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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들 -표적과 기사

사도행전 박영선 목사............... 조회 수 2807 추천 수 0 2009.06.20 13:5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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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행5:12-16 
설교자 : 박영선 목사 
참고 : 사도행전 036 / 1988.11.27 

“사도들의 손으로 민간에 표적과 기사가 많이 되매 믿는 사람이 다 마음을 같이 하여 솔로몬 행각에 모이고 그 나머지는 감히 그들과 상종하는 사람이 없으나 백성이 칭송하더라 믿고 주께로 나오는 자가 더 많으니 남녀의 큰 무리더라 심지어 병든 사람을 메고 거리에 나가 침대와 요 위에 뉘우고 베드로가 지날 때에 혹 그 그림자라도 뉘게 덮일까 바라고 예루살렘 근읍 허다한 사람들도 모여 병든 사람과 더러운 귀신에게 괴로움 받는 사람을 데리고 와서 다 나음을 얻으니라.”    사도행전 5 : 12 -16

오늘 읽은 말씀은 초대교회 성도들과 특별히 부름을 받은 사도들이 얼마나 힘있게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왔는가 하는 모습이 잘 묘사되어 있습니다. 사도들의 손으로 민간에 표적과 기사가 많이 일어나고 그래서 믿는 사람이 많아지고 그 나머지 서람들은 그들과 상종을 하지 않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믿고 주께로 오느 자가 많은데 특별히 병든 서람을 메고 거리에 나와서 침대와 요 위에 뉘우고 베드로가 지나갈 때 그 그림자라도 누구에게 덮일까 하고 바랄 만큼 신자 된 증거, 신자 된 능력들이 많이 증거되고 있었다고 소개합니다.

초대교회의 신앙상을 살펴보면서 오늘날 우리 신앙과 비교해 볼 때 가장 그때 모습으로부터 이탈된 것이 무엇이냐 그러면 오늘 본 12-16절 말씀이 아닌가 싶습니다. 왜야하면 이 시대에는 분명히 믿는 사람들이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무엇을 얻어야 하며 그 얻는 것이 자기네들에게 유익한 것인 줄 악고 불신자들이 신자들에게 말하자면 얻어 먹으러 쫓아다녔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신자들이 불신자들에게 얻어먹으려고 쯫아 다니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간단한 이우 때문에 그렇습니다. 무엇을 준비하고 무엇을 위해서 사는냐에 있어서 주객이 전도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신자들이 불신자들에게 가서 왜 아첨을 떠느냐 그러면 예수 믿는 것은 죽고 난 다음 지옥 가지 않고 천국 가는 문제로만 필요하고 실제로 살아가는 문제에 있어서는 세상 사람들의 방법과 지헤가 더 필요하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신자들은 불신자들이 볼 때 자기네들과 다른 것이 있거나 가서 얻을 것이 있는 사람들로 보여지지 읺습니다. 오히려 영악한 사람들로 보입니다. 죽은 다음도 준비해 놓은 사람, 그러니까 살아있을 때 묘지 사고 잔디 다 입혀 놓은 사람으로 보이지 무슨 우리가 다른 것을 준비하고, 다른 것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여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신자들이 신앙을 소유한 자신감, 자랑 그래서 마땅히 있어야 하는 신자로서 걷는 인생에 대한 자부심이 아주 없어지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시급히 해결해야 하는 문제 인 것입니다.

창세기 12장을 보면 처음부터 하나님이 하나님의 백성을 부르실 때는 이런 의도와 목적과 그리고 특별한 임무들을 복으로 주셨다는 것을 확인하게 됩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언을 것이니라 하신지라.”(창 12 : 1 - 3)

아브람을 불러서 그 본토 친턱 아비 집을 떠나 구별된 인생이 되게 합니다. 하나님이 그의 인도자가 되시며 보호자가 되시며 모든 것을 준비하시는 유일한 근거가 되는 인생으로 불러내십니다. 그가 그전에 갖고 있었던 삶과 인생의 유일한 근거, 힘 이런 모든 것으로부터 이제 하나님을 힘과 근거로 삼는 사람으로 구별시킵니다. 왜 그렇게 했느냐. 하나님을 위해서 뭔가 하라 하기 이전에 그렇게 함으로써 아브라함을 복의 근원으로 삼기 위해서입니다. 아브라함을 통하여 모든 민족이 복을 얻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고 복 주시기를 기뻐하시는 분입니다. 그를 축복하는 자는 복을 얻고 그를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도록 되어 있습니다. 실제로 그 모습을 역사상 아브라함의 생애에 있는 여러 가지 사건들 속에서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아브라함의 생애에서 이런 것을 봅니다. 롯은 아브라함의 조카입니다. 함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서 이 나그네 된 길을 같이 걷다가 아브라함이 부자가 되는 바람에 롯도 부자가 됩니다. 그래서 함께 서로 목축업을 할 수가 없어서 나눠서 살기로 했습니다. 그때 좋은 당을 롯이 선택해서 소듬과 고모라 성에 가서 삽니다. 나중에 소돔 왕, 고모라 왕, 그 주위 몇 나라, 다섯 나라가 연합을 하고 그 반대되는 네 나라가 연합을 한 전쟁이 일어 납니다. 그대 롯이 잡혀 갑니다.

아브라함이 자기 집에 있던 하인들을 데리고 쫓아가서 롯을 구해오기 위해서 적군을 다 쳐 없애고 탈취한 재물을 다 빼앗아 오는 바람에 소돔 고모라 왕도 구원을 얻고 그들이 빼앗겼던 재물도 돌려 받게 됩니다. 누구 하나 때문에 그렇게 됩니까? 롯 때문이 아니고 아브라함 때문입니다. 롯은 아브라함의 조카이기 때문에 구원을 얻고 소돔, 고모라 왕은 롯이 거하던 성의 왕이기 때문에 구원을 얻습니다

제가 좀더 실감나는 얘기를 하면 벤허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벤이라는 것은 히브리어의 아들이라는 뜻으로 벤훌, 훌의 자손 유다입니다. 훌이면 그 유명한 모세 시대에 모세가 여호수아를 전쟁에 내보내서 아말렉과 전투할 때 모세의 팔을 한쪽은 아론이 들고 또 한쪽 팔은 훌이 들었습니다. 그 훌의 자손입니다. 그 벤허가 모함을 받아 노예로 팔려서 전함에 가서 노를 젓는 노수가 됩니다. 그때 큰 해전이 일어났는데 벤허가 타고 있는 배가 아리아스 제독이 타고 있던 전함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배가 상대방 배의 옆구리를 받쳐서 침몰됩니다. 그래서 사령관도 물에 빠지고 벤허도 물에 빠졌습니다. 조그만 나무조각을 붙잡고 살아나서 제독은 전쟁에 패한 줄 알고 자살을 하려고 하는데 벤허가 못 죽게 붙잡습니다. 그러고 나서 아군 배의 구출을 받고 그 전투에서 승리한 것을 알게 됩니다. 그때 아리아스 제독이 벤허를 돌아보며 뭐라고 합니까? 네가 믿는 하나님은 너를 구하기 위해서 로마에 승리를 줬구나 합니다. 예수 믿는 한 사람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혜택을 입으며 복을 나누며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와 자비의 손길에 있는지 아십니까? 우리가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지 아십니까.

하나님께서 소돔 고모라 성의 죄악이 너무 팽배하여 멸하기 위해 친히 시찰을 나가시다가 아브라함에게 들러 가십니다. 내가 하려는 일을 내가 왜 아브라함한테 감추갰느냐. 내가 소돔 고모라를 멸하러 간다고 그럽니다. 이때 아브라함이 한 말씀 올립니다. 거기 의인들을 함께 멸하시겠습니까? 의인들이 있으면 내가 멸하지 않겠다. 몇 명이나 있으면 됩니까 해서 숫자 싸움이 시작됩니다. 의인 오십 명이 있어도 죽이겠습니까. 의인 오십이 있으면 내가 그 성을 그대로 놔 두겠다. 거기서 열 명이 모자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래도 멸망시키지 않겠다. 주여 노하지 마옵소서. 거기서 열 명이 모자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좋다. 그래서 몇 명까지 깎습니까? 열명 의인 열 명이 있으면 내가 소돔 고모라 성을 멸하지 아니하리라 합니다. 그러니 소돔 고모라 성의 멸망은 누구의 손에 달려 있는 것입니까? 신자가 거기 있느냐 없느냐의 싸움입니다.

우리는 지나간 시대, 민주사회의 출발 이후부터 지금까지 정치. 경제. 교육 사회 여러분야에 걸쳐서 같은 아픔을 겪어 왔습니다. 우리나라가 여태까지 이 자리에 오는 동안에 이것만은 잘했다라는 것이 정부 쪽에서 잘한 것이 있었나요? 없었습니다. 우리나가가 여태까지 잘했다고 인정할 수있는 것은 딱 하나 부모들이 극성맞아서 아이들을 대학 보냈다는 이것 하나만 빼고는 자랑할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잘살게 되었죠. 그렇죠? 여러분이 잘살게 되었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으면 미국에 한 번 가보시면 됩니다. 미국에 가시면 우리 같은 옷을 입고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남대문 시장에서 500원, 500원 하는 그 옷을 20불 주고 사 입을까 말까 합니다. 우리같이 멀쩡한 옷을 입고 있는 사람이 드뭅니다. 물론 잘사는 사람은 아주 잘삽니다만 극소수이고 우리같이 이러지 못합니다.

우리나라가 여기까지 이렇게 복을 누리고 있는 이유가 누구 탓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우리 탓입니다. 백 번 우리 탓입니다. 그것을 모르시겠습니까. 정주영 씨 탓이 아닙니다. 우리가 이 나라를 위해서 기도했고 하나님이 사랑하는 그의 자녀들이 여기에 이렇게 많기 때문에 하나님이 이 나라를 복 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준 복이 너무 많아 그것이 흘러넘쳐서 이웃집 개도 먹고 현대도 먹고 삼성도 먹는 것입니다. 그것을 모르세요? 우리가 삼성에 가서 월급 타서 먹고 사는 것이 아닙니다. 실제로 그렇습니다. 왜 이것을 모르십니까. 적어도 신자는 이 사실을 알고 있어야 됩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우리 때문에 우리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동시에 은혜와 긍휼과 자비를 베풀고 계십니다. 이것이 성경이 얘기하는 신자가 신자 된 모습을 지켜야 하는 가장 큰 중요한 이유입니다. 우리는 지금 살아가는 동안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 전전긍긍하도록 되어 있지 않습니다.

충애굽기 19장을 보십시다.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나올 때부터 제 삼월 곧 그 때에 그들이 시내 광야에 이르니라 그들이 르비딤을 떠나 시내 광야에 이르러 그 광야에 장막을 치되 산 앞에 장막을 치니라 모세가 하나님 앞에 올라가니 여호와께서 산에서 그를 불러 가라사대 너는 이같이 야곱 족속에게 이르고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라 나의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열국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할지니라.”(출 19 : 1 - 6)

이스라엘 백성을 꺼낸 이유가 뭐냐 그럴 때 너희는 내 말을 듣고 행해서 내 백성이 되라 이겁니다. 거룩한 백성, 제사장 나라로 부른 것입니다. 잘먹고 잘살게 하기 위해서 부르지 않습니다. 이  말씀은 몇 가지 중요한 신앙적 내용들을 전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생각해보십시오. 아까 아브라함 사건과 동일한데 이 이스라엘 백성이 종 되었던 애굽 땅에서 탈출을 할 때 저들의 힘과 실력으로 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바로가 저들을 놓아 보내게 된 가장 큰 이유가 열 가지 재앙을 당하고서입니다. 그 열 가지 재앙을 저들이 힘을 합해서 낸 것이 아닙니다. 민란을 일으키거나 독립운동을 일으킨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저들을 꺼내십니다. 추격해오는 애굽의 군사들을 어떻게 피해서 나왔느냐 하면 홍해룰 가거르고 건너서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십니다. 광야 40년 동안 만나를 먹고 메추라기를 먹고 반석에서 나오는 샘물을 마시면서 낮에는 구름기둥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함을 받아 그 의복이 헤지지 아니하고 그 발이 불르트지 않습니다.

그들이 가는 곳은 가서 일해야 되는 곳이 아니라 저들이 짓지 아니한 집, 저들이 심지 아니한 포도가 있는 곳입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입니다. 그곳을 다만 제비 뽑아서 나눠 갖습니다. 당첨되고 불합격되고 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것을 나눠 가지는 제비 뽑기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들에게 요구됐던 것은 단 하나밖에 없습니다. 너희는 거룩한 백성이 되고 제사장 나라가 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떻게 살고 계십니까? 여러분들의 인생과 삶이 거룩하고 제사장 직분을 위해서 주어진 시간이라는 것을 모르십니까. 여러분이 집 짓고 여러분이 포도나무를 심어도 여러분이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지 않으면 네가 지은 집에 남이 와서 살고 네가 심은 포도를 네가 먹지 못하고 남이 와서 먹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너희가 내 말을 듣고 내 백성답게 살면 너희가 짓지 아니한 집에 살고 너희가 심지 않은 포도를 먹고 너희가 파지 않은 우물을 마시리라. 왜 이것을 놓치고 사십니까?

신약식으로 얘기하면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공중 나는 새를 보라, 들에 핀 백합화를 보라. 오늘 피었다 내일 아궁이에 던질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왜 거꾸로 사십니까. 이 대목이 우리가 가장 놀랍게 놓치고 있는 부분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놓치고 있는 이상 신자는 참으로 가난한 것입니다. 늘 세상 사람들에게 꾸러 다녀야 됩니다. 돈을, 권세를, 세상을 사는 악한 지혜를 꾸러 다녀야 됩니다. 저들이 우리를 향하여 내가 돈과 권세를 가졌지만 평안이 없고 행복이 없고 기쁨이 없는데 당신은 못생기고 못살고 고난을 당하면서 행복하고 기쁘고 만족하고 왜 당신에게 가면 사람이 살아납니까. 당신에게 있는 비밀이 무엇입니까? 당신이 갖고 있는 진리는 무엇이며 그 생명은 무엇이며 당신한테는 어떻게 갈하지 않는 물이 있소? 라고 쫓아오게 만들어야 합니다.

오순절 성령강림 이후에 베드로가 그 사람들 앞에 자기들이 왜 이렇게 됐는가를 설명합니다. 그 말을 듣고 뭐라고 합니까? 그 말을 듣고 금방 나오는 반응은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이 질문을 받아내셔야 됩니다. 우리의 삶을 보는 이웃 사람들이 우리로부터 생수에 갈한 반응을 나타내게 해야 되고 영혼에 충격을 받은 절박함과 회개하는 마음이 일어나도록 하는 존재로 살아야 됩니다. 그건 사명이라든가 책임이라는 정도가 아니라 그것이 우리가 사는 이유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자랑이고 우리 삶의 이유고 매일매일을 승리와 감사 속에서 사는 내용인 것입니다. 이것들이 우리에게 없습니다.

마태복음 11장을 보십시다. 이 말씀을 이렇게 맞춰보면 이해가 더 확실해지리라고 봅니다. “요한이 옥에서 그리스도의 하신 일을 듣고 제자들을 보내어 예수께 여짜오되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가서 듣고 보는 것을 요한에게 고하되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누구든지 나를 인하여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시니라.”(마 11 : 2 - 6)

이것은 아주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세례 요한은 원래 그의 출생의 목적과 이유가, 그 존재 자체가 저분이 메시야다 하는 이 한 마디 때문에 출생한 자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가 빛을 증거하러 왔고 또 빛을 증거합니다.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을 보라. 이 한 마디를 하고 주님께 새례를 주고 그리고 퇴장합니다. 그런 요한이 옥에서 예수님이 하신 일을 듣고 혼돈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자신이 기대한 메시야의 모습과 주님이 오셔서 하는 일에 너무 많은 차이가 나는 것입니다. 그가 생각하기엔 메시야가 오시면 질병을 쫓아 내고 악한 것을 쫓아내 이 세상에 평화를 특별히 이스라엘 민족을 회복하여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으로 온전한 하나님의 니라를 이루실 것이라고 기대를 했는데 오셔서 하시는 일이 산에 올라가서 설교를 하거나 폭풍이 이는 밤에 바다 위를 걸으셨다, 마태하고 식사를 하셨다, 나무에 올라간 삭개오를 보고 내려오라고 했다 하니 세상 답답한 것입니다.

제자들을 보내서 묻게 합니다. 당신이 그분이 맞습니까 아니면 내가 잘못 본 것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듣고 보는 것을 요한에게 고하라.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이것이 예수님이 하신 일이고 오늘 우리가 하는 일입니다. 스스로 혼자서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는 자들, 영적으로 병든 자들, 죽어가는 이들 앞에 우리 때문에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복의 근원으로 삼으시기 때문에 내가 가는 길에는 빛이 전파되고 마음의 질병이 쫓겨나게 되고 내가 가는 곳에서는 자기를 먹고 자기의 인생을 파괴하고 더러움과 악함 속에서 몸부림치던 자들이 회개하여 주 앞에 돌아오는 그 영혼이 살아나는 일들이 일어나도록 우리를 보내고 있습니다.

주께서 지금 이 대답을 하십니다. 내가 가만히 일을 안하고 있다는 말이냐, 내가 하는 일이 적더란 말이냐, 이것이 사소한 일이냐, 똑같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세상의 권세를 쥐지 않았고 세상의 부나 명예를 갖고 있지 않고 세상의 지식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가는 길에는 틀림없이 내가 존재하는 모든 곳에서 나를 아는 모든 사람 앞에 그 영혼이 주님 앞에 인도되는, 어두운 눈이 떠지는 일, 생명과 진리가 그 마음을 쥐고 흔드는 일이 일어나도록 되어 있습니다. 나를 찾아온 사람이 저 사람은 다르다 저 사람은 내가 안 가진 것을 갖고 있다. 저기에만 분명히 답이 있다 하고 나와야 하는데 우리가 거꾸로 어떻게 하면 돈벌죠라고 묻고 있는 것과 똑같습니다.

저희 애를 가르치고 계신 학교 선생님이 신앙이 좋은 분입니다. 저희 집사람이 애 때문에 담임 선생님을 만나러 갔습니다. 아이가 덜렁거려서 시험지 앞장만 풀고 뒷장은 안해서 걱정이 돼서 간 겁니다. 그런데 그 선생님이 제가 목사인 것을 알고 제 아내에게 어떻게 하면 신앙이 좋아지느냐고 자꾸 묻더랍니다. 제 아내는 자꾸 묻습니다. 어떻게 하면 제 아이가 공부를 열심히 할 수 있느냐고 담임 선생님이 거꾸로 위로를 합니다. 공부야 조금 못하면 어때요. 신앙이 중요하죠 하면 우리 애가 저렇게 공부하면 진학을 못하겠죠 합니다. 망신입니다. 상대방이 얼마나 당황하고 실망했겠습니까? 알고 보면 신자들도 믿는다 믿는다 하면서도 우리와 똑같은 것에 관심을 갖고 있고 우리와 똑같은 것을 갖고 쩔쩔매고 있구나. 저들이 예수 믿는 것은 우리가 답답할 때 점보러 가는 것하고 똑같구나, 이렇게 될 것 아닙니까.

오늘날 서울 바닥만큼 교회 많은 곳이 어디 있습니까. 그리고 교회마다 사람이 어쩌면 그렇게도 많이 옵니까? 심심해서 놀러 온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분명히 우리의 영혼에 갈증이 있습니다. 여러분 가짜가 아닙니다. 틀림없이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세상이 주는 것 가지고는 안된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건성으로 배우고 있습니다. 신자가 되는 법보다는 그저 이렇게 믿는 것이라고 한다. 이런 식으로 면역이 들어가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때는 세상 사람들의 지혜를 구합니다. 어떻게 해야 하느냐 답을 내릴 때도 결국은 세상 방법을 택해버리고 맙니다. 신자가 가지는 것, 어떻게 하면 우리 그림자라도 한 번 볼까 이런 식을로 우리가 대접을 받고 있지 못합니다. 어떻게 하면 저 예수 믿는 사람 집 옆으로 이사를 갈까, 어떻게 하면 교회 옆으로 이사를 갈까 그래야 되는데 지금은 교회가 들어온다고 하면 돌을 던집니다. 어떻게 하다가 이렇게 됐습니까? 교회가 갖는 생명의 양식이 고갈됐기 때문에 그럽니다. 교회가 가진 빛과 생명이 없기 때문입니다. 건물만 덩그러니 있고 해골끼리만 왔다 갔다 하니까 싫은 겁니다. 누가 교회 옆에 오는 것을 좋아하겠습니까.

이 초대교회의 모습은 분명히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특권이고 요구하고 계시는 모습입니다. 여러분의 신앙을 스스로 점검하십시오. 여러분이 여러분이 아는 모든 사람들 가운데 어떤 의미에서 유일하고 존귀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나누어 줄 자로 부름 받은 청지기인 것을 인식하십니까? 여러분 때문에 여러분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은혜를 입고 있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여러분이라는 통로가 막히거나 휘거나 끊어져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그것은 사명일 뿐만 아니라 우리 존재의 이유이고 놀라운 자랑거리입니다. 그것이 아니라면 우리는 사실 살아있을 필요가 없는 사람인 것을 인식하고 있습니까 인정하십니까. 인정하셔야 할 뿐만 아니라 놓치지 않으셔야 됩니다. 두고 보십시오. 앞으로 우리나라는 돈 때문에 고생할 것입니다. 여러분 자녀에게 절대로 돈을 남겨주지 마십시오. 살아 생전에 돈 남기지 말고 다 쓰고 가십시오. 절대로 돈을 남겨주지 마십시오, 싸웁니다. 사람을 싸우게 하려면 돈 주면 됩니다. 교회는 언제 싸우느냐, 교인 많아지고 재정이 풍부해지면 싸웁니다.이 돈을 어디다 쓸까 하면 꼭 싸웁니다. 모자라면 절대 싸우지 않고 기도합니다.

여러분 돈 있을 때 친구 찾아가게 되나요? 아닙니다. 좋은 소리, 따뜻한 말을 안하게 됩니다. 돈이 우리를 행복하게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뭐에 미친 사람처럼 돈에 희롱당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가질 것은 돈이 아니요 권세가 아니요 생명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의 권리들, 책임들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소유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 많은 사람들이 여러분에게 와서 이렇게 물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옥에 갇혔는데 밤에 지진이 나서 옥문이 열렸습니다. 그래도 사도 바울과 실라가 도망가지 않고 그대로 있었음에도 옥문지기는 죄수들이 탈옥한 줄 알고 자결을 하려고 합니다. 바울과 실라가 그가 줒지 못하도록 합니다. 그 사람이 깜짝 놀라서 묻습니다. 내가 어찌해야 합니까? 내가 어떻게 해야 구원을 얻습니까? “밤중쯤 되어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미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이에 홀연히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 간수가 자다가 깨어 옥문들이 열린 것을 보고 죄수들이 도망한 줄 생각하고 검을 빼어 자결하려 하거늘 바울이 크게 소리질러 가로되 네 몸을 상하지 말라 우리가 다 여기 있노라 하니 간수가 등불을 달라고 하며 뛰어들어가 무서워 떨며 바울과 실라 앞에 부복하고 저희를 데리고 나가 가로되 선생들아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 하거늘.” (행 16 : 25-30)

이것이 얼마나 대단한 내용인지 아시겠습니까. 사회적 지위를 이제 잃게 되었습니다. 그가 여태껏 의지하고 믿고 살던 지위도 뺏기게 되었습니다. 간수는 탈옥한 죄수가 생기면 그 자리를 빼앗기고 책임을 지고 형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죽을 결심을 합니다. 그렇게 절박합니다. 그런데 감옥에 갇혀있던 사람들이 도망을 안 갔습니다. 얼마나 이상합니까. 이 사람들은 도대체 어떻게 사는 사람들이기에, 무슨 생각을 하며 사는 사람들이기에 감옥에 갇힌 것이 걱정이 안되는 사람들입니까. 당신들은 도대체 무엇을 믿고 살며 무엇을 위해서 살며 어떤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들입니까? 내가 풀지 못한 해답을, 내가 풀지 못했던 이 짐을 벗겨 주시오. 이것이 선생들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라고 한 질문의 핵심입니다.

답은 단 하나입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이것이 우리의 답입니다. 우리밖에 내놓지 못하는 답입니다. 이 답을 우리가 갖고 있고 믿습니다. 이미 우리가 소유하고 누리고 있습니다. 왜 나눠주지 못합니까. 집집마다 문 두드려 예수 믿으라고 그러라는 것 아닙니다. 여러분을 보고 다른 사람들이 놀래야 됩니다.

선생들아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을까요. 그렇게 묻게 만들어야 됩니다. 저사람은 다르다. 저 사람은 정말 영원을 준비하는 사람이다. 이 세상이 전부가 아니다. 저 사람은 돈으로 행복을 주고 팔고 사지 않는다. 저 사람은 세상의 권세나 세상의 유행으로 사람이 갖고 있는 행복, 저 사람이 갖고 있는 평안, 저 사람이 갖고 있는 목표, 내용, 가치 이런 것이 전부 다른 것이다. 그것이 무엇이냐 묻게 만드셔야 됩니다.

여러분을 한 번 만나는 것이 저들에게 영광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을 한 번 불러서 말 한 번 같이 나누는 것이 저들에게 커다란 상급이어야 됩니다. 여러분의 모습입니다. 이 특권과 자랑을, 그리고 여러분의 인생에 중차대한 이 직분을 놓치지 마십시오. 누리고 마십시오. 여러분을 통해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사역들을 경험하면서 사십시오. 떳떳하게 사십시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여러분과 의논해서 하실 것입니다. 신자 된 영광과 특권을 빼앗기지 말고 사시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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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820 시편 거짓과 아첨하는 입술 시12:1-8  한태완 목사  2011-02-04 2807
» 사도행전 사도들 -표적과 기사 행5:12-16  박영선 목사  2009-06-20 2807
15818 빌립보서 뒤엣 것은 잊어 버리라 빌3:13-16  조용기 목사  2008-05-13 2807
15817 창세기 풍요의 갈대아 우르와 약속의 가나안 땅을 맞바꾼 아브라함 창12:1-5  김경형 목사  2013-02-16 2806
15816 갈라디아 심는대로 거두리라 갈6:7-8  강종수목사  2012-01-08 2806
15815 시편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시121:1-8  조용기 목사  2011-11-09 2806
15814 시편 버려야 할 것과 찾아야 할 것 시77:1-20  이한규 목사  2013-01-07 2805
15813 마태복음 [팔복3] 애통하는 자의 복 마5:4  김동명 목사  2011-07-13 2805
15812 마태복음 내가 누구냐? 그러면 너는 누구냐? 마16:13-28  이정수 목사  2010-09-18 2805
15811 누가복음 큰 은혜를 예비하는 3대 자세 눅2:21-35  이한규 목사  2009-12-31 2805
15810 야고보서 말의 힘 약3:2-12  조용기 목사  2011-03-03 2804
15809 마태복음 우리는 언제나 예수님께 시선을 집중합니다. 마14:22-33  김필곤 목사  2010-04-06 2803
15808 갈라디아 짐을 서로 지라 갈6:1-18  우제돈 목사  2010-03-24 2803
15807 창세기 가정의 위기에 대한 존재의 용기 창1:26~28  이정수 목사  2012-07-19 2802
15806 마가복음 마음의 광풍 다스리기 막5:1-20  김필곤 목사  2010-08-21 2801
15805 사도행전 우리는 부활의 증인으로 살아갑니다. 행2:22-32  김필곤 목사  2010-04-06 2801
15804 열왕기상 하나님의 음성 왕상19:9-14  우제돈 목사  2010-03-11 2801
15803 요한복음 다른 보혜사 성령님 요14:16~18  조용기 목사  2009-11-09 2801
15802 아가 겨울이 깊으면 봄이 온다 아2:10-14  이상호 목사  2011-11-02 2800
15801 출애굽기 앞서 준비하시는 하나님 출4:26-31  김필곤 목사  2011-03-15 2800
15800 디모데후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딤후3:14-17  한태완 목사  2007-11-23 2800
15799 마태복음 예수의 제자로 산다는 것 마16:21-28  정용섭 목사  2010-03-30 2799
15798 시편 감사로 드리는 제사 시50:23  김동호 목사  2012-09-15 2798
15797 갈라디아 은혜 안에 사는 축복 갈4:21-23  이한규 목사  2012-05-09 2798
15796 요한복음 포도나무와 가지 요15:1-8  조용기 목사  2009-04-20 2798
15795 출애굽기 하나님 나라의 헌법 십계명/안식일 출20:8-11  김필곤 목사  2011-05-20 2797
15794 마태복음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와 팔복 [10] 마5:3-12  김형국 목사  2009-05-27 2797
15793 창세기 하갈의 하나님, 그리고 사라의 하나님 창16:7-16  최만자 자매  2007-12-18 2797
15792 데살로전 항상 기뻐하십시오-우주 공동체의 발견 살전5:16-18  오강남 교수  2004-08-27 2797
15791 사무엘상 다윗이 다윗된 것은 삼상16:13-23  강문호 목사  2013-03-18 2796
15790 요한복음 자녀의 권세 요1:12-13  김동호 목사  2011-04-21 2796
15789 마태복음 천국의 열쇠(4) 마16:13~20  김동호 목사  2010-05-10 2796
15788 요한계시 교회들의유형2- 말세교회들의 모습(사,빌,라) file 계3:장  강종수 목사  2004-09-19 2796
15787 데살로전 하나님께 마음을 두라! 살전2:1-8  정용섭 목사  2011-11-09 27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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