭고 캄캄하던 일들이 오늘에 와서 되돌아 볼 때 오늘을 만들기 위한 하나님의 손길인 것을 우리가 알고 감사를 드려야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10절에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 사도바울 선생은 고백한 것입니다. 교회음악역사상 가장 뛰어난 작곡가로 평과되는 사람은 요한 세바스찬 바하입니다. 그러나 그의 생애는 고난과 좌절의 연속이었습니다. 바하는 10살도 되기 전에 아버지와 어머니를 예의였습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아내는 결혼한지 13년째 되는해에 죽었고 그의 자녀중 한명은 정신박악야였습니다. 또 그는 논연에 과로로 인해 여러 가지 병을 얻기 시작했고 1750년에 두분의 눈을 수술 받았는데 결국 시련장애자가 되어서 앞을 보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후에는 뇌출혈로 쓰러저 반신불수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억센 고통과 실현이 다가왔습니다만 그는 이 모진 고난과 시련이 거듭되어 와도 독실한 루터교 신자였던 그는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고 고통이 다가올수록 더 많이 기도하고 주님께 매달리고 성령충만하여 놀라운 하나님의 영감과 계시를 받아서 그는 음악을 통하여 작극을 계속했습니다. 그가 작곡을 한 음악마다 마지막에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라는 것을 꼭 기록했습니다. 오늘날 세계는 이 바하 음악을 통해서 큰 영감을 받고 감독한 없습니다. 바하의 그 쓰디쓴 고난과 괴로움이 없었더라면 오늘날 바하음악은 산출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바하의 생애는 인간적인 눈으로 보면 처절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고난 앞에서도 꿈과 믿음을 잃지 않고 하나님을 찬미하고 주께 매달렸습니다. 바하에게 고난은 오히려 놀라운 영갑을 받는 계기가 되어서 불후의 명작들을 남길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고난을 받을 때 그 당시에는 고난이 너무나 세지만 훗날에 보면 그 고난이 바로 하나님의 우대한 계획과 섭리속에 있다는 것을 까달아 알수 있는 것입니다. 미국의 유명한 에드슨, 처드슨 박사는 뉴욕시의 기념교회의 봉헌식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고난과 성공은 언제나 함께 다닙니다. 만일 여러분 중에 고난없이 성공한 분이 있다면 그것은 그분이 이전에 어떤 사람이 대신 고난을 당했기 때문입니다. 또 성공하지 못한채 고난만 받고 있다고 낙심하지 마십시오. 아마 그 고난 때문에 누군가 앞에 다가오는 사람은 반드시 성공의 미소를 지을수 있을 것입니다. 십자가 없이 부활이 없는 것처럼 고난의 텃밭이 없이 성공의 아름다운 장미꽃은 피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벤자민 프랭클린은 말하기를 “동산지기의 가위는 나무에게 유익하다. 동시에 고난은 인생에게 유익한 것이다”고 말했습니다.
맹자는 하늘이 큰 책임을 사람에게 맡길때는 반드시 그 의지를 괴롭게 하고 그 근육을 수고롭게 한 후에야 큰 책임을 맡긴다고 말했습니다.
어느 시인은 “하나님은 두 저울이 있는데 하나는 고난의 저울이요, 하나는 위안의 저울이다. 고난의 저울이 차야 위안의 저울도 찬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께서 과거에 당한 수많은 고난 가운데 하나님이 어디 계십니까? 몸부림쳤지만 오늘날 돌아보면 하나님은 바로 고난의 현장에 계셔서 그 고난을 변하여 영광으로 만드는 작업을 하고 계시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2. 현재의 고난
둘째로, 현재에 우리가 고난 당하면 우리는 뭐라고 말합니까?
“하나님 왜 내가 이런 고난 당합니까? 팔자를 탓하고, 왜 나는 이런 고난을 당하는가 다른 사람은 다 편안한데 왜 나만 고난당합니까?” 슬퍼울고 탄식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눈은 과거는 되돌아 볼수 있어도 미래는 한치앞도 내다보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현재에 고난당할 때 우리는 절망하고 마는 것입니다.
전도서 8장 7절에 “사람이 장래 일을 알지 못하나니 장래 일을 가르칠 자가 누구이랴”고 말했습니다.
전도서 7장 14절에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생각하라 하나님이 이 두 가지를 병행하게 하사 사람으로 그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매일 라디오, TV, 신문, 뉴스를 한번 보십시오. 젊고 아름다운 여대생 딸이 무참히 살해 당한후 부모의 그 슬픔과 통곡을 봅니다. 정직하고 성실한 사람이 잘못살고 우리가 보기에는 부정한 사람이 잘살고 있는 것을 보고 너무나 불공평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테러에 의해 죄없는 어린아이가 죽어갈 때 왜 저 죄없는 어린아이가 죽어 가야 되느냐고 우리는 탄식합니다. 술취한 운전사에 의해 차에 치어 죽은 남편을 안고 통곡하는 부인을 볼 때 너무나 술취한 운전사에 대한 미움이 꽉들어 찹니다. 이러한 일들이 수없이 일어나고 있는데 이럴때마다 우리는 말합니다. “하나님이 어디 계십니까? 세상에 하나님이 계시면 이렇게 불공평한 일이 일어날수가 있습니까? 정의가 어디 있습니까?” 그렇게 말합니다.
그러나 전도서 8장 11절에는 “악한 일에 징벌이 속히 실행되지 않으므로 인생들이 악을 행하기에 마음이 담대하도다”라고 말합니다.
잠언서 24장 19절로 20절에 “너는 행악자의 득의함을 인하여 분을 품지 말며 악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라 대저 행악자는 장래가 없겠고 악인의 등불은 꺼지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시편 145편 20절에 “여호와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는 다 보호하시고 악인은 다 멸하시리로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현재속에 하나님께서는 숨어서 계십니다. 과거를 되돌아 보면 하나님의 일하신 흔적을 뚜렷이 볼수 있지만 그러나 현재라는 시간속에는 하나님은 철저히 숨어 있습니다. 꽁꽁 숨어라. 머리카락 보인다. 하니님은 머리카락도 안보여 주십니다. 현재는 하나님이 숨어서 일하시는 것입니다.
이사야 45장 15절에 “구원자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진실로 주는 스스로 숨어 계시는 하나님이시니이다”
과거에 발자취는 보이는데 현재는 그렇게 숨어 계십니다. 우리가 그렇게 부르짖어 하나님이 어디 계시나이까? 하나님이여 나를 외롭게 내 던져 버리시나이까 주님께서 나를 이제 더 이상 사랑하지 아니하시나이까 부르짖어도 하나님은 숨어서 잠잠하게 대답하지 아니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숨어서 뭘할까요? 현재숨어서 내일을 빚고 계십니다. 내일을 지금 토기장이가 토기만들 듯이 빚고 계신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6장 7절로 8절 말씀대로 주님은 지금 우리가 하는 것들을 다 받아서 심고 거두는 법칙으로 내일을 심고 계신 것입니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하니님은 여러분 무엇을 심는지 그것을 현재 살펴 보시고 내일에 그대로 거두도록 섭리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시편 37편 1절로 2절에 “행악자를 인하여 불평하여 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를 투기하지 말지어다 저희는 풀과 같이 속히 베임을 볼 것이며 푸른 채소 같이 쇠잔할 것임이로다”
행악자. 불의를 행한자가 잘된다고 우리는 현재 불평하지만 숨어서 계신 하나님은 다 계산하십니다. 뭐라고 말씀합니까? 저희는 풀과 같이 속히 베임을 볼 것이며 푸른 채소 같이 쇠잔할 것을 하나님은 지금 그렇게 섭리하고 계신 것입니다.
시편 37편 10절로 11절에 “잠시 후에 악인이 없어지리니 네가 그곳을 자세히 살필지라도 없으리로다 오직 온유한 자는 땅을 차지하며 풍부한 화평으로 즐기리로다”
하나님은 오늘날 잠잠하게 계시고 숨어 계시지만은 그런 가운데서 모든 것을 살피시고 주님께서 보응하시는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날 미래 선에 대하여 보상하기 위해서 일하시고 계십니다.
갈라디아서 6장 10절에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찌니라”고 했습니다.
내가 착한일해서 뭐합니까? 누가 알아 줍니까? 아무도 못알아 주는데요. 그래요. 하나님이 알아 주십니다. 내 부모도 형제도 이웃도 친척도 국가도 몰라줘도 하나님은 오늘 숨어 계셔서 여러분의 착한 행실을 적고 계십니다. 보상해 주십니다.
영국의 한 시골에 있었던 일입니다. 한 부잣집 소년이 연못에 빠져 허우적이며 죽어가고 있는데 이웃에 있는 소년이 뛰어 들어가서 목숨을 걸고 이 부자집 아들을 건져 주었습니다. 그래서 부자집 아들과 이 소년은 친한 친구가 되었는데 부자집 아들이 하루 이 소년에게 물었습니다. “넌 장차 뭘하고 싶으냐? 꿈이 뭐냐?” “나는 런던에 가서 의과대학에 들어가서 의사가 되고 싶은데 돈이 없어서 갈수가 없다.” “그래?” 그래서 부잣집 아들이 아버지에게 가서 “내 생명을 구한 어린 그 소년이 런던에 가서 의학공부를 하고 싶어도 돈이 없다고 말하니 아버지 장학금을 좀 대주십시오.” 아버지가 기꺼이 장학금을 대주었습니다. 이 사람은런던에 가서 공부를 하여 의학박사가 되고 위대한 발명가가 되었습니가. 그가 바로 페니실링을 발견 알렉산더 플레밍 박사입니다. 그런데 알렉산더 플레밍 박사가 페니실링을 발견한지 얼마안되어 이 박사의 소년시절 친구였던 윈스턴 처칠 수상이 폐렴에 걸렸습니다. 한참 2차대전이 작열할 때 만일 그때 처칠이 죽었으면 유럽은 다 히틀러 손에 들어가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런 위기에 처칠에 폐렴에 걸렸습니다. 그때는 폐렴에 걸리면 죽는 것입니다. 항생제가 개발되지 않았기 때문에 병에 걸리면 죽어요. 처음으로 알렉산더 플레밍 박사가 페니실링을 발명했을 때인데 그때 마침 처칠이 폐렴에 걸려서 죽게 되니까 그 페니실링을 들고 뛰어 처칠병상에 갔습니다. 앓고 있는 처칠에게 “나는 당신의 도움으로 의과대학에 들어가서 공부하여 의학박사가 되고 페니실링을 발견했는데 이 페니실링을 처음으로 당신에게 쓰겠습니다.”하고 페니실링 주사를 놓아서 처칠이 살아났습니다. 알렉산더 플레밍 박사는 은혜를 갚았습니다.
우리가 이웃에게 행한 결국 우리 자신에게 돌아옵니다. 이것이 바로 현재속에서 내일을 빚고 계시는 하나님의 섭리이신 것입니다. 여러분이 선을 행하면 하나님이 그 선이 잊어지지 않기 위해서 숨어서 전부 기록하고 계신 것입니다. 언제고 그 선이 여러분에게 되돌아오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둡니다. 밀두대를 심으면 67대를 거두고 귀리 3대를 심으면 79대를 거두고 옥수수 3대를 심으면 60대를 거두고 감자 한쪽을 심으면 60개를 거두고 배 하나를 심으면 140알 이상을 거둡니다. 악의 씨를 뿌리면 재앙의 열매를 반드시 맺습니다. 선의 씨를 뿌리면 복의 열매를 맺습니다. 좋은 씨는 좋은 열매를 맺고 악한 씨는 악한 열매를 거두므로 우리는 항상 좋은말, 좋은 생각, 선한 마음으로 살도록 노력을 해야 됩니다. 오늘 여러분께서 언어, 심사, 행동을 어떻게 서는가를 내일에 거둘수 있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숨어 계시면서 여러분의 모든 행사를 기록하고 계신 것입니다. 눈에 안보인다고 하나님이 어디 계시느냐, 손으로 만질수 없다고 하나님은 일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현재 숨어 계시나 내일을 만들기 위해서 역사하고 계신 것입니다.
미국의 유명한 저술가요, 강연가인 루이스 부름필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50년의 생애동안 은행과 배우, 저술가, 농장주등 다양한 분야에 있는 많은 사람들과 친밀한 관계를 갖게 되었다. 그들의 만남을 통해 나는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돌려 줄 것이다 라는 보상의 법칙이 물리학이나 수학의 법칙처럼 아주 정확하게 작용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고 말한 것입니다. 여러분 성경은 저 하늘이 무너지고 이 땅이 꺼져도 일점일획도 변함이 없잖아요. 주라 그리하면 돌려 줄것이니 곧 후이되어 눌러 흔들어 넘치게 안겨 주리라는 주의 말씀은 오늘날도 역사하고 계신 것입니다. 주님은 오늘 숨어 계시지만은 하나님을 섬기는 자에게 복을 주기 위해서 기다리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 다같이 말라기 3장 14절로 18절 소리내어 읽어 보십시다.
“이는 너희가 말하기를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헛되니 만군의 여호와 앞에 그 명령을 지키며 슬프게 행하는 것이 무엇이 유익하리요 지금 우리는 교만한 자가 복되다 하며 악을 행하는 자가 창성하며 하나님을 시험하는 자가 화를 면한다 하노라 함이니라 그 때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이 피차에 말하매 여호와께서 그것을 분명히 들으시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와 그 이름을 존중히 생각하는 자를 위하여 여호와 앞에 있는 기념책에 기록하셨느니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나의 정한 날에 그들로 나의 특별한 소유를 삼을 것이요 또 사람이 자기를 섬기는 아들을 아낌 같이 내가 그들을 아끼리니 그 때에 너희가 돌아와서 의인과 악인이며 하나님을 섬기는 자와 섬기지 아니하는 자를 분별하리라”
하나님 지금 뭐라고 하십니까? 숨어 계시지만은 하나님께서 장차 하나님을 섬기고 따르는 자를 위해서 복을 베풀기 위하여 모든일을 계획하고 계신 것입니다. 장차 주님께서 돌아 오셔서 의인과 악인이며 하나님을 섬기는 자와 섬기지 않는 자를 분명히 분별하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잠언서 8장 17절로 18절에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부귀가 내게 있고 장구한 재물과 의도 그러하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미국에 어떤 부자가 토요일 밤에 마구를 만드는 가난한 대장장이를 찾아 갔습니다. 그는 말고삐를 내주면서 “이보오. 이것을 월요일날까지 만들어 주시오.” 그때 대장장이가 말하기를 “못해요. 시간이 없습니다.” “당신 내일 하루종일 시간있는데 뭘 시간이 없어.” “아니요, 나는 크리스챤입니다. 주일날은 문을 닫고 하나님을 예배하러 가야 하기 때문에 못합니다.” 그러니까 이 부자가 “배부른 흥정을 하는군. 어디 두고보자.” 그러면서 믿지 않는 이웃에 있는 대장장이에게 가서 그 일을 맡겼습니다. 그러니까 이웃의 대장장이가 찾아와서 “나는 최소한 자네에게 고마움을 표시해야 한다고 생각하네. 자네가 보내준 그 많은 손님들 때문에 무척 바쁘다는 사실도 말하고 싶다.”고 비웃었습니다. 주일날 일 안하니까 주일날 나오는 손님은 다 안믿는 대장장이 집으로 갔습니다. 사람들마다 손가락질했습니다. 그런데 이사람은 고집을 부리고 주일날은 문닫고 하나님을 섬기고 교회에 나가서 봉사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군인이 하루 그 대장장이를 찾아왔어요. “당신이 바로 일요일에는 일을 하지 않는다는 그 염치없는 사람입니까?” “네 그렇습니다. 저는 주일에는 일을 하지 않습니다.” “당신은 고객의 주문을 거절하는 것이 무례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예 무례할지라도 나는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내 인생에 사명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먼저 섬겨야 됩니다.” 그러니까 그 군인이 “좋습니다. 역시 듣던 그대로군요. 나는 다우닝장군입니다. 내가 오늘 여기에 온 것은 당신에게 볼일이 있어 왔습니다. 우리는 거대한 정부사업을 맡길만한 사람을 찾고 있었는데 마침 친구에게 당신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당신을 선택했습니다. 하나님을 그처럼 성실하게 섬기는 사람이면 거짓말 하지 않고 정직하게 할것으로 나는 생각했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면서 다우닝장군은 주문서를 내보내는데 이 사람이 입을 딱 벌렸습니다. 거대한 정부사업에 일을 맡으라는 것입니다. 호박이 넝쿨째 떨어졌습니다. 일약에 거부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며 성결하여 당장 손해를 보고 어려움을 겪는 것 같지만 그러나 낙심하지 말아야 됩니다.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하나님을 섬기는 자와 섬기지 않는자를 분별하시고 섬기는 자에게 특별한 복을 주시기로 지금 역사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믿고 순종하는 자의 미래는 확실합니다.
로마서 8장 28절같이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현재에 내가 보기에는 어둡고 캄캄하고 좌절하고 절망이고 고통스러운 것도 주님은 같이 하셔서 미래에 선이 되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는 믿음으로 살아야 됩니다. 눈에는 아무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소리 안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어도 하나님의 사랑을 믿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우리가 하나님을 경배하고 찬양하며 나가면 하나님이 눈에 안보이지만 같이 역사하사 나중에 뒤돌아 보면 위대한 은총을 베풀어 놓으신 것을 볼수 있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후서 2장 16절로 17절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를 사랑하시고 영원한 위로와 좋은 소망을 은혜로 주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께서 너희 마음을 위로하시고 모든 선한 일과 말에 굳게 하시기를 원하노라”고 바울은 말했습니다.
3. 현재가 심는 미래
셋째로, 현재는 미래를 심는 때입니다.
여러분 현재를 어영부영하고 지내면 안됩니다. 내일을 알기 위해서 점쟁이 집을 찾아가고 관상쟁이 집을 찾아가 손금을 보고 사주팔자를 보는데 그런 것 가지고 미래를 만들 수 없습니다. 미래는 만들어 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현재 여러분과 더불어 일하셔서 미래를 창조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현재 내가 하나님과 더불어 살면 그러한 쓸데없는 곳에 갈 필요가 없는 것은 하나님은 현재 여러분을 통해서 미래를 만드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아브라함 보십시오. 나이 75세에 하나님을 만나자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꿈과 믿음을 주었습니다. 아브라함은 75세에 꿈과 믿음을 마음에 품었으니까 그 꿈과 믿음이 그를 이끌어서 미래에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큰 민족을 이루고 복의 근원이 되었던 것입니다.
창세기 12장 1절로 2절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찌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고 말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바로 하나님 앞에서 현재 꿈과 믿음을 받아 들여서 그것을 간직하고 그대로 실천하니까 미래가 아브라함의 가슴속에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여러분의 미래는 지금 여러분의 가슴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어린아기를 잉태하던 어머니가 어떻게 아기를 낳습니까? 현재 내 마음속에 꿈과 믿음으로 잉태하지 않은 것이 미래에 우연히 생겨나지는 않습니다. 개인이나 민족의 미래는 현재 어떤 꿈과 믿음과 현명한 행동을 하는가에 달려있는 것입니다.
요엘서 2장 28절에 “그 후에 내가 내 신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이게 대다수 여러분들이 벌써 젊은이가 아니고 나이먹은 사람들이니까 이상은 못보아도 꿈은 꿀수가 있습니다. 마음속에 꿈을 품으세요. 우리가 하나님 앞에 말씀을 듣고 기도하면 성령이 여러분 나름대로 모두다 미래에 대한 꿈을 심어 주는 것입니다. 마음속에 지금 꿈과 믿음을 품은 사람이 미래를 생산하게 되는 것입니다. 꿈도 믿음도 품지 않는 사람은 미래가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꿈이 없는 민족은 망한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런데 꿈과 믿음을 마음에 품으면 시련이 다가옵니다. 왜, 내가 하나님 앞에 꿈을 꾸어 믿음을 가졌는데 시련가 고난이 다가오느냐. 그것은 꿈과 믿음대로 이루어주기 위해서 그릇을 만들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릇준비하지 않고 물을 부으면 물은 다 쏟아집니다. 자식에게 좋은 산업을 물려주려면 먼저 교육을 시켜야 되지 않습니까? 교육받지 않은 자식에게 재산을 남겨 주면 다 탕진하고 잃어 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큰 꿈을 품으면 큰 시련을 통하여 교육을 시키고 적은 꿈을 품으면 적은 시련을 통하여 교육을 시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시련과 환난을 통하여 우리를 교육시켜서 훌륭한 꿈을 소유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와서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 십수일이면 들어갑니다. 그것을 40년 동안 가나안에 방황했습니다. 왜냐, 젖과 꿀이 흐른다는 거창스러운 축복의 꿈을 품은 이상은 그 꿈을 받을 수 있는 그릇을 준비하는데 40년의 광야의 고난의 행진이 필요한 것입니다.
신명기 8장 15절로 16절 우리 같이 읽어 보십시다.
“너를 인도하여 그 광대하고 위험한 광야 곧 불뱀과 전갈이 있고 물이 없는 간조한 땅을 지나게 하셨으며 또 너를 위하여 물을 굳은 반석에서 내셨으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광야에서 네게 먹이셨나니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
보세요. 마침내 복을 주기 위해서 낮추시고 시험한다는 것입니다. 교만을 깨뜨리고 온유하게 만들고 하나님을 의지하게 만들고 난 다음에 마침내 복을 줍니다. 그러므로 여러분께서 내일에 대한 꿈을 받아들이고 믿음을 받아들이면 그 꿈과 믿음을 받을 수 있는 그릇이 되기 위해서 주님께서 여러분을 낮추시고 깨어지게 하시고 훈련하시고 그를 통하면 마침내 때가 오매 주님께서 여러분에게 축복의 문을 열어 주시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1장 3절로 4절에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는 다 천국꿈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엄청난 꿈입니다. 우리가 저 세상에 올라가서 눈물과 근심과 탄식과 이별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앓는 것이 없는 낙원에서 아버지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영원히 살 것은 얼마나 장대한 꿈이고 영광스러운 꿈이 아니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이 천국꿈을 품은 성도들이 이 땅에 사는 동안에 많은 시험과 환난을 당하는 것은 천국 꿈을 받아 들일 수 있을만한 그릇이 되기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천국에서 상을 크게 받을 사람은 많은 교육을 받아야 되고 상을 적게 받을 사람은 적은 교육을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해같이 빛날 사람은 큰 시련과 환난을 통하여 교육을 많이 받고 달같이 빛날 사람은 좀 덜 받아도 괜찮습니다. 별같이 반짝거리는 사람은 그보다 덜받아도 괜찮고 개똥벌레같이 반짝하고 없어질 사람은 편안하게 살다가 천당올라갈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가장 위대한 상급은 순교의 상급입니다. 목숨을 바치는 것 아무나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보통 사람에게 순교의 특권을 주지 않습니다. 순교의 특권을 주는 사람은 이 땅에서 목숨을 잃어버린 고난을 겪으나 하늘나라에 가서 최고의 영광을 누리게 할 사람인 것입니다.
로마서 8장 17절로 18절에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나타날 영광은 너무나 큰데 여기에 조그마한 고난 받고 난 다음 그 훈련 때문에 족히 비교할수 없는 하늘의 영광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4장 17절로 18절에 보면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간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
환난이 지극히 경하고 잠깐 당하는 환난을 통해서 우리에게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하나님은 이루어 주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현재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여러 가지 시험과 환난을 당할 때 낙심하지 말고 그 안에서 하나님을 의지하고 감사하고 찬미할 것은 이 시험과 환난이 우리에게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을 이루기 위해서 교육과 훈련을 시킨다는 것을 알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우리는 미래를 위한 올바른 선택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 땅에 살면서 나는 예수 믿고 교회가고 죄안 짓고 거룩하게 사는 것이 괴로우니까 예수 안믿겠다고 하면은 그 사람은 자기 운명을 선택합니다. 그러나 나는 좁은 길로 걸어가며 하나님을 섬기고 영광을 돌리며 살겠다고 선택한 사람은 영광스러운 미래를 선택하는 것입니다. 바른 선택을 한 사람이 어떻게 되는지 한번 봅시다.
요한계시록 21장 1절로 7절의 말씀을 다 같이 소리내어 읽으십시다.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보좌에 앉으신 이가 가라사대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또 가라사대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 하시고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로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유업으로 얻으리라 나는 저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이것이 여러분과 저의 미래인 것입니다. 너무나 분명하게 하나님이 미래를 이미 우리에게 보여주고 계십니다. 우리가 올바른 선택을 하고 주를 믿고 섬기고 이 세상에서 좁은 길을 걸어가면 이 영광스럽고 광대한 세계속에 들어가서 영광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다 잘못된 선택을 한 사람은 어떻게 될까요? 잠시동안에 세상인락을 위해서 쾌락을 따라 살고 마귀를 따라 살고 주를 거역하면 그 사람의 선택은 결국 어떻게 됩니까?
요한계시록 21장 8절 다같이 읽어 보십시다.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 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거짓말이 아닙니다.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이 있습니다. 여러분 요사이 신문과 라디오, TV에 하와이 섬에 용암이 붉은 강같이 흘러내리는 것을 우리가 보았습니다. 그것은 약과입니다.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지어서 새새 무궁토록 소금치듯 하며 고통을 당할것이라고 말했으니 여러분 잠시 세상의 안락이 영원한 좌절과 절망을 가져온다는 것을 알아야 될것입니다.
신명기 30장 19절로 20절에 “내가 오늘날 천지를 불러서 너희에게 증거를 삼노라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말씀을 순종하며 또 그에게 부종하라 그는 네 생명이시요 네 장수시니 여호와께서 네 열조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리라고 맹세하신 땅에 네가 거하리라”
생명과 사망의 길이 우리 앞에 있어요. 복과 저주의 길도 우리 앞에 있어요. 오늘 우리가 이땅에 살면서 선택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 안에는 생명과 복이 있고 예수 밖에는 죽음과 저주 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선택하는 것이 우리의 영원한 미래를 결정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미래가 어떻게 될것이냐, 이땅에 사는 동안에 우리가 무엇을 심고 거두며 무엇을 선택하는가 이것이 우리 미래를 결정하는 것입니다. 미래를 점칠 필요 없습니다. 미래를 알려 달라고 사람들에게 가서 손금을 내밀 필요가 없습니다. 미래는 그렇게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지금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심고 거둠을 통해서 여러분의 꿈과 믿음을 통해서 여러분의 선택을 통해서 현재 미래를 계획하고 계신 것입니다.
스코틀랜드의 메리여왕때 순교를 당했던 후퍼 주교의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후퍼주교가 예수를 믿는다고 잡혀가서 사형을 당하기 며칠전 그의 친구 한 사람이 그를 회유할 목적으로 찾아왔습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 친구가 넌지시 말을 했습니다. “인생은 달고 죽음은 쓰다네. 그러니 차라리 예수 안 믿겠다하고 사형을 면하고 달고단 인생을 취하라”고 친구의 의도를 눈치챈 후퍼 주교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장차 임할 죽음은 더욱 쓰고 장차 임할 삶은 더욱 달것일세. 그러니 자네가 무슨말을 해도 내가 믿고 가르쳤던 진리를 부정할수 없네.” 결국 그는 사형선고를 받았습니다. 그가 화형장으로 끌려갔을 때 그 앞에 메리여왕의 사면장이 든 상자가 놓였습니다. 생명을 건지기 위해서 예수 안믿겠다고 타협만 하면 마지막 기회를 주겠다는 것입니다. 그때 후퍼는 하늘을 향해 이렇게 소리쳤습니다. “주님! 만일 당신이 나의 영혼을 사랑하신다면 저 상자를 치워 주소서.” 그는 장차 임할 영광을 바라보며 죽음을 선택한 것입니다. 만일 그때 후퍼주교가 세상에 잠시있는 삶을 얻기 위해서 주님을 거부했더라면 그는 지금 지옥불에 타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잠시동안 육체의 고난을 당했으나 올바른 선택을 했으므로 영광의 보좌에 지금 앉아 있게 된것입니다. 성경은 고난을 견디고 끝까지 이기는 자에게는 하늘나라의 영광을 약속하고 있는 것입니다.
[결론]
하나님께서 잠잠히 계시며 숨어 일하시니 불신자나 조롱하는 자들이 하나님을 비웃고 하나님은 계시지 않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을 믿지 말고 내 주먹이나 믿으라.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 정말로 당돌하고 어마어마한 책임을 저야할 말들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밝은 마음으로 인생을 한번 뒤돌아 보세요. 여러분 인생을 뒤돌아 보면 여러분이 살아온 그 뒤안길에 구석마다 길목마다 하나님이 같이 하신 발자취를 발견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과거는 하나님의 발자취를 보여주지만은 현재는 하나님이 숨어 계셔서 역사하시고 미래를 만들어 가고 계신 것입니다. 그리고 현재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손길에 의하여 반드시 미래와 영혼에 열매 맺는다는 것을 알고 우리는 두려워하며 경건하게 살고 믿음과 순종의 삶을 살아야 됩니다. 며칠후 며칠후 요단강 건너가 만나리. 우리는 앞서거니 뒷서거니 얼마있지 아니하여 죽음의 요단강을 건너게 됩니다. 그러나 그 미래는 믿는 자에게는 너무나 찬란하고 영광스럽고 기가넘치는 은혜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같이 이땅에 짧은 세월을 살면서 그리스도를 부인하고 하나님을 배반하고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 세상 자랑을 선택한 사람은 형언할 수 없는 좌절과 절망과 영원한 죽음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불과 유황이 들끊는 지옥이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이 시간에 살면서 미래를 심고 있습니다. 과거는 돌이켜 보면 하나님이 우리와 같이 계신 것을 다 볼 수 있고 현재는 숨어서 역사하시나 하나님은 과거에 심은데로 현재 이루어주시고 현재 우리는 하나님 계신 것을 모르고 마음대로 행하면 파괴로써 거둘 것이요. 하나님을 경외하고 두려워하며 올바르게 심고 올바른 꿈을 가지고 올바른 믿음을 가지고 올바르게 선택하면 미래에 너무나 영광스러운 내일을 거두게 되실 것입니다.
[기도]
사랑이 많으시고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여!
주님께서 영원이란 시간속에 우리에게 과거를 주시고 현재를 주시고 미래를 약속해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아버지 과거는 우리가 돌아보면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계셔서 우리를 도와 주신 것을 너무나 잘알 수 있습니다. 발자국마다 하나님께서 함께 계신 발자국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는 주님이 숨어 계시고 밤이 다가오고 폭풍우가 다가와도 하나님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숨어계신 하나님께서는 현재 우리 가운데 끊임없이 섭리하시고 역사하시고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 준비를 하고 계신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현재 숨어 계시나 우리를 도와 주셔서 우리가 미래를 위해서 올바르게 심을 수 있도록 올바르게 꿈꿀수 있도록 올바르게 믿을 수 있도록 올바르게 선택할 수 있도록 도와 주시고 계시는 하나님 감사합니다. 우리 아버지여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나타나신 하나님이시여 우리를 도와 주셔서 성령의 능력으로 모두다 하나님께 올바른 믿음을 가지고 살게 도와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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