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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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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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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리스도교적 생활의 네가지 단계 : 독자로 삼고 있는 이들의 받는 부르심
나는, 비록 서투르지만 흔연한 자세로 내 나름의 길을 걸어오면서 그리스도인의 삶에는 네 가지 종류 또는 형태가 있다고 생각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것은 다름아닌 '평범한' 삶과 '특수한' 삶. '고독한' 삶, 그리고 '완전한' 삶입니다.
이 중 세 가지는 현세에서 시작하여 현세에서 끝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네 번째 삶은 하나님 은총에 힘입어 이승에서 시작하지만 더없이 행복한 천상에서도 언제까지나 이어지게 됩니다!
그대도 이제 곧 알게 되겠지만 내가 이 네 가지 삶에 '평범한' , '특수한' , '고독한' , '완전한'이라는 일정한 순서를 매긴 까닭은 우리 주님께서 크신 자비로 그대를 불러 진심어린 열정으로 당신께 나아오도록 배려하실 때도 늘 동일한 순서와 방법을 따르셨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대도 익히 알고 있다시피 그대가 '평범한' 형태의 그리스도인생활을 해나가면서 속세에서 벗들과 어울려 지낼 때에도 하나님은 영원히 변치 않는 사랑(그대를 무(無)의 상태에서 빛어 만드시고, 아담과 더불어 타락한 그대를 당신의 고귀한 피로 속량해 내신 그 사랑)으로 그대가 당신과는 전혀 동떨어진 그런 삶을 살지 못하도록 막아주십니다. 그분은 이처럼 지극히 자비로운 방법으로 그대 안에 당신을 향한 열정을 불붙이시고 더없이 간절한 열망의 사슬로 당신에게 붙들어 매심으로써 그대를 '특수한' 삶으로 이끄셨고 당신의 특별한 종 중의 종이 되도록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이 이렇게 하신 것은 그대가 더욱 각별하게 그분 소유가 되고 평범한 형태의 삶 속에서 해온 것보다 한결 더 영적으로 살아가는 법을 터득하도록 만들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만이 아닙니다. 그분은 그대가 마냥 거기에 머물러있는 것에 만족하지 않으시고, 당신의 고혹적이고도 자비로운 방식으로 그대를 고독한 삶이라는 세 번째 단계로 끌어올려 주셨습니다. 그분이 늘 그대를 염두에 두며 마음에 간직하고 계시는 사랑은 이 정도입니다. 그리고 그대는 바로 그 상태에서 방법을 터득하여 이윽고 최후의 단계인 '완덕'의 삶으로 첫걸음을 내딛게 되는 것입니다.
나는, 비록 서투르지만 흔연한 자세로 내 나름의 길을 걸어오면서 그리스도인의 삶에는 네 가지 종류 또는 형태가 있다고 생각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것은 다름아닌 '평범한' 삶과 '특수한' 삶. '고독한' 삶, 그리고 '완전한' 삶입니다.
이 중 세 가지는 현세에서 시작하여 현세에서 끝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네 번째 삶은 하나님 은총에 힘입어 이승에서 시작하지만 더없이 행복한 천상에서도 언제까지나 이어지게 됩니다!
그대도 이제 곧 알게 되겠지만 내가 이 네 가지 삶에 '평범한' , '특수한' , '고독한' , '완전한'이라는 일정한 순서를 매긴 까닭은 우리 주님께서 크신 자비로 그대를 불러 진심어린 열정으로 당신께 나아오도록 배려하실 때도 늘 동일한 순서와 방법을 따르셨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대도 익히 알고 있다시피 그대가 '평범한' 형태의 그리스도인생활을 해나가면서 속세에서 벗들과 어울려 지낼 때에도 하나님은 영원히 변치 않는 사랑(그대를 무(無)의 상태에서 빛어 만드시고, 아담과 더불어 타락한 그대를 당신의 고귀한 피로 속량해 내신 그 사랑)으로 그대가 당신과는 전혀 동떨어진 그런 삶을 살지 못하도록 막아주십니다. 그분은 이처럼 지극히 자비로운 방법으로 그대 안에 당신을 향한 열정을 불붙이시고 더없이 간절한 열망의 사슬로 당신에게 붙들어 매심으로써 그대를 '특수한' 삶으로 이끄셨고 당신의 특별한 종 중의 종이 되도록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이 이렇게 하신 것은 그대가 더욱 각별하게 그분 소유가 되고 평범한 형태의 삶 속에서 해온 것보다 한결 더 영적으로 살아가는 법을 터득하도록 만들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만이 아닙니다. 그분은 그대가 마냥 거기에 머물러있는 것에 만족하지 않으시고, 당신의 고혹적이고도 자비로운 방식으로 그대를 고독한 삶이라는 세 번째 단계로 끌어올려 주셨습니다. 그분이 늘 그대를 염두에 두며 마음에 간직하고 계시는 사랑은 이 정도입니다. 그리고 그대는 바로 그 상태에서 방법을 터득하여 이윽고 최후의 단계인 '완덕'의 삶으로 첫걸음을 내딛게 되는 것입니다.
1. 그리스도인의 세 단계 삶 (「무지의 구름」 1장 )
하나님 안에서 사랑하는 벗이여, 아주 오래된 그리스도교 전승 하나는 하나님의 자녀가 사랑을 탐구하며 성숙해 가는데 세 단계 또는 세 가지 길이 있다고 인정했습니다. 정화의길, 조명의 길, 합일의 길이 바로 그것입니다.
살펴본 바로는, 사람들은 사실상 삶의 대부분을 이 세길 사이에서 보내고 있습니다. 이 말은 사람들이 위에 말한 길 중에 둘이나 심지어는 세 가지 길을 동시에 밟기도 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과정에 있는 단계는 이 세 가지가 전부입니다.
어떤 여정이나 다 그렇듯이 우리도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데,
첫 번째는 정화의 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끌리면서도 세속의 유혹과 죄의 습성, 윤리적 약점 또는 단순한 무지로 말미암아 사랑을 찾는 길에서 어떤 때는 뜨거워지고 어떤 때는 차가워집니다. 우리는 이제 겨우 기도하는 법을 배우고 있으며,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는 무엇 무엇을 해 달라고 청하는 기도로 드러나기 일쑤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시작입니다. 걸을 수 있게 되기 전에 먼저 기는 법부터 배워야 하니까요.
관상기도는 사실상 두 번째 단계인 조명의 길에서 시작됩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을깨닫고, 우리 쪽에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길을 열심히 찾게 됩니다. 종교는 문화 이상이며 진정한 삶의 길입니다. 우리는 도중에 잠시 미끄러지고 넘어져서 정화의 길로 되돌아갈 수도 있지만, 필요하면 언제라도 자진해서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나중에 달릴 수 있으려면 먼저 걷기부터 해야 합니다.
세 번째 단계는 합일의 길입니다. 이것은 성인들의 길이지만 우리 모두 부름 받은 길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이 길에 한 발을 (아니면 두 발을 모두) 들여놓고 있으면서도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수가 많습니다. 사랑하는 벗이여, 어쩌면 그대는 이처럼 높은 단계에 그대 자신을 올려놓기가 두려울지도 모릅니다. 아마 나는 그럴만한 자격이 없다'거나 '이 세번째 단계는 하나님의 특별한 벗들만을 위한 자리'라고 말하겠지요. 그것은 사실입니다. 그대에게는 그럴 만한 자격이 없습니다. 세 번째 길은 오로지 하나님의 특별한 벗들만을 위해 예비된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대가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라 당신이 그대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그대를 부르신다는 사실을 모릅니까? 하나님께서 그대를 사랑하시는 까닭에 그대는 하나님의 특별한 벗입니다. 이 사실을 인정하는 것은 결코 교만이 아닙니다. 그저 솔직한 것일 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대를 거룩함의 길로 부르고 계십니다. 그리고 이 거룩함은 그대가 획득해야 하는 무엇이 아닙니다. 예수께서 이미 그대를 위해 얻으신 것입니다. 그러니 그저 그것을 받아들이고 간절한 마음으로 두 팔을 벌려 주님을 향해 달리십시오. 세 번째 길에 걸맞는 특별한 종류의 기도가 관상기도입니다. 이 작은 책은 그대를 이 같은 하나님과의 사랑어린 합일로 차분히 인도하여 그 문지방을 넘어설 수 있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하나님 안에서 사랑하는 벗이여, 아주 오래된 그리스도교 전승 하나는 하나님의 자녀가 사랑을 탐구하며 성숙해 가는데 세 단계 또는 세 가지 길이 있다고 인정했습니다. 정화의길, 조명의 길, 합일의 길이 바로 그것입니다.
살펴본 바로는, 사람들은 사실상 삶의 대부분을 이 세길 사이에서 보내고 있습니다. 이 말은 사람들이 위에 말한 길 중에 둘이나 심지어는 세 가지 길을 동시에 밟기도 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과정에 있는 단계는 이 세 가지가 전부입니다.
어떤 여정이나 다 그렇듯이 우리도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데,
첫 번째는 정화의 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끌리면서도 세속의 유혹과 죄의 습성, 윤리적 약점 또는 단순한 무지로 말미암아 사랑을 찾는 길에서 어떤 때는 뜨거워지고 어떤 때는 차가워집니다. 우리는 이제 겨우 기도하는 법을 배우고 있으며,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는 무엇 무엇을 해 달라고 청하는 기도로 드러나기 일쑤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시작입니다. 걸을 수 있게 되기 전에 먼저 기는 법부터 배워야 하니까요.
관상기도는 사실상 두 번째 단계인 조명의 길에서 시작됩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을깨닫고, 우리 쪽에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길을 열심히 찾게 됩니다. 종교는 문화 이상이며 진정한 삶의 길입니다. 우리는 도중에 잠시 미끄러지고 넘어져서 정화의 길로 되돌아갈 수도 있지만, 필요하면 언제라도 자진해서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나중에 달릴 수 있으려면 먼저 걷기부터 해야 합니다.
세 번째 단계는 합일의 길입니다. 이것은 성인들의 길이지만 우리 모두 부름 받은 길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이 길에 한 발을 (아니면 두 발을 모두) 들여놓고 있으면서도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수가 많습니다. 사랑하는 벗이여, 어쩌면 그대는 이처럼 높은 단계에 그대 자신을 올려놓기가 두려울지도 모릅니다. 아마 나는 그럴만한 자격이 없다'거나 '이 세번째 단계는 하나님의 특별한 벗들만을 위한 자리'라고 말하겠지요. 그것은 사실입니다. 그대에게는 그럴 만한 자격이 없습니다. 세 번째 길은 오로지 하나님의 특별한 벗들만을 위해 예비된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대가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라 당신이 그대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그대를 부르신다는 사실을 모릅니까? 하나님께서 그대를 사랑하시는 까닭에 그대는 하나님의 특별한 벗입니다. 이 사실을 인정하는 것은 결코 교만이 아닙니다. 그저 솔직한 것일 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대를 거룩함의 길로 부르고 계십니다. 그리고 이 거룩함은 그대가 획득해야 하는 무엇이 아닙니다. 예수께서 이미 그대를 위해 얻으신 것입니다. 그러니 그저 그것을 받아들이고 간절한 마음으로 두 팔을 벌려 주님을 향해 달리십시오. 세 번째 길에 걸맞는 특별한 종류의 기도가 관상기도입니다. 이 작은 책은 그대를 이 같은 하나님과의 사랑어린 합일로 차분히 인도하여 그 문지방을 넘어설 수 있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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