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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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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롬!
최근 가톨릭 수도원에서 수련하신 분이 오셔서 상담을 하고또 잠시 수도를 하고 가셨습니다. 관상기도에 대한 대화를 하는 중에 공로사상에 많이 젖어 있는 모습을 보고 구원론 중에서 성화와 견인 교리가 부족하다는 인식을 하게 되었습니다.우리는 개신교교리를 벗어날 수는 없고 벗어나서도 안된다는 것을 말하고자 합니다.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 (가톨릭에서는 상당부분 선행이 개입합니다)
믿음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성화는 하나님의 사역으로 우리는 협력관계에 있다. (가톨릭은 선행이 구원의 한 조건으로 ...)
견인은 하나님의 지속된 중재로 이끌어 감으로 타락할 수 없다. ( 오직 개신교만...)
다만 타락했다면 교회를 다녀도 아직 구원받지 못한 사람이라 할 수 있다.
우리를 대속하여 속죄 재물 되어주신 주께서 지금도 중재하고 계십니다.
교리상의 문제를 크게보면
1. 하나님 나라의 통치는 대부분이 동일합니다. 다만 가톨릭은 이 땅의 대리자가 있다한다.
2.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 가톨릭은 믿음+ 성찬 + 계명을 지킴 등을 더한다.
3. 하나님의 역사에 인간은 협력한다. 그러나 그 것은 공로가 아니다.
이런 부분이 크게 다르다.
물론 습득식 관상기도의 경우 자신의 노력을 주장할 위험이 있습니다.
우리는 거룩한 독서를 통한 관상기도와 침묵기도 즉 주부식 관상기도를 주장하고 실천합니다.
관상기도에서 우리의 공로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총으로 우리와 일치(연합, 하나됨)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나아갈 자는 성결해야 합니다.
그리고 인간적인 모든 사고(분심)를 내려놓고 은총의 때를 기다려야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협력사항입니다.
그러나 이것마져 온전한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성령의 도우심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침묵하고 기다리십시오.감사합니다
루이스 뻘콥, 신복윤 역, "기독교 신학개론"
박형룡박사 저작전집 V 구원론. 참조
구원의 서정.
1). 소명(召命) 2). 중생(重生) 3). 회심(回心) 4). 신앙(信仰) 5). 칭의(稱義) 6). 성화(聖化) 7). 성도(聖徒)의 견인(堅忍)
6. 성화(聖化)
1). 성화(聖化)의 성서적(聖書的) 용어(用語)
"성화하다."(qadash)라는 히브리어는 아마 "자르다."(to cut)를 뜻하는 용어에서 왔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 말은 분리(分離)의 관념을 강조한다. 이 말은 역시 hagiazo라고하는 신약용어(新約用語)의 기초적인 관념이기도 하다. 성화(聖化)를 다룸에 있어서 이 점을 명심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먼저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의 마음속에 영적 갱신(靈的 更新)의 관념을 넣어주며, 또한 인간에게 도덕적, 영적 특질을 부여한다는 관념을 전달하여 주는 것이다. 성화된 인간은 원리상 생활의 죄악적 관계(罪惡的 關係)를 떠나서 하나님과의 새로운 관계에 들어가게 된다. 그러나 성서의 용어들은 먼저 관계를 가르키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하나님께서 성령(聖靈)을 통하여 성결(聖潔)의 주관적 특질들을 인간속에 일으키시는 하나님의 역사(役事)를 지시하기도 한다(요 17:17; 행 20:32; 26:18; 고전 1:2; 살전 5:23).
2). 거룩함과 성화(聖化)의 성서적 관념(觀念)
성서에서 거룩함의 관념은 먼저 하나님에게 적용되었다. 점진적으로 발전하여 하나님의 존엄하신 순결(純潔)에 대하여 자신의 불결(不潔)을 알게되는 것이다(사 6장 비교). 이와같이 하나님께서 피조물(被造物)과 분리(分離)되신다는 관념은 모든 불결, 특히 죄에서 분리된다고 하는 관념에 이르게 된다. 마음이 청결한 자만이 하나님 앞에서 설 수 있는 것이다(시 24:3이하). 전부는 아니다..
적극적인 의미에서 신적 성결(神的 聖潔, 거룩함)의 관념은 신적 영광((神的 榮光)의 관념에 투영(投影)하여 거의 그것과 동일시되는 것이다.
둘째로 거룩함의 관념은 하나님과 더불어 특별한 관계를 가지는 인물(人物)과 사물(事物)에도 적용되었다. 그러나 오직 하나님의 은혜를 소유한 자만이 참으로 주(主)앞에서 거룩하다. 윤리적 품성(倫理的 品性)들이 그 마음 속에서 활동하게 되는 것은 성령(聖靈)의 감화를 통해서만 되어지는 것이다. 구약의 거룩함의 관념은 신약으로 전달되었다. 거룩함의 관념은 단순한 도덕적 선(道德的 善)의 관념이 아니고 언제나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보여진 윤리적 선(倫理的 善)의 관념이라고 보는 것이 매우 중요한 일이다. 성서는 단순한 도덕적 개량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언제나 하나님과 관련하여, 하나님을 위하여, 도는 하나님 예배를 목적으로 하는 도덕적 개량을 말하는 것이다.
성화(聖化)를 정의하면 "성화란 성령께서 죄인을 죄의 부패에서 개긋하게 하시며, 그의 전본성(全本性)을 하나님의 형상(形象)으로 갱신(更新)하여 죄인으로 하여금 선(善)한 일을 할 수 있게 하시는 성령(聖靈)의 은혜로우시며 계속적인 사역(事役)이라 할 수 있다."
3). 성화(聖化)의 특징(特徵)
① 성화의 창시자는 하나님이시다. 인간은 하나님과 협력해야 한다(고후 7:1; 골 3:5~14; 벧전 1:22).
② 성화는 하나님의 법적 행위가 아니고 도덕적, 재창조적 행위이다. 이 행위에 의하여 죄인은 그의 내적 존재(內的存在)가 새로워지며, 도한 점진적으로 하나님의 형상과 일치하게 된다.
③ 성화는 오랜 기간의 과정이어서 현세에서는 결코 완전에 이르지 못한다.
④ 성황의 과정은 그것이 영혼에 관한 한, 죽을 때 오나성되든가 그렇지 않으면 죽은 직후에 완성된다. 그리고 육체에 속하고 있는 한 부활시(復活時)에 완성된다(빌 3:21; 히 12:23; 계 14:5; 21:27).
4). 성화(聖化)의 성질(性質)
① 성화는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사역(事役)으로, 부분적으로는 직접적이요 부분적으로는 간접적이다. 하나님께서 수단(手段)을 사용하시는 한, 인간은 그 수단을 적절하게 사용함으로 그 역사에 협력해야 하는 것이다(살전 5:23; 히 13:20,21; 고후 7:1; 히 12:14).
② 그것은 옛사람의 억제(抑制)와 새 사람의 태동(胎動)의 두 부분으로 되어 있다.
소극적인 면은, 죄에서부터 온 인간성의 불결(不潔)과 부패(腐敗)가 점진적으로 제거된다고 하는 여기에 있다. 옛 사람, 곧 죄의 지배만을 받고 있던 인간성이 십자가(十字架)에 못박히우는 것이다(롬 6:6; 갈 5:24).
적극적인 면은 영혼의 거룩한 성향이 강화되고 그 거룩한 실천이 증진되어 생활의 새로운 과정이 일으켜 진다고하는 여기에 있다(롬 6:4,5; 골 2:12; 3:1,3). 그것이 인도하는 새 생활(生活)은 "하나님을 향하여 사는 생활"이라고 불리워지는 것이다(롬 6:11; 갈 2:19).
③ 성화는 마음에서 일어나기 때문에 그것은 필연적으로 전 조직에 영향을 미친다. 인간내부에서 일어나는 변화는 동시에 생활의 외부적 변화를 수반하는 것이다(롬 6:12; 고전 6:15,20; 고후 5:17; 살전 5:23). 그것은 특별히 죽음의 위기에서 완성되며, 또한 죽은 자의 부활에서 완성되는 것이다. 성서의 교훈에 의하면, 성화는 오성(悟性, 렘 31:34; 요 6:45), 의지(意志, 겔 36:25~27; 빌 3:13), 감정(感情, 갈 5:24), 그리고 양심(良心, 딛 1:15; 히 9:14) 에 영향을 준다고 가르치고 있다.
④ 인간이 성화의 사역에서 협력해야 한다는 사실은 악마(惡魔)와 유혹에 대항하여 싸우라고 하는 반복적인 경고에서 알 수 잇다(롬 12:9,16,17; 고전 6:9,10; 갈 5:16~23). 그리고 거룩한 생활을 하도록 끈임없이 권유하고 있는 사실에서도 볼 수 있다(미 6:8; 요 15:2,8,16; 롬 8:12,13; 12:1,2,17; 갈 6:7,8,15)
5). 현세(現世)에서의 성화(聖化)의 불완전성(不完全性)
성화가 인간의 모든 부분에 영향을 주는 것만은 사실이지만, 그러나 현세에 있어서의 신자의 영적 성장(靈的 成長)은 정도에 있어서는 불완전(不完全)한 채로 남아 있게 된다. 신자는 그들이 살고 잇는 동안 죄와 싸우지 않으면 안된다(왕상 8:46; 잠 20:9; 약 3:2; 요일 1:8), 성서에 의하면 하나님의 자녀들의 일상생활에는 항상 영육간(靈肉間)의 싸움이 있으며, 그들 중 가장 훌륭한 신자라 하더라도 완전(完全)을 위하여 계속 싸우고 있는 것이다(롬 7:7~26; 갈 2:20; 5:17; 빌 3:12~14). 사죄(赦罪)함을 얻기 위하여는 죄를 고백하며 기도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하였다(욥 9:3,20; 시 32:5; 130:3; 잠 20:9; 사 64:6; 단 9:16; 롬 7:14; 마 6:12,13; 요일 1:9).
성서가 가끔 신자를 완전한자로 말하고 있는 것은, 그들이 죄(罪)가 없다는 의미에서 그렇게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혹은 원리상(原理上) 또는 충분한 의미에서 완전한 자로 불리워질 수 있는 것이다(고전 2:6; 3:1,2; 히 5:14; 딤후 3:17)
성서는 죄(罪)없는 생활에 이른 신자의 실례(實例)를 하나도 포함하지 않는다.
6). 성화(聖化)와 선(善)한 일
성화는 필연적으로 선한 생활을 발생한다. 이것들은 성화의 열매라 부리워질 수 있다.
① 선행의 성질
우리가 선행(善行)을 할 때, 그것은 완전한 일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원리상(原理上) 하나님의 요구(要求)에 응(應)하는 일이요, 또는 영적 의미(靈的 意味)에서 선(善)한 일을 뜻한다. 그같은 선행은 하나님에 대한 사랑의 원리에서 또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려는 욕망에서 일어난다(신 6:2; 삼상 15:22; 사 1:12; 마 7:17; 골 3:17, 23).
② 선행(善行)의 공로적(功勞的) 특징(特徵)
신자의 선행(善行)은 엄밀한 의미에서 공로적이 아니다. 곧 그것은 보수(報酬)에 대한 정당한 요구를 필연적으로 수반하는 고유의 가치(價値)를 갖고 있지 않는 것이다. 만일 하나님께서 그들의 선한 일에 상을 주신다고 하면, 그것은 하나님게서ㅕ 그렇게 할 의무하(義務下)에 있기 때문이 아니라, 다만 그가 찬동할 수 잇는 일에 상을 주시기로 은혜적으로 약속한 때문인 것이다. 그것은 마치 부모가 자녀에게 주는 것과 같은 상(賞)인 것이다. 성서는 신자의 선행(善行)이 골로적이 아니라는 것을 명백히 가르치고 있다(눅 17:9,10; 롬 5:15~18; 6:23; 엡 2:8~10; 딤후 1:9; 딛 3:5).
로마 가톨릭은 죄인이 하나님의 은혜를 마음에 받은 후에는 공로적인 일을 할 수 있다고 보았다. 다시 말하면 죄인의 선행(善行)은 구원(救援)과 영광(榮光)에 대한 정당한 청구권을 가진다고 주장하였던 것이다.
③ 선행의 필요성
선행은 구원에 필요한 조건이 아니다. 그러나 선행은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으로 성인신자에게 있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롬 7:4; 8:12,13; 갈 6:2). 또는 신앙의 열매로서(약 2:14,17,20~22), 감사의 표현으로써(고전 6:20), 신앙의 확증을 얻는 일에서(벧후 1:5~10),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필요한 것이다(요 15:8, 고전 10:31).
7. 성도(聖徒)의 견인(堅忍)
1). 성도의 견인의 성질
그리스도인이 은혜의 상태에서 떨어질 수 없다는 것을 실제적으로 주장하는 것은 오직 개혁파교회(改革派敎會) 뿐이다. 로마 가톨릭파, 루터파까지도 그리스도인이 은혜의 상태에서 타락한다는 것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들은 성도(聖徒)의 인내(忍耐)를 믿지 않는 것이다. 엄격히 말해서 인내하는 것은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인 것이다.
견인(堅忍)이란 "성령께서 신자의 마음속에서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를 시작하고, 계속하여, 마침내는 그것을 완성케 하시는 성령의 계속적 역사라 하겠다."
2). 견인교리(堅忍敎理)에 대한 증거(證據)
성서는 견인의 교리를 직접적으로 입증해 주고 있다(요 10:28,29; 롬 11:29; 빌 1:6; 살후 3:3; 딤후 1:12; 4:18). 그것은 또한 당연한 귀결(歸結)로서 선택(選擇)의 교리가 된다. 이 선택의 교리란 구원의 어떤 방법의 선택이 아니라, 완전한 구원의 목적(目的)에 대한 선택인 것이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공로(功勞)와 중재(仲裁)의 효력에서 확실히 알 수 있다.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대가를 지불한 사람들은 결코 다시 정죄될 수 없는 것이다. 더욱이 그들을 위한 그리스도의 끊임없는 중재는 효과적인 것이다(요 11:42; 히 7:25). 그것은 또한 그리스도와 신자의 신비적(神秘的) 연합(聯合)에서도 필연적으로 추론된다. 마지막으로 그것은 신자가 현제에도 구원의 확증(確證)을 얻을 수 있다고 하는 사실에서도 추론된다(히 3:14; 6:11; 10:22; 벧후 1:10). 신자의 어떠한 대에도 은혜(恩惠)에서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은 전혀 있을 수 없는 일인 것이다.
3). 견인교리(堅忍敎理)에 대한 이의(異議)
견인교리는 거짓 평안(平安)과 태만(怠慢)과 방종과 부도덕(不道德)으로 이끌어 간다는 비난을 가끔 받는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비난이다. 성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보호를 받고 있음을 가르치고 있지만 그렇다고해서 하나님이 우리 편의 끊임없는 주의(注意)와 열심(熱心)과 기도(祈禱)없이 보호하신다는 관념을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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