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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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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의 형태로, 우리 영혼들을 공격하기 위해 다시 되돌아온다.
I. 죄에 대한 각성
II. 영적 미지근함
I. 죄에 대한 각성(覺醒)
십자가의 요한은 완덕의 길로 나아가는 초보자들, 즉 감각의 밤을 통해 관상(觀想)으로 들어가는 영혼들에게 존재하는 죄를 잘 설명하고 있다. 이것을 우리는 단순하게 성인이 「어둔 밤」에서 말하는 초보자의 불완전에 대한 죄의 심리 분석을 간단히 요약한다.
1. 죄의 성향에서 교만까지
십자가의 요한이 말하는 죄들에 대한 성향은, 대개 다음 여섯 가지 방법으로 나타난다.
1) 초보자들은 영적 수련에 성실과 열정을 목표로 하면서도, 그들은 자신의 행위에 만족하고 자신을 과도하게 믿는다. 곧 교만한 자로써, 그들은 많은 계획을 세우지만 거의 대부분은 실천하지 않는다.
2) 초보자들은 자신들이 직접 실천하기 보다는, 언제나 다른 사람들에게 교훈을 준다는 명목으로 영성을 말한다. 또 초보자들은 자기들 방식의 영성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을 심하게 단죄한다.
3) 초보자들은 그들 곁에 경쟁자가 있는 것을 참지 못한다. 만일 경쟁자가 나타날 경우, 그들은 그 경쟁자를 단죄하고 격하시켜 버린다.
4) 초보자들은 처음 영적 지도자들과 내밀하고 친밀한 관계를 찾는다. 그러나 만일 지도자가 자신들의 사상에 동의하지 않으면, 그들은 즉시 다른 지도자를 찾는다. 또 초보자들은 자기 자신의 성공을 위해, 그들은 자신들의 잘못을 언제나 축소시킨다. 만일 초보자들이 매우 큰 잘못을 저지르면, 그들은 일상적인 영적 지도자가 아닌 다른 지도자에게 자기 잘못을 고백한다.
5) 초보자들은 만일 그들에게 중죄(重罪)를 범하는 기회가 오면, 그들은 자기 자신에게 화를 내고 실망하면서 자신이 아직 성인이 아니라는 것에 대해 화를 낸다.
6) 초보자들은 하나님께 대한 신심을 외적으로 나타내면서, 자신 스스로 특별한 영혼이 되기를 좋아한다. 그리고 의도적(意圖的)으로 다른 사람에게 자신들의 훌륭한 업적과 성공에 대하여 이야기하기를 좋아한다.
일반적으로, 십자가의 요한이 말하는 초보자들에게는, 교만에서 질투가 나온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교만은 다른 사람의 영적 행복에 대해서 불쾌한 행동을 나타낸다. 그래서 초보자들은 이웃이 칭찬 받는 것을 괴로워하고, 그들의 덕을 슬퍼하며, 기회가 생기면 그들을 비방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2. 감각적 죄들
1) 초보자들의 영적 탐욕은 대개 두 형태로 나타난다.
① 먼저 초보자들은 영적 위로(慰勞)의 맛에 지나치게 집착한다. 예를 들어, 고행으로 갖는 절식(絶食)이나 금욕(禁慾)과 편태(鞭笞, 채찍이나 몽둥이) 등이다. 초보자들은 이와 같은 고행에서 갖는 위로를 얻기 위해, 스스로 고행을 엄격하게 행할 허락을 받으려고 영적지도자를 성가시게 한다.
② 그리고 같은 의미에서, 어떤 초보자들은 기도할 때나 에배 때, 감각적 신심을 얻기 위해 악착같이 노력한다. 그런가 하면, 회개를 영적 위로를 얻기 위한 목적으로 자주 한다. 이와 같은 노력이나 열망은 결과적으로 영혼에게 무의미하게 남을 뿐이다. 이와 같은 초보자들의 실망은, 많은 영혼들에게 하나님보다는 인간적 위로에 더 애착을 갖게 한다.
2) 영적 사치는 다음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① 먼저, 초보자는 신심이란 이름 아래 감각적이고 관능적(官能的)인 우정을 찾으며, 그 우정을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 초보자는 우정만이 유일하게 신심을 유지할 수 있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② 다음, 초보자가 기도 시간이나 예배 때 느끼는 감각적 위로는, 본성이 착하고 정감적인 사람에게는 커다란 기쁨이라고 착각한다.
3) 게으름.
① 초보자들은 영성 수련에서 감각적인 맛을 느끼지 못할 때, 수련생활을 지겹게 생각하고 영성 수련을 빼거나 줄이려고 한다.
② 초보자들은 영적 지도자가 그들에게 규칙을 엄하게 권고했을 때, 그들은 기가 꺾여 버린다. 초보자들은 자신의 작은 계책을 흩으리거나 편안함을 깨뜨리는 것은 원하지 않고, 항상 가장 쉬운 영성생활을 원한다.
3. 영적 인색(吝嗇)
1) 초보자들 가운데, 영적 계명과 권고를 아무런 인식(認識)도 없이 마구잡이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특별한 계명과 권고를 잘 이해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초보자들은 모든 일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지만, 그들의 첫 째 의무인 실천에는 매우 인색하기 때문이다. 곧 정신적으로는 완벽하게 가난을 실행하지만, 고행에는 너무나 인색하다.
2) 그 외에도, 초보자들은 자신이 귀중하다고 생각하는 골동품 같은 물건에 애착하면서 그것을 모은다. 그들은 이것은 좋아하기 때문에 버릴 수 없고, 저것은 아깝기 때문에 줄 수 없게 된다. 이와 같은 인색함은 가난의 정신에는 반대되고, 그 결과 신심에 필요한 것들은 무시하고 부차적인 것에 더 신경을 쓰고 중요하게 생각한다.
4. 결 론
불완전함은 초보자들의 영적 진보에 많은 해(害)를 끼친다. 그래서 십자가의 요한은「어둔 밤」에서 초보자들의 불완전함을 고치기 위해 하나님의 도움을 말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 어두운 밤에 들어가지 않는 초보자들에 대해서는, 영혼의 무미건조(無味乾燥)와 위로(慰勞)의 사용에 대한 것을 실천하면서, 장애물을 없애려고 노력할 것이다. 그리고 초보자들은 순명 · 절제 · 겸손 · 온유 등을 실천하고자 노력해야 한다.
II. 영적 미지근함
만일, 영혼이 지금까지 명시(明示)한 잘못들에 대항하여 싸우지 않는다면, 우리는 즉시 영적 미지근함에 빠져들게 될 것이다. 이 미지근함은 영적으로 영혼에게 매우 위험하다. 그러므로 간단하게 살펴본다.
1. 영적 미지근함의 본질.
2. 영적 미지근함의 위험들.
3. 영적 미지근함에서의 이탈.
1. 영적 미지근함의 본질
1) 영적 미지근함의 개념
영적으로 미지근함은, 완덕으로 나아가는 초보자나 진보자를 공격할 수 있는 영적 질병(疾病)이다. 특히 조명의 길에서 이 미지근함의 특성이 많이 나타난다. 영적으로 미지근함은 영혼이 어느 정도 완덕의 단계를 획득했다는 착각에서, 그는 단계적으로 나태에 빠지게 된다.
그래서 미지근함은 영적인 면에서 일종의 나태와 관계된다. 이 영적 미지근함은 의지의 힘을 느슨하게 하고, 노력에 대한 공포와 그리스도적 삶을 부진하게 한다. 이러한 모습은 아직 죽음은 아니지만, 영혼을 무기력하게 하고 의기소침하게 한다. 이 미지근함은 영적으로 우리의 용기를 점차 약하게 하고 무감각으로 이끈다. 그래서 이 영적 미지근함을 영혼의 병으로 간주한다.
2) 영적 미지근함의 원인들
미지근함은 영혼에게 다음 두 가지 주요한 원인으로 간주한다. 하나는 영혼이 영적으로 충분하게 영양분을 섭취하지 못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몇 가지 병균이 영혼 안에 침입한 것이다.
(1) 우리의 영혼이 영적으로 살고 성장하기 위해서는, 영적으로 좋은 음식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 음식은, 여러 가지 수련 · 기도 · 독서 · 묵상 · 성찰 · 직무 완성과 덕의 실천 등이 필요하다. 이 영적 음식은 우리를 초자연적 생명의 원천인 하나님과 일치하게 하는 것들이다.
그러므로 만일 우리가 위와 같은 수련을 무시하고, 의식적인 분심과 무기력한 습관에 대항해서 싸우지 않는다면, 우리는 많은 은총을 빼앗기게 될 것이다. 그 결과 영혼은 잘 먹지 못해 약하게 되고, 아주 쉬운 그리스도인의 덕조차 실천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위에서 말한 이와 같은 영혼의 상태는, 무미건조함이나 영적시련과는 그 성질이 매우 다르다. 즉 무미건조나 시련에는, 분심을 받아들이는 것 때문에 영혼은 고통스러워한다. 그래서 그 분심을 줄이기 위해 열심히 노력한다.
그러나 반대로 영적 미지근함은, 영혼을 쉽게 쓸 데 없는 분심에 빠지게 하고, 거기에서 지나가는 기쁨을 찾는다. 그는 분심을 쫓기 위해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으며, 그 결과 얼마 후에는 분심이 완전히 자신의 기도를 삼켜 버린다.
미지근한 영혼은 영적 수련에서 아주 작은 열매만을 보면서, 수련을 없애기 전에 먼저 단축시키기부터 시작한다. 그래서 양심 성찰은 지겹고 거북스러워, 단순하게 습관화되어 버리는 것으로 끝난다. 그로 인하여, 영적 미지근함은 자신의 잘못을 더 이상 알 수 없게 되고, 자기 죄에 무감각하게 된다. 그 결과 미지근한 영혼은 완덕을 위해 어떤 노력도 하지 않고, 끝으로 악한 경향으로 기울어진다.
(2) 미지근함은 영적 무기력함에서 오는 결과로써, 영혼의 성장을 약화시키는 일종의 영적 빈혈(貧血)이다. 이 미지근함은 세 가지 탐욕(육체적 탐욕, 호기심, 교만)이라는 병균을 영혼이 받아들이는 꼴이 된다. 물론 이 세 가지 탐욕은 가끔 함께 작용하는 경우도 있다.
① 영적 미지근함은 우리의 내적 외적 감각을 통해 쉽게 유혹이나 호기심, 건전하지 못한 육욕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그래서 이 무기력함은 가끔 마음이 문란한 애정에 사로잡히도록 내버려둔다. 그 결과 영혼은 쉽게 경솔한 죄를 짓게 되며, 위험에 빠지기도 한다.
② 미지근함으로 인한 교만은 자기 자신에 대한 만족을 억제하기를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교만은 좀 더 자신을 높이기 위해, 언제나 자기보다 더 나태한 사람과 비교하면서 만족해한다. 그리고 교만은 자기 의무에 충실한 사람들을 소심하고 편협한 정신을 가졌다고 멸시한다. 더 나아가 교만은 형제들과의 모든 관계를 부담스럽게 하고, 화를 잘 내게 하면서 성급한 행동과 아울러 질투를 나타난다.
③ 미지근함은 영혼 안에 탐욕을 되살아나게 한다. 이 탐욕은 쾌락을 얻기 위해, 정직하지 못하고 부정한 여러 방법을 통해 만족을 취한다.
영적 미지근함은 영혼으로 하여금 많은 잘못과 가벼운 죄를 건성으로 뉘우치게 한다. 왜냐하면 양심의 섬세한 판단의 빛이 그 영혼 안에 약화되었기 때문이다. 결국 미지근한 영혼은 습관적인 부주의 속에 살게 되고, 양심 성찰을 등한시하게 된다. 그로 인하여 미지근한 영혼은 큰 죄에 대한 두려움이 감소되고, 자연히 하나님의 은총에 민감하지 않게 된다. 한 마디로 모든 영적 기관들이 약화되어 버린다.
3) 영적 미지근함의 단계들
위에서 말한 것처럼, 영혼의 미지근함에는 여러 단계가 있다. 그러나 실천적인 면에서, 미지근함은 초보적 단계와 노련한 단계로 구분할 수 있다.
① 미지근한 영혼의 초보적 단계는, 태만으로 인해 짓는 큰 죄에 대한 두려움을 어느 정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가벼운 죄를 고의로 쉽게 범한다. 특히 우월감과 관계되는 잘못의 죄를 쉽게 범한다. 한편 영성수련 때는 아주 적은 실천만을 습관적으로 한다.
② 미지근한 영혼의 노련한 단계는, 책망을 받아야 할 태만에서, 큰 죄에 대한 혐오감이 차츰 없어지게 된다. 한편이 노련한 단계는 쾌락적 애착이 강렬해지고, 큰 죄에 대한 형벌로 금지된 쾌락들을 아쉬워한다. 그러므로 노련한 단계에 있는 영혼은 유혹을 무기력하게 거절한다. 그 결과 미지근한 영혼은 자기가 은총의 상태에 있는가를 스스로 자문하게 된다.
2. 영적 미지근함의 위험들
미지근한 영혼의 위험한 상태는, 큰 죄보다 더 위험하게 영혼의 역량(力量)을 점진적으로 약화시키는데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예수님은 영적 미지근함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계 3:15~17)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는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것을, 만성 질환과 급성 질환의 병에 비유하면서 그 차이점을 지적할 수 있다. 먼저 급성 질환은 병이 나으면, 대개 다시 건강한 상태로 되돌아오지만, 만성 질환은 육체를 조금씩 약화시키므로 병이 나은 후에도 오랫동안 약한 상태로 남는다.
이 점에 대하여 우리는 미지근한 영혼의 상태를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1) 미지근한 영혼이 갖는 첫 번째 결과는 일종의 의식실명(意識失明)의 상태가 된다. 자신의 잘못을 너그럽게 덮어두고 용서한 나머지, 그는 판단이 비뚤어지고 중한 죄를 가벼운 죄로 보게 된다. 그리하여 영혼은 느슨해진 양심을 갖게 되고, 범한 죄나 무분별로 인한 잘못을 더 이상 인식하지 못하게 된다.
그 결과 미지근한 영혼은 즉시 범죄적인 환상 속으로 빠지게 된다. "사람의 눈에는 바르게 보이는 길도 끝장에는 죽음에 이르는 수가 있다."(잠 14:12)
미지근한 영혼은 자신의 교만 때문에 스스로 부유(富裕)하다고 믿지만, 사실 그는 하나님의 눈에는 비참하고 가난할 뿐이다.
2) 영적으로 미지근한 영혼에게는 차츰 의지(意志)의 약화가 온다.
① 미지근한 영혼은 교만으로 인해 작은 일들을 양보한 나머지, 중요한 일에도 쾌락에 자리를 양보하게 된다. 성경은 이 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지극히 작은 일에 충실한 사람은 큰 일에도 충실하며 지극히 작은 일에 부정직한 사람은 큰 일에도 부정직할 것이다."(눅 16:10) : 여기서 작은 일이란 글자 그대로 지상의 것을 말하는 것이며, 큰일이란 하늘의 것을 지적하는 말이다.
② 미지근한 영혼은 곧 이어 자신의 노력에 싫증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영혼에게 금지된 의지는 자신의 자연적 성향의 무기력과 쾌락에 애착에 내버려두게 한다. 그러므로 만일 우리의 의지를 강하게 하지 않는다면 영혼은 큰 죄를 짓게 될 경향이 크다.
③ 미지근한 영혼의 행동은 은총을 남용하게 되고, 자주 성령의 영감을 저항하게 된다. 이로써 영혼은 더 쉽게 쾌락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되고, 악한 성향에 자리를 내어 주며, 큰 죄를 짓는 것으로 끝난다.
이와 같은 영혼의 추락은 대부분 스스로 무감각하기 때문에 회복하기 매우 어렵다. 미지근한 영혼의 의지는 갑작스러운 충격 없이 차츰 죄의 심연으로 미끄러져 내려간다. 그 때 영혼은 자신의 환상을 만들려고 시도한다. 이 환상은 자신의 잘못을 다만 가벼운 죄라 생각하고, 중한 죄라 하더라도 마음 아프게 회개하지 않는다. 그 후, 그는 큰 죄가 될 수 없는 뜻밖의 죄라고 변명까지 한다. 이렇게 미지근한 영혼은 자신의 양심을 속이고, 하찮은 것만을 고백할 것이다. 공은 높은 곳에서 떨어지면 다시 튀어 오른다. 그러나 미지근한 영혼이 구렁텅이에 빠지면, 거기서 다시 헤어나지 못한다. 이처럼 미지근한 영혼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3. 영적 미지근함에서의 이탈
예수님은 영적 미지근함에서 벗어날 대책(對策)을 가르쳐 주신다.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열정과 사랑의 황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양심의 순결)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계 3:18~20)
그러므로 우리는 절망해서는 안 된다. 예수님은 우리가 진정으로 회개하면, 참된 사랑을 주시기 위해 항상 준비하고 계신다.
그래서 우리가 진정으로 회개하기 위해서는 좋은 영적 지도자를 만나야 한다.
1) 지혜로운 지도자에게 자주 자신의 영혼 상태를 솔직하게 말하고, 자기 영혼의 마비 상태를 깨우쳐 주기를 진심으로 원해야 한다. 그러기 위하여, 영혼은 인내와 열정으로 지도자의 권고를 받고 따르도록 한다.
2) 영혼은 영적 지도 아래 자주 자신을 새롭게 봉신하면서, 양심 성찰과 기도를 통해 영성 수련을 실천한다. 이때의 열정은 감성적이 아니라, 하나님께 아무것도 거절하지 않으려는 의지의 용기여야 한다.
3) 영혼은 어떤 주제에 대해서는 특별 성찰을 단계적으로 하고, 회개하면서, 덕행과 직무에 충실하도록 한다.
이렇게 할 때, 영혼에게는 완덕에 대한 열정이 되돌아 올 것이다. 그리고 지난 죄를 진심으로 뉘우치고 속죄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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