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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고 확신한데 거하라

디모데후 조용기 목사............... 조회 수 2187 추천 수 0 2009.08.03 17:1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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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딤후3:14~17 
설교자 : 조용기 목사 
참고 : 2005년 11월 27일 주일 3부 설교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네가 뉘게서 배운 것을 알며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서론]

저는 오늘 여러분과 함께 “믿고 확신한데 거하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우리는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 두 세계를 동시에 갖고 살고 있습니다. 보이는 세계는 시간, 공간, 물질인 3차원의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는 감각적으로 체험할 수 없으나 공기처럼 존재하는 영적인 세계 즉, 4차원의 세계인 것입니다. 우리는 영적인 사람이므로 3차원의 물질적인 육체를 가지고 그 속에 살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3차원도 가지고 있고 또 동시에 4차원도 갖고 있는 것입니다. 그 때문에 우리가 갖는 지식도 두 근원에서 나옵니다. 3차원적인 지식은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만져보는 감각적인 수단과 지적, 이성적인 과학적 지식은 3차원적인 지식인 것입니다. 그러나 믿는 사람은 영적인 세계에서 오는 4차원적인 지식이 있습니다. 이 지식은 감각이나 이성을 통해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계시를 통해서 주시는 말씀의 지식, 이 지식을 통해서 우리는 삽니다. 이 계시적인 지식은 인간 이성으로는 알 수가 없고 믿음으로만 받아들일 수 있는 것입니다. 실상은 3차원적인 지식은 초등학문이고 실령한 계시적인 지식은 고등학문인 것입니다. 우리 예수믿는 사람은 영적지식을 따라 믿음으로 삽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신령한 세계 속에 살기 위해서는 우리가 해야 할만한 일이 있습니다.

[본론]

1. 참된 진리를 알아야 함


첫째로, 참된 진리를 알아야만 합니다.
똑같은 사물을 볼지라도 그 사물에 대한 참된 진리가 있고 거짓된 것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말하면 에덴동산의 선악과를 보십시오. 그 선악과에 대해서 하나님은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선악을 아는 실과를 먹는 날에는 너희가 반드시 죽으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참된 진리요, 참된 정보인 것입니다. 그러나 마귀는 뭐라고 말했습니다. 똑같은 선악과를 보고서 ‘네가 먹는 날에는 눈이 밝아 하나님처럼 된다.’고 거짓정보를 흘렸고 거짓진실을 말했습니다. 우리는 그 사이에 끼었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이 주시는 진리의 말씀과 마귀가 주는 거짓으로 포장한 진리인채 가장하는 그 말 사이에 끼어서 방황하다가 마귀의 말에 넘어간 것입니다. 그래서 패가망신하고 만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주는 바른 지식에 굳세게 서야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항상 하나님의 말씀과 마귀와 세상이 주는 말이 우리 가운데 다가오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둘 중에 하나를 언제나 선택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될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인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모든 삶의 중심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우리에게 영원히 살 수 있는 길로써 예수님을 보내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육신을 쓰고 세상에 오셔서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매달려 몸 찢고 피 흘려 죽으심으로 우리를 죄에서 용서와 의를 받게 하시고 세상과 마귀를 벗어 버리고 거룩하고 성령 충만하게 하시고 질병에서 치유 받고 건강을 얻게 하시고 저주에서 해방되고 아브라함의 축복과 형통을 얻게 하시고 사망과 음부를 극복하고 부활과 영생과 천국을 주는 놀라운 역사를 베풀어 주신 것입니다. 이것은 십자가를 바라보는 하나님의 눈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받는 계시적인 지식이 그렇습니다. 그러나 마귀와 세상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보고 뭐라고 말합니까? 그는 유대인의 선생이요, 개혁가요, 정치적 혁명을 주장하던 사람으로서 실패하여 처참하게 십자가에 처형당했다고 그렇게 말합니다. 어느 것이 참말입니까? 하나님이 주시는 계시적인 지식입니까? 세상이 주는 인간적인 그리스도에 대한 해석인 것입니까? 우리가 올바른 진리를 깨닫고 올바른 지식을 받아들이면 구원을 받고 영생을 얻지만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세상이 말하는 대로 한 유대인의 혁명가요, 정치가요, 이상주의자요, 철학자요, 실패하고 십자가에 처형당했다고만 생각하면 예수는 아무 관계도 없고 구원도 받지 못하고 그리스도를 믿지 아니하므로 멸망 받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장 12절로 13절에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라 믿으면 하나님의 능력으로 구원을 받지만 사람의 생각으로 그리스도를 부인하고 그리스도의 구속적인 사역을 받아들이지 아니하면 멸망을 받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구주로 모시면 하나님 편에서 우리를 볼 때 베드로전서 2장 9절 말씀대로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이라고 말한 대로 되는 것입니다. 모든 사물에는 하나님이 보시는 눈이 있고 마귀와 세상이 보는 눈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지식이 있고 마귀와 세상이 가르치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정보가 있고 세상과 마귀가 갖다 주는 정보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 사이에서 올바르게 선택해야 되는 것입니다. 다윗이 바로 그것을 체험했습니다. 블레셋이 이스라엘을 침공하여 이스라엘이 풍전등화가 되었습니다. 블레셋 대장군 골리앗이 산천을 쩡쩡 울리는 고함을 치면서 “이제 이스라엘 중에 나를 대적할 사람이 있으면 내보내라. 나와 싸워서 한판하자!” 사울 왕과 이스라엘의 역전의 용사들은 골리앗을 보고 혼비백산해서 움츠려지고 숨었습니다. 그때 다윗이 17살 정도 되는 초립동이로 그곳에 갔습니다. 다윗은 그 사실을 보고 분개했습니다. “어찌 저 할례받지 못한 이방인이 만군의 야훼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는고 내가가서 저를 쳐서 없애겠다.” “나는 아버지 양을 칠 때 사자나 곰이 와서 양을 물고 가면 가서 빼앗고 달려들면 쳐서 죽였다. 저 골리앗도 그 짐승 중에 한사람쯤 될 것이다.” 하나님이 대한 지식, 하나님에 대한 체험을 가지고 그는 강하고 담대했습니다. 그러나 사울왕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사울은 다윗을 보고 “허허~ 너는 17살쯤 되는 초립동이다. 저 골리앗은 어릴 때부터 대장군이다. 네가 가서 그를 쳐서 이기지 못한다.” 그는 마귀적이고 세상적인 정보로 꽉 들어차서 불안과 공포에 떨고 있었습니다.

사무엘상 17장 32절로 36절에 보면 “다윗이 사울에게 고하되 그를 인하여 사람이 낙담하지 말것이라 주의 종이 가서 저 블레셋 사람과 싸우리이다 사울이 다윗에게 이르되 네가 가서 저 블레셋 사람과 싸우기에 능치 못하리니 너는 소년이요 그는 어려서부터 용사임이니라 다윗이 사울에게 고하되 주의 종이 아비의 양을 지킬 때에 사자나 곰이 와서 양떼에서 새끼를 움키면 내가 따라가서 그것을 치고 그 입에서 새끼를 건져내었고 그것이 일어나 나를 해하고자 하면 내가 그 수염을 잡고 그것을 쳐 죽였었나이다 주의 종이 사자와 곰도 쳤은즉 사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한 이 할례 없는 블레셋 사람이리이까 그가 그 짐승의 하나와 같이 되리이다”

사울은 못한다고 하는데 다윗은 한다고 말했습니다. 사울은 골리앗이 대장군이라고 말했는데 다윗은 사자나 곰을 내가 친 것처럼 내손에 죽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두 가지 정보, 두 가지 지식이 그곳에 있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담대한 믿음의 지식과 믿음의 정보인 것입니다. 하나는 세상과 마귀에서 오는 패배적이고 좌절하고 절망적인 그러한 지식과 정보입니다. 어느 것을 믿어야 됩니까? 사울은 세상과 마귀가 주는 지식과 정보를 믿어서 그는 위축되고 뒤로 물러갔으며 다윗은 하나님이 주시는 지식과 정보를 가지고 믿음으로 나가서 물맷돌로 골리앗을 쳐서 죽이고 이스라엘을 대승리로 이끌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눈으로 보는 것과 세상과 사람의 눈으로 보는 것 이것은 천양지차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씀이 가르치시는 삶의 길로 걸어가야만 되는 것입니다. 말씀은 환경과 다릅니다. 감각과 다릅니다. 이성과 지식과 다릅니다. 말씀은 하나님이 주신 말씀인 것입니다. 하늘과 땅과 세계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지으시고 다스리시며 역사를 지으시고 인간을 만드시고 생사화복을 주장하시는 절대주권자인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을 우리는 계시로 받아 들여서 믿고 나가야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환경이 무시할 수 없습니다. 우리 감각이 하나님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인간의 이성과 지식이 하나님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이 모든 것보다 너무나 위대하고 크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가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사람들은 환경을 보고 뒤로 물러가고 감각을 느끼고 뒤로 물러가고 인간적인 지식이나 이성을 가지고서 하나님을 평론하고 뒤로 물러갑니다. 그러나 우리는 만군의 야훼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에 굳세게 서서 믿고 나가야만 할 것입니다.

2003년 10월 11일 순복음가족신문에 난 이재일 성도의 간증입니다.
이재일 성도는 재작년인 2003년 9월 18일 정기종합검사결과를 받았는데 지방간 소견이 있다고 해서 종합병원에 가서 다시 정밀검사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의사가 간에는 이상이 없는데 신장에 2센티 넘는 양성 혹이 발견되었다는 것입니다. 신장에 암이 발생했으니 이제는 절망 아닙니까? 당시 39세였던 이재일 성도는 정신이 아득했습니다. 아내와 어린아이들을 두고 세상을 떠날 생각을 하니 너무나 마음이 아프고 불안했습니다. 더구나 가장으로써 젊은 아내와 한참 자라는 어린자식을 두고 어떻게 떠나겠습니까? 눈을 감을 수 없잖아요. 너무나 마음이 아프고 불안했습니다. 완전히 절망했습니다. 그때 갑자기 인터넷으로 가끔 듣던 조용기 목사 설교가 기억이 났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집에 돌아와서 2002년 4월 28일 주일 설교였던 ‘치료받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다’라는 설교를 인터넷으로 틀고 또 보고, 또 듣고, 또 보고, 또 듣고, 또 보고, 또 들었습니다. 그리고 새벽기도를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이재일 성도는 유학을 갖다오고 기자로써 일을 하면서 세상에 논리로 길들여진 사람이어서 하나님을 멀리멀리 떠난 무신론적이고 감각적이고 이론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래도 좌절과 절망에 처해서 찾아갈 길은 하나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기도하는 중에 자신도 모르게 회개가 터져 나오고 인본주의적인 자세가 철저하게 깨어졌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이해가 아니라 순종과 믿음으로 받아 들여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다시 기도하는데 온몸에 이상한 광선이 쪼이는 기운을 느꼈습니다. 그 광선은 복부부위를 쪼이며 내려왔습니다. 환상 중에 마귀들이 그 광선에 쫓겨 가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런 모습이 여러 번 반복된 후에 성도님이 눈을 들자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이 계셨습니다. 예수님이 그를 향하여 손을 내미시며 ‘아들아! 왜 이제 돌아왔느냐? 왜 나를 믿지 못하였느냐? 나는 너를 기다렸노라.’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재일 성도는 눈물과 콧물이 범벅이 된 채 회개하고 하나님께 엎드려 기도했습니다. 그렇게 새벽기도를 시작한지 사흘 후 성도님은 검사를 받기 위해서 병원에 가서 검사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의사 말이 신장에 있던 혹이 온데 간데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고쳐 주셨다는 것을 깨닫고 감사했습니다. 이 체험을 통해 이재일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믿는 것은 인간적인 지식과 감각을 뛰어넘는 것임을 알았다는 것입니다. 인간적인 감각과 인간적인 지식과 이성에 섰으면 그는 좌절하고 절망할 수밖에 없는데 말씀을 보고 들음으로 하나님 말씀에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가 나음을 입었다는 이 진리 속에 서서 그는 믿고 부르짖은 결과에 기적을 체험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리는 인간적인 지식과 감각을 초월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인본주의에 저항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기로 마음에 결단을 내려야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히브리서 11장 6절에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찌니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믿음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성과 감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하늘나라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은 너무나 위대하기 때문에 우리가 인간의 이성으로 깨달을 수 없습니다. 어린 아이에게 고등수학을 아무리 설명해도 알 수가 없지요. 공식은 외우라면 외우지만은 그 공식을 도출해 나가는 고등수학을 어린아이들은 풀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지식의 크시고 지혜의 원대함을 인간이 어떻게 평론할 수 있습니까? 인간의 지혜와 지식으로 하나님을 평가하고 평론한다는 것은 어리석고 바보스러운 일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절대 그 자체가 진리이시므로 하나님이 주신 말씀은 그대로 믿어야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적하는 지식은 허위 날조된 거짓된 지식입니다.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주님이 계시로 주신 이 말씀을 거역하고 대적하는 모든 일들은 마귀의 허위 날조된 거짓된 지식인 것입니다. 타락한 인간의 절망적인 존재를 인간들은 인정하지 않잖아요. 인간은 아~ 우리가 과학을 발전시키고 이성을 발전시키고 인간의 자유를 신장시켜서 우리가 사는 세상을 천국 낙원으로 만들 수 있다고 18세기 계몽주의 이후로 인간은 그것을 믿었으나 내내하는 짓이란 1차대전으로 세계를 초토화하고 겨우 일어나자마자 2차 세계대전으로 세계를 완전히 불바다로 만들고 그 다음에는 공산주의, 민주주의의 대결로 말미암아 처처에 반란과 전쟁과 살상과 약탈이 일어나고 오늘날 민족주의가 온 세계에 팽배하고 어느 나라에 가나 고통과 괴로움이 없는 데가 없습니다. 세상이 인간의 과학과 지식과 이성과 자유를 통해서 유토피아가 만들어 집니까? 이것이 인간지식의 한계요, 인간자랑의 한계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볼 때 절망적인 존재로 보십니다. 죄를 지어서 죄책과 정죄의 절망에 처했고 어디서 와서 왜 살며,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허무하고 무의미한 존재요, 죽음으로써 한줌 흙으로 돌아가고 영원한 지옥으로 떨어지는 비극적인 존재로 하나님은 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참말입니까? 인간의 말이 참말입니까? 인간이 아무리 큰소리해도 70이요, 강건하면 80이 되고 난 다음에 허무하게 인간은 지상에서 사라지고 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하고 참된 것으로 말씀대로 죄인인 것을 알고 허무, 무의미한 존재인줄 알고 죽음의 절망에 처한 인간인줄 알고 깨어지고 회개하고 예수님 십자가 앞에 나오면 구원을 받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성령의 음성을 듣지 않습니다.

디모데전서 4장 1절로 2절에 “그러나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케 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좇으리라 하셨으니 자기 양심이 화인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라”

성경에 분명히 마귀와 귀신의 가르침을 쫓는 시대가 온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온 세상은 악한 자에게 속하였고 마귀와 귀신들의 허무맥랑한 소식에 귀를 기울이고 그 정보에 끌려갑니다. 그 결과는 멸망입니다. 마귀와 귀신이 우리에게 좋은 일을 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라고 말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예수를 보내셔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되 풍성하게 주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주께로 오는 진리, 정보를 믿고 마귀에게서 오는 거짓된 포장된 소위 진리와 그 정보를 따라가지 않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미국 FBI 존 애드가 후버는 21세에 법무부에 들어가서 29세에 FBI의 국장이 되어 무려 48년 동안이나 국장으로 일했습니다. 범죄자들에 대해서는 당대 최대의 전문가라고 할 수 있는 그가 한말이 참으로 인상적입니다. “오늘 교회에 나가지 않는 아이는 내일 범죄자가 될 수 있다.” 그는 세계적인 범죄학자요, 미국 FBI 국장이 되어서 48년 동안 범죄 세계를 들여다본 사람이 한말이 그것입니다. 체험으로 오늘 교회에 나가지 않는 아이는 내일 범죄자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범죄를 일으키는 사람 대부분이 하나님을 믿지 않기 때문에 성경이 아닌 이 세상의 허위 날조된 지식으로 살다가 범죄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주는 바른 지식과 삶의 길로 나가야 합니다. 이는 오직 믿음으로 받아들여만 되는 것입니다.

성경 예레미야서 17장 9절에는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
여러분 우리의 마음이 만물보다 부패하고 거짓됩니다. 우리가 그렇잖아요. “내 마음 나도 몰라.” 나도 모르고 나도 다스리지 못하는 그 마음을 따라서 어떻게 가겠습니까? 그 마음이 마귀와 세상과 동무가 되어서 짝을 지어서 우리를 이끌어 가는데 위험천만하지요. 우리 마음을 믿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오직 말씀을 믿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사람의 생각으로는 바른길이라고 하나 마침내 멸망의 길이 되는 것이 허다합니다.
시편 94편 11절에 “여호와께서 사람의 생각이 허무함을 아시느니라”
인간의 생각은 허무맥랑합니다.

시편 119편 118절에 “주의 율례에서 떠나는 자는 주께서 다 멸시하셨으니 저희 궤사는 허무함이니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떠난 자는 다 허무하기 짝이 없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아무리 지혜 있고 총명한 척하나 자기 생명하나 연장하지 못합니다. 7,80년 후에 먼지와 티끌로 돌아갈 사람이 무슨 큰소리 합니까? 영원히 살아계시고 알파와 오메가 되시고 처음과 나중이 되시고 시작과 끝이 되시는 창조주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지요. 하나님은 아시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인간들은 알지도 못하고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확실한 근거를 가지고 말씀하십니다. 인간은 터무니없이 상상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가면 영혼이 잘되고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을 수가 있습니다. 오늘 역사를 통해서 하나님 말씀을 따라간 개인이나 나라치고 망한 나라가 어디 있습니까? 성경이 들어간 나라마다 의와 평강과 희락과 믿음, 소망, 사랑이 넘치는 나라가 되고 영육간에 머리가 되고 꼬리 되지 않고 위에 있고 아래 있지 아니하고 남에게 나눠줄지라도 나누지 않는 나라가 되었지 않습니까? 하나님을 정면으로 도전하고 반대하던 히틀러의 독일이나 공산주의자들이나 다 패망하고 말았지 않습니까? 말씀을 부인하고 말씀을 거역하고 인본주의에 서서 나간 개인이나 국가마다 망한 것을 역사가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거짓된 마귀의 정부에 속아 넘어가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말씀에 반대되는 감각이나 부정적 환경, 거짓된 지식에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그 미혹에 떨어지기가 쉽습니다. 어느 곳에 가나 말씀에 거역된 환경이나 우리가 감각이나 지식에 쌓여 있습니다. 초등학교때부터 시작해서 고등학교,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늘 인간적인 과학이라고 해서 가설인 다윈의 진화론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공격하고 인본주의로 가르치고 인간지식이 최고다. 인간이 최고라고 가르치는 세상 지식에 물들어 있기 때문에 이 가운데서 우리가 하나님을 찾기가 힘이 드는 것입니다. 마귀가 하나님을 모르도록 첩첩이 방어벽을 쌓아 놓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보내셔서 말씀을 통하여 이 방어벽을 무너뜨리고 우리에게 진리를 깨닫게 해주시고 계신 것입니다.

디모데전서 6장 3절로 5절에 “누구든지 다른 교훈을 하며 바른 말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에 착념치 아니하면 저는 교만하여 아무 것도 알지 못하고 변론과 언쟁을 좋아하는 자니 이로써 투기와 분쟁과 훼방과 악한 생각이 나며 마음이 부패하여지고 진리를 잃어버려 경건을 이익의 재료로 생각하는 자들의 다툼이 일어나느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 때 그러므로 선택이 굉장히 중요해요. 말씀과 성령을 따를 것이냐. 세상과 마귀를 따를 것이냐. 말씀과 성령이 주는 지식을 따라 살 것이냐. 세상과 마귀가 주는 지식을 따라 살 것이냐. 이것이냐 저것이냐 선택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비행 항공술의 선구자라고 불리는 영국의 항공기 설계사 핸들리 페이지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하루는 그가 많은 관중에게 에어쇼를 보여주고 있었는데 갑자기 비행기 안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하늘 높이 공중에 떠서 나르고 있는데 바스락 바스락해서 보니까 엔진으로 들어가는 전기장치에 생쥐가 한 마리 거기에 들어가서 전기 줄을 갉아 먹고 있어요. 그 전기 줄이 끊어지면 엔진이 그치고 비행기는 곤두박질쳐서 땅에 처박히고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는 굉장히 당황했습니다. 쥐가 갉은 전선이 끊기거나 합선이라도 되는 날에는 비행기는 당장 추락하고 말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어찌하든지 추락을 막아보려고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비행기 조정관을 잡고 “하나님이여 살려주시옵소서. 하나님이여 살려주시옵소서.” 그리고 자기의 배운 인간적인 지식이나 지혜를 가지고 비행기를 속히 급강하시켜서 안착시키려고 했었습니다. 그런데 벌써 전선이 끊어지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기도하니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공중으로 올라가라. 수직상공상승을 하라” 어느 것을 믿어야 됩니까? 자기가 교육받은 지혜와 총명대로는 비행기를 빨리 지상으로 데리고 내려가야 되겠는데 굉장히 높이 떠있습니다. 그런데 성령께서는 “공중으로 올려라. 올려라. 올려라.” 그래서 그는 인간의 지혜와 지식을 택하지 아니하고 기도하는 가운데 성령의 음성을 택해서 조종간을 당겨서 비행기를 웽~하고 높이 공중으로 올라가니까 공기가 희박해져서 생쥐가 숨이 막혀 죽어 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순식간에 생쥐가 숨이 막혀 죽었습니다. 전선은 끊어지지 않고 그는 무사히 에어쇼를 마치고 지상에 내려올 수 있었다고 간증을 했습니다. 여러분 조그마한 일에도 생사가 걸린 결정을 내려야 될 때가 많습니다. 죽느냐, 사느냐, 흥하느냐, 망하느냐, 성하느냐, 쇠하느냐가 결정될 때가 많은데 그때 우리가 무슨 정보를 받아서 해야 됩니까? 하나님을 통해서 말씀의 정보, 성령을 통해서 기도할 때 받은 정보를 가지고 결정해야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적으로 받은 지혜나 지식이나 총명이나 세상으로 오는 정보를 받아서 선택을 하면 나중에 크게 후회할 수밖에 없고 되돌릴수 없는 비극을 가져올 수도 있는 것입니다. 어떤 길은 사람에게 올바르게 보이나 결국은 죽음의 길이라고 성경에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2.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음

둘째로, 성경은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말했습니다.
영적진리는 이성적으로 증명할 수 없는 최고의 지식입니다. 이는 오직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됩니다. 예수님께서 죽은 나사로의 무덤에 마르다와 마리아를 데리고 갔습니다. 죽은지 나흘이 되어 무덤에 들어가서 썩은 냄새가 납니다. 더운 지방이라 빨리 부패가 되는 것입니다. 많은 유대인들이 구경하러 나왔습니다. 예수님이 마르다와 마리아를 보고 “무덤 문을 옮겨 놓으라.” 마르다와 마리아가 울부짖는 얼굴로 “주님 오라버니가 죽어 무덤에 들어간지 나흘째 되므로 썩은 냄새가 나나이다.” 그들은 환경이 주는 정보를 받아 들였습니다. 죽어 썩은 냄새가 난다. 감각적인 정보를 받았습니다. 절대로 죽은 오라버니가 살 수 없다. 인간적인 지식이 주는 정보를 받아 들였습니다. 죽은지 나흘이 되어 썩은 냄새가 나는데 무덤 문을 열어 제키면 어떻게 하냔 말입니까? 환경과 감각과 인간적인 지식에 완전히 잡혀서 부정적이 되었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거역했습니다. 그때 예수님이 얼굴을 붉히고 주먹을 불끈 쥐고 고함을 쳤습니다. “마르다여! 내가 네게 말하노니 하나님의 말씀을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하지 않았느냐!” 인간적인 것은 다 3차원적인 것입니다. 환경과 감각과 지식이란 차원이 낮은 3차원입니다. 하나님은 4차원이상의 영적차원에 속해 있습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인간이 어떻게 생각합니까? 하나님은 기적을 행할 수 있습니다. 죽은 자를 살릴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환경과 감각이나 이성으로 살든 마르다와 마리아가 믿음으로 살기로 결심을 하고 그 두 사람이 나아가서 무덤의 돌을 자꾸 흔들었습니다. 많은 주위의 사람들이 “마리아여, 마르다야 그런 이상한 짓을 왜 하느냐?” 그러나 마리아와 마르다는 예수님만 바라보고 무덤의 문을 옮겨 놓으니까 썩은 냄새가 났어요. 예수님이 무덤 앞에 서서 “나사로야! 나오라!” 이것은 차원 높은 창조적인 말씀인 것입니다. 3차원의 세계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창조적인 말씀인 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빛이 있으라할 때 빛이 있었고 궁창이 생겨나라 할 때 궁창이 생겨났고 물이 모이고 육지가 생겨나라 할 때 육지가 생겨나고 해와 달과 별들이 생겨나라할 때 생겨나게 한 창조적인 말씀인 것입니다. 죽은 나사로가 수의를 동인채로 걸어 나왔습니다. 그런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의 진리는 거짓이 아닌 것이 증명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말씀하기를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믿음이란 무엇입니까?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습니다. 말씀 이외에는 우리에게 믿음을 줄 수 있는 길이 없습니다. 성령이 말씀을 통하여 우리에게 깨닫게 해주시고 믿음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반드시 믿음에 서서 살아야만 되는 것입니다. 마귀는 인간적인 지식과 환경과 감각을 통하여 거짓을 받아들이고 그것에 항복하도록 압박을 합니다. 우리가 믿음에 살려고 하면 ‘야~ 거짓말을 믿지 말아라. 환경을 보아라. 그렇지 않지 않느냐. 감각적으로 느껴 보아라. 아니지 않느냐. 야 이놈아! 네가 이성적으로 교육을 받은 사람이 어떻게 그런 바보같은 생각을 하느냐?’ 굉장히 마귀는 우리에게 압력을 가합니다. 여러분 마귀가 그냥 우리보고 팔짱끼고 구경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여러분께서 하나님 말씀대로 하려면 달려 들어가서 여러분 어깨를 잡고 흔들고 귀를 잡아당기고 여러분 마음속에 속삭이고 ‘환경을 봐라. 어림도 없는 소리 하지 마라. 안돼. 감각을 느껴봐라. 하나도 느낄 수가 없지 않느냐? 이성적으로 지식으로 생각해 봐라. 바보같은 소리하지 마라. 안된다. 하나님 말씀대로 하지 말라.’ 끊임없이 공격을 합니다. 받아들이면 마귀의 말에 항복하면 그때부터는 들어와서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역사를 베푸는 것입니다. 여러분 마귀가 사람을 해코지하는 것은 바닷가에 가면 해변에서 불가사리를 자주 볼 수 있는데 불가사리가 어떻게 조개를 잡아먹는가를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해변의 불가사리 봤지요? 삼각형 별같이 되어 있는 것. 불가사리가 바다 밑에 들어가면 그 밑에 들어가서 모든 조개를 다 잡아 먹어 버리는 것입니다. 불가사리가 어떻게 조개를 잡아먹습니까? 조개가 입을 딱 다물고 있으면 불가사리가 딱 끌어 앉지요. 그 밑에는 빨판이 쭉 달려 있어서 빨판이 열심히 조개의 입을 열려고 하는 것입니다. 살살 달래기도 하고 압력도 가하기도 하고 간지러 주기도 하고 그리고 몇시간씩이고 조개를 안고 있으면 조개가 입을 한 1미리미터만 열고 있으면 빨판을 싹 집어넣어서 조갯살에 콱 박아서 쭉~ 쭉~ 쭉~ 살코기를 다 빨아 먹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조개는 빈껍질만 되고 말지요. 그러므로 이 불가사리가 조개를 끌어안고 몇시간이고 조개를 어르고 기다리고 있다가 1미리미터 틈만 나면 빨판을 집어넣어서 속을 빨아 먹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마귀도 우리 주위에 끊임없이 같이 있어서 우리를 협박도 하고 설득도 하고 우리를 간질기도 하고 온갖 짓을 다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말씀을 버려라. 말씀에 서지 말라. 말씀 읽지도 말고 듣지도 말라.’ 거기에 속아 넘어가면 우리에게 빨판을 집어 넣어 신앙을 싹 빨아 먹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강하고 담대하게 서서 마귀의 유혹이 다가올 때 대적해야 되는 것입니다. 성령의 도우심으로 마귀의 거짓된 지식을 저항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기로 결단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살아도 믿고, 죽어도 믿는다. 흥해도 믿고 망해도 믿는다. 성해도 믿고, 패해도 믿는다. 일단 우리가 하나님과 팀이 되어서 하나님 가는 길로 갈 때는 뒤를 돌아보면 안 됩니다. 예수님은 말씀하기를 쟁기를 들고 뒤를 돌아보면 하늘나라에 합당하지 않다고 했는데 함께 가면 함께 가야지요. 우리 순복음교회 성도는 순복음의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을 함께 믿고 나가야지요. 중간에 가다가 이것도 의심하고 저것도 의심하고 이리도 요동하고 저리도 요동하면 순복음의 신앙에 설수 없잖아요. 한번 우리가 한길로 갔으면 끝까지 가야지요. 우리 시대에는 부부간에 결혼하면 이혼이란 없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좌우간 일단 결혼하면 싸우더라도 무덤에 갈 때까지 싸우면서 가자. 무덤에 갈 때까지 싸우면서 가야지 헤어지는 것은 생각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요사이 젊은이들은 무덤에 갈 때까지 싸우자가 아니라 이 시간에 싸우고 헤어지자. 너무나 쉽게 헤어집니다. 그렇게 하면 안 되지요. 한번 출발했으면 끝까지 가야지. 좋아도 가고, 나빠도 가고,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운동 경기할 때 발을 묶어서 함께 뛰는 것처럼 자빠지면 끌고라도 가야지. 함께 뛰어야지요. 우리 예수 믿는 신앙은 주님과 함께 뛰기로 작정했으면 끝까지 함께 뛰기로 결심을 하고 마귀가 아무리 꾀어도 말씀의 띠를 풀어 버려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끝까지 말씀의 띠를 묶고 주님과 함께 뛰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에베소서 4장 21절로 24절에 “진리가 예수 안에 있는 것 같이 너희가 과연 그에게서 듣고 또한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을찐대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고 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결같이 변화되지 않고 주와 함께 우리가 뛰어야 되는 것입니다.

3. 확신한데 거하라

셋째로, 이제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확신한데 거하고 살아야 됩니다.
우리가 확신하는 것이 많이 있지요. 해가 동쪽에서 뜨는 것을 확신합니다. 아무도 의심하지 않습니다. 해가 서쪽으로 지는 것도 확신합니다. 의심하지 않습니다. 온대지방에 사는 우리는 여름이 가면 가을이 오고 가을이 가면 겨울이 오고 겨울이 가면 봄이 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확신합니다. 여기에 대해서 의심하는 사람 조금도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아~ 이제는 가을이 가고 겨울이 오니까 두꺼운 옷만 가지고 입고 봄옷, 여름옷은 다 내버리자.’ 그렇지 않습니다. 반드시 봄이 오고 여름이 오니까 봄옷, 여름옷 착착 챙겨서 넣어 놓았다가 그때 입잖아요. 확신하는 지식이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도 하나님께 대한 확실한 지식을 가지고 의심하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믿고 확신한데 거하면 아무리 파도가 치고 바람이 불고 마귀가 흔들어도 요동하지 않습니다. 변함없는 진리를 믿고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해가 동쪽에서 뜨는 것은 변함없습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순서적으로 오는 것 변함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변함이 없다는 것을 알고 그 안에 확실히 거하면 여러분이 승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의심을 조금이라도 하면 안돼요. 여러분 우리 한국 속담에 ‘바늘구멍에 황소바람 들어온다’는 말이 있습니다. 저 강원도 산골 같은데 허술하게 집을 짓고 문풍지를 붙여 놓으면 조금만 구멍이 떨어져도 바람이 불면은 조그만 구멍을 통할 때는 속도가 굉장히 빨라집니다. 쏴~아 하고 겨울에 불어 들어오면 바늘구멍에 황소바람 들어와서 밤새도록 벌벌 떨고 얼어 잠을 잘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합니까? 빨리 바늘구멍을 막아야지요. 바늘구멍만한 작은 의심이라도 마음에 들어오면 마귀가 그것을 통해서 황소바람으로 들어오는 것입니다. 막아야 돼요. 단호하게 의심은 막고 말씀으로 굳세게 서는 여러분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모세가 이스라엘을 인도할 때 보십시오. 그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는 것같이 단호하게 믿고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홍해에 왔을 때 최강대국인 이스라엘이 전국을 동원해서 병거를 거느리고 질풍노도와 같이 쳐들어 왔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혼비백산했습니다. 모두다 사시나무 떨 듯이 떨고 아비규환의 절망에 처했었습니다. ‘모세야 애굽에 장지가 없어서 우리를 홍해가에 데리고 와서 다 죽게 만드는가.’ 그런데 모세가 흔들렸습니까? 모세가 아이고 어찌할꼬! 하나님이 어디 계시나이까?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은 단호하게 믿었습니다. 살든지 죽든지 흥하든지 망하든지 성하든지 쇠하든지 나는 하나님을 믿는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는 것 같이 믿었습니다. 그렇게 눈에 보이도록 애굽군대가 휘황찬란하게 무장을 하고 달려들어도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그렇게 요동을 하고 혼돈을 하고 부르짖어도 동요하지 않고 그는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을 보고 말했습니다.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또 다시는 영원히 보지 못하리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모세의 신앙고백을 보십시오. 얼마나 단호한 신앙고백입니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는 것같이 그는 의지하고 야훼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요동치 말고 가만히 서서 야훼의 싸우시는 것을 보라. 오늘 내가 본 저 거대한 애굽의 군대를 다시는 영원히 보지 아니하리라고 말했습니다. 그 신앙 그대로 하나님이 홍해수를 열어 제키고 이스라엘로 육지로 건너가게 하고 뒤를 따라오는 애굽사람을 전부 수장해 버리고 만 것입니다. 전적으로 하나님께 맡기는 삶, 이것이 확신하고 사는 삶인 것입니다.
마태복음 21장 22절에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시니라”
고린도후서 5장 7절에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하지 아니함이로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귀의 거짓에 확고하게 대결하십시오. 조금이라도 의심의 틈을 주지 마십시오. 의심하는 자는 바다 물결 같으니 아무것에도 정함이 없어 하나님께 응답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환경을 격파하고 모든 감각을 다 격파하고 모든 하나님을 거역하는 인간의 지식이나 이성을 다 격파하고 예수 중심으로 돌아서야 되는 것입니다. 말씀 중심으로 돌아서야 되는 것입니다. 저 하늘이 무너지고 이 땅이 꺼져도 일점일획도 변함이 없다는 말씀에 서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흔들리지 않아요. 그래야 동남풍이 불고 서북풍이 불고 사막이 다가와도 흔들리지 않아요. 말씀대로 이루어질찌어다. 그러므로 우리의 생활이 그리스도의 말씀에 서서 여러분 승리만 생각하고 꿈꾸고 말하고 찬양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 생각이 하나님의 말씀에 서서 승리만 생각하고 마음에 꿈도 승리를 꿈꾸고 말도 승리를 말하고 늘 승리를 찬양하고 그렇게 됩니다. 왜냐하면 부정적인 생각이나 꿈이나 말은 전염성이 강합니다. 사람들 앞에 나와서 내가 부정적인 생각을 하고 꿈을 꾸고 말을 하면은 전염병처럼 전염이 되어 모든 사람이 부정적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께서 하나님 앞에 승리를 생각하고 꿈꾸고 말하고 찬양하면 이도 전염성이 강합니다. 모든 사람에게 부정적인 세력이 물러가고 긍정적이고 적극적이고 창조적인 생각으로 꽉 들어차게 되는 것입니다.
잠언서 16장 20절에 “삼가 말씀에 주의하는 자는 좋은 것을 얻나니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고 말했었습니다.
예레미야 15장 11절에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를 강하게 할 것이요 너로 복을 얻게 할 것이며 내가 진실로 네 대적으로 재앙과 환난의 때에 네게 간구하게 하리라”라고 말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 우리가 믿음에 굳세게 서는 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미국 크리스챤들은 편지의 끝마무리에 종종 ‘On the Victory Side'이라는 표현을 많이 씁니다. 편지를 다 쓰고 마지막에 ‘On the Victory Side' 그리고 내 이름 같으면 yonggi Cho 로 이렇게 쓰는 것입니다. 이 말은 승리 편에 서 있다는 뜻으로 이 말을 맨 처음 사용한 사람은 유명한 청교도 영국 장군이었던 올리버 크롬웰 장군이었습니다. 영국에 내전이 벌어졌습니다. 카톨릭 교도와 신교도 간에 내전이 벌어졌을 때 크롬웰 장군은 신교의 장군이었습니다. 전쟁이 맹렬해서 크롬웰 장군의 군대가 굉장히 위기에 처했을 때였습니다. 그때 크롬웰 장군은 그가 내리는 문서나 개인 편지에 언제나 쓰기를 ‘On the Victory Side General Cromwell'이라고 썼습니다. 나는 항상 승리 편에 서 있다. 주님이 나와 같이 계시므로 승리 편에 서있다고 말을 했습니다. 그 공문서를 읽은 참모들과 스탭들은 그가 늘 승리를 확신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이 승리의 확신이 점차 부대에 퍼지기 시작해서 나중에는 온 부대원들이 우리는 승리 편에 있다. 우리는 승리한다. 신념이 강해지자 믿음으로 나가서 기어코 그는 승리하여 영국을 신교국가로 세우는 위대한 장군이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믿고 확신한데 거하며 승리만을 생각하고 꿈꾸고 말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언제나 자꾸만 부정적인 생각을 하고 부정적인 꿈을 꾸고 부정적인 유혹이 자꾸 다가오는 것입니다. 마귀가 그렇게 해요. 자꾸 그렇게 해요. 그러나 말씀에 굳세게 서서 승리를 생각하고 승리를 꿈꾸고 승리를 믿고 말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병든 사람이 고칠 것을 생각하고 고친 것을 꿈꾸고 고친 것을 믿고 고친 것을 말해야지 병든 사람이 늘 병들어서 병신 될 것을 생각하고 죽을 것을 꿈꾸고 관속에 들어갈 것을 말하고 그리고 난 다음에 건강할 것을 생각하는 사람은 바보천치인 것입니다. 내 입에 말로 내가 묶였으며 내 입에 말로 내가 사로잡힌바 된 것입니다. 사람이 무엇으로 생각하든지 그대로 되리라고 했습니다. 생각과 꿈과 믿음과 말을 승리 편에 세우는 여러분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예레미야 17장 8절에 “그는 물가에 심기운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찌라도 두려워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리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말씀 속에 서고 승리 편에 서는 여러분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신령한 사람들입니다. 육체로 살지 않고 성령을 따라 살기 때문에 신령한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이 신령한 양식을 먹고 살았던 것처럼 말씀을 먹고 삽니다. 신령한 세계에서 신령한 지식을 갖고 믿음과 확신의 삶을 살고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의지하고 나갈 때 우리 생활 속에는 연속적으로 기적이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존 웨슬리가 영국 옥스퍼드 대학에 다닐 때 그는 성경을 연구하는 모임을 만들었습니다. 바로 홀리 클럽이었습니다. 이 홀리 클럽은 제일 처음 4명으로 시작했다가 나중에 6,7명으로 늘어났습니다. 이들은 주로 저녁에 3,4시간 동안 모여서 기도하고 성경을 연구했습니다. 얼마나 열심히 했든지 다른 학생들은 이들을 성경벌레라고 불렀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이 세계를 변화시키는 주역들이 되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들을 통해서 놀라운 일을 이루셨습니다. 먼저 존 웨슬리는 영국과 세계를 뒤흔드는 위대한 감리교 부흥운동을 일으킨 사람이 되었고 그의 동생 찰스 웨슬리는 평생에 6천개의 찬송가를 작곡, 작사해서 우리가 지금도 그 찬송을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조지 휘트 필드는 미국의 조나단 에드워드와 함께 미국이 타락할 때에 뉴잉글랜드에서 일어났던 제1차 영적대각성운동을 일으킨 사람이 된 것입니다. 신령한 양식인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연구하는 자들에게는 하나님께서 은혜와 능력을 부어 주시는 것입니다. 어느 개인이나 나라치고 성경을 사랑하고 성경을 품에 안고 성경을 믿은 사람은 다 영혼이 잘되고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인 나라마다 다 머리가 되고 꼬리되지 않고 위에 있고 아래 내려앉지 않고 남에게 꾸어줄지언정 꾸지 않았습니다. 말씀을 저버리고 무신론자 인본주의로 선 공산주의는 이 지상에서 개망신을 하고 다 흐트러졌습니다. 이런 공산주의가 마지막 남아있는 것이 북한입니다. 북한이 무신론, 적 그리스도적인 이론을 믿고 하나님을 모시지 않고 있어 비극적인 오늘 기근을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없이 사람이 잘될 수 있습니까? 잘 안됩니다. 복음이 팔레스타인에서 구라파로 가니 구라파가 문명국이 되었고 해저의 나라 영국에 건너가니 영국이 세계 1등 국가가 되었고 저 아메리칸 인디언이 있던 미국으로 건너가니 3백년 조금 넘어 세계 초강대국이 되었고 6.25사변 반세기만에 우리 한국에 복음이 왕성하게 되니 교회가 늘어감에 따라서 교인수가 늘어감에 따라서 한국에 경제에 부흥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앞으로도 교회가 왕성하고 한국에 성도들이 늘어갈수록 한국에 경제력은 강해지고 한국은 복 받은 나라가 되고 세계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나라가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문을 열면 닫을 자가 없고 하나님이 문을 닫아 놓으면 열자가 없습니다. 이는 힘으로도 되지 않고 능으로도 되지 않고 하나님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되는 것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 아이젠하워가 히틀러를 대결해서 싸울 때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너무나 착실한 신앙인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사무실에 언제나 스가랴서 4장 6절을 기록해 놓았습니다.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 그는 항상 이 말씀을 바라보고 외우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성령의 도움으로 전쟁을 합니다.” 그 결과 히틀러는 무너지고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승리를 가져오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고 하나님 말씀을 연구하고 말씀위에 굳게 서고 확신한데 거하면 우리는 어떤 환경에 가도 승리하게 되는 것입니다.

[결론]

우리 신령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이 신령한 양식을 먹고 살아간 것처럼 말씀을 먹고 살아야 됩니다. 신령한 세계에서 신령한 지식을 갖고 믿음과 확신의 삶을 살고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의지하고 살 때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 놀라운 일을 이루시는 것입니다. 진리 안에서 성경은 아무리 많이 읽어도 지나칠 수가 없다고 마르틴 루터가 말했습니다. 자동차 왕 핸리포드는 ‘나의 성실성 존경심, 봉사심은 어려서 성경 말씀을 듣고 얻은 것에서 나왔다.’고 말했습니다. 백화점왕 워너 메이커는 ‘내가 12살 때 2달러 50센트를 주고 성경을 샀는데 그 성경 때문에 오늘 내가 백화점 왕이 되었다.’고 말한 것입니다. 세계를 움직인 사람, 세계를 변화시킨 사람은 말씀을 사랑하고 말씀을 읽고 확신한데 거하고 흔들리지 않는 믿음으로 산 사람들이 승리자가 된 것입니다.

[기도]

하나님 우리 아버지여!
우리 마음을 뒤흔들어 놓고 세상과 육신을 따라 살도록 마귀는 유혹하고 있지만 아버지 그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말씀을 믿고 말씀을 입으로 시인하고 요동치 않고 흔들리지 않는 확신에 서서 사는 우리들이 다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통하여 구원의 도를 우리에게 보여 주셨고 천국 영생의 길을 보여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우리는 다 영생을 얻었고 천국가는 길에 섰사오니 말씀에 서서 요동치 말고 흔들리지 말고 확고하고 단호한 신앙으로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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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87 마태복음 셋째 하늘, 마음 하늘 마6:9~10  조용기 목사  2009-08-03 1823
16286 고린도후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고후5:17  조용기 목사  2009-08-03 3021
16285 누가복음 기도란 무엇인가? 눅11:5-13  정용섭 목사  2009-08-05 3897
16284 출애굽기 모세의 소명 출3:1-12  정용섭 목사  2009-08-05 3393
16283 이사야 생존의 길로서의 순종 사1:10-20  정용섭 목사  2009-08-05 1738
16282 누가복음 평화를 위한 분열 눅12:49-53  정용섭 목사  2009-08-05 1881
16281 히브리서 시나이 산에서 시온 산으로! 히12:18-24  정용섭 목사  2009-08-05 2352
16280 마가복음 이웃 사랑 막12:28~34  정지석 형제  2009-08-06 2087
16279 열왕기상 연민, 살림, 지혜 - '새로운 인간성을 향하여' 왕상3:26  최만자 자매  2009-08-06 2243
16278 갈라디아 아! 아버지 하나님 갈4:6  윤여성 형제  2009-08-06 1535
16277 마태복음 예수 따르미 마16:24~26  윤공부 목사  2009-08-06 17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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