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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을 곳

요한복음 나무............... 조회 수 1701 추천 수 0 2009.06.15 23:5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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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요14:1~6 
설교자 : 조용기 목사 
참고 : 2005년 4월 24일 주일2부설교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내가 가는 곳에 그 길을 너희가 알리라 도마가 가로되 주여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삽나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서론]
오늘 저는 “있을 곳”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겨울동안 조용하던 산과 들이 봄이 오면 갑자기 새소리들로 가득해집니다. 우리들이 생각하기로는 봄이 오니 새들이 기뻐서 저렇게 요란스럽게 노래하는가? 생각하지만 전문가들의 말을 들어보면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봄이 오면 새들이 둥지를 틀고 새끼를 기르게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둥지를 틀 곳이 필요합니다. 그 때문에 새들은 자기가 있을 곳을 차지하기 위하여 또는 이미 자기가 둥지 틀 곳을 선점해 놓고 자기 권리를 주장하기 위하여 그렇게 소리 높여 지저귀고 외친다고 말합니다. 동물들도 자기가 사는 지역을 지키기 위하여 피를 흘리며 싸웁니다. 사람들도 삶과 있을 곳이란 서로 분리해 놓을 수 없는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있을 곳이 없다는 것은 언제나 불안을 의미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본론]
1. 몸은 가장 기본적인 있을 곳

첫째로, 우리는 육체를 가지고 있습니다. 육체는 우리가 거쳐야 할 가장 기본적인 있을 곳입니다.
육체가 무너지면 있을 곳을 완전히 상실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몸이 건강하기 위해서는 마음이 평안해야 몸이 건강하잖아요. 몸이 건강하고 병들지 않아야 있을 곳이 튼튼합니다. 우리의 몸이 근본적인 있을 곳인데 몸을 잃어버리면 우리는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몸의 주인은 마음이기 때문에 마음에 평안이 없으면 몸에 건강을 가질 수가 없습니다. 몸이 있을 곳을 상실하게 되는 것입니다.
잠언서 17장 22절에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로 마르게 하느니라”
마음의 즐거움은 온 몸에 약공장을 가동시켜서 양약을 산출한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좋습니까? 마음에 기쁨이 우리의 몸속에 양약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심령에 근심은 뼈로 마르게 하니 우리 몸을 파괴하는 것입니다.
잠언서 18장 14절에도 “사람의 심령은 그 병을 능히 이기려니와 심령이 상하면 그것을 누가 일으키겠느냐”
속이 상하면 몸도 함께 파괴되는 것입니다. 건강은 우리가 이 세상에 살아갈 최소한도의 있을 곳이기 때문에 건강을 잃어버리면 마음이 불안하기 짝이 없습니다.
평균 수명이 175년인 거북이는 초조함을 모른다고 합니다. 소나기가 쏟아지면 머리를 몸 안으로 집어넣고 햇빛이 따가우면 그늘에서 잠시 쉬어갑니다. 이와같은 유순하고 온유한 동물은 장수합니다. 그러나 성질이 급하고 사나운 맹수는 수명이 짧습니다. 여러분 보세요. 거북이는 가만히~ 몇시간이고 물에서 가만히 있습니다. 그러나 호랑이나 사자는 응얼거리며 서성대고 끊임없이 분노를 나타냅니다. 거북이와 악어같은 가만히 엎드려 있는 동물은 오래오래 살지만 사나운 짐승은 얼마있지 아니하여 죽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화를 잘 내고 성급한 사람들 중에 건강하게 장수하는 사람 봤어요? 85세까지 장수했던 발명왕 토마스 에디슨은 80세 생일 때 자신의 건강비결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 건강의 비결은 쓸데없는 일에 조급하지 않는 것입니다. 나는 여유를 즐기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호주 플린더스대학의 차메인 파워 박사의 연구결과도 마찬가지입니다. 파워박사가 호주의 100세 이상된 노인 24명을 대상으로 연구한 바에 의하면 장수한 사람 대부분이 일상에서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들이 평소 마음에 여유를 갖고 초조해 하지 않았기 때문에 오래살수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맞습니다. 불안과 초조와 조급함을 버리고 마음에 평안을 유지하는 것이 건강장수의 비결인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건강할 때에 건강을 지켜야 됩니다. 병들을 때 서둘러서 병원에 가고 약 먹고 야단법석하지 말고 건강할 때 우리 스스로를 지키면 늘 평안을 가질 수가 있습니다.
잠언서 3장 7절로 8절에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말찌어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악을 떠날찌어다 이것이 네 몸에 양약이 되어 네 골수로 윤택하게 하리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을 떠나면 마음에 평안한 것입니다. 하나님도 없고 악을 행하면 마음에 평안이 없습니다. 대게 악인에게는 평강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을 떠나면 이것이 몸에 양약이 되고 골수로 윤택하게 만든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을 섬기며 사는 것은 참으로 양약이 되고 골수로 윤택하게 하고 우리로 하여금 무병장수하게 하는 비결이 되는 것입니다.
미국 데일리 뉴스 예방의학전문가인 피터 한센 박사는 건강을 위한 보고서를 다음과 같이 발표했습니다. “건강을 유지하는 3대 비결은 규칙적인 운동과 건강한 식생활을 하면서 술, 담배, 과로, 수면부족 등 해로운 습관을 버리는 것이다. 이것이 건강을 지키는 50%이다”라고 말했었습니다. 나머지 50%의 건강관리법은 사랑이라고 말했습니다. 사랑을 하면 신체의 저항력이 강해져 병균을 물리치는 힘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미워하고 분노하고 시기하고 질투하면 몸에 저항력이 사라집니다. 쉽게 병들고 몸이 허약해지는 것입니다. 사랑이 우리에게 굉장한 것을 가져오는 보약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족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성경에는 원수까지라도 사랑하라고 말했었습니다. 그것은 이웃보다도 먼저 자기에게 놀라운 축복을 갖다 주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 무엇보다도 성경은 우리의 몸은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거하는 전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성전을 우리가 잘 보존해야 될 것은 마땅한 일입니다. 하나님의 집이 되었고 하나님을 잘 모시고 살면 건강할 것은 분명합니다.
고린도전서 6장 19절로 20절에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면서 살면 하나님께서 이 몸을 지켜 주시고 건강합니다. 건강하면 평안합니다. 병들면 불안합니다. 몸을 잃어버리면 이 땅에서 사는 모든 처소를 잃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있을 곳이 평안하면 마음이 평안합니다.

2. 가정이란 있을 곳
둘째로, 가정이란 있을 곳이 없으면 불안합니다.
우리가 살면서 아무리 몸이 건강해도 가정이 없으면 그리고 내가 있을 집이 없으면 마음이 불안해지는 것입니다. 가족은 이 세상에 가장 친밀한 집단입니다.
창세기 2장 24절에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찌로다”
둘이면서 한 마음, 한 몸이 되어서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고 위로하고 격려하고 서로 힘이 되어 사는 가족이 있고 그 가족이 모여서 사는 집이 있다는 것이 평안의 조건이 됩니다. 가족도 없고 집도 없으면 마음이 불안해지는 것입니다. 그 때문에 가족이 함께 모여 가정을 이루고 살집은 정말 중요합니다. 그것이 월세 방이든, 전세방이든, 임대주택이든, 사택이든, 개인주택이든 있을 곳이 있어야 사람은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입니다. 살집이 없을 때 불안해지지요. 그런데 오늘날 우리 주위에 보면 집값이 자꾸 오르고 내 집 마련의 꿈이 점점 멀어지기 때문에 사람들의 마음이 불안하고 사회가 불안해지는 것입니다.
통계청 발표에 의하면 2003년 이혼사유는 부부불화가 70%로 가장 많았으며 경제문제로 인한 이혼비율이 16.4%로 10년 2.4%에 비교하여 돈 때문에 이혼건수가 7배로 급증해 있습니다. 통계청이 작년 6월 전국 3만3천가구 조사해 보면 결혼 후 내집 마련 기간은 평균 10년 1개월이 걸린다고 했습니다. 결혼하고 난 다음에 10년을 하루같이 저축하고 노력해야 내 집을 마련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내 집을 마련하기 전에는 늘 불안해하는 것입니다. 더구나 이민을 간 한국사람들은 아침 일찍 일어나고 저녁에 늦게 누우며 혹은 철야해 가면서 뼈가 으스러지도록 일을 하면서 내 집 마련을 합니다. 이국땅에 가서 외롭고 불안하니까 내 집마련을 해서 마음에 안정을 얻으려고 무수히 노력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집이 있고 가족이 있어도 그 집이 하나님이 함께 계셔야만 사랑과 정의가 있는 행복한 가정이 됩니다. 아무리 집이 있고 가족이 있어도 하나님 계시지 아니하면 사랑과 정의가 사라지면 가정은 가정이 아닙니다. 서로 물고 찢고 싸우고 불안하기 짝이 없는 것입니다.
시편 128편 1절로 2절에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도에 행하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네가 네 손이 수고한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의 법도를 지키고 살면 복이 따라오는 것입니다. 손으로 수고한데로 먹고 하는 일이 형통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모신 가정이 되어야 됩니다. 아무리 가정이 있고 집이 있어도 하나님 계시지 아니하면 그 가정에 사랑이 사라지고 정의가 없어지면 허무맹랑한 가정이 됩니다. 야웨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고 야웨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숫꾼의 경성함이 허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3. 직장이란 있을 곳
셋째로, 우리는 이 세상에 살면서 직장이란 있을 곳이 있어야 됩니다.
직장이란 있을 곳이 없으면 불안합니다. 왜냐하면 직업이나 직장은 삶의 터전이기 때문인 것입니다.원시시대로 말하면 사냥터가 바로 직장입니다. 사냥해오지 못하면 굴에서 기다리고 있는 아내와 자식들이 굶어죽잖아요. 직장이 없을 때 직업이 없을 때 맘이 불안합니다. 직장과 직업은 우리가 사회에 있을 곳이 되는 것입니다.
잠언서 12장 11절에 “자기의 토지를 경작하는 자는 먹을 것이 많거니와 방탕한 것을 따르는 자는 지혜가 없느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통계청 발표에 의하면 2005년 4월 현재 우리나라의 실업자는 90만 7천명으로 3.9%의 실업율을 보이고 있습니다. 심각한 사회문제로 변한 청년실업률 역시 41만 1천명으로 8.2%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큰 문제는 우리한국에 대학 진학률이 80.7%입니다. 그렇게 많이 대학을 갑니다. 그런데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하는 사람은 56.4%에 불과합니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취직률은 60.1%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청년실업률이 우리 한국에 큰 문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젊은 청년들이 불안하고 초조한 것은 사회적으로 있을 곳이 없이 떠돌이가 되어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런데 한국 노동연구원의 한 연구원의 말에 의하면 실제 실업률은 정부의 공식발표보다 두 배 이상 높다고 합니다. 정부의 공식수치는 단순 아르바이트인 파트타임 근무까지 취업인원으로 포함시키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직장은 사회적인 있을 곳입니다. 직장이 있어야 자기의 정체성이 확인됩니다. 내가 누구냐. 직장이 없으면 내가 누군지를 모릅니다. 떠돌이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회소속감을 상실하고 상호교통도 갖지 못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퇴직 후 명함이 없는 상실감을 맛본다고 합니다. 아주대학교의 심리학교수인 김영진박사는 이 상실감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사람들의 자긍심은 자신의 능력 때문이 아니라 어느 직장이나 분야에 소속됨으로써 자연히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이것이 소위 후광 효과라고 말한 것입니다. 오늘날 성도들도 “당신 어느 교회 나갑니까?” “여의도순복음교회 나갑니다. 세계에서 제일 큰 교회 나갑니다.” 그런 후광을 가지고 굉장히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소속한 교회가 없으면 떠돌이 교인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이것이 소위 후광 효과입니다. 그런데 직장을 그만두면 위상이 달라집니다. 명함 내밀 일도 없고 어디 마땅히 갈 곳도 없고 회사 앞 술집에서 외상술 먹을 입장도 안 될 때 상실감을 느낀다고 합니다.
월간 조선 2002년 5월호에 재벌 계열회사 대표이사였다가 퇴직한 한 사람과 인터뷰한 내용이 있는데 기자가 “퇴직 후에 가장 직접적으로 부딪히는 문제가 무엇입니까?”하고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사람을 만나면 당연히 주고받던 명함을 내밀 필요가 없다는 것이 가장 당혹스러운 변화입니다. 무심결에 포켓에서 명함을 찾다가 ‘아~ 내가 그만 두었지?’ 이 생각이 번뜩 들면 마음에 허탈감이 엄습해 온다”고 말했습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사회적 있을 곳인 직장에서 소속감을 느끼고 정체성을 찾습니다. 그러나 직장을 잃어서 명함을 내밀 수 없게 되면 소속감과 정체성 모두를 잃어버리고 마음이 불안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직장의 있을 곳이란 우리 마음에 평안을 주는데 굉장히 중요한 것입니다.

4. 국가란 있을 곳
넷째, 국가란 있을 곳이 없을 때 불안합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살면서 국가란 있을 곳이 굉장히 중요한 것입니다. 국가는 국민들이 있을 땅이 있어야 되지 않습니까? 우리가 독도 하나가지고도 일본하고 밀고 당깁니다. 분명히 우리땅인데도 불구하고 일본이 강제적으로 자기 땅이라고 괴변을 하기 때문에 우리 국민이 분노해서 일어난 것은 잘 알고 있는 것입니다. 국가는 국민이 있을 곳입니다. 2천년 동안 나라 없는 서러움을 겪은 유대인을 보십시오. 유대인이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따라 살고 범죄하므로 하나님께 버림을 당하고 팔레스타인에서 쫓겨나 온 천하 만국으로 흩어져 버리고 만 것입니다. 전 세계에서 핍박을 당하고 제2차 세계대전때는 독일 히틀러에 의하여 6백만명이 참살을 당했습니다. 얼마나 큰 비극입니까? 우리도 1910년 한·일합방으로 일본에 나라를 잃고 36년간 종살이한 한서린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일본 사람들은 한국을 36년 동안 점령하고 우리에게 가혹한 행위를 한 것을 보통으로 생각합니다. 여러분 때린 사람은 때린 것을 잊어버리지만 맞은 사람은 영원히 아픈 것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일본은 우리를 점령해서 우리를 수탈한 것을 잊어버리고 혹은 더 잘했다고 변명하지만 맞은 우리, 수탈당한 우리는 그 고통을 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국가 없는 민족의 서러움은 우리는 겪어서 잘 압니다. 우리는 1910년 일본에 나라를 잃고 36년 동안 나라없는 민족으로 살았던 적이 있습니다. 지금은 대한민국이 공인된 국가로 세계에서 인정을 받고 있지만 아직도 세계는 나라없는 민족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라크전으로 인해 많이 알려진 쿠루드족은 이란과 이라크, 터키 등에 흩어져 살고 있습니다. 그들의 숫자는 2천 5백만명이 넘는 거대한 민족인데도 나라가 없는 이유로 각 나라에서 소외되고 박해를 받았습니다. 독립을 시켜준다는 명분하에서 총알받이로 이용되기 까지 했습니다. 유럽의 집시족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 역시 1천만명이 넘는데 나라가 없기 때문에 이곳저곳 떠돌이 신세생활을 하고 인간이하의 취급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와 가까운 중국내에도 많은 소수 민족들이 있습니다. 특히 티벳과 위그르족은 지속적으로 독립을 요구하고 있지만 중국정부가 승인을 해주지 않아 변방에서 자라가고 있습니다. 여러분 나라 없는 설움은 말로 다할 수 없을 정도로 비참합니다. 누구도 돌보아주지 않습니다. 망명을 해도 받아주지 않습니다. 부모없는 고아처럼 세계를 떠돌아다니며 걸식해야 하는 슬픔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민족은 나라라는 있을 곳이 있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나라가 없을 때에 불안한 것입니다. 그 나라가 왕성하고 창대하면 그 민족은 어느 곳에 가더라도 대접을 받습니다.
신명기 28장 1절로 6절에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미치리니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네 몸의 소생과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우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네 광주리와 떡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나라가 번영하고 복을 받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찾아야 되고 하나님을 섬겨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번영하고 복을 받고 강성한 나라가 될 것입니다.

5. 영원한 있을 곳
다섯째로, 영원한 있을 곳이 없으면 영원히 불안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문제입니다. 이 세상에 몸이 아무리 건강해도 그리고 가정이 있고 집이 있어도 그리고 사회적인 있을 곳인 직장이 있어도 그리고 나라가 있어도 이것은 모두 다 잃어버릴 것을 전제로 한 것들입니다. 세상과 세상의 것은 하나도 남김없이 다 빼앗길 것입니다. 우리에게 영원한 있을 곳이 없으면 우리는 영원한 나그네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사람이 지구상에 잠시 살다 떠난 존재라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시편 90편 3절로 4절에 “주께서 사람을 티끌로 돌아가게 하시고 말씀하시기를 너희 인생들은 돌아가라 하셨사오니 주의 목전에는 천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 경점 같을 뿐임이니이다”
한평생 사는 것이 눈 깜박할 사이입니다. 저는 아직까지도 20대같은 생각이 드는데 벌써 70이 되었지 않습니까? 거짓말 같아요. 살아온 것이 꿈결같습니다. 이렇게 짧을 수가 있느냐. 그러나 인생이 그것입니다. 아마 아담, 하와가 지금까지 살았을지라도 “오래 살았지요?” 하고 물으면 “아니야, 잠시 살았어” 그렇게 말할 것입니다.
히브리서 9장 27절에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이 땅에 영원히 있을 곳을 알지 못하고 어디서 와서 왜 살며 어디로 가는지를 알지 못하는 인생들은 정말 허무하고 무의미한 인생을 삽니다. 여러분 최희준씨의 하숙생이란 노래를 잘 아시지요?
‘인생은 나그네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구름이 흘러가듯 떠돌아가는 길에 정일랑 두지 말자 미련일랑 두지 말자. 인생은 나그네길 구름이 흘러가듯 정처 없이 흘러간다. 인생은 벌거숭이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가. 강물이 흘러가듯 여울져 가는 길에 정일랑 두지 말자. 미련일랑 두지 말자. 인생은 벌거숭이 강물이 흘러가듯 소리없이 흘러간다.’
너무나 허무하고 무의미하고 맹랑한 고백 아닙니까? 그러나 이것이 사실입니다. 이 노래를 김정일도 좋아서 부른다고 합니다. 진짜 이 사람 이 노래 불러야 돼요. 왜 너무나 허무하고 무의미한 삶을 살기 때문인 것입니다. 예수를 믿고 하나님이 없는 사람은 모두 다 허무맹랑합니다. 죄책에서 놓여날 수도 없고 허무와 무의미를 해탈할 수도 없고 죽음과 무의 절망을 벗어날 수도 없는 신념에서 몸부림치는 것입니다. 우리 성경에는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 부자가 살았는데 이 땅에 있을 곳이 많았던 사람입니다. 건강하고 좋은 집에 직업에 호의호식하고 방종하며 살았습니다.
누가복음 16장 19절에 “한 부자가 있어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로이 연락하는데”며 살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부자의 집 대문 밖에 쭈그리고 앉아서 얻어먹는 거지 나사로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땅에 있을 동안 홈리스요 병들고 집이 없고 직업도 없고 정신없이 걸식하고 산사람입니다.
누가복음 16장 20절로 21절에 “나사로라 이름 한 한 거지가 헌데를 앓으며 그 부자의 대문에 누워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불리려 하매 심지어 개들이 와서 그 헌데를 핥더라”고 말했습니다.
이 땅에서 부자는 있을 곳이 많았고 거지는 있을 곳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 땅에 있을 곳은 얼마 안가서 다 빼앗기고 마는 것입니다. 영원히 있을 곳이 있느냐 없느냐가 가장 중요한 물음입니다.
누가복음 16장 22절에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
사람이 안 죽을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아무리 부귀, 영화, 공명이 있어도 영웅호걸 열사라도 다 죽습니다. 그리고 이 땅에 있던 것은 다 상실하고 마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빌려온 인생터전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건강도 빌려온 것, 가정도 빌려온 것, 직장도 빌려온 것, 나라도 빌려온 것 이 세상에 전세방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언제고 떠나야 하는 것입니다. 영원히 떠나야 하는 것입니다. 영원히 떠나서 갈 곳이 어디겠습니까? 거지도 죽었습니다. 부자도 죽었습니다. 그러나 거지는 천사에게 받들려 낙원으로 들어가서 아브라함의 품에 안겼습니다. 눈물과 근심과 탄식과 이별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앓는 것이 없는 세계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부자는 이 세상 있을 곳에 들어붙어서 영원히 건강하고 영원히 자기 호화로운 집이 있고 영원히 직장이 있고 영원히 자기 나라가 왕성할 줄 알고 세상만 잡고 있다가 죽음으로 다 잃어버릴 때 그는 저편 하늘나라에 아무 준비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부자는 음부에 떨어져 불꽃 가운데서 고통하며 쳐다보니 나사로가 아브라함의 품에서 영화를 누리는 것을 보고 탄식했습니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사로를 보내어 손에 냉수를 한방울만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중에 고민하나이다”
인간의 운명은 이 세상을 떠난 이후에 영원히 결정됩니다. 영원한 안식이냐, 영원한 고통이냐, 영원한 평안이냐, 영원한 슬픔이냐를 이 땅에서 우리가 결정해야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5장 1절에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나니”
예수를 믿고 구원받은 사람은 이것을 알고 있어요. 모르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알고서 사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5장 8절로 9절에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거하는 그것이라 그런즉 우리는 거하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 되기를 힘쓰노라”
바울선생은 차라리 몸을 떠나 주님과 함께 거하는 것이 훨씬 좋다고 그랬습니다. 안 믿는 사람은 소똥 밭에 뒹굴어도 이 세상이 좋다고 하는데 주님을 따르는 바울선생은 육신을 떠나 주와 함께 있을 욕망을 가진 것이 더 좋다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 있든지 떠나든지 주를 섬기고 사는 우리들이 되는 것입니다.
미국의 대통령이었던 존 아담스가 노인이 되었을 때의 일입니다. 하루는 아담스가 지팡이에 의지해서 산보를 하고 있는데 어떤 사람이 그에게 다가와 “안녕하십니까? 대통령 각하. 요즘 건강은 어떠십니까?”하고 안부를 물었습니다. 아담스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예, 저는 아주 건강합니다. 그러나 제가 사는 집이 심하게 망가졌습니다. 지붕은 다 떨어지고 벽이 벗겨져서 기둥까지 밖으로 나오고 게다가 바람이 강하게 불면 흔들거리기까지 해서 받침기둥을 대어야할 지경이지요.” 그 말에 그 사람은 믿기지 않는 표정으로 반문했습니다. “아니~ 대통령까지 지내신 분이 그렇게 초라한 집에 살고 계시면 어떻게 합니까? 저라도 여론을 일으켜서 모금을 하여 여생을 편히 사실 수 있는 집을 마련해 드려야겠습니다.” 그러자 아담스는 매우 심각한 표정으로 머리를 벗더니만 대머리를 어루만지면서 “자 보십시오. 이처럼 지붕이 다 떨어져 나갔습니다.” 옷을 이렇게 올리니까 갈비뼈가 숭숭 나왔어요. “벽도 떨어져서 기둥이 밖에서 보이지요.” 그 손에 지팡이를 흔들면서 “바람이 불면 집이 움직여서 위험하기 때문에 이처럼 받침기둥을 의지하고 삽니다. 하지만 언제까지 이렇게 쓰러져 가는 집에서 살수만 없지요. 그래서 머지않아 영원한 본향으로 이사를 갈 것입니다. 저곳으로···” 이렇게 말하며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르치면서 “이사 갈 시간을 나는 손꼽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사 갈 곳이 있으니 좋잖아요. 이사 갈 곳이 없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내일을 준비하지 못한 사람, 있을 곳이 없는 사람이 얼마나 많아요. 이 세상에 있을 곳이 없어도 불안, 초조, 좌절, 절망하는데 영원히 있을 곳이 없을 때 얼마나 당황하고 당혹하겠습니까? 우리의 육신은 잠시 머무는 곳입니다. 영원한 처소는 하늘에 있습니다. 천국에 가야 비로소 우리가 영원히 편안히 거할 수가 있습니다.

[결론]
우리가 지상에서 가진 있을 곳은 얼마 후에 다 잃어버리게 됩니다. 죽음은 육체적인 몸도 가정도 직업도 사회적 있을 곳도 나라도 몽땅 빼앗아 갑니다. 영원한 있을 곳이 없을 때는 영원히 버림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눈을 빤히 들여다보시고 낭랑한 음성으로 들려주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요한복음 14장 1절로 6절에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내가 가는 곳에 그 길을 너희가 알리라 도마가 가로되 주여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삽나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예수님은 천국가는 길을 여시기 위해서 육신을 쓰고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친히 매달려 몸찢고 피흘려 죄와 불의, 추악과 저주, 절망과 죽음을 청산하시고 하늘 문을 활짝 열어 놓으셨습니다. 보혈로 레드 카페트를 깔아 놓고 남녀, 노유, 빈부, 귀천 할 것 없이 예수를 믿고 나가면 아버지 나라로 들어가고 아버지의 예비하신 영원히 거할 처소로 갈 수 있게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눈물과 근심과 탄식이 없는 나라입니다. 약한 몸이 강한 몸으로 죽을 몸이 영원히 살 몸으로 추한 몸이 영화로운 몸으로 육신의 몸이 영의 몸으로 주님과 모습이 되어 끝없이 우주를 다스리며 살게 되실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있을 곳입니다. 주님은 이 있을 곳에 여러분을 초청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은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해주겠다. 영원한 있을 곳이 있으면 이 땅에 잠시 있다 살아질 있을 곳이 있어도 더 감사하고 없어도 그로 말미암아 좌절하거나 절망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세월은 흘러가고 우리는 곧 이 세상을 떠나게 될 것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기도]
사랑이 많으시고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리는 모두 다 있을 곳을 찾고 있습니다. 건강한 몸, 가정, 직업, 국가, 세상에 있을 곳을 찾아 방황하지만 있을 곳을 얻은 사람은 잃을까 걱정하고 있을 곳이 없는 사람은 있을 곳을 찾으려고 몸부림을 치고 있어도 걱정이고 없어도 걱정입니다. 아버지 영원히 있을 곳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예비되어 있사오니 예수님을 구주로 모시고 그 안에서 영원히 있을 곳을 마음에 확실히 가지고 마음에 영원한 평안을 가지고 잠시 있을 세상을 믿음과 담대한 마음으로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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