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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선교해야 하나?

마태복음 조용기............... 조회 수 1731 추천 수 0 2009.05.14 13:2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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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마28:18-20 
설교자 : 조용기 목사 
참고 : 2004년 6월 20일 주일2부설교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서론]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왜 선교해야 하나” 이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선교 말만 들어도 짜증을 냅니다. 우리 자신만 잘 믿으면 됐지 뭐한다고 남의 나라에까지 가서 선교해야만 합니까?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간단합니다. 한강에 사람이 빠져 허우적 거리고 있는데 나는 배를 갖고 물 위에 있으면서 그 허우적 거리는 사람을 건지지 않고 내버려 놓는다면 모든 사람이 우리를 보고 뭐라고 하겠습니까? 또 이웃에 불이 났는데 내 집에 불이 난것이라 아니라고 구경만 하고 119에 신고하지 않는다면 얼마나 나쁜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예수님을 믿어야 구원을 받고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영원히 유황불에 타는 지옥에 버림받게 되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전도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지탄을 받아야 마땅하고 나쁜사람으로 지칭 받아야 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그러면 꼭 예수만 믿어야 합니까? 예수 안믿는 사람들도 자기들 나름대로의 종교를 가지고 있는데요.” 그렇게 말합니다. 성경에는 “아들을 믿는자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치 않는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임하여 있다”고 말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이외에 구원이 없기 때문에 우리가 예수님을 전하는 것이지 예수님 이외에도 다른 길이 있다면 우리가 구원을 전하지 않아도 괜찮을 것입니다.
미국의 정치인으로 이리노이주 검찰총장을 지냈고 무신론자로 유명한 로버트 잉그소올은 반 기독교 강연자로 유명했습니다. 가는곳마다 기독교에 대해서 반대 입장에 서고 기독교를 미신이라고 질타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임종시에 딸이 어버지께 물었습니다. “아버지께서 이 세상을 사실날이 얼마남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저는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후에 아버지의 뒤를 따라가야 합니까?” 그러자 무신론자 잉그소올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지금까지 내가 주장한 무신론은 허무한 것이다. 나는 아직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한다. 그러니 너는 어머니를 따라 예수를 믿으라”고 말했습니다. 인간은 누구든지 죽음을 앞두고는 가장 진실된 말을 한다고 합니다. 평생에 그렇게 강조했던 그의 무신론의 강의도 죽을 때 자식에게는 그것을 권하지 못하고 그 어머니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서 믿으라고 권면하고 세상을 떠났던 것입니다. 사람이 한번나서 죽는 것은 정한 이치요, 죽고 난 다음에는 심판이 있습니다. 이 지옥 심판을 피할 길은 예수님밖에 없기 때문에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전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본론]
1. 예수님만이 유일한 길이시다

첫째, 길은 오직 하나 예수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 세상에 살면서 길을 잃어 본적이 있지요? 저는 지금도 훨씬 젊을 때 제가 시카고에서 한인 감리교회 부흥회를 하고 난 다음 밤 10시 쯤 되었는데 목사님이 “여기서 1시간쯤 달려가면 바닷가에 게요리를 하는데가 있는데 굉장히 맛있다”고 그리고 자꾸 가자고 그래요. 주인 목사님이 자꾸 가자는데 안따라 갈수가 없어서 추운 겨울에 눈발이 날리는데도 불구하고 1시간을 달려서 그 바닷가에 게집에 가니까 그날 휴일이라 문을 닫아 놓았어요. 그래서 이제 밤 11시가 되었습니다. 아무곳에도 먹을곳이 없어요. 저는 부흥회를 하고 난 다음 배가 아주 훌쭉했습니다. 그래서 돌아오는데 눈이 많이와서 길이 눈으로 덮여 있기 때문에 그만 그 어른이 길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이리 가도 막히고 저리가니 막히고 이길로 돌아가다가 안에 저길로 돌아가고... 무려 밤 11시에서 1시, 2시, 3시, 4시까지 방황을 하다가 보니까 어느 산속에 들어갔는데 그 앞에 큰 판이 서있어요. “이 경계선을 넘으면 무조건하고 기관총으로 총살합니다.”시카고에 있는 미사일 본부를 향해서 들어갔어요. 그러니까 이분이 핸들을 잡고 벌벌 떨고 땀을 흘리면서 “목사님 이제 나는 못가겠습니다.” 못가면 어떻게 하니 밤중에 산에 들어와가지고서 “아휴 나는 이제 못하겠습니다.” 그래서 할수없어 제가 그 자리에 엎드려서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 어찌하다가 4시간을 방황하다가 미사일 장치한곳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이제 조금만 움직이면 기관총이 쏴집니다. 죽게 되었습니다. 도와 주시옵소서.” 그런데 마음속에 하나님의 뜨거운 성령의 은혜가 임하시더니만 “아주 뚜렷하게 손가락이 하나 마음속에 나타나면서 ‘오른쪽으로 돌아라’”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오른으로 핸들 꺾으시오.” 그 다음 오른쪽으로 꺾으면 또 “바로가라” “왼쪽으로 꺾어라” 그런 지시가 마음속에 자꾸 내려오는데 언제까지 있느냐. 시내까지 내려올때까지 그 지시가 있더니만 그 다음에는 그 지시가 딱 끊어졌어요. 호텔에 들어오니까 새벽 5시입니다. 어찌나 그 목사가 밉든지 한 대 때리고 싶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긴장속에서 밤새도록 땀에 젖은 옷을 갈아입지도 못하고 굶었으니 아침이 되니까 눈이 팽해졌습니다. 저는 그것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길을 잃는다는 것은 잘못하면 목숨까지도 잃을 수 있어요.
제2차 세계대전당시에 많은 UN군들이 중동사막에서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들은 사막에 길을 잃고 방황하다가 신기루를 보았습니다. 사막에서 신기루가 떠서 물이 없는데 물이 흘러가고 물소리가 들리고 철렁거리는 호수가 보이기 때문에 모두다 물인줄 알고 첨벙첨벙 들어가서 물을 마셨는데 물을 마신 것이 아니라 뜨거운 모래를 잔뜩 먹고 기도에 모래가 꽉 들어차서 죽었습니다. 나중에 그들을 찾아온 후속부대가 보니 모두다 입에 모래를 잔뜩 물고 죽었습니다. 길을 잃는다는 것은 목숨을 잃을수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인간은 에덴 이후 길 잃어버린 존재인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버림을 받고 에덴에서 쫓겨나자 사람들의 영이 죽고 그들은 방향을 잃어 버렸습니다. 어디서 와서 왜 살며 어디로 가는지를 알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을 잃어버리면 인생길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담 이후로 인간들은 길을 잃어버린 존재가 되어 버리고 말은 것입니다. 자기의 정체성을 상실했습니다. 정체 불명의 사람들이 되고 말은 것입니다. 어머니 뱃속에서 태어나서 무덤에 들어갈 때까지 정체불명입니다. 어디서 와서 왜 살며 어디로 가는지를 알지 못하고 바람 부는데로 물결 치는데로 살다가 그냥 죽어 버리는 것입니다. 길을 안내한다는 사람들은 많은데 실상은 그 자신도 길 잃어버린 사람인 것입니다. 모든 성인들과 교주들은 길을 찾는 사람에 불과하지 길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공자님은 말하기를 “아침에 길을 찾을 수 있다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고 했습니다. 공자같이 위대한 성인군자도 그는 평생에 도를 찾는자요.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고 말했던 것입니다. 우리 나라에도 자기가 길이라고 하는 사람이 많이 있어요. 지금까지 밝혀진 우리나라의 신흥 종교수는 5백여개이며 이에 속해있는 신도는 200만명에 이르고 있습니다. 이단 교주들은 거의 모두가 공통적으로 자신을 신격화하고 우상화합니다. 한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에 자기가 하나님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20여명이나 되고 재림주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50여명이 있습니다. 이외에도 자신을 보혜사 성령, 엘리야, 다윗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그들은 모두 자신이 구원으로 가는 길의 안내자이거나 길 자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실상은 그 사람들 자체가 길을 잃어버리고 방황하는 불쌍한 존재들인 것입니다. 길은 오직 하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만이 우리의 길이 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말할 것입니다. 예수님만이 길이된다는 증명을 해주십시오. 예수님은
요한복음 14장 6절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말했는데 예수님이 길인 것을 무엇으로 알수 있어요? 예수님은 우리가 올라갈 목적지인 천국에서 사람의 몸을 쓰고 오셨기 때문에 당신이 있다가 오시는데 그 돌아갈 길은 그분밖에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지상에 사는 사람들은 천당에 올라간 적이 없어요. 그러나 예수님은 아버지 계신 천국에서 이 땅에 육신의 몸을 쓰고 오셨기 때문에 당신이 오신 그 길을 돌아갈수가 있으신 것입니다. 주님은 천국에서 오신 분인 것입니다.
요한복음 1장 14절에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아버지께로부터 왔기 때문에 아버지께로 돌아가는 길을 아시는 분은 예수님밖에 없습니다. 그의 강림하심이 유일한 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가는곳마다 어두움에 방황하는 우리에게 빛을 비취셨습니다. 죄인에게는 용서받는 빛을 비춰 주었습니다. 마귀에게 잡힌자는 해방되는 빛을 비춰 주었습니다. 병든자는 치료의 빛을 비춰 주었습니다. 절망자에게는 소망의 빛을 비춰 주었습니다. 죽은자에게는 생명의 빛을 비춰 주었습니다. 예수님 자체가 빛이시기 때문에 빛에게는 어둠이 없습니다. 아무리 어두워도 빛이 비추면 어두움이 사라지잖아요. 예수님은 빛이시기 때문에 예수님 자체가 바로 길이 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을 통해서 보면 그리스도만이 길인 것을 알수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다 영원히 죽은 것은 죄 때문에 죽은 것입니다. 죄로 말미암아 우리 영혼이 죽고 하나님께로부터 쫓여 나서 길을 잃어 버리고 말았는데 이 죄를 누가 청산해 줍니까? 죄를 청산해 주시지 않고는 우리가 영이 살아날 수 없고 영이 살아날 수 없으면 하나님 앞에 나갈 길도 찾을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아무리 진리를 가르치고 도를 깨닫게 하고 수양과 도덕과 고행을 하라고 해도 죽은 사람이 그런 수양과 도덕과 고행을 통해서 살아나는 법이 없습니다. 죄로 말미암아 죽으심으로 죄를 사하고 영이 살아나고 그리고 하나님 앞에 인도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 일을 하신분은 예수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무슨 도를 전하고 수양과 도덕의 길을 가르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죄와 불의, 추악과 저주, 절망과 죽음을 혼자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몸을 찢고 피를 흘려 모든 죄의 빛을 청산하시고 다 이루신 분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 죄가 용서 받으니까 하나님의 성령이 오셔서 우리 영혼이 살아나고 우리 영혼이 살아나니까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 아버지를 바라보게 되고 예수님이 길이 된 것을 알수있게 된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은 그리스도만이 길인 것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3장 13절로 15절에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말했습니다. 하늘에서 내려온자 인자 이외에는 하늘에 올라간자가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 하늘에 올라간다고 말했지만은 그 사람들은 다 가는길을 몰라요. 하늘에서 내려온 예수님만이 돌아갈 길을 알고 계신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죽으셨다가 우리 죄를 청산하고 부활하셔서 당신이 계신 곳으로 올라가셨습니다. 부활승천 하셨습니다. 그 증거로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늘에서 오시고 하늘로 돌아가신 그분이 우리의 길을 분명히 아시는 분이고 그 분이 보낸 성령께서 우리를 인도하사 천국으로 데리고 가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용서받고 의인이 되는 길이 되신 것입니다. 거룩하고 성령충만을 받는 길이 바로 예수님이 되신 것입니다. 우리가 병에서 고침받고 건강을 얻게 되는 길이 바로 예수님인 것입니다. 우리가 저주에서 해방을 얻고 아브라함의 복과 형통을 받는 길이 바로 예수님인 것입니다. 우리가 장차 부활하고 천국에 영생으로 들어가는 길이 바로 예수님인 것입니다.
공자는 아침에 길을 찾을 수 있다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고 말했고, 석가는 길을 찾기 위해 집을 나와 10년간을 방황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길을 가르치신 적이 없습니다. 예수님 말씀하기를 “내가 곧 길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길을 찾지 않으셨어요. 길을 가르치지도 않으셨어요. 주님이 바로 길이신 것입니다. 바로 빛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의 용서와 의를 얻는 길을 찾으며 거룩함과 성령충만의 길을 찾으며 치료와 건강의 길을 찾으며 축복과 형통의 길을 찾으며 부활과 영생과 천국의 길을 찾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예수님을 전하지 아니할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밖에 있는 사람은 모두다 길을 잃어 버린 사람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2. 예수님만이 절대 진리이시다
둘째로, 예수님을 우리가 전해야 되는 것은 예수님만이 절대 진리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예수님과 비슷한 상대적인 진리가 있지를 않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를 믿어 좋고, 다른 것을 믿어도 좋다 하지만은 여러분 예수님은 절대 진리로 그와 비교하고 동등하게 취할 수 있는 상대적인 진리가 없습니다. 상대적인 진리가 있다고 꾸며대는 것은 마귀의 거짓말입니다.
요한복음 8장 44절에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장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
마귀는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입니다. 그래서 마귀가 자기가 진리라고 말하는데 거짓말투성이입니다. 마귀는 아담과 하와를 속였잖아요. 선악과를 따먹고 하나님을 배반하면 하나님처럼 된다고 했던 마귀의 거짓말을 믿었다가 아담과 하와는 영이 죽고 버림받고 말았잖지 않습니까? 마귀는 예수 그리스도 우리의 길되시고 진리 되시는 주님을 속이지는 못했습니다. 40주 40야 금식하고 나왔을 때 마귀는 와서 “네가 정말 하나님 아들이냐? 정말 하나님 아들이냐? 증명하라. 그러기 위해서는 돌을 떡으로 만들어 먹으라. 너 중탑에서 뛰어 내려라. 천하만국의 영광을 보이면서 내 앞에 절하면 주겠다.” 이렇게 유혹을 했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그 스스로가 길이요, 진리인 것을 알았기 때문에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면 그런 것은 네가 만일 길이면 만일 진리면 이렇게 해보라고 하는 유혹을 했는데 주님은 그 만일자를 따르지 않았었습니다. 주님은 그 자체가 길이요, 진리인데 거기에 만일을 붙일수가 없잖아요. 마귀의 유혹에 예수님은 넘어가지 않으셨습니다. 온 세상은 오늘날 마귀에게 속아 있습니다.
요한일서 5장 19절에 “또 아는 것은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고 온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처한 것이며”
악한 마귀가 온 세상을 점령하고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점령해서 유물론 즉 모든 것은 물질밖에 없다는 유물론이나 진화론, 인간은 조그마한 아메바에서 발전하고 진화해서 오늘날 인간이 되었다는 이런 논리. 인본주의, 인간이 우주의 중심이며 역사는 인간이 만든다고 하는 인본주의. 물질만능주의, 물질만 있으면 모든 것이 오케이라고 하는 만능주의. 쾌락주의, 내일 죽을것이니 오늘 먹고 마시자는 이러한 잘못된 사상으로 인간들을 미혹하고 있는 것입니다. 18세기 계몽주의 이후로 사람들은 하나님을 떠나 자유를 선포하고 인간은 이성과 과학을 무한이 발전시켜서 인간의 힘으로 지상에 천국을 가져올수 있다고 말해서 하나님을 배반했습니다. 그러나 18세기 계몽주의 이후로 인간의 이성과 과학을 발전시킨 것은 살상무기밖에 없습니다. 1차 세계대전으로 온 세계가 초토화되고 겨우 일어나자 마자 또 2차 세계대전을 통해서 수천만의 목숨을 앗아가고 그 이후에 다가온 냉전으로 말미암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희생을 당하고 죽었으며 오늘날은 전 세계를 수십번이라도 싹쓸어 버리고 폭파 시킬수 있는 무시무시한 대량 살상 무기를 개발한 것이 오늘날 소이 인간이 말하는 인간이 자랑하는 이성과 과학의 결과인 것입니다. 1923년 시카고에 있는 한 호텔에서 그 당시 미국 최고의 갑부 7명이 모여 회의를 했는데 온 신문에 대서특필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재산을 다 합치면 미국의 국고를 능가하는 그런 재산을 가진 부자들이었습니다. 25년이 지난 후 한 기자가 그들의 생애를 추적하여 발표했는데요. 카네기 강철회사의 후계자로써 강철회사로서 강철회사 사장이었던 찰스 스웹은 무일푼의 거지가 되어 25년에 후에 죽었습니다. 알써 커튼은 밀농사로 거부가 된 사업가로 그도 파산하여 모든 것을 잃고 고독하게 죽었습니다. 리처트 휘트니는 뉴욕은행의 총재였지만 감옥에서 여생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앨버트 홀은 미국의 재무장관까지 지냈지만 감옥에서 막 풀려나와 집에서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리버 모아는 웰스포리트의 회장이었고 리온 프레이즈어는 국제은행 총재였는데 둘다 망해서 자살했습니다. 이반 크루거는 부동산업계의 거부였지만 자살미수로 병원 치료를 받고 있었습니다. 미국의 뒤흔들만한 일곱명의 재산가들이 25년에는 모두다 이렇게 되고 말았습니다. 마치 솔로몬의 전도서를 읽는 것 같습니다. 헛되고 헛되며 또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물질만능주의, 쾌락만능주의가 가져온 것은 파멸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만 믿어야 됩니다. 예수님만이 참말을 말하는 것입니다. 유물론 거짓말입니다. 무실론 거짓말입니다. 물질만능주의 거짓말입니다. 쾌락주의 거짓말입니다. 그 뒤의 일은 쓰디쓴 고통만 남게 되는 것입니다. 마귀는 현재 달콤한 것 가지고 유혹하지 그 후에 다가올 결과는 말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진리십니다. 어떻게 예수님이 진리인 것을 아느냐고 묻습니까? 예수님은 창조이시기 때문에 진리인 것입니다.
요한복음 1장 3절에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만물을 지으신이가 만물을 잘 알잖아요. 어느 시카고에서 한 신사가 T. 포드 차를 타고 가다가 길거리에서 차가 고장나서 망연자실 하고 있는데 뒤에 차 한 대가 오더니만 아주 신사 한분이 내려서 “왜 이렇습니까?” 그래서 “차가 고장났는데 고칠줄 모릅니다.” “그래요? 내가 좀 봐줄까요?” 웃통을 벗고 모자를 벗고 난 다음에 자동차 후드를 들추고 조금 만치더니 엔진을 거니까 드르렁 드르렁 엔진이 걸립니다. “야~ 당신이 어떻게 이렇게 엔진을 잘압니까?” 고개를 숙이면서 “제가 바로 이 차를 만든 핸리 포드입니다.” 차를 만든분이니까 차가 어떻게 고장이 났는지 대번이 알고 고친 것입니다. 우주를 만들고 우주의 모든 내용을 소소간간이 아시는 분은 예수님이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창조이시기 때문에 그만이 진실을 알고 그만이 진리인 것입니다.
사도행전 14장 15절에 “가로되 여러분이여 어찌하여 이러한 일을 하느냐 우리도 너희와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라 너희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이 헛된 일을 버리고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유를 지으시고 살아 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함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또 예수님이 진리인 것은 그는 알파와 오메가 되기 때문인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장 8절에 “주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요한계시록 1장 17절에 “내가 볼때에 그 발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 같이 되매 그가 오른손을 내게 얹고 가라사대 두려워 말라 나는 처음이요 나중이니”
이사야 44장 6절에 “이스라엘의 왕인 여호와, 이스라엘의 구속자인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는 처음이요 나는 마지막이라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느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역사는 부인할수 없잖아요. 요사이 젊은 세대는 6.25사변이라는 어마어마한 전쟁을 경험하지 않았기 때문에 공산주의가 무엇인가를 모릅니다. 공산주의를 우습게 생각하고 얕잡아 봅니다. 그러나 6.25를 경험한 사람은 공산주의가 피도 눈물도 인정도 없고 동족이란 이름을 사용해서 발가벗기고 가죽을 벗기고 죽이는 어마어마한 살인집단이라는 것을 잘알고 있습니다. 경험을 했기 때문에 알아요. 요사이 우리가 쉽게 동족이라는 말로써 우리 주의도 주장도 필요없다. 동족이니까 얼싸안자.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진리를 모르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공산주의에게는 동족도 없습니다. 동족이라는 것은 하나의 가면에 불과한 것입니다. 공산주의는 오직 혁명적인 통일만 있을 따름인 것입니다. 거기에 속아 넘어가면 안되는데 경험을 하지 못한 젊은 세대는 진리를 모릅니다. 진리는 경험을 해야 알아요. 왜 우리 예수님이 진리입니까? 그는 알파요,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라 우주를 지을때부터 시작해서 우주를 완성하고 영원전부터 영원까지 우리 주님은 이 우주의 주인이 되시기 때문에 주님이 진리가 되시는 것입니다. 주님은 죽었다가 부활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불가사의하게 생각하는 죽음 문제에도 확연히 알고 있습니다. 죽었다가 온 사람이야 죽음 저 건너편의 것을 알지 죽어 보지도 않은 사람이 죽음 저 건너편의 이야기를 어떻게 할 수 있는 겁니까?
요한계시록 1장 18절에 “곧 산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찌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죽었다가 살아났기 때문에 죽음도 알고 삶도 아는 진리인 것입니다. 진리는 두 개가 있을수 없습니다. 진리는 하나밖에 없어요. 예수님과 버금가는 다른 진리는 없습니다.
사도행전 4장 12절에 “다른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라고 말했습니다.
히브리서 13장 8절에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철학도 윤리도 도덕도 사상도 시대와 시대의 풍조에 따라 변합니다. 그런데 진리가 진리인 것은 그것이 영원 불변하는 것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천상천하에 변하지 않고 절대적으로 남아있는 진리는 예수님 밖에 계시지 않습니다. 오랫동안 여러 종교를 연구해 온 한 무신론자가 임금님을 찾아와서 말했습니다. “임금님 나는 오랫동안 종교를 연구해서 종교에 박식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제 임금님과 나라를 위해서 내가 새로운 시대에 적합한 좋은 종교를 창시하기를 원합니다. 임금님이 도와주십시오.” 임금님이 그 사람의 눈을 똑바로 처다 보고 난 다음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네가 죽었다가 부활하면 내가 그 종교를 믿겠네만 자네가 죽었다가 부활하지 않은 이상 아무리 멋있는 종교를 만들어도 나는 믿지 않겠네.” 그말 맞았습니다. 종교의 목적은 뭡니까? 천국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죽었다가 부활도 안하고 자기가 만든 종교로써 천국간다고 주장할수 있어요? 오늘날 종교도 많고 진리가 많고 가르침도 많지만은 모두다 죽음 저 건너편에 갖다 온 사람이 없어요. 추적만 할따름이지. 그러므로 어떻게 믿을수 있어요? 마호메트는 나이 60세에 한 여인의 무릎에 머리를 묻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소크라테스는 70세에 사약을 먹고 죽었습니다. 석가모니는 나이 80세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플라톤도 80세까지 살다가 죽었습니다. 세계 성인이요, 종교의 창시자였던 이들이었지만 결국 죽음앞에는 무릎을 꿇고 죽고 난 다음 다시 아무 소식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33세에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다가 사흘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죽음 저 건너편에서 돌아왔습니다. 죄악의 빚을 잔뜩 짊어지고 무덤에 들어간 사람은 빚을 갚아야 나올 수 있지 빚을 갚지 못하면 죄의 값은 사망인 것입니다. 성인군자나 종교의 창시자들도 모두다 죽음에 들어가고 난 다음에 나오지 못했어요. 죄의 삯은 사망이라. 죄를 값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인류의 모든 죄를 지시고 죽음의 감옥에 들어갔으나 사흘만에 다 청산하고 너끈이 살아 돌아왔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만이 진리가 되는 것입니다.

3. 예수님만이 영원한 생명이시다
셋째로, 예수님만이 생명이 되십니다.
원래 인간은 죽지 않게 지어졌어요. 오늘날 인간이 죽는 것은 하나님 앞에 버림받고 죄를 지었다는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영생하시는 분이 아닙니까?
출애굽기 3장 14절에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받은 것은 영생하는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받았기 때문에 아담과 하와가 에덴에서 처음 지음을 받았을 때는 죽을 수 없는 존재였습니다. 우리 인생은 원래 죽도록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원래 죽도록 만들었으면 죽음에 대한 고통과 괴로움과 슬픔이 없고 자연스럽게 죽지요. 우리는 죽음에 대해서 반발을 합니다. 죽음을 원치 않습니다. 죽음을 싫어합니다. 왜, 원래부터 죽도록 만들어지지 않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죽는 이유는 죄값입니다.
창세기 2장 17절에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선악과를 먹었기 때문에 죄 값으로 죽은 것입니다.
로마서 5장 12절에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영도 죽고 육도 죽는 것은 죄 값으로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죄 값으로 죽었기 때문에 먼저 죽은 마귀가 임금 노릇하는 것입니다. 마귀는 하나님께 버림을 받아서 먼저 영적으로 죽은 존재입니다. 사망의 장자입니다. 그 마귀가 우리가 죄짓고 죽으니까 우리를 점령하고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2장 14절에 “자녀들은 혈육에 함께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한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하심은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하시며”라고 했습니다.
마귀가 사망의 세력을 잡고 있어요.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하여 죄를 청산하고 사망을 멸해 버리면 마귀는 무장해제 되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 때문에 마귀가 제일 미워하는 것이 십자가요, 제일 두려워하는 것이 예수님의 보혈입니다. 십자가 보혈로 말미암아 마귀는 무장해제됩니다. 왜냐, 마귀가 우리를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것은 죄값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사망을 당했기 때문에 사망의 세력을 잡은자 마귀가 큰 소리했으나 죄가 용서받고 보혈로 말미암아 의롭다함을 얻어 생명을 얻어 버리면 마귀는 무장해제되고 우리와 아무 관계가 없게 되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귀는 절대로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는 것을 못하게 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전하지 못하도록 발버둥을 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이땅에 오셔서 주님이 동정녀 마리아의 몸을 통해서 나왔기 때문에 죽을수 없습니다. 여러분 아담의 씨를 받았으면 죽은자의 씨를 받았기 때문에 죽지만 예수님은 아담의 씨를 받지 않았습니다. 성령으로 잉태되었으므로 예수님은 33세까지 죽을수 없는 몸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영도 영원한 하나님이요, 영생하시는 하나님이요, 그 몸도 죽을 수 없는 몸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죽을수가 없어요.
히브리서 4장 15절에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 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죄가 없는데 어떻게 죽어요. 죄의 값은 사망인데 죄가 없는 예수님은 죽을수가 없어요. 그는 바로 생명의 대왕입니다. 그 증명으로써 회당장의 딸이 죽었을 때 “달리다굼” 한마디로 살려 일으켰습니다. 나인성 과부의 아들이 죽어서 관을 메고 가는데 관뚜껑을 열고 “청년아 일어나라”하니까 일어났습니다. 나사로가 죽어서 무덤에 들어간지 나흘이 되어 썩은 냄새가 날 때 “나사로야 나와라”고 말한마디에 나사로가 살아 일어났습니다. 예수님은 생명의 대왕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죽으신 것은 우리 죄를 대신 짊어지고 죄인이 되었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것을 알아야 돼요. 죽을 필요가 없는 예수님이 우리 죄를 대신 짊어져서 죄인이 되어서 그는 십자가에서 죽었습니다.
고린도후서 5장 21절 우리 다같이 소리내어 한번 읽어 보십시다.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죄를 알지도 못했어요. 그런데 예수님이 우리 때문에 죄가 되었습니다. 죄인이 된정도가 아닙니다. 죄 덩어리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버림을 당했습니다. “하나님이여 하나님이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처참한 죄인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우리 죄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하고 보혈로 죄를 청산했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 믿으면 값없이 의롭다함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러므로 죽어서 죄를 다 갚았기 때문에 사흘만에 사망을 철폐하고 부활하셨습니다.
로마서 4장 25절 우리 다같이 한번 읽으십시다.
“예수는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요한복음 11장 25절로 26절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고 말씀한 것입니다.
왜 영혼이 안죽어요. 죄에서 해방되었기 때문에 사망이 떠나간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장 18절에 “곧 산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찌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라고 주님 말씀한 것입니다.
중국인 기독교 지도자인 리가 학생들에게 말씀을 전하고 난 후에 다음과 같은 질문을 받았습니다. 학생이 말하기를 “중국에는 이미 유교가 있는데 기독교를 전해야 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러자 리가 그 학생에게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거기에는 세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먼저 공자는 선생이었으나 그리스도는 구세주가 되시는 것입니다. 중국은 지금 선생보다도 구세주가 필요합니다. 둘째, 공자는 죽었으나 그리스도는 죽었다가 부활하셨습니다. 중국은 부활하신 구세주가 필요합니다. 셋째로, 공자는 어느날 그리스도 앞에서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중국은 그리스도를 심판자로 만나기 전에 구세주로 만나야만 됩니다.” 그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예수님은 부활이요, 생명이십니다. 그러므로 믿는자는 영생을 얻고 믿지 않는 자는 죄의 심판을 받아 영벌에 취하게 됩니다. 우리가 구세주 예수님을 전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주님이야말로 유일한 생명의 씨앗입니다.
베드로전서 1장 23절로 25절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요한복음 1장 4절에도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부터 119년전 1885년 언더우드 아팬셀러가 미국 교회에 파송을 받아 우리나라에 첫발을 내딛었습니다. 그들은 흑암가운데 죽어가는 이땅에 생명의 씨앗을 들고 왔습니다. 그들 이후에 구라파에 선교사들이 많이 한국에 들어와서 눈물과 피와 땀으로 우리에게 복음을 전해 주었습니다. 그로부터 시작하여 복음증거의 역사는 어느덧 120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 결과 오늘날 우리나라의 개신교인수는 1,200만명이 넘게 되었고 성도 1,200만과 함께 5만교회와 10만 주의 종들이 되어서 이제는 전세계 복음화에 나서고 있습니다. 한국 선교사의 숫자는 1979년 지금부터 25년전에 처음으로 조사되었을 때 93명이었는데 그러나 2002년 말에는 10,422명으로 약 112배의 성장을 이루었습니다. 이 숫자는 전세계 선교사의 10%에 해당됩니다. 한국은 현재 미국에 이어 세계 2위의 해외선교사 파송국가가 되었습니다. 선교사가 파견된 국가도 1979년에는 26개국에서 2002년에는 164개국으로 6배이상 늘었습니다. 이는 우리나라 대사관이 설치된 나라수 136개국보다 더 많습니다. 우리 교회는 1975년 4월 1일 순복음세계선교회가 창립된 이래 현재까지 55개국에 609명의 선교사를 파견하여 738개의 교회를 세웠습니다. 현재 세계 인구가 62억인데 20억만이 기독교인입니다. 아직도 이 세상에는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42억이나 있어 사망의 물에 빠져 허우적 거리고 있습니다. 지옥불에 불타고 있습니다. 건져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선교사업을 해야 됩니다. 왜, 그리스도의 씨를 받아 들이면 변화가 오기 때문인 것입니다. 미국의 어느 자매님이 간증을 제가 들었는데요. 그는 16살부터 술을 마시기 시작해서 술주정뱅이가 되었어요. 수많은 남자들에게 폭행을 당하고 잘못된 남자친구를 만나서 마약중독에 빠졌습니다. 그후 결혼해 첫아이를 낳았는데 애 젖먹이다가 술이 너무 취해서 고꾸라져서 애를 눌러서 죽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아침에 눈을 뜨면 술을 마시는 것이 저녁에 눈 감을때까지 술을 마셨습니다. 그래서 그의 생활은 이혼, 동거, 재혼을 반복하고 병원에 치료를 받고 민간요법을 해도 낫지를 않았어요. 백약이 무효였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친구가 자동차 사고로 죽어서 그 장례식에 참여했다가 장례식에서 설교하는 목사님의 말씀에 깊은 감동을 입고 그는 주일날 그 목사님의 목회하는 교회에 찾아갔었습니다. 그 목사님이 설교하고 난 다음 회개할 사람 앞으로 나오라고 해서 그는 걸어나가서 강단앞에 나와서 이렇게 주님께 기도했습니다. “주님! 내 힘으로는 술과 마약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나는 폐인입니다. 나는 완전히 실폐한 인생입니다. 주님께서 나를 살려 주십시오.” 이렇게 간절히 기도하고 집으로 돌아가는데 그날부터 이상한 변화가 그의 생애속에 다가와서 점점 술맛이 떨어져서 술을 그만두고 마약을 맞기 싫어서 마약도 포기하고 얼마있지 않아 완전히 새사람이 되어 버리고 말은 것입니다. 자신이 이처럼 변화받자 그는 남편에게도 종용하고 예수를 전도해서 남편도 예수믿고 똑같이 술중독과 마약중독에서 해방을 얻어 새사람이 되었다는 간증을 들었습니다. 세상에서 버림받고 쓰레기같은 인생을 사는 사람도 예수께 나오면 용서와 의인이 되고 건강하고 형통한 삶을 살다가 부활, 천국, 영생의 길을 얻어 가기 때문에 우리가 예수를 전하는 것입니다. 예수가 종교면은 전하지 않습니다. 철학이면 전하지 않습니다. 의식이면 전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생명이기 때문에 생명을 전달해주는 것입니다.

[결론]
예수님만이 유일한 천국 길이요, 절대진리요, 영원한 생명이요, 아버지께 나가는 중보가 되시는 것입니다. 이제 예수님을 믿고 알면서 사망의 바다에 빠져 허우적 거리며 지옥불에 삼켜져 가는 사람에게 구원의 복음을 전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하나님 앞에 범죄하는 사람들이 되고 말것입니다. 우리는 저 캄캄한 죄악의 바다에 빠져서 휩쓸려가는 사람들이기에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배를 탄 우리들은 밧줄을 던져야 되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도하는 밧줄을 던지고 우리 선교사들을 보내어서 온 천하 만국에 그리스도를 전하고 우리는 그 선교사 뒤에 밧줄을 잡아 주어야 될것입니다. 기도와 헌금을 통해서 밧줄을 잡아 주면 그 밧줄을 허리에 묶고 선교사들은 저 북방 얼음산과 저 남방 대양섬, 온 천하에 가서 죄악에 빠진 영혼을 구원할수 있게 될것입니다.

[기도]
거룩하시고 영광스러우신 우리 하나님 아버지여, 우리가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게 된 것은 너무나 기이하고 신기한 일입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되시는 예수님을 구주로 모신 것이 얼마나 큰 특권이요, 놀라운 은혜입니까? 이 거대한 은혜와 복을 우리만 감추어 놓지 말고 천하에 나누는 우리들이 되게 도와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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