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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고린도후 조용기 목사............... 조회 수 3073 추천 수 0 2009.08.03 17: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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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고후5:17 
설교자 : 조용기 목사 
참고 : 2005년 12월 11일 주일 2부 설교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서론]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이리가 양의 탈을 쓴다고 해서 양은 되지 않습니다. 돼지에게 사람의 옷을 입히고 넥타이를 매어 준다고 해서 사람으로 변화되지 않습니다. 근본이 달라져야 달라지는 것이지 형식을 바꾼다고 해서 근본이 달라지는 것은 없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변화된다는 것은 외면적으로 변화되는 것이 아니라 내면적으로 변화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본론]

1. 아담의 자손인 이전 존재


첫째로, 아담의 자손인 우리들은 성경에 말하는 옛것입니다.
이 옛것은 어떠한 것입니까? 어떠한 것이기에 옛것을 벗어 버리고 새사람을 입으라고 말합니까?
옛것은 영적으로 죽은 자를 말하는 것입니다. 죽는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대화가 끊어진 것을 죽는다라고 말합니다. 우리 가족 중에 죽은 사람이 생기면 죽은 사람보고 아무리 이야기를 해보세요. 대답을 하시는가. 칭찬을 해도 웃지 아니하고 욕을 해도 성내지 않습니다. 왜? 죽은 자와 산 자 사이에 대화가 끊어진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짓고 죽었다는 것은 하나님과 대화가 끊어졌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무슨 말씀을 하셔도 반응을 하지 않는 무관심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것을 여러분 오늘날 세상에서 볼 수 있지 않아요? 안 믿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이야기를 아무리 해도 무관심합니다. 대화가 되지 않습니다. 영이 죽었기 때문인 것입니다.

창세기 2장 17절에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고 했는데 선악과를 따먹고 범죄하자 하나님 앞에서 그 영혼이 죽어 버리고 대화가 끝나고 만 것입니다. 대화가 끝난 사람들은 이 세상에 허무한 일을 합니다. 옛 아담의 자손인 인간은 영적으로 죽은 자들이기 때문에 아무리 세상 적으로 성공을 거둔 지위가 높은 사람도 그러합니다. 지난 20일 한 일간지를 보니까 태국의 탁신 시나와트 총리가 별자리가 좋지 않다는 이유로 예정되었던 태국 언론의 인터뷰를 거부했습니다. 수성의 위치가 좋지 않으니 별이 움직일 때까지 기다려 달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는 한나라 총리로써 높은 위치에 있지만 영적으로 죽었기 때문에 일개 별자리를 이유로 국정업무의 일정까지 변화시켰던 것입니다. 그것은 영이 죽었기 때문에 하나님과 아무런 관계를 맺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다른 신을 섬기고 우상에 절하고 귀신과 점을 따라가는 사람들이 되고 만 것입니다.

또 옛사람은 도덕적으로 부패한 자들인 것입니다. 죄를 지었다는 것은 죄가 누룩으로 우리 생애 속에 들어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어릴 때는 집에서 농주를 담는데 메주 같은 것을 쑤어서 쌀을 쪄서 그 속에 넣으면 누룩이 퍼져 완전히 부패해지고 그래서 술이 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누룩은 부패시킵니다. 우리의 속에 죄라는 누룩이 들어와서 인격적으로 부패 되었습니다. 어린아이는 죄를 가르쳐 주지도 않았는데 벌써 죄를 짓습니다. 왜냐 벌써 아담의 혈통으로 태어나자마자 그 속에 누룩과 같은 죄가 유전되어 들어왔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린 아이들은 가르쳐 주지 않아도 탐욕의 종이 됩니다. 먹을 것을 주면 하나는 입에 넣고 또 하나는 손에 쥐고 좀 달라고 하면 안줍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철없는 어린 아이도 벌써 욕심이 잉태되어 있는 것입니다. 술 취하고 방탕하고 음란하고 세속적인 더러움 속에 떨어지는 것은 죄의 누룩이 그 속에 들어와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사야 1장 4절에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 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를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도다”
행위가 부패해서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부도덕한 존재로 태어난 것입니다.
에베소서 2장 3절에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지난 달 29일 한기총 주최로 열린 국제성매매 및 인신매매 근절을 위한 대책회의에 미국무부 국제인신매매 담당 대사인 존 밀러씨가 참석했는데 참으로 충격적인 말을 했습니다. 지금도 성매매, 인신매매 같은 변형된 노예제도가 전 세계에 광범위하게 존재하고 있는데 미국에만 해도 한해에 80만 명의 여자가 성적노예로 팔려나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통을 당한다는 것입니다. 미국 같은 나라에 한해에 80만 명의 여성이 성노예로 팔려간다면 제3세계에서는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성노예로 팔려 나가겠습니까? 도덕적으로 이 세상이 얼마나 부패했는지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난 24일 중앙일보에는 영아매매에 대한 충격적인 기사가 실렸습니다. 중국의 사회복지원들이 아기를 매매해서 돈을 벌다가 적발된 것인데 공안국이 영아 밀매자로 27명을 체포했는데 그중 절대다수가 사회복지시설의 책임자와 직원이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들은 아기를 맡겨주면 그것을 밀거래해서 돈을 벌었던 것입니다. 인간의 생명도 탐욕의 수단이 되는 것입니다. 인간은 도덕적으로 타락해서 탐욕을 만족시킨다면 무엇이든지 하는 것이 옛사람인 것입니다. 옛사람은 심리적으로 자아중심입니다. 자기밖에 모릅니다.

시편 14편 1절에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저희는 부패하고 소행이 가증하여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마음에 하나님이 없으니 그 자리에 누가 있습니까? 자기가 앉아 있는 것입니다. 자기가 하나님이요, 자기가 자기의 주인이기 때문에 자아중심적인 생각과 말을 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 7절에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자아가 중심에 서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도 아니하고 굴복도 아니하고 하나님과 원수가 되어 살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모든 사람들은 마음으로 자아중심에 서서 하나님과 원수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심판하실 때 당연히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과 원수가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요즘 우리는 흔히 딩크족이니 통크족이니 라는 말을 들을 수 있습니다. 딩크족이라는 것은 ‘Double Income, No Kids'라는 말인데 부부간에 서로 취직을 해서 수입은 배로 올리되 애들은 낳지 말자. 우리 둘이 벌어서 오순도순 잘살아 보자. 그것이 딩크족입니다. 동크족은 뭐냐 하면 ’Two Only, No Kids' 나이가 늙어가면서 우리 둘이 벌은 돈은 꼭 지키고 자식들에게도 주지 말고 손주도 오지 못하게 하자. 그래서 늙은 노부부가 아예 자식들하고 등을 돌려 버리고 자기 둘만 같이 살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딩크족이나 동크족이라는 것이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단어인 것입니다. 또 요즘 항간에는 리셋증후군이라는 말을 종종 들을 수 있습니다. 이 말은 인터넷을 가지고서 게임을 하거나 자료를 다운받은 젊은이들이 속도가 느려지거나 시간이 한참 걸리거나 문제가 생기고 작동이 잘 안되면 리셋 버튼을 탁 누르면 싹 지워지거든요. 그러면 새로 시작합니다. 여기에 늘 익숙해지니까 그들이 이제는 모든 것을 리셋(reset) 할 수 있다. 결혼하고도 골치가 아프면 리셋, 싹 지워 버리고 그냥 헤어지고 새로 하자. 또 사회 생활하다가 거친 사람 있으면 미국에도 종종 학교에도 일어나고 우리 한국에도 군대에서도 일어났지만 총가지고 모두 죽여 버리고 다 집어 치워 버리고 새로 시작하자. 이 리셋 시키는 생각들이 오늘의 젊은이들 마음속에 유행되고 있는 것입니다. 자기중심으로 서서 자기 마음에 맞지 아니하면 다 새로 정리정돈하자. 이러한 증후군이 유행되고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정말로 부패한 인간의 이기주의적인 심리현상인 것입니다.

또한 옛사람은 육체적으로 병든 자인 것입니다. 성경에 ‘너희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라’ 인간은 별수 없이 생로병사의 고리에 걸렸습니다. 태어났으면 늙어지고 병들고 죽는 고리를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이것이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께 범죄 할 때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어진 명령입니다. ‘너희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라’
시편 107편 10절로 11절에 “사람이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 앉으며 곤고와 쇠사슬에 매임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며 지존자의 뜻을 멸시함이라”
전도서 5장 17절에 “일평생을 어두운데서 먹으며 번뇌와 병과 분노가 저에게 있느니라”
신명기 28장 59절에 “여호와께서 너의 재앙과 네 자손의 재앙을 극렬하게 하시리니 그 재앙이 크고 오래고 그 질병이 중하고 오랠 것이라

옛사람은 항상 심신에 병이 떠나지 않습니다. 또한 옛사람은 환경적으로 저주 아래에 있는 자인 것입니다.
제가 학교 다닐 때는 일정시대 말기요, 또한 6.25 사변이 났을 당시에 한국이 극도로 고통스러울 때였습니다. 일정말기에는 모든 양식을 다 공출 당해서 우리가 먹을 것이 없어요. 보릿고개는 요사이 말도 없지만 그 당시의 보릿고개는 정말로 어려웠었습니다. 사람들마다 산에 가서 나뭇껍질을 벗겨서 떡도 해먹고 우려서 밥을 해먹기도 한 것입니다. 밥에는 쌀은 없고 보리도 없습니다. 내 친구 한 사람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얼마나 배가 고팠던지 흙을 파먹고 이렇게 부어 가지고서 교실에 와서 앉았는데 얼굴이 이렇게 부었어요. 춘궁기에는 학교 클래스에 태반이 학교에 오지 않습니다. 영양실조에 걸려서 드러누워 있는 것입니다. 정말 배고픈 슬픈 시절을 지낸 것입니다. 보릿고개 그리고 여름에는 모두다 산에 올라가서 이제 돋아나는 나물을 캐서 나물죽을 해먹습니다. 정말 환경의 저주라는 것은 어마어마하게 무서운 것입니다. 오늘날은 그 이야기를 해도 모릅니다. 애들에게 옛날에 보리죽 먹고 나물죽 먹었다고 하니까 왜 그러느냐? 라면 끓여먹지 왜 그랬냐고 합니다. 라면은 요사이 발명된 것이고 그때는 라면도 없었고 또 라면 만들 재료도 어디 있습니까? 저주라는 것은 무서운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범죄 했을 때 하나님은 땅의 저주를 명령했습니다. 땅은 저주를 받아 가시와 엉컹퀴를 내고 너희 이마에 땀을 흘려야 먹고 살 것이라. 얼마나 무서운 것입니까? 우리 한국이 저주에서 해방된 것은 불과 반세기도 되지 않습니다. 오늘날 정말 얼굴이 퉁퉁 부어서 학교에 나오는 애들이 없습니다. 맨발벗고 오는 애들이 어디 있나요? 물론 굶주린 자들이 있지만 절대가난은 거의 사라지지 않았었습니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저주를 거두시고 그리스도 안에서 축복을 주신 것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세계 식량기구가 지난달 20일 발표한 2005 세계 식량불안보고서에 따르면 세계에서 한해에만 6백만 명의 어린이가 사망합니다. 이들은 기아로 인한 영양실조와 영양실조로 인한 면역력 약화로 이질과 폐렴, 말라리아 등 가벼운 전염병에 걸려서 사망하는 것입니다. 1년에 6백만 명이 오늘날도 못 먹어서 영양실조로 죽는 것입니다. 그리고 1년에 53만 명의 여성들이 영양실조에 걸려서 임신 중에 죽는다고 합니다. 우리 한국에는 그런 것을 아직 보지 못하잖아요. 그러나 바로 휴전선 저 북한에 수많은 어린이들이 영양실조로 죽어가고 있는 것을 우리가 보잖아요. 이 땅은 저주가 횡행하는 곳입니다. 하나님이 없는 곳에는 저주가 떠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오셔야 저주가 떠나가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없이 저주에서 해방될 수가 없습니다. 예수 없이 잘 먹고, 잘 입고, 잘 살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있어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옛사람은 영생의 소망이 없는 자인 것입니다. 죽고 난 다음 영원한 생명이 없으니까 내일 죽을 것이니 오늘 먹고 마시자. 이것이 세상 사람들의 일반 철학인 것입니다. 내일 죽을 것이다. 죽고 난 다음에 하늘나라가 있는 것도 모르고 지옥 있는 것도 모르니 그냥 죽으면 그뿐이다. 그러므로 어찌하든지 이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입고, 잘 살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너무나 비참한 것입니다.

요한복음 3장 36절에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고 했습니다. 오늘날 세상 사람들은 머리에 다이너마이트를 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진노를 머리위에 이고 있는 것입니다. 언제고 진노가 폭발하면 영원한 지옥으로 곤두박질치고 떨어질 수밖에 없는 운명에 처해 있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2장 12절에도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하나님이 없는 자는 소망이 없습니다. 왜, 죽으면 그뿐이니까요. 하나님이 있는 자는 소망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속에 영생이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지난 18일 한 일간지에 복권에 당첨되기 위해 네 살배기 남동생을 살해했다가 잡힌 남아공의 한 남자에게 20년 형이 선고 되었다는 기사가 실렸습니다. 그는 2002년 5월 동생을 살해한 후 시신을 태워서 그 냄새를 코에 맡았습니다. 이는 아프리카 일부지역에 남아있는 미신으로 인간의 뇌를 불태워 거기에서 나는 냄새를 흡입하면 복권에 당첨된다는 것입니다. 자기 동생을 태워서 그 뇌에 연기를 흡입해서 복을 받아 자기 복권에 당첨되기 위해서 동생을 죽이다니 이런 비극적인 일이 어디 있습니까? 영생이 없으니까 이 땅에만 살면 된다. 부모, 형제를 살해 하더라도 내가 이 땅에서 잘 먹고 잘 입고 잘살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 오늘날 절망적인 인간존재의 현실인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뭐라고 했습니까?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2. 예수님 안에서 새로운 존재

우리가 예수 믿으면 새것이 된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인간 공동체의 머리로 오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힐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인류 공동체의 머리로 오셔서 인류를 대표해서 우리의 죄와 불의, 추악과 저주, 절망과 죽음을 짊어지고 십자가에 올라가서 몸을 찢고 피를 흘려 모든 인류의 죄악을 청산해 버린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죽음 내 죽음, 예수 무덤 내 무덤, 예수 부활 내 부활 그리스도와 우리가 하나 되는 것입니다. 인류 공동체의 머리로 예수님이 오셨기 때문에 우리는 다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십자가에 못 박히고 더불어 고통당하고 더불어 죽고 더불어 장사지내고 더불어 부활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구주로 모시면 그리스도의 은혜가 우리 속에 역사해서 성령이 놀라운 역사를 베푸는 것입니다. 예수를 구주로 모시면 우리는 영적으로 죽은 자가 거듭나서 살아나서 하나님을 보고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어린 아이가 태어날 때 의사들은 어린 아이 발을 거꾸로 들고 등허리를 탁 엉덩이를 때리면 ‘응아~’하고 울지 않습니까? 처음으로 폐 속에 공기가 들어가면 ‘응아~’하고 우는 것입니다. 우리 속에 처음으로 성령이 들어오면 ‘아바 아버지여, 아바 아버지여’ 처음으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게 되는 것입니다. 놀라운 기적적인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모셔들이고 입으로 시인하자마자 성령의 생기가 우리 속에 들어와서 우리 죽은 영이 살아나서 하나님 아버지를 부르고 아버지와 대화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2장 1절에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6절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이러므로 예수 안에 들어오면 곧 성령께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역사하여 주셔서 우리의 죽은 영이 살아나고 우리 속에 하나님의 생기가 들어오므로 아버지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1833년 진화론의 주창자였던 찰스 다윈은 자신의 이론을 뒷받침 할만한 진화의 흔적을 찾기 위해 식인종이 살고 있는 한 섬을 찾아갔습니다. 그곳에서 그는 식인종들을 관찰한 후 이들보다 더 원시적이고 퇴화한 인간은 있을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들에게는 희망도 없고 변화도 기대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가장 원시적인 동물에 가까운 인종이라고 그는 예정을 했습니다. 그로부터 34년이 지난 후 다윈이 다시 그 섬을 찾아가게 되었는데 놀랍게도 희망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고 생각했던 그 식인종들이 교회를 세우고 학교를 다니고 가정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었으며 문명한 사람들이 되어 버리고 말았었습니다. 왜냐하면 존 페이턴이라는 선교사가 그 섬에 들어가서 예수 복음을 전해서 예수를 믿고 거듭나자 하나님 자녀가 되고 하나님 은혜를 받아 완전히 문명된 사람들이 되어 버리고 만 것입니다. 예수의 복음이 들어가면 어떠한 미개인들도 문명한 사람들이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식인종들이 완전히 문명하여 새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무식한 사람이 성경 안에서 유식한 사람이 되고 하나님의 지혜와 총명과 모략과 재능을 얻어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복음이 들어가는 나라마다 흑암에서 광명으로 무식에서 지식으로 죽음에서 삶으로 변화가 다가오는 것입니다. 어떠한 사람일지라도 예수 안에서 새것이 된 자는 영적으로 거듭난 삶을 살게 되고 하나님께서 복 주시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구주로 들어와서 우리 속에 거하시면 성령님의 은혜로 우리가 자연히 거룩하게 됩니다. 인생은 태어날 때부터 부패한 존재 아닙니까? 더러운 존재입니다. 죄가 누룩이 되어서 우리의 인격을 부패하게 만들기 때문에 가만히 있어도 그냥 부패해지는 겁니다. 죄를 안 가르쳐도 더러움을 안 가르쳐도 사람들은 욕심내고 음란하고 방탕하고 추하지만 예수님이 속에 들어오면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이 되고 성령이 와서 역사하는데 성령은 침체하는 영이 아니라 바람과 같이 움직이고 물과 같이 흐르는 영인 것입니다. 아무리 답답한 공기도 바람이 싸악 불어오면 맑은 공기로 가득 들어차고 아무리 썩은 시냇물도 새물이 흘러 내려가면 썩은 것은 사라지고 맑은 물이 흐르는 것처럼 우리 속에 예수님이 들어오면 성령이 와서 역사하므로 새로운 바람같이 우리 속에 새것으로 채워 놓고 생수가 넘쳐흘러서 모든 썩은 물은 다 사라지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성령이 오셔서 우리를 거룩하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말씀을 읽게 되고 말씀은 살아서 역사하여 우리의 영과 혼을 쪼개고 성령의 불이 우리의 마음속을 역사해서 죄악을 태우고 불의를 태우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 예수를 구주로 모신 이후 성령이 오시면 사람들이 변화 안 되려고 해도 안 될 수가 없습니다. 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데 썩은 공기가 머물러 있을 수가 없잖아요. 모든 귀신들이 다 쫓겨 나가잖아요. 모든 더러운 것이 씻겨 나가잖아요. 성령의 생명의 역사가 우리 속에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6장 11절에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느니라”고 했었습니다.

골로새서 3장 9절로 10절에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말라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는 자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부활을 쓴 러시아의 위대한 작가 톨스토이는 자신이 어떻게 악에서 선으로 돌아섰는지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톨스토이는 굉장히 많이 농토를 가진 지주로써 그는 허랑방탕해서 완전히 부패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훌륭한 작가가 된 이후로도 술과 방탕을 계속 했었습니다. 그의 인생은 깊은 죄악의 수렁에 빠져서 허우적이며 나올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많은 수양과 도덕을 닦으려고 애썼지만 안 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고 난 다음 그가 변화되고 이러한 고백을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은 제게 믿음을 주었습니다. 저는 그 말씀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저의 모든 삶이 변화되어 이전에 바라던 것을 바라지 않게 되었고 반면에 전에는 결코 바라지 않던 것을 바라게 되었습니다. 이전에 저의 눈에 악으로 보였던 것이 이제는 선으로 보였으며 선으로 보였던 것이 악으로 보였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새것이 된 자는 영적으로 거듭나 성령님의 은혜로 거룩해지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톨스토이는 그 이후로 거룩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문학작품도 거룩한 작품들을 쓰게 된 것입니다. 변화는 속에서 성령이 역사해야지 바깥에서 아무리 꾸짖고 채찍을 때리고 경계를 해도 안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속에서 변화가 다가오는 것인데 예수를 구주로 모시면 성령이 오셔서 우리 속에 거룩함과 성결함으로 변화를 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새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또한 새사람이 되면 마음에 천국이 임하여 주님 중심으로 삽니다. 우리 사람들의 마음이 예수 믿기 전에는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었습니다. 이 세상이 창세기 1장 1절에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고 한 것입니다. 공허합니다. 우리 사람들의 마음이. 어디서 와서 왜 살며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의미가 없는 삶으로 공허하고 혼돈합니다. 무엇이 참이고 거짓이며 무엇이 삶의 가치인지 모르게 혼돈합니다. 흑암이 깊음위에 있습니다. 마귀가 우리의 존재 깊이를 부여잡고 세상의 정욕을 따라 살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들 속에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빛이 있으라. 어둠이 사라지고 처음 빛이 있었던 것처럼 우리 공허하고 혼돈하고 흑암이 깊음이 있는 마음에 빛인 예수님이 들어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구주로 모시면 환한 빛이 우리 마음속에 비취게 되는 것입니다. 빛이 들어오며 어두움이 사라지고 공허함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천지가 환해지고 앞길이 환하게 보이는 것입니다. 어디서 와서 왜 살며 어디로 가는지 알게 되며 삶의 의미와 가치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를 모신 사람은 빛을 품은 사람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생명의 빛으로 들어오시고 창세기에 보면 이튿날에 궁창이 생겨나라~ 하늘이 생겨났습니다. 우리 속에도 예수님의 빛이 비취고 난 다음에는 하늘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전에는 세상만 가득 들어찼던 곳에 하늘이 우리 속에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예수 믿지 않는 사람과 믿는 사람이 뭐가 다릅니까? 믿는 사람은 빛을 가슴에 품고 하늘이 들어온 사람이 믿는 사람들이요, 세상 사람은 빛이 없고 하늘이 마음속에 없는 사람인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은 모두다 빛을 품고 하늘을 품고 사는 사람들이 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에 천국이 임하여서 이제는 주님이 마음 중심에 살게 된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에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들어오면 빛이 들어오고 하늘이 마음속에 들어오는 기적이 누구에게도 일어나는 것입니다. 전에는 몰랐는데 이제는 마음이 밝아지고 전에는 몰랐는데 육체적인 물질적인 세상 이외에 새로운 하늘나라가 임한 것을 알게 됩니다. 하늘과 빛이 들어온 것입니다.

12월 5일 국민일보에 파키스탄 지진 현장의 기적보도가 있었습니다. 지난 11월 23일부터 12월 1일까지 파키스탄의 파티카에서 지진피해 이재민들을 돌보던 기아대책긴급구호팀은 죽어가던 한 청년을 기적적으로 흑더미에서 끌어내었습니다. 10명으로 구성된 구호팀은 지난달 28일 사경을 헤매고 있는 한 청년을 끄집어내어서 청년의 몸을 보니까 죽은 사람처럼 싸늘하게 얼어붙어 있었고 맥박도 거의 뛰지 않았습니다. 구호팀은 청년의 몸을 마사지하고 임시방편으로 침을 놓아 피를 빼려고 했지만 제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그때 구호팀 중에 한분인 목사님이 우리 합심기도를 하자고 제안했습니다. 그들은 청년을 붙잡고 손을 잡고 청년을 위해서 간절히 기도한 후에 목사님이 청년을 향해서 되든 안 되든 해보자 하면서 “청년아 일어나라!” 고함을 쳤습니다. 그러자 꿈쩍도 안하던 청년이 눈을 번쩍뜨고 부시시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청년이 말하기를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누군가 나를 만지고 기도하는 소리가 들렸는데 그 소리를 듣자 몸에 힘이 확 들어와서 그가 눈을 뜨고 일어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거의 죽은 청년인데 동사상태에 있었는데 마사지를 해도 안 되고 침을 놓아도 안 되는데 합심기도하고 청년아 일어나라니까 생기가 들어간 것입니다. 에스겔의 마른 골짜기 뼈다귀를 향하여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말했습니다. “이 뼈다귀가 살겠느냐?” “하나님이 아시나이다.” “생기로 명하여 이 뼈다귀에 들어가게 하라.” 에스겔이 “생기로 들어가라!” 그 뼈다귀에 심줄이 돋고 살이 붙어 대군대가 되어서 일어난 것입니다. 오늘날도 우리가 예수를 전도하고 축복기도하고 명하면 생기가 들어가는 것입니다.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 청년은 그 길로 예수를 구주로 모시고 빛이 들어오고 하늘이 그 속에 들어왔습니다. 새로 구원받은 사람이 되어 버리고 만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 안에서 새것이 된 자는 치료도 받고 마음에 천국도 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새사람이 된 사람은 치료받고 부활의 희망을 가진 자인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모시면 그리스도께서 영을 죄악에서 치료해 주시고 마음을 절망에서 치료해 주시고 육체를 질병에서 치료하는 치료의 하나님인 것입니다. 천국은 그 기반이 치료에 있습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다하시고 주님 하신일은 귀신을 쫓아내고 병든 자를 고치고 평안을 주신 역사를 하신 것 입니다.주의 나라는 치료에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병든 인간을 고치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인간은 영적으로 심적으로 육체적으로 다 병들었습니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성한 데가 없습니다. 예수님이 오신 것은 이 병든 인간을 십자가에서 다 해결해 버리시고 부활의 생명으로 채워서 치료하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거듭난 사람은 새사람이 된 사람은 치료의 능력에 잠겨진 사람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모두다 치료의 바다속에 잠겨진 사람인 것입니다. 우리가 영육간에 치료의 생기가 우리 속에 충만한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2장 24절에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5장 1절에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나니”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이 땅에 살 동안에 하나님의 치료의 은총 속에 살고 장막집이 무너지면 손으로 짓지 않는 영원한 하늘나라 집으로 들어가는 희망을 가진 사람들이 된 것입니다.

미국의 남부도시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장성한 네 아들을 둔 어머니가 병원에서 임종을 하게 되었는데 그 어머니는 아들들을 다 침대에 둘러서 모이게 하고 난 다음 큰 아들부터 차례로 이름을 부르면서 인사를 나눴습니다. 그런데 첫째아들, 둘째아들, 셋째아들에게는 차례로 얘야~ 엄마가 이제 죽었다가 천당에서 깨어나니 ‘굿 나잇!’ 하면서 키스를 해달라고 했습니다. 막내아들 앤디에게 “앤디야 엄마에게 굿바이 키스를 해다오.”라고 말했습니다. 앤디는 이상해서 “엄마 형들에게는 굿나잇 키스를 하게 하고 왜 나에게는 굿바이 인사를 하라고 하세요?”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어머니가 마지막 힘을 내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앤디야~ 너희 형들은 첫째형도 둘째형도 셋째형도 다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았으니 죽음의 밤을 지나 부활의 영광스러운 아침에 깨어나서 다시 만날 것이지만 너는 아무리 전도해도 끝까지 예수 믿지 않고 네 고집대로 세상을 따라 살기 때문에 너와 나와는 이제 영원히 이별할 것 아니겠니? 나는 천국으로 가고 너는 지옥으로 가니 너하고는 굿나잇이 아니고 굿바이다. 그러므로 내게 굿바이 키스를 해다오.” 그러자 막내 앤디가 무릎을 꿇어 눈물을 흘리면서 “엄마 나 잘못했어. 나도 굿나이 키스할래. 나도 예수 믿고 저 죽음의 밤을 지나 천국의 아침에 깨어나서 엄마와 같이 만나겠어.” 그래서 그 애가 회개하고 예수를 믿고 어머니에게 굿나잇 키스를 했다는 기록을 읽어 보았었습니다. 예수 안에 있어 새것이 된 자는 이미 천국 영생을 가슴속에 가진 사람인 것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속에 이미 천국이 들어와 있는 것입니다. 천국이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천국은 너희 안에 있다고 말씀한 것입니다. 이미 우리에게 하늘이 들어와 있고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 우리 가운데 와서 계신 것입니다. 오늘 사실 우리 예배 공동체 속에는 하늘나라가 임하여 있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계시고 예수님이 계시고 성령이 계시고 뭇 천사들이 이곳에 와서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육의 눈으로 보지는 못하지만 영의 눈을 열면 우리는 바로 하나님과 함께 이미 천국에 들어와서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거듭난 사람은 아브라함의 복을 받은 사람인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복을 받았다. 이것은 무슨 의미입니까? 여러분 아담과 하와의 자손들은 원래 저주받고 살지 않습니까? 태어날 때부터 울고 태어납니다. 태어날 때 하하하하 하고 웃고 태어나신 분은 손들어 봐 주시기 바랍니다. 웃고 태어난 아기는 아무도 없어요. 전부다 응아아~ 응아아~ 어떻게 살꼬? 어떻게 살꼬? 울면서 태어납니다. 저주받은 땅에서는 울면서 태어납니다. 그러나 천당에 태어 날 때는 울면서 태어난 사람이 아무도 없어요. 할렐루야~ 하하하하 할렐루야~ 천국은 영원한 축복의 나라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천국이 우리 속에 들어온 사람은 아브라함의 축복이 들어와서 있기 때문에 우리에게 기쁨이 충만하게 되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3장 13절로 14절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니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3장 9절에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내가 네게 복주고 복주며 번창케 하며 번창케 하리라고 했는데 이 아브라함의 복을 예수 믿고 거듭난 사람에게 주시겠다고 말씀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라봄의 법칙을 사용하십시오. 여러분은 매일 아침 일어나서 여러분을 바라보십시오. 나는 아브라함의 복을 받은 사람이다. 복주고 복주며 번창케 하고 번창케 하리라는 약속을 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자기를 바라보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음울하고 낭패당하고 파멸당하고 저주받은 자기를 바라보아서는 안 됩니다. 바라봄의 법칙은 놀라운 위력을 발휘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 십자가를 통하여 복 받은 자가 된 것을 늘 바라보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이미 이 땅에 사는 동안 새사람이 되었으니 천국 영생을 얻은 자인 것입니다.

요한복음 10장 28절에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그리스도를 구주로 모신 사람은 이미 사망과 음부를 다 극복하고 영생을 얻은 사람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영생을 이미 가지고 있습니다. 장차 영생할 것이 아닙니다. 이미 영생을 마음속에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장 3절에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우리에게는 벌써 영생을 가졌고 영원히 거할 처소를 주님이 하늘에 예비해 놓으시고 여러분 그 올 날을 기다리고 계신 것입니다.

3. 노력으로냐 믿음으로냐?

셋째로, 우리는 이 거듭남의 은혜를 노력으로 받을 수 있습니까? 믿음으로 받을 수 있습니까?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이전 것을 벗어 버리고 새것이 되기 위해서 얼마나 노력하고 애를 써야 되느냐고 묻는 사람이 있습니다. 여러분 새것이 되려고 노력하는 자는 말하기를 서서히 노력으로 새것으로 변화될 것이라고 말하는데 절대로 사람의 노력으로 새것이 되지 못합니다.

저는 우리 성도 중에 한분이 편지를 했는데 내가 그 편지를 받고 나도 함께 울었습니다. 그가 6.25때 행상을 하는데 미군들이 열차에 가득 차고 화차에서 물건을 사주겠다고 오라고 해서 물건 팔러 갔는데 미군 병사들이 끌어 올려 가지고서 그만 그 안에서 윤간을 당했습니다. 화차에서 강간을 당하고 그 다음에는 내 던짐을 받았습니다. 그 길로 잉태해서 아기를 낳았는데 피부 색깔이 검은 아프리카 인종의 딸을 낳았습니다. 그러나 내 속에서 낳은 딸이니 안 키울 수가 있습니까? 주위에 따가운 눈총을 받으면서 그는 딸을 키웠습니다. 그리고 초등학교를 보냈는데 가는 곳마다 애들에게 왕따를 당하고 밤낮 얻어맞고 울고 오는데 하루는 오니까 온 팔이 피투성이가 되어 있습니다. 왜 그러냐니까 수세미를 가지고 검은 것을 씻어 낸다고 수세미로 얼마나 팔을 문질렀던지 온 팔이 피투성이가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그 애가 하는 말이 “엄마 나는 왜 아무리 씻어도 까만 것이 없어지지 않느냐? 다른 사람은 때를 씻으면 희게 되는데 왜 나는 희게 되지 않느냐?”고 통곡을 하고 모녀가 울었다는 편지를 내면서 이 애를 좀 해외 입양하기 위해서 나에게 추천서를 써달라고 그래서 제가 간절한 말로 추천서를 써서 입양을 하는데 도움을 베풀어 준 것입니다. 여러분 검은 피부를 아무리 수세미로 씻는다고 희어지지 않습니다. 죄인이 아무리 노력한다고 의인이 되지 않습니다. 옛사람은 아무리 노력해도 옛사람입니다. 교육받으면 교육받은 옛사람이요, 수양과 도덕을 닦으면 수양과 도덕을 닦은 옛사람이지 새사람으로 되지 않습니다. 서서히 노력으로 새것으로 변화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거짓입니다. 장차 하늘에 가서 이루어질 것이라고 하는 사람인데 그것도 거짓말입니다. 여러분 새사람이 되는 것은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이미 이 땅에 있을 동안에 은혜로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인류 공동체의 머리로써 우리를 대신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고 장사지내고 부활하므로 말미암아 옛사람은 청산하고 이미 새사람이 되어 버리고 만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는 이미 과거형세인 것입니다. 장차가 아닙니다.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보라 새것이 될 것이다가 아니고 새것이 되어 간다는 것도 아니고 새것이 되었도다. 과거현상인 것입니다. 우리는 새사람이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되었습니다. 이것을 알아야 돼요. 예수를 믿을 때 옛사람은 지나가 버렸고 이미 새사람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것을 우리가 마음속에 깨달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2장 8절로 9절에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우리 행위로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미 선물로 주신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새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마음속에 새사람이 되었음을 받아들이고 변화된 자기 모습을 바라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아이고 나는 아직 새사람 안돼요. 나는 예수를 믿어도 아직까지 새사람 될 수 없어요.’ 그것은 안 됩니다. 이미 주님이 새사람으로 만들어 주신 것이지 여러분의 힘으로 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여러분이 무슨 노력이나 수양과 도덕으로 된다면 모르겠지만 주님의 은혜로 된 것입니다. 여러분 50%만 은혜고 50% 노력으로 한다면 새사람이 될 사람은 없어요. 80%만 은혜 받고 20% 노력을 해서 새사람 되려고 해도 새사람 될 사람 없어요. 99% 은혜고 1%만 노력해야 된다면 그것도 새사람 될 사람이 없어요. 100% 은혜로 주신 것입니다. 나는 죄를 짓고 불의하고 추악하고 버림을 받아야 마땅한데도 불구하고 예수를 구주로 모실 때 주님은 예수님 안에서 여러분을 새사람으로 은혜로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너는 새사람이 되었다고 하나님이 도장을 찍어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새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내가 깨달아 알아야 되고 이것을 마음속에 받아 들여야 되는 것입니다. 변화된 자기 모습을 가슴속에 받아들이고 품어야 되는 것입니다. 나는 새사람이 되었다고 늘 나를 바라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 내사 그 사랑의 아들 나라로 이미 옮겨 주었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3장 5절로 7절에 “너희에게 성령을 주시고 너희 가운데서 능력을 행하시는 이의 일이 율법의 행위에서냐 듣고 믿음에서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을 그에게 의로 정하셨다 함과 같으니라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아들인줄 알찌어다”
새사람이 된 줄로 이제는 마음속에 확실히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환경을 바라보지 말고 내가 새사람이 안 된 것 같은 느낌을 의지하지 말고 인간의 이성으로 과연 내가 새사람이 될까 안 될까 그런 생각하지 말고 주의 말씀을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저 하늘이 무너지고 이 땅이 꺼져도 일점일획도 변함이 없습니다. 네 믿음대로 될찌어다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말씀을 믿으세요. 하나님 의 말씀이 여러분을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새사람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3장 26절로 27절에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이미 그리스도로 옷 입고 여러분은 새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마음에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새사람이 되었음을 입으로 시인하십시오. 늘 마음속에 나는 아직 별수 없어요. 나는 아직 죄를 짓고 있어요. 나는 아직 세상 사람이에요. 나는 아직 거룩하지 못해요. 그런 소리하면 안 됩니다. 마음속에 이미 깨닫고 내가 바라보고 믿은 것을 입으로 시인해야 되는 것입니다.
잠언서 6장 2절에 “네 입의 말로 네가 얽혔으며 네 입의 말로 인하여 잡히게 되었느니라”고 말했었습니다.

마태복음 10장 32절로 33절에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부인하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가 시인하면 하나님도 시인하시고 우리가 부인하면 하나님도 부인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새사람이 되었다고 시인하면 하늘에서도 네가 새사람이 되었다고 시인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인하는 말을 절대로 하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늘 감사드려야 됩니다. 하나님 새사람으로 만들어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골로새서 2장 6절로 7절에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입어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고 말한 것입니다. 감사를 넘치게 하라. 쉬지 않고 우리는 주님께 새사람이 된 것을 감사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여 나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옛사람은 지나가고 새사람이 되어서 의로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새로운 사람이 되어서 거룩하고 성결하게 되었습니다. 영육간에 치료받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영육간에 축복받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천국인이 되었습니다. 소망차게 되었습니다. 입으로 시인해야만 되는 것입니다.

[결론]

예수님께서는 2천년 전에 십자가상에서 내가 다 이루었다고 외쳤습니다. 이미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은 예수님 안에서 과거에 다 완성된 일입니다. 새삼스럽게 지금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2천년 전에 주님이 다 이루어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과 하나 되어 함께 죽고 장사지낸바 되고 함께 부활하여 새것이 되어 버렸습니다. 미래에 될 것이 아니요, 지금 되어가는 것도 아니요. 이미 예수님 안에서 다 이루어진 것입니다. 여러분은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옛사람은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지나가 버렸습니다. 여러분은 용서받은 의인이 되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하고 성결한 사람이 되어 버렸습니다. 치료받고 건강한 사람이 되어 버렸습니다. 축복받고 아브라함의 복을 받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부활과 영생과 천국인이 되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히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는 사람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택함을 받고 왕같은 제사장이 되어 버렸고 거룩한 나라가 되고 하나님 소유된 백성이 되어 버리고 만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다 이루어 놓은 것입니다. 우리 신앙이란 주님께서 다 이루어 놓은 것을 깨닫고 받아 들여서 바라보고 믿고 입으로 시인하고 감사해서 소유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노력이나 수단과 방법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되는 것입니다. 오직 믿기만 하면 그리스도의 성령께서 오셔서 여러분과 제 가운데 기적을 베풀어 주는 것입니다.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위해서 일해 놓은 것을 우리가 깨닫고 우리가 이것을 바라보고 믿고 기도하고 시인하고 감사하면 새로운 피조물의 역사가 여러분 생애속에 넘쳐나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

사랑이 많으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예수님께서 2천년 전에 십자가에서 이미 우리를 다 구원해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우리를 끌어안고 죽고 장사지내고 부활하셔서 우리에게 새로운 피조물이 되게 만들어 주셨으니 감사합니다. 아버지여 우리는 노력해서 새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옵니다. 힘쓰고 애써서 새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옵니다. 예수님 안에서 이미 변화된 우리 자신을 깨달아 알고 받아들이고 믿고 감사하고 기도하고 찬양하므로 이루어지는 것이오니 모두다 새사람의 권능 속에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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