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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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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gustinus 참회록 - 제4권 우울한 고백
6. 친구의 죽음
지금의 나로써는 물을 때가 아니라 당신에게 고백해야 할 때인데
내가 왜 이런 말만 하고 있을까요?
나는 불행했습니다 그러나 어찌 나 뿐이겠습니까?
죽어야 할 인간과 우정에 얽매어 있는 마음은 모두 불행합니다.
그제서야 그것을 잃고 갈가리 찢겨진 마음은
잃어버리기 전부터의 불행을 깨닫게 됩니다.
그때 내가 바로 그러한 상황이었으므로 슬피 울었고
그 괴로움 속에서 안식을 발견했던 것입니다.
나는 이토록 불행했지만 열렬히 사랑하던 그친구 보다도
이러한 생활이 내게는 더 귀하게 여겨졌습니다.
솔직한 심정으로 내 친구를 잃는 것 보다도
그러한 내생활을 잃는 것이 더 싫었습니다
오레스테스와 필라데스의 이야기는 그 친구만을 위해서 꾸민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들은 서로 상대방이 없다면 죽는 편이 더 낫다고 생각하여
그를 위해 죽고 싶어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내 마음에는 전혀 상반되는 감정이 생겼습니다.
삶에 대해 매우 실증을 느꼈음에도 불구하고 죽음에 대한 공포심이 생겼던 것입니다.
나는 친구를 무척 사랑했던 만큼내게서 친구를 앗아간 죽음을
흉악무도한 적이나 되는 것처럼 미워하고 두려워했으며
행여 죽음이 갑자기 모든 인간을 멸멍시키지나 않을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것은 죽음이 나의 친구를 멸망시킬 수 있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나는 정말 그런 심정이었다고 기억합니다.
주여! 여기 내 마음이 있으니 굽어보소서.
당신은 내가 기억하고 있다는 것을 아십니까?
당신은 나의 눈을 당신 쪽으로 향하게 하고 나를 올가미에서 벗어나게 하시며
그러한 불결한 감정에서 나를 깨끗하게 해주셨습니다.
내가 사랑하던 그는 죽었건만 다른 사람들은
죽을 운명이면서도 죽지 않고 살아있는 것이 이상했습니다.
또 제2의 그였던 내가 그는 죽었는데도 살아있는 것이 이상하기만 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친구를 '내 영혼의 반쪽' 이라고 한 것은 맞는 말입니다.
사실 나는 나의 영혼과 그의 영혼을 두 몸속에 있는 하나의 영혼이었다고 느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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