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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가 확실한 설교만 올릴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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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습3: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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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한규 목사 |
참고 : | http://johan316.or.kr |
< 거북이를 사랑한 토끼 >
옛날에 거북이를 사랑한 토끼가 있었습니다. 토끼는 혼자 속으로만 사랑했기 때문에 아무도 토끼가 거북이를 사랑하는 줄 몰랐고, 거북이도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토끼에게는 한 가지 아픔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거북이가 자기의 느린 걸음을 너무 자학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토끼는 너무 마음이 아팠습니다. 토끼는 거북이에게 자신감을 심어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 거북이에게 말했습니다. "거북아! 나랑 달리기 해보지 않을래!" 그날 따라 거북이는 투지가 생겼습니다. 질 때는 지더라도 토끼와 같이 달려봐야지 하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래! 한번 붙어보자!"
드디어 경주가 시작되었습니다. 순식간에 토끼는 저만치 앞서갔습니다. 그러면서도 뒤따라오는 거북이만 생각했습니다. "포기하면 어떡하지! 중간쯤 가서 기다려주자!" 그런데 그냥 눈을 뜨고 거북이를 쳐다보면서 기다리면 거북이가 자존심이 상할까봐 토끼는 길에 누워서 자는 척을 했습니다. 그래서 거북이가 가까이 와서 자기를 깨워주고 같이 나란히 언덕으로 올라가는 아름다운 꿈을 꾸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거북이는 자기 옆을 지나면서도 자기를 깨우지 않았습니다. 자는 척 하던 토끼는 눈물을 흘렸습니다. 결국 거북이가 경주에서 이기게 되었습니다. 경주 후에 동네 동물 식구들과 후세 사람들로부터 거북이는 "근면하고 성실하다"는 칭찬을 들었고, 토끼는 "교만하고 경솔하다"는 욕을 먹었습니다. 그러나 토끼는 남몰래 눈물을 흘리며 그 모든 비난을 감수했습니다. 왜냐하면 사랑하는 거북이의 기쁨이 자기 기쁨이었기 때문입니다.
사랑이 무엇입니까? 티 내지 않는 것이 사랑이고, 소리 없는 헌신이 사랑이고, 양보하는 것이 사랑이고, 사랑하는 대상이 높여지고 내가 무너지기를 기뻐하는 것이 바로 사랑입니다. 우리가 진정 주님을 사랑하고, 교회를 사랑한다면 이 토끼와 같은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 마음이 바로 우리 주님의 마음이고, 우리도 그런 주님의 마음을 가지면 내 신앙생활과 가정생활과 교회생활에는 결코 실패와 후회가 없을 것입니다.
< 하나님의 변함없는 사랑 >
태초에 인간은 하나님의 최고의 기쁨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인간에게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는 놀라운 권세를 주셨고(창 1:28), 인간을 창조하신 후에는 심히 좋아하셨습니다(창 1:31). 그러나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므로 죄가 인간 세계에 들어오게 되었고, 그때부터 인간은 열등감에 사로잡히고, 자학하고, 한과 상처와 다툼으로 신음하게 되었습니다.
그 사실을 가슴 아프게 생각하시고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이 땅에 내려와 우리와 똑같은 인간의 모습으로 출발하시고, 인생의 경주를 같이 달려가시면서 우리에게 자신감을 심어주시다가 삶의 중간쯤에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우리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피를 흘려 돌아가셨습니다.
그처럼 우리의 구원에는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과 희생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런 사랑을 받는 존재입니다. 우리의 현재의 모습이 거북이와 같아도 상관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존재라는 사실입니다. 그 사랑을 생각하며 우리는 어떤 현실 속에서도 자신의 가치에 대한 확신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그 사랑은 결코 변하지 않고 퇴색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떤 목사님에게 20대 후반의 젊은 여자가 찾아와 상담을 했습니다. 그녀는 대학시절에 남자를 알게 되었고 결혼을 하자는 감언이설에 속아 몸을 허락했습니다. 그런데 그 남자는 차일피일 결혼을 미루었습니다. 그래서 뒷조사를 해 보니까 그 남자는 아기 하나 둔 유부남이었습니다. 그 사실을 알고 그녀는 삶의 기쁨과 웃음을 잃어버렸고 사람들을 피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에 그녀는 그 남자가 첫째 부인과 이혼하고 새로 다른 여자와 결혼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 소식을 듣고 그녀는 스스로 '마구 짓밟힌 인생'이라고 생각했고, 더 이상 희망도 없고, 살아갈 기력도 없게 되었습니다. 남은 것이라곤 죽는 길뿐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그 남자를 만나면 그를 찌르고 자기도 죽으려고 항상 가슴에 칼을 품고 다녔습니다. 그러다가 주위 사람들의 권유로 목사님을 찾아왔던 것입니다.
그 목사님은 그녀의 얘기를 다 듣고 이런 말을 조심스럽게 해주었습니다. "자매님! 하루에 두 번 이상 거울 앞에서 자신의 얼굴을 보며 '하나님은 그래도 너를 사랑하신다'고 말해보십시오."
그녀는 목사님이 가르쳐 준 그대로 했습니다. 거울 앞에서 "하나님은 그래도 너를 사랑하신다!" 고 외치고는 눈을 감고 예수님이 자신을 품어 주시는 모습을 마음 속에 그렸습니다. 그 후 그녀는 새 사람이 되었고, 지금은 중견 커리어 우먼으로서 매우 활기차게 살고 있다고 합니다.
<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
세상은 변해도 하나님의 사랑은 변함없습니다. 지금 우리의 모습이 비참해도 상관없습니다. 하나님은 그래도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로마서 8장 38-39절은 "이 세상의 어떤 것도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그처럼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자신을 세상에서 가장 귀하고 가치 있게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어떤 분이 유괴범에게 천만 원을 주고 간신히 자식을 살렸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천만 원을 주고 생명을 얻은 '천만 원 짜리 인생'이 아니라 예수님을 주고 생명을 얻은 '예수님 짜리 인생'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에 대한 평가를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환경에 맡기고, 돈에 맡기고, 학력에 맡겨서는 안됩니다. 그 순간부터 그 인생은 별 볼일 없는 인생이 되어버립니다. 우리는 우리에 대한 평가를 오직 주님의 시각에 맡겨야 합니다. 주님은 별 볼일 없는 베드로에게 "너는 장차 게바(반석)가 되리라!"고 했습니다. 그처럼 우리에게도 주님은 "너는 장차 게바가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우리는 만들어 가고 계십니다.
어느 날, 미켈란젤로는 성당 뒤뜰에서 그냥 굴러다니는 거대한 돌덩어리 하나를 보았습니다. 그 돌덩어리를 유심히 보더니 소리쳤습니다. "저 안에 다윗상이 보인다!" 얼마 후, 그 흉한 돌은 거인의 손에서 다윗상으로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우리를 빚어 가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현재의 모습을 보고 포기하지 마십시오. 실망하지 말고, 약해지지 마십시오. 성경은 우리를 뭐라고 말합니까? 왕 같은 제사장이라고 말합니다. 또한 세상의 소금이요 빛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그 하나님의 사랑하시는 시각으로 우리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때로 그 고통과 환난과 기도제목이 주어져도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증거입니다.
<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
오늘 본문은 하나님의 포기하지 않는 사랑을 잘 말해줍니다. 스바냐서는 총 3장으로 된 짧은 책인데, 1장과 2장, 그리고 3장 전반부까지는 하나님께서 죄를 심판하시는 '심판의 하나님'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그런데 3장 후반부에 오면 다시 심판 후에 깊은 사랑을 주시는 '사랑의 하나님'으로 나타나십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오늘 본문 17절 말씀을 통해 3가지로 생각해 보겠습니다.
1. 우리 가운데 계셔서 구원을 베푸시는 분
본문 17절을 보십시오.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 가운데 계십니다. 우리의 생각 속에 계시고, 우리가 가는 어느 곳에도 계십니다.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계시다면 어떤 고난과 문제에서도 우리는 행복을 노래하며 살 수 있고, 어떤 일을 만나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초대교회에 크리소스톰이라는 위대한 설교가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로마 황제가 그를 제거하기 위해 "아무도 대화를 못하게 독방에 가두라!?고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때 신하가 말했습니다. "황제님! 그는 예수 믿는 사람이기 때문에 독방에 가두면 기도한다고 더 좋아합니다."
그 말을 듣고 황제가 "그러면 사형수들이 있는 감옥에 넣어라."고 다시 명령했습니다. 그러자 신하가 말했습니다. "황제님! 그것은 더 안됩니다. 그렇게 하면 전도 기회가 생겼다고 더 좋아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신비한 힘이 있어서 얼마 후에는 사형수들도 다 그리스도인이 될 것입니다."
그러자 황제는 다시 명령했습니다. "그렇다면 그를 끌어다 목을 쳐라." 그때 신하가 또 말했습니다. "황제님! 그것도 안됩니다. 그들이 제일 좋아하는 것이 순교입니다. 순교하면 큰 상급을 받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처형당할 때 우는 사람을 볼 수 없고, 오히려 얼굴에 광채가 나고 기뻐합니다." 그러자 황제가 "그러면 이놈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가?"하고 탄식했다고 합니다.
우리 믿는 사람은 사방으로 에워쌈을 당해도 싸이지 아니하고, 답답한 일을 당해도 낙심하지 아니하고, 핍박을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않습니다. 왜냐 하면 질그릇 같은 우리 안에는 보배와 같은 예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 주님이 지금 우리 가운데 계십니다. 그리고 무엇을 하십니까? 무엇보다 구원을 베풀어주십니다. 구원은 인간 축복의 극치입니다. 그 구원에는 우리가 천국 가는 구원도 있지만 길이 없는 곳에서 길이 있게 하시는 구원도 있고, 문제를 풀어주시는 구원도 있고, 병든 부분을 회복시켜주시는 구원도 있고, 우리의 모난 부분을 변화시켜주시는 구원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일을 만나도 낙심하거나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2. 우리를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는 분
본문 17절을 보면 스바냐 선지자는 하나님에 대해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신다"라고 고백합니다. 또한 마지막 부분에서도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신다"고 고백합니다. 이 고백을 보면 우리 인생이 참 가치 있는 인생이란 것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무엇을 했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 존재 자체를 기뻐하십니다.
어떤 믿음 좋은 여대생이 있었습니다. 그녀의 입에는 항상 "예수님 없이는 살 수 없어요"라는 말이 붙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별명도 '예수 없이는 살 수 없는 학생'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가 목사님을 찾아 말했습니다. "목사님! 저는 오늘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어요." 목사님이 "알아! 예수님 없이는 살 수 없다는 말이지?" 하니까 그녀가 대답했습니다. "아니예요. 이번에는 그것보다 좀더 위대한 사실을 발견했는데, 그것은 예수님도 나 없이는 살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없으면 살 수 없듯이 하나님께서도 우리 없으면 살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이토록 소중한 존재입니다. 그래서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연약한 모습이 있어도 우리가 진심으로 회개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우리의 죄와 허물을 덮어주실 것입니다.
그처럼 하나님은 우리를 상사병에 걸리실 정도로 사랑하시고, 거룩한 스토커처럼 우리를 찾아보시기를 기뻐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선택한 자는 결코 하나님의 품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한때 시험이 들어서 얼마 동안 하나님의 품을 떠날 수는 있지만 하나님께서 택한 자는 기필코, 어떤 계기를 통해서라도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오게 하실 것입니다. 이제까지도 그랬지만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우리가 한 영혼을 전도하면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것입니다. "너 때문에 내가 살 것 같다." 여러분! 최선을 다해 전도하십시오. 가정에서 전도하시고, 아파트에서 전도하시고, 친척들 만나면 전도하시고, 인터넷을 통해서도 전도하십시오. 우리가 한 영혼을 전도하면 천국에서 잔치가 벌어지고, 하나님이 최고로 기뻐하실 것입니다.
3. 우리를 잠잠히 사랑하시는 분
계속해서 본문 17절 말씀을 보면 스바냐 선지자는 "하나님이 너를 잠잠히 사랑하신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소리가 적습니다. 크게 떠드는 사랑은 대개 진실한 모습이 결여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미지 신앙, 이벤트 신앙을 별로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그런 모습에는 하나님의 은혜가 자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소리 없이 은혜를 내려주시기를 기뻐하시고, 실제로 하나님의 대부분의 은혜는 소리 없이 우리에게 주어집니다.
주위를 살펴보면 하나님의 진짜 은혜는 소리는 나지 않지만 구석구석까지 미치고 있습니다. 해를 주신 것, 공기를 주신 것, 물을 주신 것 등, 따지고 보면 한이 없습니다. 그처럼 엄청난 은혜 속에 살면서도 한두 가지 문제 때문에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은 정말 불행한 일입니다.
오늘 새벽 기도 후에 오늘 전할 말씀을 묵상하는데 비몽사몽간에 한 가지 영상이 휙 지나갔습니다. 한 언덕에 거대한 축복 주머니들이 쌓여 있는데 누가 원망 한 마디를 할 때마다 한 천사가 그에게 줄 축복 주머니를 하나씩 사정없이 터뜨리고 있었습니다. 그 장면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참 원망을 싫어하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나님은 원망과 불평이 입에 배인 사람을 결코 축복하시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소리 없이 베푸시는 은혜를 생각하면 원망은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필요 없는 것을 주시는 법은 없습니다. 고통도 필요하기 때문에 주신 것이고, 가시도 필요하기 때문에 주신 것입니다. 우리 뱃속의 맹장도 전혀 필요 없는 것 같지만 최근에 밝혀진 바에 의하면 맹장수술로 맹장을 제거한 사람은 우주여행을 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은 다 필요해서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은혜로 받고, 감사로 받아야 합니다. 그렇게 은혜와 감사를 아는 사람으로 우리를 변화시켜나가면 하나님께서는 가장 적합한 때에 우리의 필요한 것을 다 채워주실 것입니다.
어떤 목사님이 개척교회를 할 때의 일입니다. 추석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돈이 없어서 고기 한 근도 살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모님이 울면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내일이 추석인데 목사님과 아이들에게 고기 국도 줄 수 없네요. 하나님, 고기 좀 주세요."
그렇게 간절히 기도하고 밖으로 나오니, 대문간에 청둥오리 한 마리가 앉아 있었습니다. 마치 "날 잡아 드세요." 하는 듯이 다소곳이 앉아 있었습니다. 사모님은 목사님을 급히 불렀고, 급히 달려나온 목사님이 가까이 갔는데도 그 청둥오리는 도망가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살펴보아도 상처 난 곳이 없는 멀쩡한 청둥오리였습니다. 결국 사모님의 기도 응답이라 여기고 그 청둥오리를 잡아서 먹었는데, 그 오리고기를 먹으면서 온 식구들이 다 울었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필요하면 기적적으로 청둥오리도 보내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나치게 염려하고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합당한 방법으로 우리를 지켜주실 것입니다. 그렇게 밤낮으로 지켜주시면서도 결코 생색내지 않으십니다. 그저 잠잠히 사랑해주십니다.
< 어떤 상황을 만나도 낙심하지 마십시오 >
우리는 어떤 어려운 상황을 만나도 낙심하거나 불평하지 말아야 합니다. 어려운 때일수록 침착하게 마음과 숨을 가라앉히고 좀더 하나님께 집중해보십시오. 그때 조용히 말씀을 보고, 조용히 기도해보십시오. 당장 응답이 없어도 말씀 듣는 일과 기도하는 일을 포기하지 마십시오. 그 조용한 삶의 열정과 믿음의 인내를 하나님은 반드시 기억해주실 것입니다.
산에 가면 가끔 척박한 곳에서 사느라 안간힘을 다하는 나무들을 봅니다. 바위에 길이 막히면 온 몸을 비틀어서라고 햇빛을 향해 서는 나무들이 있습니다. 바위의 어떤 나무는 가지 전체가 동남쪽을 향해 뻗어 있습니다. 마치 한 팔이 없는 사람 같습니다. 그러나 햇볕을 향한 그 나무의 안간힘을 보면 절로 감탄이 나옵니다. 우리는 그런 나무처럼 살아야 합니다.
세상에서 뿌리를 제일 깊이 내린 식물은 사막에서 자라는 풀입니다. 그 씨앗은 하필이면 그 많은 땅 중에서 사막에 날아와 싹을 틔웠습니다. 그 뒤 한 방울의 물을 찾아 그 연약한 뿌리는 어두운 땅속을 무섭게 더듬어 갑니다. 우리는 그런 정열을 배워야 하고, 그런 생명력을 가져야 합니다. 그런데 가장 축복과 은혜를 많이 받은 사람이 그런 정열을 배우지 못하고 조금만 어려워도 불평하기에 바쁘고, 좌절하고 낙심하기에 바쁘면 얼마나 불행한 일입니까?
하나님은 우리에게 진짜 생명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포기는 없습니다. 그저 한결같은 믿음을 가지고 꾸준히 꿈과 비전을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길이 멀게 느껴지면 그때 서두르지 말고 더 침착해야 합니다. 그런 때일수록 믿음을 가지고 한 걸음 한 걸음 믿음의 발걸음을 떼야 합니다. 그렇게 나아가다 보면 어느새 길이 열리고, 나중에는 자기 자신이 다른 사람을 위한 길이 되어 있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때로 큰 문제에 닥칠 때도 있지만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풀지 못할 문제는 없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고, 사랑하고, 또한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우리가 풀지 못할 문제는 없습니다. 항상 하나님의 사랑과 믿음 안에 거함으로 승리하는 삶을 사는 분들이 되길 바랍니다.
/이한규 목사
옛날에 거북이를 사랑한 토끼가 있었습니다. 토끼는 혼자 속으로만 사랑했기 때문에 아무도 토끼가 거북이를 사랑하는 줄 몰랐고, 거북이도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토끼에게는 한 가지 아픔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거북이가 자기의 느린 걸음을 너무 자학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토끼는 너무 마음이 아팠습니다. 토끼는 거북이에게 자신감을 심어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 거북이에게 말했습니다. "거북아! 나랑 달리기 해보지 않을래!" 그날 따라 거북이는 투지가 생겼습니다. 질 때는 지더라도 토끼와 같이 달려봐야지 하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래! 한번 붙어보자!"
드디어 경주가 시작되었습니다. 순식간에 토끼는 저만치 앞서갔습니다. 그러면서도 뒤따라오는 거북이만 생각했습니다. "포기하면 어떡하지! 중간쯤 가서 기다려주자!" 그런데 그냥 눈을 뜨고 거북이를 쳐다보면서 기다리면 거북이가 자존심이 상할까봐 토끼는 길에 누워서 자는 척을 했습니다. 그래서 거북이가 가까이 와서 자기를 깨워주고 같이 나란히 언덕으로 올라가는 아름다운 꿈을 꾸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거북이는 자기 옆을 지나면서도 자기를 깨우지 않았습니다. 자는 척 하던 토끼는 눈물을 흘렸습니다. 결국 거북이가 경주에서 이기게 되었습니다. 경주 후에 동네 동물 식구들과 후세 사람들로부터 거북이는 "근면하고 성실하다"는 칭찬을 들었고, 토끼는 "교만하고 경솔하다"는 욕을 먹었습니다. 그러나 토끼는 남몰래 눈물을 흘리며 그 모든 비난을 감수했습니다. 왜냐하면 사랑하는 거북이의 기쁨이 자기 기쁨이었기 때문입니다.
사랑이 무엇입니까? 티 내지 않는 것이 사랑이고, 소리 없는 헌신이 사랑이고, 양보하는 것이 사랑이고, 사랑하는 대상이 높여지고 내가 무너지기를 기뻐하는 것이 바로 사랑입니다. 우리가 진정 주님을 사랑하고, 교회를 사랑한다면 이 토끼와 같은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 마음이 바로 우리 주님의 마음이고, 우리도 그런 주님의 마음을 가지면 내 신앙생활과 가정생활과 교회생활에는 결코 실패와 후회가 없을 것입니다.
< 하나님의 변함없는 사랑 >
태초에 인간은 하나님의 최고의 기쁨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인간에게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는 놀라운 권세를 주셨고(창 1:28), 인간을 창조하신 후에는 심히 좋아하셨습니다(창 1:31). 그러나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므로 죄가 인간 세계에 들어오게 되었고, 그때부터 인간은 열등감에 사로잡히고, 자학하고, 한과 상처와 다툼으로 신음하게 되었습니다.
그 사실을 가슴 아프게 생각하시고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이 땅에 내려와 우리와 똑같은 인간의 모습으로 출발하시고, 인생의 경주를 같이 달려가시면서 우리에게 자신감을 심어주시다가 삶의 중간쯤에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우리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피를 흘려 돌아가셨습니다.
그처럼 우리의 구원에는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과 희생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런 사랑을 받는 존재입니다. 우리의 현재의 모습이 거북이와 같아도 상관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존재라는 사실입니다. 그 사랑을 생각하며 우리는 어떤 현실 속에서도 자신의 가치에 대한 확신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그 사랑은 결코 변하지 않고 퇴색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떤 목사님에게 20대 후반의 젊은 여자가 찾아와 상담을 했습니다. 그녀는 대학시절에 남자를 알게 되었고 결혼을 하자는 감언이설에 속아 몸을 허락했습니다. 그런데 그 남자는 차일피일 결혼을 미루었습니다. 그래서 뒷조사를 해 보니까 그 남자는 아기 하나 둔 유부남이었습니다. 그 사실을 알고 그녀는 삶의 기쁨과 웃음을 잃어버렸고 사람들을 피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에 그녀는 그 남자가 첫째 부인과 이혼하고 새로 다른 여자와 결혼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 소식을 듣고 그녀는 스스로 '마구 짓밟힌 인생'이라고 생각했고, 더 이상 희망도 없고, 살아갈 기력도 없게 되었습니다. 남은 것이라곤 죽는 길뿐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그 남자를 만나면 그를 찌르고 자기도 죽으려고 항상 가슴에 칼을 품고 다녔습니다. 그러다가 주위 사람들의 권유로 목사님을 찾아왔던 것입니다.
그 목사님은 그녀의 얘기를 다 듣고 이런 말을 조심스럽게 해주었습니다. "자매님! 하루에 두 번 이상 거울 앞에서 자신의 얼굴을 보며 '하나님은 그래도 너를 사랑하신다'고 말해보십시오."
그녀는 목사님이 가르쳐 준 그대로 했습니다. 거울 앞에서 "하나님은 그래도 너를 사랑하신다!" 고 외치고는 눈을 감고 예수님이 자신을 품어 주시는 모습을 마음 속에 그렸습니다. 그 후 그녀는 새 사람이 되었고, 지금은 중견 커리어 우먼으로서 매우 활기차게 살고 있다고 합니다.
<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
세상은 변해도 하나님의 사랑은 변함없습니다. 지금 우리의 모습이 비참해도 상관없습니다. 하나님은 그래도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로마서 8장 38-39절은 "이 세상의 어떤 것도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그처럼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자신을 세상에서 가장 귀하고 가치 있게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어떤 분이 유괴범에게 천만 원을 주고 간신히 자식을 살렸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천만 원을 주고 생명을 얻은 '천만 원 짜리 인생'이 아니라 예수님을 주고 생명을 얻은 '예수님 짜리 인생'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에 대한 평가를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환경에 맡기고, 돈에 맡기고, 학력에 맡겨서는 안됩니다. 그 순간부터 그 인생은 별 볼일 없는 인생이 되어버립니다. 우리는 우리에 대한 평가를 오직 주님의 시각에 맡겨야 합니다. 주님은 별 볼일 없는 베드로에게 "너는 장차 게바(반석)가 되리라!"고 했습니다. 그처럼 우리에게도 주님은 "너는 장차 게바가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우리는 만들어 가고 계십니다.
어느 날, 미켈란젤로는 성당 뒤뜰에서 그냥 굴러다니는 거대한 돌덩어리 하나를 보았습니다. 그 돌덩어리를 유심히 보더니 소리쳤습니다. "저 안에 다윗상이 보인다!" 얼마 후, 그 흉한 돌은 거인의 손에서 다윗상으로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우리를 빚어 가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현재의 모습을 보고 포기하지 마십시오. 실망하지 말고, 약해지지 마십시오. 성경은 우리를 뭐라고 말합니까? 왕 같은 제사장이라고 말합니다. 또한 세상의 소금이요 빛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그 하나님의 사랑하시는 시각으로 우리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때로 그 고통과 환난과 기도제목이 주어져도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증거입니다.
<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
오늘 본문은 하나님의 포기하지 않는 사랑을 잘 말해줍니다. 스바냐서는 총 3장으로 된 짧은 책인데, 1장과 2장, 그리고 3장 전반부까지는 하나님께서 죄를 심판하시는 '심판의 하나님'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그런데 3장 후반부에 오면 다시 심판 후에 깊은 사랑을 주시는 '사랑의 하나님'으로 나타나십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오늘 본문 17절 말씀을 통해 3가지로 생각해 보겠습니다.
1. 우리 가운데 계셔서 구원을 베푸시는 분
본문 17절을 보십시오.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 가운데 계십니다. 우리의 생각 속에 계시고, 우리가 가는 어느 곳에도 계십니다.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계시다면 어떤 고난과 문제에서도 우리는 행복을 노래하며 살 수 있고, 어떤 일을 만나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초대교회에 크리소스톰이라는 위대한 설교가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로마 황제가 그를 제거하기 위해 "아무도 대화를 못하게 독방에 가두라!?고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때 신하가 말했습니다. "황제님! 그는 예수 믿는 사람이기 때문에 독방에 가두면 기도한다고 더 좋아합니다."
그 말을 듣고 황제가 "그러면 사형수들이 있는 감옥에 넣어라."고 다시 명령했습니다. 그러자 신하가 말했습니다. "황제님! 그것은 더 안됩니다. 그렇게 하면 전도 기회가 생겼다고 더 좋아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신비한 힘이 있어서 얼마 후에는 사형수들도 다 그리스도인이 될 것입니다."
그러자 황제는 다시 명령했습니다. "그렇다면 그를 끌어다 목을 쳐라." 그때 신하가 또 말했습니다. "황제님! 그것도 안됩니다. 그들이 제일 좋아하는 것이 순교입니다. 순교하면 큰 상급을 받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처형당할 때 우는 사람을 볼 수 없고, 오히려 얼굴에 광채가 나고 기뻐합니다." 그러자 황제가 "그러면 이놈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가?"하고 탄식했다고 합니다.
우리 믿는 사람은 사방으로 에워쌈을 당해도 싸이지 아니하고, 답답한 일을 당해도 낙심하지 아니하고, 핍박을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않습니다. 왜냐 하면 질그릇 같은 우리 안에는 보배와 같은 예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 주님이 지금 우리 가운데 계십니다. 그리고 무엇을 하십니까? 무엇보다 구원을 베풀어주십니다. 구원은 인간 축복의 극치입니다. 그 구원에는 우리가 천국 가는 구원도 있지만 길이 없는 곳에서 길이 있게 하시는 구원도 있고, 문제를 풀어주시는 구원도 있고, 병든 부분을 회복시켜주시는 구원도 있고, 우리의 모난 부분을 변화시켜주시는 구원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일을 만나도 낙심하거나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2. 우리를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는 분
본문 17절을 보면 스바냐 선지자는 하나님에 대해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신다"라고 고백합니다. 또한 마지막 부분에서도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신다"고 고백합니다. 이 고백을 보면 우리 인생이 참 가치 있는 인생이란 것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무엇을 했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 존재 자체를 기뻐하십니다.
어떤 믿음 좋은 여대생이 있었습니다. 그녀의 입에는 항상 "예수님 없이는 살 수 없어요"라는 말이 붙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별명도 '예수 없이는 살 수 없는 학생'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가 목사님을 찾아 말했습니다. "목사님! 저는 오늘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어요." 목사님이 "알아! 예수님 없이는 살 수 없다는 말이지?" 하니까 그녀가 대답했습니다. "아니예요. 이번에는 그것보다 좀더 위대한 사실을 발견했는데, 그것은 예수님도 나 없이는 살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없으면 살 수 없듯이 하나님께서도 우리 없으면 살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이토록 소중한 존재입니다. 그래서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연약한 모습이 있어도 우리가 진심으로 회개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우리의 죄와 허물을 덮어주실 것입니다.
그처럼 하나님은 우리를 상사병에 걸리실 정도로 사랑하시고, 거룩한 스토커처럼 우리를 찾아보시기를 기뻐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선택한 자는 결코 하나님의 품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한때 시험이 들어서 얼마 동안 하나님의 품을 떠날 수는 있지만 하나님께서 택한 자는 기필코, 어떤 계기를 통해서라도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오게 하실 것입니다. 이제까지도 그랬지만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우리가 한 영혼을 전도하면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것입니다. "너 때문에 내가 살 것 같다." 여러분! 최선을 다해 전도하십시오. 가정에서 전도하시고, 아파트에서 전도하시고, 친척들 만나면 전도하시고, 인터넷을 통해서도 전도하십시오. 우리가 한 영혼을 전도하면 천국에서 잔치가 벌어지고, 하나님이 최고로 기뻐하실 것입니다.
3. 우리를 잠잠히 사랑하시는 분
계속해서 본문 17절 말씀을 보면 스바냐 선지자는 "하나님이 너를 잠잠히 사랑하신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소리가 적습니다. 크게 떠드는 사랑은 대개 진실한 모습이 결여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미지 신앙, 이벤트 신앙을 별로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그런 모습에는 하나님의 은혜가 자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소리 없이 은혜를 내려주시기를 기뻐하시고, 실제로 하나님의 대부분의 은혜는 소리 없이 우리에게 주어집니다.
주위를 살펴보면 하나님의 진짜 은혜는 소리는 나지 않지만 구석구석까지 미치고 있습니다. 해를 주신 것, 공기를 주신 것, 물을 주신 것 등, 따지고 보면 한이 없습니다. 그처럼 엄청난 은혜 속에 살면서도 한두 가지 문제 때문에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은 정말 불행한 일입니다.
오늘 새벽 기도 후에 오늘 전할 말씀을 묵상하는데 비몽사몽간에 한 가지 영상이 휙 지나갔습니다. 한 언덕에 거대한 축복 주머니들이 쌓여 있는데 누가 원망 한 마디를 할 때마다 한 천사가 그에게 줄 축복 주머니를 하나씩 사정없이 터뜨리고 있었습니다. 그 장면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참 원망을 싫어하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나님은 원망과 불평이 입에 배인 사람을 결코 축복하시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소리 없이 베푸시는 은혜를 생각하면 원망은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필요 없는 것을 주시는 법은 없습니다. 고통도 필요하기 때문에 주신 것이고, 가시도 필요하기 때문에 주신 것입니다. 우리 뱃속의 맹장도 전혀 필요 없는 것 같지만 최근에 밝혀진 바에 의하면 맹장수술로 맹장을 제거한 사람은 우주여행을 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은 다 필요해서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은혜로 받고, 감사로 받아야 합니다. 그렇게 은혜와 감사를 아는 사람으로 우리를 변화시켜나가면 하나님께서는 가장 적합한 때에 우리의 필요한 것을 다 채워주실 것입니다.
어떤 목사님이 개척교회를 할 때의 일입니다. 추석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돈이 없어서 고기 한 근도 살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모님이 울면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내일이 추석인데 목사님과 아이들에게 고기 국도 줄 수 없네요. 하나님, 고기 좀 주세요."
그렇게 간절히 기도하고 밖으로 나오니, 대문간에 청둥오리 한 마리가 앉아 있었습니다. 마치 "날 잡아 드세요." 하는 듯이 다소곳이 앉아 있었습니다. 사모님은 목사님을 급히 불렀고, 급히 달려나온 목사님이 가까이 갔는데도 그 청둥오리는 도망가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살펴보아도 상처 난 곳이 없는 멀쩡한 청둥오리였습니다. 결국 사모님의 기도 응답이라 여기고 그 청둥오리를 잡아서 먹었는데, 그 오리고기를 먹으면서 온 식구들이 다 울었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필요하면 기적적으로 청둥오리도 보내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나치게 염려하고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합당한 방법으로 우리를 지켜주실 것입니다. 그렇게 밤낮으로 지켜주시면서도 결코 생색내지 않으십니다. 그저 잠잠히 사랑해주십니다.
< 어떤 상황을 만나도 낙심하지 마십시오 >
우리는 어떤 어려운 상황을 만나도 낙심하거나 불평하지 말아야 합니다. 어려운 때일수록 침착하게 마음과 숨을 가라앉히고 좀더 하나님께 집중해보십시오. 그때 조용히 말씀을 보고, 조용히 기도해보십시오. 당장 응답이 없어도 말씀 듣는 일과 기도하는 일을 포기하지 마십시오. 그 조용한 삶의 열정과 믿음의 인내를 하나님은 반드시 기억해주실 것입니다.
산에 가면 가끔 척박한 곳에서 사느라 안간힘을 다하는 나무들을 봅니다. 바위에 길이 막히면 온 몸을 비틀어서라고 햇빛을 향해 서는 나무들이 있습니다. 바위의 어떤 나무는 가지 전체가 동남쪽을 향해 뻗어 있습니다. 마치 한 팔이 없는 사람 같습니다. 그러나 햇볕을 향한 그 나무의 안간힘을 보면 절로 감탄이 나옵니다. 우리는 그런 나무처럼 살아야 합니다.
세상에서 뿌리를 제일 깊이 내린 식물은 사막에서 자라는 풀입니다. 그 씨앗은 하필이면 그 많은 땅 중에서 사막에 날아와 싹을 틔웠습니다. 그 뒤 한 방울의 물을 찾아 그 연약한 뿌리는 어두운 땅속을 무섭게 더듬어 갑니다. 우리는 그런 정열을 배워야 하고, 그런 생명력을 가져야 합니다. 그런데 가장 축복과 은혜를 많이 받은 사람이 그런 정열을 배우지 못하고 조금만 어려워도 불평하기에 바쁘고, 좌절하고 낙심하기에 바쁘면 얼마나 불행한 일입니까?
하나님은 우리에게 진짜 생명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포기는 없습니다. 그저 한결같은 믿음을 가지고 꾸준히 꿈과 비전을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길이 멀게 느껴지면 그때 서두르지 말고 더 침착해야 합니다. 그런 때일수록 믿음을 가지고 한 걸음 한 걸음 믿음의 발걸음을 떼야 합니다. 그렇게 나아가다 보면 어느새 길이 열리고, 나중에는 자기 자신이 다른 사람을 위한 길이 되어 있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때로 큰 문제에 닥칠 때도 있지만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풀지 못할 문제는 없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고, 사랑하고, 또한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우리가 풀지 못할 문제는 없습니다. 항상 하나님의 사랑과 믿음 안에 거함으로 승리하는 삶을 사는 분들이 되길 바랍니다.
/이한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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