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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가 확실한 설교만 올릴 수 있습니다. |
| 성경본문 : | 요3: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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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자 : | 한태완 목사 |
| 참고 : | http://je333.com |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 갈 수 없느니라"(요3:3-5)
어느 장로님 가정에 딸을 다섯이나 낳고 여섯 번 째 외아들을 낳았습니다. 너무 기뻐 이 가정에 대 경사가 되었습니다. 이 외아들은 귀엽게 자랐습니다. 그러나 그는 부모와 누님의 사랑 속에 버릇없이 빗나간 생활을 하였습니다.
온 마을의 골칫거리 아들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 외아들은 동네 마을에 못된 일을 저질러 온갖 손해를 입히고 아버지 장로님을 욕되게 할 뿐 아니라 교회도 욕을 먹게 하였습니다. 손해를 입히면 부모님은 그 사람들에게 가서 용서를 빌고 손해 배상을 해주고 갖은 욕설과 창피와 모욕을 당하였습니다. 그러나 어찌할 대책이 없어 그들은 매일같이 눈물로 세월을 보내며 하나님께 기도하고 금식을 하였습니다.어느 날 못된 아들이 술을 먹고 인사불성 상태로 집에 들어 왔을 때 부모님들은 방에 엎드려 눈물로 뺨을 적시며 기도하느라고 눈이 통퉁 부어 있었습니다. 이때 아들은 "무엇을 하느냐"고 발길로 차고 행패를 부렸습니다. 그러나 눈이 시뻘겋게 부어 있는 부모님의 모습을 보자 목석 같던 아들이 숙연해지며 말을 못하고 주저앉았습니다.
날이 새자 술에서 깬 아들은 부모님 앞에 가서 다시는 이런 짓을 하지 않겠다며 용서를 빌었습니다. 이때 부모님들은 "오냐, 그래야지" 하며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리고 목사님을 청하여 가정 예배를 드렸습니다. 이때 이 아들은 마루에 나와 대들보에 무수한 못이 박혀 있는 것을 보고 저 못이 왜 저렇게 많이 박혔느냐고 물었습니다. "그 못은 네가 못된 짓을 할 때마다 하나씩 박은 것이란다." '그러면 어떻게 하지요?' 하며 다시 눈을 감고 눈물을 흘린 아들은 "아버지, 내가 좋은 일을 하고 나서 저 못을 하나씩 뽑으면 되겠네요?" 하고 말했습니다. 그 후에 이 아들은 선행을 열심히 하여 못을 다 뽑았습니다. 그리고 나서 "아버지, 이제 못을 다 뽑았으니 됐지요?"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못 자국은 그대로 있지 않느냐? 너는 저 못 자국을 보고 겸손히 주님의 사랑을 실천해야 된다"고 타일렀습니다.바리새인 중에 니고데모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유대인의 관원이라 그가 밤에 예수께 와서 가로되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서 오신 선생인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의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라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니고데모가 가로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삽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삽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
이 변화는 물리적이거나 화학적인 변화가 아닌 신비로운 변화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유대인의 랍비 니고데모에게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고 하시며 중생(重生)의 원리를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삽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삽나이까”하고 묻는 니고데모의 질문에,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하고 대답하였습니다(요 3:3-5). 이는 거듭남의 진리가 신비로운 도리임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은 거듭난 사람입니다(롬 8:1-2). 성경은 거듭난 사람과 거듭나지 못한 사람 사이에는 서로 비교할 수 없는 다른 차원의 삶을 산다고 하였습니다. 이는 곧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의 삶이요 은혜 받은 사람의 삶입니다.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서 다른 것은 다 못해도 꼭 한 가지 해야 될 일은 “거듭나는 것”입니다. 거듭나지 못하고 죽을 바에는 차라리 태어나지 않는 편이 천 배, 만 배 더 낫습니다. 거듭나지 못해 구원받지 못한 사람은 생명의 부활도 얻지 못하고, 물론 천국에도 들어가지 못합니다.달걀이 한 번 태어나서는, 보기도 하고 먹기도 하고 살아 움직이는 닭이 되지 못하는 것처럼 사람은 반드시 두 번 태어나야 합니다. “거듭난다”(be born again)는 말은 “두 번 태어난다”(重生)는 뜻이고,“새로 태어난다”(新生, New birth)고도 합니다. 니고데모도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고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어머니 뱃속에 또 들어갔다 나옵니까?”라고 말했을 때 예수님께서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거듭나야 한다는 말을 이상히 여기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이 너무 중요하기 때문에 “진실로 진실로”란 말씀을 반복해서 하셨습니다. 어머니 뱃속에서 육신이 태어날 때, 세상에서 100년 미만 사는 생명을 갖고 태어나지만, 성령의 감동으로 예수님을 믿고 영접할 때 죄로 죽었던 영혼이 다시 태어나면서 “영생”을 얻습니다. 말 그대로 영원한 생명입니다. 천국에서 영원히 살 수 있는 생명입니다. 거듭나지 못한 사람은 천년왕국 후에 심판의 부활을 얻어 영원한 지옥의 형벌을 받게 됩니다.
신학자 폴 틸리히는 "고대인에게는 죽음의 문제, 중세인에게는 죄의 문제, 그리고 현대인들에게는 의미의 문제가 가장 심각하다"고 글을 썼습니다. 사람은 삶의 목표와 삶의 중심이 무엇이냐에 따라 그 사람의 질과 가치가 결정되는 것입니다. 곧 그 사람의 삶의 의미가 확실해야 그 삶이 고상해진다는 말입니다. 돈이 삶의 목표인 사람은 언제나 이해 타산에 의해서 움직입니다. 명예를 탐하는 사람은 명예 중심으로 삽니다. 물론 권력 중심으로 살고, 향락 중심으로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중심의 사람'은 먼저 하나님을 앞세우고 하나님 영광을 앞세우는 생활을 합니다. 그 생활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하나님 나라와 그 의를 위하여'사는 것입니다. 아무리 하고 싶은 것이 있어도 하나님 영광을 가리우는 것은 하지 않으며, 아무리 하기 싫은 것이 있어도 하나님의 영광이라면 행하면서 사는 생활이 하나님 중심의 생활입니다. 사람이 거듭난 증거가 무엇입니까? 거듭났다는 말은 인간 성격의 변화를 말하지 않습니다. 인간 능력의 변화를 말하지도 않습니다. 근본적으로 거듭난 것은 자기 중심의 생활이 하나님 중심의 생활로 바뀌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이전과 같은 성격의 사람이지만, 이전과 같은 능력의 사람이지만, 이제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는 것이 거듭난 사람의 삶입니다.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면 먼저 내 자신의 질서와 인정을 찾게 됩니다.(렘24:7, 벧후1:4)
구체적으로 거듭난 사람의 삶은 어떠한 삶인가를 살펴봅시다.첫째, 삶의 주님을 만나 새 소망을 갖게 됩니다.
1965년 세계적인 컨트리 포크 가수인 미국의 자니 캐시가 마약과 다름없는 신경안정제를 1천 개 소지한 혐의로 체포되었습니다. 그는 화려한 조명을 받으며 인기와 부를 누렸으나 손가락 사이로 모래가 빠져나가는 것처럼 평화와 기쁨을 잃고 방황하다 신경안정제를 과용하게 된 것입니다. 마약복용과 방황, 허무와 불안 등으로 그의 인생은 흔들렸습니다. 그는 구속되었다가 풀려난 후 더 큰 삶의 벼랑에서 절망했습니다. 그러던 1971년 5월 어느 주일. 그는 남루한 인생을 마감하고 새로운 신분으로 거듭났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고 예수 그리스도의 빛이 그의 모든 어둠을 몰아냈던 것입니다. 그는 말합니다. "인생의 내리막길이 내겐 구주를 만날 기회가 되었습니다."
성경에 이르기를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엡2:1),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벧전1:3)하였습니다.둘째, 자기의 사명감을 인식합니다.
젊은 시절 에드워드는 양철 캐비닛을 만들면서 열등 의식과 반항심, 원망 등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겨우 이런 공장에서 망치나 두들기며 일하다니.."
어느 추운 겨울날. 런던 거리를 배회하던 에드워드는 자그마한 교회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는 한 목사님이 거듭남에 대해 설교하고 있었습니다. 그 말씀을 듣던 에드워드의 마음에는 "그렇다 나는 거듭나야한다"는 강한 소원이 일어났습니다. 그 순간 성령이 그에게 임했고 그는 예수님을 영접하고 거듭나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그 일 후, 에드워드는 일기에 이렇게 썼습니다. '내 망치는 이제 노래하며 춤을 춘다. 그리고 내 눈동자에는 생기가 돌고, 내 마음속에는 생수가 솟는다. 예수님이 내 마음에 오셨기 때문이다. 이제 그는 행복한 일꾼이 되었다.' 일하면서도 찬송을 불렀으며 일하는 보람이 생기자 일의 능률도 오르고 신용도 얻어 수입이 좋아졌습니다. 그는 성공적인 사업가가 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을 거듭나게 하신 주님께 감사하며 그가 소유한 재산을 교회를 짓는 데 아낌없이 드렸고, 그 자신도 목사가 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는 자신을 향한 주님의 사랑을 기억하면서 소망되신 주님께 감사의 시를 지어 드렸다. 그 시가 바로 찬송가 539장입니다.
"이 몸의 소망 무엔가 우리 주 예수뿐일세. 우리 주 예수 밖에는 믿을 이 아주 없도다. 굳건한 반석이시니 그 위에 내가 서리라. 그 위에 내가 서리라" 우리도 에드워드처럼 변화 될 수 있습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로마서 12:2)사도 바울은 그의 생애 중 옛사람과 새사람의 모습이 확연하게 드러나 있습니다. 즉 다메섹 노상에서의 사건 이전에는 율법의 전통과 자기의 철학을 중심으로 살았습니다. 그런데 거듭난 이후에는 예수와 복음을 위한 삶으로 바뀌었습니다. 그것은 자기의 존재 가치와 사명감을 올바로 인식하였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1:1에 그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하여 하나님께 택정함을 입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는 또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 이전에 저가 붙들었던 모든 것을 다 해로 여기고 배설물처럼 내어 버렸으며 오직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는 삶을 산다고 하였습니다(빌 3:8-12). 그는 에베소 장로들에게 송별설교를 하면서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거 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 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고 하였습니다(행 20:23-24).
셋째. 믿음을 행동으로 실천하는 것입니다.
미국의 뉴잉글랜드 지방의 어느 도시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한 부유한 사교계의 부인이 심한 병에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 여인은 교회에 다니는 신자였기 때문에 그의 이름과 형편이 교회에 광고되고 특별한 기도 제목이 되었습니다. 그 여인은 악화된 병세로 죽음 직전에서 헤매고 있는 가운데 의사도 자신이 없다는 말을 가족에게 남겼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여인이 회복되기 시작했습니다. 환자 자신도 그것은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혜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병에서 일어나 건강이 좋아지자 이 부인은 자연히 또 사교계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하루는 이 부인의 건강 회복을 축하하기 위한 축하 연회가 친구들에 의하여 베풀어졌습니다. 이제 연회를 마련한 주인이 사람들에게 말을 했습니다. "여러분, 지금부터 이 오후를 즐겁게 지내기 위하여 마시는 일과 카드놀이로 여흥을 즐기겠습니다." 그러자 지금까지 이런 일에 항상 앞장을 서 오던 그 부인이 연회를 주최한 주인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부디 저를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여기에 있는 사람들을 비판하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저는 영원이 무엇인가를 이번에 실감해 보았습니다. 이 세상이 짧은 것을 깊이 깨달았으며 죽음의 문턱에도 서 보았습니다. 그렇기에 저는 이전에 즐기던 세상의 일을 다시 반복할 수가 없군요. 실례하겠습니다." 여러분도 하나님의 한없는 크신 은혜를 받은 사람입니다. 그 하나님의 은혜와 당신에 대한 하나님의 기대를 저버리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후5:17)신약의 야고보는 믿음은 행함을 통해서 증거 된다고 하였습니다. 야고보서 2:22에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으로부터 중생의 도리를 교훈 받은 니고데모는 거듭난 사람으로서 삶을 실천하였습니다. 그는 유대인의 랍비요 공회 위원의 신분으로 처신하기가 매우 어려운 입장에 있었습니다. 그 당시 바리새파에서는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하거나 그의 사역에 동조하는 사람은 유대교에서 출교를 시키고 그 사회에서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도록 만들었습니다(요 9:22). 니고데모는 평소 그의 믿음을 들어내지 않으면서도 필요한 시간, 필요한 장소에서 자기가 해야될 일을 반드시 실천하였습니다. 요한복음 7:51에 보면 유대인의 공회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문제삼아 정죄하려고 할 때 니고데모는 이를 만류하며 “우리 율법은 사람의 말을 듣고 그 행한 것을 알기 전에 판결하느냐”하고 예수님을 변호하였습니다. 그는 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을 때 아리마대 사람 요셉과 함께 빌라도를 찾아가서 예수님의 시체를 인수하여 값비싼 향료와 약품을 바르고 세마포로 싸서 장사지냈습니다(요 19:39).
넷째, 소망 중에 인내하는 삶입니다.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난 사람에게는 하늘 나라의 영원한 소망이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3:29에 “너희가 그리스도께 속한 자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의 자녀된 성도들을 위하여 준비해 놓은 유업은 세상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에 육신의 눈으로나 인간의 감각으로는 식별할 수가 없습니다. 바울은 에베소 성도들을 위하여 기도할 때 그들에게 마음의 눈이 밝아져서 하나님으로부터 부름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어떤 것인가를 알기 바란다고 하였습니다(엡 1:17-18). 문제는 이와 같은 소망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 다는 점입니다. 로마서 8:24-25에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 소망을 두고 사는 사람은 어떤 경우에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또한 자기에게 주어진 사명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58에는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이번에는“거듭난 자는 어떤 특권”을 가지게 되는가에 대해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1. 영생을 얻고 천국에 들어갑니다.
본문 3장 5절 말씀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거듭나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보다 더 중요한 일이 어디 있습니까? 한국에 어느 부호가 “나에게 10년의 생명을 연장시켜 준다면 수천 억 재산을 다 주겠다”고 했다는데 10년이 아니라 천 년, 만 년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얻고 천국에 들어간다는 말씀입니다. 로마서 8장 11절에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5장 24절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중심으로 예수님을 믿고 영접한 자는 과거에 어떤 죄인이었든지 영생을 얻고 천국에 들어가는 특권을 얻습니다. 겨우 몇 년 해먹는 대통령, 국회의원도 그렇게 목숨걸고 덤비는데, 영생을 얻고 천국 가는 일이 얼마나 큰일입니까?2. 생명의 부활을 얻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하신 말씀과 같이 예수님을 믿고 영접한 사람은 주님 재림하실 때 생명의 부활을 얻게 됩니다. 지난 주일 말씀드린 것같이 예수님께서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니”란 말씀을 반복해서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5장 29절에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고 하셨는데, 여기서 “선한 일”이란 인간 보기에 선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선한 일인데 가장 선한 일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장 16~17절에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된다고 했습니다. 요한계시록 20장에 있는 말씀대로 “생명책”에 기록된 거듭난 신자는 생명의 부활을 얻게 되고 거듭나지 못한 자는“행위의 책”에 의하여 평생 지은 죄가 낱낱이 들어나 심판 받고 불 못에 던지우게 됩니다.3. 기도 응답을 받게 됩니다.
거듭나지 못한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므로 하나님께 기도할 자격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라고 말씀하시고,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면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면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마태복음 7장 9~11절)고 하신 말씀을 보면 기도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아버지와 자식들”로 비유해서 말씀하셨습니다. 거듭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만이 기도할 수 있고 응답 받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놀라운 특권입니까?요한복음 14장 13~14절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6장 23~24절에는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고 하셨습니다. 거듭난 사람은 기도하고 응답 받는 놀라운 특권이 주어집니다.
4. 문제가 해결됩니다.
애벌레에게는 길에 늘어선 것들이 모두 다 문제입니다.
앞에 있는 돌덩이도 문제고 냇가도 문제고 막대기도 문제입니다. 그러나 나비에게는 이 모든것이 구경거리입니다.
하지만 애벌레가 변하여 나비가 되지요.
애벌레도 사람도 한번은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그러자면 진통이 뒤따릅니다. 참을 수 없는 고통과 역경의 터널을 통과해야 합니다. 그 터널을 빠져나가는 고통의 시간을 견디어내지 못하면 나비가 되어 날아 보지도 못하고, 영영 애벌레에 머물고 맙니다.5. 하나님의 보호를 받습니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6장의 산상수훈에서 말씀하시던 중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공중의 새를 보라…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고 말씀하시다가 6장 32절에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즉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이 염려하는 것이요,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들은 먹고 마시고 입을 것을 하나님이 필요한 대로 다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런 것 때문에 근심 걱정하지 말고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생활을 하면 그 외의 모든 것은 우리 하나님이 다 공급해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부모가 무능하면 모르거니와 재물도 있고 능력도 있는데 그 사랑하는 자녀들을 굶어 죽고 얼어죽게 하겠습니까? 우리 하나님은 없는 것이 없으시고 불가능이 없으신 분인데 그의 자녀들을 지키시고 보호하시지 않겠습니까? 고난, 가난, 고통을 허락하시는 것은 필요한 연단이기 때문에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목자의 보호를 받고 지켜 주시기를 바란다면 그 목장의 울타리 안에 들어와야 하는 것입니다. 먼저 거듭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거듭나서도 제멋대로 울타리 밖으로 뛰쳐나가면 안 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0장 28~29절에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하셨고 또 “저희를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이사야 43장 1~4절에 보면 하나님의 자녀의 특권을 또 찾아볼 수 있습니다.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그의 자녀들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시면서 “너는 내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사람들은 “내 것”을 사랑하고 아끼고 보호하고 귀중히 여깁니다. 하나님께서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를 “너는 내 것”이라고 하십니다. 두려워할 필요가 없고 근심할 필요가 없는데 우리는 끊임없이 근심 걱정합니다. 그뿐 아니라 “너는 내 것이라”고 하시고 이어서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행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요 네 구원자임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된 사람들을 얼마나 사랑하고 아끼시고 보호하시는가 보십시오. 그리고 이어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애굽을 너의 속량물로, 구스와 스바를 너의 대신으로 주었노라 내가 너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고 너를 사랑하였은즉 내가 사람들을 주어 너를 바꾸며 백성들로 네 생명을 대신하리니 두려워 말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자녀들을 위하여 이방인을 속량물로 내어주고 이방인의 생명을 우리 대신 내어주면서 보호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우리 거듭난 신자들에게 환난 고통이 없다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고 주님이 말씀하신 것같이 환난과 시련을 당할지라도 반드시 이길 수 있게 해 주시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10장 13절 말씀을 항상 잊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환난이 몰아닥칠 때는 이 말씀을 잊고 다 끝장난 것같이 느껴집니다. 그러나 거의 쓰러져 죽게 되었다고 생각될 때에는 “얼마나 인내하나 보자” 하시고 지켜보시던 하나님께서 얼른 피할 길을 열어주신다는 말씀입니다.시편 91편 3절에 “이는 저가 너를 새 사냥군의 올무에서와 극한 염병에서 건지실 것임이로다” 하셨고 5~6절에서도 “너는 밤에 놀램과 낮에 흐르는 살과 흑암 중에 행하는 염병과 백주에 황폐케 하는 파멸을 두려워 아니하리로다” 하셨고 7절에서는 “천인이 네 곁에서, 만인이 네 우편에서 엎드러지나 이 재앙이 네게 가까이 못하리로다”고 하셨습니다. 이 모든 것이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주신 특권입니다. 약속의 말씀을 믿고 두려워하지 말고 기도해야 합니다. 베드로전서 1장 5절에 “너희가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었나니”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아무 의미 없이 불신자들처럼 갑자기 재난을 당하여 죽어 없어지지 않습니다. 이사야 30장 18절에 “그러나 여호와께서 기다리시나니 이는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려 하심이요 일어나시리니 이는 너희를 긍휼히 여기려 하심이라 대저 여호와는 공의의 하나님이심이라 무릇 그를 기다리는 자는 복이 있도다”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자녀, 즉 거듭난 신자는 잡초와 같이 덧없이 베인 바 되어 말라죽는 존재가 아닙니다. 이사야 49장 15절에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모든 약속이 다 거듭난 신자들에게 하신 약속의 말씀입니다. 견딜 수 없는 환난과 고통이 몰아닥칠 때에는 하나님이 안 계신 것 같고, 하나님께 버림받은 것도 같고, 하나님이 나를 저주하신 것 같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는 말씀입니다. 어미가 자기 태에서 난 아들, 젖먹는 아기를 잠시라도 잊을 수가 있겠느냐 하는 말씀입니다. 인간은 제 자식을 버리거나 잊을 수 있을 지라도 하나님은 절대로 잊지 않으신다는 말씀입니다. 할렐루야! 히브리서 13장 6절에 “…주는 나를 돕는 자시니 내가 무서워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 하노라”하셨습니다. 강하고 담대하여 승리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 기도: 다시 태어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하신 주님, 우리는 간혹 ‘내가 만약 다시 태어날 수 있다’면 하고 바라면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다시 태어났음을 망각할 때가 있습니다. 오늘 다시 태어난 기쁨을 회복하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한태완 목사(하나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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