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글모든게시글모음 인기글(7일간 조회수높은순서)
m-5.jpg
현재접속자

명설교 모음

택스트 설교

설교자'가 확실한 설교만 올릴 수 있습니다.

여호와의 날을 선포한 선지자 스바냐

스바냐 한태완............... 조회 수 3723 추천 수 0 2009.06.18 22:04:35
.........
성경본문 : 습1:1-13 
설교자 : 한태완 목사 
참고 : http://je333.com 
오늘은 여호와의 날을 선포한 왕족 출신의 선지자 스바냐의 생애를 통해 교훈을 얻고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스바냐라는 이름의 뜻은 '여호와가 그를 감추셨다' 또는 '하나님이 숨기시다'라는 의미입니다. 스바냐는 12 소선지 중의 한 사람이요, 스바냐서의 저자이고, 히스기야 현손으로 왕족 출신입니다. 선지자 스바냐는 남쪽 유다 나라의 요시아 왕 시대에 활동하였습니다. 그는 요시아 왕을 도와서 선한 정치를 하게 하는 동시에 또 종교개혁을 하게 하였습니다. 요시아 왕은 유대나라 15대 왕 아몬의 아들로 8세에 왕위에 올랐습니다. (왕하21:26) 그는 나이 비록 어렸으나 경건한 믿음으로 국민들의 존경을 받았고(왕하22:2), 16세 때에는 전국에 가득한 산당과 아세라 목상과 우상을 파괴하여 제거하고(대하34:3), 예루살렘의 성전증수(보수공사)에 착수하였습니다. 성전 중수 공사 진행 중에 잃었던 율법서를 발견하고 제사장 힐기야가 이를 낭독하니 요시아 왕과 백성들이 크게 감동함을 입고 신앙이 부흥되였습니다. 이에 요시아 왕이 율법에 명령한 대로 행하기를 결심하고 백성들을 모아서 같이 맹세하였습니다.(대하34:29-31) 이렇게 요시아 왕의 종교 개혁은 진행되었으나 오랫 동안 우상숭배에 습관이 된 백성들은 또다시 우상숭배로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이것을 본 스바냐는 아무래도 이 백성들 위에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고 심판이 있기 전에는 해결되지 아니할 것을 즉감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닥쳐오는 '심판의 날'을 힘을 다하여 외쳤습니다. 스바냐가 가장 강조한 메시지는 '여호와의 날'입니다. 여호와의 날에는 모든 사람 위에 하나님의 진노가 임한다고 했습니다.(습1:2-3) 이 심판에는 유대에 있는 악한 자들은 물론 이방인들까지 포함됩니다. 따라서 이 날은 희생의 날이요, 분노의 날, 고통의 날, 황무와 파괴의 날, 캄캄한 어둠의 날, 구름과 흑암의 날, 온 땅이 불에 삼키우는 날이 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습1:14-18)
왜 하나님은 이들을 심판하시는가? 근본적인 이유를 거짓된 예배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무시하고 그의 존재를 인정치 않는 것을 스바냐는 지적합니다. 심지어 하나님의 백성들이 예루살렘에서 이방신을 섬기고, 하나님을 저버렸던 것입니다. 그들은 말하기를 하나님은 복도, 화도 내리시지 않는 다고 불신했던 것입니다.(습1:12). 더욱이 당시 유다의 지도자들은 부패와 악정과 거짓을 거듭 자행하고 있었습니다.(습3:1-8)
어쩌면 오늘의 우리나라와 너무도 흡사한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스바냐가 강조한 보다 중요한 것은 회개의 권면에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심판보다는 구원을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스바냐는 회개를 권면하면서 구체적으로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며 공의와 겸손을 구하라"고 경고합니다. 또한 스바냐는 블레셋, 모압, 암몬, 에디오피아, 앗수르 다섯 나라를 향하여 교만과 주의 백성들을 괴롭히는 못된 행습에 대해 경고합니다. 이 예언은 느브갓네살의 정복과 함께 성취된 것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서 알고 있습니다. 또한 그 당시 유대인들은 예배장소를 예루살렘이라고 했고, 사마리아 인들은 그리심산 이라고 했었지만 스바냐는 예배장소는 어느 한정된 곳이 아니라 하나님이 계신 곳이면 어디서나 드릴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스바냐는 구원의 약속, 즉 이스라엘의 회복을 언급했습니다.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희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시라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습3:17)
결론적으로 스바냐는 여호와의 날에 있을 백성들의 우상숭배에 따른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예언하지만 회개를 통한 참된 예배와 기쁨, 복으로 구원하실 것을 말하였습니다.
스바냐는 예루살렘이 멸망하기 전에 활동한 선지자로서, 이 시기는 예레미아가 활동하던 시기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스바냐는 요시아 왕 때까지만 사역하였고, 예레미아는 요시아 왕 사후에도 사역이 계속된다는 점이 다릅니다. 스바냐 선지자는 왕족으로 당시 지도자들을 혹독하게 책망한 것으로 보아(습3:3-6), 상당한 지위에 있었던 것으로 추측됩니다. 그의 예언은 직선적이고도 단호한 어법으로, 생동감 넘치는 언어로 구사되고 있습니다.
오늘은 스바냐 선지자에 대해 좀 더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시대적 배경
스바냐는 B.C. 630- 625년 경, 남유다 제 16대 왕 요시야의 통치(B.C. 640- 609년) 때에 주로 활동한 선지자입니다. 당시 근동의 패권국인 앗수르는 신바벨론 제국(B.C. 625- 539년)의 등장과 함께 그 세력이 급격히 쇠퇴해져 가넏 때였습니다. 이 때에 요시야는 대외적으로는 선왕들이 친 앗수르 정책을 폈던 것과는 달리 강력한 반 앗수르 정책을 폈습니다. 그리고 대내적으로는 대대적인 종교개혁을 단행하여 이스라엘 민족의 자주성을 회복하는 데 크게 주력하였습니다. 이러한 때에 스바냐는 요시야가 종교개혁을 본격적으로 개시하기에 앞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악에 대한 책망과 열방에 대한 여호와의 심판을 예언함으로써 그의 종교개혁에 박차를 가하였던 것입니다.

2. 성품
1) 왕족임에도 불구하고 왕과 종교 지도자들을 위시하여 일반 백성들의 사회적 부패와 종교적 타락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한 것으로 보아 불의에 대해 단호하고 사리 판단이 분명한 사람입니다.(습1:4- 13)
2) 여호와의 날에 대한 그의 메시지가 매우 힘있고 선명한 것을 보아 하나님의 공의에 대해 강한 확신을 소유한 매우 강직한 성품의 소유자입니다.(습1:14- 18)
3) 여호와의 날의 심판 예언이 흡사 죽은 자를 위해 부르는 진혼곡이나 장엄한 장송곡과도 같은 만가체(挽歌體) 운율을 갖추고 있으며, 이외에도 매우 아름다운 문장들을 많이 사용한 것들을 볼 때 문학적 재능이 탁월한 사람입니다.(습1:12, 17, 습2:4, 습3: 11- 13)

3. 구속사적 지위
1) '여호와의 날'의 심판 예언을 통해 의인과 악인이 종말에 맞이할 운명의 대조적인 모습을 매우 선명하게 예언한 선지자
2) 백성들의 죄악과 도덕적 결함에 대한 신랄한 비판으로 요시야 왕의 종교 개혁 운동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사람(습1: 2-3, 대하 34:3- 8)

4. 스바냐의 메시지
스바냐는 어느 예언자 보다도 긴 계보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대개 아버지 밖에 소개하지 않고 있는데 스바냐는 4대조까지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보면 그는 명문가의 출신입니다. 그는 히스기야왕의 현손인 것이 거의 틀림없습니다. 스바냐는 유다왕 요시야때에 활동한 예언자인데(습1:1) 요시야왕의 부흥기 조금 전에 스바냐서의 말씀들을 외친 것 같습니다.
스바냐서의 제목은 ‘츠판야’인데 ‘여호와가 그를 감추셨다’는 뜻입니다. 스바냐는 여호와의 날에 임할 심판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메시지는 첫째로 하나님 심판의 확실성, 둘째는 남은 자들이 보호를 받게 되며 돌아와 하나님을 섬기게 될 것이란 예언이며 3장으로 되어 있습니다. 먼저 하나님의 심판의 확실성에 대해서 아주 분명하게 언급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지면에서 모든 것을 진멸하리라…공중의 새와 바다의 고기와 거치게 하는 것(남을 넘어뜨리는 자들)과 악인들을 아울러 진멸할 것이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1:2∼3). 여기서 주목할 말은 ‘여호와의 날’이란 단어입니다. 이 말을 가장 먼저 쓴 예언자는 아모스입니다. 아모스는 여호와의 날의 성격에 대해서 “화있을진저 여호와의 날을 사모하는 자여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날을 사모하느뇨?그날은 어두움이요 빛이 아니라”(암 5:18)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날은 하나님을 배역한 자들에게는 심판의 날을 의미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또 한편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들에게는 회복과 구원의 날이라고 했습니다. 따라서 여호와의 날은 심판과 구원의 이중적 성격을 가집니다. 그러면 여호와의 날은 긴가? 짧은가? 여기에 대해서는 두 가지 견해가 있습니다. 하늘과 땅을 정결케 하며 온 인류를 위한 영원한 상태를 준비해야 하기 때문에 길다고 보는 견해와 심판을 위해서 갑자기 임하는 짧은 기간으로 보는 견해가 있습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여호와의 날이 우리가 흔히 말하는 종말의 때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란 점입니다. 왜냐하면 1장 14절에 “여호와의 날이 가깝도다 가깝고도 심히 빠르도다”고 한 것은 바벨론의 심판과 이스라엘의 회복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3장 9∼20절에서는 여호와의 날에 임할 구원을 선포합니다. 특별히 17절은 복음송에 나오는 유명한 구절입니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시라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마지막 후반부에서는 스바냐 선지자의 메시지가 갑자기 변합니다. 즉 "여호와의 날"은 기쁨의 날이 될 것이라는 예언입니다. 그것은 진노의 날에 전능자이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남은 자"를 남겨 자신의 의로운 백성들을 구원하시기 때문입니다. 결국 세상의 심판과 종말이란 하나님을 믿는 자에게는 더할 나위없는 기뿜이 됩니다. 왜냐하면 그날이 원수들에게는 심판의 날이 되지만, 믿는 자에게는 구원의 날이 되기 때문입니다.

스바냐를 통해 우리가 배울 교훈이 무엇인가를 살펴보겠습니다.
1. 스바냐는 하나님을 배역하는 유다 백성들에게 멸망의 심판을 예언하여 경고하였습니다. 그가 쓴 스바냐서는 전반적으로 임박한 주의 날에 대하여 경고하는 격렬하고 냉엄한 책입니다.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이 하나님의 성소인 예루살렘에서 이방신을 섬기며 하나님을 저버리고, 불신앙에 빠졌으며 유다의 지도자들은 부패와 악정과 거짓을 거듭 자행하므로 하나님은 이들에 대해 분노를 쏟으실 수 밖에 없으므로 너희들은 회개하라고 촉구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끝내 돌이키지 않으므로서 결국 심판을 받고 말았습니다. 곧 B.C. 586년 예루살렘 멸망입니다. 오늘날도 사람들이 악을 행하고도 회개하지 않으면 이처럼 멸망당하고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2. 그러나 스바냐 선지자는 스바냐서 끝부분에서 '여호와의 날'이 기쁨의 날이 될 것이라고 예언하였습니다. 이것은 세상의 심판과 종말이 악인과 원수들에게는 심판의 날이 되겠지만, 하나님을 믿는 자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기쁨이 됩니다. 왜냐하면 그날은 예수님이 재림하는 날로서 믿는 자에게는 구원의 날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날은 하나님의 궁극적인 약속의 성취와 우리의 영원한 생명과 구원이 선포되는 소망의 날인 것입니다.
3. 요시야 왕이 종교개혁 운동을 일으킨 것은 스바냐의 활동에 힘입은 것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성들이 죄악을 버리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징계를 받고 만 것(왕하22:1-25, 30)은 우리들에게 크나큰 경고가 됩니다.
4. 스바냐는 모든 피조물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의 날로서 "여호와의 날" 도래를 선포하고 있습니다. 이 날은 궁극적으로 세상 끝날에 세계 만민에게 시행될 최후 심판의 날을 예언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이 최후 심판의 날에 영원한 멸망에 이를 악인의 삶을 살고 있는가 아니면 영원한 구원과 축복을 받을 의인의 삶을 살고 있는가를 두려운 마음으로 돌아볼 일입니다.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무엇보다도 열심으로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벧전4;7-8)
5, 남유다 전 지역에 걸쳐 사회, 경제, 종교 전반적인 부패함이 퍼져 있던 때 왕족 출신의 스바냐는 안일하게 그 사태를 방관한 것이 아니라 분연히 떨치고 일어나 먼저 왕국 주변의 사람들의 부패와 종교 지도자들의 범죄함부터 날카롭게 비판하였으며, 범국민적인 각성과 회개를 촉구하였습니다. 이는 부정 부패와 타락과 향락의 일변도로 치닫는 오늘의 이 사회 속에서 성도된 우리가 행해야 할 마땅한 본분이 무엇인지를 다시 한번 깨닫게 합니다.(습2:1-3)
6. 스바냐는 패역한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심판 예언을 준엄하게 선포하면서도 동시에 하나님께서는 한 번 택한 백성을 결코 영원히 버리지 아니하시며 징계 중에도 반드시 회복시키실 것이라는 사실도 확신 중에 선포하였습니다. 이는 실로 현재 시험으로 고난받는 중에 있는 성도들에게 참 위로와 소망이 되는 말씀인 바 우리는 이 사실을 항상 명심하며, 또한 고난받는 형제들에게 이 위로의 메시지를 힘써 전하여야 할 것입니다.
"여호와의 규례를 지키는 세상의 모든 겸손한 자들아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며 공의와 겸손을 구하라 너희가 혹시 여호와의 분노의 날에 숨김을 얻으리라"(습2:3)

악인 중에는 당대에 재앙을 받아 죄 값을 치르는 사람도 있지만, 죽을 때까지 형통하고 잘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의 삶이 끝나는 날 그가 평생 누렸던 것들은 더 이상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고, 빈손으로 죽음을 맞게 됩니다. 그 죽음 후에는 하나님의 심판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악의 실체는 반드시 드러나게 됩니다. 그러므로 역사 속에서 우리의 삶을 주관하시는 공의로우신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늘 하나님의 시선이 우리를 향하고 있다는 단순하고도 투명한 진리 앞에 우리는 두려워할 줄 아는 지혜와 슬기를 가져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주의 재림은 반드시 있지만 그 때와 그날은 모릅니다. 그러나 이제 지구의 종말은 처음 믿을 때보다 훨씬 가까와졌습니다. 솔로몬은 "천하에 범사가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이 이룰 때가 있나니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다"(전3:1,2)고 하였습니다. 이제 우리는 회개하여 세상 향락을 멀리하고 주의 재림의 날을 고대하며 늘 깨어 있어서 주님께서 명령하신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종말을 외치며 불안에 떨지만 우리는 임박한 주님의 재림을 기다려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 서실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그 날이 다가옵니다. 그날을 대비하는 삶의 지혜를 소유하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 기도: 하나님 아버지, 여호와의 날을 선포한 스바냐 처럼 말세에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게 해주심을 감사드립니다. 확실히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운 것을 피부로 느끼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주여, 열심으로 사랑하고 서로 대접하고 원망 없이 대접하고 또한 서로 봉사하는 그런 생으로 보다 더 높은 의미의 생을 이제는 살아가게 하여주시옵소서. 현실에 급급하거나 안주하지 않고 천국의 소망을 품고 오늘을 종말로 살아가는 산 믿음의 신앙인이 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한태완 목사(하나교회, 태릉고등학교 교사)

* 2부: 분반(구역)공부 자료

1. 말씀: 말세의 징조

1979년부터 1982년까지 4년간의 마술서적 판매고는 배로 증가 되었습니다. 그런 종류의 책만도 800가지가 넘었다고 합니다. 다블 데이의 새 책이라는 마술 클럽은 2년 동안에 100,000의 회원을 갖게 되었습니다. 가장 판매고가 높은 서점의 하나는 샌프란시스코에서 한 달에 12,000달러치를 팔고 있는 메타피지컬 센터입니다. ‘귀신 쫓는 사람’이란 필름은 년간 7천만 달러의 수입을 올리고 있고, 같은 제목으로 출판된 책은 1천 만부를 발행했다고 합니다. 또 큰 대학이나 종합대학교에서는 마술과목의 학점을 부여하고 있다고 합니다. 말세의 징조의 하나입니다.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딤후4:3)

2. 묵상 및 토의
0 스바냐는 어떤 사람이었는지 이야기 해 보세요
0 나는 스바냐의 어떤 면을 닮고 싶은지 이야기 해보세요.
0 스바냐는 하나님의 말씀 선포에 최선을 다한 사람이었습니다. 최근 나는 복음 전파에 힘쓰고 있습니까?
0 성도가 갖추어야 할 덕목을 이야기 해 보세요
0 예수님이 그리스도 되심을 믿습니까?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에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것을 믿습니까?
0 마지막 날에 우리가 준비할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0 마지막 때에 사람들은 무엇을 선호하고 사랑하는 가를 말해 보세요.
0 오늘 말씀을 통해 내가 느낀 점이나 앞으로의 나의 결심, 각오, 다짐 등을 이야기 해보세요

3. 예화(1) : 위기 앞에서 사는 길

스바냐 선지자 당시는 돌이켜도 재앙을 피할 수 없을 정도로 때가 늦었습니다. 스바냐는 그래도 아직 시간이 있을 때, 그동안 실천하지 않았던 말씀을 실천하라고 합니다. 선지자가 약속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예루살렘은 파괴되겠지만 사람들은 덜 죽는다는 것입니다. 적군에게 끌려가기는 하겠지만 보호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위기가 다가오고 있을 때 살아남으려면 지금까지의 태도를 완전히 바꿔야 합니다. 혹시라도 하나님이 다시 기회를 주신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기회를 주시지 못할 정도로 때가 늦어서 재앙이 닥친다 할지라도 특별한 보호를 받게 될 것입니다. 위기에서 우리를 살리는 것은 예루살렘이 아닙니다. 성전 건물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확신도 아닙니다. 오직 말씀을 실천하는 것만이 위기의 순간에 조금이라도 은혜를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위기 앞에서 사랑을 실천하면 위기를 피할 수 있습니까? 그것은 우리에게 달린 문제가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께 달린 문제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빨리 돌이키면 돌이킬수록 좋다는 것입니다. 부패가 더 진행되기 전에 빨리 태도를 바꾸면 다시 한 번 기회를 얻을 수 있으며, 설사 기회를 얻지 못하고 위기를 맞이한다고 해도 특별한 긍휼을 얻을 수 있습니다.

* 예화(2): 폭풍우가 오고 있다!

나는 몇 년 전 플로리다에서 험악하게 보이는 캄캄한 하늘을 바라보면서 세차게 윙윙 불어대는 바람이 사납게 부딪히는 항만의 물결 위로 억수같이 내리는 비를 몰아오는 것을 보고 있었습니다. 태풍이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하루 종일 라디오와 텔레비전에서는 임박한 태풍이 몰고 올 파괴적인 세찬 바람과 높은 파도에 어떻게 대비할 것인가에 대한 긴급 대처요령을 계속 방송하고 있었습니다. 주민들이 극도로 흥분하여 폭풍에 대비하고 있을 때, 나는 “왜 사람들은.. 기상대의 경고는 그렇게 심각하게 들으면서도 하나님의 경고는 고집스럽게 안 들으려고 할까?” 하고 자문해보았습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은.. 이 세상에 보다 더 큰 재난이 닥칠 것이라고 우리들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성경은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베드로후서 3:10)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무시무시한 그 날이 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심판을 피하는 확실한 길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그 분이 주시는 평강을 누리고 천국에서 주님과 함께 영생을 누릴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됩니다. 준비가 되셨습니까? 그렇지 않다면.. 오늘 주 예수님을 당신의 구주로 영접하십시오.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 이렇게 말씀합니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성경에 이르되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저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로마서10장9절~13절 말씀)

* 예화(3): 깨어 있으라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일단 심각한 죄에 빠지고 나면 얼마 동안은 모든 일에 조심하게 된다. 그러나 곧 긴장을 풀게 되고, 점점 나태해지다가 나중에 처음 상태보다 더 안일한 상황에 이르게 된다. 도둑을 맞은 지 얼마 안되는 상점 주인은 문단속을 철저히 하고 늦게까지 잠자지 않고 지킨다. 그러나 시간이 감에 따라 경계태세를 늦추게 되고 더 이상 신경을 쓰지 않게 된다. 요세푸스에 의하면 노아의 아들들은 홍수 이후 낮은 땅에 집 짓고 살기를 두려워했다고 한다. 혹시나 집이 물에 잠기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이다. 그러나 오랜 시간이 흘러도 홍수가 더 이상 없자 서서히 평야지대로 내려왔고, 홍수와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도 어느새 사라지게 되었다. 그리하여 급기야 하나님께 대항하여 바벨탑을 쌓기에 이르렀다.(창11:2-4)
하나님의 징계는 인간에게 강한 영향력을 발휘하여 한동안은 죄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게 한다. 그러나 먹구름이나 폭풍 대신 맑은 날씨만 계속되면 이전의 사악한 심성이 차츰 고개 들게 되고 대담해진다. 당신이 진정으로 그리스도의 군사가 되길 원한다면 긴장을 풀지 말고 늘 깨어 있도록 하라. 게으른 여행자처럼 길가에 한가로이 누워 뒹굴지 말고 목적지에 다다를 때까지 시간을 아껴 열심히 전진하라. 당신 또한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할 때까지 깨어 있어 본분을 다함으로써 구원을 이루어 나아가라.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말고 오직 깨어 근신할지라"(살전5:6)

4. 찬송: (168장) 하나님의 나팔소리

1. 하나님의 나팔소리 천지 진동할 때에 예수 영광중에 구름 타시고 천사들을 세계만국 모든 곳에 보내어 구원 얻은 성도들을 모으리
2. 무덤속에 잠자던 자 그때 다시 일어나 영화로운 부활승리 얻으리 주의 택한 모든 성도 구름 타고 올라가 공중에서 주의 얼굴 뵈오리
3. 주님 다시 오실날을 우리 알수 없으니 항상 기도하고 깨어 있어서 기쁨으로 보좌 앞에 우리 나가서도록 그때까지 참고 기다리겠네

[후렴]
나팔불 때 나의 이름 나팔불 때 나의 이름 나팔불 때 나의 이름 부를때에 잔치 참여하겠네

5. 종말에 관한 성경연구

가. 종말의 의미
1) 세상 끝(마24:3)
2) 모든 날의 마지막(히1:2)
3) 심판의 날(벧후3:7)

나. 역사적 종말에 대한 다양한 묘사
1) 말세(벧전1:5)
2) 정한 때의 끝(단8:17)
3) 마지막 때(단11:35, 유1:18)
4) 말일(호3:5)
5) 심판과 멸망의 날(벧후3:7)
6) 모든 날의 마지막(히1:2)
7) 구원의 날(고후6:2)
8) 세상 끝(마24:3)
9) 끝(마24:6)
10) 종말(단9:27)

다. 역사적 종말의 전개 순서
1) 복음의 세계 전파(마24:14)
2) 천년왕국(계20:6)
3) 대배교 및 대환난(마24:9-12, 계13:6-8)
4) 적그리스도의 출현(살후2:3,4, 요일2:18, 계12:7, 계13:5-7)
5) 아마겟돈 전쟁(계16:14, 계20:7-9)
6) 현 세속 문명의 붕괴(계16:17-18:24)
7) 그리스도의 재림(살후1:7, 계19:11-16)
8) 현 우주의 붕괴(벧후3:10-12, 계20:11)
9) 대부활 및 성도의 휴거(살전4:16,17)
10) 백보좌 심판(계20:12-15)
11) 사단과 악령들의 멸망(계20:10)
12) 신천 신지의 조성으로 인한 천국 및 지옥의 개시(계21:1,2, 계21:27)

라. 종말의 징조
* 자연적 징조
1) 전쟁이 많이 일어남(마24:6,7)
2) 기근과 지진이 곳곳에서 일어남(마24:7,8)
3) 사람이 빨리 왕래하여 지식이 더함(단12:4)
4)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됨(행2:20)

* 종교적 징조
1) 하나님보다 쾌락을 더 사랑함(딤후3:4)
2)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능력은 부인함(딤후3:5)
3) 적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들이 많이 나타남(마24:4,5, 마24:24, 요일2:18,19)
4) 기롱하는 자들이 주를 부인함(벧후3:3-5)
5) 박해가 일어남(마24:9)
6) 천국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됨(마24:14)
7) 배도하는 일이 있음(살후20:3)
8) 참 믿음을 찾아보기 어려움(눅18:8)
9) 모이기를 폐하는 자들이 나타남(히10:25)
10) 마음이 부패해지고 진리를 잃어버림(딤전6:5)
11) 경건을 이익의 재료로 생각함(딤전6:5)

* 윤리적 징조
1) 재물을 쌓아 둠(약5:3)
2) 불법이 성함으로 사랑이 식어짐(마 24:12)
3) 불의한 자들이 더욱 불의해짐(계 22:11)
4)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함(딤후 3:2)
5) 자긍하며 교만함(딤후 3:2)
6)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함(딤후 3:2)
7)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함(딤후 3:2)
8) 무정하며 원통을 풀지 않음 (딤후 3:3)
9) 참소하며 절제하지 못함 (딤후 3:3)
10)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 아니함 (딤후 3:3)
11) 배반하여 팔며 조급함 (딤후 3:4)
12) 자고하며 쾌락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함 (딤후 3:4)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성경본문 설교자 날짜 조회 수
1662 스바냐 늦기 전에 해야 할 일 습2:1-3  한태완 목사  2009-06-18 2065
1661 스바냐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습3:17  이한규 목사  2009-06-18 3419
1660 스바냐 배반자의 최후 습1:6  한태완 목사  2009-06-18 1914
1659 스바냐 하나님의 사랑 습3:17  한태완 목사  2009-06-18 2208
» 스바냐 여호와의 날을 선포한 선지자 스바냐 습1:1-13  한태완 목사  2009-06-18 3723
1657 학개 내일의 영광, 오늘의 격려 학2:1-9  곽주환 목사  2009-06-18 2175
1656 학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 학1장  이한규 목사  2009-06-18 2382
1655 학개 교회는 축복의 전당 학2:6-9, 19  김홍도 목사  2009-06-18 2422
1654 스가랴 우리 교회의 경건 슥7:4-14  오대식 목사  2009-06-18 2176
1653 스가랴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 슥4:6  김양인 목사  2009-06-18 2886
1652 스가랴 나보다 더 위대한 계획을 세우신 하나님 슥10:6-12  배성환 목사  2009-06-18 1925
1651 스가랴 은총과 간구의 심령을 부어 주소서 슥12:7-14  배성환 목사  2009-06-18 2286
1650 스가랴 복음 전파의 결과 슥9:15~17  이성희 목사  2009-06-18 1977
1649 스가랴 내가 돌아왔은 즉 슥1:7~17  옥성석 목사  2009-06-18 1754
1648 말라기 그 날이 이르기 전에 말4:1-6  이장우 목사  2009-06-18 2250
1647 말라기 무슨 말이 나옵니까? 말3:13-18  이장우 목사  2009-06-18 1804
1646 말라기 내개로 돌아오라 말3:7-12  이장우 목사  2009-06-18 1951
1645 말라기 주께서 임하실 것이라 말2:17-3:6  이장우 목사  2009-06-18 1664
1644 말라기 무슨 까닭으로 이러십니까? 말2:10-16  이장우 목사  2009-06-18 1734
1643 말라기 생명과 평강의 언약 말2:1-9  이장우 목사  2009-06-18 2483
1642 말라기 어떻게 멸시하였나이까? 말1:6-14  이장우 목사  2009-06-18 1827
1641 말라기 어떻게 사랑하셨나이까? 말1:1-5  이장우 목사  2009-06-18 1856
1640 말라기 십일조의 인생을 살라 말3:7∼12  김성철 목사  2009-06-18 2347
1639 말라기 복받은 사람들 말3:7-12  박종수 목사  2009-06-18 2354
1638 요한복음 무엇이 진실한 예배인가? 요4:16-24  정용섭 목사  2009-06-18 2674
1637 요한복음 영광의 경험 요2:1-12  정용섭 목사  2009-06-18 1923
1636 누가복음 열린 삶, 닫힌 삶 눅15:1-7  정용섭 목사  2009-06-18 2353
1635 창세기 노동하는 인간 창3:8-19  정용섭 목사  2009-06-18 1660
1634 고린도전 묵시와 현실 사이에서 고전 15:50-58  정용섭 목사  2009-06-18 1713
1633 고린도전 그리스도의 부활과 생명의 힘 고전15:1-11  정용섭 목사  2009-06-17 1699
1632 마가복음 본질의 변질 막11:15-19  정용섭 목사  2009-06-17 1931
1631 마태복음 마음의 평안을 얻기 위하여 마11:28~30  조용기 목사  2009-06-16 2074
1630 누가복음 귀신을 쫓아내며 눅8:22~35  조용기 목사  2009-06-16 2346
1629 누가복음 피에 젖은 비둘기 눅3:21~22  조용기 목사  2009-06-16 1905
1628 에배소서 네 부모를 공경하라 엡6:1~3  조용기 목사  2009-06-16 4034

설교를 올릴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 주세요. 이단 자료는 통보없이 즉시 삭제합니다.

    본 홈페이지는 조건없이 주고가신 예수님 처럼, 조건없이 퍼가기, 인용, 링크 모두 허용합니다.(단, 이단단체나, 상업적, 불법이용은 엄금)
    *운영자: 최용우 (010-7162-3514) * 9191az@hanmail.net * 30083 세종특별시 금남면 용포쑥티2길 5-7 (용포리 53-3)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