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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방 신앙

시편 나무............... 조회 수 1802 추천 수 0 2009.06.15 23:4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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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시91:1~7 
설교자 : 조용기 목사 
참고 : 2005년 2월 20일 주일2부설교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하는 자는 전능하신 자의 그늘 아래 거하리로다 내가 여호와를 가리켜 말하기를 저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나의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하리니 이는 저가 너를 새 사냥군의 올무에서와 극한 염병에서 건지실 것임이로다 저가 너를 그 깃으로 덮으시리니 네가 그 날개 아래 피하리로다 그의 진실함은 방패와 손 방패가 되나니 너는 밤에 놀램과 낮에 흐르는 살과 흑암 중에 행하는 염병과 백주에 황폐케 하는 파멸을 두려워 아니하리로다 천인이 네 곁에서, 만인이 네 우편에서 엎드러지나 이 재앙이 네게 가까이 못하리로다”

[서론]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예방 신앙’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크리스 크롤리와 의학박사 핸리에스 로찌씨가 저술한 “younger next year”라는 책에 보면 80세 그 후에도 50세처럼 건강하게 살수 있는 비결에 관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사람이 나이 먹어 병들고 불구자가 되어 여생을 보내지 말고 건강하고 곱게 늙는 세 가지 길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 첫째는 일주일에 엿새 동안 무조건 하루 한 시간 이상 운동하라는 것입니다. 얼마나 강하게 주장하는지 운동을 안 하려고 변명하는 자는 개자식이라고 막말까지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운동은 꼭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고단백, 고지방 음식을 취하지 말고 정크푸드라고 해서 쓰레기같은 간식들 먹지 말고 적게 먹고, 채식위주로 식사를 하며 잘살기를 도모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셋째는 부부간 이웃간, 좋은 인간관계와 교제를 갖고 행복하게 살아야만 건강하고 장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병이 들때까지 기다렸다가 병원에 가서 의사를 찾지 말고 병들기 전에 미리 이와 같이 세 가지 대책을 세우므로 예방을 하라는 것입니다. 신앙생활도 여기에 비유해서 말할 수 있습니다. 시험과 환난과 큰 고난을 당한 후에 하나님을 간절히 찾고 새벽기도에 나오고 철야하고 금식하고 기도원으로 뛰어가고 하지 말고 평소에 올바른 신앙생활을 하면 시험과 환난과 큰 고난을 피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본론]
1. 그 나라와 그 의를 먼저 구하라

예방신앙의 제일 첫째조건이 그 나라와 그 의를 먼저 구하며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세상나라가 대결할 때에 즉, 하나님과 세상 섬기는 것이 대결할 때 어느 것을 택할 것인가! 이것은 우리에게 굉장히 중요합니다. 선택은 우리 인생에서 굉장히 중요한 것입니다. 인생을 살아갈 때 어떤 친구를 택할 것이냐, 어떤 신랑, 신부를 택할 것이냐, 어떤 직업을 택하느냐. 이런 것이 우리 생활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미치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나라와 세상나라가 나에게 다가올 때 내가 어느 편을 택할 것이냐? 이것은 우리 예방신앙에 절대로 중요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광야에서 40주 40야 금식하시고 나신 후에 세상나라의 대표인 원수마귀가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그래서 배가고파 굶주린 예수님께 뭐라고 말했습니까? 하나님 아들의 권세로써 떡부터 먼저 만들어 먹어라. 하늘나라보다도 세상나라를 먼저 취하라는 것입니다. 그때에 예수님은 단호하게 “사람이 떡만 가지고 사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것이다.” 말씀 먼저 택하고 난 다음에 떡이 있는 것이지 떡 먼저 택하고 말씀이 있지 않다고 순서를 분명히 선택했습니다. 마귀는 예수님을 데리고 높은 탑 위에 올라가서 하나님의 아들 권세를 가지고 뛰어 내려서 발이 돌이 부딪히지 않아 모든 사람에게 박수갈채를 받고 명예를 얻으라고 했을 때 예수님은 명예 대신에 하나님을 시험하는 일을 하지 말라고 했었습니다. 명예보다도 하나님을 시험하지 않고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마귀는 세상에 권세와 부귀, 영화, 공명을 취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제껴놓고 자기부터 먼저 택하고 자기에게 절하라고 했습니다. 그리하면 세상 부귀, 영화, 권세, 공명을 다 주겠다고 그랬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단호하게 거부하고 하나님께만 먼저 경배하고 절하라고 말한 것입니다. 하늘나라와 세상나라가 맞부딪힐 때 예수님은 단호하게 하늘나라 편을 택했던 것입니다. 우리도 한가지입니다. 우리의 삶 속에 하늘나라와 세상나라가 종종같이 부딪혀 옵니다. 우리는 그때 하늘나라도 아니고 세상나라도 아닌 어정쩡한 중간노선을 택할 때가 굉장히 많습니다. 그래서 많은 시험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2장 37절로 38절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라고 말한 것입니다.
요한복음 12장 26절에도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거기 있으리니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저를 귀히 여기시리라”
하나님을 첫째로 사랑하고 예수님을 첫째로 섬기며 따르는 삶을 우리가 선택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귀하게 여겨주시는 것입니다.
미국 대통령이요, 노벨수상자였던 지미 카터 대통령에게 참으로 위대한 점이 있습니다. 그가 대통령으로 출마했을 때 입니다. 유세기간 중에 주일을 맞았는데 대부분의 입후보자와는 달리 그는 표를 얻기 위해 큰 교회를 찾아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비행기를 타고 평소에 다니던 고향 조지아주의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예배가 끝나면 23년 동안 매주일 해왔던 주일학교 교사로서 아이들을 가르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렇게 대통령 유세에 바쁜데도 불구하고 주일날에는 미국 어느 주에 있든지 비행기를 타고 조지아주 자기 고향 교회로 성수 주일하러 갔던 것입니다. 어느 주일에 약 70명의 기자들이 그를 취재하기 위해 교회로 몰려들었습니다. 그러자 지미 카터가 그들을 향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기자여러분! 오늘은 여러분이 나를 취재하기 위해 여기 오셨지만 다음 주일에는 여러분이 소속한 교회에 꼭 출석해 주시기 바랍니다.” 지미 카터는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우선순위에 모시고 살았던 것입니다. 그 결과 그는 대통령에도 당선되었고 2002년에는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는 등 퇴임 후에 사람들로부터 더 크게 존경받는 인물이 되었습니다. 세상의 그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일이 먼저였습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먼저 구하는 자는 시험과 환난과 큰 고난없이 평탄하고 복된 인생을 살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예수님의 정의와 세상 탐욕이 대결될 때에 예수님의 가르치심을 따를 것이냐, 세상욕심을 따를 것이냐의 중대한 기로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에 사니까 세상의 욕심이 우리를 유혹하지 아니할 수가 없습니다. 육신의 정욕도 있지요, 안목의 정욕도 있지요, 이 세상 자랑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정의와 세상의 욕심이 부딪힐 때 어느 편을 택할 것인가 굉장히 중요한 것입니다.
마태복음 6장 24절에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 무엇보다도 재물의 탐욕은 굉장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정의보다도 재물을 택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재물에 대한 탐욕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정의보다도 우리를 더 현혹시키는 것입니다. 이럴 때 우리가 단호하게 먼저 구할 것 먼저 구하여 하나님의 정의를 구하면 하나님의 사랑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석유왕으로 잘 알려진 존 록펠러는 손자들에게 엄격한 금전교육을 시킨 것으로 유명합니다. 맨하탄 은행장을 역임했던 록펠러의 손자 데이비드씨는 할아버지가 자신에게 했던 금전교육에 관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가 어렸을 때 할아버지 록펠러씨는 자기에게 매주 25센트를 주급으로 주면서 꼭 그에게 말하기를 “주말에는 할아버지와 함께 어디에 돈을 썼는지 네가 계산해서 보고해야 된다. 네가 돈을 쓸 때에는 반드시 25센트 중에 10분의 1은 틀림없이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려야 되고 그 돈의 또 10%는 구제금에 써야 된다.”그래서 그대로 하면은 5센트를 더 주었고 그대로 하지 않으면 5센트를 벌금으로 빼앗겠다고 말했었습니다. 할아버지가 하도 엄격하게 반드시 돈을 쓰기 전에 십일조를 먼저 떼고 그 다음으로 구제금 10%를 떼고 난 다음에 돈을 쓰라고 가르친 그 교훈 때문에 그는 일생 하나님을 먼저 택했고 돈을 먼저 택하지 아니함으로 하나님의 복을 받아 맨하탄 은행의 총재까지 될 수 있었다고 말했으며 자기 자식들도 그렇게 엄격히 교육한다고 말했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갖고 있으면 하나님의 무한하신 자원에서 모든 것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 나라와 그 의를 먼저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늘나라와 하늘의 의를 먼저 구하면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가 정상적으로 올바르게 서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 영광 가운데 풍성한데로 우리의 모든 쓸 것을 더하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우리의 삶 속에 이것은 굉장한 어려운 시험인 것 입니다. 하나님의 정의냐, 세상 나라냐. 예수 그리스도의 정의냐, 탐욕이냐. 어느 것을 선택하느냐. 매일매일 부딪히는 시험입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단호하게 하나님의 정의와 하나님의 나라를 택하면 하나님이 우리 편에 서 계시는 것입니다.
시편 100편 3절에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찌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자시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 백성이요, 하나님이 기르시는 양이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는데 하나님이 안 돌봐 주실 리가 없습니다.
마태복음 7장 11절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고 말씀한 것입니다.

2. 잘못 심지 말라
둘째로 우리 예방신앙은 우리의 삶 속에 잘못 심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람은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둡니다. 콩 심은데 콩이 나고 팥 심은데 팥이 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6절로 8절에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사람은 각각 자기 자신이 상속인이라고 하는 말이 있습니다. 스스로 모은 것을 자기에게 상속한다는 말인 것입니다. 자기가 준만큼 받고 심은 대로 거둔다는 것입니다. 한번은 어떤 성도가 제게 이런 내용의 편지를 보내 왔습니다. “저는 텔레비전이나 신문을 보는 것이 겁이 납니다. 하루가 멀다하고 터지는 대형사고, 끊일 줄 모르는 폭력, 시위, 부정, 부패 등의 소식을 들으면 가슴이 덜컹 내려앉고 가슴이 떨려서 볼 수가 없습니다. 왜 우리사회가 이 지경이 되었으며 우리가 무엇을 잘못했기에 이런 일이 일어납니까?” 여러분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간단합니다. 과거에 우리가 이와 같은 것을 심었기 때문에 이것을 거두는 것입니다. 인생은 부메랑과 같습니다.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는 것이 우주의 질서입니다. 그러므로 평탄하고 복된 삶을 살기 원한다면 평소에 올바르게 심고 살아야만 좋은 것을 거두고 살수가 있는 것입니다. 간단한 것입니다. 성경에는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가 세상에서 잘되고 장수하리라”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부모를 공경하는 것으로 심으면 그 결과로써 장차 세상에서 잘되고 건강하고 장수하게 살겠다는 것입니다. ‘내게는 삶이 왜 이렇게 저주가 다가오고 힘들고 고통스러운가. 왜 나는 늘 병약하고 괴로운가!’그것은 돌이켜 보면 부모를 공경하지 않고 부모를 거역하고 반역한 것으로 심어놓은 결과로 거두는 것입니다. 심고 거두는 것은 속이지 않습니다. 땅은 정직합니다. 콩을 심으면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나는 것처럼 우주도 우리 인생의 텃밭입니다. 우리가 사람이 보는 앞에서나 안보는 앞에서나 삶으로 심어놓은 것을 우리가 거두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심은 것을 결코 피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우리의 삶 속에 부모공경은 해도 좋고 안 해도 좋은 것이 아닙니다. 부모를 공경하지 않고 박대하고 지냈다면 내가 잘못 심은 것입니다. 그 결과는 내가 세상에서 저주를 받고 그리고 건강하지 못하고 괴로움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살인하지 말라고 했는데 내가 마음속에 살인할 것같이 미워했다고 했습니다. 그까짓 것 내가 미워했는데 무슨 상관있느냐? 미움으로 심어 놓으면 결국에는 불행과 고통으로 거두게 되는 것입니다. 이번 설날에도 미워해서 형제간에 총으로 다 쏘아 죽이고 자기도 자살한 사건들이 생기지 않았습니까? 미움이란 결국 자기 스스로도 극히 불행한 결과를 거두고 불행으로 거두게 되는 것입니다. 미움으로 심고 난 다음에 행복으로 거둘 수는 없습니다. 이렇기 때문에 미움은 살인하는 것이요, 살인한 자는 사망의 열매를 거두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간음하지 말라고 말했습니다. ‘아이~ 몰래 뭐 간음 좀 했다고 무슨 큰 죄가 있을 것이냐!’ 그러나 이는 우주의 텃밭에 간음이라는 불법을 심는 것입니다. 그 결과는 양심에 가책과 마음에 불안과 가정에 파탄을 거두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3장 4절에 “모든 사람은 혼인을 귀히 여기고 침소를 더럽히지 않게 하라 음행하는 자들과 간음하는 자들을 하나님이 심판하시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성도덕의 문란은 스스로 서로 육체적인 질병을 가져올 뿐 아니라 정신적인 질병, 가정파탄의 열매를 반드시 거두게 되는 것입니다. 성도덕 문란에 대한 성병 유행은 우리 한국에도 큰 문제가 되어 있습니다.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성병 환자중 여성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게 늘어나서 2004년 상반기에만 44.5%로 늘었습니다. 즉, 5,393명의 여성환자가 생겨났으며 남성환자는 6,729명에 육박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많은 성적인 질병으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고통을 당하고 있는데 이것은 잘못 심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법원 행정처가 발행한 2003년 사법연감에 따르면 2003년 한해 법원에 접수된 이혼소송은 47,500건인데 하루에 130건이 이혼에 달했습니다. 그중 배후자의 부정행위로 소송을 한 경우가 49.3%로 전체에 절반에 가깝습니다. 간음하지 말라. 그것이 결국에는 정신적인 질병, 육체적인 질병, 가정적인 파탄의 열매를 거두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둡니다. 대충 넘어갈 것이라고 절대로 생각하면 안 됩니다. 심고 거두는 법칙은 만고의 진리인 것입니다. 나는 안 거두고 넘어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스스로 속이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스스로 속이지 말라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둔다”고 말한 것입니다. 도둑질하지 말라고 했는데 나는 도둑질하고도 살수 있다. 도둑질하면 반드시 저주로 거두게 되는 것입니다. 도둑질해서 잘 먹고, 잘 입고, 잘 사는 사람 보았습니까? 언젠가 패가망신합니다. 도둑질한 것은 저주를 심어 놓는 것이고 결국에는 저주를 거두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의 물건 도둑질해도 저주로 거두고 하나님의 물건을 도둑질해도 저주로 거두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십일조를 드리고 하나님의 물건을 도둑질하지 않는 사람은 가난과 어려움이 다가와도 굉장히 마음속에 담대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내가 주님께 십일조를 심었는데 하나님께서 좋은 결과를 거두겠다고 말씀하셨은즉 그대로 이루어 달라’고 담대하게 기도할 수 있습니다. 세계적인 부호 록펠러도 위기의 순간이 있었습니다. 젊은시절 그는 친구의 권유로 광산업을 시작했다가 사기를 당하는 바람에 원금을 모두 날렸습니다. 광부들은 폭도로 변해서 밀린 임금을 요구했고 빚쟁이들은 날마다 찾아와 돈을 갚으라고 횡포를 부렸습니다. 록펠러는 너무나 괴로워서 자살까지 생각했었습니다. 그는 평소 하나님을 의지했던 사람인데 황량한 폐광 옆에 엎드려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하나님의 말씀은 일점일획도 변함이 없음을 믿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온전한 십일조를 드려왔습니다. 하나님은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는 자에게 복을 주신다고 약속했는데 오늘날 저에게는 복 대신 시련만 다가왔습니다. 저는 이 절망을 이겨낼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이제 안도와 주시면 나는 자살할 수밖에 없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여 이 문제를 해결해 주옵소서.’ 그렇게 기도하는데 마음속에 ‘더 깊이 파라. 더 깊이 파라’고 그럽니다. 폐광이 된 곳에 빚더미 위에 올라앉아서 절망 중에 부르짖는데 더 파라니 어떻게 합니까? 그러나 자꾸 더 파라. 더 파라. 그래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는 빚을 내어서 더 광산을 깊이 파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보고 드디어 이제는 미쳤다고 수군거렸습니다. 록펠러는 개의치 않고 광산파는 일을 계속했습니다. 그 결과 얼마 지나지 않자 광산에서 황금대신 검은 물이 분수처럼 솟아올랐습니다. 광산 깊은 곳에 유전이 담겨 있었던 것입니다. 기름이 분수처럼 솟아올랐습니다. 그래서 그는 문자 그대로 검은 황금을 캐낸 록펠러 미국의 최고가는 부자가 된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고 있다면 하나님이 무한하신 자원으로 우리를 축복해 주실 수가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내 이웃을 거짓증거하지 말라”고 말했습니다. 참소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웃을 자꾸 참소하고 이웃을 못살게 하는 사람치고 자기 스스로 잘되는 사람이 없습니다. 남을 참소하면 사람들에게 버림을 당하고 외로워지고 소외되고 마는 것입니다. “왜 사람들은 나를 좋아하지 아니할까? 왜 사람들은 나를 떠날까? 왜 사람들은 나를 아주 거머리 보듯이 보는 것인가?” 그것은 자기가 참소로 심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 결과로 그 사람들에게 돌려주는 것입니다. 참소하는 사람치고 오랜 친구가 결코 없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잠언서 19장 5절에 “거짓 증인은 벌을 면치 못할 것이요 거짓말을 내는 자도 피치 못하리라” 항상 벌이 따라오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또한 “네 이웃을 탐하지 말라”고 했는데 타인의 성공을 탐해서 방해하는 것은 잘못 심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기가 잘못됩니다. 남 잘되는 것 자꾸 축복해 주고 칭찬해 주고 복을 빌어주면 그 복이 자기에게 넘쳐 오는데 남이 잘되는 것 자꾸 할퀴고 못되게 하고 비난하고 짓밟으면 자기에게 화가되어 다가오는 것입니다. 인생 삶은 마치 산울림과 같습니다. 산울림은 정직하게 내가 칭찬하면 칭찬이 돌아오고 내가 욕을 하면 욕이 저쪽 산에서 들려오는 것입니다. 어떠한 사람이 신문을 보니까 좋은 옥수수 종자가 있다는 기사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빨리 달려가서 새로 품종 개량된 좋은 옥수수 씨앗을 구해서 밭에 심었는데 얼마나 옥수수가 잘되었던지 이웃 집 보다 배로 수확이 많았습니다. 이웃 농부가 와서 자꾸 말했습니다. “그 옥수수 씨앗 좀 나누어 주십시오.” 하니까 “아니야~ 못 나눠 준다. 나만 잘되야지 당신까지 내가 잘되게 할수 없다.” 그래서 안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이듬해에 옥수수를 심었는데 전년보다 수확이 좋지 못합니다. “그것 이상하다. 왜 그럴까?” 3년째는 이웃집 옥수수보다도 더 적게 수확이 되었습니다. 왜 그런지를 알아보니까 이웃집 옥수수에서 나오는 옥수수 가루가 자기 옥수수 밭에 바람이 불어서 와서 수정이 되기 때문에 오히려 옥수수 품종이 전보다 더 나빠져서 작년보다 훨씬 수확을 못하게 되었습니다. 이웃집에 옥수수를 나눠 주었더라면 좋은 옥수수 수술 가루가 서로 교접을 해서 좋은 옥수수를 생산할 수 있었을 것인데 욕심을 내었다가 자기 옥수수도 망하고 이웃집 옥수수도 망하고 만 것입니다. 남을 잘되게 하면 자기도 잘되고 남을 못되게 하면 자기도 못되는 것이 심고 거두는 법칙이라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됩니다.

3. 사랑을 실천하며 살라
우리가 또한 예방신앙을 하기 위해서는 셋째로, 사랑을 실천하며 살아야 됩니다.
이 세상에서 사랑을 실천하고 사는 사람에게 언제나 하나님의 은총과 복이 따르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은 함께 살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혼자 살지 못해요. 함께 살자면 남을 섬기는 마음을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한 가정에도 남편과 아내가 함께 살려면 남편은 아내를 섬기려고 해야 되고 아내도 남편을 섬기려고 해야 되는 것입니다. 부모도 자식을 섬기고 자식도 부모를 섬기고 함께 살려면 자기를 낮추고 남을 섬기는 삶을 살아야지 남에게 와서 나만 섬기십시오. 나만 따르십시오. 내 주장만 하면 결코 함께 살수가 없습니다.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교만을 버리고 자기중심을 버리고 남을 이해하고 동정하고 사랑하며 섬기는 삶을 살아야 됩니다.
잠언서 16장 18절에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고 했습니다.
베드로전서 5장 5절에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복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친히 말씀하시기를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오스트리아의 심리학자 알프레도 아들러 박사는 그에게 찾아온 우울증 환자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두주간만 나의 처방대로 하십시오. 그러면 당신은 건강해질 것입니다. 그 처방은 별로 어렵지 않습니다. 매일매일 어떻게 하면 남을 기쁘게 해줄까 궁리해서 이웃에 가서 남을 기쁘게 하고 즐겁게 하는 것을 실천하십시오. 그러면 당신의 우울증이 나을 것입니다.” 아들러 박사의 명성을 듣고 대단한 처방을 기대하고 찾아왔던 많은 사람들이 싱거운 처방에 그만 실망하고 비난하고 돌아섰습니다. 그러나 박사의 처방을 믿고 그대로 따른 사람들에게는 당장 효과가 나타났습니다. 남을 기쁘게 하기 위해 그들을 돕고 어려운 이웃에게 사랑을 실천했더니 자기 우울증이 싹 사라지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주라 그리하면 돌려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눌러 흔들어 넘치게 해서 안겨 주리라. 남을 기쁘시게 하면 부메랑이 되어 내게 기쁨이 오는 것입니다. 남을 즐겁게 하면 내게 즐거움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남을 평안하게 하면 내게도 평안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마음속에 우울증이 있고 기쁨이 없으면 우리가 외로운 할머니 할아버지 있는 곳에 찾아가든지 고아들을 찾아가고 불구자들을 찾아가서 그들을 봉사하고 섬기며 도와주고 있으면 자연적으로 내 우울증과 내 마음에 고통도 사라져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웃에게 베푸는 것은 부메랑과 똑같습니다. 세상을 향해 사랑의 부메랑을 날려 보십시오. 상상할 수 없는 놀라운 은총이 여러분에게 날아 돌아오는 것입니다. 늘 아내가 나에게 사랑을 베풀어 주지 않는다고 불평을 하지 마십시오. 아내에게 한번 사랑을 잔뜩 베풀어 보십시오. 사랑이 돌아오지요. 남편에게 굉장한 예와 동정과 사랑을 베풀어 보십시오. 반드시 그것이 돌아오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랑의 법칙인 것입니다. 사랑하면 사랑받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사랑받기만 원하면 사랑을 내가 받을 수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인생은 부메랑이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우리는 사랑이라는 것은 내가 받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이라는 것을 마음속에 늘 잊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탐욕을 비울 수 있어야 되고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은 항상 주는 것이라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라고 하시면서 주셨습니다. 무엇을 주었습니다. 독생자를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이처럼 사랑하사고 하시면서 주셨습니다. 무엇을 주셨습니까? 몸을 찢고 피를 흘려주신 것입니다. 마귀는 절대로 주지 않습니다. 마귀는 자꾸 빼앗아갑니다. 하나님의 보좌를 빼앗으려고 했습니다. 아담과 하와를 꾀어서 하나님 자리를 빼앗으려고 했습니다.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것뿐입니다. 도적이 여러분 집에 오면 좋은 일 합니까? 집에 있는 것을 다 빼앗아 갑니다. 마귀는 언제나 우리에게 와서 빼앗아 가지만 하나님은 언제나 주시는 것입니다. 태양 빛을 주시고 하나님은 공기를 주시고 물을 주시고 양식을 주시고 삶을 주시는 것이 하나님의 역사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주셨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항상 사랑한다면 주려고 애를 써야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따뜻한 말 한마디. 그리고 사랑하는 체온 그리고 물질 그리고 우리의 기쁨, 즐거움을 나누는 것입니다. 나는 뭐 나눌 것이 없는데 뭘 줍니까? 우리가 돈이 있으면 돈으로 나누고 옷이 있으면 옷으로 나누고 신발이 있으면 신발로 나누면 좋습니다. 그것도 없다면 따뜻한 말 한마디를 나누는 것 얼마나 좋습니까? 염려, 근심, 불안, 초조, 절망에 처한 사람에게 용기와 희망과 격려를 주는 것 그리고 외로운 사람에게 가서 따뜻한 손을 붙잡아 흔들어 주는 것이 얼마나 좋은 나눔인 것입니까? 인간은 내가 나누어 주므로 내가 부유하고 풍성해 지는 것입니다. 주면 돌려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후히 되어 눌러 흔들어 넘치게 해서 안겨 주는 것입니다. 사랑은 주는 것이지 사랑은 자꾸 달라고 해서 받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자꾸 달라고 하면 불행이 다가오지만 주는 데는 언제나 풍성한 행복이 따라오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을 실천하면서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잠언서 11장 25절에도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윤택하여지리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4.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
넷째로, 우리가 예방신앙을 하고 살려면 믿음으로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우리가 환경을 바라보고 보는 대로 듣는 대로 냄새 맡는 대로 만지는 대로 느끼는 대로 살면 불안해서 살수가 없습니다. 굳건한 반석에 서서 동남풍이 불고 서북풍이 불어도 밀고 나갈 수 있는 믿음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밤이 다가오며 아침이 올 것을 믿을 수 있어야 되고 폭풍우가 다가오면 평안한 날이 올 것을 믿을 수 있어야 되고 가시밭길을 걸어갈 때는 평탄한 길이 올 것을 믿어야 되고 험산준령을 지날 때는 평탄한 평지가 다가올 것을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어떻게 그런 것을 믿을 수 있습니까? 밤을 변하여 낮이 되고 풍랑이 변하여 조용하게 만드는 하나님을 믿어야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없이는 우리가 결코 평안하게 인생을 살아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날 어디에서 만날 수 있습니까? 말씀을 통해서 나타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우리가 다른데서 찾지 말고 하나님 앞에 나가서 말씀을 펼치고 읽을 때 말씀을 통하여 오늘날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는 것입니다. 성경에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는다고 말했으며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 된다고 말했습니다.
여호수아에게 여호수아 1장 8절에 하나님이 말씀하기를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나의 피난처로 삼고 하나님을 나의 난공불락의 요새로 삼고 하나님을 나의 의지로 삼으면 하나님께서 나를 새 사냥꾼의 올무에서와 극한 염병에서 건져 주시는 것입니다. 좋을 때는 우리가 평안하게 살 수 있지만 내게 큰 환난과 시험이 다가올 때 내가 피할 곳이 있어야 되고 숨을 곳이 있어야 되고 의지할 곳이 있어야 되는데 이것은 하나님이 우리의 피난처요 요새요 의뢰하는 하나님이 될 수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새 사냥꾼이 와서 우리를 잡으려고 그물을 쳐도 우리를 하나님이 건져줄 것을 믿을 수가 있고 큰 고통이 다가와도 건질 것을 믿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밤에 부지불식간에 놀라운 일이 다가올 때도 하나님이 같이 계시고 지켜 주시고 낮에 나를 계획적으로 활을 쏴 잡으려고 하는 사람도 하나님이 나를 붙들어서 피하게 해 주시고 흑암 중에 다가오는 큰 고통과 낭패가 다가올 때도 하나님이 같이 계셔 나를 붙들어 주시고 백주에 파멸되는 흉흉한 일이 다가올지라도 하나님이 같이하여 주셔서 천인은 옆에서 넘어지고 만인이 쓰러져도 하나님이 나와 같이 계시므로 죄악에서 피해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런 믿음이 있어야 인생을 긍정적으로 보고 희망을 가지고 살수 있는 것입니다. 인생을 긍정적으로 보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것입니다. 언제나 나는 못산다. 나는 안 된다. 나는 할 수 없다. 나는 파멸이다. 나는 절망이라고 생각하면 그러한 사람에게는 내일이 없습니다. 그러한 사람에게는 오직 파멸과 좌절과 절망밖에 없습니다. 조그마한 빛이라도 빛을 바라볼 수 있으면 사람은 좌절하지 않습니다. 이러므로 여러분 식물들을 보십시오. 식물들은 집에서 화분에 식물을 키워 보면 모든 잎사귀가 창문을 향합니다. 빛을 향해서 전부 잎이 그리 향합니다. 모든 식물의 잎사귀는 빛을 향해서 뻗어 나가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의 마음도 항상 빛을 향해서 하나님을 향해서 긍정적이고 적극적이고 창조적이고 낙관적인 희망을 향해서 살아야만 되는 것입니다. 희망을 저버리는 사람은 절대로 하나님이 같이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환난이나 곤고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기근이나 칼이랴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한 이로 말미암아 우리는 넉넉히 이긴다고 사도바울 선생은 말했습니다.
로마서 8장 32절에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라고 말한 것입니다.
아들조차 아낌없이 하나님이 주셨는데 그 아들을 구주로 모시고 섬기는 우리에게 하나님이 무엇을 안주겠습니까? 여러분이 제게 와서 무엇을 구할 때 제가 여러분에게 금덩어리 하나를 드렸다면 금덩어리를 싸서 갈 신문지 한 장 달라고 하면 어찌 신문지를 안주겠습니까? 금덩어리를 준 사람이 신문지 쪽지 안주겠습니까?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이 아들 잘 모시고 살려고 하는데 무엇을 안주시겠습니까? 예수님을 중심으로 섬기고 사는 자는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허락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한 평생을 두고 인간과 그 잠재능력에 대하여 연구해온 위대한 심리학자인 알프레도 아들러는 말하기를 “인간에게 있어 가장 놀랄만한 특성의 하나는 마이너스를 플러스로 바꾸는 힘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인생에 마이너스가 오는데도 불구하고 이것이 플러스가 될 것이라고 믿는 것, 이것이 인간의 능력이라는 것입니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 것은 절망에서 소망을 기대하는 것, 패배에서 승리를 기대하는 것, 어두움에서 빛을 기대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한 마음의 힘은 하나님을 의지할 때 생겨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거대한 변화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불행을 행복을 바꿀 수가 있습니다. 절망을 소망으로 바꿀 수가 있는 것입니다. 큰 패배를 성공으로 바꿀 수가 있는 것입니다. 큰 재난을 큰 축복으로 바꿀 수가 있는 것입니다. 슈바이처 박사도 “성공의 비결은 전생애를 통하여 희망을 잃지 않는데 있다.”고 말씀한 것입니다. 희망을 버리지 말라. 우리가 스스로 희망을 버릴 때가 많습니다. 인간이 극한 상황에 처하게 되면 자기의 인격을 상실합니다. 살 것을 포기하고 자살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때에 여러분 우리를 붙잡아 주시는 이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인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으면 내가 절망과 좌절에 처할 때도 그것이 희망의 빛이 되어서 나를 붙들어 일으켜 세워 주시고 나로 하여금 긍정적이고 적극적이고 창조적인 희망을 가질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사람이 희망을 버리지 아니하면 결코 하나님이 그를 버리지 않는 것입니다. 절망하지 않는 이상 하나님은 붙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성경은 뭐라고 말합니까?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같이 계심이라.” 여러분 이것이 우리 희망입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니까 내가 죽을 수밖에 없다 이러면 그 사람에겐 희망이란 없습니다. 좌절이요, 절망입니다. 부모, 형제, 처자 다 떠났습니다. 나 혼자 가장 고통스러운 골짜기를 지나갑니다. 아무도 몰라줍니다. 그러나 그 절망에서 죽을 수밖에 없지만 성경은 말합니다. “하나님은 함께 계신다.” 그 어둡고 캄캄한 절망에도 하나님은 같이 계셔서 하나님의 지팡이를 하나님의 지혜와 총명과 모략과 재능이요 하나님의 막대기는 하나님의 권능으로 우리를 이끌어 주신다. 이와 같은 마음속에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믿음만 있으면 어떠한 사망의 골짜기도 우리는 승리로 나올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이와 같은 신앙이 우리에게 얼마나 보배로운 것이 되고 있습니까? 여러분 이러한 신앙을 가지고 우리가 기도하고 낙심하지 아니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와 같이 계셔서 모든 것이 합동하여 선을 이루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저는 늘 어려움을 당할 때마다 외우는 말씀이 있습니다. 예레미야서 33장 3절
“일을 행하는 여호와, 그것을 지어 성취하는 여호와, 그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자가 이같이 이르노라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나는 거기에 감사합니다. 내가 아는 바로는 희망이 없습니다. 내가 아는 바로는 나갈 문이 없습니다. 내가 아는 바로는 제기할 수 없다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성경은 말씀하기를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내가 보여 주겠다. 이것이 마음속에 얼마나 큰 희망이 됩니까? 또한 성경은 말씀하기를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좋은 일, 나쁜 일, 슬픈 일, 기쁜 일, 건강할 때, 병들 때, 성공할 때, 실패할 때 모든 것이 다 나중에는 합쳐서 유익이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소망을 얻을 수가 있지 않습니까? 마태복음 7장 7절에는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라고 했으니 우리가 소망을 잃지 않으면 끝까지 부르짖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앉으나 서나 울면서 웃으면서 주님께 부르짖어 기도하고 주님은 그 기도를 듣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하나님이 우리를 버렸다고 생각하지만 주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우리를 이끌어 주시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기도를 낙심하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부르짖으면 채워 주시기 위해서 우리를 따라와서 기다리시는 하나님인 것입니다.

[결론]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언제나 삶의 순서를 올바르게 선택해야 됩니다. 먼저 구할 것을 먼저 구하고 나중 구할 것 나중 구해야지 순서를 잘못 해놓아서 엉망진창이 되면 도저히 실타래를 풀어 갈수가 없습니다. 그 나라와 그 의를 언제나 먼저 구하는 삶을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삶에서 심고 거두는 것은 정말 중요합니다. 내가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둡니다. 어물쩡하고 넘어가지 못합니다. 내가 남을 굉장히 해롭게 해놓고 난 다음 ‘나는 괜찮을 것이다.’ 절대 안 괜찮습니다. 하나님이 그것을 계산해 놓고 있습니다. 거두게 되는 것입니다. 남의 물건 훔쳐놓고 난 다음에 아무도 못 보았으니 괜찮다. 하나님은 계산해 넣어 놓고 있습니다. 반드시 심은 대로 거두는 것입니다.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둡니다. 잘 심으면 잘 거두고 못 심으면 못 거두게 되는 것입니다. 심고 거두는 것을 생각하고 우리는 올바르게 심기 위해서 노력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랑으로써 실천하며 살아야 됩니다. 남을 섬기고 나누어 주면서 사랑으로 살면 내가 언제나 사랑으로써 보답을 받고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면서 흑암과 시련과 고난을 통할 때 희망을 가지고 낙심하지 말고 믿고 기도하고 나가면 하나님이 같이 하시므로 여러분의 일생을 주님께서 복되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삶에는 심고 거두는 인과응보가 반드시 따른다는 것을 여러분 절대로 잊지 마십시오. 생명의 원천인 사랑을 갖고 살아 하나님을 믿고 복종하면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사랑으로 대해 준다는 것도 잊지 마십시오. 예비하고 우리가 마음을 다스려서 예방신앙을 가지면 큰 시험과 환난을 피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건강을 미리 예방하는 것처럼 여러분 신앙도 예방신앙을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일주일에 엿새동안 부지런히 하루에 한시간씩만 운동하면 몸이 건강해지지요. 아주 쓰레기같은 음식들 자꾸 먹지 말고 소식하고 잘살고 채소를 먹고 잘살고 건강을 도모해야 되고 그 다음 마음에 평안을 가지면 건강히 살수 있는 것처럼 우리 영혼도 우리가 하나님 앞에 올바른 신앙의 대책을 세우면 큰 시험과 환난을 피하고 하나님이 축복 중에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으며 평안하게 잘 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
사랑이 많으시고 거룩하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우리가 환난과 고난당하고 난 다음 탄식하지 말고 고난당하기 전에 예방하는 신앙을 갖게 도와주시옵소서. 불이나고 난 다음 끌려고 하지 말고 불나기 전에 불씨를 조심하는 것처럼 살게 도와주시옵소서. 우리의 삶 속에 언제나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정의를 먼저 구하고 우리가 무엇이든지 잘못 심으면 잘못 거두고 잘 심으면 잘 거둔다는 것을 마음에 기억하고 올바로 심는 삶을 살게 도와주시고 사랑으로 실천하며 살게 도와주시고 말씀을 믿고 믿음으로 사는 우리들 되게 도와주시고 하나님과 동행하여 이 땅에 살면서 큰 시련, 환난 없이 살게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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