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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과 무관심

로마서 한태완 목사............... 조회 수 1031 추천 수 0 2009.07.24 23: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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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롬8:5-8 
설교자 : 한태완 목사 
참고 : http://je333.com 

미국 매사추세츠 주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바닷가를 거닐고 있던 어떤 사람이 로프에 걸려 그만 바다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헤엄을 칠 수 없었던 그는 있는 힘을 다해 구조 요청을 했습니다. 그를 구할 수 있는 사람은 가까이에서 일광욕을 즐기고 있던 젊은이 한 사람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그 젊은이는 생사의 기로에서 간절히 도움을 청하고 있는 사람을 외면한 채 일광욕만을 즐겼고, 바다에 빠진 사람은 결국 죽고 말았습니다. 이에 익사자의 가족들은 그처럼 무관심했던 젊은이를 상대로 소송을 걸었습니다. 그러나 현행법상 그 젊은이에게는 법적 책임이 없는 것으로 판결이 났습니다. 비록 그가 법적으로는 죄가 없는 사람일지는 몰라도 사랑이 뭔지 모르는 양심 없는 사람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무관심은 죄입니다! 당신은 혹 가족이나 이웃에게 무관심하지는 않으신지요? 당신의 가장 큰 관심은 무엇입니까? 돈버는 것입니까? 출세하는 것입니까? 아니면 성(sex )입니까? 아름다워지는 것입니까?

보통 10대의 가장 큰 관심은 이성, 20대는 sex, 30대는 돈, 40대는 사업, 50대는 권력, 60대 이상은 건강에 관심이 제일 많다고 합니다.

지금 많은 세상사람들의 관심은 허탄하고 썩어질 육신적인 일에만 관심이 있어서 진리의 말씀을 외면하고 무관심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 세대를 비유하여 '장터에 앉아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애곡하여도 너희가 가슴을 치지 아니함 같도다'(마11:16-19, 눅7:31-35)하였습니다.

어느 날 푸시라는 고양이가 런던에 갔다가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동료고양이들은 런던 소식이 궁금했습니다. "푸시야, 런던에서 무엇을 보았니?" "여왕의 의자 밑에 있는 생쥐를 보았지" "멋진 런던 탑과 버킹검 궁전과 국회의사당과 웨스트민스터사원을 보지 못했니? 여왕은 얼마나 우아하고 매력이 있는 분이었니?" "난 생쥐밖에 보지 못했어" 항상 우리 마음에 가득히 차 있는 최우선의 관심거리, 그것이 무엇이냐 하는 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첫째, 영혼의 구원에 관심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마르틴 루터의 설교집에는 이런 예화가 있습니다. 사탄이 부하들에게 인간을 파멸시킨 성공사례를 발표토록 했다. 한 부하는 "나는 야수를 풀어 기독교인 수 백명을 죽였다"고 했고, 두 번째 부하는 "태풍을 일으켜 신자들을 몰살시켰다"고 했다. 사탄은 "그래서 어쨌단 말이냐, 그들의 영혼이 구원을 받았는데"라며 화를 냈다. 세 번째 부하만이 칭찬을 받았다. "나는 10년 동안 한 기독교인을 영혼문제에 무관심하게 만들었다. 그는 지금 완전히 우리편이 됐다"(눅12:16-21, 마11:17)
영혼에 대한 무관심은 자신을 파멸시키고 사탄을 기쁘게 합니다.

둘째, 생명과 지혜의 말씀 곧 성경말씀에 관심을 가져야합니다.(욥22:22, 시119:11)
임금이 아들을 위하여 혼인잔치를 베풀고 그 종들을 보내어 초대하였거늘 사람들은 오기를 싫어하고, 돌아보지도 않고, 어떤 이는 자기 밭으로 가거나 상업차로 가고(마22:1-14) 또 어떤 이들은 "나는 소 다섯 겨리를 샀으매 시험하러 가야 한다" "나는 장가들었으니 그러므로 가지 못하겠노라"(눅14:18-20)하며 혼인잔치(하나님 나라)에는 관심이 없었고 오직 상업적, 가정적 문제 곧 세속사에만 관심을 가지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배척했습니다. 누구든지 주님나라에 가기 원한다면 성경말씀을 등한히 여기지 맙시다.

셋째, 가정과 자녀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어느 추운 겨울날이었다. 뱃사공은 어린 아들을 데리고 배를 저어 멀리 나아갔다. 열심히 노를 젓던 뱃사공의 얼굴에는 땀이 줄줄 흘러 내렸다. 그는 속옷만 입은 채 겉옷을 훌훌 벗어 던지고는 선창 안으로 들어가더니 아들에게 소리쳤다. "얘야, 덥구나 너도 어서 옷을 벗어라!" 뱃사공은 아들의 겉옷을 벗겨 버렸다. 그리고 다시 나와 찌걱찌걱 노를 젓던 뱃사공은 한참 후 또 다시 땀으로 온몸이 흠뻑 젖었다. 그는 몸에 착 달라붙은 속옷마저 훌렁 벗어 던졌다."어휴, 꽤나 덥구나 더워."

선창으로 또 쉬러 들어간 뱃사공은 선창 안이 더욱 덥게 느껴졌던지 아들의 남은 옷마저 벗겨 버렸다. 배는 더욱 바다 멀리 들어갔으며 뱃사공은 더 힘차게 노를 저어 갔다. 몸에선 더운 김이 무럭무럭 피어올랐다. 그러나 불쌍한 아들은 선창 안쪽에서 얼어죽은 줄은 몰랐다. 성경에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아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딤전5:8)하였습니다. 오늘날 많은 청소년들이 부모와 이웃의 무관심으로 비행청소년이 되어 사회에 물의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엘리 제사장은 아들 교육에 무관심으로 그 가족이 망했습니다.(삼상4:11-22)

넷째, 불우한 이웃 사람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잠22:9, 잠28:27)
김씨는 사랑하는 아내와의 사이에 1남 1녀를 두고 단란한 가정을 꾸미고 사는 평범한 가장이었습니다. 작은 회사에 다니는 김씨는 성실하게 일하고 검소하게 산 덕분에 느즈막이 작은 집 한 채를 마련할 수 있었고, 가족들과 아늑한 보금자리에서 오순도순 행복해 했습니다.

어느 날 김씨는 밀린 회사 업무를 처리하느라 밤늦게야 집으로 향했습니다. 골목 어귀를 지나갈 때 어떤 사람이 담벼락에 비스듬히 누워 신음하고 있는 것을 보았지만 홀낏 쳐다보고 무심히 지나쳤습니다. 집에 들어오니 아들이 아직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과외 공부를 저녁 늦게까지 하는 아들이라 그 날은 좀 늦겠지 하고 큰 염려는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12시가 넘어도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김씨는 그제서야 부랴부랴 아들의 친구, 친척집 등에 연락을 하였습니다. 아들은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밤을 하얗게 새운 김씨와 부인은 다음날 아침이 되어서야 아들의 거처를 알 수 있었습니다. 어떤 병원에서 아들이 응급실에 있으니 빨리 오라는 연락을 해왔던 것입니다. 너무 큰 상처라 살 가망이 없어 보였습니다.

아들은 과외 공부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다 그만 뺑소니 자동차에 치어 사고를 당한 것입니다. 그제서야 김씨는 전날 밤 담벼락에 기대어 신음하던 사람이 바로 자신의 아들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자기 자신을 포함해 길을 지나가던 많은 사람들의 무관심 때문에 오랜 시간 방치되었다가 어느 노인의 도움으로 겨우 병원에 실려온 것입니다.
"조금만 더 일찍 병원으로 데려왔으면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을 텐데.."
의사의 말에 김씨는 주먹으로 눈물만 훔칠 뿐이었습니다.

지금 우리 주위에는 고난 당하고 있는 불우한 이웃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을 외면하지 말고 관심을 가집시다. 기독교의 가장 큰 적은 공산주의가 아니라 바로 무관심입니다. 우리 주위에는 가난한 자, 고난 중에 있는 이웃들이 많습니다. 성경에 "의인은 가난한 자의 사정을 알아주나 악인은 알아줄 지식이 없느니라"(잠29:7)하였습니다.

뉴욕의 어느 주택가에 여인의 날카로운 비명이 차가운 밤공기를 찢으며 울려 퍼졌습니다. 갑작스런 비명에 인근의 주민들이 깨어나서 창문을 열고 길거리에서 일어나고 있는 상황을 내다보았습니다. 가로등이 환하게 켜져 있는 거리 한 가운데로 겁에 질린 한 여인이 있는 힘을 다해 달려가고 그 뒤에 손에 칼을 든 남자가 그 여인을 쫓아가고 있었습니다. 여인은 사람들을 향하여 "사람 살려요. 나를 좀 도와주세요!"하며 소리를 질렀으나 사람들은 무슨 영화의 한 장면이나 구경하는 것처럼 그저 바라보고만 있을 뿐 어느 누구도 그녀를 도우려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는 경찰서에 전화 한 통 걸어주는 사람조차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결국엔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모두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다들 철저한 무관심이었습니다. 결국 그 여인은 그 남자의 손에 잡혀 난도질을 당해 죽었고, 그 다음 날까지 그대로 길가에 버려져 있었습니다. 이 사건은 수년 전 미국에서 실제 있었던 일로, 각 매스컴들이 크게 문제시했던 사건입니다. 바로 이와 같은 사실을 통해 오늘날의 사람들이 얼마나 처참한 무관심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일들이 단지 미국에서만 일어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일들은 얼마든지 일어나고 있습니다.

얼마 전 영등포시장 앞에서 일어난 사건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2백만 원 정도를 갖고 새벽시장을 보러갔다 교통사고를 당한 사건입니다. 사고를 당한 사람은 길바닥에 피투성이가 되어 죽었습니다. 그런데 교통사고를 낸 운전사는 뺑소니를 치고, 지나가던 행인들은 죽은 사람이 놓쳐 흩어진 2백만 원을 줍는 데만 혈안이 되어 있었습니다. 아무도 사고 당한 사람에게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돈을 주워 누가 볼 새라 재빨리 사라진 이 사건을 보면서 현 시대는 진정한 이웃이 없는 비정한 사회라는 생각이 듭니다.

사고현장에는 아마 제사장(성직자)도 있었을 것이고 레위인(장로, 권사 등의 재직자)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고현장에는 여행 중에 강도를 만나 거의 죽게 된 사람을 보고 불쌍히 여겨 가까이 가서 도왔던 선한 사마리아인은 없었습니다.(눅10:30-37)

우리 한국 사람은 예로부터 이웃과 두터운 교분을 가지며 거의 모든 경조사에 함께하는 미풍양속을 가진 민족입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옆집에 도둑이나 강도가 들어 소리를 치면 자기 집 문을 꼭꼭 걸어 잠급니다.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옆집 사람을 만나도 시선이 마주 칠까봐 처음부터 시선을 층수 표시판에만 둔다고 합니다. 한 집에 세들어 사는 사람이 죽은 지 며칠이 되었어도 집주인이 몰랐다는 이야기는 이제 새삼스럽지가 않습니다. 이토록 극심한 개인주의는 그 도를 더해 가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 주님께서 가장 미워하시는 것입니다. 주님의 일과 내세의 일에 무관심한 자 그리고 이웃이 죄악 가운데 빠져가도 깨우치지 않는 자도 그 피 값을 받게 됩니다.(겔3:17-18, 마12:30)

우리의 매일 매일의 삶이 얼마나 깊은 무관심의 늪 속에 빠져 허덕이고 있는지 반성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을 마음 가운데 모신 사람들은 이제 시선을 바꾸어야 합니다. 나와 내 가족만을 바라보고 내 일신의 부귀영화에만 관심을 두던 옛 사람의 시선을 버리고 다른 사람들의 어려움을 돌아보며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사랑의 시선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복음을 모르고 멸망의 길로 향하는 많은 인생들에게 생명의 빛을 비추는 일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야 하겠다.
"너는 사망으로 끌려가는 자를 건져주며 살육을 당하게 된 자를 구원하지 아니치 말라"(잠24:11)

호주의 수도 켄버라의 한 시내버스 정류장에서는 한국 아줌마 한 분이 매일 그 시간이 되면 버스를 타는데 하루는 분명 그 시간에 타셔야 할 그 아줌마가 타지 않자 이상하게 생각한 버스 기사는 한 시간을 빙빙 돌며 기다리다가 다음날 꽃을 사들고 그 아줌마의 집을 찾아갔다고 합니다.

우리는 서로에 대해 무관심한 것을 얼마나 당연하게 여기며 살고 있습니까? 꽃을 사들고 버스 승객의 안부가 궁금해 찾아가는 버스 기사 아저씨의 마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메시아 탄생시 여관집 주인은 무관심으로 행운의 기회를 놓쳤습니다. 그러나 누가복음 7장에 나오는 백부장은 자기의 종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가지고 중풍병을 낫게 하기 위하여 에수님 앞에 아뢰는 신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사랑의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백부장처럼 이웃에 대해 관심을 가질 때 치유의 기적이 일어나게 됩니다. 우리가 자신만을 너무 생각한 나머지 다른 사람에게 무관심한 죄를 범치 않도록 주의하여야 하겠습니다.(잠28:27, 잠22:9)

이밖에 우리는 장애인, 환경오염, 건강, 선거 등에도 결코 무관심해서는 안됩니다.
"그러므로 너희를 권하노니 사랑을 저희에게 나타내라"(고후2:8)

기도: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오늘 거룩하고 복된 성일에 주님의 전에 나오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은 천하만민 중에서 저희들을 택하여 주시고 저희들에게 주를 경외하는 마음을 주시고, 자유와 건강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우리의 감사와 찬송과 기도로 영광과 존귀를 하나님 아버지께 돌리오니 받아주시옵소서. 우리 등대교회 중고등부 학생들과 교사들이 사도바울처럼 주 예수님의 이름을 위하여 고난받을 뿐 아니라 죽기까지 헌신 봉사할 수 있는 믿음과 능력을 주시옵고 우리 이웃에게도 담대히 주님의 복음을 증거할 수 있게 하여주시옵소서. 우리는 세상의 많은 것들 중 무엇에 가치와 관심을 두어야 할지 알기 어려울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주님의 일에 관심과 정열을 쏟을 수 있게 하여 주시고 나만 생각하는 이기주의에 빠져 다른 사람에게 무관심한 죄를 범치 않게 하시고 주님의 십자가의 사랑을 본받아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세상사람들처럼 썩어질 것, 허탄한 것에 지나치게 관심을 갖지말고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우리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등대교회 중고등부 예배 한 태 완 목사 설교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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