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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롯 왕

사도행전 박영선 목사............... 조회 수 3662 추천 수 0 2009.06.25 00: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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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행12:18-25 
설교자 : 박영선 목사 
참고 : 사도행전 069 /1989.08.06 

“날이 새매 군사들은 베드로가 어떻게 되었는지 알지 못하여 적지 않게 소동하니 헤롯이 그를 찾아도 보지 못하매 파수꾼들을 심문하고 죽이라 명하니라 헤롯이 유대를 떠나 가이사랴로 내려가서 거하니라 헤롯이 두로와 시돈 사람들을 대단히 노여워하여 저희 지방이 왕국에서 나는 양식을 쓰는고로 일심으로 그에게 나아와 와의 침소 맡은 신하 블라스도를 친하여 화목하기를 청한지라 헤롯이 날을 택하여 왕복을 입고 위에 앉아 백성을 효유한대 백성들이 크게 부르되 이것은 신의 소리요 사람의 소리는 아니라 하거늘 헤롯이 영광을 하나님께로 돌리지 아니하는고로 주의 사자가 곧 치니 충이 먹어 죽으니라 하나님의 말씀은 흥왕하여 더하더라 바나바와 사울이 부조의 일을 마치고 마가라 하는 요한을 데리고 예루살렘에서 돌아오니라”           사도행전 12:18-25

오늘 우리가 생각해볼 말씀은 헤롯 왕의 이야기입니다. 이 헤롯왕의 얘기가 왜 기록됐는가 하는 것은 결론 부분에 가서 신자의 시각에서 어떻게 이것을 취급해야 할 것인가 하는 결론이 나오겠습니다만 우선 시작은 헤롯 왕이 이 자리에 있기까지의 내력을 세상 역사와 연결해서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성경에는 헤롯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는 왕이 네 사람 있습니다. 그 첫 번째는 예수님 나셨을 때 동방 박사들이 별을 보고 찾아왔다가 만난 헤롯, 두 살 이하의 어린이를 다 죽이라는 명령을 내린 헤롯, 그 헤롯을 헤롯 대왕이라 그럽니다. 헤롯 왕가의 첫 왕입니다.

그 다음에 세례 요한의 목을 벤 왕이 헤롯 안티파스입니다. 세번째 오늘 증장하는, 이 베드로를 잡아 가두고 여기서 벌레가 먹어 죽은 헤롯은 헤롯 대왕의 손자가 됩니다. 안티파스의 아들은 아닙니다만 헤롯 대왕의 손자인 헤롯 아그립바 1세입니다. 그리고 나중에 바울이 잡혀서 심문을 당할 때 그 앞에 섰던 아그립바 왕이라고 나오는데 그 사람은 이 아그립바 1세의 아들인 헤롯 아그립바 2세입니다. 그래서 복음서와 사도행전에 걸ㅊ서 헤롯이라는 이름으로 4명의 왕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 유대인의 왕이었던 헤롯은 유대인이 아닙니다. 에서의 후예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잘 아느느 대로 유대인은 야곱의 후손입니다. 에서는 에돔이라 하는 족속의 이름으로 따로 살고 그 이스라엘과 사이가 좋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헤롯은 에돔의 후손입니다. 에돔인입니디. 에서의 후손인데 이제 그 헤롯이 왕이 되고 실권을 잡은 내용을 살펴보기로 하십시다.

당시의 상황에서 유대의 왕이 되는 것은 로마의 제가를 받아양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로마의 지배하에 있고 이 당시는 로마가 온 천하를 통일하고 있을 때입니다. 헤롯의 아버지가 처음으로 유대 지방의 총독으로 임명을 받으므로 인해서 헤롯 왕가의 기틀이 다져집니다.

그리고 헤롯대에 이르러 헤롯이 왕으로 로마 황제의 결정을 받아서 왕가를 이루게 됩니다. 헤롯의 사건을 통하여 우리가 알아야 되는 영적인 사건을 조금 알기 위한 뒷 얘기를 해야겠습니다. 때는 로마의 1차 3두 정치 때입니다. 그 유명한 줄리어스 시저가 통영이 되기 바로 직전입니다.

그때 삼인의 유명한 실권자가 나타납니다. 한 사람 이름은 크라수스고 또 한 사람은 폼페이우스, 그리고 우리가 잘 아는 줄리어스 시저입니다.

시저나 세 사람 다 장군들입니다. 이때는 다 일종의 무단정치를 하는 때고 장군들이 왕권을 잡는 일이 많았을 때입니다. 줄리어스 시저느느 우리가 아는 대로 장군으로 용맹을 떨친 사람이고 크라수스라 하면 여러분이 별로 기억이 안나시겠습니다만 스팔타카스를 지도자로 했던 노예 반란을 진압한 장군입니다. 이 크라수스는 귀족입니다만 돈으로 자기의 정치적 기반을 다집니다. 그런데 돈을 어떻게 벌었느냐 하면 이 얘기를 하려고 합니다. 여러분이 제일 좋아하는 방법으로 했습니다.

당시의 로마는 굉장히 도로가 좁고 불결했습니다. 상류층이 사는 데는 좋고 큰집들이 있지만 대신 귀족 몇 명을 위해서 훨씬 몇십배나 되는 노예가 함께 사는 곳이었고 그리고 일반 농민들도 결국은 귀족들 등살에 못먹고 살아서 다 걷어 치우고 도시로 와서 도시안에 약탈, 강도, 도둑 등이 굉장했었습니다.

귀족계급 쪽은 멋지게 살고 대리석 호화판으로 살고 이미 사우나 시설이 있고 수세식 화장실을 가지고 있었지만 대신 로마시 전체는 엉망진창이었습니다. 그래서 한 번 불이 나면 불을 끄는 것이 아주 어려웠다고 합니다. 이때 크라수스가 바로 소방재를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불이 나면 자기 소방재를 끌고 가서 불을 끄는 것이 아니라 집주인하고 흥정을 합니다. 불난 집을 팔라고 그럽니다.

예를 들면 집이 10억짜리인데 1억을 주겠다 이겁니다. 그러면 주인이 펄쩍 뜁니다. 아니 내가 10억을 준다고 그래도 안 팔았던 집인데 내가 왜 1억에 파느냐 그러면 마음대로 하라고 하면서 소방재를 끌고 가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주인이 발을 구르고 그러면 좋다고 팔겠다고 하면 불을 끕니다. 나중에 돈을 주면 오천만원밖에 안 주는 겁니다. 펄쩍뛰고 아니 당신 1억 준다고 그래놓고 왜 오천만원밖에 안 주느냐 그러면 당신이 한 번 그러는 바람에 갔다오느라고 오천만원 어치 더 탔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악랄하게 집들을 뺏고 수리해서는 다시 제 값으로 팔고 해서는 돈을 벌어 그의 정치적인 기반을 다집니다. 폼페이우스는 당시 서민 출신으로서 서민들의 존경을 받은 명성있는 정치가고 군인입니다.

줄리어스 시저도 장군으로서 그때 해외 원정을 마치고 막 들어와서 원로원과 대치해서 원로원이 너무 힘이 세니까 셋이 손을 잡고 삼두정치 체제를 만들고 로마를 지배하기로 합니다.

그런데 셋이서 누가 더 세다 못하다 할 것 없이 옥신각신 하니까 이제 자기 인기를 높이기 위해서 크라수스는 해외에 반란이 일어나자 그것을 징벌하러 나갔다가 전쟁터에서 죽고 맙니다. 그래서 폼페이우스와 시저만 남았는데 시저가 또 반란군을 진압하러 나간 사이에 폼페이우스가 혼자 남으니까 자기 동상을 세우고 잘난 척을 하고 있는 겁니다. 시저가 개선을 하는 데 들어오지 못하게 합니다. 시저는 여러분이 잘 아시는 “주사위는 던져졌다”라는 명언을 남기고 들이닥ㅊ서 폼페이우스 일당을 몰아냅니다. 그래서 폼페이우스가 이집트로 도망을 갑니다. 거기서 부하의 손에 죽고 맙니다. 시저 쪽에서는 폼페이우스가 살아 있는 한 자기의 지위가 불안하니까 이즙트까지 폼페이우스를 죽이러 쫓아갑니다. 갔더니 이미 죽었고 그를 반긴 것은 크레오파트라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크레오파트라오의 사이에 애를 하나 낳습니다.

그리고 시저는 돌아옵니다. 그때 부르터스 일당에게 죽습니다. 줄리어스 시저가 삼 두 정치 체제로 권세를 쥐고 있을 때에 유대 총독으로 헤롯의 아버지가 임명을 받습니다. 그가 임명을 받는 가장 큰 이유는 그때 세 사람 간에 정치적인 알력이 있으니까 누구의 끄나풀에 속하지 않은 사람을 세우기로 했던 것입니다. 원래는 피지배 민족인 현지인으로 총독을 세우지 않는 법이었습니다. 총독은 언제나 본국에서 파송되는 법인데 그런 정치적인 알력 때문에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헤롯의 아버지가 정치적인 수완이 탁월하지 않았겠느냐? 그래서 총독이 됩니다. 헤롯의 아버지가 자기가 유대 지방의 총독이 되자 아들 헤롯, 우리가 잘 아는 헤롯을 갈릴리 지방의 장관으로 임명합니다. 헤롯이 갈릴리 지방의 장관이 되어 통치를 너무 잘하고 로마의 충성심이 너무 뛰어나서 거기에 나와 있던 로마의 귀족들과 정치가들이 그에게 점수를 많이 주게 되는 계기가 됩니다. 그의 열심이 본국 로마인들과 로마 정치인들보다 더욱 뛰어났던 것입니다.

그런데 시저가 죽은 다음에 부르터스 일당과 시저의 부하였던 안토니우스 사이에 묘한 정치적인 긴장감이 감돕니다. 어떻게 될 것인가? 안토니우스가 먼저 장례를 치르자고 제안을 해서 일단 휴전을 하고 장례를 치르기로 해서 아주 굉장한 장례식을 치르는데 장례식장에 모든 시민들 앞에서 부르터스를 공격해 버립니다.

부르터스와 그의 일당이 반역자로 몰리고 안토니우스가 실권을 잡아 그들을 처치해 버립니다. 그런데 시저의 유언장을 공개해 봤더니 뜻밖에도 그의 양아들인 옥타비아누스가 후계자로 지명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안토니우스는 자기가 다 정권을 휘어 잡았는데 시저의 유언에는 옥타비아누스가 되어 있으므로 안토니우스가 곤란하게 됐습니다. 그런데 그때 옥타비아누스는 그리스에 유학하고 있었고 18살밖에 안됐습니다. 옥타비아누스가 로마로 들어옵니다. 그래서 옥타비아누스, 안토니우스, 레피두투스 세 사람이 제2차 삼두 정치를 하게 됩니다.

그래서 삼두정치를 하는 중에 안토니우스하고 옥타비아누스 사이에 결국 전쟁이 벌어지게 됩니다. 그 두 사람이 실권을 다투고 있을 때에 제1차 전쟁에서, 제1차 3두정치 때 패했던 사람들과 또 부르터스 일당의 잔당들이 시리아 지방과 유대지방을 침공하는 일이 생깁니다. 그래서 그들을 막아내는 일에 헤롯이 많은 공을 세우고 또 본국 정부에서 볼 때도 유대지방은 늘 반란이 일어나고 종교적으로 골치아픈 동네인데 헤롯은 가만보니까 로마에 대한 충성심이 있고 또 알고 보니 유대인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그때 유대 지방에서 늘 일어났던 마카비 전쟁, 유대인들의 민족종교 결사들에 대하여 헤롯이 적당한 방어용이다 그래서 안토니우스와 옥타비아누스가 재가를 해서 드디오 헤롯이 왕이 됩니다.

그래서 헤롯 왕가가 생기는 겁니다. 원래는 본국에서부터 본국인의 총독이 오고 왕도 그쪽 계통의 사람을 세우는 법인데 이런 정치적인 이유로 인해서 헤롯이 드딩 왕이 되느느 것입니다. 그래서 헤롯은 유대인이 아니면서 유대인의 왕이 되었기 때문에 유대인의 환심도 사야 되고 로마 정부에 의해서 임명된 황제이기 때문에 로마의 환심도 사야 되는 그 두 가지 정치적인 줄다리기를 늘 해야만 됐습니다.

옥타비아누스와 안토니우스가 전쟁을 하게 됐을 때 안토니우스가 해외 반란군이 일어나서 반란을 진압하러 이집트에 갑니다. 거기서 누구를 만나느냐 하면 클레오파트라를 만납니다. 거기서 안토니우스가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그 여자한테 푹 빠지고 맙니다. 그런데 클레오파트라는 생각보다 정치적 야망이 있는 사람입니다. 옛날의 그 흥왕했던 이집트의 푸톨레미 왕조를 다시 한 번 재현해보고 싶은 욕심이 있는 사람이어서 안토니우스를 꽉 잡습니다. 안토니우스가 그의 꼭두각시가 됩니다. 거기서 이집트의 왕이 됩니다. 클레오파트라와 결혼을 하고 안토니우스와 이집트의 연합군과 옥타비아누스외 본국 정부와 전쟁이 일어납니다. 가장 큰 실제적인 이유는 이 안토니우스의 부인이 옥타비아누스의 누이입니다. 그런데 거기 가서 클레오파트라 하고 결혼을 해 버리고 자기 누이를 팽개쳤으니 열나게 됐습니다.

전쟁이 일어나서 안토이우스가 패망을 합니다. 헤롯 쪽에서 보자면 더욱 클레오파트라 군이 이기는 날이면 이쪽 유대지방과 시리아 지방까지 옛날 푸톨레미 왕조가 차지했던 그 야망을 갖고 오는 전쟁이니까 헤롯 쪽에서는 옥타비아누스 편을 들 수밖에 없습니다. 마침 또 옥타비아투스가 이기는 바람에 헤롯의 정치적인 기반은 점점 든든해지게 됐던 것입니다.

옥타비아누스는 나중에 이 전쟁에서 승리해서 아우구스투스라는 칭호를 받습니다. 그전까지는 아우구스투스라느느 이름은 신에게만 주어졌던 이름입니다. 존엄한 자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누가복음 2장의 예수님 태어나시는 일을 설명할 때가 바로 그때입니다. 가이사아구스트 때에 하는 아우구스투스 시저 어거스터스 때입니다.

그런 배경을 가지고 헤롯 왕조가 선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도 헤롯이 얼마나 많이 줄타기를 하는가를 보게 됩니다.

우선 12:1을 보십시오. “그때에 헤롯 왕이 손을 들어 교회 중 몇 사람을 해하려 하여 요한의 형제 야고보를 칼로 죽이니 유대인들이 이 일을 기뻐하는 것을 보고 베드로도 잡으려 할새.”(행 12:1-3a)

그는 유대교를 믿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나라를 다스리려면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야 합니다. 지금 이 헤롯 왕은 원래 헤롯 대와의 아들, 안티파스입니다만 헤롯 대왕이 한 큰 일 중의 하나가 예루살렘의 정전을 재건했습니다. 자기는 유대교를 신봉하지 않으면서도 유대인들을 위하여 성전을 재건했습니다. 파괴됐던 성전을, 게다가 가이샤라라는 도시를 만듭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것같이 헤롯이 유대를 떠나 가이샤라로 내려갑니다.

가이샤라란 발음 그대로 시저리아입니다. 시저에게 바쳐진 도시입니다. 시저를 위한 도시, 그의 명성과 존업함을 기리는 도시입니다. 알렉산더 대왕이 이집트에 세운 도시가 알렉산드리아였던 것같이 우리말 번역에는 시저, K자를 따럿 가이샤 이렇게 번역이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가이샤라입니다.

지금 헤롯은 그가 왕권을 갖고 있습니다만 여러 군데 눈치를 봐야 되고 게다가 자기는 유대종교를 믿거나 다른 철학이 있는 것이 아니라 권력과 쾌락밖에 따지지 않는 사람입니다. 가이샤라에 가면 로마풍의 분위기와 로마풍의 사람들이 모여 있고 로마에서 행해지던 모든 쾌락이 있는 도시입니다. 그래서 그리로 갑니다.

거기는 또 누가 기다리고 있느냐 하면 두로와 시돈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럽니다. 이 두로와 시돈은 지중해 연안에 있는 일종의 팔레스타인의 두 도시 국가입니다. 충분한 경제력이 있어서 자치, 자립을 할 수 있는데 단 하난 이 두로시의 약점은 식량이 자체에서 보급되지 않습니다. 상업도시일 뿐입니다.

그래서 식량은 유대에서 갖다 먹어야 됩니다. 돈으로는 꿀리지 않지만 거기서 식량 공급을 중단하면 아주 골치가 아픕니다.

열왕기상 5장에 솔로몬 왕이 성전을 건축할 때 이 두로 왕 히람에게 나무를 보내줄 것을 요헝하는 대목이 나옵니다. 성정과 궁전을 짓기 위하여 좋은 레바논 백향목을 보내주십시오. 그러자 히람 왕이 보내주겠습니다. 필요한 만큼 다 보내주겠습니다. 대신 우리의 소원을 들어서 먹을 것을 보내주십시오. 이것이 그 보상입니다. 먹을 것이 없습니다. 이 동네는 돈을 주고 사면 됩니다만 자체에서는 생산되지 않으니까 그래서 두로와 시돈 사람들은 헤롯하고 사이가 나쁘지만 헤롯하고 친하게 지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헤롯은 여기있는 설명대로 하자면 백성들 앞에 서 있지만 사실 뒤를 돌아가보면 아슬아슬 줄타기를 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로마의 눈치도 봐야 되고 유대인의 눈치도 봐야 됩니다. 두로와 시돈 사람하고는 눈의 가시같이 서로 싫어 하지만 필요에 의해 겉으로는 웃고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백성들도 헤롯을 좋아하지 않지만 해롯에게 아첨떨기 위해서 그의 목소리를 신의 소리같다고 합니다.

이것이 오늘 사건의 개요입니다. 자 성경이 이런 이야기를 왜 우리에게 밝혀야 됩니까? 신자가 같는 제일 큰 유혹이 끊임없이 세상을 향해 눈이 나가는 겁니다. 나도 저렇게 살아 봤으면 나도 저렇게 살아 봤으면 합니다.

옛날에 어려웠던 시절에 어떤 공장의 책임자가 일본에 기계를 사러 갔습니다. 그때 굉장히 큰 돈을 갖고 갔는데 이 사람이 생전 처음 카아지이노에 들어가서 너무 재미있어 하다가 첫날 돈을 많이 잃은 겁니다. 이젠 어떻게 합니까. 다시 복구를 해야 되니까 다음날도 가고 그 다음날도 가다가 일주일 만에 갖고간 돈을 전부 털리고 돌아올 수도 없고 있을 수도 없어 숨어버렸습니다. 나중에 본사에서 사람을 급파해서 그 사람을 잡아왔습니다. 그러나 그 경영ㅈ가 그를 용서하고 또 마음 고생했겠다고 다시 돈을 주어서 감복했다 하는 얘기로 나갑니다만 그 와중에 이런 얘기가 하나 있습니다. 그 얘기를 들은 다른 사람 하나가 재미있었겠다. 그렇죠? 나중은 관두고 일주일 동안 얼마나 재미있었겠어요. 잃어도 자기 돈도 아니고 따며는 다 자기가 갖는 것이고, 그것이 재미있었을까요? 나중에 그가 얼마나 간이 뒤집히고 눈이 돌았겠습니까? 그것이 어디 즐거움이겠습니까?

여러분, 인간이 요구하는 것이 뭡니까? 여러분 하고 싶은 대로 다 할 수 있게 놓아 두었으면 여러분 이빨 하난 제대로 나있겠습니까? 공부를 제대로 했겠습니까? 세수 한 번 제대로 하고 컸겠습니까? 그럴 리가 없습니다. 인간은 그렇게 혼자 놔두어도 괜찮을 만큼의 수준이 아닙니다.

그러나 끊임없이 우리는 나에게 자유가 있다면이라고 합니다.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면 하는 것이 끊임없이 우리를 괴롭힙니다. 성경이 이것을 3장에서 이렇게 꼬집습지다. 세상 사느느 사람들의 그 사는 방법을 이렇게 지적합니다. “내가 여러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저희의 마침은 멸망이요 저희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저희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빌 3:18, 19)

저희의 신이 무엇입니까? 배입니다. 배부른 것이 최고인 것입니다. 뜻밖에도 운동 선수들은, 특별히 권투선수들은 시합 전에 먹지 않습니다. 물론 체중 감량 때문에도 그렇습니다만 마지막 계체량을 하고 난 다음에 시합까지 몇 시간이 있습니다. 그 시간도 먹지 않습니다. 몸놀림이 둔해지고 위로 피가 몰리기 때문에 반사 신경이 둔해진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속에 음식물이 들어 있을 때 배를 맞으면 치명적이랍니다. 그래서 굶고 올라간다는 것입니다.

전문 기사들은 바둑을 둘 때 보통 전날이나 바둑 두는 당일 날은 가능하면 식사를 조금 한답니다. 머리를 맑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여기가 바로 다른 겁니다. 먹는 것이 전부인 사람이야 많으면 많을수록 좋고 먹고 옆구리로 나가는 데가 있었으면 좋겠지요. 계속 목구멍만 통과하고 그래서 아무리 아무리 먹어도 속이 거북하지 않게 하는 것은 그것이 전부인 사람에 한해서 그렇습니다.

그런 면에서 신자는 이 세상이 전부가 아니고 영원을 내다보고 사는 사람입니다. 말하자면 시합을 앞둔 선수요, 시합을 앞둔 전문 기사와 같습니다. 어떻게 먹는 것으로 시간을 다 보내고 먹어서 일어날 틈이 없게 하겠습니까? 그럴 수가 없습니다. 그 마침은 멸망입니다. 패배입니다. 어떻게 가서 싸움을 하며 그에게 맡겨진 목표에 도달하겠습니까? 이렇게 앞을 못보고 있는 것을 우리는 뜻밖에도 끊임없이 부러워합니다. 이것만큼 신자들이 추한 것은 없습니다. 지혜롭지 못한 것입니다.

참 지혜롭지 못합니다. 미국에 가서 제일 꼴보기 싫은 것이 유학을 가면, 지금은 얘기가 달라졌습니다만 왕년에는 유학 온 사람의 대부분이 미군 부대에서 House boy 하던 사람들 아니면 돈 많아서 한국에 더 있을 수 없어서 돈으로 밀려서 온 이상한 공자들뿐이었습니다. 실력있는 사람이 가느느 것이 아니라 그런 이상한 쪽부터 미국 유학을 간 겁니다. 그래서 한국 학생들에 대한 평가가 아주 괴이합니다. 이 사람들이 우수한 민족인지 바보 같은 민족인지 아직도 정답을 못 내리게 된 원인입니다. 신자들이 이 땅을 살면서 그 꼴이 될까봐 겁납니다.

깡통차고 온 사람인지 맨 밥만 달라고 온 사람인지 아니면 세상의 재미와 똑같이 여기서도 그저 재미있으려고 나온 사람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목표를 두고 자기를 절제하고 훈련하는 싸움이 전혀 없습니다. 얼마 전에 어떤 분과 이런 일종의 논쟁이 벌어졌습니다. 신자와 불신자는 누가 더 악한가? 그래서 제가 그랬습니다. 그것은 아무래도 불신자가 더 악하다. 그 반론을 제시한 사람은 신자가 더 악하다는 것입니다. 왜 그러십니까? 난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제가 생각할 때에 신자가 그나마 낫다는 것은 신자에 대하여 상대적이지 않습니까? 기대를 했는데 기대만 못하다는 공격이지 절대 평가를 하면 아무래도 낫지 않습니까? 기대를 했는데 기대만 못하다는 공격이지 절대 평가를 하면 아무래도 낫지 않습니까? 그랬더니 그분 얘기는 절대평가를 해도 신자가 나쁘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너무 약삭빠르고 세상의 나쁜 짓은 교인이 다 먼저 하더라는 겁니다. 땅 사 놓은 것, 증권 사 놓은 것, 다 교인이랍니다. 무슨 하지 말라는 짓 한 것은 다 교인이랍니다. 그래서 제가 그것은 선생님께서 경험한 것만을 갖고 얘기하는 것 아닙니까? 하자 그렇지 않다 그러면서 교인들이 그렇게 된 이유가 자기 나름대로 연구를 했는데 이런 것이랍니다.

교인들은 다른 불신자엥 비해서 모이는 횟수가 많다는 것입니다. 주일마다 모이고 금요일마다 구역예배로 모이는데 거기서 온갖 세상사는 나쁜 정보가 교환되더라는 것입니다. 하긴 제가 무슨 일이 있어서 아침에 전화를 해 보면 집에 있는 신자가 없습니다. 아침 9시만 넘으면 없습니다. 어딜 가는지를 모르겠습니다.

세상을 사는 일에 너무 많은 것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구역으로 모여서 하는 ㅡ얘기 중 제발 이것만은 해주지 마십시오라고 오늘 부탁할 것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세상에서 약삭빠르게 살고 세상의 많은 것을 확보하고 있는 것이 여러분의 똑똑함과 우월감의 증명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 주십시오. 이것이 제일 나쁜 것 같습니다. 그런 것을 준비 안한 사람을 바보가 된 것같이 만든다는 말입니다.

여러분은 헤롯입니다. 여러분이 스데반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디모데후서 3장으로 가 보십시다. 이렇게 살지 말아 주십시오. 이것을 읽어 드리는 이유는 이렇게 살지 말고 성경이 이것만은 하지 말라고 하기 때문입니다.

디모데후서 3:1입니다.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참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 아니하며 배반하여 팔며 조급하며 자고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딤후 3:1-4). 여기 나와 있는 얘기에 아주 대표적인 것 몇 개만 골라 봅시다. 자기를 사랑하고 자기가 신입니다. 자기가 하고 싶은 것만을 합니다. 그래서 거기에는 일관성이 없으며 보람이 없습니다. 그래서 조급하고 변덕이 심하고 싸움을 잘합니다. 사람은 영원한 것에 도달하는 하루하루를 성실히 쌓아 놓지 않으면 그것이 아무리 재미있는 일이라도 끝난 다음이 허망합니다. 그러면 사람은 급해지고 사나워집니다.

그것이 사람의 성장을 망치게 한 이유입니다. 내일을 준비하지 않고 오늘 하루를 보낸 것만큼 사람을 조급하게 하고 사람을 성나게 하고 사람을 절망케 하는 것은 없습니다. 강한 사람은 절대 급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지금 사는 것이 그 영원한 나라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느느 것을 쌓는 하루인가를 보셔야 됩니다. 그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훨씬 세상을 사는 재주를 많이 부리고 있습니다.

헤롯 대왕은 의심이 많은 사람이었다고 그럽니다. 그가 유대인의 왕노릇을 하기 위하여 정략적으로 제사장의 딸과 결혼을 합니다. 어떻게 되든지 유대인과 이렇게 밀착을 하려고 애를 씁니다.

그러나 그쪽 계통이 민족적, 종교적 결사들에 의해서 자기의 왕권에 도전하자 마카비 전쟁이라고 우리가 보통 부르는 그 전쟁을 통하여 모든 지도자들을 이 잡듯이 색출해서 죽이는데 결국 자기 부인까지도 죽입니다. 그쪽 일파라는 것 때문입니다.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누구시뇨 하는 얘기를 듣고 베들레헴 동네의 두살 아래 애들은 다 죽여라 했던 사람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헤롯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신자가 영혼을 준비하고 거룩한 것으로 자기를 훈련하지 않고 세상에 한 번 붙잡히면 그 다음에는 피도 눈물도 없습니다. 여긴 혈육도 없고 의리도 없고 상식도 없고 자기가 하는 짓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그가 자랑하는 것이 모두 부끄러운 일인지를 모릅니다. 어떻게 무정해야 되며 어떻게 배반해야 되며 어떻게 먼저 선수를 쳐야 되는가 밖에는 배울 것이 없습니다.

여러분 어쩌다 그렇게 되셨습니까? 거기서 돌이키셔야 됩니다. 신자다워지십시오. 경건을 연습하시고 선한 일에 애쓰십시오. 그 열매는 당장 거두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신자입니다. 우리가 여기서 보는 가장 놀라운 일은 이 헤롯의 기록이 하나님 나라의 확장과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데 도무지 걸리적거리는 것이 없습니다. 도움이 되지도 않고 방해가 되지도 않고 아무것도 아닌 완전히 다른 길인 것입니다.

지금 식으로 얘기하자면 누가 정권을 잡느냐 누가 어떻게 되느냐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느냐? 하는 것은 신앙적인 문제에서는 사실 전혀 무관합니다. 먹고 사는 문제는 하나님이 그의 자녀들을 위하여 언제나 충분히 준비하고 계십니다.

여러분 자녀의 장래도 하나님 손에 맞기셔야 됩니다. 그것으로 인해서 여러분이 분주해지셔서는 안됩니다. 세상은 하나님 일을 막을 만큼 세거나 하나님에게 도전할 만큼 권한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습니다.

저들이 우리를 막는 것이 물 줄기를 막는 땜이 아닙니다. 시냇물에 박혀 있는 돌에 불과합니다. 그 돌이 시냇물을 막는 것이 아니라 시냇물로 하여금 많은 맑은 소리를 내게 할 뿐입니다. 시냇물을 시냇물답게 하지 시냇물 돌아가는 길을 막거나 방해하거나 걸리적 거리지 않습니다. 신자는 그렇게 삽니다.

우리가 예전에 부모님 손에 이끌려 거리를 지나갈 때 종종 이런 얘기를 들었던 것을 상기하셔야 됩니다. 저희 부모님도 그랬습니다. 저 거지를 봐라. 너도 공부 열심히 하지 않으면 저렇게 된다. 우리가 배워야 될 것은 그것이다.

여러분, 신앙생활을 똑바로 하지 않으면 이렇게 헤롯같이 됩니다. 이것이 성경이 하고 싶은 얘기입니다. 아무것도 우리가 부러워할 것이 없습니다. 허망한 것이요 자기를 파괴하는 것이요 거기에는 평안이 없는 길입니다. 그것을 부러워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가진 것, 여러분이 안겨있는 폼, 그 복된 것을 놓치지 마십시오. 그리고 그 복되고 영원한 약속을 이루기 위하여 하루하루를 주 안에서 승리할 결심을 새롭게 하여 주시고 여러분의힘을 확인해 주십시오. 세상이 아니고 주님 안에 있는 힘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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