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
| 출처 : |
|---|
딤전 4장 "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
"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세에 약속이 잇는니라."
참고: 영성이라는 용어는 성경에는 없으므로 성경적 용어로 경건이라는 의미로 이해하시면 됩니다.
신앙인이 얻기를 원하는 한결같은 소망은 경건한 경지에 이르는 것입니다. 이것을 위하여 많은 사람들이 경건에 이르는 방법을 선택하여 그 방법들을 찿고 있지만 잘못된 믿음과 영들에 의해 변질된 경건에 대한 인식들이 많았습니다.
일제시대를 지나면서 6.25전쟁이 있기전 한국의 기독교 신자들이 경건에 대하여 잘못된 생각을 하여 입산수도하러 한국의 명산을 찿아 금식기도나 백일기도를 하면서 불교의 수도방법을 택하여 금강산을 찿아가고 계룡산을 찿아가서 십자가의 도(道)를 불교에서 말하는 수도(修道)로 인한 해탈의 경지에 이르는 것이 십자가의 도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해탈의 경지는 없음) 한국의 기독교 역사에서 그런 사람들이 수도를 하던 중 미혹의 거짓영을 받아 이단을 만들어 내었던 경우가 많았습니다.(우리나라의 이단은 대부분 이 경우이다) 특히 많은 사람들이 금강산을 찿아갔었는데 이러한 조류가 극심했을 때 6.25전쟁이 터져 더이상 금강산 도인(道人) 은 없어져 버렸습니다. 한국 기독교 역사에 나오는 이야기죠.
하나님은 성경에서 나타내 주시는 것에 대해서는 어떠한 것도 다른 종교와 같은 방법은 없습니다. 나답과 아비후가 제사장으로 일할때 다른 불을 하나님 제단에 가져 왔을 때 그들은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특히 한국은 불교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 백일 기도나
일천 번제 제단을 쌓으면서 예물을 날마다 드리면 소원이 이루어 진다며 권하는 목회자나 부흥사가 있습니다. 이것은 망령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제단에 다른 불을 가지고 들어와 제단에 드리는 것과 같습니다. 또 어떤 여자 부흥사가 부흥회 마지막 날에
소원을 쪽지에 적어 헌금과 함께 내면 소원이 이루어 진다는 말을 들은 적도 있습니다. 경건은 예물이나 헌금으로 받는 것도 아닙니다.그 뒤에 그 예배당이 불이 나 다 타벼렸습니다. 20년전에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 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경건은 수도를 하거나 일시적인 부흥회나 뜨겁게 기도를 몇번한다고 해서 또 은사를 받았다고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영적인 경건은 영혼의 훈련입니다. 경건은 하루 아침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이고 근신하는 인내에 의한것임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 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말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경건은 육체적으로 모양을 갖추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영적인 과제 입니다. . 육체의 연습은 육체의 경건에 속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사람이 거룩해지는 것은 말씀과 기도 입니다. (딤전 4:5) 거룩은 경건의 연습(훈련)의 결과 입니다.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과 함께 시작하고 그 말씀을 따라 기도하고 또 중요한 것은 그 말씀이 지시하는 대로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사람이 변화를 받는 동기는 말씀에 순종하여 따라갈때 나타납니다. 말씀을 따라 경건에 이르기 위해서는 세상에서 수없이 다가오는 시험을 말씀으로 믿어 순종하여 이길때 마다 한 단계식 올라갑니다. 잘못된 경건에 대한 인식은 신자들이 보따리를 싸들고 입산이나 수도원 같은 곳에 들어가야 한다는 사람들 입니다. (기독교 역사에서 수도원이 해결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또 여름만 되면 텐트를 가지고 산에 들어가 금식이나 고행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만 있을 뿐입니다. (본질적인 문제해결은 않됨)
성경이 말하는 경건은 세상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세상 속에서 세상에서 오는 시험을 받으면서 믿음으로 말씀을 따라 이겨
내는 인내를 주님으로 부터 인정 받을때 얻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세상을 떠나 십자가를 지지 않으셨음을 유의 하십시요 이 세상이 존재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십자가는 세상에서 부터 옵니다. 세상과 율법 주의자로 부터 예수님은 고난을 당하였습니다.우리도 세상과의 싸움에서 고난이 따름니다. 분명히 명심해야 하는 것은 세상과의 싸움이라고 해서 집회나 시위나 세상 권세자를 비방하거나 대항해서는 않됩니다. (로마서 13장:) 이 말씀을 왜곡하여 기독교는 사회를 투쟁으로 구원해야 하는 책임이 있다고 사람의 유전으로 가르치는 자가 있음니다. 혈육으로 싸우면 경건은 절대로 오지 않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혈육으로 대하여 맞서면 경건은 멀어지고 악에 빠지게 됩니다 (딤전 6장4절,5절) 하나님은 당신의 행동과 믿음을 저울로 달아보십니다. 두렵고 떨리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오히려 세상으로 부터 오는 핍박과 공격에는 예수님 처럼 잠잠해야 합니다.
세상안에서 자신에게 일어나는 문제를 정직하게 날마다 의지하며 기도하십시요. 언젠가는 하나님이 세상에서 이끌어 내실때까지 우리에게 주어진 문제를 기도하는 것은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활을 하는 것이 주님의 뜻입니다. 그리고 악한 일을 하는 직업은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탐욕을 버려야 합니다. 탐욕은 우상이기 때문에 여기에는 반드시 시험이 옵니다. 대부분 여기에 걸려 넘어져 경건에 이르지 못합니다. 이말은 복음의 대열에 들어가지 못하고 그리스도의 외인으로 세상의 것을 사랑하다가 심판을 기다리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딤전 6장9. 10)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의를 얻기 위해 사는 자에게 세상 사람들을 움직이는 악한 영들은 이런 신자들을 가만히 두지 않습니다. 믿음을 저버리게 하려고 사람이나 또는 경제적인 어려움을 통해 공격을 지속적으로 행합니다. 말씀을 순종하기 위해 손해를 보거나 해를 당하여도 견디고 믿음을 배반하면 않됩니다.
첫 언약에서는 실패도 합니다. 그러나 은혜로 구원하시는 주님께 나아가 끝까지 버리지 않아야 합니다.이때 신자들이 실족하는 이유는 이 공격을 당황해 하면서 하나님이 자신을 지켜 주지 못하는 것인가 아니면 자신이 행하는 방법이 잘못된 것일까 두려운 마음에 포기하거나 물러서는 것입니다. 영적인 경건은 세상안에 있지만 세상과 같지 아니하고 세상의 방법을 택하지 아니하고 세상을 거스려 올라가는 연어와 같이 물살의 저항을 받으면서 올라가는 신앙인 입니다. 경건은 세상에 있으나 세상에 속하지 않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얻어지는 것입니다. 경건을 위한 신앙의 삶은 죄와의 싸움입니다. 자신 안에 있는 죄와 세상에 속한 영들과의 싸움에서 이 세상이 전쟁터가 되기 때문에 전쟁터를 피해서 경건을 얻을 수 있다면 히말리아 산 속이나 들어가 수도사가 되는 것이 나을것입니다.
경건을 온전히 이루는 자에게는 큰 축복이 있습니다. 현세와 내세까지 축복의 약속을 얻습니다. 이것을 사모하십시요
영적 경건은 육체의 행위가 아닌 고행이나 수도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말씀에 의한 믿음 안에서 삶의 승리 입니다.
|
|
혹 글을 퍼오실 때는 경로 (url)까지 함께 퍼와서 올려 주세요 |
|
자료를 올릴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 주세요. 이단 자료는 통보 없이 즉시 삭제합니다. |








최신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