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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데반의 설교

사도행전 박영선 목사............... 조회 수 3043 추천 수 0 2009.06.20 15:2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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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행7:51-53 
설교자 : 박영선 목사 
참고 : 사도행전 042 / 1989.01.22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가 항상 성령을 거스려 너희 조상과 같이 너희도 하는도다 너희 조상들은 선지자 중에 누구를 핍박지 아니하였느냐 의인이 오시리라 예고한 자들을 저희가 죽였고 이제 너희는 그 의인을 잡아준 자요 살인한 자가 되나니 너희가 천사의 전한 율법을 받고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하니라.”  사도행전 7 : 51-53

오늘 원래 본문은 2-50절까지 이르는 스데반의 설교입니다. 그러나 너무 길기 때문에 생략하고 51-53절까지만 대표 구절로 봉독했습니다. 스데반의 설교가 이렇게 성경에 길게 기록된 이유가 있고 오늘부터 시작해서 몇 번에 걸쳐서 이 스데반의 설교를 우리가 자세히 파헤쳐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설교를 기점으로 해서 드디어 그 동안 유대주의 속에 민족적 종교로밖에 이해되지 못하던 하나님의 신앙이 드디어 세계적인 기독교로 확산하는 교리적인 틀을 갖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유대인들이 기독교도가 되지 못한 이유가 무엇이고 우리 기독교와 같은 뿌리를 가지면서도 유대교와 결별해야 했던 이유가 무엇인가를 오늘 이 설교 속에서 밝혀야 됩니다.

유대교라는 것은 우리 기독교도 쪽에서 볼 때는 중요한 이단으로 분류해 놓았습니다. 기독교가 가진 구약과 유대인들이 갖고 있는 구약은 똑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그들을 왜 이단으로 분류하느냐 하는 것도 분명히 알아야 되고 또한 이단이 될 수밖에 없었던 그 성경 해석의 어떤 틀린 시각들, 오늘날 우리에게도 있을 수 있는 것을 조심하는 의미에서도 분명히 이 설교 내용을 정확하게 파악해야 됩니다.

스데반의 설교를 보면 뜻밖에도 마지막 부분이 돌연하게 끝나는 것같이 되어 있습니다. 맨 처음 이 이스라엘의 시조인 아브라함부터 시작해서 이스라엘 역사를잘 더듬어 내려오는 것 같다가 돌연하게 끝납니다.

그 이유는 이스라엘 역사를 전체적으로 살펴보자는 것이 아니고 스데반 설교의 가장 중요한 초점인 아브라함과 모세를 들어서 이스라엘 백성이 아브라함과 모세를 어떻게 이해하느냐와 기독교 입장에서는 아브라함과 모세를 어떻게 이해하느냐가 가장 큰 문제가 되기 때문에 아브라함과 모세를 중심으로 해서 거기에 연결된 몇 가지만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서 꺼내고 있기 때문에 설교의 내용이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쭉 위에서부터 살펴오다가 나중에 숨이 차서 중단한 것이 아니고 분명한 목적과 이유가 있어서 이 설교를 이렇게 한 것임을 기억해야 됩니다.

아브라함과 모세가 등장하는 가장 큰 이유로 아브라함을 유대인들은 선택이라는 의미에서 저들의 민족주의와 저들의 희망에 가장 중요한 근거로 놓고 있습니다. 그들이 갖는 선민사상의 최고의 근거가 되는 인물이 아브라함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불러내셨다는 것이 저들의 신앙과 사상에 있어 민족적 우월감과 함께 모든 사고의 가장 커다란 기초가 됩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이 논쟁의 중요한 인물로 등장을 하고 그 다음 모세가 등장하는데 모세는 모세에게 준 율법 때문에 등장을 합니다. 이 두 가지 사건이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저들의 유대주의라는 것을 만들어낸 특별한 의미가 있는 두 인물이 되고 오늘날 기독교도들 쪽에서 보자면 아브라함과 모세를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서 유대주의가 될 수도 있고 기독교도가 될 수도 있다는 차원에서 이 두 인물을 성경적인 올바른 해석을 해야 될 필요를 느끼는 것입니다.

먼저 우리가 생각할 것은 아브라함이란 유대인들의 해석에 의하면 이런 인물입니다. 하나님이 많은 사람들 중에 아브라함을 불러 그를 이 민족의 시조로 삼아 그 후손으로 이스라엘이라는 민족을 이루셨습니다. 아브라함을 왜 선택했느냐 하면 사람들 중에 제일 잘나서 불렀다는 뜻입니다.유대인들의 생각에는 자기네들은 우수 품종이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너희와 다르다고 합니다.  이것이 스데반이 아브라함을 꺼내 좋고 공격을 해야 되는 이유입니다. 유대인들의 유대주의적 발상, 저들이 다른 민족과 다르다는 선민사상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럴 때 다른 민족보다 우월한 민족이며 하나님 보시기에 유일하게 합격점에 든 사람이 아브라함이었고 그래서 그 후손으로 우리를 피가 섞이지 않도록 우수한 품종으로 하나님이 기적과 재혜로 간섭하여 오늘날까지 이르게 했다고 믿는 것이 유대주의 의 중요한 근본 사상인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중요합니다.

그 다음은 모세입니다. 모세를 통하여 율법을 주는 것입니다. 율법을 왜 주었습니까? 쉽게 이야기해서 이런 뜻입니다. 너희들은 학교 가봤자지만 우리는 학교 가서 공부할 만한 실력이 있기 때문에 율법을 줬다는 것입니다. 율법은 지키는 것 이전에 너희는 율법을 주어봤자꽝이고 우리는 율법을 주면 도움이 되기 때문에 줬다는 것입니다. 율법이 명령이기 이전에 율법을 받을 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이었다라는 것이 율법에 대한 저들의 해석이고 그래서 그것이 유대주의를 만들어 낸 중요한 하나의 근거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스데반이 이제 아브라함과 모세라는 두 인물을 가장 중요한 논쟁의 초점으로 놓고 풀어 나갑니다. 아브라함이 실력이 있는 사람이어서 하나님이 모든 사람 중에 아브라함을 선택하고 우수 품종으로서 다른 열성 종족들하고 잡종이 되지 않게 지켰다고 하자. 그러면 기근이 들었을 때 왜 아브라함이 애굽으로 도망가야 됐으며 말하자면 그것이 이제 확대되어 왜 남의 땅에 가서 종 노릇을 했어야 되느냐입니다. 너희들이 우수 종족이라면 기근이 났을 때 너희가 땅을 개간하고 어떻게 치산치수를 잘해서 너희만 곡식이 있고 애굽니 너희 나라에서 곡식을 얻어먹고 종 노릇을 했어야 맞지 어떻게 너희가 우수 품종이고 너희가 다른 민족보다 나은 족속이었다면 기근이 들었을 때 너희가 애굽에 내려가야 했고 애굽에서 400년이나 종 노릇을 해야 됐었냐? 이래도 아브라함이 다른 사람보다 우수한 품종이었고 너희가 그 후손이었기 때문에 다른 민족보다 우수한 족속이란 말이냐? 하며 이렇게 사실은 꼬집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문제에 누가 등장하느냐 하면 요셉이 등장을 합니다. 그래서 요셉이 애굽에 가서 총리가 되지 않았느냐? 비록 팔려갔지만 거기서 우리 종족이 총리가 돼서 결국 그때 흉년을 면하게 한 것은 요셉 아니냐? 라고 얘기하고 싶겠지만 야! 요셉을 너희가 보냈냐? 팔아 먹지 않았느냐? 너희가 요셉을 팔아먹고 시기해서 내쫓았고 요셉이 그 땅에 가서 한 것을 너희가 준비하거나 너희가 배려하거나 너희가 노력해서 한 것이 아니고 그가 한 모든 일도 너희 실력이 아니지 않느냐? 그래서 요셉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과 요셉 사건이 같이 등장을 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 모세 문제는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35, 36절을 보십시다. “저희 말이 누가 너를 관원과 재판장으로 세웠느냐 하며 거절하던 그 모세를 하나님은 가시나무떨기 가운데서 보이던 천사의 손을 의탁하여 관원과 속량하는 자로 보내셨으니 이 사람이 백성을 인도하여 나오게 하고 애굽과  홍해와 광야에서 사십 년간 기사와 표적을 향하였느니라.”

자, 모세가 민족의 구국 영웅이고 이스라엘 민족 쪽에서 보면 잊을 수 없는 사람입니다. 게다가 하나님이 그의 손을 의탁하여 이스라엘 백성에게 율법을 주었습니다. 이것은 지금 스데반의 설교에 의하면 율법을 받았다는 것 때문에 다른 민족보다 우리가 우월하다라고 생각을 하고 있는데 그럼 율법을 받아서 갖다 준 사람은 너희 민족 중에서 제일 우수한 사람이었지 않았겠느냐는 말입니다.

만일 우리 중에 누가 하나님 앞에 무엇을 받으러 간다면 우리 중에서 반장이 갈 것입니다. 우리 반장은 그 중에서 제일 나은 사람일 것입니다. 그 나은 사람을 하나님이 볼 때 나은 사람이라고 뽑은 사람이었느냐? 너희가 뽑은 난 사람이었느냐는 말입니다. 모세를 너희가 거부하지 않았느냐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모세를 지도자로 보내자 그들이 다 거절했는데 그래도 너희가 우수 종족이며 너희가 다른 민족보다 나아 하나님이 너희를 택했다는 말이 나오느냐?

아니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여기 그 내용이 나오는 것입니다. 모세를 너희가 키웠느냐는 것입니다. 모세를 누가 키웁니까? 바로의 딸, 원수가 키웁니다. 너희가 모세를 키우지도 않았고 오히려 방해까지 했고 거부했습니다. 하나님이 너희를 억누르고 있던 그 원수의 본부에서 키웠습니다. 바로의 공주의 집에서 키워서 민족의 지도자로 세워 그의 손으로 율법을 받아다 주게 했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스데반이 이 이스라엘 역사의 가장 중요한 아브라함과 모세를 들먹이면서 하는 얘기는 너희들이 아브라함과 모세를 오해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선민이다. 우리는 우수 종자다. 우리는 율법을 하나님이 주실 만큼 괜찮은 사람들이다 합니다. 너희는 절대 그런 인물이 아니다. 너희가 다른 민족보다 낫거나 다른 사람보다 낫지 않다. 너희에게 그것이 허락된 것은 하나님이 너희를 불쌍히 여기셨기 때문이다. 뒤에 와서 하는 얘기가 그것입니다.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가 항상 성령을 거스려 너희 조상과 같이 너희도 하는도다 너희 조상들은 선지자 중에 누구를 핍박지 아니하였느냐 의인이 오시리라 예고한 자들을 저희가 죽였고 이제 너희는 그 의인을 잡아준 자요 살인한 자가 되나니 너희가 천사의 전한 율법을 받고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하니라.” (행 7 : 51 - 53 )

너희가 우수하다는 것을 무엇으로 증명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한 번이라도 너희가 너희 된 위치를 차지할 만한 짓을 한 적이 있으며 아니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을 들은 적이 있으며 그 말을 전한 자들을 환영한 적이라도 있었느냐? 너희가 뽐내고 너희가 옳다고 하고 너희가 잘났다고 할 무슨 근거가 있으며 실적이 있느냐? 이것이 스데반의 설교의 핵심입니다. 이 지적이 얼마나 아팠느냐 하면 유대 민족은 그때 로마의 속국이었습니다. 로마가 다른 나라를 식민지로 한 다음 편 정책 중에는 종교와 자치제를 다 인정합니다. 단 로마 정부가 총독으로 전체의 최종적인 결제를 하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유대인들이 반대해서 죽일 때도 죽이기로 다 결정했지만 저들이 그 집행을 못하고 로마 총독으로 와 있던 빌라도에게 재가를 받고 사형 집행도 로마 군인들의 손에 의하여 합니다.

그런데 이 때는 너무 약이 올라 스데반을 그냥 붙잡아다 성문 밖으로 끌고 가서 돌로 쳐죽입니다. 왜그렇습니까. 유대 민족에게 있어서 이 지적은 그들의 전 사상과 전 자랑의 근거와 발 디디고 서 있던 기초를 흔드는 것이기 때문에 그 말을 차마 용납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야말로 내가 기독교 신앙을 정당하게 갖고 있느냐 아니면 착각하고 있느냐를 알아보는 가장 중요한 설교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신앙을 이런 식으로 점검하셔야 됩니다.

여러분이 유대주의적 발상으로 기독교를 알고 있으면 이런 문제가 생깁니다. 자랑과 절망이 있습니다. 자랑과 절망이란 둘 다 나를 근거로 했을 때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나를 근거로 해서 하나님이 나를 그원하셨다는 것을 믿습니다. 십자가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원하셨다는 것을 믿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러나 거기 이런 생각이 있습니다. 나는 믿었는데 저 원수는 안 믿는단 말입니다. 왜 그랬겠느냐? 하나님이 저 원수보다 낫기 때문에 벌써 나를 구원하셨을 것이다라는 생각이 들면 틀린 것입니다. 저 사람은 왜 아직 구원을 못 얻었느냐? 아직 때가 아니거나 아직 무슨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나는 왜 구원을 얻었냐? 하나님이 나를 불쌍히 여기셨기 때문입니다. 마치 이것과 같습니다.

6.25 사변이 터지자 미국에서 구호 물자가 무지무지하게 날아왔습니다. 그래서 국민학교 다닐 때 학교에서 제일 좋은 옷을 입은 애는 고아원 아이들이었습니다. 그때 구호 물자는 우리나라에서 최고로 잘사는 사람이 입은 옷보다 좋았습니다. 그래서 그때는 좋은 옷을 입으려면 그 조건은 부모가 없을 것, 최고로 가난할 것입니다. 우리가 만일 더 많은 믿음과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것이 있다면 우리가 더 못났기 때문이었다라고 성경은 얘기하는 것입니다. 만일 이 사상을 놓친다면 우리는 끊임없이 내가 은혜를 입을 만했다, 사란을 받을만했다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여기에는 자랑이 있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사랑을 이렇게 받아냈노라. 이렇게 이쁜 짓을 했더니 하나님이 나를 구원해 주셨다는 것은 넌센스입니다.

대표적인 예로 신명기 5장의 사건이 나옵니다. “너는 기억하라 네가 애굽 땅에서 종이 되었더니 너의 하나님 여홍와가 강한 손과 편 팔로 너를 거기서 인도하여 내었나니 그러므로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를 명하여 안식일을 지키라 하느니라.” (신 5 : 15 )

이것은 굉장히 중요한 공식입니다. 왜냐하면 안식일이란 계명은 안식일을 범하면 돌로 쳐죽이기로 되어 있었으므로 아주 중요한 계명입니다. 안식일을 지키면 구원을 주겠다가 아니고 너희를 구원했으니까 안식일을 지키라는 것입니다.

이 순서를 잊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우리가 구원받을 만해서 구원하시는 것이 아니고 죄인 된 우리에게 계명을 제시하시고 이것을 지키는 자는 내가 구원해 주겠다라고 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를 구원하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삼았기 때문에 이제 율법이 등장을 하는 것입니다.

율법은, 너는 지킬 만 하다든가 너는 다른 사람보다 잘났다라는 의미에서 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베푸실 구원과 은혜를 베푼 대상이기 때문에 요구하는 것입니다. 공부를 잘하면 학교를 보내준다가 아니라 학교를 보내주었으니 공부 잘하라는 것입니다. 이 순서를 잊지 마십시오. 이것은 우리에게 굉장히 많이 있는 실수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오늘 어떤 마음으로 오셨습니까? 혹시 여러분 중에 좌절과 절망과 처절한 마음이 있으신 분이 있습니까? 여러분이 기억하셔야 되는 것은 우리가 어떤 마음과 어떤 위치와 어떤 절망 속에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것은 그것으로 인하여 방해받지 않습니다. 이것이 다윗의 멋있는 고백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이 고백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해주시는 것이 내가 그것을 받을 만하냐 못하냐를 근거로 해서 이루어지지 아니하고 그의 선하심과 그의 은혜로우심과 그의 자비하심을 따라 이루어 지는 것입니다. 신앙이란 하나님 앞에 빈 마음으로 쫓아나갈 수 있는 그 마음입니다. 내가 이만큼 헀으니 여기 맞는 것 만큼 주십시오가 아닙니다.

그런 생각이 드는 한 그것은 유대주의입니다. 어느 나라나 민족신화라는 것이 있습니다. 자기 민족이 다른 민족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우리나라 같으면 단군 신화입니다. 누가 낳았습니까? 곰이 낳습니다. 곰 그러면 우스워보이지만 그 속에 얼마나 교묘하게 우리 민족의 우월성이 감춰져 있는지 아십니까?

원래는 누구하고 누구하고 인내하게 되어 있습니까? 곰하고 호랑이하고 둘이 마늘만 먹기로 되어 있었는데 곰은 견디었습니다. 그러니까 도망간 호랑이의 후손이 아니고 견딘 곰의 후손이라는 것입니다. 일본 신화는 어떻게 되어 있는지 아십니까? 그 건국 시조가 와 보니까 바다에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저쪽 북해도의 땅을 하나 영차 끌어오고 저쪽 남태평양에 가서 땅을 하나 영차 끌어와서 섬을 4개 모아다 오늘날의 일본을 만들었다 합니다. 그 얼마나 센 신입니까. 그 시조가 얼마나 셉니까. 제일 좋은 땅을 하나씩 먼 데서 끌어가지고 아직도 기초를 못 잡고 아직도 흔들흔들 하는게 흠이지만 그렇게 했다는 것입니다.어느 나라나 건국 신화를 보면 그 민족 신화는 전부 우리 민족은 너희 보다 낫다는 것입니다. 너희보다 낫다. 지금 유대인이 갖는 것이 그 생각입니다.

그 나은 것을 구체적으로 무엇으로 알 수 있느냐? 아브라함을 여러 사람 중에 선택했고 모세를 일으켜 우리에게 율법을 줬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끊임없이 이 얘기를 그것은 너희가 우월하다는 뜻이 아니다고 합니다.

요한복음 8장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저희가 대답하되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남의 종이 된 적이 없거늘 어찌하여 우리가 자유케 되리라 하느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종은 영원히 집에 거하지 못하되 아들은 영원히 거하나니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케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하리라 나도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인 줄 아노라 그러나 내 말이 너희 속에 있을 곳이 없으므로 나를 죽이려 하는 도다.” (요 8 : 31- 37 )

유대인들에게 너희가 틀렸다라고 얘기하자 금방 무엇을 제기합니까?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다 합니다. 즉 우리가 하나님 앞에 합격점을 받은 시조를 가지고 있고 그렇게 유지된 종교인데 어떻게 우리가 틀렸겠느냐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답이 38절에 이어집니다. “나는 내 아버지에게서 본 것을 말하고 너희는 너희 아비에게서 들은 것을 행하느니라 대답하여 가로되 우리 아버지는 아브라함이라.”

너희는 너희 아비에게 배웠다고 지적합니다. 너희 아비가 틀렸다는 말입니다. 이에 대해 우리 아버지는 아브라함이다. 틀릴 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면 아브라함의 행사를 할 것이어늘 지금 하나님께 들은 진리를 너희에게 말한 사람인 나를 죽이려 하는도다 아브라함은 이렇게 하지 아니하였느니라 너희는 너희 아비의 행사를 하는도다 대답하되 우리가 음란한 데서 나지 아니하였고 아버지는 한 분뿐이시니 곧 하나님이시로다.” (요 8 : 39b - 41)

이제는 하나님까지 갖다 붙입니다.아브라함을 지금 뭘로 갖다 씁니까?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모든 사람 속에서 구별해 선택하지 않았습니까?그에게만 합격점을 주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그의 종족을 순수하게 여기까지 이어오지 않았습니까? 우리가 틀렸을 리가 없습니다. 우리가 틀렸다면 아브라함이 틀린 것이 되고 아브라함을 틀렸다고 하면 아브라함을 합격자라고 불러낸 하나님도 틀리는 것이 됩니다. 이렇게 저들은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에 주님은 너희를 하나님이 부른 것은 너희가 다른 사람들 보다 낫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이 너희를 불쌍히 여기고 사랑해서 복 주시려고 부른거다. 불렀으니 이제 말을 들어라. 그러나 유대인들은 부름을 받은 것 보니 우리가 옳고 잘났음에 틀림없다.우리 말을 들어라 합니다.

어떻습니까? 이것이 무엇을 방해합니까? 우리 마음의 평안꽈 기쁨을 빼앗아 갑니다. 왜 그렇습니까? 나를 근거로 해서 자랑도 있고 나를 근거로해서 절망도 있기 때문입니다. 신자가 흔들리는 가장 큰 이유는 자기를 근거하고 있을 때입니다. 신자가 평안과 기쁨이 어느때나 가능한 이유가 뭐냐 하면 나를 근거로 하지 않고 우리를 사랑하시고 복 주기를 기뻐하시는 선하신 하나님을 내가 나의 주인으로 모시고 있는 것으로 한다면 어느 자리, 어떤 환경, 어떤 사건에서도 우리를 절망케 할 것이 없습니다. 이것이 로마서 8장의 기록입니다.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롬 8 : 31, 32 )

하나님은 우리가 죄인이었을 때 사랑하셨다는 것입니다. 그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박기까지의 희생을 감수하고도 우리를 사랑하고 우리 편을 드셨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저지른 어떤 실수와 어떤 죄악도 그때만은 안한거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그 희생을 치러서 사랑했다면 나머지 일들은 하나님의 방해할 것으로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흘리셨는데 그 희생보다 더 큰 희생은 남은 것이 없습니다. 더 큰 방해물이 없습니다.

여러분들이 잠시 실수한 것, 잠시 술 먹고 마누라 때린 것 뭐든지 좋습니다. 어떤 실수, 어던 잘못을 했다 할지라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을 것이 없습니다. 이것이 신앙의 근거입니다. 하나님이 나는 구원시켜 줬다. 난 다르다. 이렇게 되기 시작하면 그 마음에 평강이 없습니다. 자랑이 있고 그리고 곧 절망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구원시켜 줬다는 것이 자랑과 심판으로 쓰여지고 있는가? 내가 교회를 나오고 있다는 것이 자랑과 심판으로 쓰여지고 있는가. 여러분이 스스로 점검해  보셔야 됩니다. 그것이 다 감사로 있는가 보십시오.

이렇게 큰 교회가 되면 한 가지 큰 문제가 있습니다. 큰 교회가 요즈음 자꾸 생기는 가장 큰 이유는 숨기 좋아서입니다. 우리가 만일 20명밖에 없는 교회였다면 어떻게 안 나올 수 있습니까. 그런데 큰 교회 정도라면 나왔는지 안 나왔는지 누가 압니까. 이것은 완전히 잘못 생각하신 것입니다. 교회에서의 봉사, 교회에 깊이 참여하는 것은 그것 자체가 복입니다. 여러분은 매우 지혜로운 것같이 생각해서 느지막히 와서 헌금이나 내고 갑니다. 그건 또 안 내면 큰일나는 걸로 알고 있으니까 우리나라 사람들은 헌금 내고 얼른 도망가는 것이 무슨 잘하는 짓인 줄 알고 몹시 떳떳한 얼굴을 하고 계시는데 세상에서 가장 잘못하는 짓입니다. 이것은 학교 와서 선생님 눈 피해 자다 가는 것과 똑같습니다. 숙제 안해 오고도 매 안 맞고 가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무식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가능한 한 작은 교회에 다니셔야 됩니다. 왜냐하면 교회가 크다 작다의 문제가 아니라 여러분의 신앙이 점검되도록 하셔야 됩니다. 만일 우리 교회가 꼭 좋으시거든 여기서 어딘가 봉사를 하십시오. 내가 그것을 안하면 표가 나는 데를 가십시오. 제일 좋습니다. 성가대를 하시든가 각 주일학교 교사를 하시든가 하십시오. 이렇게 그냥 구경만 하고 다니는 것은 여러분을 위해서 굉장히 손해를 보는 것입니다. 왜 그렇게 되었습니까? 

뭐가 복인 줄 몰라서 그렇습니다. 나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건 똑같이 나 아니면 못해 하는 것과 똑같은 생각입니다. 우리의 신앙의 근거가 뭡니까? 유대인들이 가졌던 식으로 아브라함이다 모세다가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것이 우리 신앙의 근거입니다. 주께서 우리를 위하여 이땅에 오셨고 피 흘리셨고 죄 가운데 있는 나를 구원하셨도다. 그리고 지금도 틈만 나면 무슨 핑계를 대서라도 나에게 복을 주시려고 하고 계신다. 내가 잘못하면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나를 위하여 변명하시고 내가 딴 짓을 하려고 하면 우리 마음의 성령님께서 나를 간섭하신다. 이것이 우리의 근거입니다. 아브라함이 아니고 모세가 아니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요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입니다. 이렇게 가만히 있는 것은 그 두 분을 냉장고 속에 넣고 감춘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여러분의 배짱대로 사는 데 걸리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아브라함과 모세를 근거로 한 신앙이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를 근거한 신앙인이라면 예수 그리스도를 어디다 묶어 놓을 수도 없고 외면하고 따로 살 수도 없습니다. 그것이 스데반 설교의 가장 중요한 핵심입니다.

예수를 근거로 하여 여러분의 소망과 자랑과 위로가 있다면 그분을 의지하여 기쁨과 자랑과 승리와 영광을 구하는 열심 있는 일이 피흘리기까지 매진하는 아우성이 있어야 됩니다. 그것이 없다면 우리는 사기꾼입니다. 너희는 틀렸어라고 할 것은 있는데 우리가 근거로 하고 우리가 자랑으로 하고 우리의 힘과 영광으로 취하고 있는 것을 실제로 누리고 맛보고 경험하는 일은 안하고 있는 자인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여러분의 근거이며 자랑이라면 그분으로 말미암은 영광된 신자의 생애를 걷도록 결심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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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80 사도행전 스데반의 생애 행6:8-15  박영선 목사  2009-06-20 2520
1679 사도행전 일곱집사 행6:1-7  박영선 목사  2009-06-20 3509
1678 사도행전 사도들- 공회 앞의 증거 행5:27-42  박영선 목사  2009-06-20 2122
1677 사도행전 사도들 -표적과 기사 행5:12-16  박영선 목사  2009-06-20 2835
1676 사도행전 아나니아와 삽비라 행5:1-11  박영선 목사  2009-06-20 5032
1675 사도행전 베드로와 요한의 설교 행4:5-31  박영선 목사  2009-06-20 2911
1674 사도행전 체포 행4:1-4  박영선 목사  2009-06-20 1738
1673 사도행전 앉은뱅이 행3:1-26  박영선 목사  2009-06-20 4093
1672 사도행전 종말론적 삶 행2:43-47  박영선 목사  2009-06-19 2233
1671 사도행전 죄 씻음과 회개 행2:37-41  박영선 목사  2009-06-19 2848
1670 사도행전 흔들리지 않는 근거 행2:37-42  박영선 목사  2009-06-19 1816
1669 사도행전 새 시대를 여는 설교 행2:32-36  박영선 목사  2009-06-19 1990
1668 사도행전 베드로의 설교 행2:22-36  박영선 목사  2009-06-19 3345
1667 사도행전 오순절 성령강림 행2:1-4  박영선 목사  2009-06-19 3407
1666 사도행전 제자도 행1:8-10  박영선 목사  2009-06-19 2485
1665 사도행전 증인 행1:6-8  박영선 목사  2009-06-19 2647
1664 사도행전 성령강림의 역사적 의미 행1:4-5  박영선 목사  2009-06-19 2772
1663 사도행전 동적인 신앙 행1:1-3  박영선 목사  2009-06-19 3077
1662 스바냐 늦기 전에 해야 할 일 습2:1-3  한태완 목사  2009-06-18 2101
1661 스바냐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습3:17  이한규 목사  2009-06-18 3435
1660 스바냐 배반자의 최후 습1:6  한태완 목사  2009-06-18 1937
1659 스바냐 하나님의 사랑 습3:17  한태완 목사  2009-06-18 2224
1658 스바냐 여호와의 날을 선포한 선지자 스바냐 습1:1-13  한태완 목사  2009-06-18 3816
1657 학개 내일의 영광, 오늘의 격려 학2:1-9  곽주환 목사  2009-06-18 2194
1656 학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 학1장  이한규 목사  2009-06-18 2402
1655 학개 교회는 축복의 전당 학2:6-9, 19  김홍도 목사  2009-06-18 2466
1654 스가랴 우리 교회의 경건 슥7:4-14  오대식 목사  2009-06-18 2188
1653 스가랴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 슥4:6  김양인 목사  2009-06-18 2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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