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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신약성경의 영성

수도관상피정 박노열 목사............... 조회 수 2262 추천 수 0 2009.06.16 12: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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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신약성경의 영성
신약성경에 있는 영적 보물(寶物)을 정리하고 보다 더 잘 파악하기 위해, 공관 복음서, 사도 요한, 사도 바울의 영성을 간략하게 그 개요를 정리한다.

1. 공관복음의 영성

공관 복음서에 나오는 예수님 가르침의 중심 사상은 하나님의 나라에 있다.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와 연관된 영성을 보다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 그 본질과 구성 그리고 조건들을 간단하게 다룰 것이다.

1. 하나님 나라의 본질
예수님이 설교하신 하나님의 나라와 그분의 통치는 유다인들의 억측과는 반대로, 지상(地上)의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통치(統治)는 그분을 반역(反逆)한 천사인, 사탄(Satan)의 통치와는 대립되는 영적(靈的)인 것이다.

1).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통치를 말한다.

① "하나님의 나라"는 일차적으로는 "하나님의 통치" 즉 하나님께서 왕으로서 다스리시는 그의 통치권을 의미한다. 이 통치권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의 아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통치권이다(눅 22:19).
② 하나님의 통치의 목적은 구원적이다. 즉 사람들을 구속하기 위한 것이고 악의 세력으로부터 구원하기 위함이다(고전 15:23~28).
③ 그 나라는 역동적이다. 그 나라는 추상적인 원리에 불과한 것이 아니고 "임하고 있는"(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나라는 사단의 나라를 적극적으로 침투해 가고 있는 것을 말한다.

예수께서 가르치시기를 그 나라는 이 세상 끝에 임할 것인데(마 6:10; 5:31~46; 13:36~43; 19:28), 자신의 인격과 사역을 통하여 이미 역사 속에 임하여 있다(구속적인 통치)고 하셨다.(마 12:28,29; 눅 10:18; 17:21).
하나님의 통치가 동적으로 이루어지는 그 나라는 초자연적이다. 그 나라는 하나님에 의해서 이루어진다(고전 15:26,50이하; 마 19:18; 막 4:26~29).

2). 하나님 나라와 교회

① "하나님의 나라"가 바로 교회와 동일한 것은 아니다. 사도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러 다녔다(행 8:12; 18:8; 28:23). 그런데 이러한 구절들에서 나라 대신에 교회를 대치시킬 수는 없다.
② 하나님의 나라와 교회는 서로 불가분리의 관계에 있다.
③ 교회란 하나님의 나라를 받아들이고, 그 나라의 법칙(통치)에 복종하며, 그 축복들을 누리는 사람들의 모임(친교)이다.

2. 하나님 나라의 구성

하나님의 나라의 왕은 하나님이시다.(마 6:9~10, 26:29) 그런데 이 왕은 구약에서처럼 그 백성이 이루는 공동체의 아버지이실 뿐만 아니라, 동시에 각 영혼들의 개별적인 아버지이시기도 하다.
하나님의 선성(善性)은 너무나 관대하여 이 세상에 사는 악한들(마 5:16~45)에게까지 그 선성(善性)이 미친다. 그러나 하나님의 정의(正義)는 마음이 굳은 죄인들에게만 나타난다. 모든 죄인들은 지옥불의 심판을 받을 것이다(마 25:41).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동시에 사람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이 땅에 세워졌다. 예수 그리스도는 또한 그의 탄생을 통해 우리의 왕이 되신다. 그분은 본성적으로 상속자이시며, 하나님께서 당신 자신을 아는 것 같이, 아버지를 아는 유일한 분이시며 아들이시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는 당신의 권위(權威)로써 우리의 왕이 되신다. 그리스도는 잃었던 우리를 구원하러 오셨고, 우리의 죄를 속죄(贖罪)하기 위해 당신의 피를 흘리셨기 때문이다(마 11:27, 14:33, 16:16, 20:28, 25:31, 34:40; 눅 10:22, 19:10, 22:20, 23:2~3).
예수 그리스도는 약자와 가난한 사람들, 버림받은 이들을 사랑하시는 매우 헌신적인 왕이시다. 그리고 길 잃은 양들을 우리로 데려오기 위해 찾아 나서는 왕이시며, 십자가 위에서 자신을 사형에 처한 자들을 용서하신 왕이시다(마 9:13, 10:6, 18:12~24, 19:14; 막 2:16; 눅 11:12 등).
그러나 예수님은 또한 산 자와 죽은 자들의 심판관이기도 하다. 최후의 날, 그리스도는 의인과 악인을 나눈 다음, 의인들은 영원한 왕국에 사랑으로 맞아들일 것이나, 악인들은 영원한 지옥으로 떨어뜨릴 것이다(마 25:31~46).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나라보다 더 값진 것은 없다. 영혼에게 하나님의 나라는 값진 진주이며, 가진 모든 것을 다 팔아 얻어야 할 숨겨진 보물인 것이다

3.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한 조건과 그 실천사항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다(눅 7:50; 17:19; 18:42). 믿는 자는 회개(悔改)해야 하며(마 4:17; 막 1:15; 눅 5:32; 19:8~10), 복음을 믿고 세례(洗禮)를 받으며(막 16:16; 마 28:19~20), 계명(誡命)을 실천해야 하는(마 19:17) 외적 행위가 필요하다.
그러나 이것을 온전하게 실천하기 위해, 제자들에게 제시된 이상(理想)은, 하나님의 덕성(德性)에 가능한 한 더 가까이 가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들답게 처신해야 하며, 그래서 신적 덕성에 더욱 가까워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마 5:48).
이처럼 영혼이 온전한 이상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다음 본질적인 두 가지 조건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먼저, 피조물과 자신에 대한 포기이다. 그 다음, 이 포기를 통해 하나님과의 일치를 방해하는 모든 것에서 빠져 나오는 것이다. 그로 인하여 영혼은 사랑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면서 하나님께 완전히 자신을 드리게 된다.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눅 9:23).

1). 포기에는 여러 단계가 있다.

모든 사람은 선(善)의 행하는 일에 최대 장애물인 죄, 특히 피조물과 자기 자신에 대한 무질서한 사랑을 없애야 한다. 그래서 만일 오른 쪽 눈이 죄를 지으면, 서슴없이 그 눈을 뽑아 버려야 한다.
"만일 네 오른 눈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유익하며"(마 5:29)
이 여러 단계의 포기는 계명(誡命)과 권고(勸告) 사이의 구별에서 나타난다. 즉 생명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계명을 지키는 것으로 충분하다. 그러나 온전한 자가 되기 위해서는, 모든 재산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어야 한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선한 일을 내게 묻느냐 선한 이는 오직 한 분이시니라 네가 생명에 들어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마 19:17, 21)
온전한 포기는 십자가에 대한 사랑에까지 이른다. 우리는 십자가 자체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 처형되신 주님을 끝까지 따르기를 원하므로 십자가를 사랑한다. 그래서 참된 영혼은 십자가에서 자신의 행복을 찾는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마 5:3~12)

2) 그래서 영혼의 포기는 하나님과 이웃 사랑에 도달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 된다.

왜냐하면 사랑이 모든 법을 요약이기 때문이다.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마 22:40).
사랑은 우리에게 마음과 정신과 힘을 모두 하나님께 드리게한다.

"선생님 율법 중에서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마 22:36~40).
사랑은 모든 계명 가운데 가장 큰 계명이며 모든 온전함(완덕)의 요약이다.

① 하나님께 대한 사랑은 자녀다워야 한다. 이 사랑은 먼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를 찬양하게 한다.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마 6:9) .
② 이 사랑은 신뢰가 있어야 한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가 하늘의 새들과 들의 백합보다 자녀들을 더 잘 돌보시기 때문이다.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26~33).
이 신뢰는 기도를 통해서 나타난다. 그리스도의 약속에 의하면 우리가 간청하는 모든 것은 기도를 통해 얻을 수 있다.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마 7:7~8)
③ 이 사랑은 이웃에 대한 사랑을 낳는다. 우리는 모두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자녀이기 때문에 모두 형제들이다.
"그러나 너희는 랍비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선생은 하나요 너희는 다 형제니라"(마 23:8).
이와 같은 덕행들에 보다 효과적인 활력을 주기 위해, 주님은 최후의 심판날에 가장 보잘것없는 형제들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당신께 해 준 것이라고 말씀하신다(마 25:40).
주님은 당신의 지체(肢體)들과 동일화하시므로,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바로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라 하신다. 이 사랑은 원수를 사랑하기까지에 이른다. 원수를 사랑으로 감내(堪耐)해야 하며, 그를 위해 기도(祈禱)하고 선(善)을 실천해야 한다.(마 5:44)
이 사랑은 우리의 모범이신 주님께서 보여 주신 겸손과 온유를 동반한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서 배워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마 11:29)
그러므로 포기와 사랑,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와 온전함(완덕)을 얻기 위해 영혼이 획득해야 할 두 가지 본질적인 조건이다.

2. 사도 요한의 영성

복음사가 사도 요한의 글에서는 더 이상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다스림의 개념이, 인간을 지배한다거나 세상을 다스린다는 데 있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의 나라는 영성생활 안에 있음을 보여준다.
사도 요한은 우리에게 하나님과 육화(肉化)되신 말씀과 그리스도인의 내적 생활을 알게 한다.

1. 하나님은 생명이시다.

하나님은 빛이시고 사랑이시다. 하나님은 아버지이시며, 영원에서부터 말씀이신(요 1:1~5) 성자를 잉태(孕胎)하신다. 하나님은 성자와 함께 진리와 사랑의 성령이 나오는 원천이 되신다. 성령은 마지막 날까지 우리와 함께 머무시면서 우리를 교육시키고 힘을 주시면서, 육화된 말씀의 사명을 완성할 것이다(요 14:26, 15:26, 16:7~15).

2. 이 생명을 하나님께서는 사람들과 교통하신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독생자를 이 세상에 보내신다. 육화(肉化)되어 사람이 되신 성자는 당신의 생명을 우리에게 주시면서, 우리를 하나님의 양자(養子)가 되게 하신다(요 1:9~14).
신적 본성(本性)으로서 성부와 똑같은 예수님은 사람으로서 갖는 열등과 성부께 전적인 종속을 소리높이 선포하신다. 예수님은 당신 마음대로 판단하지도, 말하지도, 행동하지도 않으시고, 좋으신 성부의 뜻에 그의 모든 것을 일치시킨다. 그로 인하여 예수님은 성부께 당신 사랑을 증거하신다(요 5:19,30). 예수님은 성부의 영광과 인간의 구원을, 당신의 생명을 드리기까지 순종하신다(요 10:18).
우리에게 예수님은
① 우리 영혼을 밝혀 주시고, 생명으로 이끄시는 빛이시다(요 1:9, 8:12).
② 양때인 우리를 먹이시고, 약탈자인 늑대로부터 보호하시며, 당신의 양때인 우리를 위해 목숨을 주시는 선한 목자(牧者)이시다(요 10:11).
③ 예수님 없이는 아무도 성부께 갈 수 없는 필연적인 중재자(仲裁者)이시다(요 14:6).
④ 예수님은 포도나무이시며, 우리는 거기서 수액 또는 초자연적인 생명을 받는 가지이다(요 15:5~10).

3. 예수님으로부터 우리의 내적 생명이 흘러나온다.

우리의 생명은 하나님과 이루는 사랑의 관계를 통해 그분과 내적으로 하나가 된다(요 15:5~10). 왜냐하면 예수님은 우리를 성부께 이끄는 길이시기 때문이다(요 16:6).

1) 생명을 통해 하나님과 우리의 이 일치는 영적 탄생을 얻게 되는 세례로 시작된다.(요 3:3)

세례는 우리를 예수님과 일치시켜 준다. 이것은 마치 포도가지가 나무에 접목(接木)되듯이, 세례는 우리에게 구원의 열매를 맺게 해 준다(요 15:1~10).

2) 생명의 일치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우리 영혼을 양육하는 거룩한 몸으로 인해 성장된다.

우리는 거룩한 몸을 통해 예수님의 신성(神性)과 인성(人性)의 피로써, 그분의 생명을 살게 된다. 이것은 예수님이 성부를 위해 사시는 것처럼, 우리 또한 성부를 위해 살게 한다(요 6:55~59).

3) 생명의 일치는 예수님이 우리 안에 머무시는 것처럼, 우리 또한 예수님 안에 머물게 하는 영적 일치로 나타난다(요 6:57).

이 일치가 너무나 밀접하기에, 예수님은 이 일치를 당신이 성부와 이루시는 일치에 비교한다. "곧 내가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 같이 그들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요 17:23).

4. 생명의 일치는 우리로 하여금 신적 스승의 덕성에 참여하게 한다.

특히 성부와 이웃의 사랑을 위해 자신마저 바치시는 그분의 사랑에 참여하게 한다.

1)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당신 자식처럼 사랑하신다.

우리 또한 하나님을 아버지로 사랑한다.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분의 계명(誡命)을 지킨다(요 14:21). 그리고 성삼위께서는 지속적으로 우리 영혼 안에 오셔서 현존하신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요 14:23).
하나님은 사랑이시기에, 우리는 하나님을 참으로 사랑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먼저 사랑하시고, 우리를 위해 당신 독생자를 희생시키셨으므로(요일 4:19) 우리는 하나님을 더욱 열심히 사랑해야 한다.

2) 하나님 사랑에서 형제적 사랑이 흘러나온다.

우리는 우리 자신처럼 모든 형제를 사랑해야 될 뿐만 아니라, 예수님처럼 형제를 사랑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형제를 위해 나를 희생시킬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 13:34).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요일 3:16). 우리는 하나님이신 아버지와, 우리의 구원자이신 예수님과 함께 영적 가정을 이루어야 한다. 우리의 이 영적 일치는, 성삼위의 일치와 비교될 만큼 밀접해야 한다.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요 17:22).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면서 이웃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이것은 거짓말이다(요일 4:20~21). 형제적 사랑은 영원한 생명을 위한 가장 확실한 보증인 것이다(요일 4:12~17).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사도 요한을 사랑의 사도라 부른다. 더구나 사랑은 사도 요한 자신이 매우 열심히 실천했던 덕이다. 그러나 이 사랑은 믿음, 특히 그리스도의 거룩하심과 인성(人性)에 대한 신뢰에 그 기반을 둔다. 사랑은 또한 세 가지 탐욕에(육체의 탐욕, 눈의 탐욕, 교만) 대항한 싸움으로 언제나 고행을 전제로 한다.
이 때문에 사도 요한은, 공관복음과 사도 바울이 중요시하는 것보다 더 신적 사랑을 강조하지만, 결과적으로 그들은 서로 만난다.

3. 사도 바울의 영성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나라를 얻기 위해 다른 길을 통하지만 같은 결론에 도달한다. 사도 바울의 하나님 나라에 대한 중심 사상은, 더 이상 왕국의 도래(到來)를 뜻하지 않는다. 사도의 하나님 나라는 유다인이나 이방인이나 할 것 없이, 인류의 머리로 택하신 당신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모든 사람들을 구원하고 성화(聖化)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구상이다. 즉 사도의 사상에서 볼 때, 모든 사람은 그리스도와 한 몸(合體)되어야 한다.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또 만물을 그의 발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엡 1:3,7,22.)
그러므로 사도 바울이 말하는 영원 안에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당신 자녀로 택하시고, 또 우리를 성화시키고자 하신다. 여기에 한 장애물(障碍物)이 있는 데, 그것이 다름 아닌 원죄(原罪)이다. 인류의 첫 인간인 아담이 저지른 이 원죄는, 우리를 사로잡는 탐욕과 함께 그 후손들에게 물려지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불쌍히 여기신다.
하나님께서는 구원자(救援者)이시고, 속죄자(贖罪者)이신 당신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인간에게 보내신다. 그래서 그리스도는 인류의 새로운 머리가 되셔서, 십자가에 달려 죽기까지 순종하심으로써 우리를 구원하신다. 이로써 예수님은 우리 삶의 중심이시다.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빌 1:21)
예수님의 공로(功勞)와 성화작용(聖化作用)은 우리에게 세례와 성찬을 통해서 적용된다. 세례는 우리를 거듭나게 하고,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와 한 몸되게 한다. 그리고 세례는 우리를 성령의 활동과 인도 아래 끊임없이 옛 사람 또는 육과 싸워야 하는 새 사람이 되게 한다(롬 6:4; 엡 6:11~17).
성찬은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 그분의 덕과 내적 감성들에 더 많이 참여하게 한다(고전 10:14~22, 11:17~22). 그처럼 우리는 이 성찬의 열매를 받기 위해, 그리고 우리에게 전달되는 신적 생명을 가꾸기 위해 믿음의 삶을 살아야 한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롬 1:17)
올바른 관계는 하나님과 예수님께 신뢰를 두고, 하늘까지 우리를 동행할 뛰어난 사랑의 덕이다(고전 13:1~13). 그러나 우리는 이 세상에서 썩어 없어질 육체의 연단(고행)을 통해 사랑을 실천한다.
이 모든 고행(苦行)은 사도 바울 서신에 자주 되풀이되는 하나의 문장으로 요약된다.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니라"(골 3:10).

1. 먼저 옛 사람을 벗어 버려야 한다.

1) 육체라 불리는, 이 옛 사람은 바로 우리의 본성이다.
그러나 본성 그 자체가 옛 것이 아니고, 세 가지 탐욕(貪慾)을 통해 타락한 본성이다. 결과적으로 육체의 일은 거의 대부분이 죄들이다. 육체의 일에는 단지 육감과 음행의 죄 뿐만 아니라 다양한 형태의 교만이 있다(롬 8:1~16; 갈 5:16~25).

2) 우리는 두 가지 주된 이유 때문에, 고행하고 금욕해야 할 엄격한 의무를 갖는다.
① 죄와 단죄 받은 것에 대한 공감의 위험
육체와 그 욕망은 세례를 통해서 없어지지 않는다. 만일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에 힘입어 철저하게 육체의 욕망에 대항해서 싸우지 않는다면, 육체는 맹렬하게 우리를 악으로 이끌어 놓는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롬 7:24~25)
② 세례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묻히고, 새로운 생명으로 그분과 함께 살기 위해 우리는 죄를 피할 약속을 하고, 이로써 악마와 육에 반대하여 힘 있게 싸울 것을 약속한다.(롬 6:1~23)
삶은 곧 투쟁(鬪爭)이다. 이 투쟁에 내거는 것은, 사랑이시고 정의로우신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마련해 놓은 영광의 관이다.(고전 2:12, 9:25; 엡 6:11~17; 딤후 4:7; 딤전 6:12)

3) 이 투쟁에서 우리를 지탱하고, 우리의 약함과 무능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쉽게 승리를 돌려주는 것은, 그리스도를 통해 얻은 하나님의 은총이다.

만일 우리가 은총에 협력한다면, 우리의 승리는 확실할 것이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고전 10:13; 빌 4:13).

4) 옛 사람을 벗어버리는 고행 속에는 두 단계가 있다.

① 먼저 영벌(永罰)과 죄(大罪)를 피하기 위해 중요한 것들이 있다.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고전 9:27).
② 그러나 그 다음에는 철저한 무사무욕(無私無慾), 완전한 겸손, 정결 같은 온전함(완덕)에 필요한 것들이 있다(고전 7:25~34; 빌 2:5~11; 딤전 6:8). 또 다른 관점에서 사도 바울은 고행을 세 단계로 구분한다. 아직 말을 잘 듣지 않는 육체의 고행, 다음으로 일종의 영적인 죽음, 끝으로 육체의 묻힘이다.(갈 5:24; 골 3:3; 갈 3:27

2. 사람을 벗어버리고, 예수 그리스도께 한 몸 되어, 새 사람으로 거듭나야한다
.

이 새 사람은 세례(성령 세례)를 통해 다시 태어난 그리스도인이다. 이 새로운 인간은 성령과 일치하고, 그리스도와 한 몸되고, 은총의 활동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변화된다.
이러한 교의를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성령과 그리스도의 역할, 그리고 새로 태어난 영혼 안에서 자신의 역할을 바르게 인식해야 한다.

1) 성삼위께서는 의로운 영혼 안에 거주하시며, 그 영혼을 성전(聖殿)으로 삼으신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고전 3:17).

2) 성령께서는 영혼 안에서 작용하면서, 영혼을 도움의 은총으로 자극하고, 성부께 대한 자녀적 신뢰심을 갖도록 기도하게 하신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빌 2:13; 롬 8:15,26)

3) 그리스도는 신비체(神秘體)의 머리이시다.

우리는 그분의 지체(肢體)이며,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생명과 길을 제시해 주신다. 성령세례를 통해 우리는 그리스도와 한 몸되고, 믿음으로 구원 받았다. 구원 받은 자들은 성찬을 통하여 지체됨을 기념해야 한다.
하나님의 나라로 그리스도와 함께 오르기를 기다리는 동안, 우리는 희생제사와 부활을 기념하는 그리스도의 수난에 일치한다. 그래서 성찬은 하나님과 영적 일치로 연장된다. 우리는 영적 일치의 덕분으로 하루 종일 예수님의 생각과 정감과 의지를 우리 것으로 하게 된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빌 2:5; 갈 2:20).
그러므로 우리를 예수님으로부터 떼어놓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롬 8:35).

4) 여기서 우리는 우리의 머리이시고 삶의 주인이신, 그분 안에서 변화될 때까지 줄기차게 그분을 본받아야 한다.
우리의 완전한 이상(理想)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긴밀하게 일치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① 우리는 먼저 예수님의 겸손과 복종에서, 그분의 내적 자세를 본받아야 한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빌 2:5~11).
우리를 위해 희생하도록 그리스도를 충동한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는 본받아야 한다.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희생제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엡 5:2).
② 예수님은 외적으로도 절제와 육체적 고행, 악과 격정에 대한 겸손을 실천하신다. 그리하여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과 성령께 더욱 완전히 순종하게 하신다.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빌 4:5).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음에는 여러 단계가 있다.
우리는 먼저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데서 어린아이가 되어야 한다. 그 다음 우리는 자라서 완전한 인간이 된다.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엡 4:13).
우리는 완전히 그리스도로 변화된다.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빌 1:21; 갈 2:20).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권하노니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고전 4:16).
곧 사도 바울의 영성은 공관복음의 영성과 본질적으로는 다르지 않다. 옛 사람을 벗어버리는 것, 그것은 포기(抛棄)의 실천이다. 그리고 새 사람으로 갈아입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 일치하는 것이며,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께로 가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다
따라서 공관복음에 나오는 완덕은, 포기와 사랑과 관계된다. 또 사도 요한의 완덕은, 자기희생까지 따르는 사랑과 관여된다. 그리고 사도 바울의 완덕은,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새 사람으로 갈아입는, 그리스도와 하나 되는 사랑과 관계된다.
그러므로 근본적으로는 같은 교의(敎義)이지만, 이 사랑의 다양한 여러 모습은, 영혼의 다양한 부류들의 교육과 성격에 따라 잘 적용되어야 한다.
 2008.7.24.   고려수도원  박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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