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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편지 909 레그손 카이라 이야기
www.nsletter.net 정충영교수
열여섯 살쯤 된 레그손 카이라는 5일치 식량과 자신의 두 보물인 `성경`과 `천로역정`, 방어용 손도끼와 담요만 가지고 인생을 건 여정에 나섰습니다. 선교사들이 가져온 책더미 속에서 아브라함 링컨과 T. 워싱턴의 이야기를 접하고는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미국이 최선의 장소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아프리카 남동부의 니아살랜드 부족 마을을 출발해 북쪽으로 동아프리카의 황야를 가로질러 카이로로 가고 거기서 배를 타고 미국으로 갈 작정이었습니다. 문맹자인 그의 부모는 미국이 어디에 있는지 얼마나 먼 곳인지도 알지 못한 채 아들이 먼 길을 간다니 그냥 축복해주었습니다.
그는 카이로까지 4800킬로미터를 걸어가겠다고 작정했지만 험한 아프리카 땅을 꼬박 5일을 걸어도 겨우 40킬로미터 정도밖에 갈 수 없었습니다. 준비한 식량은 떨어졌고 물도 거의 바닥났으며 돈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기 자신과 약속했다. "나는 미국에 갈 때까지, 아니면 노력하다 죽는 순간까지 멈추지 않을 거야."
그는 계속 걸어갔습니다. 어떤 때는 마을에서 일과 잠자리를 얻기도 했지만 수많은 밤을 별을 보며 데에서 자야했고 야생과일 등 먹을 수 있는 식물들을 찾아 연명해야 했습니다. 그는 점점 야위어갔고 여러 차례 열병에 걸려 심하게 앓기도 했지만 친절한 낯선 이들이 약초로 치료해 주고 휴식을 취할 수 있게 주었습니다.
1960년 1월 19일 그는 15개월 만에 1600킬로를 걸어 우간다의 수도 캄팔라에 도착했습니다. 그는 더 튼튼해졌고 생존기술도 더 익히게 되었습니다. 그는 그곳에서 6개월을 머물며 돈을 벌기 위해 이런저런 일을 했고 틈만 나면 도서관으로 달려가 주린 듯 책을 읽었습니다.
어느 날 그는 도서관에서 미국 워싱턴 주 마운트버넌에 있는 스캐짓밸리대학 안내책자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는 즉시 그 학교의 학장에게 자신의 상황을 설명하고 입학 허가와 장학금을 요청하는 편지를 썼습니다. 학장은 레그손의 용기와 결의에 감동을 받아 그에게 입학을 허락했을 뿐만 아니라 장학금은 물론 숙식을 해결해 줄 일자리까지 제공해 주겠다는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하지만 그의 앞길에는 아직도 많은 장애물이 가로놓여 있었습니다. 여권과 비자를 받기 위해서는 정부에 확증된 출생 일자를 제출해야 했고 비자를 받으려면 적어도 미국 왕복 항공요금만큼의 돈이 있어야 했습니다. 그는 자신을 지도해준 선교사들에게 도와달라는 편지를 썼고 그들의 도움을 받아 여권을 받을 수 있었지만 비자를 신청하는데 필요한 항공요금을 마련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돈을 구할 수 있으리라 믿으며 카이로를 향해 계속 걸어갔습니다.
몇 개월이 지나면서 레그손의 용감한 여행 소문이 곳곳으로 퍼져갔습니다. 그 소문은 아프리카 대륙에서 대서양을 건너 워싱턴 주의 마운트버넌에까지 전해졌습니다. 스캐짓밸리대학의 학생들은 주민들의 협조를 얻어 그에게 항공요금으로 650달러를 모금해 보내주었습니다. 1960년 12월 레그손은 마침내 스캐짓밸리대학에 도착했습니다. 여행을 시작한 지 2년도 더 지난 후였습니다. 그는 그동안 소중히 간직해 온 두 권의 책을 가슴에 품은 채 높이 솟은 이 대학의 교문을 자랑스럽게 통과했습니다.
그의 도전은 대학을 졸업한 후에도 결코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는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의 정치학 교수이자 존경받는 작가가 되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가 달려가는 인생길을 생각해 봤습니다. 그에게는 쉬지 않고 걸어가야 할 목표가 있었습니다. 지치지 않는 인내와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에게 감복하여 그를 돕는 손길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꿈은 마침내 이루어졌습니다.
너희는 나그네를 사랑하라 전에 너희도 애급 땅에서 나그네 되었었음이니라[신명기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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