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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사랑하셨나이까?

말라기 이장우 목사............... 조회 수 1848 추천 수 0 2009.06.18 07:5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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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말1:1-5 
설교자 : 이장우 목사 
참고 : 늘푸른교회 2007. 10. 31 

1 여호와께서 말라기로 이스라엘에게 말씀하신 경고라 2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너희를 사랑하였노라 하나 너희는 이르기를 주께서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나이까 하는도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에서는 야곱의 형이 아니냐 그러나 내가 야곱을 사랑하였고 3 에서는 미워하였으며 그의 산들을 황무케 하였고 그의 산업을 광야의 시랑에게 붙였느니라 4 에돔은 말하기를 우리가 무너뜨림을 당하였으나 황폐된 곳을 다시 쌓으리라 하거니와 나 만군의 여호와는 이르노라 그들은 쌓을찌라도 나는 헐리라 사람들이 그들을 일컬어 악한 지경이라 할 것이요 여호와의 영영한 진노를 받은 백성이라 할 것이며 5 너희는 목도하고 이르기를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 지경 밖에서 크시다 하리라.

1절입니다. 구약의 마지막 선지서 말라기입니다. 말라기의 뜻은 ‘나의 사자’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자인 말라기를 통하여 이스라엘에게 경고하신 것입니다. 왜 경고를 하신 것입니까? 첫째는 오늘 살펴볼 내용인데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사랑하였다고 하시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였는가 하고 항의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타락한 제사장들입니다. 셋째는 타락한 가정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드릴 십일조와 헌물을 도적질 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것이라고 하십니다.

2절을 봅니다. 오늘 살펴볼 내용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내가 너희를 사랑하였다고 하십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주께서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나이까, 하면서 대드는 것입니다. 도대체 어떤 방법으로 사랑하신 것이라는 말입니까? 우리의 형편을 보세요! 이렇게 어렵고 힘들게 사는데 이것이 과연 하나님이 사랑하신 내용이라는 말입니까? 학개와 스가랴 선지자를 통하여 약속하신 그 하나님의 영광은 어디로 가고 지금 이렇게 초라한 나라로 고생하게 만드셨는가 하는 항의인 것입니다.

학개 2:6-9절을 봅니다. “6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조금 있으면 내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육지를 진동시킬 것이요 7 또한 만국을 진동시킬 것이며 만국의 보배가 이르리니 내가 영광으로 이 전에 충만케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8 은도 내 것이요 금도 내 것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9 이 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내가 이곳에 평강을 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포로에서 돌아와서 성전 재건이 지연되었습니다. 여러 가지 방해도 있었지만 사람들은 하나님의 성전보다 자기들의 집짓기에 바빠서 미루어졌습니다. 그러다 다시 독려하여 성전이 재건되고 나서 선지자들이 이런 예언을 하였고 백성들은 이런 영광을 기대하면서 기다린 것입니다.

그런데 한해가 지나고 두해가 지나도 그런 조짐이 없는 것입니다. 십년을 기다리고 이십년을 기다려도 세계 만국의 보배가 하나님의 전으로 몰려오지 않는 것입니다. 오히려 살아가기가 더 힘이 들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약속도 믿을 수가 없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처음 성전재건 후에 감사와 감격으로 제사를 드리던 마음들이 시들해진 것입니다.

이렇게 제사를 드려본들 무슨 소용이 있는가 하면서 제사장들도 타락하고 백성들도 타락하여 간 것입니다. 그러니 눈먼 것, 저는 것, 병든 것으로 제사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멸시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제물을 드리지 못하도록 성전 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하십니다.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께서 말라기를 통하여 내가 너희를 사랑한다고 하십니다. 도대체 우리를 사랑하신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사랑하신다면 우리가 좋아하는 것을 주셔야지, 지금 고생중인데 사랑은 무슨 사랑을 하셨다는 말입니까? 이런 항의를 들으니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항의가 생각납니다. 애굽의 종살이에서 구원하셨다면, 그것도 하나님께서 사랑하셔서 구원하셨다면 어떻게 물도 없고 양식도 없는 곳으로 인도하는가 하는 불만입니다. 사랑하셔서 구원하셨다면 고생을 시키지 말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항의입니다.

신명기 7:6-8절을 봅니다. “6 너는 여호와 네 하나님의 성민이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지상 만민 중에서 너를 자기 기업의 백성으로 택하셨나니 7 여호와께서 너희를 기뻐하시고 너희를 택하심은 너희가 다른 민족보다 수효가 많은 연고가 아니라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적으니라 8 여호와께서 다만 너희를 사랑하심을 인하여, 또는 너희 열조에게 하신 맹세를 지키려 하심을 인하여 자기의 권능의 손으로 너희를 인도하여 내시되 너희를 그 종 되었던 집에서 애굽 왕 바로의 손에서 속량하셨나니

여기의 말씀을 보시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구원받을 자격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택입니다. 이것은 또한 하나님께서 그들의 조상과 언약한 자기 맹세를 이루기 위하심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이란 선택인 것입니다.

2절 중반에서 3절을 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리를 사랑하셨다고 하셨는데 어떻게 사랑하셨는지에 대한 항의성 질문에 하나님께 답변하는 내용입니다. 에서는 야곱의 형이지만 내가 야곱은 사랑하였고 에서는 미워하였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리브가가 쌍둥이를 잉태한 것입니다. 배가 아파서 하나님께 물어보니 두 민족이 네 태중에서 싸운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고 뱃속에 있을 때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선택이며 이 선택을 사랑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야곱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사랑하셨습니까? 야곱의 생애와 에서의 생애를 비교해보면 야곱이 형보다 훨씬 못난 자로 나옵니다. 교활하게 형과 아버지를 속이는 사람입니다. 자신의 야망을 위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모습을 보입니다. 그리고 고생도 에서보다 얼마나 많이 하는지 아내 얻기 위하여 14년 동안 외삼촌을 섬깁니다. 두 아내와 두 아내의 몸종을 또 아내로 맞아 네 명의 아내와 살았습니다.

얼마나 시달렸는지 보게 됩니다. 천사와 씨름하다가 환도뼈가 위골이 되어 평생 지팡이를 의지하고 살았습니다. 딸이 강간을 당하고 장남이 계모를 범하는 비참한 일도 경험했습니다. 노년에는 흉년이 들어 다른 나라에 이민을 가야하는 인생이었습니다. 바로 왕 앞에서 자신이 험악한 세월을 보냈다고 합니다.

이런 야곱의 생애를 드라마로 만들면 ‘이것이 인생이다’라는 프로그램의 그 어떤 내용보다 더 처절한 모습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과연 하나님의 사랑입니까? 야곱이 이스라엘로 이름이 바뀌면서 이 이름이 이스라엘의 민족의 이름이 되지만 이스라엘 역사를 보면 다윗과 솔로몬 시대에 조금 부강한 것을 빼면 얼마나 고생한 나라인지 모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도대체 하나님의 사랑이 무엇입니까?

어제 울산에 병문안을 다녀왔습니다. ‘십자가마을’ 게시판에 울산의 강 목사님이 뇌동맥 수술을 받고 입원중이라고 해서 집사람과 함께 문병을 갔습니다. 울산에서 복음을 전하시는 세 분의 목사님도 함께 병실에서 만났습니다. 입원한 목사님은 개척교회를 하시면서 교인이 없으니 생활비를 벌기 위하여 조그마한 야식업을 하셨습니다. 사모님은 만들고 목사님은 배달하고 그렇게 어렵게 사시다가 뇌동맥이 터지기 직전에 수술하였습니다. 병원장이 물었답니다. 보험은 들어둔 것이 있느냐고. 보험들 형편이 되지 못하여 들지 못하였다고 하니, 무엇 하시는 분이냐고 물어보더랍니다. 족발 판다고 하였답니다.

다른 세 분도 잠시 보자면 한 분은 교통사고로 장애를 입었는데 사고 나기 한 달 전에 몇 개 보험을 다 해약하였답니다. 만약 그 보험을 해약하지 않았다면 목돈이 마련되었을 것이고 주변의 이런 목사님들 만나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니 우리 인생 우리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니 주님 믿고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한 목사님은 학원에 봉고를 지입하여 운전을 합니다. 또 한 목사님은 사모님이 교사라서 형편이 좀 나은 분인데 이번에 아들이 중3이고 공부도 꽤나 합니다. 그 아이가 자립형사립고 원서를 넣고 싶다고 해서 무리가 되지만 그러라고 하였는데 시험 2주를 앞두고 친구들과 장난치다가 팔꿈치에 눈을 맞아 안구 뼈의 함몰로 수술을 해야 한다고 합니다.

이런 목사님을 하나님이 사랑하신다고 하면 세상의 사람들이 어떻게 말하겠습니까? 고개를 도리질 하고 돌아설 것입니다. 재수 없는 사람들이라고 할 것입니다. 저주 받은 사람들이라고 할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예수님을 믿는다고 살아왔는데 이런 형편이 되었을 때에 하나님께서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이런 말을 들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아니 하나님이 사랑하신다면서 이게 무슨 꼴입니까? 사랑한다는 것이 이런 것입니까? 그런 사랑 싫습니다, 그러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도대체 하나님의 사랑이 무엇이란 말입니까? 하나님의 언약을 따른 선택이 사랑입니다. 이 선택을 받은 야곱은 형보다 훨씬 고생을 많이 합니다. 하나님의 선택을 받지 못한 에서는 오히려 야곱보다 부강한 사람이었습니다. 야곱을 맞이하려고 에서가 데리고 온 사병이 400명입니다. 자기 집안에서 기른 사람인지 돈을 주고 사온 용병인지 몰라도 아브라함의 318명보다 더 많은 사람을 거느린 것입니다. 그리고 야곱의 선물을 거절할 정도로 자기도 넉넉하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도대체 하나님의 야곱 사랑이 무엇입니까?

야곱이 죽을 때에 자신의 해골을 아들이 출세한 애굽에 묻어달라고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의 땅에 묻어 달라고 한 것입니다. 그리고 죽기 전에 요셉의 두 아들을 축복하면서 손을 어긋나게 하여 축복합니다. 사람의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원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선택의 원리를 보여주면서 자기 자신이 하나님의 언약을 붙잡게 된 것이 하나님의 선택적인 사랑임을 온 몸으로 증거한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미워한 에서는 어떻게 됩니까? 3-5절입니다. 에서를 미워하셨다고 하는데 이 미워하심은 감정적인 미움이 아니라 선택하지 아니한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선택을 받지 아니한 자의 특징은 자기 힘으로 자기 왕국을 건설하는 것입니다. 물론 선택받은 자도 이런 노력을 다 합니다만 결국 선택받은 자는 하나님의 언약을 붙들게 되지만 선택을 받지 못한 자들은 계속하여 자기의 왕국을 건설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에서의 기업을 황무케 하면 그들은 다시 쌓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시 헐어버리겠다는 것입니다. 이 헐어버림을 통하여 사람들의 입에서 그 지경이 악한 지경이며 여호와의 영영한 진노를 받은 백성이라고 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오바댜 2-4절을 봅니다. “봉독” 이 심판의 말씀이 바로 에돔에 대한 것입니다. 에돔 즉 에서를 향한 하나님의 심판의 내용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의 힘과 능력을 믿는 자들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핍박하는 세력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들이 겉으로 보기에 아무리 힘 있고 강하다고 할지라도 결국은 망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말라기 선지자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에서가 망한 것을 보라는 것입니다. 말라기 선지자 당시에 에돔은 바벨론의 갈대아 군대에 의하여 거의 멸망한 상태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선택적인 사랑을 입은 너희는 에돔처럼 망해버릴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기 언약을 이루시기 위하여 경고를 보내시는 것이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사랑이 이스라엘 지경을 넘어선다는 말씀이 5절 말씀입니다. 로마서 9장에 보시면 이런 하나님의 언약을 따른 선택적인 사랑에 대하여 에서와 야곱을 들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런 선택적인 하나님의 사랑은 이스라엘의 경계를 넘어 이방인에게까지 미친다는 것이 로마서 9:24-25절에 증거하고 있습니다. 내 백성 아닌 자를 내 백성이라고, 사랑치 아니한 자를 사랑한 자라고 부를 것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있습니까? 내가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게 하는 것을 사랑이라고 여기십니까? 그러나 아이들이 원한다고 해서 부모가 다 해주는 부모는 아이를 사랑하는 부모가 아닙니다. 잠깐 괴로운 것이라도 자기 자식에게 좋은 것이라면 강제로라도 주는 것입니다. 하물며 하늘에 계신 천부께서 자기 택하신 자들에게 좋은 것을 주시지 않겠느냐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좋은 것은 성령입니다. 자기 언약을 따라 택하신 백성에서 주십니다. 성령이 임하게 되면 진짜 하나님의 사랑이 무엇인지를 알게 됩니다. 그 사랑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나타난 사랑입니다(롬5:8). 이것이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내어놓으신 최고의 사랑입니다. 이 사랑을 마다하고 다른 사랑 주지 않는다고 투정하는 이스라엘 백성이나 오늘 우리나 다를 바가 없습니다. 부디 이 사랑에 눈뜨게 하여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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