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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각오

고린도전 조용기 목사............... 조회 수 1940 추천 수 0 2009.06.11 16:3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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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고전13:1~3 
설교자 : 조용기 목사 
참고 : 2005년 1월 2일 주일 3부 설교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찌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찌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찌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서론]
저는 여러분과 함께 ‘새해를 위한 각오’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목표가 없이 떠나는 길은 기필코 방황하고 맙니다. 길도 사람도 목표가 있어야 희망을 성취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새해를 맞이하여 한 해 동안 살아갈 삶의 좌표를 분명히 설정하고 나가야 끝까지 승리할 수 있습니다. 중세에 어떤 수도원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많은 수도사들이 수도사가 되기 위해서 자원을 하고 들어오지만 얼마 있지 않아서 다 떨어져 나가고 남는 사람은 몇 사람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수도원에 있는 기존 수도사들이 원장을 찾아갔습니다. “원장님! 많은 사람이 지원해서 수도사가 되려고 오는데 그중에 대다수가 떨어져 나가는 것을 왜 막지 못합니까?” 그러자 원장이 가만히 처다 보더니만 하는 말이 “내 말을 들어 보시오. 사냥꾼이 사냥을 하러 갈 때 많은 사냥개를 데리고 갑니다. 그러다 사냥개 한 마리가 토끼를 보면 쏜살같이 뛰어나가면서 짖고 나가면 다른 사냥개들은 뒤따라서 깨갱거리면 짖고서 따라갑니다. 장애물을 뛰어넘고 멀리 뛰다가 다른 개들은 다 뛰는 것을 중지하고 그만 숨을 헐떡거리고 뒤로 돌아섭니다. 그러나 토끼를 본 사냥개는 끝까지 뛰어가서 토끼를 잡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다른 개들은 토끼를 보지 않고 그냥 덩달아 뛰었기 때문에 목표가 없었으므로 허덕이고 중도에 탈락하고 말았지만 목표를 분명히 본 개는 아무리 피곤해도 끝까지 토끼를 따라가서 잡아서 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수도원에 들어올지라도 분명하게 일생을 수도사로 살겠다는 목표를 갖고 오지 않고 덩달아 들어왔기 때문에 낙심하지만 목표를 분명히 보고 들어온 사람은 끝까지 참고 견뎌서 훌륭한 수도사가 됩니다.” 그런 말을 했습니다. 많은 크리스챤들이 신앙의 경주를 합니다. 그러나 확실한 목표가 없는 사람은 중간에 포기하고 주저앉을 수밖에 없습니다. 목표가 있는 사람만이 난관을 뚫고 나가서 성취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본론]
1. 긍정적인 삶을 가진 새해

첫째로, 우리는 긍정적인 꿈을 가진 새해를 가지겠다고 마음에 목표를 정해야 되는 것입니다.
‘나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새해에는 긍정적인 꿈을 가진 새해로 만들겠다.’
우리가 살아갈 미래는 너무나 불확실성으로 꽉차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불안하고 초조합니다. 정치적으로 불확실하고 경제적으로 어떻게 될지 불확실하고 사회적인 갈등이 어떻게 해소될지 남북관계가 어떻게 될지 우리는 모든 것이 불확실함속에 살고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불안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내일에 대한 조그마한 단서라도 잡아보려고 점을 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요사이 큰 백화점에도 점치는 코너가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사람들을 끌어들이려고 합니다. 인터넷의 포털사이트도 보면 꼭 점치는 코너가 있습니다. 이만큼 사람들은 불안하기 때문에 내일에 대한 조그마한 빛이라도 얻어 보려고 몸부림치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인생길은 언제나 평탄하지만은 않다는 것입니다. 캄캄한 밤도 올 것이고 폭풍우도 다가올 것이고 험산준령도 넘어야 하고 광야도 지나가야만 합니다. 이런 것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비운명적인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운명을 대하는 삶의 태도인 것입니다. 여러분이 밤을 막을 수가 있나요? 다가오는 폭풍우를 두 손으로 밀어낼 수 있나요? 험산준령을 없앨 수가 있나요? 운명은 온몸으로 부딪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비운명적인 것은 이 운명의 폭풍우를 지나가면서 어떠한 마음에 자세와 태도를 가질 것인가 이것은 여러분이 가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이 한해를 통하는 동안에 운명을 탓하지 말고 이를 통과하면서 내 마음속에 큼직한 소망과 꿈을 가지고 나가야 될 것입니다. 어떻게 큼직한 소망과 꿈을 가질 수가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밑에 나와서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총으로 바라보면 하나님이 십자가를 통하여 우리에게 아름다운 오색무지개 색깔의 옷을 입혀 주었습니다. 십자가를 통하여 용서와 의와 영광의 옷을 입혀 주셨습니다. 거룩함과 성령 충만의 옷을 입혀 주셨습니다. 십자가를 통하여 우리에게 아브라함의 축복과 형통의 옷을 입혀 주셨습니다. 십자가를 통하여 우리에게 부활과 영생과 천국의 옷을 입혀 주었습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오색찬란한 무지개 옷을 입고 있는 여러분 자신을 봐야 됩니다. 이것은 위대한 꿈이요, 환상입니다. 거기에다가 하나님은 삼중축복의 두루마기를 입혀 주었습니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이 삼중축복의 두루마기를 입혀 주었습니다. 아무리 밤이 어둡고 폭풍우가 불고 험산준령을 지나간다 할지라도 여러분은 이미 하나님이 입혀 주신 오색찬란한 오중복음의 옷을 입고 삼중축복의 두루마기를 입었기 때문에 바람에 날리면서 우리는 뚫고 나갈 수 있는 꿈과 환상을 가슴속에 가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어떠한 사람이 되어 있는가를 확실히 알면 담대한 꿈과 환상을 가슴속에 가질 수 있지 않습니까? 우리는 이 해를 시작하면서 십자가 밑에서 하나님이 나를 이렇게 새로운 피조물로 만들어 주신 것을 확실히 바라보고 그 오색찬란한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의 두루마기를 입은 내 자신을 확고하게 붙잡고 나가야만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꿈과 환상이 마음속에 있으면 어떠한 역경도 뚫고 나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미시간주의 시골에서 태어난 탐 마네건이라는 소년이 있었습니다. 그는 10대부터 마음속에 프로야구팀인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의 구단주가 되겠다는 큰 꿈을 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도저히 인간적으로 생각할 때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나 긍정적인 꿈을 품었어요. 그는 1960년에 대학을 중퇴한 뒤 아주 작은 피자가게를 하나 차렸습니다. 그 회사가 오늘날 일 년 매출액 20억 달러가 넘는다는 세계 최대의 피자배달 회사인 도미노 피자입니다. 그리고 탐 마네건은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의 구단주가 되겠다는 꿈도 실현했습니다. 1983년 5천 3백만불을 지불하고 구단을 인수했습니다. 그는 타임즈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세히 들어보세요. “부자가 되는 최고의 준비는 꿈꾸는 것입니다. 저는 기회가 찾아왔을 때 그 기회를 잡을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마음속에 항상 꿈을 꾸고 있었습니다. 그동안 제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을 꿈꾸고 있었기 때문에 저를 비웃고 손가락질했습니다. 그러나 그 엉뚱해 보이는 일들은 결국 해내고 말았습니다. 여러분도 꿈과 희망을 가지십시오. 꿈과 희망을 가지고 있어야 하나님이 주시는 기회를 잡을 수가 있습니다. 꿈도 희망도 갖지 않는 사람은 기회가 와도 잡지 못합니다. ‘아! 올해는 더 어려운 해가 될 것이다. 경제적으로 고통스러울 것이다. 사업도 망할 것이다. 구멍가게도 문을 닫아야 될 것이다. 직장에서 직업을 잃어버릴지도 모른다. 너무나 슬프고 너무나 고통스럽다. 절망이다.’ 그렇게 꿈을 잃어버리고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면 아무리 하나님이 좋은 기회를 주셔도 그 기회를 포착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꾸 안 된다. 못산다. 어렵다고 하면 이것이 증폭되어서 넘어갈 수 없는 태산이 되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 사람이 보지 않은 것을 보고 있습니다. 십자가 밑에서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 오중축복으로 옷 입고 삼중축복으로 두루마기를 입었으니 세상이 보지 않는 것을 보고 세상이 믿지 않는 것을 믿고 세상이 갖지 못하는 꿈을 가지고 나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새해를 꿈과 소망을 생각하고 바라보고 말하고 믿고 기도하면서 살아야 됩니다. 그렇게 하면 밤이나 폭풍우 험한 길, 광야를 통하면서도 긍정적으로 나갈 수가 있습니다.
저는 한 등반가가 쓴 글을 읽고 굉장히 감동을 입었습니다. 그는 해발 4천 7백미터의 히말라야 산맥을 오를 때 고산병으로 무척 힘들었다고 합니다. 고산병을 체험 안 해본 사람은 몰라요. 저는 폐병을 앓아서 폐기능이 약화되었기 때문에 높은 곳에 올라가면 산소가 부족해서 굉장히 괴롭습니다. 저는 한번 콜로라도의 산장에 미국 친구를 따라갔다가 밤새도록 너무나 고생했습니다. 숨이 답답해서. 멕시코 집회를 갔을 때 걸음을 걸을 수가 없었습니다. 산소부족으로 너무나 고통스러웠습니다. 콜롬비아에 가서 복음을 증거 할 때는 숨이 답답해서 설교할 때 꼭 물에 빠진 사람 같은 고통을 당했습니다. 고산병은 무섭습니다. 더구나 해발 4천 7백미터의 히말라야 산맥을 오를 때는 산소부족으로 어마어마한 고산병으로 고생하게 됩니다. 그런데 글을 적은 저자가 말하기를 그때 그가 한 가지 진통제를 개발해 먹었는데 그것은 바로 긍정적인 생각이라는 진통제였습니다. 힘들다. 괴롭다. 두렵다. 무겁다. 짜증난다. 왜 이렇게 길이 멀까? 내가 어쩌자고 여기를 왔을까? 이런 부정적인 생각을 하면 머리가 깨질 것처럼 아프고 숨이 답답하고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괜찮다. 할만하다. 자신 있다. 잘할 수 있다. 주위를 둘러봐라. 얼마나 아름다우냐? 더 높이 올라가자! 내 몸 참 대단하구나! 지금이 아니면 언제 히말리야를 올라 보겠느냐? 이런 긍정적인 생각을 하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긍정적인 생각을 하고 그 생각을 입술로 고백 할 때마다 어딘가 산소가 만들어지는 것처럼 머리가 한결 맑아지고 발걸음도 가벼워지고 힘을 얻었다고 그렇게 기록한 것을 읽었습니다.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 과정도 마찬가지입니다. 비록 지금은 힘들고 고통스럽지만은 그것을 자꾸 생각하고 힘들다. 고통스럽다. 망한다. 안 된다. 절망이다 라고하면 점점 더 증폭되어 힘들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지 말고 지금은 힘들고 고통스럽지만 자꾸 긍정적인 생각을 해야 됩니다.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보자.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하심이 없다고 말하세요. 내 믿음대로 될찌어다 라고 말하십시오.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으면 이 산들에 명하여 저 바다에 던져라 하고 해도 된다고 말하세요. 그러므로 나는 괜찮다. 주님이 같이 하시므로 모든 것이 합동하여 선을 이룰 것이다. 이렇게 되면 이길 힘이 생기고 우리의 마음속의 꿈은 이루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로버트 슐러 목사님의 처남인 프랑크 벤더 마틴은 아이오와 주에 제일가는 바이올리니스트로 유명합니다. 그는 18살 때 아버지가 하는 대장간에 놀러갔다가 붉은 쇳덩어리를 손으로 잘못 잡아서 왼손 네 손가락이 다 타버렸습니다. 엄지하나 남았습니다. 바이올리니스트가 왼손을 못 쓰니 어떻게 바이올린을 켭니까? 그래서 주위에 모든 사람들은 바이올린을 포기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은 절대로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밖에 남지 않은 왼손의 손가락이 다 잘려 나갔지만 낙심하지 아니하고 계속해서 열심히 바이올린 연습을 했습니다. 연습에 연습을 거듭한 결과 아이오와 주의 스카운터 교향악단의 뛰어난 바이올리니스트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말하기를 “내가 불구자라고 생각하지 않는 한 결코 나는 불구자가 아니다”라고 말하면서 늘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생각을 했다고 했습니다. “나는 불구자가 아니다. 나는 단지 손가락 네 개가 없을 따름이다. 이로써 나는 능히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유명한 바이올리니스트가 될 수 있었습니다. 로버트 슐러 목사님 역시 불가능한 일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생각이 존재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생각이 불가능하다고 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불가능한 것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존재할 따름이라고 해서 생각이 긍정적이고 적극적이며 꿈을 가지고 나가는 사람에게는 능치 못하심이 없다는 것을 그는 말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새해에는 여러분 오중복음의 색동옷을 입고 삼중축복의 두루마기를 바람에 날리며 긍정적이고 적극적이고 창조적인 태도를 가지고 믿습니다로 나가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사랑을 실천하는 새해
둘째로, 사랑을 실천하는 새해가 되어야 됩니다.
고린도전서 13장 1절로 3절에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찌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찌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찌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사랑이 없는 삶은 아무리 위대한 웅변과 천사같이 말해도 내용이 없는 허무한 것입니다. 사랑이 없는 삶은 위대한 예언과 지성인, 신념의 사람이라도 아무가치가 없습니다. 사랑이 없으면 아무리 큰 희생과 봉사 및 자선도 결국 허울뿐이고 유익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새해를 살 때 하나님을 정말로 사랑하고 살아야 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고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마땅한 일인 것입니다.
요한일서 4장 7절로 9절에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사랑을 받아본 사람이 사랑을 할 수 있습니다. 나는 과학자들이 원숭이를 기르는 것을 보았습니다. 새끼를 낳아서 어머니 품에 안기지 않고 가짜로 만든 원숭이 어머니를 그 우리에 넣어 두고 가짜로 만든 딱딱한 나무 어미 원숭이의 품에 안겼습니다. 그러므로 이 새끼는 자라면서 어머니의 사랑을 몰랐기 때문에 나중에 어른이 되고 난 다음에 새끼를 낳고 난 다음에도 딱딱한 나무 원숭이처럼 전혀 사랑을 베풀지 못했습니다. 살아있는 어미의 품에 안긴 새끼는 자라서 그가 어미가 될 때도 새끼를 그렇게 품에 품고 다녔는데 딱딱한 나무 어머니 원숭이의 품에 안겨서 자란 원숭이는 나중에 어미가 되어도 새끼를 내던져 버리고 품에 안지 않고 돌보지 않는 것을 보았습니다. 사랑을 받아 본 사람이 사랑을 할 줄 알지 사랑을 받지 못한 사람은 사랑하지 못하잖아요. 왜 세상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사랑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사랑하지 못하죠. 우리가 먼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해 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느끼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만큼 우리는 더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해서 사는 우리들이 되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흠모하고 예배드리고 섬기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 되는 것입니다. 사랑이란 머리속에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가슴속에서 우러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흠모하고 앉으나 서나 예배하고 섬기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이러한 삶을 살 때 하나님이 우리에게 큰 감동을 느끼는 것입니다.
시편 91편 14절로 16절에 “하나님이 가라사대 저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저를 건지리라 저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저를 높이리라 저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응답하리라 저희 환난 때에 내가 저와 함께하여 저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 내가 장수함으로 저를 만족케 하며 나의 구원으로 보이리라 하시도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할 때 하나님의 마음이 감동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놀라운 사랑의 능력으로 우리와 같이 계시고 우리를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임재 연습]이라는 유명한 고전적 책을 썼던 중세의 성자 로렌스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하나님을 알고 난 후에 그 사랑이 너무 감사해서 자신도 삶을 드리는 수도사가 되어서 평생을 하나님만 사랑하고 살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귀족만 들어가는 수도원에 서민의 신분으로 못 들어가고 또 지식도 부족했고 무엇보다 몸에 장애가 있어서 수도사가 될 수 없었습니다. 대신 그는 수도원 주방에서 요리를 할 수 있게 된 요리사가 되었습니다. 로렌스는 요리를 하면서 늘 주님을 생각했습니다. 소금을 뿌릴 때는 “주님 저를 이 소금 같은 사람으로 만들어서 주님을 영화롭게 하옵소서.” 맛을 볼 때는 “주님 제가 그리스도의 맛을 내는 사람이 되게 하여 주께 영광 돌리게 하옵소서.” 청소할 때도 “주님 제 마음을 이렇게 청결하게 하여 주셔서 주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여 주옵소서.” 생활전체가 기도였습니다. 온갖 정성과 사랑으로 그는 모든 수도사들을 섬겼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시간이 흐를수록 수도사들의 얼굴이 고행과 금식과 기도로 어두워진데 반해 로렌스의 얼굴은 천사와 같이 빛났습니다. 항상 웃음과 미소가 가득했습니다. 그는 주의 사랑을 받은 기쁨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그 후로 수도사들은 날마다 식당에 와서 로렌스의 얼굴을 보면서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를 보면서 예수님의 마음을 깨달았습니다. 결국에는 모든 수도자들이 로렌스를 그 수도원 원장으로 추대해서 그 로렌스 요리사가 놀랍게도 수도원의 원장이 된 것입니다. 생전에 로렌스는 항상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나의 삶의 유일한 동기는 하나님 사랑입니다. 나는 하나님을 위해서 모든 것을 하려고 했습니다.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나든 내가 길을 잃어버리든 찾든 나는 계속 순전하게 하나님의 사랑을 위하여 움직일 것이며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단 한 가지 죽을 때까지 주님을 사랑하기 위하여 모든 것을 하겠다는 것뿐입니다.” 로렌스가 무슨 위대한 일을 해서 하나님 사랑을 나타냈습니까? 아닙니다. 평범한 우리의 생활 속에서 밥을 지으면서도 “하나님 내가 하나님 대접하는 맛있는 밥이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불을 땔 때도 “하나님 활활 타는 불같이 뜨거운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게 해주시옵소서.” 소금 뿌릴 때 “주님 양념을 해서 맛있게 하는 것처럼 나도 하나님 앞에 맛있는 인생이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청소하면서 “주여! 내 마음도 이렇게 정결하게 하셔서 하나님을 기쁘게 하옵소서.” 위대한 무슨 일을 해서 여러분 하나님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의 평범한 생활 속에 항상 하나님을 예배하고 기도하고 감사하는 생활이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는 생활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웃사랑은 하나님 사랑을 갚는 길인 것입니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은 분리할 수 없습니다. 내 마음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주 하나님 사랑하라. 그리고 내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라. 이웃사랑과 하나님의 사랑은 분리할 수가 없습니다.
요한일서 4장 20절로 21절에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 하는 자니 보는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느니라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
하나님 사랑과 형제의 사랑은 이퀄(=)로 되어 있어요. 눈에 안 보이는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눈에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지 못하면 하나님 사랑한다는 말이 거짓말이 되는 것입니다. 이 성경 말씀을 대할 때 우리 마음속에 갈등을 많이 느낍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어도 이 못난 이웃은 사랑할 수 없다. 콱 쥐어박고 싶은데 그냥 확 벗겨 버리고 싶은데 이웃을 사랑해야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니 마음에 갈등이 얼마나 납니까? 저도 2004년 1년 내내 이 갈등 속에 살았습니다. “하나님 지금 막 할퀴어 버리고 싶은데 아이고 그러나 이웃을 사랑해야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는데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사랑합니다. 사랑할 힘을 주옵소서. “그래도 얼마 있지 아니하면 ”아이고 저놈의 자식 그냥 팍~ 아이고 하나님 용서해 주시옵소서. 이웃을 미워하면 하나님을 미워한다고 하는데 이것 어떻게 됩니까 ? 하나님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우리가 우리 죄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했는데 내가 사해주지 못하면 내 죄도 못 사함 받습니다. “항상 갈등 속에 저는 2004년을 살았습니다. 여러분도 틀림없을 것입니다. 사랑을 해야 되겠는데 꼬락서니 사나워서 사랑을 할 수가 없는데 하나님 앞에 기도만 하면 날 사랑하거든 저 꼬락서니 사나운 녀석도 사랑하라고 하니 마음에 갈등이 생기지요. 그러므로 우리 기독교 신앙생활은 끝없는 갈등 속에서 넘어져서 또 일어나고 잘못했다가 또 회개하면서 올바르게 살 수 있는 힘을 달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웃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을 갚는 길입니다.
마태복음 25장 34절로 40절에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 된 나라를 상속하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아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이에 의인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의 주리신 것을 보고 공궤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 어느 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 하리니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마지막 때에 주님이 심판하실 때 주님을 사랑한 증거를 이웃 사랑한 것에서 찾으시는 것입니다. “나는 예수님만 사랑하지 저 거지하고는 상관없다. 저 병든 자와는 상관없다. 저 노숙자와 나하고 무슨 상관이 있느냐? 감옥에 갇힌 자가 나와 무슨 상관있느냐? 나는 예수님만 사랑하면 되었지.” 그러나 주님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면 예수님을 어디에서 찾아내느냐. 감옥에 갇힌 자, 병든 자, 노숙자, 굶주린 자, 소외된 자, 버림받은 자 그 사람들 속에서 예수님을 찾아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가 예수님을 마음속에 섬긴다고 하면서 이웃사랑하기를 등한히 하면은 그것은 잘못된 위선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테레사 수녀가 인도의 가장 가난한 사람 중에 가난한 사람들 속에 들어가서 그들을 섬길 때 예수님을 섬기는 마음으로 섬겼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 한사람, 한사람 씻어주고 옷 입혀 주고 먹여주고 무릎에 뉘여서 편안히 죽게 해줄 때 그 한 사람 한 사람이 예수님이라고 생각하고 예수님을 섬기는 마음으로 섬겼다고 했습니다. 성경말씀 그대로 입니다. “내가 병들었을 때 너희가 찾아와 주었다.” “언제 주님이 병들었을 때 찾아왔습니까?” “이 소자 중에 지극히 적은 사람 한 사람에게 한 것이 내게 한 것이라. 내가 굶었을 때 와서 먹여주었다.” “내가 언제 주님이 굶었을 때 먹여 드렸었나요?” “이 소자 중에 한 사람이 배고플 때 먹여준 것이 내게 먹여준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가 사회를 둘러볼 때 우리 주위에 얼마나 많은 노숙자가 있으며 얼마나 굶주린 어린아이들이 있으며 병든 자가 있으며 외로운 자, 소외된 자가 많습니까? 우리가 무관심할 수가 없습니다. 저 사람들이 다 예수님인 것입니다. 그 분들이 직접 예수님이면 우리가 찾아가지 아니할 수 없어요. 예수님은 우리 위해서 몸을 찢고 피를 흘려주셨는데 그 큰 사랑의 빚을 진 우리가 지상에 있는 예수님을 무시할 수가 없잖습니까? 그러므로 우리의 마음은 갈등할 수밖에 없지요. 예수님을 다른데서 찾지 말고 이 사회에 부조리 속에서 예수님을 찾으라는 것입니다. 바로 저 굶주린 자, 저 병든 자, 버림받은 자, 노숙자, 저 나쁜 사람, 저 죄인들 속에서 예수님을 찾으라는 것입니다. 새해에는 우리가 이런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대접하듯이 대접하는 삶을 살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도산 안창호 선생은 생전에 이런 말을 했습니다. “아무리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도 그에게 참된 사랑의 정신이 없다면 그 지식은 세상을 헤칠 뿐 절대로 유익을 주지 않습니다. 우리는 사랑의 정신을 지녀야 합니다. 사랑이 없는 지식이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간디는 말하기를 ‘굶주린 배를 안고 잠자리에 들어갈 수밖에 없는 사람에게 하나님을 납득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빵을 주는 것이다.” 배고파 울며 잠자리에 들어가는 사람에게 하나님 믿으라고 천 번을 말한들 무슨 소용 있겠는가? 하나님의 이름으로 빵 한쪽 주는 것이 그 사람에게 정말 전도하는 길입니다. 어거스틴은 말하기를‘사랑은 어떻게 생겼는가! 다른 이들을 돕는 손이 있고 가난하고 궁핍한 사람들에게 찾아가는 발이 있으며 비참하고 곤고한 것을 보는 눈이 있고 한숨과 슬픔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귀가 있다. 이것이 바로 사랑의 모습이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새해에는 예수님을 천국 보좌에서 찾지 말고 기도원 굴에서만 찾지 말고 내 이웃에 가난하고 헐벗고 굶주리고 버림받고 소외된 사람 속에서 예수님을 찾고 그 속에 있는 예수님을 대접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럴 때 참으로 여러분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 이웃을 사랑하는 실천적인 신앙인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어야 하늘나라가 임하시고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3. 삶의 텃밭에 좋은 씨를 심어라
셋째로, 삶의 텃밭에 좋은 씨를 심어야 됩니다.
농사꾼은 텃밭에 무엇을 심을까를 궁리하고 막연한 기적을 기대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밭은 정직합니다. 심은 종류대로 심은 양대로 밭은 생산하는 것입니다. 인생의 텃밭도 마찬가지입니다. 365일 새날은 여러분 각자에게 준 하나님의 텃밭입니다. 여기에 무엇을 심어야 되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6장 7절로 8절에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저는 많이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사람들이 남을 너무나 괴롭히고 고통줄 때 “하나님이여 너무나 괴롭습니다. 너무나 고통스럽습니다. 언제 이 괴로움과 고통의 먹장구름이 지나갈렵니까?” 그럴 때 마다 시편 37편 1절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행악 자를 인하여 불평하여 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를 투기하지 말지어다 저희는 풀과 같이 속히 베임을 볼 것이며 푸른 채소 같이 쇠잔할 것임이로다”
행악을 하거나 불의를 행하는 자는 행악으로 심고 불의로 심으면 반드시 베어지고 쇠잔하는 것이니 네가 왜 걱정을 하느냐? “여호와를 의뢰하여 선을 행하라 땅에 거하여 그의 성실로 식물을 삼을지어다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 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같이 하시리로다”
주님이 언제나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은 악을 심고 난 다음에 선을 거두지 못합니다. 남을 해롭게 하고 난 다음 남에게 유익을 거두지 못합니다. 절망을 심고 소망을 거두지 못합니다. 과거 잘못 심은 행위는 용서받아도 심은 열매는 거둬야 합니다. 살인한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면 용서는 받아도 죄의 대가는 지불해야 됩니다. 한 부형님이 내게 기도 받으러 와서 이런 간증을 했어요. 그는 예수 믿기 전에 사업을 하다가 모두 망해서 빚쟁이들이 따라 다니는 빚투성이가 되었습니다. 너무 괴로워서 자살하려다가 미수에 그치고 전도를 받아 우리 교회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말씀을 듣고 회개하고 예수를 믿고 난 다음에 그는 생각했습니다. ‘아~ 전지전능한 하나님이 내 죄를 용서했으면 내 빚도 안 갚아 주시겠는가?’ 그래서 그날부터 작정기도를 하면서 ‘주님! 전지전능한 하나님 내 죄를 용서했으니 내 빚도 한 번에 갚아 주시옵소서. 믿습니다.’ 그로부터 복권을 사기 시작했습니다. 매일같이 복권을 사서 긁어요. 긁을 때마다 꽝입니다. 아무것도 안 나와요. 그래서 그는 나중에 ‘아니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고 이 땅의 모든 재물도 하나님 것이라고 해놓고 왜 내 빚 안 갚아줘요.’ 그래서 아예 보따리를 싸들고 기도원으로 올라갔습니다. 빚을 안 갚아주면 안 내려 오겠다고. 금식을 하며 몸부림치며 기도했는데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도 응답이 없었습니다. 마음이 초조해지기 시작했는데 사흘째 되는 날 기도하는데 성령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의 죄는 용서해주었지만 빚은 네가 갚아라 네가 빚져 놓고 빚을 날보고 갚으라고 하느냐? 하나님을 열심히 섬기고 십일조 내고 사업하면 내가 사업에 복을 줄 테니 그 다음 빚은 네가 갚아라!’ 그 말씀을 듣고 그는 내려와서 열심히 십일조 드리고 성수주일하고 사업해서 5년 만에 빚을 깨끗이 다 갚고 제게 안수기도 받으러 왔던 것입니다. 우리교회 장로로 있다가 우리교회 많은 장로님들의 돈, 집사님들의 돈을 빌려서 입에 털어 넣어 버리고 미국으로 도망친 사람 한 사람 있어요. 미국에 가서 그는 신학교 들어가서 졸업을 하고 주의 종이 되어서 저보고 목회자라고 안수기도를 해달라고 했어요. 그때 내가 한 말이 있습니다. “당신이 장로님들과 집사님들이 돈을 거두어서 입에 털어놓고 도망친 죄는 회개했으니까 용서해준 것은 사실입니다.” 그분이 하는 말이 “나 기도원에 가서 금식하고 회개했습니다.” 옳아요. 회개한 것은 용서해 주었지만 당신이 빚진 그 빚은 심은 대로 당신이 거두어야 됩니다. 그 빚을 갚기 전에는 아무리 목회해도 성공 못합니다. 왜, 빚을 빌려 주고 난 다음 못 받은 사람의 탄식소리가 만군의 야웨의 귀에 들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복줄 리가 없습니다. 당신이 용서는 받았지만 빚은 갚아야 돼요. 빚을 다 갚고 나면 그 다음 하나님이 축복해 주실 것입니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창세기 9장 6절에 보면 “무릇 사람의 피를 흘리면 사람이 그 피를 흘릴 것이니 이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었음이니라”고 했습니다.
잠언서 22장 8절에 “악을 뿌리는 자는 재앙을 거두리니 그 분노의 기세가 쇠하리라”
호세아 8장 7절에 “저희가 바람을 심고 광풍을 거둘 것이라 심은 것이 줄기가 없으며 이삭은 열매를 맺히지 못할 것이요 설혹 맺힐찌라도 이방 사람이 삼키리라”고 했습니다.
심은 대로 거둬요. 용서는 받되 거두는 것은 심은 대로 자기가 거둬야 돼요. 그렇기 때문에 내일을 위하여 좋은 씨를 심는 여러분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믿음의 씨, 순종의 씨, 소망의 씨, 사랑의 씨, 의의 씨, 평강의 씨, 기쁨의 씨앗을 심어 놓으면 영광으로 거둘 수 있게 될 것입니다.
호세아 10장 12절에 “너희가 자기를 위하여 의를 심고 긍휼을 거두라 지금이 곧 여호와를 찾을 때니 너희 묵은 땅을 기경하라 마침내 여호와께서 임하사 의를 비처럼 너희에게 내리시리라”
야고보서 3장 18절에 “화평케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
고린도후서 9장 6절에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
심고 거두는 법칙은 변하지 않습니다. 잘못 심으면 잘못 거두고 잘 심으면 잘 거두게 되는 것입니다.
조선 영조 때 좌의정을 지냈던 이사관은 남 돕기를 좋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한번은 그가 충청도에서 수령을 했을 때의 일입니다. 순행을 하다가 주막에 들어가 잠시 쉬고 있는데 웬 시골 선비가 가족을 이끌고 주막으로 들어오는데 행색이 초라했습니다. 어린 딸을 등에 업고 있는데 딸이 삼베 적삼치마를 입고 벌벌 떨고 얼굴이 새파랗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물었습니다. 이사관은 그에게 다가가 “이 고을 사람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가 대답하기를 “자신은 서산에 사는 김한구라는 사람인데 살기가 어려워서 서울에 있는 친척집에 더부살이하러 가는 중이라”고 했습니다. 이사관은 그 어린 아기가 너무 불쌍해서 자기가 걸치고 있던 아주 멋있는 수달피 가죽옷을 벗어서 아이를 덮어 주었습니다. 그 아이가 굉장히 기뻐하고 즐거워했습니다. 잊을 수 없는 인상을 입었습니다. 왜, 고을수령이 좋은 수달피 가죽옷을 벗어서 떨고 있는 어린아이를 입혀 주었으니 얼마나 인상이 깊었습니까? 세월이 흘렀습니다. 12년 후에 영조의 왕비 정성황후가 승하여서 두 번째 왕비를 뽑았는데 그가 정순왕후 김씨 바로 이사관이 옷으로 덮어 주었던 바로 그 여아가 임금님의 왕후가 되었었습니다. 참 사람팔자 알 수가 없지. 결국 이사관은 왕비의 추천으로 왕에게 발탁 되었습니다. 이 왕비는 어릴 때 자기에게 가죽 수달 옷을 입혀준 이 어른을 잊을 수가 없어 깊이 마음에 은혜를 갚아야 되겠다고 생각을 했는데 자기가 왕비가 되니까 왕에게 추천해서 그는 발탁되었고 몇 년 후에는 능력을 인정받아 좌의정까지 올라갈 수 있었습니다. 사람은 뿌린 대로 거둡니다. 좋은 씨를 뿌린 사람은 좋은 열매를 거두고 악한 씨를 뿌린 사람은 악한 열매를 거두게 마련인 것입니다. 스스로 속이지 말아야 돼요.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둡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법칙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365일이라는 텃밭에 여러분은 조심해서 매일같이 좋은 씨를 심게 되시기를 예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결론]
성공적이고 행복한 새해를 만들기 위해서는 마음의 계획을 세워야만 합니다.
긍정적으로 살기 위하여 꿈과 희망을 갖고 살겠다고 마음에 단호하게 결심하고 삶의 근원적인 의미인 사랑을 실천하며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에 사랑을 베푸는 삶을 살겠다고 마음에 결심을 하고 하나님이 주신 1년이란 삶의 텃밭에 시작부터 좋은 씨앗을 심고 큰 수확을 바라는 1년의 삶의 살게 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이 많으시고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주님께서 2005년 새해를 우리에게 주심을 감사합니다.
이 새해를 맞이하는 우리들이 마음 문을 활짝 열고 주님 십자가 밑에서 주님이 입혀 주시는 오색찬란한 무지개색깔 오중복음의 옷을 입고 삼중축복의 두루마기를 입고 어둠도 폭풍우도 험산준령도 넉넉히 이겨나갈 수 있는 긍정적이고 적극적이고 창조적인 믿음의 태도를 가지고 나가게 도와주옵소서.
하나님 아버지 사랑을 실천하며 살게 도와주옵소서. 하늘의 힘을 사랑하는 자는 이웃을 사랑하고 소외되고 병들고 헐벗고 굶주리고 버린 사람들을 대접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과 예수님을 대접하는 것이라고 하였으므로 그들 속에서 하나님을 대접하고 예수님을 모시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아버지 1년 내내 우리의 삶속에 좋은 씨앗을 뿌려서 좋은 열매를 거둘 수 있는 우리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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