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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불쌍한 자와 가장 복된 자

고린도전 조용기............... 조회 수 2586 추천 수 0 2009.05.14 13:4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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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고전15:12-19 
설교자 : 조용기 목사 
참고 : 2004년 7월 25일 주일3부 설교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되었거늘 너희 중에서 어떤이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지 못하셨으리라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지 못하셨으면 우리의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또 우리가 하나님의 거짓 증인으로 발견되리니 우리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고 증거하였음이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사는 것이 없으면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시지 아니하셨으리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사는 것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사신 것이 없었을 터이요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

[서론]

오늘 여러분과 함께 ‘가장 불쌍한 자와 가장 복된 자’에 관한 말씀으로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제가 존경하던 어느 치매 전문의사 선생님이 제게 이런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자기가 많은 치매에 걸린 사람들을 치료하면서 느낀 것은 치매에 걸린 사람들이 어떠한 병보다 불행하고 불쌍한 환자라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치매에 걸리면 서서히 시간 개념을 잃어버린다는 것입니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분간하지 못하게 되고 그 후에 공간 개념을 상실한다는 것입니다. 즉 자기가 어디서 왔는지를 모르며 자기의 사는 집도 찾지 못하게 되고 급기야 가까운 사람을 몰라봅니다. 제가 존경하는 목사님이 연로하셔서 치매 끼가 있었습니다. 부인은 일찍 세상을 뜨시고 따님 집에 살았는데 그 목사님이 따님을 보고 항상 어머니라고 불렀습니다. “어머니 이리 오세요. 어머니 날 도와주세요. 어머니 어머니” 딸이 “내가 딸이에요. 아버님 내가 딸이에요.” 그래도 “어머니 어머니” 왜 치매 끼가 있어서 사람을 분간하지 못합니다. 이런 치매끼가 진전하면 급기야 자기 자신도 누군지 모르게 되어 완전히 식물인간이 되고 맙니다.

자기를 상실하고 삶 자체를 잃어버린다는 것은 참으로 몸서리치게 두려운 것입니다. 비유컨데 영적으로 말하면 예수 믿지 않는다는 것은 영적치매에 걸린다는 것과 똑같습니다. 참으로 무섭고 몸서리치는 불행입니다. 어디서 와서 왜 살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고 자기의 정체성을 상실하고 잃어버린 존재로 살다가 무의미하게 이 지구를 떠나간다는 것은 정말 불행한 일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은 이 영적치매에서 우리를 건져 주tu서 자기와 하나님과 영생을 찾게 해주는 가장 기쁜 소식인 것입니다.

[본론]
1.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삶은 가장 불쌍한 삶입니다.
무신론자들이나 불신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만일 하나님이 계시지 않다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는 어떻게 생겼겠습니까? 그들은 말하기를 “우주는 우연히 생기고 생명은 우연히 생겨 진화되어 왔다는 우연주의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질서정연하고 논리정연한데 우주만물은 우연히 생겼다고 말하는 것은 사리에도 맞지 않고 이치에도 맞지 않지만 하나님을 부인하고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사람들은 유물론적으로 어찌할 수 없이 우연히 지구가 생겼다고 말할 수밖에 없지요. 그러나 시편 14편 1절에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저희는 부패하고 소행이 가증하여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그렇게 말씀하므로 하나님 계시지 않고 우연히 우주와 만물이 생겼다는 사람은 지성이 어두워지고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욥기 38장 4절에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네가 어디 있었느냐 네가 깨달아 알았거든 말할지니라” 하나님이 땅의 기초를 놓을 때 그때부터 살아 있어서 하나님이 역사를 살펴보지도 못한 사람이 이제야 태어나서 그들이 하나님을 눈으로 볼 수 없으니 하나님이 계시지 않다고 말하는 것은 어리석기 짝이 없는 일인 것입니다.

만유인력법칙을 발견한 과학자 뉴턴이 숙련된 기계공에게 태양계의 모형을 만들도록 했습니다. 태양을 중심으로 해서 수성, 금성, 지구, 화성, 목성, 토성, 천왕성, 해왕성, 명왕성 이렇게 만들어서 크랑크를 돌면 휘~익 순서를 따라 돌아가게 만들어서 멋진 기계였습니다. 어느날 무신론자이면서 과학자인 한 친구가 그 태양계 모형을 보고는 그것을 서서히 돌렸습니다. 그랬더니 모양에 달린 각종의 혹성들이 다양한 속도로 태양 주위를 회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친구는 놀란 표정으로 “야~ 정말 훌륭한 모형이군. 도대체 누가 만들었나?” 뉴턴은 “아무도 만든 사람이 없다네.” “이봐 이 모형을 누가 만들었단 말이냐” 그러자 뉴턴은 “이건 누가 만든게 아니고 여러 가지 물건들이 모아져서 우연히 쾅쾅 소리가 나더니 이렇게 만들어 진거야” 은근히 화가 난 친구는 “자네 나를 완전 바보로 생각하나? 이렇게 정교하고 훌륭한 모형이 저절로 만들어 지는 거야?”하고 소리쳤습니다. 뉴턴은 친구의 어깨에 손을 얹고 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서 하는 말이 “여보게 엄청나게 큰 우주의 작은 모형에 불과한 이렇게 간단한 장난감도 설계자가 있고 제작자가 있어야 만들어 질 터인데 이 한없이 큰 우주가 질서정연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것은 우연히 그렇게 되었다고 믿을 수 있느냐?” 그 친구는 아무말없이 그저 고개만 끄덕였습니다. 뉴턴은 그의 책 프링키피아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태양, 혹성, 해성으로부터 생기는 매우 아름다운 천체는 지성을 갖춘 강력한 실력자의 의도와 통일적인 제어가 있기에 비로소 존재하게 된 것이다. 지극히 크신 하나님의 영원무궁하신 능력으로 이루어졌다’고 말한 것입니다. 여러분 조그마한 태양계의 모형도 사람이 설계하고 계획해서 만들지 않으면 안되는데 그 본체인 이 방대한 우주, 이 우주가 어떻게 우연히 되었습니까? 하나님이 계시지 않고 우연히 되었다고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부인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성육신인 예수님도 부인합니다. 그들은 말하기를 “예수님의 탄생, 생애, 죽으심과 부활하심은 다 지어낸 이야기다.”라고 말합니다. 요한일서 4장 2절로 3절에 “하나님의 영은 이것으로 알찌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 오리라 한 말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이제 벌써 세상에 있느니라”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께 속하고 성령을 받은 사람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계획중에서 탄생하고 사역하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셨다는 것을 믿지만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야기가 허구한 이야기며 지어낸 이야기라고 하는 것은 모두다 사탄의 영에서 암시를 받아서 하는 말인 것입니다. 무신론자나 불가지론자들은 자기들의 지식으로 그렇게 말하는 것 같지만은 성경은 말하기를 “예수를 시인하지 않은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영이 아니요, 사탄에 속한 영으로써 말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느 유명한 무신론자가 하루는 기독교와 성경을 비판하기 위해 현대인을 위한 강좌라는 강연회를 열어 그의 무신론을 강의했습니다. 그는 예수 이야기가 꾸며낸 신화에 불과하다며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에 대해 열심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때 수염이 더부룩이 나고 작업복을 입은 한 광부가 손을 들었습니다. “선생님 내가 말 한마디 해도 될까요? 저는 일개 광부에 지나지 않지만 예수님의 이야기가 신화이고 성경이 거짓이라고 하신 말씀에 전혀 동조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3년 전까지만 해도 저와 저의 가정은 비참한 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한 사람이 저에게 예수를 전도하셨습니다. 제가 예수를 구주로 모시고 난 다음 저의 삶과 우리 가족의 삶이 완전히 변화되고 우리는 지옥에서 천국으로 옮겨진 사람이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예수 믿기 전에는 광부로써 고달픈 채광일을 하고 나와서는 술먹고 방탕하고 고래고래 고함을 치고 집안 식구들을 못살게 굴어서 생지옥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고 난 다음 내가 변하고 우리 집사람, 애들이 변하고 온 가족이 천국으로 변화하고 만 것입니다. 이렇게 저와 온 가족이 새롭게 변화되어 날마다 행복을 누리고 살고 있는데 그 증거가 바로 여기 있는데 내 광부들 친구들이 다 증인입니다. 만일 예수님의 이야기가 신화라면 저희 가족과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을 변화시킨 것이 하나 신화에 불과하다는 말입니까? 나는 예수님을 믿고 직접 변화를 체험한 사람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경험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계시지 않다고 나에게 말하지 마세요. 나는 하나님을 보고 듣고 맛보고 체험한 사람입니다.” 그 말에 예수 그리스도의 이야기가 신화라고 하던 그 강연가는 숙연해져서 더 이상 아무 말을 못했다는 이야기를 읽어본 적이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체험한 사람에 대해서 없다고 부정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의 이야기가 허구라는 것은 너무나 무식하기 짝이 없는 이야기인 것입니다. 또 만일 예수님의 탄생, 생애, 부활이 거짓이라면 예수님을 믿는 믿음은 헛되고 죽은자의 소망도 헛된 것입니다. 왜, 예수님이 우리 위해서 죽어서 무덤에 들어가시므로 우리의 죄 가를 다 청산하시고 부활하셨다고 우리는 믿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사망을 이기고 부활하셔서 우리에게 천국과 영생을 주셨다고 믿고 있는데 예수님이 죽었다가 부활한 것이 거짓된 이야기라면 우리의 희망도 믿음도 꿈도 다 헛되고 마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17절에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라고 말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여러분 십자가에 죽은 것은 우리의 죄짐을 짊어지고 죽으셨고 무덤에 들어간 것은 죄의 값을 지불하기 위해서 무덤의 감옥에 들어간 것입니다. 죄를 다 청산 못하면 감옥에서 못나와요. 예수님이 죽었다가 부활하신 것은 우리의 죄짐을 짊어지고 사망의 감옥에 들어갔다가 다 죄를 청산하고 갚았기 때문에 살아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음으로 우리가 죄사함을 받고 부활과 영생과 천국소망을 얻게 되는 것인데 예수님이 죽었다가 부활한 것을 헛된 이야기라고 하면 우리의 소망은 없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탄생과 생애와 부활이 거짓이면 인간은 영원히 절망적인 존재로 남을 것이며 죄와 무의미와 죽음의 절망의 노예가 되는 것입니다. 죄를 용서받을 수도 없고 예수님이 거짓이라면 어디서 와서 왜 살며 어디로 가는지 우리는 길을 잃어 버리게 되고 예수님께서 죽었다가 부활 안했으면 우리는 영원히 죽어서 절망에 처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예수님이 죽었다가 부활하심으로 그 때문에 죄에서 용서를 받고 우리는 어디서 와서 왜 살며 어디로 가는 영원한 삶의 목적을 알게 되고 죽음을 이기고 부활의 기쁨을 마음속에 소유할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2장 12절에 보면은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없으면 세상에 아무런 소망이 없습니다. 부귀, 영화, 공명이란 하루아침에 있다가 사라지는 들꽃과 같으며 물거품 같고 구름같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실존주의 철학자들은 인간을 부정적이고 절망적인 존재로 보았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없는 인간은 얼마나 부정적이고 절망적인지 키에르 케고르는 ‘인간은 죽음에 이르는 병든자’라고 말했습니다. 칼 야스퍼스는 ‘고통과 싸움과 죽음에 에워싸여 괴로워하는 존재’라고 했으며 하이데크는 ‘죽음이라고 하는 치유될 수 없는 고통 가운데 서있는 존재’라고 했으며 샤르트르 역시 ‘인간은 무능력함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존재에 대하여 책임을 져야만 하는 불행과 고통을 짊어진 존재’라고 말했으며 하나님 없는 인간은 이와 같이 절망적인 존재입니다. 어디서 와서 왜 살며 어디로 가는지를 알 수 없잖아요. 미국의 심리학자 빅터 프랑케는 “오늘날 세계는 무의미의 홍수에 뒤덮인 체 소이 말하는 실존적인 공허라는 병적 콤플렉스를 일으키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사람들은 무거운 죄짐 짊어지고 허무와 무의미속에 발버둥 치다가 죽음의 영원한 절망으로 떨어져 가고 마는 것입니다. 만일 예수님이 오셔서 죽었다가 부활하지 안했으면 인간존재란 헛되고 헛되며 또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다고 탄식한 솔로몬의 탄식과 같은 것입니다. 예수없는 삶은 있는 것 같으나 다 허무한 것이요, 사는 것 같으나 죽은자와 방불합니다. 쾌락이 있는 것 같으나 허무하고 슬프고 절망적인 것만 가득찬 것이 삶인 것입니다. 2003년 말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하루 평균 36명이 자살한다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지구촌 전체로는 한해동안 무려 81만 5천명이 자살하는 것으로 조사 되었으며 이는 40초마다 한 사람씩 자살한다는 의미입니다. 복지시설을 갖춘 선진국도 예외는 아닙니다. 스위스의 경우 한해 1,300여명, 홍콩은 1,100명, 일본에서는 하루평균 100명이 자살합니다. 이처럼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자살을 택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이들이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므로 자신이 어디에서 와서 왜 살며 어디로 가는지를 알지 못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들은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한채 허무한 삶을 살다가 염려, 근심, 불안, 초조 절망의 스트레스에 걸리면 허무한 인생 살아서 뭐냐 죽어서 이 모든 것을 벗어나자고 자살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사람이 천당도 없고 지옥도 없으면 이 세상 삶은 뜬 구름 같기 때문에 세상에서 어려움과 고통당하면 쉽게 목숨을 끊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이 계시는 삶은 가장 복된 삶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모든 것이 아름답고 희망차고 영광스럽습니다. 예수님의 탄생도 사실이요, 생애도 사실이요, 죽음과 부활은 하나님의 계획과 뜻에 따라 일어난 확실한 사건입니다. 사람들은 이것이 거짓말이라고 하지만 우리는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을 알기 때문에 이 사실이 확실합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우연히 태어난 분이 아닙니다. 이사야 7장 14절에 예수님은 태어나기 칠백여년 전에 이사야가 말하기를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로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고 했습니다. 임마누엘이라는 것은 참 하나님이 참 사람이 되어서 오신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은 우연히 일어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죽었다가 부활하신 것도 우연히 그가 잡혀서 실패해서 죽은 것이 아닙니다. 베드로는 말하기를 그가 하나님의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대로 내어 준바 되었거늘 너희가 법없는 자들의 손을 빌어 못 박아 죽였으나 하나님께서 사망의 고통을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 매여 있을 수 없었다고 말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에 죽으심과 무덤에 들어감과 부활하심은 다 하나님의 정하신 뜻이요, 하나님의 계획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이지 우연히 그렇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3절로 4절에 바울은 말하기를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사”라고 했습니다. 성경에 기록되고 예언된 대로 하나님의 능력으로 예수님은 죽으셨다 살아나신 것입니다.

인도의 성자 선다싱이 영국을 방문했을 때 어떤 대학교수가 그에게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당신이 당신의 가족과 당신의 민족이 오랫동안 믿어온 힌두교를 버리고 기독교 신자가 된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러자 선다싱은 “그 이유는 예수님만이 죽었다가 부활하셨고 지금도 살아계시기 때문에 나는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고 말한 것입니다. 맞았습니다. 예수님은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셔서 지금 우리와 함께 거하시며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고 계신 것입니다.

오늘날도 우리의 죄를 사하시고 의로움을 주시고 오늘 이 시간에도 우리의 허물을 사하시고 마귀를 쫓아내시고 성령을 주시며 지금도 우리를 치료하여 주시고 건강을 주시며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우리를 시험과 환난과 곤고와 저주에서 해방시켜 주시고 아브라함의 복을 주시며 오늘날도 우리의 죽음 저 건너편에 찬란하고 영광스러운 천국으로 가는 길을 열어주신 분이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며 우리 두세 사람이 모인 곳에는 예수님이 이 자리에도 계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에 대한 우리의 믿음도 확실하고 믿고 죽은자의 부활의 소망도 확실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은 조금도 헛되지 않습니다. 예수 믿고 죽은자는 반드시 부활하여 우리는 함께 만날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1장 4절로 7절에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 우리는 값없이 용서를 받고 죄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어서 우리는 넘치는 소망 가운데 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냥 살뿐 아니라 이제 장차 주님의 강림하심을 우리는 매일같이 기다리며 살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 51절로 52절에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그리스도를 체험하면 체험할수록 천당과 지옥이 더 뚜렷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로만 듣던 것이 우리가 실제 생활에 기도응답을 받고 주님의 능력을 체험하면 천국과 지옥이 확실해지지요. 오래전에 어떤 여자 집사님이 제게 은혜로운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그 집사님은 췌장암으로 끊임없이 출혈을 했는데 피가 멈추지 않으면 죽는다고 했습니다. 집사님이 병원에서 퇴원해서 제게 기도를 받으러 와서 “저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인데 어찌하여 암에 걸려 이 고통을 당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주께서 저를 고쳐 주실 것을 저는 믿고 있기 때문에 목사님 믿음으로 기도해서 저를 좀 살려 주십시오.” 그렇게 말을 해요. 제가 안수하고 간절히 기도하고 췌장암을 예수 이름으로 꾸짖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병원에 돌아갔는데 계속해서 피가 흐르니까 의사가 와서 “더 방도가 없습니다. 병원에서는 치료할 수 없으니 집에 가서 편안히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 자매님은 “나는 회개하고 예수님만 믿고 안수기도도 받고 돌아왔으니 예수님께서 반드시 고쳐 주십니다. 주님이 채찍에 맞았으므로 나는 나음을 입었습니다.” 의사들이 다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습니다. 그런데 사흘만에 피가 그치고 그 다음에 췌장암이 깨끗이 나아버리고 말았습니다.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 자매는 편지에 말하기를 “목사님 이런 큰 은혜를 받고 보니 나는 췌장암을 앓지 안았을때 보다 더 큰 유익이 되었습니다. 내가 췌장암을 앓기 전에는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형식적으로 교회를 왔다갔다하고 기도도 건성으로 했는데 췌장암을 앓고 난 후 정말로 회개하고 정말로 기도하고 하나님 능력을 의지하게 되고 또 치료의 기적을 체험하고 나니까 천국과 지옥이 눈으로 보는 듯이 환하게 나에게 깨달아졌습니다. 고난 때문에 믿음이 성장했습니다. 일생을 전도하며 살겠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주님을 체험한 사람은 천국과 지옥이 뚜렷이 마음속에 깨달아지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과 성령강림은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확증하잖아요. 여러분 성령받기 전에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승천과 천국이 희미하더라도 성령을 받고 나면 성령이 우리 영안을 열어 주시고 우리 마음속에 진리를 깨닫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2장 32절로 33절에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 우리는 성령 받기 전에는 머리로써 알던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승천을 성령 받고 난 다음에는 가슴이 뜨거워져서 가슴속에서 믿을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믿음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지식으로써 아는 것하고 하나님의 계시가 마음속에 와서 아는 것 하고는 천양지차가 나는 것입니다.

실존주의 작가로 잘 알려진 프란츠 카스피카는 불안에 시달리고 절망에 빠진채 살아가는 현대인들을 일컬어 ‘아버지를 잃어버린 고아’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러나 예수 안에 있는 사람은 고아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신 복되고 행복한 사람인 것입니다.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모시면 예수님이 우리 주가 되실뿐 아니라 우주와 만물을 지으시고 다스리는 하나님이 우리의 친 아버지가 되신다는 것입니다. 친 아버지가 능력있고 권세있는 친정 아버지면 시집을 가도 대접을 받습니다. 아버지가 위대하고 훌륭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우리의 아버지가 천지와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이시오, 역사를 주장하시는 하나님이시오,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장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신 것을 알고 믿고 깨달으면 우리 마음속에 평안을 얻을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 주기도문에 하늘에 계신 아버지가 시작이 아버지로써 시작해서 끝이 아버지로 끝납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의 친 아버지가 되시는 것입니다. 마르틴 루터는 우리가 하나님에 대하여 생각할 수 있는 최상의 이름은 아버지라고 말했습니다. 존 칼빈도 하나님이 아버지 되심과 그의 전능하심을 믿는 것은 신앙에 있어서 필수적인 것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3. 하나님이 아버지가 되시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시면 우리는 어떤 사람입니까? 우리는 고아가 아니고 버림받은 사람이 아닌 것입니다. 아버지가 우리와 같이 계시면 가장 행복한 사람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시면 우리를 당연히 보호해 주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여러분이 여러분 자녀를 보호하지 않습니까? 있는 힘을 다해서 보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면 여러분과 나를 환난과 위험과 고통에서 지켜 주시는 것입니다.

시편 91편 1절로 7절을 다같이 소리내어 한번 읽어 보십시다.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하는 자는 전능하신 자의 그늘 아래 거하리로다 내가 여호와를 가리켜 말하기를 저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나의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하리니 이는 저가 너를 새 사냥군의 올무에서와 극한 염병에서 건지실 것임이로다 저가 너를 그 깃으로 덮으시리니 네가 그 날개 아래 피하리로다 그의 진실함은 방패와 손 방패가 되나니 너는 밤에 놀램과 낮에 흐르는 살과 흑암 중에 행하는 염병과 백주에 황폐케 하는 파멸을 두려워 아니하리로다 천인이 네 곁에서, 만인이 네 우편에서 엎드러지나 이 재앙이 네게 가까이 못하리로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자식을 안돌보는 아버지가 있습니까? 우리를 사랑하사 그 외아들을 보내어 십자가에 몸찢고 피흘려 죽기까지 살아계셔서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이 어찌 우리를 지켜주지 않겠습니까?

로마서 8장 31절에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히브리서 13장 6절에 “그러므로 우리가 담대히 가로되 주는 나를 돕는 자시니 내가 무서워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 하노라”

그런데 하나님이 우리 곁에 계시는 것이 안보이잖아요. 하나님이 앞에서 계셔도 안보이고 옆에서 일하셔도 모르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이 하나님이 안계신줄 알고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세계는 모든 것이 불확실합니다. 오늘 무슨일이 일어날지 모르며 내일이 너무나 불확실합니다. 오늘 우리 국민들은 항상 불안에 떱니다. 정치가 불확실하고, 경제가 불확실하고, 남북관계가 불확실하니 언제 무슨일이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에 불안하지요. 그러나 예수 믿는 사람은 천지와 만물을 지으시고 오늘을 손에 쥐고 내일을 다스리는 하나님이 내 친아버지가 되시므로 아버지의 품에 안겨 있으니 편안하지요.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일 때 영국의 큰 기선이 미국으로 건너가게 되었습니다. 중대한 임무를 띠고 있어서 항해를 포기할 수 없었으나 대서양을 건너는 것은 커다란 위험을 동반했습니다. 왜냐하면 독일 군함들이 처처에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인 것입니다. 영국 기선이 출발하기 전에 위에서 지시기 하달되었습니다. 무조건 항해를 따라 앞으로만 갈 것. 문제가 생길때는 무전으로 연락하여 지시를 받을 것. 절대로 선장 자신의 판단에 따르지 말것이라는 것입니다. 이 기선은 미국을 향해 출발했습니다. 며칠 뒤 선장은 적군의 함대가 가까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 즉시 무전을 쳤습니다. 적의 군함이 보임. 급히 지시를 바람. 곧 다음과 같은 회신이 왔습니다. ‘두려워 말고 계속 항해하라.’ 너무나도 간단한 지시에 선장은 심히 불안했지만 명령을 따라 앞으로 앞으로 항진해 나갔습니다. 무사히 미국에 도착하여 항구에 입항했을 때 그는 손수건을 내서 땀을 닦았습니다. “구사일생으로 살았다. 후유~” 그런데 보니 옆에 뭐가 시커먼 것이 물에서 썩 떠오르는데 영국 국기가 달렸거든. 영국의 거대한 잠수함이 내내 물밑에 숨어서 이 군함을 따라와서 지켜준 것입니다. 그래서 그 선장은 혼자서 웃었습니다. “나는 괜히 쓸데없이 걱정하고 불안하고 두려워했네. 내 밑에서 잠수함이 계속 나를 따라오면서 우리 군함을 보호해 주었다”고 그는 말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은 잠수함이 물밑에서 따라오듯이 숨어서 우리를 따라오는 것입니다. 항상 숨어서 우리를 지키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숨어 계시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지나고 보면 하나님이 우리를 도와주신 그 발자취를 볼 수 있지만 현재는 숨어서 일하시는 것입니다. 앞에도 계시고 뒤에도 계시나 우리는 모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뭐라고 말합니까?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주님은 눈에는 아무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어도 오직 주님께서 나와 24시간 같이 계신 것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아니할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계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지날 때 천지가 캄캄하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버림받은 심정으로 꽉들어 찼을때라도 주께서는 그 자리에 함께 계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우리 아버지이시므로 우리를 보호해 주시고 우리 아버지이시므로 우리를 양육해 주십니다.

시편 100편 1절로 3절에 “온 땅이여 여호와께 즐거이 부를찌어다 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며 노래하면서 그 앞에 나아갈찌어다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줄 너희는 알찌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자시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목자가 양을 기르는 것처럼 부모가 자식을 양육하는 것처럼 오늘 하나님은 우리를 양육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주님께 중심으로 순종하고 믿고 의지하고 섬기면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하는 것은 염려할 필요가 없는 것은 아버지께서 알고 계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 나라와 그 의를 먼저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 아버지인 것입니다.

그리고 아버지는 우리를 성장시킵니다. 여러분 자식이 유치원에서 초등학교, 중등, 고등, 대학 성장해서 자라기를 부모가 원하지 유치원에 그대로 남아 있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하나님도 우리를 성장시키는 것입니다. 신앙인격이 주님이 우리를 자라게 하시는데 어떻게 자라게 하느냐. 말씀을 통해서 자라게 하는 것입니다. 자식도 밥을 잘 먹어야 자라지요. 잘못먹으면 자라지 않지요. 우리가 말씀을 주일날도 듣고, 수요일날도 듣고, 구역예배도 가고 공부를 하므로 말씀의 영양분을 많이 취해야 하늘나라에 훌륭한 인격으로 성장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사모하고 말씀을 맛있게 받아 들이지 아니하면 병들거나 자라지 않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 기도를 통해서 우리 인격이 성장하는 것입니다. 기도를 하면은 하나님은 모든 면에서 우리를 돌보아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기독교인 심리학 랜돌프 프랜버드는 기도가 병의 치료에 어떻게 영향을 주는지 과학적으로 증명하고 싶었습니다. 그는 오랫동안 기도한 후에 연구를 어떻게 해야할지 깨달았습니다. 그는 컴퓨터를 통해 393명의 심장병 환자를 두 그룹으로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기도하는 사람들을 모아 첫 번째 그룹의 환자들을 위해 기도해 줄 것을 부탁하고 두 번째 그룹을 위해서는 기도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약 10개월이 지난후에 결과를 보니 두 그룹을 비교해 중보기도를 받은 첫 번째 그룹은 병세 때문에 항생제 치료를 받아야 하는 사람의 수가 두 번째 그룹에 비해서 5분의 1정도의 숫자에 불과했고 폐에 물이 고인 경우도 두 번째 그룹에 비해 3분의 1가량에 불과했고 인공호흡기를 달아야 하는 경우는 없었고, 두 번째 그룹에 비해 사망자수도 훨씬 작았습니다. 이러한 믿음과 기도로 병을 치료받은 것에 대해 매우 부정적인 윌리암 놀란 박사는 그 결과를 검토한 후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연구는 충분히 검증된 것 같군요. 그렇다면 우리 의사들은 처방지시해서 하루에 3번 기도하시오. 반드시 적어 넣어야 되겠군요.” 그렇게 말했습니다. 오늘날 의사가 병자를 치료할때에 약만 처방하지 말고 처방전에 하루에 세 번씩 기도하라고 적어 넣어 주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기도가 실제로 우리의 삶 속에 모든 면에 영향력을 미칩니다. 우리의 생각하는 것, 우리의 느끼는 감정, 우리의 모든일의 효율성, 우리의 마음에 평안, 육신의 건강, 생활 모든 면에 기도는 알지 못하는 사이에 하늘에서 이슬이 내리듯이 내리는 것입니다. 이슬이 내리는 것 우리가 느끼지 못하잖아요. 그러나 밤이슬에 옷이 축축이 젖어지는 것처럼 여러분 기도하는 것, 결과가 느껴지지 않지만은 여러분의 온 영과 마음과 몸과 생활은 가득히 채워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하고 또 기도하고 또 기도하므로 여러분 우리가 자라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연단을 통하여 자랍니다. 자식들을 키울 때 너무 콩나물 시루에서 키우듯이 보호만 하면 자식들이 저항력이 없어집니다. 여러분 온실에서 자란 나무는 키만 컸지 저항력이 없어 온실밖으로 나오면 태양에 말라 버리고 바람에 부러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들판에서 자란 나무와 풀은 모진 태양빛을 받고 폭풍우를 견디고 바람에 이기고 해서 강하고 달련되고 힘이 있지요. 사람도 한가지입니다. 연단을 받아야 힘이 있고 능력이 있습니다. 군대생활을 한 사람은 군대에서 얼마나 연단을 받는 것을 압니다. 제가 군대에 있을 때 군대에서는 훈련받고 난 다음 교관들이 교육을 할 때는 앉으면 잡니다. 피곤하니까. 자면 교관들이 호통을 치고 잠을 깨라고 하는데 그러든 말든 자요. 그런데 한번은 교관이 말한 말이 저의 귀에 박히고 잊혀지지 않습니다. “이놈들아 나도 너희들 훈련시키기 싫다. 너희들이 힘들고 괴로워서 졸고 있는 것 내버려 두고 싶지만은 너희들이 이곳에서 훈련받고 연단받지 아니하면 전쟁나면 총알 한방에 뒤진다. 너희들 안죽게 하려고 훈련을 시키는 것이지 괴롭히려고 훈련시키는 것 아니다.” 그말에 제가 정신이 번쩍 났습니다. “맞았어. 내가 여기 훈련을 잘받고 연단을 받으면 전쟁났을때도 내가 살아남지만 훈련을 받지 못하고 뒤뚱뒤뚱 하다가는 전쟁에서 대번에 죽을 것이다. 맞았어요. 우리가 이 세상에서 마귀와 싸워서 신앙인으로써 남아 있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연단시켜야 되는 것입니다.

시편 119편 71절에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베드로전서 5장 10절에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간 고난을 받은 너희를 친히 온전케 하시며 굳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케 하시리라” 고난을 통해서 온전케 하고 굳게 하고 강하게 하고 터를 견고하게 하겠다고 말한 것입니다.

제가 인도의 캘거타에 가서 집회를 하는 동안에 물을 못 마셔서 애를 먹었습니다. 인도 캘거타의 모든 강물과 호수는 흙탕물입니다. 물이 깨끗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인도 캘거타에서 물을 마시면 설사를 합니다. 병이 듭니다. 왜 캘거타에는 물이 이렇게 흙탕물입니까? 물으니까. 하는말이 “한번 살펴 보세요. 인도의 캘거타에 산이 있습니까? 기차를 타고 한시간을 달려가야 겨우 히말라야산이 보입니다. 산이 없어요. 산이 없기 때문에 물이 흙탕물입니다. 물이 맑고 깨끗할 수 있는 것은 산이 있고 계곡이 있어야 정화가 되어서 깨끗해지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를 옛날 금수강산이라고 하는 것은 산이 많고 계곡이 많기 때문에 물이 정화된 것입니다. 우리 인생도 위기의 높은 산과 시련의 깊은 골짜기를 통해 신앙의 인격이 맑고 밝고 환해지는 것입니다. 아무런 산과 골짜기 같은 시련이 없으면 흙탕물 같은 인격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련은 우리에게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오늘날은 그런일이 없지만 우리가 초등학교 다닐때는 일본 선생이 우리를 데리고 겨울에는 공부를 안시키고 보리밭 밟기를 했습니다. 그래서 점심 도시락 싸서 아침에 학교에 가면 줄을 서서 나가서 보리밭을 밟습니다. 보리를 밟으면서 내 생각에 ‘바보같이 보리가 자라는 것을 밟아서 싹을 다꺽어 버리면 어떻게 하노? 이놈들이 한국 사람 죽이려고 하는구나!’ 그런 생각을 했는데 나중에 전문가에게 알아보니 그렇지가 않아요. 보리싹이 올라오면은 그대로 내버려 두면은 겨우 80알에서 90알 정도밖에 열리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처음 올라온 싹을 발로 밟아서 꺽어 버리면 강한 싹이 뒤에 올라와서 그 싹은 400알의 열매를 맺습니다. 안밟아 놓으면 80에서 90알 맺는 보리가 밟아서 꺽어 놓으면 800알을 맺어요. 얼마나 다릅니까? 그래서 보리를 밟아주면 수확이 30배, 60배, 100배로 많아지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여러분의 인생에 수확을 많게 하려면 밟아 주셔야 됩니다. 여러분에게 시험과 환난이 와서 내리 밟거든 그때는 뭐라고 말합니까? ”아~ 보리밟기 하는구나. 하나님 밟으세요. 또 밟으세요. 또 밟으세요. 할렐루야 감사합니다.“ 울면서라도 감사하십시오. 왜냐하면 여러분 안밟으면 조그만하게 열매 맺지만은 밟으면 30배, 60배, 100배의 열매 맺는 사람들이 될 수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시련과 환난은 그 당시에 괴롭게 보이나 지나고 나면은 큰 열매를 맺게 됩니다. 영국 속담에 잔잔한 바다에서는 좋은 뱃사공이 만들어지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잔잔한 바다에 뱃사공이 어떻게 훌륭하게 됩니까? 험한 파도를 지나가야 뱃사공이 훌륭한 뱃사공이 되지요. 세네칸은 말하기를 ”거친 땅위에서 굳어진 발굽을 가진 짐승은 어떠한 길이든 걸어갈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지허버드는 ”폭풍은 참나무가 뿌리를 더욱 깊게 내리도록 만든다.“ 폭풍우가 내리 불어와서 참나무를 흔들면 참나무는 폭풍우를 이기기 위해서 밑으로 밑으로 뿌리를 더 깊이 내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연단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이 우리를 성장시키기 위해서는 우리를 징계하시는 것입니다. 때리는 것이요. 부모가 자식을 키우는데 징계하지 않는 부모가 있습니까? 오늘날은 많이 있지요. 오늘날 부모들은 너무나 바쁘다고 자식들을 내팽겨치기 때문에 마음에 죄책이 되니까 자식과 놀아주고 징계하지도 못하고 교훈도 못하니까 자꾸 돈만 줍니다. 필요하다면 돈주고 옷사주고 원하는데로 해주어서 자식들이 징계를 받지 않고 자라나므로 말미암아 굉장히 무질서하고 마음이 바로 잡히지 않고 성장해서 부모에게 효도하지 않고 선생을 존경하지 아니하고 선배를 무시하고 사회질서를 무시하는 그러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히브리서 12장 5절로 13절 우리 다같이 소리내어 한번 읽어 보십시다.
“또 아들들에게 권하는것 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을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 하였으니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비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 또 우리 육체의 아버지가 우리를 징계하여도 공경하였거든 하물며 모든 영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여 살려 하지 않겠느냐 저희는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예케 하시느니라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달한 자에게는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나니 그러므로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너희 발을 위하여 곧은 길을 만들어 저는 다리로 하여금 어그러지지 않고 고침을 받게 하라”

한번은 디엘 무디 목사님에게 한 여자가 찾아 왔습니다. “목사님 하나님이 계시기는 뭘 계세요? 나는 온갖 나쁜일을 다해도 하나님이 징계를 안하시고 때리지도 않는데 하나님 살아계시면 그렇게 할 턱이 있어요? 하나님이 안계십니다.” 그러니까 무디 목사님이 그 자매님을 자세히 보니 “자매님! 자매님은 마음대로 살아도 아무 채찍도 징계도 안오니까 하나님이 없다고 했는데 그것은 하나님이 없다고 증명한 것이 아니라 자매님이 하나님의 자식이 아니라는 증명이 되었습니다. 당신이 하나님의 친 자식이면 하나님이 징계 안할 리가 없습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자식이 아니니까 징계 안하지요.” “아~ 나는 교회 늘 나왔는데요?” “교회 왔다갔다 한다고 자식입니까? 회계하고 예수를 구주로 믿고 순종해야 자식이지.” 맞았어요. 남의 자식 잘못하는 것 왜 매들고 따라 다닙니까? 여러분 길을 건너가다가 남의 자식이 진흙탕에 뒹구는 것 보고 채찍으로 때립니까? “저놈 자식 참 교육 잘못받았구나.” 말만하고 지나가지요. 내 자식이 그렇게 하면 끌어 내어서 꾸짖고 채찍을 때리잖아요. 하나님이 하나님을 믿지 않는 세상 사람, 하나님의 자식이 아닌 사람들의 행동을 주님께서 징계할 리가 있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의 친자식은 반드시 징계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나는 아침에 자도 신기하고 저녁에도 깨어도 징계하고 하나님이 조금만 해도 꾸짖고 징계하는데 아휴 하나님 왜 이렇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친자식이기 때문에 주님이 징계하시는 것입니다. 징계를 슬프게 여기지 말고 징계를 당하거든 기쁘게 생각하십시오. 징계를 받아야 사람이 깨어나는 것입니다.

우리교회에 자매님 한분이 남편과 함께 제게 와서 신앙상담도 하고 신앙을 굳게 가지게 해달라고 안수기도도 받고 했는데 남편이 예수님을 믿기는 믿는데 뜨겁게 믿지 않아요. 하루 아침은 부인보고 “여보, 오늘 2부예배에 못가겠으니까 당신 혼자가시오. 나는 1부예배에 참석하고 나중에 7부예배 가든지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러면서 옷을 쫙 입고 넥타이 탁 매고 성경책 딱들고 나가니까 정말 1부예배 나가는줄 알았습니다. 2부예배를 보는데 급히 병원에서 연락이 왔어요. 남편이 교통사고로 지금 병원에 입원했으니 빨리오라고. 그래서 뛰어가 보니까 넥타이도 온데간데없고 잘입은 옷도 온데간데없고 골프복을 입고 있거든. “어떻게 되었오?” 그 남편이 “여보 미안해! 당신에게 거짓말하고 1부예배 간 것이 아니라 골프장에 가다가 깜빡 졸아서 전봇대를 들여 박아가지고서 차도 박살이 나고 목도 다치고 온몸을 상처입었다.” 하나님께 징계를 받았습니다. 교회간다고 한 다음 골프장에 갔으니까. 그 다음부터 그분이 완전히 달라져서 얼마나 열심히 기도하고 회개하고 오늘날 우리교회 장로가 되었어요. 징계란 것이 효과가 있어요.

또 한사람은 제게 와서 “목사님! 아무리 담배를 끊으려고 해도 담배가 끊어지지 않습니다. 내가 소위 집산데 자꾸 담배를 피우니까 집사가 담배 피운다고 흉도 보고 아무래도 안끊어지니까 담배 끊어지게 해주십시오.” 그래서 제가 안수기도를 “하나님 담배를 끊어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기도할때마다 ‘아멘’하시오.” “아멘” “또다시 담배피거든 하나님이 때려 주십시오.” 이것도 “아멘” 그랬습니다. 그리고 집에 갔어요. 집에가서 또 담배 생각이 나니까 그 부인보고 “여보! 천장이 있으니까 하나님이 못보잖아요. 천장에 가렸는데 하나님이 보좌에서 어떻게 보시느냐? 한 대 피워도 되겠지?” 부인이 “당신 목사님이 담배 피우면 징계를 내릴것이라고 했는데..” “그때는 할수없이 내가 아멘했지. 그러나 진정으로 한 것은 아니야~” 그러면서 담배를 하나 딱 피어서 빨아 당기는데 불똥이 눈으로 튀었어요. 갑자기 담배를 내던지고 “아이고 나 죽는다”고 뒹글기에 눈을 못뜨므로 병원에 빨리 데려가 보니까 의사가 조사해 보고 “당신 천우신조입니다. 0.1mm만 안으로 들어갔다면 당신 동자가 타서 장님이 될뻔했습니다. 하나님이 당신을 살려 주었습니다.” 그때부터 이 사람 담배 끊어 버렸어요. 아무래도 안끊던 사람이 안대 맞으니까 끊는다고. 그러므로 성경에도 자식에게 매를 때리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 했습니다. 매를 때리면 자식을 어리석음에서 건진다고 했습니다. 징계가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우리가 과거를 돌이켜 보십시오. 우리가 하나님께 매맞았을 때 얼마나 회개하고 우리가 변화받지 않았어요. 매를 맞기 전에는 우리가 변화받지 않았으나 매를 맞으면 변화되는 것입니다.

여러분께서 레미제라블을 ‘장발장’이라는 소설을 읽어 보셨죠? 세계적으로 유명한 소설 장발장. 이는 빅토르 위고가 지은 책인데요. 이 장발장을 빅토르 위고가 어떻게 지었냐면 그는 문학가지만 술많이 먹고 음란하고 방탕하고 집안을 잘 돌보지 않아서 집안 식구들이 몸서리를 쳤습니다. 술먹고 집에와서 고함고함 치고 가재도구를 깨뜨리고 그러면서도 또 예수를 믿는다는 소리는 합니다. 그런데 1841년 여름 빅토를 위고의 가장 사랑하던딸 레오폰디느가 세느강에서 물에 빠져 죽었습니다. 그는 죽은 자기딸의 시체를 안고 통곡을 하고 울었습니다. “내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내려왔다. 죽은 것은 내 딸이 아니라 천하의 죄인인 내가 죽었다.” 그날로 그는 완전히 변화되었습니다. 그날로 회개하고 말씀읽고 기도하고 하나님께 온전히 그 삶을 바치고 자기의 과거에 죄악된 삶을 기억하고 그가 회개하면서 적은 소설이 장발장입니다. 그래서 그는 변화된 사람이 될뿐 아니라 하나님 징계로 말미암아 불후의 명작을 적을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징계를 통해서 우리들은 올바른 사람이 될 때가 많습니다. 이렇기 때문에 징계는 그 당시에는 괴롭고 고통스러우나 지나고 보면 그것이 우리에게 참 도움이 된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이 우리를 양육하시는 것은 우리를 천국에 데려가기 위한 목적입니다. 천국에 데려가지 않으려고 한다면 세상에 그대로 마음데로 살도록 내버려 놓을 수밖에 없지요. 천국에 데려갈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서 주님께서 우리들을 보호하시고 우리를 성장시키시고 양육하시고 연단하시고 징계하시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장 3절에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고 주님께서 말씀한 것입니다.

저는 인도의 위대한 성자 선다싱을 상당히 존경하고 선다싱의 자서전을 재미있게 여러번 읽었습니다. 그는 40일 금식기도를 하고 난 다음에 그때부터는 종종 기도하다가 하늘나라에 올라가는 체험을 했습니다. 그가 한번은 하늘나라에 올라가서 사람들을 만났는데 한 사람이 와서 절을 하면서 “선생님! 반갑습니다. 이처럼 하늘나라에서 만나니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습니다.” “당신 누구요.” “내가 나환자촌에 있을 때 선생님이 나환자촌에 와서 예수님을 전도해 주지 않았습니까? 그때 내가 예수믿고 난 다음 구원받았는데 며칠 몇날에 죽어서 이곳에 왔습니다.” 그래서 선다싱이 입신에서 깨어나고 난 다음 나환자촌에 가서 알아보니 그 사람말 그대로 그날 그시에 세상을 떠났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 세상에 살다가 이 육신의 장막집 떠나면 공중에 떠돌아 다니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예비한 아름다운 천국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육신의 약한몸이 강한 몸으로 썩을 몸이 영화로운 몸으로 죽을몸이 살몸으로 변화되어 주님과 함께 영원히 사는 것이 천국입니다. 만일 천국이 없다면 우리가 무엇 때문에 이 세상에 고생을 하고 주님 섬기며 올바르게 살려고 노력하겠습니까? 사람이 한번 나서 죽는 것은 정한 이치요, 죽고 난 다음에 믿는자는 천국에 믿지 않는 자는 지옥으로 떨어지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옥이 무서운 곳이 아니라면 왜 온몸을 내어 던져 못박히고 찢어지고 피흘리면서 지옥문을 막았어요. 주님 십자가는 지옥문을 막는 대문입니다. 그냥 막을수가 없어요. 온몸이 창에 찔리고 못에 박히고 찢어지고 상처 투성이가 되면서도 지옥문을 막았습니다. 지옥에 가는 것이 얼마나 무섭고 고통스럽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이 지옥문을 막고 천당문을 그 몸을 찢어서 열어 놓은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결론]
이 세상에 살면서 자기도 상실하고 길도 잃어버리고 그냥 살아 있으니까 살아가는 삶은 정말로 불행하고 불쌍한 삶입니다. 그 종말은 영원한 죽음이요, 지옥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고 자기도 찾고 길도 찾고 영원한 천국의 희망 중에 사는 사람은 너무나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는 금새 안심, 내새 복락을 동시에 얻어서 영원히 눈물과 근심과 탄식과 이별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앓는 것이나 죽는 것이 없는 천국에서 영화롭게 살게 되실 것입니다.

[기도]
전능하시고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사람은 예수님의 탄생과 생애와 죽음과 부활을 부인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다 부인하지만은 그 사람들은 너무나 불쌍한 사람들이요,
자기를 잃어 버린 사람이요, 미래를 상실한 사람들이요, 절망적인 존재에 불과합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하나님이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가 구주로 모셨으니
그리스도는 우리 가슴속에 천국길이 되시고
거짓이 아닌 진리가 되시고 우리에게 자라고 향기나고
열매맺는 생명이 되어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아버지로 섬기고
아버지를 의지하고 아버지의 보호를 받고 아버지의 양육을 받고
아버지로부터 성장을 받아서 영원히 잘되고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풍성하게 얻는자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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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7 고린도후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고후5:16∼21  임영수 목사  2009-05-21 2685
1556 시편 하나님은 우리의 목자 시23:1∼6  임영수 목사  2009-05-21 2297
1555 베드로전 기독교 영성 벧전3:15∼16  임영수 목사  2009-05-21 1951
1554 예레미야 우리와 다른 하나님 렘29:10∼14  임영수 목사  2009-05-21 2163
1553 로마서 희망을 잃지 마세요 롬5:3-4  한태완 목사  2009-05-19 1953
1552 시편 희망을 주는 사람 시71:5  한태완 목사  2009-05-19 2634
1551 요한일서 희생 요일3:16  한태완 목사  2009-05-19 1895
1550 마태복음 희생정신 마16:25  한태완 목사  2009-05-19 2243
1549 시편 힘과 용기를 주시는 분 시145:14  한태완 목사  2009-05-19 2870
1548 잠언 하나님을 체험하라 잠8:17  강종수 목사  2009-05-17 2051
1547 사도행전 마술과 신앙 file 행13:4-12  정용섭 목사  2009-05-17 2373
1546 레위기 땅을 묵혀라! 레25:1-7  정용섭 목사  2009-05-17 1947
1545 요한복음 예수님을 먹다 요6:52-59  정용섭 목사  2009-05-17 2147
1544 출애굽기 야훼의 진노와 모세의 기도 출32:7-14  정용섭 목사  2009-05-17 2290
1543 요한계시 구름 타고 오십니다. 계1:4-8  정용섭 목사  2009-05-17 2016
1542 마가복음 막힘에서 열림으로! 막7:31-37  정용섭 목사  2009-05-16 2482
1541 베드로전 도전과 응전 벧전5:8~9  조용기 목사  2009-05-14 2292
» 고린도전 가장 불쌍한 자와 가장 복된 자 고전15:12-19  조용기 목사  2009-05-14 2586
1539 에배소서 함께 나누는 삶 엡2:5-6, 계3장:20  조용기 목사  2009-05-14 1972
1538 시편 나의 도움이 어디소 올꼬? 시121:1~8  조용기 목사  2009-05-14 2405
1537 마태복음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면 마7:12  조용기 목사  2009-05-14 2225
1536 사무엘하 속죄제와 속건제 삼하21:1-9  조용기 목사  2009-05-14 2655
1535 마태복음 왜 선교해야 하나? 마28:18-20  조용기 목사  2009-05-14 1731
1534 전도서 현재와 과거 그리고 미래 전3:1-12  조용기 목사  2009-05-14 1872
1533 요한일서 용서하고 잊어버리고 사랑하라 요일4: 7-12  조용기 목사  2009-05-14 2415
1532 요엘 이상을 보며, 꿈을 꾸며 욜2:28-29  최만자 자매  2009-05-12 2451
1531 에스겔 1 + 1 = 1 겔37:15~22  이상익 형제  2009-05-12 1773
1530 다니엘 그리 아니하실 찌라도-나의 하나님, 우리 하나님 단4:13-18  김시원 목사  2009-05-12 2250
1529 요한복음 빛이 비치니 요1:5  박경미 교수  2009-05-12 1853
1528 요한복음 부족할 줄 아노라 요21:25  이재철 목사  2009-05-12 2477
1527 요한복음 하신 것이 아니라 요21:18∼24  이재철 목사  2009-05-12 1872
1526 요한복음 너는 나를 따르라 요21:18∼24  이재철 목사  2009-05-12 2779
1525 요한복음 죽음으로 영광을 ―성령강림주일/성찬주일 요21:18∼24  이재철 목사  2009-05-11 3014
1524 요한복음 내양을 먹이라, 치라 요21:15∼17  이재철 목사  2009-05-11 5278
1523 갈라디아 거짓신앙과 참 신앙의 차이 갈6:1-14  박홍섭 목사  2009-05-11 24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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