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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돌아왔은 즉

스가랴 옥성석 목사............... 조회 수 1746 추천 수 0 2009.06.18 21:37:36
.........
성경본문 : 슥1:7~17 
설교자 : 옥성석 목사 
참고 : 충정교회 
신약의 히브리서기자는 이렇게 말문을 열고 있습니다.
"옛적에 선지자들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히1:1~2)
여기에,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자신의 뜻을 드러내시는 방법의 다양함을 뜻합니다.
구약시대에 하나님은 사람의 모양, 꿈, 천사, 우림과 둠밈(신33:8), 사건, 현현 등의 여러가지 방법들을 통해서 자신의 뜻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러나 신약시대에 와서는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렇다고 해서 구약시대의 방법을 전혀 사용하지 않을까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그후에 내가 내 신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욜2:28)
장래일, 꿈, 이상은 이것을 통해 하나님이 당신의 뜻을 우리에게 보여주신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그 후'를 베드로사도는 '말세'(행2:17)로 이해했습니다.
즉 마지막 시대에는 하나님께서 훨씬 다양한 방법으로 자신을 드러내신다는 것입니다.
물론 말씀이 하나님을 나타내는 최고의 방법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벧전 1:24~25)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말씀과 함께 다양한 방법으로 당신의 뜻을 드러내시기를 기뻐하십니다.
그런데 이 하나님에 대해서는 귀를 막아버린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하는 우(愚)를 범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사람, 사건, 꿈, 환상, 환경을 통해서도 역사하십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영적으로 민감해야 합니다.
영적민감성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게 되어 있습니다. 성령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올바르게 발견하며, 깨닫도록 도와줍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그 어떤 일들도 그냥 지나쳐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 나와 물어보아야 합니다. 스가랴 선지자처럼 말입니다.

스가랴 선지자는 하룻밤에 무려 여덟가지나 되는 환상을 보게 됩니다.
① 홍마를 탄 자에 대한 환상
② 네 뿔의 환상
③ 척량줄의 환상
④ 여호수아에 대한 환상
⑤ 순금등대의 환상
⑥ 날아가는 두루마리 환상
⑦ 여인의 환상
⑧ 네 병거에 대한 환상 등입니다.(슥1:7~6:8).

그런데 환상을 볼 때마다 스가랴 선지자는 어떻게 하고 있나요?
'내가 보니'(8절) 스가랴 선지자가 환상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본 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질문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이것이 무슨 뜻입니까?" 자신이 본 환상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하나님 앞에 가지고 나와 질문을 던집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 환상에 대한 설명을 해 주십니다.

8가지 환상에 대해서 거의 공식처럼 이런 패턴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좀 더 구체적으로 그가 언제 이런 환상을 보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7절에 보면 "다리오왕 이년 십일월 곧 스밧월 이십사일에"라고 나타나 있습니다.
다리오왕 이년은 모든 것이 황폐된 때를 의미합니다.
아무런 소망과 희망을 가질 수 없는 상황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보다 더 어이없는 상황이 펼쳐집니다.

11절입니다. "우리가 땅에 두루 다녀보니, 온 땅이 평안하여 정온(靜穩)하더이다" 이 말을 잘 이해해야 합니다.
이 말은 온 세상이 안정되어 이어, 평안하다는 뜻이 결코 아닙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있어서 온 땅이 잠잠하다'는 뜻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아무 일도 하지 않으신다는 뜻입니다. 지금 자기 백성들은 낙심에 빠져있습니다. 재기할 의욕을 잃어버린 채, 주저앉아 있습니다.
불의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계십니다. 잠잠하십니다.
바로 이것이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을 심하게 낙심시킨 중요한 요인이었습니다.

하박국도 이런 상황에서 부르짖은 적이 있습니다.
'주께서는 눈이 정결하시므로 악을 차마 보지 못하시며 패역을 차마 보지 못하시거늘 어찌하여 궤휼한 자들을 방관하시며 악인이 자기보다 의로운 사람을 삼키되 잠잠하시나이까'(합1:13) 바로 이때 하나님은 스가랴 선지자에게 환상을 보여 주셨습니다.

'내가 밤에 보니 사람이 홍마를 타고 골짜기 속 화석류나무 사이에 섰고...'(슥1:8) 스가랴는 '밤'이라는 상징적인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밤은 언제나 어두움, 절망, 낙심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절망적인 상황에서 스가랴는 홍마를 탄 한 사람이 골짜기 속 화석류나무 사이에 서 있는 환상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여기 등장하는 홍마를 탄 사람은 과연 누구일까요? '그들이 화석류 나무 사이에 선 여호와의 사자에게 고하되 우리가 땅에 두루 다녀보니 온 땅이 평안하여 정온하더이다'(슥1:11)

여기에서 우리는 홍마를 탄 사람(1:8)과 여호와의 사자(1:11)는 동일한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호와의 사자는 누구인가요? 삼손의 아버지 마노아가 '여호와의 사자'에게 번제를 드렸습니다. (삿3:15~20)

그러자 그 번제를 여호와의 사자가 받습니다. 번제는 오직 하나님만 받으시는 것입니다. (삿13:18~20)
그렇다면 여호와의 사자는 하나님 자신을 의미합니다. 더 나아가 제사를 받은 '여호와의 사자'는 자신의 이름을 '기묘'라고 밝히고 있습니다.(삿13:18)

기묘란 이름은 두말할 필요 없이 오실 메시야의 이름이었습니다.(사9:6)
이렇게 볼 때 홍마를 탄 사람은 구약에 나타나신 예수 그리스도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지금 어디에 서 계시나요? 화석류나무 사이의 골짜기에 서 계십니다.
여기에 화석류나무는 영적으로 깊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히브리 사람들은 화석류나무를 '하닷사'라고 부르는데, 이 명칭은 에스더와 관련이 있습니다. 에스더란 이름을 히브리식으로 표현하면 하닷사입니다.
그러니까 에스더란 이름은 아주 흔하고 평범한 이름입니다.
동시에 이 나무는 주로 평민들이 초막을 지을 때 사용하는 주재료입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이 나무는 낮은 골짜기 속에서 자라는 특징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화석류나무 사이의 골짜기는 어디일까요? 지금 예루살렘의 상태, 이스라엘이 처한 어려운 상황을 뜻합니다.
그리고 평범한 사람들이 당하고 있는 시련의 현장을 뜻합니다.
'하닷사' 즉 평범한 사람들이 어둡고, 침침한 시련의 골짜기에서 더 이상 소망을 가질 수 없다고 생각하는 바로 그곳에 함께 하시는 분이 계십니다.
그분이 바로 우리 주님이십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은혜가 나타났을까요?

슥 1:16절에 보면 '내가 돌아왔은 즉'이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리고 돌아오게 된 동기를 설명하시면서 '긍휼히 여기므로'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돌아왔다는 뜻이 아닙니다. 실제로 앞부분을 자세히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회개하고 돌아온 흔적을 발견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저들을 긍휼히 여기므로 돌아오셨습니다.
슥1:8에서는 제 이위 하나님을 '홍마'를 타신 분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말은 언제나 원수를 굴복시키는 전쟁 혹은 승리를 상징합니다.
그분이 화석류나무 골짜기에서 '여호와의 사자가 응하여 가로되 만군의 여호와여 여호와께서 언제까지 예루살렘과 유다 성읍들을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시려나이까 이를 노하신지 칠십년이 되었나이다 하매'(슥1:12)
중보의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이 기도를 들으시고, 하나님이 저들을 긍휼히 여기시사 돌아오시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축복하십니다.

'다시 외쳐 이르기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성읍들이 넘치도록 다시 풍부 할 것이라 여호와가 다시 시온을 안위하며 다시 예루살렘을 택하리라 하셨다 하라'(슥1:17)
여기에 '다시'라는 단어가 강조되는 것을 놓칠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이 17절의 약속을 한 단어로 정리한다면 '회복'입니다.
하나님이 회복시켜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다리오왕 이년, 그것도 밤'과 같은 환경에 던져져 있는 분들이 있습니까?
주께서 환상을 보여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때가 어두우면 어두울 수록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환상 곧 비전입니다.
어두울수록, 고통스러울수록, 삶이 절망과 시련으로 이어질수록, 우리에게 제일 필요한 것은 비전을 갖는 일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비전이라는 것이 원한다고 해서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데 있습니다.
비전은 보이는 것입니다. 비전은 하나님께서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비전을 보는 자들에게는 하나님께서 '다시'의 은혜를 허락해 주실것입니다./ 옥성석 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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