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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와 해방 공간

요한일서 조용기 목사............... 조회 수 1751 추천 수 0 2009.09.13 16:4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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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요일5:19 
설교자 : 조용기 목사 
참고 : 2006년 1월 15일 주일2부 설교 
“또 아는 것은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고 온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처한 것이며”

<서론>
저는 오늘 여러분과 함께 “자유와 해방 공간”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우리가 사는 공간을 주거공간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휴식하는 공간을 휴식 공간이라고 말을 합니다. 우리가 함께 사는 곳은 사회적 공간이라고 말을 합니다. 우리 대한민국 국민이 사는 공간은 휴전선 이남의 반도와 거기에 속한 도서들입니다. 우리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인권과 법치주의로 통치하는 나라와 공간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북한은 다른 공간에서 살고 있습니다. 공산주의와 국가통제경제, 당과 수령이 정권으로 다스리는 나라 공간에서 살고 있습니다. 우리 민족끼리라는 말을 많이 듣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한민국과 북한은 전혀 다른 체제와 공간에 살고 있기 때문에 얼굴과 말만 닮았지 그 이외에는 닮은 것이 거의 전무합니다. 그 때문에 우리 민족끼리라는 말은 빈말에 불과 한 것입니다. 이처럼 신앙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믿지 않는 자가 사는 공간과 믿는 자의 사는 공간이 확연히 다릅니다.

<본론>
1. 타락한 아담의 자손인 인류의 생활공간

첫째로, 타락한 아담의 자손들인 인류의 생활공간을 우리 한번 생각해 봐야 됩니다.
아담과 그 자손들이 사는 삶의 공간은 버림받은 공간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시지 아니하고 하나님께서 도와주시지 아니하시는 인본주의적인 버림받은 공간에 인류는 살고 있습니다.
창세기 3:17~19에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한 나무 실과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너의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먹을 것을 먹으리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이 땅은 저주받은 공간입니다. 어느 곳에 가나 저주가 넘쳐흐릅니다. 타락한 아담의 자손들인 인류의 생활공간은 그 땅이 저주를 받아 현재 생명체의 생존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작년 11월 마지막 주 호주 빅토리아에서는 번개로 인해 무려 25곳에서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같은 시기 독일에서는 기습폭설로 교통사고 등 각종 사고가 2천여 건 이상 발생하여 140여명의 부상자를 냈습니다. 12월에는 인도에서 집중호우로 21명이 사망하고 22여만 명이 집을 잃고 방황하게 되었습니다. 작년 중동지역에서는 터키의 지진에 이어 이란에서도 지진이 일어났는데 파키스탄에서는 지난해 10월 대 지진으로 8만 7천명이 죽었습니다. 특별히 파키스탄은 겨울이 시작되면서 기온이 내려가고 지진으로 길이 끊겨 생존자들의 영양실조와 폐렴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지급한 텐트나 구호품이 턱없이 부족한데다 이들마저도 겨울을 나기에 부족한 것들이 많습니다. 생존자체에 지금 위협을 느끼고 있습니다. 이처럼 지금도 지구 곳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지진과 폭설과 호우와 각종 자연재해에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아프리카 대륙의 지난 만성적인 빈곤과 기아로 수백만 명의 생명을 앗아갔고 종족간의 싸움으로 지역적 인종 청소라는 참사까지 일어났습니다. 게다가 계속되는 가뭄으로 인하여 흉작과 물 부족 현상으로 아프리카 대부분의 지역은 더 이상 생명을 존속할 수 없는 비극적인 상황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타락한 아담이 사는 땅은 저주아래 있는 땅입니다. 언제 어디서 재난이 일어날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안심하고 살아갈 수 없는 공간이 오늘날 지구에서 사는 삶인 것입니다. 오늘 지상 생활에는 땅이 저주를 받았을 뿐 아니라 영적생명을 잃어버린 공간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으로 지음 받아 하나님과 함께 살며 하나님과 대화하며 살게 되었는데 죄를 지음으로 영원이 죽어 버렸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육혼만 가지고 사는 비극적인 존재가 되고 만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공간에 살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연적으로 영적으로 병들고 마음이 병들고 육체가 병들고 생활이 병들어 하나 온전한 것이 없는 것이 우리가 사는 현재의 공간입니다.
로마서 5:12에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그러므로 현재 우리가 사는 세계는 사망 공간입니다. 앞을 봐도 뒤를 봐도 좌우를 살펴봐도 죽음이 가득 차 있는 사망 공간에서 우리는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뿐 아닙니다. 우리 인생들은 마귀의 지배하에 사는 공간에 거주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5:19에 “또 아는 것은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고 온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처한 것이며”
온 세상이 악한 자 안에 있습니다. 마귀의 지배하에 있다는 것입니다. 마귀의 지배 공간 안에 우리가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귀의 세계는 다른 신을 섬기고 우상 숭배하고 무신론, 인본주의를 따르는 공간입니다. 하나님을 절대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귀의 공간에 사는 오늘 세상 사람들은 그의 삶속에 1초도 하나님이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마귀가 지배하는 공간입니다.
예레미야 25: 6에 “너희는 다른 신을 좇아 섬기거나 숭배하지 말며 너희 손으로 만든 것을 인하여 나의 노를 격동치 말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를 해치 아니하리라 하였으나”
사람들은 여기에 정반대되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로마서 1:25에 “이는 저희가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우상과 사신을 만들어 세워서 하나님보다 그를 더 섬기고 있는 것입니다. 시편 14: 1에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저희는 부패하고 소행이 가증하여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세상 공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정신적으로 타락한 인간 삶의 공간을 메우고 있습니다. 타락한 정신적인 공간은 이러합니다. 로마서 1: 28~31에 “또한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의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저주받은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은 이와 같은 정신적인 타락 공간속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매일같이 우리가 뉴스에서 보고 듣고 체험하는 바가 이 사실을 증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인간이 사는 것은 도덕적으로 부패하고 타락한 삶의 공간에 살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5:19~21에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 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라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의 세계는 윤리와 도덕적으로 완전히 부패한 공간속에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지난해 교회성장 11월호에 범죄발생빈도에 대한 연구결과가 보고되었는데 참으로 놀랍습니다. 1970년에는 우리나라에서 범죄가 발생한 간격이 1분 32초였는데 1980년대는 51초, 1990년에는 27초마다 범죄가 일어났습니다. 2000년에는 18초마다 한건씩 범죄가 발생한 것으로 조사 되었습니다. 경찰청이 조사한 2000년 범죄보고서에 의하면 2000년 한 해 동안 살인은 9시간 18분 만에 한건씩 일어났고 강도는 1시간 36분 만에 강간은 1시간 37분 간격으로 일어났습니다. 또한 폭력은 1분 35초 만에 절도는 3분 내에 재산범죄는 2분 42초의 간격으로 발생했습니다. 2000년 현재 우리나라 범죄건수는 총 186만 7천 882건으로 지난 20여 년간 3.14배나 늘어났습니다. 이러한 타락한 아담의 자손들인 인류의 생활공간은 마귀의 지배 하에서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살인, 분쟁, 악의가 가득한 곳입니다. 여기에 우리의 소망이 없습니다. 여기에 영원한 꿈을 가질 수가 없습니다. 이러한 타락하고 마귀가 지배하는 삶의 공간을 하나님이 심판하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결국에는 이 세상과 이 세상에 있는 사람들은 지옥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사망의 세계의 형벌공간이 이들을 위해서 예비 되어 있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6: 9~10에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란 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도적이나 탐람하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후욕하는 자나 토색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고 말하고 있고, 요한계시록 22:15에 “개들과 술객들과 행음 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및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마다 성 밖에 있으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오늘날 하나님을 저버리고 타락 공간, 부패 공간, 마귀의 지배공간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은 그 전체가 다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이며 영원한 지옥에 떨어질 수밖에 없는 운명을 짊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만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2. 자유와 해방 공간
둘째로, 우리가 생각하고 싶은 것은 자유와 해방 공간도 우리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이 세상에 절망과 죽음만 있는 공간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가운데 우리가 살 수 있는 자유와 해방 공간이 있습니다.
골로새서 1: 13~14에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 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구속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
이 세상 가운데 하나님의 아들의 나라가 들어와서 하나님 아들 나라의 공간이 우리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온 세상이 악한 자에게 속했지만 그 가운데 예수님이 오셔서 십자가에서 몸 찢고 피 흘려 하나님의 나라를 우리 가운데 임하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나라가 이 세상 가운데 임하여 있는데 바로 오늘 여러분 예배드리는 여의도순복음교회는 하늘나라 아들의 공간인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늘나라 공간이 우리 가운데 이루어져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들어오면 죄에서 자유와 해방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죄에서 자유와 해방을 주시기 위하여 예수님이 고난당하신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5: 21에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개신교 신학의 뿌리를 내린 어거스틴은 아담과 하와의 타락이 모든 인류의 죄의 노예상태로 두었으므로 죄의 치유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통해 주어지는 은혜라고 말한 것입니다. 노예가 스스로 해방될 수 없습니다. 노예는 더 강한 자가 와서 대가를 지불하고 사주어야 해방을 얻을 수 있습니다. 노예상태인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로 말미암아 자유와 해방을 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루터도 인간 의지가 마귀에 의해 노예 상태가 되었기 때문에 죄인의 능력으로는 자신을 구원할 수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죄에서 자유하기 위해서는 오직 성령의 능력을 통한 중생과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에 대한 믿음이 필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칼빈 역시 죄 속에서 인간은 부패되고 무력할 수밖에 없고 오직 하나님의 주권으로만 은혜의 나라로 옮겨질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죄에 대한 해결책은 그리스도의 대속적인 희생과 성령을 통해 거저 주시는 은혜라고 강조했습니다. 모두 다 말하는 내용은 인간은 죄의 포로가 되고 죄의 노예가 되고 완전히 부패했기 때문에 스스로 자정할 수 있는 힘이 없고 스스로 자유와 해방을 얻을 수가 없어 완전히 마귀의 노예가 되었는데 인간 밖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그 생명을 바쳐 보혈의 능력으로 우리를 값 주고 사주셔서 자유와 해방을 허락하여 주셨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무도 죄의 상태에서 해방될 수 없으며 종의 상태에서 자유를 얻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사망과 음부에서 해방될 수 있는 길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 십자가 이후로 구원과 자유와 해방을 얻을 삶의 공간을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해 주신 것입니다. 마귀에서 해방을 주시기 위하여 예수님이 고난당하신 것을 우리가 잘 압니다.
갈라디아서 5: 1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고 했으며, 골로새서 2:14~15에 “우리를 거스리고 우리를 대적하는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하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정사와 권세를 벗어버려 밝히 드러내시고 십자가로 승리하셨느니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통해서 율법을 제하시고 우리를 지배하는 마귀의 정체와 권세를 공개적으로 무장해제 하시고 구경거리로 만드시고 우리에게 종국적인 승리와 해방을 주셨다고 말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자유와 해방 공간이 있습니다. 온 세상은 악한 자에게 속했지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자유와 해방공간속에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교회를 박해하면 처음에는 교회가 지는 것 같이 보입니다. 그러나 나중에 보면 교회가 항상 승리했습니다. 초대교회는 로마당국으로부터 무서운 박해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300여년 뒤 로마황제 콘스탄티누스가 기독교를 믿어도 좋다는 칙령을 내렸습니다. 일제시대에 일본 당국은 온갖 방법으로 한국 교회를 박해했습니다. 신사참배를 강요하고 왕성 요배를 시켰습니다. 교회당을 팔아 그 돈으로 기관총과 전투기를 사고 교회 종을 떼어나다가 녹여서 대포를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결과를 보세요. 일본은 패망하고 교회는 더욱 성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일본이 그렇게 없애려던 한국교회에서 500명 이상의 선교사가 일본 전역에 나가서 복음을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2002년 2월 26일 조선일보 국제면 톱기사로 ‘중 공산당 종교인 입당 허용’이라는 기사가 실렸는데 이것 역시 교회가 거둔 승리입니다. 1949년 중국이 공산화 되면서 중국 당국은 교회를 없애기 위해 갖은 방법을 동원했습니다. 그런데 1979년 중국이 개방정책을 택한 다음에 조사해 보니 박해 30년 동안에 교인들의 숫자가 무려 4배 가까이 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무지무지하게 교회를 핍박하고 교인들을 가두었지만 교인 수는 오히려 1979년에 보니까 30년 박해 동안에 무려 4배나 교인들이 늘었습니다. 결국 중국은 이에 승복하고 지난 2002년 종교의 자유를 선포한 것입니다.
골로새서 2:14~15에 “우리를 거스리고 우리를 대적하는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하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정사와 권세를 벗어버려 밝히 드러내시고 십자가로 승리하셨느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결국 우리가 죄와 저주에서 해방되고 세상에서 승리하고 자유를 누리는 것은 하나님이 보증해 준 것입니다. 그러므로 죽는 것 같으나 살고 지는 것 같으나 이기고 가난한 자 같으나 부요한 자고 버림받은 것 같으나 환영을 받는 것이 우리 그리스도교 신앙인 것입니다. 역설적인 놀라운 은혜가 우리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마귀의 최대 무기인 죽음을 이기셨습니다. 인생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죽음 아닙니까? 죽음은 인간 생존의 종말 아닙니까? 주님께서 오셔서 십자가를 통하여 죽음을 죽여 버리고 만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17~18에 “내가 볼 때에 그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 같이 되매 그가 오른손을 내게 얹고 가라사대 두려워 말라 나는 처음이요 나중이니 곧 산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 찌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 주님께서 죽었다가 부활하심으로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지고 죽음과 음부를 완전히 정복해 버리셨습니다. 사망의 캄캄한 길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광명한 대로가 되어 버리고 만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선생은 사망을 향하여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고 담대하게 말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해방 공간을 얻었습니다. 이제는 죄에서 해방 되었습니다. 우리는 사망의 권세에서 해방 되었습니다. 마귀의 집에서 해방 되었습니다. 압박과 설움에서 자유와 해방을 얻게 되었습니다.
1945년 8월 15일 36년 동안 일제의 압박에서 고난당하던 우리들이 순식간에 해방을 얻었을 때 그 해방 공간 속에서 마음대로 태극기를 휘날리고 애국가를 부르고 얼싸안고 춤을 추던 것이 지금도 저의 마음속에 기억이 납니다. 해방 공간입니다. 옛날에 일제 압제 하에 있을 때는 태극기를 흔들다가는 감옥에 들어가고 애국가를 부르면 크게 형벌을 당합니다. 독립에 대한 이야기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해방 공간이 다가오자 이 모든 압제는 사라지고 자유와 해방과 승리와 기쁨만이 충만하게 된 것을 기억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유와 해방 공간에서 살아야 되고 반드시 그리스도 예수가 우리에게 주신 자유와 해방 공간을 믿음으로 성취해야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진리를 모르고 지금도 마귀의 지배 공간에 살고 있는 사람이 많습니다. 교회 왔다 갔다 하면서도 그들은 진리를 모르기 때문에 생각과 꿈과 믿음과 말이 마귀에게 억압당해서 패배적인 삶을 사는 사람이 너무나 많습니다. 오늘 자유를 얻지 못한 성도들을 위해서 우리는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해방과 자유 공간을 주셔서 비록 온 세상이 악한 자에게 속했지만 그 안에서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한 자유와 해방 공간에 살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만 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8:36에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케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하리라” 아들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몸 찢고 피 흘려 우리에게 자유를 선포 하셨는데 이 자유를 우리가 누려야 되는 것입니다.

3.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유와 해방 공간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용서와 의의 공간을 얻은 것입니다. 용서와 의의 공간에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로마서 8: 1~ 2에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한 여인이 간음하다가 현장에 잡혔습니다. 그 남편과 바리새교인, 사두개교인, 교법사들이 하나님의 율법에 따라서 그 여자를 처형하려고 예수께 끌고 왔습니다. 사람들은 손과 손에 돌을 들고 그 여자를 치려고 했습니다. 그 여자는 율법과 죽음의 공간에 처해서 이제는 어찌할 수 없이 생명을 잃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럴 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어디에 왔습니까? 이 여인을 죽이려고 서있는 모든 정죄 자들과 벌벌 떨고 있는 여자 사이에 예수님이 들어와서 손을 펴고 이 여자를 막았습니다. 예수님 뒤에는 해방과 자유의 공간이 있습니다. 예수님 앞에는 정죄와 심판의 공간이 있습니다. 그 공간 사이에 예수님이 팔을 벌리고 서서 예수님께서는 이 여자를 정죄하는 사람들을 향하여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이 여자에게 돌을 쳐라.” 여자에게 돌을 치려면 먼저 예수님을 때리고 돌이 여자에게 가야 됩니다. 예수님은 여자 앞에 가로막고 섰습니다. 정말로 상징적인 것입니다. 이 여자가 누굽니까? 우리를 대표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다 크고 적은 죄를 지어서 율법의 심판 하에서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와 정죄하는 율법 사이에 예수님이 손을 들고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쳐라. 돌은 예수님께 먼저 맞고 우리에게 다가오므로 우리는 맞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들은 이 여인을 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앞을 막고 주님께서 그들의 죄를 다 폭로했기 때문에 그들이 다 돌을 놓고 도망을 쳤습니다. 예수님은 정죄와 심판ㅇㄹ 하기 위해서 온 것이 아니라 용서와 구원을 해주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주님께서 울고 있는 여자에게 돌아보시면서 “여자여 너를 정죄하는 자가 있느냐?”고 물으실 때, 여자가 “없나이다.” 주님께서 다시 말씀하시기를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는다. 집에 돌아가서 다시 죄짓지 말라.” 주님은 우리에게 용서와 사랑을 베풀어 주셔서 살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몸 찢고 피 흘리므로 우리에게 정죄와 심판의 매서운 돌이 날라 오는 것을 그 몸으로 막아 주셨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값없이 용서받은 의인이 된 것입니다. 용서와 의의 옷은 우리가 만든 옷이 아닙니다. 주님이 만들어서 우리에게 입혀 주신 옷인 것입니다. 공짜로 받은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타락했었을 때 자기들은 무화가 나뭇잎을 만들어서 앞치마를 해 입었지만 무화과 나뭇잎은 곧장 시들어지고 햇빛에 말라 버리고 말았습니다. 아무리 손재주를 부려도 부끄러움을 가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짐승을 잡아 피를 흘리시고 가죽을 벗겨서 옷을 만들어 주었을 때는 반영구적인 옷이었습니다. 그것은 아담과 하와가 만든 옷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만든 옷인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실타래기 하나도 만진 적이 없습니다. 예수님이 진짜 당신 혼자서 만들어서 입혀 주신 옷인 것입니다. 오늘날도 십자가에 용서와 의의 옷은 우리가 무슨 공로로 값 주고 산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혼자 몸 찢고 피 흘려 의의 옷을 만들어서 우리에게 값없이 입혀 주신 것입니다. 남녀, 노유, 빈부, 귀천 할 것 없이 예수 그리스도 앞에 나와서 그리스도를 구주로 모시면 주님은 값없이 의의 옷을 입혀 주는 것입니다. “너는 용서 받았다. 너는 나로 말미암아 의로운 사람이 되었다.” 의라는 것은 죄를 한 번도 안 지은 상태를 말합니다. 하나님 앞에 부끄러움 없이 설 수 있는 자격을 말합니다. 마귀의 심판을 받지 않는 자격을 말합니다. 어마어마한 자격을 그리스도의 의로운 옷으로 입혀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의의 공간속에 살 수 있습니다. 주님은 또한 거룩함과 성결한 공간속에 우리를 살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6:11에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느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2:20에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주님께서 마귀를 쳐서 멸하시고 세상을 이기시고 마귀와 세상의 옷을 벗기시고 거룩한 옷과 성령의 충만한 옷을 입혀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공로로 말미암아 우리는 마귀와 세상에서 해방되고 주님 안에서 성결함과 성령충만의 옷을 입어서 성결과 성령충만의 공간속에서 살 수 있게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미국의 수도 워싱턴은 1993년 454명이 살해되므로 미국의 살해수도라고 불린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6년 후 워싱턴의 범죄율은 폭력 범죄율이 60%까지 떨어졌고 강도와 강간도 각각 70%, 40%나 줄었습니다. 이는 미국에서 일어난 기도 운동과 전 세계의 지속적인 중보기도 덕분이었습니다. 6천명 이상의 사람들이 매주 기도했고 전화번호부를 이용해서 그 도시에 사는 모든 사람들을 기도 명단에 올려서 기도하자 도시 전체에 놀라운 변화가 나타난 것입니다. 미국에서 가장 범죄율이 많던 워싱턴이 그 도시를 위해서 집중적으로 기도하자 범죄율이 60%에서 70%, 40%까지 줄어진 것입니다. 기도는 범죄 공간을 자유와 해방 공간으로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과테말라의 작은 도시 알모롱가에서는 동일한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알모롱가는 20여년 전만해도 폭력이 난무하고 가난하고 대부분의 성인 남자들이 알콜 중독에 시달리고 있는 곳이었습니다. 또한 죽음의 신을 열렬히 숭배한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가장 깨끗하고 행복하고 풍성한 도시로 변화 되었습니다. 이렇게 된 배경에는 마리아노 목사님의 목숨을 건 중보기도가 있었습니다. 마리아노 목사님은 일주일에 3,4일씩 금식하며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교회들이 성장하고 병 고침의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수백 명의 사람들이 회개하여 마을사람 90%가 복음화 되고 돌을 던지던 깡패들이 변하여 목회자가 되었고 술집 36개 중 33개가 문을 닫아 버렸습니다. 이뿐 아닙니다. 기도의 위력은 토지를 비옥하게 하여 수확량이 무려 1천배 이상 늘어났습니다. 하나님의 기적이 기도를 통해서 영적으로 정신적으로 도덕적일 뿐 아니라 생활면에서도 놀라운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이 도시에서 주로 생산하는 것이 홍당무입니다. 보통 빨간 무인 홍당무는 그렇게 크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마리아노 목사님이 이 도시를 위해서 기도를 하고 축복을 한 결과에 희한한 일이 일어나서 홍당무 이것만한 것이 팔뚝 만해요. 이런 것들이 수확되어지니 전 세계 사람들이 관광을 하러 왔고 미국 농무성에서 특별한 씨앗인줄 알고 채취해서 아무리 조사를 해보아도 똑같은 홍당무입니다. 그런데도 그 씨앗을 다른데 심으면 보통만한 게 나오지만, 이 도시에만 들어와 심으면 팔뚝만한 게 납니다. 그래서 관광 도시가 되고 굉장한 수입을 얻어서 도시 전체가 잘살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주님께서 오시면 마귀와 세상을 물리치고 하나님의 거룩함과 성령충만한 개인과 가정과 사회를 만들어 놓아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 들어오면 치료와 건강의 공간을 우리에게 허락해 주시는 것입니다. 질병이 꽉 들어찬 세계지만 우리는 치료와 건강의 공간 안에서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10: 38에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저가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를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라고 말합니다. 마귀는 모든 사람을 눌러서 병들게 하지만 예수님은 마귀를 밀쳐 내시고 쫓아내시고 우리에게 치료와 건강을 허락해 주시는 주님이신 것입니다.
마태복음 8:17에 “이는 선지자 이사야로 하신 말씀에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 또한 베드로전서 2:24절에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라고 말하십니다.
그러므로 항상 여러분은 십자가를 바라볼 때 ‘나는 치료받은 공간에 살고 있다. 질병의 세계 속에 살고 있지 않다. 치료받은 공간에 살고 있다. 2천 년 전 예수님이 나의 연약한 것과 병을 짊어지고 가셨다. 나는 2천 년 전부터 고침을 받은 사람이다. 지금 어떤 병이 와도 그것은 거짓되고 헛된 것이다. 예수 이름으로 물리칠 수 있다. 예수 이름으로 대적할 수 있다.’ 예수 이름으로 쫓아내고 물리치고 자유와 해방 공간을 누려야만 할 것인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과 형통의 공간에서 살수가 있는 것입니다. 어떻게 되어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해방과 자유, 축복과 형통의 공간에 살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3: 9의 말씀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고 말했으며, 고린도후서 9: 8에는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미국의 돈 슈나이더라는 유능한 교수가 있었습니다. 그는 수재였고 졸업 후에 뛰어난 실력과 자질을 인정받아 대학 교수가 되었습니다. 학생들에게도 인기가 있는 교수로 월급도 많이 받았습니다. 그런데 1991년도 교수 재임용에서 어떤 영문인지 모르게 탈락을 했습니다. 처음에는 서류가 잘못된 줄 알았는데 정말 탈락 되었습니다. 그는 수백 군데 대학에 이력서를 냈지만 그를 부르는 학교는 하나도 없었습니다. 저금했던 돈도 바닥이 나고 생활비도 떨어졌습니다. 아내 뱃속에 있는 아이를 고아원에 보내야할 정도로 절박한 상황에 처했습니다. 차라리 죽어 버릴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절망의 끝에서 주님 앞에 엎드려 기도를 했습니다. “주님! 제가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저는 인생의 맨 밑바닥에 떨어졌습니다. 주님께서 나를 위하여 저주를 대신 짊어지셨다고 했는데 나는 왜 이렇게 저주의 밑바닥에 떨어졌습니까? 나는 어떻게 해야 처자를 먹여 살릴 수 있습니까?” 그렇게 부르짖어 기도했습니다. 그럴 때 마음속에 주님께서 용기를 주시면서 ‘내가 뭘 못하겠는가! 이대로 주저앉을 수 없다. 일어나자!’ 이런 용기를 주님께서 주셨습니다.
그래서 무엇이든지 한다는 마음으로 취직한 것이 페인트 공으로 취직을 했습니다. 대학교수가 밧줄을 타고 큰 빌딩에 페인트를 칠하는 일이었습니다. 1층부터 수십 층 꼭대기까지 올라가서 목숨을 걸고 대롱대롱 메 달리면서 페인트칠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오직 주님을 의지하며 열심히 일을 했습니다. 페인트칠을 하면서 바람이 불면 흔들리면 “주여, 살려 주시옵소서. 살려 주시옵소서. 주님이여 살려 주시옵소서. 이것이 아브라함의 축복입니까? 살려 주십시오.” 그러면서 페인트칠을 했습니다. 자기는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브라함의 복을 준다는데 왜 페인트공이 되어 가지고서 대학교수가 줄에 대롱대롱 매달리면서 페인트칠을 해야 되는가! 그 생활을 1년, 2년, 3년 동안 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갑자기 하나님께서 감동을 주셨습니다. ‘그렇다. 네가 당한 이 고난과 고통을 책으로 써서 다른 사람한테 읽히게 하자.’ 그런 생각이 났습니다. 그는 자신이 페인트 공으로 일하면서 배웠던 지식과 경험을 토대로 ‘절벽산책’이라는 책을 썼는데 책이 나오자마자 일약 베스트셀러가 되어서 엄청나게 돈이 들어와서 그 한권으로 평생을 먹고도 살 수 있는 인쇄를 얻게 된 것입니다. 작가로써 명성을 날려 대학교수 이상의 명예까지 얻은 것입니다. 여기저기서 강의 요청까지도 받고 이제는 한평생 교수로 지낸 것보다 더 값진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그때야 비로소 ‘아! 하나님이 모든 것이 합동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는구나! 교수로 있는 것보다 페인트 공으로 있다가 책 지어가지고서 더 돈도 많이 벌고 일약 유명하게 되고 더 값진 삶을 살게 되었구나!’ 하는 것을 깨달았다는 간증을 했습니다. 하나님 안에 있으면 결국 형통한 삶을 살게 되며 그리스도 안에 있는 공간은 고난과 저주의 공간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축복과 형통의 공간이 되기 때문인 것입니다. 종국적으로 우리는 부활과 영생 천국의 공간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온 세상은 사망 안에 꽉 들어찼지만 우리는 그 세상 안에서 영생과 천국의 공간 안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 교회 공동체가 바로 자유와 해방 공간이요,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스리시는 공간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예수께서 다스리시는 자유와 해방 공간에 들어와 있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7:21에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로마서 14:17에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스코틀랜드 출신의 유명한 미국 목회자 피터 마샬은 미국 상원의원 목사였습니다. 세상을 떠날 때의 일입니다. 그의 임종시간이 다가오자 부인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 모습을 본 목사님은 빙그레 웃으며 “여보, 내일 아침에 다시 만납시다.” 이렇게 말하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부인이었던 캐더린 마샬여사는 남편의 죽음을 목도하고 크게 용기를 얻어 ‘나의 남편은 목사였다’라는 책을 출판하고 이후 많은 신앙서적을 집필했습니다. 그녀는 목사의 사모로 오랜 세월을 살았지만 그때까지도 천국에 대한 확신이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남편이 죽음 앞에서 너무나 평안하게 “내일 아침에 다시 만납시다.”라고 말하는 것을 보고 영생의 소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확실히 천국이 있구나. 하늘나라가 없이 우리 남편이 저렇게 평안하게 세상을 뜰 수가 있느냐.’ 남편 죽음을 보고 사모님이 천국이 있는 것을 확신을 얻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두려워하는 죽음을 이기셨습니다. 죽음이란 공포와 두려움을 이기고 믿는 자에게 영생을 누릴 수 있는 자유와 해방 공간을 허락해 주신 것입니다.

<결론>
여러분 똑같은 세상이지만 죄와 마귀가 다스리는 공간과 예수님 안의 자유와 해방 공간이 있습니다. 똑같이 서울에 우리가 살지만 서울에 마귀가 다스리는 속박의 공간이 있는가 하면 예수를 믿고 우리에게 자유와 해방을 주는 은혜의 공간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자유와 해방이 주어진 공간 안에 있다는 것을 깨닫고 바라보며 꿈꾸고 믿고 기도하며 강하게 자유와 해방을 선포하고 시인하고 누리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우리 아버지여!
이 세상은 마귀에게 속하고 모든 사람들은 마귀의 공간 속에서 죄를 짓고 사망의 당하고 마귀의 지배하에 있습니다. 그러나 그 속에 예수님이 찾아 오셔서 십자가를 짊어지시므로 우리에게 자유와 해방 공간을 허락해 주셔서 우리는 오늘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이 세상에 살면서 자유와 해방을 가슴속에 품고 우리는 자유와 해방을 믿고 누리며 살게 되었음을 감사합니다. 우리 성도들이 모두다 그리스도 안에서 용서받은 의인이요, 거룩하고 성결한 사람이요, 치료받은 사람이요, 아브라함의 복을 받은 사람들이요, 천국 영생 복락을 얻은 사람으로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모두다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는 축복 공간에서 살게 도와주시옵소서. 하나님이 선택해 주시고 왕 같은 제사장으로 만들어 주시고 거룩한 나라로 만들어 주시고 그의 소유된 백성으로 만들어 준 공간 속에 살게 도와주시옵소서. 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공간을 떠나지 말게 도와 주시옵시고 항상 그리스도의 은혜의 공간속에 사는 우리들이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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