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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리고 따르라

창세기 조용기............... 조회 수 1878 추천 수 0 2009.05.23 13:2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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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창3:1~2 
설교자 : 조용기 목사 
참고 : 2004년 8월 8일 주일3부설교 

말 씀 : “여호와 하나님의 지으신 들짐승 중에 뱀이 가장 간교하더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가로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실과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서론]

저는 오늘 여러분과 함께 ‘버리고 따르라’ 이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낚시꾼이 미끼를 끼지 않은 빈 낙시를 물에 드리워 놓으면 종일 기다려도 고기 한 마리도 물지 않습니다. 그러나 고기가 좋아하는 미끼를 끼워 놓으면 곧장 고기를 낚게 됩니다.
마귀가 인간을 유혹하는 낚시 미끼는 욕심입니다. 아담은 마음의 욕심 때문에 에덴에서 마귀의 낚시에 걸려서 도적질 당하고 죽임을 당하고 멸망을 당한 비극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마음에 욕심이 없으셨기 때문에 마귀가 결사적으로 유혹을 해도 조금도 동요하지 아니하시고 낚시에 걸리지 아니하셨습니다. 우리들이 마귀의 궤궤에 걸리지 않기 위해서는 한사코 욕심을 따르지 말아야 합니다.
야고보서 1장 13절로 15절에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찌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본론]
1. 아브라함의 순종

첫째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 어떻게 부르셨나요?
창세기 12장 1절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하나님을 따르기 위해서는 치르는 대가가 있습니다. 먼저 옛 삶을 버리고 떠나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그냥 내가 네게 복주고 복주며 번창케 하고 번창케 하리라고 말씀하지 아니하셨습니다. 먼저 떠나라 했습니다. 네 전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라 했습니다. 칠십 평생을 살아온 전토 친척 아비집을 떠난다는 것은 쉬운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축복해 주시기 전에 반드시 옛삶을 청산하고 떠나야만 되는 것입니다.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 세상 자랑을 떠나야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과 하나님 나라를 다 가질수는 없습니다. 사람들은 육신의 정욕이나 안목의 정욕, 이 세상 자랑도 떠나지 않고 하늘나라도 함께 소유하고 싶어하지만은 절대로 그런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중국 송나라때 이방이 지은 태평어람이라는 책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옛날 그 나라에 아름다운 처녀가 있었는데 하루는 그 처녀에게 두 집에서 동시에 청혼이 들어왔습니다. 한집은 굉장히 부잔데 총각의 생긴 몰골이 꽤재재하고 키도 작고 못났습니다. 둘째 청혼이 들어온 집은 적빈한데 총각이 키가 늘씬하고 인물이 훤출하게 잘생겼습니다. 그래서 어느 한쪽을 택하기가 어려워진 처녀의 부모는 본인의 생각을 알아볼 요량으로 처녀에게 물었습니다. “혼처를 정하기가 쉽지 않구나. 네가 보기에는 어느 집이 좋으냐. 만일 동쪽집으로 시집가고 싶으면 오른손을 들고 서쪽집으로 시집가고 싶으면 왼손을 들어라.” 그러자 딸은 잠시 망설이더니 두손을 번쩍 들었습니다. 깜짝 놀란 부모가 그 이유를 물으니까 딸이 다음과 같이 대답했습니다. “동쪽집은 부자니까 밥은 동쪽집에서 먹고 서쪽집은 신랑이 잘생겼으니까 잠은 서쪽집에서 자고 싶어요.” 여기에서 동가식 서가숙이라는 말이 생겨났다고 합니다. 아무리 그래도 두집의 총각이랑 결혼할수 있습니까? 불가능하지 않아요? 그런데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이 처녀와 같습니다. 하나님과도 더불어 살고, 세상과도 함께 더불어 살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겠느냐. 하나님과 또 더불어 살고 세상도 더불어 살고 두손을 다 번쩍 들고 예수를 믿고 살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과 하나님 나라를 겸하여 가질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을 따르기 위해서는 세상을 버려야만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아브라함이 전토 친척은 버렸는데 아비집은 버리지 못했습니다. 그 아비집이 뭡니까? 조카 롯입니다. 조카 롯은 아브라함의 막내 동생의 아들입니다. 막내동생 하란이 일찍 죽었습니다. 고아가 된 그 조카를 아브라함은 자기 친아들처럼 집에서 길렀습니다. 다 버리고 떠나라고 했는데 전토 친척은 떠났는데 아비집인 조카를 버리지 못하고 조카를 데리고 떠났습니다. 이것이 아브라함에게는 큰 화근이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가나안 땅에 갔을 때 가나안땅에 큰 흉년이 다가왔습니다. 우물물이 다 마르고 풀들이 다 탔습니다. 짐승떼들은 다 굶어죽고 종들은 다 뿔뿔이 헤어져 도망을 치고 그래도 하나님이 가나안 땅에 가라 했으니 가나안 땅에 죽치고 앉아서 기도하고 믿어야 되겠는데 조카가 배고프다고 자꾸 징징 거리고 우니 아브라함은 그 조카에 대한 측은한 마음, 불쌍한 마음이 하나님의 명령을 듣는 것보다 앞서게 된것입니다. 세상을 끼고 있으면 어려움을 당할 때 세상이 칭얼대면 사람들은 세상으로 끌려가게 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그 위대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칭얼거리는 조카에 대한 불쌍한 마음과 측은한 마음 때문에 그만 그 아내와 조카를 데리고 애굽으로 내려갔습니다. 애굽은 세상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리 내려가지 말아야 되는데 내려갔습니다. 그 결과 아내를 바로에게 뺏기고 패가망신하는 수치를 당하고 하나님이 안도와 줬으면 아브라함은 애굽에서 다시 헤어나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를 받아서 애굽의 바로왕에게서 놓여나서 다시 가나안땅으로 올라왔는데 이 조카 때문에 또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아브라함이 짐승떼가 많고 조카도 짐승떼가 많은데 목초지는 많지 않고 물도 많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아브라함의 짐승의 목자들과 롯의 짐승의 목자들이 서로 목초지를 점령하려고 서로 물을 점령하려고 싸웠습니다. 애들싸움이 어른싸움이 된다고 그 목동들의 싸움이 아브라함과 조카 롯의 싸움이 되었습니다. 세상에 객지에 나와서 이제는 삼촌과 조카가 싸움이 벌어졌습니다. 챙피하기 말로다 할수 없습니다. 이게 떠날 것을 떠나지 않았기 때문에 당한 끝없는 고통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결단을 내렸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이제 순종해야 되겠다. 내 전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라고 했는데 이제는 아비집이 조카를 떠나 보내야 되겠다.” 그래서 창세기 13장 9절로 11절에 아브라함이 말했습니다.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 들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는고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 그러므로 롯이 요단 온 들을 택하고 동으로 옮기니 그들이 서로 떠난 지라”
비로소 떠났습니다. 비로소 아브라함은 전토 친척 아비집을 완전히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마지막 아비집을 버렸을 때 하나님께서 복을 주셨습니다.
창세기 13장 14절로 17절 다같이 우리한번 소리내어 읽으십시다.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내가 네 자손으로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찐대 네 자손도 세리라 너는 일어나 그 땅을 종과 횡으로 행하여 보라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
마지막 아비집을 버렸을 때 하나님이 복을 주셨습니다. 아비집인 롯을 끼고 있을때는 내내 시험과 환난과 고통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썩은 것을 가지고 다니면 항상 똥파리가 따라오는 것입니다. 아무리 쫓아도 썩은 것을 가지고 있으면 따라 오지요. 세상을 끼고 있으면 항상 마귀가 따라옵니다. 아무리 사탄아 물러가라 해도 세상을 내가 끼고 있으니 세상은 마귀에게 속했으므로 마귀가 따라 옵니다.
알렉산더 대왕이 페르시아와 전투를 앞두고 행군할때의 일입니다. 하루는 그가 뒤따라오는 군사들을 지켜 보다가 이상한 점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모두 어깨가 축 늘어진채 도무지 싸울 군인같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알고보니 그들은 이전 싸움에서 얻은 전리품을 잔뜩 짊어진채 걷고 있었던 것입니다. 알렉산더대왕은 부하들의 마음이 전투가 아니라 전리품에 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즉시 행군을 멈추게 한 뒤 군사들이 메고온 전리품을 모두 불에 태우도록 명령했습니다. “큰 모닥불을 피워놓고 전리품을 다 불속에 집어 넣어라.” 군사들은 크게 불평을 하고 원망을 했지만은 대왕의 명령이라 순종하지 않을수 없어서 전부다 불에 던지니 홀가분해 졌습니다. 물질에 대한 마음도 없어지고 무거운 짐도 다 벗고 난 다음 페르시아의 다리오 왕을 대면해서 대전투를 벌이는데 적은 군사로써 대군, 페르시아 군을 물리치고 큰 승리를 얻고 전리품은 불에 태운것보다 더 많이 군사들이 나누어 가질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의 군사들도 한가지입니다. 세상을 잔뜩 짊어지고 세상을 사랑하면서 우리가 적군과 싸울수가 없습니다. 마귀하고 못 싸웁니다. 세상짐 풀어놓고 세상 사랑 제켜 놓고 우리가 나가야 마귀와 싸워서 승리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축복이란 떠나야 얻습니다. 하나님의 복은 세상을 버리지 않고는 받을수가 없어요. 세상을 떠나지 아니하면 얻을수가 없습니다.
창세기 12장 2절로 3절에 아브라함이 세상을 버리니 전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 버리고 난 다음에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찌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고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전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니까 큰 민족을 이루게 하시고 이름을 창대케 하시고 복의 근원이 되게 하시고 그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복을 주고 저주하는 자에게는 저주하시고 땅의 모든 족속이 그로 인하여 복을 받도록 하나님이 허락해 주신 것입니다.

2. 예수님의 순종
둘째로, 우리 예수님의 생애를 보십시다.
예수님은 인생을 구원한다는 큰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기 위해서는 천국을 버려야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천국에 그대로 계시면서 이 땅을 구원할수 없어요. 천국의 그 영광과 보좌와 그 권세를 다 버리고 초라한 나사렛 동리의 처녀 마리아의 몸을 빌려서 사람으로 태어나야 되었습니다. 엄청난 희생입니다.
성경은 요한복음 1장 1절에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이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으리라. 세상으로 왔습니다. 천국의 영광과 권세와 그 보좌를 버려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는 사람을 구원하러 오실수가 없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인생을 구원하기 위하여 세상을 버려야 되었습니다. 세상에 오셨으나 세상을 버려야만 했던 것입니다. 마귀가 광야에서 세상을 받아 들이도록 유혹했습니다. 식욕을 받아 들이도록 유혹했으나 예수님은 하나님 앞에서 식욕을 버렸습니다. 명예욕으로 세상을 끌어 들이려고 했으나 하나님 앞에서 명예욕을 버렸습니다. 나중에는 세상 권세와 영광으로 유혹했습니다. 마귀도 자기를 따르는 사람에게 이 세상에서는 세상 권세와 부귀 영화를 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것도 버렸습니다.
마태복음 4장 8절로 10절에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가로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단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예수님은 단호하게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 세상 자랑을 버려 버렸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전혀 마귀의 유혹을 받지 않았습니다. 세상에 계시나 세상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들어올수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인간에게 천국을 주시기 위하여 당신의 생명을 버려야 되었습니다. 당신의 생명을 재물로 내어주지 않고는 세상의 영혼들을 구원할 수가 없었기 때문인 것입니다. 주님도 삶의 애착을 가지셨습니다. 완전한 하나님이 완전한 사람으로 오신이상 사람이라면 다 살고 싶어 하지요. 생명에 애착이 없는 사람 누가 있습니까?
누가복음 22장 39절로 42절에 보면 “예수께서 나가사 습관을 좇아 감람산에 가시매 제자들도 좇았더니 그곳에 이르러 저희에게 이르시되 시험에 들지 않기를 기도하라 하시고 저희를 떠나 돌 던질만큼 가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여 가라사대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어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
이 잔이란 세상 사람을 위해서 죄짐을 짊어지고 십자가에 죽는 것인데 하나님의 뜻이면 나를 죽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생명의 애착을 주님은 나중에 버리셨습니다.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서 구원의 큰 역사가 일어나기 위해서는 주님이 생명을 버려야만 했습니다. 주님도 살고 세상을 살리지는 못했습니다. 세상의 죄를 짊어지고 죽으셔야 세상을 살릴수가 있었습니다.
누가복음 22장 42절에 “가라사대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어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
그래서 아버지의 원대로 십자가에 자기몸을 내어 놓고 못박혀 죽으셨던 것입니다.
빌립보서 2장 5절로 8절에 보면 이와같이 자기를 버리시므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지극히 큰 축복을 주신 것을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다같이 빌립보서 2장 5절로 8절 소리내어 읽어 보십시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그러므로 버리심으로 얻은 축복은 뭡니까? 주님이 십자가에서 당신의 목숨을 버리면 그로써 망했습니까? 하늘나라는 하나님께 순종해서 버리고 떠나면 하나님의 축복으로 채워 주시는 것입니다. 세상의 것을 떠나고 버려야 하나님의 축복을 부어 주실수가 있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2장 9절로 11절에 보면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죽으신 예수님이 이제는 만왕의 왕, 만주의 주가 되어서 온 우주와 만물을 다스리는 역사를 나타내고 보좌에 앉아 계신 것입니다.
3. 하나님을 따르기 위하여
셋째로, 우리가 하나님을 따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될까요?
우리도 한가지입니다. 아브라함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모범을 따라서 세상을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세상을 사랑하고 세상을 섬기면 하나님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이 세상은 타락한 곳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을 저버리고 멀리멀리 떠난곳이 세상입니다. 세상에는 하나님도 계시지 않고 예수님도 계시지 않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살면서 1초도 예수님이나 하나님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세상은 마귀에게 잡혀 있습니다. 온 세상은 악한 자에게 속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을 우리가 사랑하고 세상을 섬기면 하나님과 예수와는 아무관계도 없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2장 15절로 17절에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저는 잭 에커트라는 미국인의 간증을 읽은적이 있습니다. 그는 약국을 경영하다가 이웃의 전도를 받고 교회를 다니게 되었는데 하루는 성경을 보다가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세상의 소금이라”는 말씀을 읽었습니다. ‘아~ 그렇다면 나는 세상과 사람과 무언가 달라야 하지 않겠는가? 무언가 좋은일을 해야하지 않겠는가! 내가 세상의 빛이면 빛되게 살고 소금이면 소금처럼 살아야 안되겠는가!’ 그래서 고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미국의 약국은 약만 파는 것이 아니라 성인이 보는 도색잡지도 함께 팔았는데 그의 마음속에 이 잡지를 없애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사업을 하되 남자들을 유혹하는 도색잡지를 파는 세상이 내 약진열장에 있으니 세상을 쫓아내야 되겠다.’ 그래서 그의 약국에서 도색잡지로 연간 5백만 달러의 돈을 벌어 들였지만 그는 과감이 이를 포기하고 잡지를 다 없애 버렸습니다. 자연히 매출은 줄어 들었고 약국의 지배인들이 그에게 반발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잭은 포기하지 않고 믿음대로 밀고 나갔습니다. 그러자 처음에는 사람들이 저 사람 돌았다고 이상하게 생각하다가 점점 그를 지지하기 시작했고 2년이 채 못되어서 전국적으로 도색잡지 추방운동이 일어나서 모든 약국에서 도색잡지를 추방하는 일이 벌어지게 되었습니다. 결국 잭 에커트는 이 일로 인해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고 하나님께 축복을 받아 사업에서도 크게 성공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전국에 1천 7백개의 점포를 가진 미국에서 두 번째로 큰 약방 연쇄점 에커트 드락의 사장이 되었기 때문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서 당장 문앞에 있는 세상의 유익에 빠지지 않고 그를 단호하게 버리고 하나님 편에 서서 일시적으로는 손해를 보고 바보같이 보였짐반 그는 세상의 축복대신에 하나님의 복을 받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세상은 놋과 같습니다. 세상을 데리고 하나님을 따르게 되면 시험과 환난이 끊어지지 않습니다. 아브라함이 롯을 데리고 가나안에 가니 가뭄이 다가왔지 애굽에 내려가지 패가망신했지요. 또 가나안에 올라오니 서로 분쟁이 벌어졌지요. 롯을 끼고 있는 이상은 시험과 환난이 끝나지 않습니다. 우리가 예수 믿는다고 하면서 세상을 끼고 살아가면 환난과 시험과 고통이 끊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항상 마귀가 따라 붙어서 우리를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일을 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담대하게 자기 십자가를 짊어지고 세상에 대하여 죽어야 되는 것입니다. 어떠한 사람은 자기 남편이 십자가입니다. 괴롭히지요. 왜, 남편이 십자가가 되어서 세상 사랑을 버리라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여러분 고통스럽고 나중에는 못박혀 죽는 괴로움이 따르는 것이지요. 어떤 사람은 아내가 십자가입니다. 너무 남편을 괴롭히고 고통스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아내를 통해서 세상에 대해서 못박혀 죽고 하나님께 대해서 살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우리에게 다 십자가가 있습니다. 예수님도 십자가를 짊어졌는데 우리에게 십자가 없을턱이 없습니다. 십자가 없이는 세상이 안죽습니다. 그러므로 남편이 혹은 아내가 자식이 이웃이 생활에 십자가 다가올 때 벗으려고 하지 마십시오. 십자가 벗으려는 것은 세상을 끌어 들이려는 것입니다. 십자가에 매달려서 죽으면 세상은 떠나가고 하늘나라가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0장 37절로 39절에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니라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
어마어마한 말씀 아닙니까? 제가 옛날에 어린신자때 이 성경구절을 읽으니까 소름이 끼치더라구요. ‘와~ 예수믿는 것이 이렇게 힘이 들고 어렵구나.’ 그러나 사실입니다. 세상과 세상의 것을 사랑하면 하나님과 관계가 없기 때문인 것입니다. 우리는 단호하게 십자가를 짊어지고 세상을 버려야 되는 것입니다. 세상에 등지고 하나님께로 향해야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짊어지고 이 세상을 버리고 하나님을 향하게 될 때 새로운 세계가 우리에게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버리십시오.
갈라디아서 2장 20절에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빌립보서 1장 21절에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자기를 버린다는 것 이것 굉장히 힘든 일이지만은 그러나 그렇게 하는 것이 진짜로 사는 것입니다. 세상에 있는 자기를 버리면 하늘나라에 있는 새로운 자기를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위대한 설교자였던 찰스 피니가 청년시절에 뉴욕에서 변호사회사에 변호사로 일할때의 일입니다. 하루는 그가 새벽에 기도하는데 예수님의 음성이 들려 왔습니다. “피니야 너는 지금하고 있는 일이 끝나면 무엇을 하려느냐?” 그는 “간판을 내걸고 개인 변호사 개업을 하겠습니다.” 그러자 주님께서 다시 “그 다음에는 무엇을 하겠느냐?” “부자가 되겠습니다.” “그 다음에는 무엇을 하겠느냐?” “은퇴하겠지요.” “그 다음에는 무엇을 하겠느냐?” “아무래도 죽겠지요.” “죽은 후에는 무엇을 하겠느냐?”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심판을 받겠지요.” 그러자 두려움이 꽉 들어왔습니다. ‘내가 과연 심판대 앞에 설수 있는가!’ 그래서 피니는 그 자리에서 일어나서 산으로 가서 진흙창에 무릎을 꿇고 부르짖어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나는 아직까지도 형식적으로 주님을 믿었지 진정으로 믿지 못했습니다. 나를 구원해 주시고 평안을 주시옵소서” 하루종일 밥도 먹지 않고 부르짖어 기도한 결과에 오후가 되어서 마음에 평안을 얻게 되었습니다. 평안이 넘쳐오자 주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피니야~ 나는 네가 변화사가 되지 않고 너 자신을 내게 맡겨서 주의 종이 되라”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젊은 변호사로써 한참 출세할수 있는데 하나님이 그것을 버리고 주의 종이 되라는 것입니다. 결국 찰스 피니는 자기 자신을 내어 던져서 변호사업을 그만두고 목사가 되고 난 다음 성령의 불을 받아 그 당시 미국이 영적으로 크게 침체되어 있었는데 피니의 부흥회를 통해서 전 미국이 살아났습니다. 피니가 얼마나 성령이 충만했던지 피니가 기차를 타고 한 도시에 들어오면 그가 설교도 하기전에 도시에 있는 사람들이 울기 시작했습니다. 성령이 얼마나 역사했던지... 어느 방직공장에 피니라 말을 하고 쭉 구경을 하며 지나가는데 피니가 지나가는 곳마다 직원들이 전부 통곡을 하고 울기 시작해가지고서 공장을 가동할수 없어서 직원들을 전부 강단에 모아서 부흥회를 열었다는 사실이 있습니다. 그와같이 위대한 주의 종으로써 영적인 위기에 처한 미국을 다시 구원한 그런 종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을 따르기 위해 자신의 보장된 미래를 과감하게 버리고 하나님께 나갈 때 하나님은 그를 통하여 수없이 죽은 영혼들을 살리는 위대한 도구가 된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세상을 버리는 자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약속하신대로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삶 전체를 하나님께 바치십시오. 아브라함이 100살에 아들 이삭을 낳지 않았습니까? 이삭이 17,18살이 되었을 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습니다. 아버지 세숫물 떠다 주었고 아버지 안마도 해주고 옷도 입혀 주고 양물도 신겨주고 벗겨 주고 일도 거들어 주었습니다. 너무너무나 아들이 좋아서 그만 하나님과 자기 사이에 아들이 탁 가로막혔습니다. 그러자 아브라함은 이삭을 가슴에 품고 하나님을 섬길수 없다는 것을 하나님이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하루 아브라함에게 “아브라함아! 네 사랑하는 독자 아들 이삭을 모리아산에 데려가서 태워 드리는 제사로 드려라.” 청천벽력입니다. 사랑하는 아들을 모리아산에 데려가서 각을 떠가지고 태워 드리는 제사로 드려라. 왜, 하나님과 아브라함 사이에 외독자도 중간에 설수 없습니다. 사랑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든지 아니면 세상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주 하나님을 사랑하라 했으니 타협이 있을수 없지요.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하나님 이외에 다른 그 무엇도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습니다.
창세기 22장 9절로 10절에 “하나님이 그에게 지시하신 곳에 이른지라 이에 아브라함이 그곳에 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놓고 그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단 나무 위에 놓고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하더니”
그때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아 칼을 치워라. 네 아들을 죽이지 말라.”
창세기 22장 12절에 “사자가 가라사대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고 말씀한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에게 축복해 주시는 것하고 마귀가 주는것하고 틀립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와서 가나안 땅으로 들어왔을 때 하나님이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너희가 애굽에 있었을때는 나일강물을 발로써 이렇게 제켜서 밭과 눈에 물을 대어서 곡식을 지었다. 그러나 네가 들어오는 땅은 산과 골짜기 땅이라 하늘에서 비가 내려와서 먹고 살게 된다”고 말했습니다. 그것이 세상 삶과 하늘나라 삶의 다른점입니다. 세상에는 나일강물, 애굽은 세상을 말합니다. 세상 나일강물 더러운 썩은물을 그냥 쉽게 대하고 살았지만 가나안 땅은 산과 골짜기에 하늘에서 비가 내려오기 때문에 기도해서 하나님의 은총으로 맑은 물을 받아서 농사를 짓고 살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 안믿는 사람은 세상 나일강물을 가지고서 삽니다. 마귀가 세상에 부귀, 영화, 공명도 주는 것입니다. 그와함께 지옥도 갖다 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믿는 사람은 그 나일강을 떠나서 가나안땅 예수믿는 품으로 돌아오면 우리는 그 나라와 그 의를 먼저 구하면 하나님이 복을 주어서 사는 것입니다. 세상이 주는 복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는 복을 받아서 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이 주는 복과 하나님이 주는 복이 따로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복을 받고 천국가는 사람은 세상과 겸하여 하나님을 섬길수는 없습니다.
월보 채프만 박사가 런던에 있을 때 구세군 창시자였던 윌리암 부스 장군을 만날 기회가 있었습니다. 당시 부스 장군은 80살이 넘은 고령이었는데 채프만 박사가 성공의 비결이 무엇이냐 묻자 잠시 주저하더니 눈물을 흘리며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내 비결은 오직 하나님 한분만 섬기는데 있습니다. 사실 나보다 더 우수한 사람도 많았고 좋은 기회를 가졌던 사람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나는 런던에 가난한 사람들을 향한 주님의 뜻을 깨닫고 내 삶을 하나님께 전적으로 바치기로 작정했습니다. 그날 이후로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고 나를 통해 많은 이를 이루셨습니다. 오늘날 구세군이 이룬 것이 있다면 그것은 모두 하나님께서 하신 일입니다.” 윌리암 부스가 구세군을 창설하고 하나님의 복음을 전했던 원동력은 바로 하나님께 전적으로 바친 그의 삶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올바로 섬기기 원하신다면 하나님께 여러분의 삶을 바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 행하시는 놀라운 역사를 체험할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 사람들이 자기를 자기것이라고 하면 하나님이 여러분을 사용하려면 여러분 허락을 맡아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여러분을 전적으로 하나님께 내어 놓으면 하나님이 여러분의 허락없이 여러분을 마음데로 사용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내뜻대로 해주시옵소서. 하나님은 여러분을 섬기는 종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뜻대로 살기 위해서는 여러분 자신을 하나님께 내어 놓아야 되는 것입니다.
고아의 아버지 조지 뮬러는 오직 기도로 말미암아 남에게 부탁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서 3천여명의 고아들을 먹이고, 입히고, 성장시켰습니다. 여러분 자기 자식 한두해도 키우기도 힘든데 3천명의 고아를 먹이고, 입히고, 교육시키고, 성장시키는 것 쉬운일이 아니지요. 무슨 재산이 있는것도 아니고 사업을 한것도 아닙니다. 오직 기도를 통해서. 이 조지 뮬러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나는 어느날 죽임을 당하였다. 나에 대하여 죽었고 나의 의견에 대하여 죽었고 나의 선택에 대하여 죽었고 내가 좋아하는 것에 대하여 죽었고 나의 의지에 대하여 죽었고 세상에 대하여 죽었고 세상의 칭찬과 책망에 대하여 죽었고 심지어 친구와 형제들에 대하여 죽었다. 나는 오직 하나님께 대하여만 살아있다.” 하나님께 대하여만 살아 있으니 하나님이 그를 통하여 이 위대한 일을 이룰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황금의 혀를 가진 위대한 스플 존은 말하기를 “헌신은 자신에 대한 소유권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진정한 헌신자는 더 이상 자신을 자신의 소유로 보지않고 하나님의 소유로 보게 된다.” 소유권 이전입니다. 소유권을 내가 가지고서 하나님을 믿으면 하나님과 늘 다투게 되지요. 소유권을 하나님께 넘겨 버리면 하나님과 나와 싸울 필요 없잖습니까? 야곱이 자기 중심으로 살때에는 얍복강에서 하나님과 씨름하여 환도뼈가 어그러졌습니다. 자기 자신을 하나님께 내어 맡겼을때는 하나님이 야곱을 위해서 일해 주고 살아준 것입니다. 오늘날도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위해서 일해주시고 살아주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조건은 여러분의 소유권을 하나님께 내어 맡겨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여러분 자신을 내어 놓아야 돼요. 나는 이런 글을 읽어 보았습니다. 미국의 어느 교회 흑인 집사님이셨는데 그분이 기도만 하면 응답이 옵니다. 그분이 병들어서도 언제나 기도만 하면 병이 났습니다. 한번은 병들어서 기도하는 것을 들어보니까 “하나님 당신의 재산에 손해가 갑니다. 당신의 재산이 병들어서 지금 죽으려고 하는 당신에게 손해가 가니 빨리빨리 와서 돌보아 주시옵소서.” 그래서 무슨 기도를 그렇게 하느냐고 하니까 “나는 하나님께 전부 맡겼기 때문에 이건 내몸이 아니라 하나님 몸입니다. 이것 하나님 재산이지요. 죽으면 하나님 손해 나지 내가 손해 날 것 없습니다.” 그렇게 담대하게 기도할수 있는 것은 소유권을 하나님께로 내어 맡겼기 때문인 것입니다. 우리는 버려야만 죽복을 받습니다.
세상을 버리고 자기 자신을 십자가에 못박고 버리고 하나님께 드려야 되는 것입니다. 떠나고 버리지 않고 복을 주시옵소서. 주시옵소서. 해도 안됩니다. 하나님과 마귀 사이에는 타협이 없습니다. 하늘나라와 세상은 짝 경계선이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말하기를 “하나님께서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나라로 옮겼다”고 한것입니다. 그러므로 다시 세상과 마귀를 생각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한번은 예수께 말했습니다. “주님 우리는 주님을 따르기 위해서 우리의 고향도 가족도 직업도 버리고 따랐으니 무엇을 주시겠습니까? 그때 주님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마태복음 19장 27절로 30절에 소리내어서 우리 다같이 읽어 보십시다.
“이에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좇았사오니 그런즉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좇는 너희도 열 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 두 지파를 심판하리라 또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
다른 성경에는 백배나 받고 핍박을 겸하여 받을것이라고 한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위해서 떠나고 버리면 주님은 하늘나라의 상급은 말할 필요없고 하늘나라에 영광은 말할필요 없고 이 땅에 사는 동안에도 버린 것이 대해서 백배나 받고 핍박을 겸하여 받을것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물론 우리 세상에 예수 잘믿고 사는 사람 핍박을 늘 받는 것은 당연한 이치지요. 저는 프랭크라는 한 미국 청년의 간증을 듣고 큰 감동을 받은적이 있습니다. 그 청년은 독실한 크리스챤으로 그 회사 계약을 담당하는 영업 사원이었는데 하루는 간부들과 함께 상대편 회사의 사람들을 접대하게 되었는데 그날밤 상대편 회사 사람들이 벌거벗고 여자들이 춤추는 스트립쇼 하는 그러한 곳에서 술로써 대접을 해달라는 요청이 왔습니다. 그러나 프랭크는 그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이 내심 마음에 걸리고 너무나 고통스러웠습니다. 그는 예수를 사랑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인데 못갈 자리에 갔습니다. 여자들이 벌거벗고 춤을 추고 술을 흥청 망청 마시는 곳에 어떻게 앉아 있을수 있습니까? 그러나 그가 그 자리를 박차고 나가면 계약은 물거품이 되고 그는 직장에서 해고당할것이고 당장 생계에 큰 지장이 생길 것 뻔한 것입니다. 그러니 이러지도 못하고 저리지도 못하고 너무나 고민스러워서 그런 머리를 흔들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어떻게 할까요? 이 자리를 떠나면 계약은 실폐하고 회사에서 나는 쫓여 나고 나는 밥그릇이 떨어집니다. 그러나 내가 예수 믿는 양심을 가지고는 이 자리에 앉아서 있을수가 없습니다. 그러자 성령께서는 그 마음에 말했습니다. ”단호하게 떠나라! 세상을 등져라!“ 그래서 그는 벌떡 일어났습니다. 그 상대편 회사 중역과 대표자들을 향해서 ”여러분 나는 예수를 믿고 하나님을 공격하는 사람입니다. 예수님 모시고 나는 이 자리에 도저히 눈뜨고 앉아 있을수가 없으니 대단히 죄송합니다. 나는 이 자리를 떠나야되겠습니다. 그리고 그는 떠나 나왔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생각했습니다. “이제는 직장도 잃었고 이제는 내 밥그릇도 떠나갔다.” 그러나 마음이 너무나 기쁩니다. “주님! 나는 주님을 섬기기 위해서 못갈 때 안가고 못앉을 때 안앉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여관에 들어가서 자는데 밤중에 문을 두드립니다. 그래서 그는 문을 열고 나가보니까 아까 이야기하더 상대편 회사에 중욕이 서있거든요. ”어떻게 밤중에 왔습니까?“ ”방에 좀 들어가십시다.“ 들어가 앉으니까 자세히 처다보더니만 하는말이 ”나도 예수 믿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나는 세상과 타협해서 사람들이 싫어할까 싶어서 감히 일어나지 못하고 스트립쇼 하는 것을 보고 술잔을 들이키려고 했는데 당신은 담대하게 일어나서 “나는 예수를 믿고 하나님을 섬기니 이 자리에 있을수 없으니 미안하지만 나는 떠나겠습니다. 떠난 것을 보고 내가 너무나 감동을 느끼고 내가 용기를 얻어서 나도 그 술자리를 떠날수가 있었습니다. 당신 때문에 나도 신앙을 지킬수가 있었습니다. 너무나 감사합니다. 내가 바로 그 회사 대표니까 당신 내일 아침에 만납시다.” 그 이튿날 아침에 계약도 잘되고 회사에서 칭찬도 받고 그 다음에 이 사람은 소문이 났습니다. 예수를 믿되 진짜로 믿는 사람이다. 가짜가 아니다. 저런 사람은 신뢰할수 있다. 어떤 곳에 가서도 이 사람말은 천금이 되어서 거짓말 없이 신뢰를 받고 회사를 크게 성장하게 하고 자기도 크게 성공했다는 간증을 제가 읽어 본적이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따르기 위해서 세상의 것들을 포기해야 할 순간이 찾아옵니다. 이것이냐 저것이냐 굉장히 고민스럽습니다. 그 쉬운일이 아닙니다. 그럴 때 과감히 결단하고 하나님을 선택하면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에게 하늘문을 여시고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는 복을 허락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세상복과 하늘나라 복은 오는 길이 다릅니다. 세상복은 마귀를 쫓아 오지만 하늘나라의 복은 예수님을 쫓아 오시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 세상복을 받으려고 하면 이것도 저것도 다 잃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가 단호하게 십자가를 짊어지고 주님 중심으로 서 나가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살아주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농사 안지어도 만나가 와서 먹고 살았습니다. 의사가 없어도 기적으로 40년 동안 광야를 방황해도 병들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전지, 전능, 무소부재하신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하나님께 능치 못하심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온땅을 두루 살피사 진심으로 자기를 찾는 자에게 복을 주시기 위해서 기다리고 계신 것입니다.

[결론]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어야 많은 열매를 맺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반드시 떠나야 할 세상이 있고 약속된 축복의 세상이 있습니다. 떠나지 않고 버리지 않고 십자가 없는 구원과 축복은 결코 누릴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이 많으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우리는 아담과 하와를 통해서 이 세상에 태어났을 때 우리속에 세상이 꽉들어 찼습니다.
세상이 우리 안에 우리가 세상 안에 있어 마귀의 종이 되어 마귀의 영에 붙잡여 끌려 다녔는데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사 예수를 믿게 하셔서 마귀를 쫓아 내시고 우리를 정하게 하시고 성전으로 만들어 주시고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님이 우리속에 거하게 만들어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아버지여 세상이 우리에게서 쫓겨 나갔은즉 다시 세상을 받아 들이지 말게 하여 주시옵소서.
내 아버지 하나님이시여 배가 물위에 떠있으나 물이 배안에 들어오면 배는 쓸모없이 되고 마는 것처럼 우리가 세상에 사나 세상이 우리속에 들어오면 우리는 쓸모없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항상 하나님과 예수님을 중심으로 섬기고 오직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서 타협하지 않고 살며 하나님의 기적과 하나님의 축복으로 사는 우리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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