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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요한일서 임영수 목사............... 조회 수 2704 추천 수 0 2009.07.13 23:2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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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요일4:7~12 
설교자 : 임영수 목사 
참고 : 주님의교회 주일낮 예배/1998.9.27 

저희 첫째 아이가 유아 시절 어느 주일에 교회에 다녀와서 저에게 자기는 예수님은 보았는데 아직 하나님은 보지 못했다고 하면서 하나님을 한 번 보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그때 제가 아들에게 예수님은 어디에서 보았느냐고 물었습니다. 아들 답변이 교회에 보았다고 했습니다. 다시 교회 어디 계시드냐고 물었드니, 교회 현관 벽에 걸려 있는 예수님의 초상화를 지적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얼마 후 제 아내는 수채화로 예수님의 초상화가 그려져 있는 엽서 다섯 장을 경대 거울에 부쳐 놓았습니다. 그 다섯 장의 엽서에 그려져 있는 예수님의 모습은 각기 달랐습니다. 그중 어느 하나의 초상화로 예수님의 모습을 대신할 수 있는 것은 없었습니다. 다만 그 다섯 장에 각기 다르게 나타나 있는 예수님의 모습을 모두 합성해도 온전한 예수님의 모습을 그려낼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어떤 인상은 간직할 수 있습니다. 그 후 저는 아들이 어떤 인상을 가졌는지 확인은 하지 않았습니다.

누구나 다 하나님을 보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하나님 만나기를 위해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가기도 하고 깊은 명상에 잠기기도 합니다. 사도 요한은 하나님을 만났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어디를 찾아간 것이 아니었습니다. 인간을 찾아오신 하나님을 만나 뵈었습니다.

사도 요한은 우리에게 찾아오신 하나님에 대해 듣고, 보고, 만져 보았다고 했습니다. 요한이 하나님에 대해 들었다고 한 것은 하나님의 외형적인 모습에 대해들은 것이 아닙니다. 요한이 의미하는 것은 사랑의 하나님의 존재 양식에 대해 들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며 그가 세상을 사랑하시며, 특별히 인간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에 대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예수님을 통해서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직접 체험했습니다.

만약 예수님이 깊은 산 속에 들어가셔서 명상에만 잠겨 있었으면 요한은 예수님에게서 사랑의 하나님을 보지도 못하고 경험하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렇게 하지 않고 인간 역사의 현실 가운데서 사랑의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 가를 보여주셨습니다. 요한은 예수님의 외모에서 사랑의 하나님을 본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삶의 행동에서 인간과 함께 하시는 사랑의 하나님을 본 것입니다.

그러한 하나님의 사랑으로 세상이 창조되었고, 그의 사랑으로 세상의 질서가 유지되고, 그의 사랑으로 모든 생명체가 보존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사랑했습니다. 그러한 하나님의 사랑이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심으로 확증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본다는 것은 이 세상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듣고 보고 경험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논리적인 것이 아니고 경험적인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요한 일서 서두에서 이 사실을 이렇게 말씀합니다.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개역 개정)고 했습니다

본문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10절)

제가 군대 입대해서 약 삼개월의 훈련 과정을 마치고 기성부대에 배치되기 전 잠시 집에 들렸습니다. 그때 저는 새로운 사실을 한 가지 발견했습니다. 제가 입대한 그날부터 어머님께서 하루도 쉬지 않고 저를 위해 기도하고 계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혹시라도 기도하는 것을 잊을까 해서 제가 입대할 때 집에 놓아 두고 간 손목시계를 경대 위에 놓아두고 아침마다 일어나셔서 그 시계를 보고 기도하시곤 하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때 저는 제가 훈련소에서 훈련 과정을 잘 마치게 된 것이 저의 염려와 노력으로 된 것이 아니고 어머님의 기도 때문이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 우리의 염려와 걱정으로 되어진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산다는 것이 더욱 힘들고 어렵게 느껴집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오셔서 알려주신 것은 우리의 염려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것을 알려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삶이 어떤 힘에 의해서 지탱되고 있는가를 알려주신 것입니다.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의 "사람이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단편 이야기 소설에 천사 미하일에 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미하일이라는 천사는 하나님의 명령을 어겼기 때문에 알몸으로 세상에 쫓겨났습니다. 미하일이 어긴 하나님의 명령은 쌍둥이 딸을 낳은 어머니의 영혼을 거두어 오라는 명령을 어긴 것입니다. 미하일은 그 어머니의 영혼을 거두어 가면 가엾은 어린것들이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미래에 대한 염려에서 그것을 실행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은 미하일 천사를 쫓아내면서 세 가지 과제를 줍니다. 첫째는 인간 안에 무엇이 있는지를 알아내야 한다는 것. 둘째는 인간에게 허락되지 않은 것이 무엇인가를 알아내는 것. 셋째는 사람이 무엇으로 사는가를 알아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천사 미하일에게 이 세 가지를 다 깨닫게 될 때 하늘나라에 다시 불러들이겠다고 했습니다.

천사 미하일은 추운 겨울 어느 날 알몸으로 교회당 벽에 붙어서 떨고 있었습니다. 그때 세몬이라는 가난한 구둣방 주인의 도움을 받아 그의 집에서 함께 일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미하일은 구둣방 주인 세몬의 아내가 그에 대해 베푸는 배려에서 인간에게 사랑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 후 구둣방에서 일하다가 어느 날 어떤 부자가 좋은 가죽으로 그가 신을 장화를 맞추고 돌아가서 바로 죽었기 때문에 그가 주문한 장화 대신에 죽는 사람이 신는 슬리퍼를 찾아가는 것을 보고 인간에게 자기에게 진정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나서 얼마 동안 세월이 흐른 후 한 여인이 쌍둥이 여자아이를 데리고 구둣방을 찾았을 때 미하일은 그 아이들이 바로 자기가 영혼을 거두어 갈려고 했던 그 어머니의 딸임을 알게 됩니다. 그 어머니는 딸을 낳고 육 개월만에 죽고 그 쌍둥이 아이들이 다른 여인의 보살핌 가운데서 잘 양육되는 것을 보고 아이는 부모 없이는 살 수 있지만 하나님 없이는 살아가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천사 미하일은 세 가지 과제와 관련된 것을 모두 터득하게 됩니다. 그것은 모든 사람 각자는 자신의 일을 걱정하고 애씀으로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인간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일 뿐, 실은 오직 사랑에 의해서 살아가는 것이라는 것. 사랑의 마음으로 가득찬 있는 자는 하나님의 세계에 살고 있는 것이며, 하나님은 바로 그 사람 안에 계시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것들을 다 깨닫고 나자 그는 다시 하나님이 계신 곳으로 올라가게 됩니다.

우리 인간에게 본래 허락된 존재 양식은 사랑으로 서로 협력하며 살아가게 한 것입니다. 그러한 존재 양식 가운데 하나님이 계시고 그러한 삶의 모습에서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알려지게 됩니다. 그러한 삶에서 위로, 희망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러한 삶에서 모든 두려움이 사라지게 되고 하나님의 사랑이 완성됩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게 되고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게 됩니다.

예수님는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마 5:48) 하셨습니다. 여기서 온전함이란 윤리적인 완전을 의미하지 않고 사랑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사랑을 온전함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사랑의 온전함이라 다음과 같이 몇 가지 의미로 나누어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먼저 사랑의 온전함이란 자신을 다른 사람을 위해 내어 준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자신을 인간을 위해 내어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내어 주신 것입니다.

다음 사랑의 온전함이란 다른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받아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있는 그대로 받아 드리셨습니다. 우리의 허물을 묻지 아니하시고 우리의 현실 그대로 받아 드리셨습니다.

그 다음 온전함이란 용서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용서하셨습니다.

마지막으로 온전함에는 치유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치유하십니다. 그래서 온전케 하십니다.

결국 사랑의 온전함 가운데서는 모든 것이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서로를 받아 드리지 못하는 것은 같지 않기 때문입니다. 서로 다르다는 것 자체가 온전함에 도달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래서 서로 용서하고 받아 드리지 못합니다. 그런데 사랑 가운데서는 이러한 모든 것이 극복됩니다.

우리의 일상적인 삶에서 이러한 사랑의 온전함이 서로 서로의 관계에서 다음과 같은 삶의 모습으로 나타나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상대방이 우리의 말에 귀를 기우리고 들어주기를 강요하기보다 우리가 다른 사람의 말에 진지하게 귀를 기우려 들어야 하겠습니다. 다른 사람의 말에 귀기울여 든다는 것은 사랑의 한 행위입니다.

우리의 시간을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을 위해 할애하는 여유를 갖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우리들 주위에는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그들을 위해 우리의 시간을 할애하는 것은 그들을 사랑하는 구체적인 행위입니다.

사랑은 추상적인 것이 아니고 매우 구체적인 것입니다. 그러한 면에서 생각할 때 사랑은 다른 사람을 위해 무엇인가 선한 일을 하는 것입니다. 고독한 사람에게 위로의 편지를 쓰든가 위로의 전화를 거는 것 모두 사랑의 행위입니다.

사랑은 항상 다른 사람이 우리에게 찾아오기를 요구하기 보다 먼저 우리가 그에게 찾아가는 것입니다. 슬픔을 당해서 위로가 필요한 사람에게 찾아가서 위로의 말을 해줄 수 있는 것 장기간 병상의 생활을 하는 사람에게 찾아가서 그와 사랑의 대화를 나누는 일 모두 사랑의 표현입니다.

사랑은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아니하고 베푸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시간 재물을 대부분 우리와의 이해 관계 가운데서 사용합니다. 그러나 사랑은 그러한 이해 관계를 넘어서 자비와 긍휼을 베푸는 것입니다.

사랑은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기도는 외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아니지만 이해 관계를 떠나서 도움을 필요로 하는 그를 생각하면서 기도하는 일은 매우 고귀한 일입니다. 우리의 기도 시간에 언제나 기억되어 그 기도에 포함되는 사람이 나와 어떤 관계에 있는 사람들인가를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먼저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들입니다. 사랑을 입은 자들이기 때문에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서로 사랑합시다.

사랑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다 하나님에게서 났고, 하나님을 압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드러났으니, 곧 하나님께서 당신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 주셔서 우리로 하여금 그로 말미암아 살게 해주신 것입니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곧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당신의 아들을 보내 주시고, 우리의 죄를 속하려 주시려고 속죄 제물이 되게 해주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 이렇게까지 우리를 사랑하셨으니, 우리도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을 본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 사랑한다면,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계시고 또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가운데 완성되는 것입니다."(표준 새 번역)

- 아 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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