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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둔다

갈라디아 조용기 목사............... 조회 수 2259 추천 수 0 2009.08.03 17: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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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갈6:7~10 
설교자 : 조용기 목사 
참고 : 2005년 11월 20일 주일2부설교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찌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찌니라”

[서론]

저는 여러분과 함께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둔다”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농사일은 정직합니다. 농부가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둡니다. 땅은 사기치지 않습니다. 콩을 심으면 콩이 나고 팥을 심으면 반드시 팥이 납니다. 그런데 우리가 인생사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하나님께서는 인생사도 먼눈으로 보면 마찬가지라고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을 속일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인생사도 심은 대로 삶의 과정 중에서 거두게 된다는 것을 성경은 우리에게 확실히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본론]

1. 심고 거두는 법칙과 에덴동산


첫째로, 심고 거두는 법칙은 에덴동산에서부터 출발한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의 마음은 밭이요, 하나님의 말씀은 씨앗입니다. 사람의 마음 밭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심든지 사탄의 유혹으로 심든지 결과는 심은 것으로 거두게 된다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슴에 심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위해서 아름다운 에덴을 준비해 주시고 먹고, 입고, 마시고, 사는 일에 걱정하지 않게 하고 상함도 없고, 해함도 없게 해주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경고를 하셨습니다. 이 모든 하나님이 주신 영광을 누리는 조건으로 선악을 아는 실과 열매를 먹지말라.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이 하나님의 경고의 말씀을 마음속에 받아 심었어야 할 것입니다. 그랬다면 그들은 세세천세 하나님의 은총과 영광과 복을 누리고 사망의 세력에서 해방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악의 씨앗 즉, 마귀의 유혹으로 그들의 가슴속에 심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심지 않고 마귀의 유혹의 말을 받아서 마음속에 심었습니다. 그 결과로 어떤 열매를 맺었습니까? 하나님과 원수가 되고 그 영이 죽고 에덴을 상실하고 이 세상에 쫓겨나서 죽음과 낭패와 절망의 열매를 거두게 된 것입니다.

창세기 3장 19절에 보면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는 비극적인 결과를 갖게 된 것입니다.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한 말씀으로 심으면 생명으로 거두고 마귀의 유혹의 악한 말을 심으면 낭패와 저주와 실망과 죽음을 거두게 되는 것입니다.

IMF로 온 나라가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었지만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탐욕으로 인한 사치와 과소비 풍조가 사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카드 빚으로 신용불량자가 된 사람들 중에도 이러한 욕심과 탐욕에 의한 경우가 참으로 많습니다. 올 들어 각종 신용회복지원에도 불구하고 신용불량자의 수가 더욱 증가했습니다. 신용회복위원회가 지난 7월 19일부터 28일까지 전국 신용불량자 1,48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가족 중 신용불량자가 있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63%가 그렇다고 대답했습니다. 이는 지난해보다 4.4% 늘어난 것입니다. 또 응답자의 83.8%가 신용불량자가 된 이후 가족불화, 이혼, 별거 등을 경험했다고 대답했는데 이 역시 지난해보다 2.5%가 늘어난 것입니다. 이처럼 탐욕으로 심으면 악의 싹이 납니다. 탐욕의 대가는 절망이고 결국 사망의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마귀는 아담과 하와를 꾀인 것처럼 예수님의 생애에도 시험해 보려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유대 광야에서 40주 40야 금식하시고 주렸을 때 마귀는 탐욕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에 심어 보려고 한 것입니다. 마귀는 마태복음 4장 3절로 4절에 보면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이 떡덩이가 되게 하라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이 말의 내용은 이것입니다. 마귀가 찾아와서 굶주린 예수님을 쳐다보고 “정말 측은하고 불쌍하군요. 하나님이 왜 섭섭하게도 아들을 굶게 하는 것입니까? 그러니 하나님이 안 돌봐주니 당신이라도 직접 돌로 떡을 만들어 먹으세요.” 예수님의 마음속에 하나님이 이렇게 굶주리는데도 먹여주지 않는다는 섭섭함을 넣으려고 한 것입니다. 섭섭함이 들어오면 그 다음 마귀의 유혹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단호하게 마귀의 유혹을 물리쳤습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 다음 마귀는 마태복음 4장 5절로 7절에 “이에 마귀가 예수를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하였으되 저가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저희가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 하였느니라 하신대”
이 시험은 뭐가 있습니까? 마귀가 예수님을 높은 탑 위에 데리고 가서 세워 놓고 “하나님이 유명하게 안 만들어 주시니 아들의 능력을 사용하여 기적을 연출하여 유명하게 되라. 섭섭하게도 하나님은 당신을 유명하게 안 만들어 주신다. 그러니 자력으로라도 유명하게 되라.” 하나님에 대한 섭섭한 감정을 넣어서 타락하게 하려고 한 것입니다. 그때 예수님은 단호하게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고 물리쳤습니다. 그러자 마귀는 예수님을 높은 산에 데리고 가서 천하만국을 보여 주고 하는 말이 “하나님은 당신에게 천하만국의 영광을 안주시나 나는 주겠으니 내게 절하라. 하나님이 안주시지 않느냐? 그러나 나는 주겠다. 내게 절하라.” 그때 예수님은 “사탄아 물러가라. 주 너의 하나님께만 경배하고 그를 섬기라”고 해서 마귀가 예수님의 마음속에 섭섭한 감정을 심으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했는데도 예수님 은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아담, 하와는 쉽게 받아들였지요. “하나님이 모든 실과를 먹지 말라고 하느냐? 아니라. 모든 실과는 다 먹되 선악을 아는 실과는 먹지 말라. 먹는 날에는 죽을까 하노라.” “안 죽는다. 내가 이 실과를 먹으면 눈이 밝아 하나님처럼 될까봐서 하나님이 두려워해서 그렇게 하시는 것이다.” 섭섭한 감정을 넣어 주어서 그만 하나님을 반역하게 만들었는데 그 꾀를 예수님께 적용해 보려고 아무리 노력해도 예수님의 마음속에 하나님에 대한 섭섭한 감정을 넣을 수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마귀의 궤계를 잘 알고 계셨기 때문인 것입니다. 하나님께 섭섭한 마음을 갖게 하여 반역을 하도록 유혹의 씨앗을 뿌렸으나 예수님은 이 씨앗을 전혀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이 씨앗은 그냥 바람에 날려 가버리고만 것입니다. 마귀는 예수님을 유혹하는데 실패한 것입니다.

미국의 유명한 전도자인 존 하갈은 성공적인 목회자가 되려고 하던 1950년에 아들이 갑자기 뇌성마비로 쓰러졌습니다. 그때 마귀는 와서 말했습니다. “네가 하나님의 종인데 하나님을 위해서 일생을 바쳐 일하려고 하는데 왜 네 아들이 뇌성마비로 쓰러졌느냐? 하나님은 안계시든지 그렇지 않으면 무정하고 너무나 자기 백성을 돌보지 않는 무관심한 하나님이다.” 섭섭한 감정을 목사님 속에 집어넣으려고 했습니다. 그는 이때 아들이 뇌성마비를 하나님의 저주로 생각지 않고 오히려 감사하며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이, 아들의 병을 인하여 오히려 감사합니다. 저 아들로 인해 주께서 나를 겸손하게 만드셨고 남의 어려움을 도울 수 있는 마음이 생기게 하셨습니다. 또한 내 아들처럼 병고에 시달리는 불쌍한 이웃을 위해서 사랑을 베풀고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시니 감사합니다.” 마귀가 섭섭한 감정을 넣어 주려고 하는 것을 단호하게 뿌리치고 오히려 아들의 뇌성마비로 인하여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그를 기쁘게 받아 주셔서 그 후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감사와 찬양으로 심으면 우리의 생각이 긍정적이 되고 꿈이 긍정적이 되며 믿음이 긍정적이 되고 말이 긍정적이 되어 그 결과 젖과 꿀이 흐르는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2. 무엇으로 심는지 조심하라

둘째로, 우리가 무엇으로 심는지 항상 조심해야 됩니다. 우리의 마음이 밭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도 우리 마음 밭에 심으시고 마귀도 우리 마음에 심어서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열매를 맺으려고 하고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탐욕으로 심으면 죄의 싹이 나고 사망의 열매를 맺습니다. 탐욕의 대가는 언제나 사망입니다.
야고보서 1장 15절에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골로새서 3장 5절로 6절에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이것들을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

우리가 가장 경계해야 될 것이 탐욕입니다. 자기의 분수를 뛰어 넘어 욕심을 가지는 이 탐심이 우리를 파멸케 하는 씨앗을 심게 만들어 놓는 것입니다. 욕심이 잉태하면 죄를 낳게 되고 죄가 장성하면 사망을 낳게 되는 것입니다. 현재 우리나라 사람 10명중에 4명이 복권대박을 꿈꾼다고 합니다. 저도 가끔 복권을 한번 사볼까 싶은 생각이 날 때가 있습니다. 그만큼 복권에 대한 유혹은 강합니다. 미국의 한 언론사가 1천만 달러 우리나라 돈으로 약 120억원에 달하는 복권에 당첨된 사람 70명을 대상으로 5년후에 그들의 행복지수를 조사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80%에 달하는 56명이 당첨이후 더 불행해지게 되었다고 대답했습니다. 처음에는 집과 차를 바꿔서 좋았지만 결국 돈 때문에 싸움이 일어나서 가정이 파탄되고 만 것입니다. 반면 복권 당첨 후 행복해졌다고 대답한 소수의 사람들은 당첨금의 상당부분을 교회에 헌금하거나 사회단체에 기증했다고 말했습니다. 백만장자 앤드류 카네기는 세상에 돈이라는 우상보다 사람을 더 타락시키는 우상이 없다고 말했었습니다. 맞습니다. 무엇이든지 탐욕으로 심으면 악의 싹이 나게 되고 그 결과는 파탄을 가져오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불평과 원망으로 심으면 불행과 실망과 실패로 거둡니다. 우리 마음속에 불평 좀하고 원망 좀 했다고 무슨 큰 대수가 될 것이냐고 생각하지만 그것이 씨앗입니다. 원망도 씨앗이요, 불평도 씨앗이요, 이 씨앗을 나의 마음의 밭에 심는 것입니다. 그냥 지나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둔다고 말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부정적인 생각과 꿈과 믿음과 말을 심어 놓으면 우리의 삶은 광야로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항상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광야를 떠나지 않고 광야에서 전부다 소멸되고 만 것입니다.

민수기 14장 27절로 29절에 보면 “나를 원망하는 이 악한 회중을 내가 어느 때까지 참으랴 이스라엘 자손이 나를 향하여 원망하는바 그 원망하는 말을 내가 들었노라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삶을 가리켜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너희 시체가 이 광야에 엎드러질 것이라 너희 이십세 이상으로 계수함을 받은 자 곧 나를 원망한 자의 전부가”라고 말한 것입니다.

원망과 불평은 결국 하나님과 원수가 되게 하고 하나님의 진노를 격발해서 큰 환난을 당하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민수기 11장 1절로 2절에 “백성이 여호와의 들으시기에 악한 말로 원망하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진노하사 여호와의 불로 그들 중에 붙어서 진 끝을 사르게 하시매 백성이 모세에게 부르짖으므로 모세가 여호와께 기도하니 불이 꺼졌더라”고 말한 것입니다.
또 보면 백성이 에돔땅으로 들어가는 것에 마음이 상해 애굽에서 인도하여 광야에서 죽게 하는고 식물도 없고 만나도 싫다고 불평하자 하나님이 불뱀을 보내셔서 그들을 물게 하매 불뱀에 물려서 많은 백성이 죽었습니다. 원망과 불평은 하나님의 심판을 격발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귀는 우리에게 자꾸 원망과 탄식을 하게 만들어서 하나님의 진노를 당하도록 유도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므로 원망과 탄식으로 심지 말아야 됩니다. 많이 심으면 많이 거두고 적게 심으면 적게 거둡니다. 안 거둘 수는 없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스스로 속이지 말라. 내가 심어도 안 거둘 것이라고 속이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둔다고 말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감사와 찬양으로 심으면 생각이 긍정적이 되고 꿈이 긍정적이 되고 믿음이 긍정적이 되고 말이 긍정적이 되고 그 결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들어가게 되고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5장 29절에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있는 것을 가지고 감사하면 하나님은 더 있게 만들어 주시고 있는 것조차 보지 않고 자꾸 없는 것으로 불평을 하면 있는 것도 하나님이 모두 다 제하여 버리시겠다고 말씀한 것입니다.

헤럴드 러센이라는 미국 공수부대원이 2차대전에 참여했다가 두팔이 잘리는 부상을 당했습니다. 그는 나는 이제 쓸모없는 고깃덩어리라고 좌절과 절망에 인생을 포기했습니다. 그러다가 한 의사에게 전도를 받고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그가 다시 삶에 대한 희망을 갖게 되자 의사는 그에게 의수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인조 팔을 끼고서 열심히 글을 쓰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의지해서 그때부터 기쁨을 얻고 낙천적이 되고 소망으로 가득하게 된 것입니다. 그 소문이 나자 몇 년 후 그는 ‘우리 생애에 최고의 해’라는 영화에 출연제의를 받고 그 영화에 상이용사로 출연해서 열심히 연기했습니다. 그 결과 1947년 아카데미 조연상과 특별상을 동시에 수상했고 그 상금을 모두 상이용사를 위한 자선사업에 바쳤습니다. 한번 어떤 신문기자가 찾아와서 “당신의 신체적인 조건이 당신을 실망치 않게 하느냐?”고 물었습니다. 이때 러셀은 “아니요, 나의 육체적인 장애는 오히려 내 인생에 큰 복이 되었습니다. 나는 잃어버린 것을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아직 남아있는 내 팔다리를 기억하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좋은 말씀 아닙니까? 내 잃어버린 두 팔을 인하여 불평하지 않고 그래도 아직 남아있는 두 다리와 몸을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맞습니다. 어떤 상황에도 하나님께 감사할 것들을 헤아리는 사람을 하나님은 절대 버리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그의 약점과 단점까지도 사용하셔서 주님이 높여 주는 것입니다. 감사하니까 상이용사가 되어 두 팔을 잃은 것까지 오히려 유익이 되어서 그는 유명한 배우가 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빌립보서 4장 6절로 7절에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추수감사예배로 드리고 있습니다. 이 추수감사의 유래는 미국의 청교들에 의해서 시작했는데 미국의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은 돈독한 신앙으로 신생 미국의 기반을 다진 인물입니다. 그는 1789년 상하원 의원들로 구성된 연합위원회가 상정한 감사절과 기도절 제정을 인준한 뒤 이런 역사적인 선언을 했습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섭리를 인정하고 그의 뜻을 따르며 그의 자비에 감사하고 겸손히 그의 보호하심과 은혜를 간구하는 것은 모든 국가의 의무다. 영원전부터 우리를 보살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영원까지 지켜 주시도록 예배드리자. 그러면 우리를 굳게 지켜 주실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대통령이 온 국민 앞에 하나님을 신뢰하고 감사하는 선언을 한 것입니다. 이 감사절은 3대 대통령이었던 토마스 제퍼슨에 의해 폐지되었다가 해일이라는 여성이 벌인 캠페인의 영향을 받아 1863년 링컨 대통령에 의해 다시 복구 되었습니다. 감사를 심을 줄 아는 지도자들을 통해 미국은 번영하는 나라로 성장한 것입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구원으로 보이리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한 국가도 원망과 불평과 탄식을 하면 잘못된 씨앗을 심어서 낭패와 실망을 거두게 되지만 한 국가도 감사와 찬양을 드리고 하나님을 섬기면 좋은 씨앗을 심어서 결국에는 번영과 축복으로 거두게 되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이 찾으시는 사람

셋째로, 하나님이 이 땅에서 찾으시는 사람은 어떠한 사람이겠습니까?
사람이 특별히 잘나고 특별히 못난 사람이 별로 많지 않잖아요. 다 평균적인 인간으로써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사람은 하나님이 사랑하고 귀하게 여기고 다른 사람은 하나님이 싫어하고 미워하시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기준이 어디에 있을까요? 그것은 하나님께서 어떠한 형편이든지 감사와 찬양을 하는 사람을 좋아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선한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구원하시는 이 마당에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하는 사람을 하나님은 특별히 귀하게 여기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슨 공로를 세워서 하나님께 인정받을만한 자격자가 되지는 않습니다.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우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하려 함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행위로 자랑할 자가 아무도 없는데 무얼 내가 잘했다. 이것 때문에 하나님께 사랑받을 만한 자격이 있다고 고개를 흔들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찾으시는 것은 하나님이 너무나 큰일을 해주셨는데 일을 받고도 입을 씻어 버리고 감사할줄 모르는 사람을 하나님은 싫어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은혜 받은 것을 계산하고 생각해서 감사하여 눈물을 흘리고 찬미하는 사람을 하나님은 귀하게 보시고 안아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이 우리에게 해주신 일이 너무나 많잖아요. 예수님 십자가 보혈을 통해서 죄와 절망, 저주와 죽음 이 모든 일에서 해방시켜 주시고 은총을 주신 것 생각할 때 너무나 감사하잖아요. 우리는 너무 감격 없이 감사 없이 살아가는 인생이 된 것을 볼 때 탄식스럽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구약에 보면 사울왕과 다윗왕은 두 왕인데 둘 다 그렇게 행위로써는 훌륭한 왕은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사울을 미워하셨습니다. 왜냐, 사울은 시기, 질투, 분노에 가득한 왕으로 하나님께 버림을 당했는데 그는 일생에 하나님을 찬미하는 시 한수도 적지 않았습니다. 시편에 여러분 사울왕이 지었다는 시가 한편도 나와 있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었지만 그는 언제나 마음속에 시기와 분노와 질투로 부글부글 끓었습니다. 부정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그 결과로 그는 파멸당하고 만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어떠한 사람입니까? 다윗은 하나님을 찬미하는 수많은 시와 찬미를 하나님께 드려 하나님 마음에 합당한 사람이라 했습니다.

사도행전 13장 21절로 22절에 “그 후에 저희가 왕을 구하거늘 하나님이 베냐민 지파 사람 기스의 아들 사울을 사십 년간 주셨다가 폐하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거하여 가라사대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 하시더니” 왜 다윗이 하나님께 합당한 사람이냐. 그는 언제나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하며 긍정적이고 적극적이고 창조적인 마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인 것입니다.

시편 150편 중 73편에 다윗의 이름이 있습니다. 다윗은 노래 잘하는 자, 악기도 많이 발명한 자로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노래 잘하는 자, 그는 하나님께 끊임없이 노래하고 감사하고 찬양하며 간구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다윗의 하나님 감사함을 마음에 크게 기쁘게 생각했습니다. 다윗은 내 마음에 합당하다. 원망, 불평, 탄식하지 아니하고 늘 범사에 감사하며 하나님께 노래하고 영광을 돌렸다. 내 마음이 합당하니까 내가 그를 통해서 모든 일을 하겠다고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성경에 바울선생을 보면 바울선생이 그 많은 시험과 환난을 겪었음에도 불평을 안했습니다. 바울선생은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고 하고 그것을 실천한 분인 것입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바울같이 헌신하고 전 생애를 바쳐서 하나님 사업을 하면서 그만큼 고생한 사람 별로 없습니다. 그쯤 되었으면 하나님께 원망이나 불평을 한마디 할만한데 바울은 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선생은 복음 증거하다가 많은 고생을 했는데 고린도후서 11장 23절로 29절에 그가 이렇게 간증했습니다. “저희가 그리스도의 일군이냐 정신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도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번 죽을뻔 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번 맞았으며 세번 태장으로 맞고 한번 돌로 맞고 세번 파선하는데 일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여러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오히려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 누가 약하면 내가 약하지 아니하며 누가 실족하게 되면 내가 애타하지 않더냐” 이처럼 많은 시험과 환난을 당해도 바울선생은 늘 하나님께 감사하며 찬미했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빌립보에서 복음을 증거하다가 잡혀서 늘씬하게 얻어맞고 빌립보 옥중에 깊이 갇혔습니다. 양손, 양발이 착고에 차이고 실라와 함께 밥도 굶고 매를 맞아 피가 흐르고 몸은 쓰리고 아픈데 밤중에 원망과 불평을 한 것이 아니라 기도를 하고 난 다음 하나님께 감사 찬양을 드렸습니다. 쇠고랑을 철렁철렁 하면서 감사와 찬송을 드리는데 그 감사와 찬송이 얼마나 진실했던지 흉악한 죄수들이 같은 방에 있으면서 시끄럽다 소리 안하고 다 그 찬송을 들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그 찬송에 장단을 맞춘다고 한번 두들기더니만 지진이 일어나고 만 것입니다. 빌립보 도시가 뒤흔들리고 감옥 문이 열리고 착고가 다 풀리고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난 것을 보는 것입니다. 그런 어려운 가운데도 원망과 불평하지 않고 감사와 찬양을 드린 것이 하나님의 마음에 감동을 주신 것입니다.
저는 리더스 다이제스트에서 에비 로빈슨이라는 사람에 대한 기사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에비 로빈슨은 트럭 운전사였는데 교통사고로 시신경을 다쳐서 시각 장애자가 되어서 장님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독실한 기독교인이어서 낙심하거나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교통사고로 실명을 했는데 보통 사람 같으면 다 원망, 불평합니다. 하나님 나는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인데 왜 내게 교통사고를 나게 허락하셔서 실명되게 했습니까? 하겠는데 이 사람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는 저녁만 되면 자기 집 잔디밭에 앉아 무릎을 꿇고 늘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까지 빛을 주시고 생명을 주시고 여기까지 인도하여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매일 이렇게 감사기도를 하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석 달 만에 그의 시신경이 회복되어 물체가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지금은 완전히 회복되어 예전처럼 생활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감사의 기도가 이런 기적을 베푼 것입니다. 그 마음을 긍정적이고 적극적이고 행복하고 평안하게 만들어서 치료의 역사가 그 몸속에 넘쳐나서 시력이 회복되게 된 것입니다.

칼 힐티는 행복론에서 감사하는 사람은 젊어진다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다 늙어져요. 별 도리가 없이 하루하루 늙어져 갑니다. 그러나 감사를 하면 늙어져 가는 길도 중지시킬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원망, 불평, 탄식해 보십시오. 얼굴이 길쭉해지고 얼굴에 밝은 색깔이 없어지고 주름살이 지고 늙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감사와 기쁨은 인생에 기름칠을 해주는 역할을 해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당하든지 감사와 찬양을 심으면 우리 삶에 생기가 돌고 기쁨이 충만하여서 범사에 긍정적이 되고 결국 그 삶에 젖과 꿀이 흐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게 주신 모든 것을 헤아려 감사하라. 우리가 기도할 때 기도할 제목이 없다고 말할 때가 많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과거에서 지금까지 살아온 세월 동안에 은혜를 받은 것을 일일이 기억하고 그것으로 감사를 하면 기도할 제목이 많습니다. 어제도 그것을 가지고 감사하고 오늘도 그것을 가지고 감사하고 내일도 그것을 가지고 감사하고 거듭거듭 우리가 감사하면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실 것입니까? 그러므로 감사로 제사를 늘 드려야 합니다. 무엇 기도할 것이 없다. 나는 감사할 것이 없다. 거짓말입니다. 살아온 세월을 돌이켜 볼 때 또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큰 축복과 은혜를 생각할 때 어떻게 감사하지 않을 수가 습니까? 다른 기도할 것 없으면 일일이 손가락으로 헤아려서 감사를 해야 합니다. 제가 잊을 수 없는 것은 제가 평신도일 때 미국에 선교사 리처드 목사님이 세워서 목회를 하는 부산순복음교회 출석했습니다. 거기에 피난 내려온 과부가 있어요. 그 과부 할머니는 딸이 여선생이었는데 시련을 당해서 정신병자가 되었습니다. 지금 내가 생각할 때 그 할머니가 한 70세쯤 되는데 그 정신병자가 된 딸이 한 30세 되었는데 그 딸을 늘 손을 잡고 교회와서 기도하고 또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가요. 그 70세 어머니가 없으면 이 딸은 완전히 식물인간이요, 그저 히죽히죽 웃고 아무것도 못해요. 그런데 저는 특별히 마음속에 의협심이 생겨서 그 할머니가 교회 오면 특별히 안내해서 좋은 자리에 안내하곤 했는데 그 할머니가 늘 눈물을 흘리면서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을 보고 그때는 의아하게 생각했습니다. 피난 내려오면서 온 가족식구 다 잃어버리고 외동딸 하나 의지하고 살다가 그 외동딸이 정신병자가 되었는데 그 외동딸을 끌고 교회와서 눈물을 흘리면서 감사를 자꾸 해요. 그래서 제가 그 할머니에게 물었습니다. “할머니! 제가 보기에는 감사할 조건이 하나도 없는데요. 왜 엎드리기만 하면 눈물을 흘리고 감사합니까?” “왜, 젊은이 감사할 것이 없어. 나는 처녀때부터 지금까지 살아온 옛날을 다 캐서 손으로 꼽으면서 감사한다오.” 현재 감사할 것이 없어도 옛날 처녀시절에 예수 믿고 북한에서 살다가 피난 내려와서 지금까지 지낼 수 있도록 해준 하나님의 은혜를 하나하나 전부 기억하고 캐내어서 손가락으로 짚어 가면서 감사한다고 그랬습니다. 그래서 그 할머니가 항상 기쁨이 충만하고 즐거움이 넘치는 것을 보았고 선교사님이 그 할머니를 불쌍히 여겨서 모자원에 넣어 주고 그 딸을 돌보아 주는 것을 보았습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니까 하나님이 같이 하시더라구요. 과거에 살아온 모든 것을 손꼽아 짚어가면서 감사한다는 말이 지금도 저의 가슴속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 할머니가 과거를 기억하면서 손가락으로 짚어 가면서 감사한다고 하면 오늘날 우리가 사는 형편은 그때보다 얼마나 더 잘살고 있습니까? 정말 기뻐 춤추도록 잘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감사 안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여러분 감사는 하나님께 나아가는 큰 대로가 됩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이 없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 나가는 큰 대로가 바로 감사입니다.

시편 100편 4절에 “감사함으로 그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 이름을 송축할찌어다”
감사하면 하늘에 들어가는 문이 열려요. 찬송하면 하나님의 궁정에 들어가요. 그러니 우리가 기도할 때 감사하므로 찬미하면 하나님 앞에 들어가는 대로가 열리고 대문이 열리고 하나님의 궁정에 들어가서 하나님 앞에 서게 되니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 것입니까? 하나님이 나에게 가까이 안 계신다고 우리가 불평하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감사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대문이 열려요. 찬미하면 그 궁정에 서게 돼요. 하나님의 임재하심 속에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장 5절로 6절에 “또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그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고 말한 것입니다.
죄에서 해방해 주시고 하나님 앞에서 우리를 하나님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아 주시고 영광을 주신 하나님을 생각할 때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하지 아니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시편 50편 14절로 15절에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지극히 높으신 자에게 네 서원을 갚으며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는 환난 날에 주님이 함께 하여 건져주고 영화롭게 해주겠다고 말한 것입니다. 이만큼 하나님은 감사를 좋아하시고 원망과 불평을 미워하시는 것입니다. 감사하는 자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고 원망과 불평하는 자는 광야에 방황하게 팽개쳐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감사하는 우리들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미국 무디 성경학교 교장을 엮임했던 R.A 토리 박사는 말하기를 ‘감사하는 사람은 축복의 열쇠를 손에 쥔 사람이다. 모든 음식에 소금이 들어가야 맛이 나듯이 모든 일에 감사가 있으면 형통하게 된다’ 고 말했었습니다. 교부였던 요한 크리소스톰 역시 ‘감사하는 것에 인색하지 않는 자는 축복의 열쇠를 손에 쥔 자다. 환난과 슬픔속에서도 감사하라.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그것을 축복으로 바꿔 주실 것이다’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우찌무라 간조는 ‘감사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는 메마른 마음을 가지게 되는 것은 저주’라고 말했습니다. 바로 저주가 다른데 있는 것이 아니라 감사할줄 모르는 메마른 마음, 원망과 불평하는 마음이 저주의 씨를 심고 있다는 것입니다. 찰스 스펄전은 ‘촛불을 보고 감사하면 전등불을 주시고 전등불을 보고 감사하면 태양을 주시고 태양을 보고 감사하면 광명한 천국을 주신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찾으시는 사람은 바로 감사하는 사람입니다. 어떤 형편에서든지 감사와 찬양을 하는 자가 형통과 축복의 씨앗을 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편 37편 1절로 2절에 “행악자를 인하여 불평하여 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를 투기하지 말지어다 저희는 풀과 같이 속히 베임을 볼 것이며 푸른 채소 같이 쇠잔할 것임이로다”
시편 37편 4절에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

나에게 불의를 행하고 나를 고통하는 사람이 올지라도 원망과 불평하지 말고 오히려 하나님을 기뻐하고 감사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형통케 해주시겠다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사는 사람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위하시면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 그 아들을 아끼지 않고 내게 주신 이가 아들과 함께 무엇을 선물로 주지 않겠느뇨. 우리의 살고 죽는 것도 하나님께 달렸고 일어서고 넘어지는 것도 하나님께 달렸습니다. 우리가 나아가고 나아가지 않는 것도 하나님께 달렸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모든 삶에 관여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인생을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이 하나님을 우리는 어떠한 일이 있으나 감사하고 찬미하고 예배드리면 하나님이 우리를 이끌어 가십니다. 눈에는 아무 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 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고 내 앞길 칠흙같이 어두워도 나의 삶은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 사는 인생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리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은 어떠한 일이 있어도 마음에 하나님에 대한 섭섭함을 가져서는 안 됩니다. 마귀는 아담에게 섭섭한 감정을 넣어서 탐욕을 갖고 타락하게 만들었습니다. 예수님에게 아무리 섭섭한 감정을 넣어 주려고 해도 예수님은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고 배격했습니다. 우리가 내게 어떠한 손실되는 일이 있고 고통스러운 일이 있어도 하나님을 원망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일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악을 선으로 바꾸시는 하나님인 것입니다. 먼 앞날을 바라보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좋은 일이나 나쁜 일이나 성공할 때나 실패할 때나 건강할 때나 병들 때나 모든 일에 하나님께 감사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범죄 심리학자인 소퍼박사는 형무소에 있는 죄수와 수도원에 사는 수도사의 차이를 이렇게 말했습니다. 형무소에 있는 죄수도 형무소에서 밖으로 못나갑니다. 수도원에서 수도하는 수도사도 수도원 밖으로 못나가니 갇혀 있는 삶은 똑같은 처지인 것입니다. 형무소에 있는 사람은 하루 종일 불평과 요구만을 말합니다. 수도원에 있는 수도사는 하루 종일 감사의 기도를 드립니다. 하나님을 믿는 기독교인도 만일 감사의 기도대신 요구와 불만의 기도만을 드린다면 눈에 안 보이는 형무소에 들어가 있는 죄수와 같은 것입니다. 형무소에 있는 죄수는 감사하지 않습니다. 늘 원망과 불평하지요. 그러나 똑같은 수용소에 있는 수도사는 하루 종일 성경 읽고 하나님께 예배하고 감사합니다. 똑같은 처지에 있어도 그 마음의 태도는 다릅니다. 고립된다는 점에서 감옥은 수도원과 비슷합니다. 그러나 그에 대한 반응이 어떠냐에 따라 큰 차이가 생깁니다. 바울과 실라는 감옥에 갇혔지만 죄수와 같이 행동하지 않았었습니다. 오히려 수도원에 있는 수도사처럼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했던 것입니다. 이런 사람이 바로 하나님이 찾으시는 사람인 것입니다. 좋은 환경에 우리가 감사는 다 할 수가 있습니다. 좋은데 왜 감사 안합니까? 안 좋은데 고통스러운데 그래도 감사하는 이것이 위대한 신앙인 것입니다. 우리는 그저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기 짝이 없어요. 사람은 하루에 2만 3천 번을 숨쉬고 심장은 보통 10만 4천 번을 뜁니다. 우리 몸속에 혈액이 하루에 달리는 거리만도 1억 6천 8백만 마일로 미터로 환산하면 2천 7백억 미터입니다. 또한 사람이 하루에 사용하는 두뇌 세포만도 7백만 개가 넘습니다. 이중에 무엇 하나만 잘못되어도 우리는 살지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하나님께 감사해야 돼요. 정말로 기기묘묘한 기계가 사람이라는 기계입니다. 이 복잡한 기계가 참 질서 있고 조화 있게 움직여 나가서 우리가 살아있고 오늘 예배드릴 수 있다는 이것만 생각해도 감사해야 될 것 입니다.

[결론]

우리가 악과 불의로 심으면 일시적으로 흥하는 것 같으나 종국적으로 파멸을 거두게 됨은 역사와 인류의 경험이 증명합니다. 악과 불의를 심어놓고 잘되는 것 같아도 결국에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기 때문에 파멸을 거두게 됩니다. 그러나 선함과 사랑,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 헌신과 충성으로 심으면 또 그와 같은 복으로 결국에 거두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속이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결코 속지 않으시고 우리가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게 하시는 것입니다.
엘리자 에드먼드 휘시라는 사람은 1887년 어느 겨울날 갑작스런 사고를 당해 척추를 다쳤습니다. 그 때문에 그는 몇 개월 동안 움직이지도 못하고 병원 침대에 누워 있었습니다. 나중에는 신앙심도 약해져서 마음에 가해자에 대한 원망만 쌓여 갔습니다. 그런데 매일 그의 병실에 청소해 주는 청소부를 보니 한결같이 하나님께 감사하며 찬송을 부르는 것이었습니다. 청소부 생활로 근근히 생계를 이어가면서도 항상 감사를 잃지 않는 그의 생애를 보고 그 모습에 휘시는 감동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증오와 원망에 찬 생활을 깊이 회개하며 시를 썼는데 이 시에 곡을 붙인 것이 바로 우리가 자주 부르는 찬송가 455장입니다.
♬ 주안에 있는 나에게 딴 금심 있으랴. 십자가 밑에 나아가 내 짐을 풀었네.
주님을 찬송하면서 할렐루야 할렐루야 내 앞길 멀고 험해도 나 주님만 따라가리.♬
그 두려움이 변하여 내 기도 되었고 첫날에 한숨 변하여 내 노래 되었네
내 주는 자비하셔서 늘 함께 계시고 내 궁핍함을 아시고 늘 채워 주시네.
내 주와 맺은 언약은 영 불변하시니 그 나라 가기까지는 늘 보호하시네.
주님을 찬송하면서 할렐루야 할렐루야 내 앞길 멀고 험해도 나 주님만 따라가리.
그렇습니다. 주안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믿는 자들은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아갈 수 있는 충분한 이유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꼭 감사절기가 되어야만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더욱 이 절기를 통해서 우리가 깨닫고 매일 매일을 감사하면서 살아가는 우리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이 많으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감사할 조건을 찾으면 너무나 많고 원망과 불평할 조건을 찾아도 많습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고 그 씨를 심는 자는 축복과 영광으로 거두고 원망과 불평과 탄식으로 심은 자는 낭패와 실망과 파멸로 거두게 되는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사람이 마음 밭에 무엇으로 심든지 종국적으로는 그것을 거두고 산다는 것을 우리가 알고 하나님을 우습게 생각하지 말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아버지여 우리 주 예수를 주신 하나님을 너무나 감사하고 찬양하며 하나님의 기적을 허락하신 많은 일에 감사하고 찬양하며 좋은 씨앗을 심는 우리들이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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